누가복음(09-04)
사명과 능력을 잃어버린 제자들
누가복음 9장 37-50절
믿음은 다양한 욕망을 만듭니다. 거룩한 욕망도 있지만 탐욕적이고 이기적인 욕망도 있습니다. 우리의 삶은 우리가 갈망하는 바에 따라 진행됩니다. 제자들의 그릇된 욕망과 교만은 세상적 성공과 지위에 대한 집착에서 비롯됩니다. 누가 크냐는 논쟁은 제자들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이해하지 못한 결과로, 예수님께 책망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섬김과 겸손을 강조하셨습니다.
- 변화산 위에서의 영광과는 대조적으로 산 아래서 현실적인 문제와 씨름하고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누가 크냐는 논쟁 중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사람 중에 가장 작은 자가 큰 다고 가르쳐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베푸시지만, 믿음이 벗어나고 패역한 세대는 그를 배반할 것입니다.
능력을 잃어버린 제자들(37-43)
사단은 얼마나 사람들을 위하는 척하는지 모릅니다. 결코 사찰 입구의 사대천왕처럼 험상궂은 얼굴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빛의 천사로 위장하고 속이고 거짓말합니다. 하지만 철저하게 인간을 파괴합니다. 얼마나 냉정하고 잔혹한지 모릅니다. 그리고 인간이 그 책임을 모두 하나님께 돌리도록 만듭니다. 사단은 탐욕스럽고 불합리한 세상 체제를 통해 인류를 전쟁으로 몰아놓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인간들을 위해 영광의 자리에서 내려와서 고난의 장소인 골고다로 올라가셨습니다.
37이튿날 산에서 내려오시니 큰 무리가 맞을새 38무리 중의 한 사람이 소리 질러 이르되 선생님 청컨대 내 아들을 돌보아 주옵소서 이는 내 외아들이니이다 39귀신이 그를 잡아 갑자기 부르짖게 하고 경련을 일으켜 거품을 흘리게 하며 몹시 상하게 하고야 겨우 떠나 가나이다 40당신의 제자들에게 내쫓아 주기를 구하였으나 그들이 능히 못하더이다 41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너희에게 참으리요 네 아들을 이리로 데리고 오라 하시니 42올 때에 귀신이 그를 거꾸러뜨리고 심한 경련을 일으키게 하는지라 예수께서 더러운 귀신을 꾸짖으시고 아이를 낫게 하사 그 아버지에게 도로 주시니 43사람들이 다 하나님의 위엄에 놀라니라 그들이 다 그 행하시는 모든 일을 놀랍게 여길새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37-43)
마가복음은 예수님과 변화산에 동행했던 세 명의 제자들이 다른 제자들에게 돌아왔는데, 마침 큰 무리에 둘러싸인 채 서기관들과 더불어 변론하고 있었다고 소개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곧바로 질문을 하나 던지신 것으로 소개합니다.
(1) 배경 설명(37-38)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변화산의 영광스러운 장면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곳에서 모세와 엘리야를 통해 ‘예루살렘에서 돌아가셔야 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런데도,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곧 돌아가셔야 할 분이지만, 하늘로부터 ‘그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나 제자들 모두 십자가의 순종 후에 반드시 부활의 영광이 있음을 알고 이 땅에 영광을 위해서 참된 영광을 버리는 삶을 살지 않아야 했습니다. 본문은 예수님께서 왜 변화산에서 내려오셔서 갈보리 산으로 올라가야 하는지 보여줍니다.
(2) 한 아버지의 요구(39-40)
예수님께서는 변화산에 머물러 있지 않으시고 산에서 내려오셨습니다. 산에서 내려오니 큰 무리가 환영하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37). 무리 중에 한 사람이 예수님께 달려 나왔습니다. 그 사람은 ‘선생님 청컨대 내 아들을 돌보아 주옵소서 이는 내 외아들이니이다’라고 간청했습니다(38). 자기 외아들(독자)의 병을 고치기 위해 예수님께 나왔던 것입니다. 의사가 환자를 봐야 치료할 수 있듯이, 예수님께서 아들을 보고 살려주시길 기대합니다.
예수님께서 아들을 보는 중에 아버지는 아들의 증상을 자세히 설명합니다(39; 마 17:15-16; 막 9:18). 문제의 원인을 귀신으로 판단합니다. 귀신이 그를 사로잡아 갑자기 부르짖게 만들었고 경련을 일으켰으며, 거품을 흘리게 했습니다. 몸시 상하게 하고 나서야 떠났습니다. 아들이 예측불허의 행동을 하는 원인은 귀신의 장난과 폭력성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안 계신 중에 아버지는 제자들에게 고쳐 달라고 부탁했지만, 그들은 무기력했습니다(40). 제자들은 영적인 전쟁에 아무런 능력을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귀신을 쫓아내기 전에 재자들이 귀신을 쫓아내는 권위를 받고도(9:1), 실패한 이유를 지적합니다. 제자들의 모습은 영적으로 무능력해서 귀신 들린 아이를 고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영적인 능력보다 다른 것에 더 집착하고 있었습니다. 세상적인 가치관을 버리질 못해 집착한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모든 귀신을 제압하고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세를 부여 받았습니다(누가복음 9:1-2). 실제로 그들은 귀신을 내 쫓고 병을 고치기도 했습니다(9:6). 그런데 본문에서는 언제 그랬냐는 듯, 아무런 능력도 행하지 못한 것입니다.
(3) 예수님의 탄식과 치유(41-42)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귀신을 쫓아내지 못한 이유를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너희에게 참으리요’(41)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지적하는 문제는 ‘믿음’에 있었습니다. 제자들에게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이곳에서 말씀하신 ‘믿음’은 무엇에 관한 것이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가르쳐주시고 선포한 하나님 나라에 대한 믿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 땅에 임한 ‘하나님의 통치’,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통치’, ‘하나님의 구원’을 믿는 자들이 죄와 사망 권세를 이기고 살아나실 새로운 삶에 대한 믿음입니다. 항상 사단은 이 사실을 믿지 못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죄와 사망 권세 아래 사로잡히게 만듭니다. 귀신에 사로잡힌 모습은 귀신들려 경련을 일으키고 거품을 흘리게 하며 몹시 상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바라보고 아무 일도 아직 못하는 제자들의 믿음 없는 모습입니다.
제자들은 그들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대한 믿음보다도 눈에 보이는 귀신의 힘인 세상에 존재하는 악의 세력을 더 본 것입니다. 그러므로 두려움이 그들 마음에 찾아온 것입니다. 그 두려움이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자 아무 능력도 행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래 참으시고 하나님의 긍휼을 베푸십니다. 제자들의 믿음 없음을 책망하시며 즉시 귀신을 내쫓고 아이를 고쳐주었습니다. 그리고 귀신들인 아들을 고쳐 아비 품에 돌려주십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죽음과 부활이 꼭 필요한 이유가 바로 이 외아들 같은 인류를 사망의 속박에서 해방하여 전정한 자유를 주기 위해서입니다. 모두가 그 위엄에 놀라고 경이감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도리어 자신의 받아야 할 고난과 죽음을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은 깨닫지 못하고 묻는 것조차 회피했지만, 주님은 잠깐의 영광에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사명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사명을 잃어버린 제자(44-48)
사명을 잃은 사람들은 능력도 잃어버린 것입니다. 제자들은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제자의 길을 잃어버렸습니다. 그것이 얼마 되지 않는데 말입니다. 그들은 귀신을 쫓아내지 못한 사실을 자숙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집중해야할 것에 집중하지 못하고, 계속적으로 다른 것들에 집착하고 있었습니다.
44이 말을 너희 귀에 담아 두라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겨지리라 하시되 45그들이 이 말씀을 알지 못하니 이는 그들로 깨닫지 못하게 숨긴 바 되었음이라 또 그들은 이 말씀을 묻기도 두려워하더라 46제자 중에서 누가 크냐 하는 변론이 일어나니 47예수께서 그 마음에 변론하는 것을 아시고 어린 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자기 곁에 세우시고 48그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또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라 너희 모든 사람 중에 가장 작은 그가 큰 자니라(44-48)
예수님께서는 다시 다른 동네로 떠나고 있었습니다. 가던 길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자신이 사람들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을 것을 알려주셨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죽으시기까지 사랑하시고 섬기시지만, 제자들은 이런 와중에 제자들은 논쟁이 붙었습니다. 놀랍게도 그것은 ‘누가 크냐?’(46)라는 논쟁입니다. 몇 시간 전에는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며 민망하던 제자들입니다. 그들이 이제는 ‘누가 큰가?’에 대해 서로 논쟁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이 서로 의논하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천국에서 큰 사람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린 아이 하나를 데려가 안으시고 말씀하셨습니다.
48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 어린 아이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또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곧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라 너희 모든 사람 중에 가장 작은 그이가 큰 자니라(48)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에서 누가 가장 큰 사람인지 가르쳐 주셨습니다. 세상에서는 낮은 사람들이 높은 사람을 섬깁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에서는 오히려 높은 사람일수록 더욱 많이 섬긴다는 것을 알려 주셨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어린이는 대접받지 못하는 대표적인 ‘작은 자’였습니다. 이 작은 자인 어린이처럼 더 작은 자를 섬기는 사람이 가장 큰 사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린아이처럼 낮아지고 포기하고 희생하며 가장 작은 자인 어린 아이를 영접하는 것이 하늘에게 가장 큰 자입니다. 섬김을 받는 사람보다 섬기는 자가 더 위대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의 길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23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24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23-24)
제자들은 작은 성공에 도취되어 있었습니다. 전도 파송에서 귀신을 쫓아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변화산에서 놀라운 모습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이러한 모습을 볼 때, 대단한 능력을 말합니다. 그러나 작은 성공에 도취될 때, 실패의 지름길입니다.
욕심을 쫓아가는 제자들(49-50)
사명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일관된 일이 있습니다. 세상에 대한 욕심이 나타난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에게도 그런 세상적인 욕심의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49요한이 여짜오되 주여 어떤 사람이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는 것을 우리가 보고 우리와 함께 따르지 아니하므로 금하였나이다 50예수께서 이르시되 금하지 말라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너희를 위하는 자니라 하시니라(49-50)
예수님께서 위에 같은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요한은 여전히 자신이 예수님의 제자로서 가진 권위를 은근히 드러내고 한 것 같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말끝에 “주여 어떤 사람이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어 쫓는 것을 우리가 보고 우리와 함께 따르지 아니하므로 금하였나이다.”라고 말합니다. 무슨 의도로 말했겠습니까?
방금 전에 믿음이 없어서 귀신을 쫓아내지 못한 제자들이 귀신을 쫓은 사람들을 배척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연약함은 인정하지 못하고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기득권만 주장한 것입니다. 자기를 부인하지 못한 탐욕 때문에 자기만의 아성을 쌓지만 스스로 고립을 자초합니다. 점점 자기 매너리즘(mannerism)에 빠진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곳곳에서 이러한 현상을 나타납니다. 자기 이권에만 관심이 중심 되어 있고, 소외 받는 이웃을 찾아 연약한 자들과 고통당하는 자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기독교가 이 세상에 진리를 바르게 세워야 합니다. 진리 안에서 능력을 세상에 발휘해야 합니다. 세상을 향해 빛과 소금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것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을 때, 하나님은 교회를 깨우시는 것입니다. 요즘 매스컴에서 기독교의 비리가 자주 보도되고 있습니다. 교회들이 깨어나도록 매스컴을 통한 하나님의 간절한 외침입니다. 교회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제자들을 보냈지만 사실상 예수님께서 가신 것입니다. 그들이 하는 말은 예수님의 말씀이 되고 그들을 거절하는 것은 예수님을 거절하는 것이 됩니다. 오늘 증인인 교회도 예수님의 몸으로서 예수님의 영이신 성령을 의지하여 언제 어디서나 증인으로서 주님의 추수에 참여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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