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02-01)
라합의 믿음과 하나님의 구원
여호수아 2장 1-14절
우리는 믿음의 행위를 통해 하나님의 계획에 동참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모든 이에게 열려 있으며, 누구나 그 은혜를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행동할 때, 하나님께서 신실하게 인도해 주심을 믿어야 합니다. 라합의 이야기는 용기와 결단력의 중요성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필요한 지혜와 힘을 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 여호수아는 가나안 땅의 입구에 위치한 첫 번째 도성 여리고를 정탐하기 위해 두 사람을 ‘은밀히’ 보냅니다. 이스라엘의 진영은 현재 요단강 동편의 싯딤에 있습니다. 그곳은 민수기 25장에서부터 이스라엘이 머물기 시작하던 곳인데, 거기서 그들은 모압 여인들과 음행을 저지르기도 했습니다.
두 정탐꾼의 여리고 탐문(1-2)
중요한 일을 앞두고 철저히 준비하고 계획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는 우리가 원하는 목표를 성취하는 데 필수적입니다. 철저한 준비는 성공의 열쇠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계획을 신뢰하고 따를 때 우리는 그분의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는 우리 삶에 큰 힘이 됩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통해 우리는 안전하고 성공적인 길을 걸어갈 수 있습니다.
1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싯딤에서 두 사람을 정탐꾼으로 보내며 이르되 가서 그 땅과 여리고를 엿보라 하매 그들이 가서 라합이라 하는 기생의 집에 들어가 거기서 유숙하더니 2어떤 사람이 여리고 왕에게 말하여 이르되 보소서 이 밤에 이스라엘 자손 중의 몇 사람이 이 땅을 정탐하러 이리로 들어왔나이다(1-2)
이스라엘 백성은 싯딤에 진을 구축한 뒤 요단강을 건널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앞서 살펴본 대로, 어떤 사람들은 여리고 정탐 이야기가 시간의 흐름에 단절을 일으킨다고 말하나 1-3장 서사의 스토리 전개는 아주 자연스럽습니다: 도하 지시-정탐-도하 실행. 이 여리고 정탐 활동은 민수기 13-14장의 열두 정탐꾼 이야기를 연상시킵니다. 어떤 사람들은 제1세대의 정탐 활동과 더불어 이러한 정탐 활동은 여호와에 대한 불신을 암시한다고 해석합니다. 그러나 가데스 바네아의 열두 정탐꾼과 아이 성 정탐을 보듯이 정탐 자체는 정상적이고 일상적인 군사 활동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두 정탐꾼은 기생 라합의 집을 숙소로 잡습니다. 바빌로니아 탈무드, 70인경, 신약에서도 그녀의 신분은 ‘기생’(포르네)으로 확정됩니다(히 11:31; 약 2:25). 이것의 어원인 동사 ‘자나’는 간통과 같은 남녀 간의 불법적인 성관계를 지시합니다. 정탐꾼이 기생 라합의 집으로 들어간 것은, 창녀촌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드나들기에 서로 낯선 사람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곳을 드나드는 사람은 자신을 은닉하고 은밀하게 행위를 즐기기 때문에 낯선 사람의 출현이 외부에 발설될 위험이 적었을 것입니다. 또 라합은 당시 사회적 소외 계충의 신분으로 멸시받고 소외된 변방의 인물이었고 또한 집의 위치도 주변으로 밀려난 성벽 주변이었기에, 그녀의 집에서 벌어진 일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정탐꾼들은 사회적으로 소외된 그녀가 여리고에 우호적인 태도를 갖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을 것입니다. 실제로 라합은 아마도 그들의 설득을 받아들여 그들에게 적극 동조합니다.
본문은 원인과 과정에 대해 침묵하지만, 정탐꾼들의 바람과 달리 그들의 신분은 노출되었습니다. 그 장소의 은닉성이 그들을 보호해줄 것이라는 예상이 빗나갑니다. 신고자는 생소한 외지인들을 인지한 뒤 인근까지 진격해 와 그 땅을 위협하고 있는 이스라엘 사람이라는 것을 어떤 계기로 알아차렸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잠입해 왔다면 정탐 외에 다른 목적이 있을 수 없었습니다. 신고자가 ‘두 명’이라고 하지 않고 ‘몇몇’이라고 한 것으로 보아 그는 정탐꾼들에 대한 정확한 정보는 모르고 있습니다. 고고학적 발견에 의한 여리고 성은 규모가 작고 주민도 최대 삼천 명 정도에 불과했을 것으로 추론되기 때문에 그들은 외지인에게 쉽게 발각되었을 것입니다.
두 정탐꾼을 숨기는 라합(3-7)
우리는 때로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옳은 일을 해야 합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지혜롭게 대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용기와 결단력은 우리의 신앙과 행동에 있어서 필수적입니다. 지혜로운 대처는 문제 해결의 열쇠가 됩니다. 이는 우리의 믿음과 행동이 함께할 때 더 큰 힘을 발휘함을 보여줍니다.
3여리고 왕이 라합에게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네게로 와서 네 집에 들어간 그 사람들을 끌어내라 그들은 이 온 땅을 정탐하러 왔느니라 4그 여인이 그 두 사람을 이미 숨긴지라 이르되 과연 그 사람들이 내게 왔었으나 그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나는 알지 못하였고 5그 사람들이 어두워 성문을 닫을 때쯤 되어 나갔으니 어디로 갔는지 내가 알지 못하나 급히 따라가라 그리하면 그들을 따라잡으리라 하였으나 6그가 이미 그들을 이끌고 지붕에 올라가서 그 지붕에 벌여 놓은 삼대에 숨겼더라 7그 사람들은 요단 나루터까지 그들을 쫓아갔고 그들을 뒤쫓는 자들이 나가자 곧 성문을 닫았더라(3-7)
여리고 왕은 즉시 라합의 집으로 사람을 보내 그곳을 수색합니다. 당시 가나안은 부족 중심의 여러 도시 국가들이 세력 경쟁과 더불어 전략적 공생을 하고 있었는데, ‘여리고 왕’이라는 표현에서 여리고 또한 도시 국가의 형태를 띠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라합은 이미 두 정탐꾼을 숨긴 상태입니다(6). 여기서 우리는 정탐꾼들과 라합 간에 이미 모종의 거래와 대화가 있었는데, 그들이 이미 여호와에 대한 소문을 듣고 겁을 먹은 라합을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고 추론해볼 수 있습니다. 라합은 그들을 옥상의 삼대(stalks of flax) 속에 숨겼습니다. 당시 가옥 구조는 지붕이 평평한 옥상이었습니다. 그 공간은 햇볕이 잘 들어 곡식을 말리거나 물건을 보관하는 등 다양하게 활용이 가능했습니다. 삼대는 당시 옷감 재료인 베실을 만드는 재료로서 상당히 중요한 작물이었습니다(베실 제조 과정이 이집트의 한 벽화에 상세히 묘사되어 있다). 팔레스타인의 보리 수확은 성경의 음력 달력으로 1월의 유월절 어간 (태양력 3-4월)에 시작되는데, 키가 1미터 정도인 삼대는 한 달 앞서 (태양력 2-3월) 수확을 해서 말렸습니다(Howard; 요세푸스 역시 평평한 지붕에 삼대를 말리는 풍습을 기록한다[Josephus Ant. v, i, 2]). 이것은 그들이 여리고를 공격하기 전인 1월 10일에 요단 강을 건넌 뒤 길갈에 진을 쳤다는 4:19의 보고와 맞아떨어집니다.
라합은 여기서 거짓말을 합니다. 어떤 주석가들은 그녀의 거짓말은 그 자체로 죄라고 지적하며 조직신학에서는 이 문제를 가지고 소위 상황 윤리를 둘러싼 논쟁을 합니다. 전통적 견해와 조직신학의 윤리학에서는 상위의 계명을 지키기 위해 하위의 계명을 어쩔 수 없이 위반하는 경우 윤리적으로 죄로 간주할 수 없다고 설명합니다. 살인을 막기 위해 사람을 숨기고 추적자에게 거짓말을 하는 행위가 속임수로 정죄될 수는 없습니다. 결국 여리고 군인들은 라합의 거짓말에 쉽게 속고 맙니다. 아마도 여관에 숱한 외지인이 일상적으로 드나들기 때문에 ‘그들이 어디서 온 사람들인지 모르고 어디로 갔는지 모른다’는 라합의 말은 전혀 거짓으로 들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게다가 밀정들은 한 곳에 오래 머무는 법이 없고 정탐 지역을 두루 돌아보아야 하기 때문에, 군인들은 그들이 해가 지기 전에 급히 떠났다는 라합의 말을 쉽게 믿었습니다. 오히려 자신들이 한발 늦었다며 초조해했을 것입니다. 여리고 군인들은 그들이 요단강을 건너 이스라엘 진영으로 원대 복귀할 수 있다는 것을 예상하고 나루터까지 쫓아가서 수색했습니다. 그리고 성문을 닫아 혹시 성안에 아직 머물고 있을지도 모를 간첩들의 탈출로를 봉쇄했습니다.
하나님의 명성을 들은 라합(8-11)
우리는 믿음을 실천하기 위해 용기와 결단을 가져야 합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때로는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결단력이 요구됩니다. 이러한 용기와 결단은 우리의 믿음을 굳건히 하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데 필수적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과 지혜로 이 결단을 내릴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이뤄 나가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8○또 그들이 눕기 전에 라합이 지붕에 올라가서 그들에게 이르러 9말하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 우리가 너희를 심히 두려워하고 이 땅 주민들이 다 너희 앞에서 간담이 녹나니 10이는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홍해 물을 마르게 하신 일과 너희가 요단 저쪽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 시혼과 옥에게 행한 일 곧 그들을 전멸시킨 일을 우리가 들었음이니라 11우리가 듣자 곧 마음이 녹았고 너희로 말미암아 사람이 정신을 잃었나니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위로는 하늘에서도 아래로는 땅에서도 하나님이시니라(8-11)
여리고의 수색대를 따돌린 라합은 옥상으로 올라가 상황을 알리면서 자신의 정치적, 종교적 망명 이유를 설명합니다. 그녀가 수색하러 온 군인들에게 문을 열어주기 전에 먼저 옥상에 정탐꾼들을 숨겼다는 것은 정탐꾼들이 자신들의 신분을 밝히고 그녀를 이미 설득했음을 의미합니다. 그녀가 그들에게 협조한 이유는 현재의 고백에서 분명히 드러납니다. 그녀와 여리고 주민들, 온 가나안 땅의 사람들은 여호와가 그동안 행하셨던 일을 이미 모두 전해 듣고 공포에 떨고 있었습니다. 출애굽과 홍해가 갈라진 기적, 그리고 요단 동편 아모리 왕 시혼과 옥의 연달은 패배와 전멸은 그들에게 충격적인 소식이었습니다. 여호와의 전사인 이스라엘이 자신들의 코앞까지 다가오자 그들은 마음이 녹아내리고 정신적 공황 상태에 빠졌습니다. 라합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상천하지의 하나님, 곧 하늘 위와 땅 아래를 모두 다스리는 진정한 신이라고 고백합니다(11).
구원을 부탁하는 라합(12-14)
인간 관계에서 신뢰와 서약은 매우 중요합니다. 신뢰는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기반이 되며, 서약은 관계를 더욱 견고하게 만듭니다. 이러한 요소가 없으면 관계는 쉽게 무너질 수 있습니다. 신뢰와 서약은 관계의 안정성과 지속성을 보장합니다. 특히 신뢰는 상호 협력과 소통을 원활하게 합니다. 이로써 건강하고 강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12그러므로 이제 청하노니 내가 너희를 선대하였은즉 너희도 내 아버지의 집을 선대하도록 여호와로 내게 맹세하고 내게 증표를 내라 13그리고 나의 부모와 나의 남녀 형제와 그들에게 속한 모든 사람을 살려 주어 우리 목숨을 죽음에서 건져내라 14그 사람들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우리의 이 일을 누설하지 아니하면 우리의 목숨으로 너희를 대신할 것이요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이 땅을 주실 때에는 인자하고 진실하게 너를 대우하리라(12-14)
아마 여리고에서 천대받은 라합은 여호와 하나님이 어떤 신인지를 깨닫고 새로운 삶을 위해 종교적 망명을 결단합니다. 각자의 국가 신을 숭배했던 고대 사회에서 다른 국가 신으로의 개종은 곧 국적을 바꾸는 정치적 망명이기도 했습니다. 라합은 여리고 입장에서는 저주받을 배신자였겠지만, 그녀는 더 나은 삶을 선택했으며 참된 신이 누군지를 깨달은 뒤 피할 수 없는 심판으로부터 생명을 얻을 기회를 부여잡은 것입니다. 그녀는 이기적인 것이 아니라 지혜로웠습니다. 모압 여인 룻과는 다른 동기의 신앙적 결단입니다. 라합은 자신과 더불어 모든 가족과 친족들의 생명을 보장해줄 것을 요구합니다. 자신이 그들에게 자비(헤세드)를 베풀었으니, 이제 그들도 자신에게 자비(헤세드)를 베풀어야 합니다. 그녀는 그들에게 서약(맹세)과 더불어 증표를 요구합니다. 증표(오트 에메트)는 문자적으로 ‘진실의 표식’을 뜻합니다. 라합의 요구는 그들의 서약이 참되다는 표시를 달라는 것입니다. 이 증표는 바로 나중에 정탐꾼들이 구원을 위한 표시로 삼은 붉은 줄일 것입니다. 두 정탐꾼은 라합의 요구대로 맹세합니다. 그들은 만일 라합이 비밀을 지키면, 자신들이 죽는 한이 있더라도 목숨을 걸고 라합과 그의 가족들의 생명을 지켜주겠다고 보장합니다(공동 번역과 새번역을 보라). 그리고 라합의 자비 (헤세드)에 보답하여 그들도 라합에게 자비(헤세드)와 진정성(에메트)을 베풀겠다고 약속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신뢰하고, 그분의 계획을 따를 때 성공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또한, 용기와 결단력을 가지고 신뢰와 협력을 바탕으로 행동해야 합니다. 믿음을 고백하고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경험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 모든 요소가 합쳐져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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