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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26-02)


무력 대신 믿음으로 이긴 다윗

사무엘상 26장 13-25절


 

인생을 살아가는 데는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면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먼저는 인간 중심의 삶을 살아가는 인위적인 방법이 있고, 다음으로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가는 신본적인 방법이 있습니다. 다윗과 사울의 모습을 보면서 이 두 가지 방법으로 살아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울은 인본적인 생활의 대표적 사람이며, 다윗은 하나님 중심의 생활의 대표적인 모습입니다.

 

  • 다윗은 십 광야까지 자신을 죽이러 온 사울을 보고 이번에는 자신이 먼저 밤에 아비새 한 사람만 데리고 사울의 진으로 들어가 사울의 물병과 창을 들고나옵니다. 하나님께서 진의 모든 사람들이 깊은 잠이 들게 하셨기 때문에 사울은 또다시 다윗에게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지만, 다윗은 이번에도 사울을 살려줍니다. 그리고 멀리 도망간 후에 지난번과 같이 사울을 불러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는 행동이 여호와 앞에 죄라는 사실을 밝힙니다.

 

다윗의 첫 번째 말(13-16)

하나님께서는 심은 것을 온전히 거두게 하신 분입니다. 사람들의 관계도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공의와 신실함으로 사람들을 대하게 될 때, 선한 열매를 맺게 하실 것입니다. 그 신실함의 기준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다윗은 끝까지 신실하게 사울 왕을 대하였습니다.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이러한 모습을 보았을 것입니다.

 

13이에 다윗이 건너편으로 가서 멀리 산 꼭대기에 서니 거리가 멀더라 14다윗이 백성과 넬의 아들 아브넬을 대하여 외쳐 이르되 아브넬아 너는 대답하지 아니하느냐 하니 아브넬이 대답하여 이르되 왕을 부르는 너는 누구냐 하더라 15다윗이 아브넬에게 이르되 네가 용사가 아니냐 이스라엘 가운데에 너 같은 자가 누구냐 그러한데 네가 어찌하여 네 주 왕을 보호하지 아니하느냐 백성 가운데 한 사람이 네 주 왕을 죽이려고 들어갔었느니라 16네가 행한 이 일이 옳지 못하도다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너희 주를 보호하지 아니하였으니 너희는 마땅히 죽을 자이니라 이제 왕의 창과 왕의 머리 곁에 있던 물병이 어디 있나 보라 하니(13-16)

 

다윗은 사울의 진에서 멀리 떨어진 언덕 꼭대기로 건너가 아브넬을 불렀습니다. 다윗은 아브넬이 사울 왕을 보호해야 하는 자신의 임무를 소홀히 하여 왕의 생명을 위태롭게 했다며 아브넬을 꾸짖었습니다. 그는 죄악을 충동질해서 사울로 하여금 범죄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직무 유기를 했습니다. 목숨을 바쳐 왕을 보호해야 했습니다.

 

(1) 다윗의 이동(13)

 

다윗과 아비새는 사울이 자는 진영으로 들어가 물병과 창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다윗은 사울을 충분히 죽일 수 있었지만, 그를 죽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증거를 가지고 나왔던 것입니다.

다윗은 여호와의 도우심으로 무사히 사울의 진영을 빠져나온 후에, 이번에는 진에서 먼 산 위로 갑니다. 본문에서 거리가 멀다는 말을 두 번이나 함으로써 다윗이 안전한 거리로 도망하였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2) 아브넬을 부르는 다윗(14)

 

안전한 곳에 도망한 다윗은 사울의 군사들과 사울의 군대 장관인 아브넬을 부릅니다. 이에 아브넬은 말하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묻습니다.

 

(3) 아브넬을 책망하는 다윗(15-16)

 

다윗은 자신이 누구인지 밝히지 않고 아브넬에게 이스라엘에서 가장 뛰어난 용사가 주군인 왕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였다고 책망합니다. 그러면서 누군가 왕을 죽이려고 들어갔었다고 말합니다. 다윗은 자신들이 사울의 진에 들어갔다 나온 이야기를 하면서 아브넬이 근무에 태만했다고 질책합니다. 다윗은 사울에 대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고 표현하며, 이런 왕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한 군대 장관과 군인들은 마땅히 죽어야 한다고 심하게 책망합니다. 이렇게 아브넬을 책망한 후에 자신이 사울에게 다녀간 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자신이 들고 온 물병과 창을 보여줍니다. 다윗은 계속해서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는 죽여서는 안 된다고 말했고 여기서는 보호받아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이것은 본문의 의미상으로 볼 때는 일차적으로 자신이 사울을 죽일 수 없는 이유이며, 이차적으로는 사울이 자신을 죽여서도 안 되는 이유입니다. 자신도 여호와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이기 때문입니다. 신약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는 목회자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여호와의 기름부음을 받은 왕 같은 제사장이기 때문에, 교회 공동체 안에 있는 형제자매를 함부로 모욕하거나 해치려고 해서는 안 되며, 그들을 수단이나 도구로 사용해서도 안 됩니다. 사역자가 왕적인 특권을 갖고 군림해서도 안 되며, 서로 존중하고 보호해야 합니다.

 

다윗의 두 번째 말(17-20)

사람들이 죄의 늪에서 빠져 나오는 것이 인간의 힘과 노력으로 불가능합니다. 죄는 우리를 노예와 같이 만들어 끊고 갑니다. 죄의 강력한 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십자가의 은혜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십자가의 은혜로 죄의 지배에서 벗어나 은혜의 지배를 받아야 자유케 됩니다.

 

17사울이 다윗의 음성을 알아 듣고 이르되 내 아들 다윗아 이것이 네 음성이냐 하는지라 다윗이 이르되 내 주 왕이여 내 음성이니이다 하고 18또 이르되 내 주는 어찌하여 주의 종을 쫓으시나이까 내가 무엇을 하였으며 내 손에 무슨 악이 있나이까 19원하건대 내 주 왕은 이제 종의 말을 들으소서 만일 왕을 충동시켜 나를 해하려 하는 이가 여호와시면 여호와께서는 제물을 받으시기를 원하나이다마는 만일 사람들이면 그들이 여호와 앞에 저주를 받으리니 이는 그들이 이르기를 너는 가서 다른 신들을 섬기라 하고 오늘 나를 쫓아내어 여호와의 기업에 참여하지 못하게 함이니이다 20그런즉 청하건대 여호와 앞에서 먼 이 곳에서 이제 나의 피가 땅에 흐르지 말게 하옵소서 이는 산에서 메추라기를 사냥하는 자와 같이 이스라엘 왕이 한 벼룩을 수색하러 나오셨음이니이다(17-20)

 

사울 왕은 자신의 생명을 살려준 다윗을 향해 죄를 고백했습니다. 깊은 잠에서 깨어나 일어난 사울 왕은 먼 곳에서 아브넬을 향해 책망하는 다윗의 외치는 책망의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다윗의 손끝에서 살아났다는 것을 깨닫고 고백합니다.

 

(1) 다윗을 부르는 사울(17)

 

다윗의 말을 듣고 있던 사울은 이것이 다윗의 목소리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다윗을 ‘내 아들 다윗아 이것이 너의 목소리냐’며 묻는데, 이것은 24:16과 동일합니다. 사울은 다윗의 소리를 들으면서 기시감을 느꼈고, 그래서 동일하게 질문한 것입니다. 이런 동일한 상황의 반복을 통해 사울이 변함없이 어리석은 인물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2) 다윗의 무죄 주장(18-19)

 

다윗은 이런 질문에 대해 ‘왕이여 내 목소리입니다’라며 동일한 문장 순서로 대답합니다. 이어서 24장과 동일하게 왜 자신을 계속해서 뒤쫓고 있는지 물으면서 자신에게 아무런 잘못이 없음을 주장합니다. 24:10에서는 사울이 다윗을 쫓아다니는 것은 사울의 곁에서 충동하는 사람들의 말을 들었기 때문이라는 사실만을 말하였습니다. 하지만 19절에서는 만일 자신을 죽이도록 충동질한 분이 여호와이시면 자신은 기꺼이 여호와께서 기뻐 받으시는 제물이 되겠다고 합니다. 이것은 자신의 죽음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자신은 기꺼이 죽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만일 사람들에 의해 충동질된 것이라면 그 사람들이 여호와 앞에서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자신을 이 땅에서 쫓아내어 다른 땅으로 가라는 것은 우상을 숭배하라고 하는 말과 같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는 이스라엘 땅과 여호와 하나님이 결합되어 있기 때문에, 이스라엘 땅에서 쫓겨나는 것은 여호와 앞에서 쫓겨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다윗은 함부로 사람을 모함하여 하나님의 기업에서 쫓아내는 것에 대해 강력하게 경고합니다.

 

(3) 다윗의 호소(20)

 

여호와 앞에서 먼 곳에서 나의 피가 땅에 흐르지 말게 해달라는 요청의 핵심은 죽이지 말아달라는 것보다는 여호와 앞에서 먼 곳인 이방 땅에서 죽게 하지 말아달라는 것입니다. 20절 하반절에서 다윗은 자신을 메추라기에 비유하며 사울을 메추라기 사냥꾼에 비유하는데, 메추라기를 사냥할 때 메추라기가 지칠 때까지 쫓아다니다 지쳐서 더 이상 못 날게 되면 잡는 것처럼 자신을 지치도록 끊임없이 쫓고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스라엘의 왕이 벼룩 한 마리를 잡기 위해 이렇게 노력할 필요가 있냐고 말합니다. 이스라엘 왕과 벼룩 한 마리를 대조함으로 존귀한 왕이 자신처럼 하찮은 존재에게 이렇게 신경 쓰며 고생할 필요가 없다고 말합니다. 다윗은 24장에서도 자신을 벼룩에 비유한 적이 있습니다. 여기 다윗의 말은 자신의 무죄를 천명하기보다는 자신을 잡으려고 쫓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한 일이며 동시에 하나님 앞에서 큰 죄인지 강조하고 있습니다.

 

다윗의 세 번째 말(21-25)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 우리의 생명을 중요하게 여겨주십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생명 안에 영원한 보물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두 죄인으로 하나님과 원수였던 자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우리의 생명을 크고 중요하게 여기사 우리를 위해 예수님을 보내 주셨습니다.

 

21사울이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도다 내 아들 다윗아 돌아오라 네가 오늘 내 생명을 귀하게 여겼은즉 내가 다시는 너를 해하려 하지 아니하리라 내가 어리석은 일을 하였으니 대단히 잘못되었도다 하는지라 22다윗이 대답하여 이르되 왕은 창을 보소서 한 소년을 보내어 가져가게 하소서 23여호와께서 사람에게 그의 공의와 신실을 따라 갚으시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오늘 왕을 내 손에 넘기셨으되 나는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 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음이니이다 24오늘 왕의 생명을 내가 중히 여긴 것 같이 내 생명을 여호와께서 중히 여기셔서 모든 환난에서 나를 구하여 내시기를 바라나이다 하니라 25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내 아들 다윗아 네게 복이 있을지로다 네가 큰 일을 행하겠고 반드시 승리를 얻으리라 하니라 다윗은 자기 길로 가고 사울은 자기 곳으로 돌아가니라(21-25)

 

다윗은 공의와 신실을 따라 갚아 주시는 하나님 안에서 생명을 소중히 여겼습니다. 다윗은 사울을 향해 하나님께서는 공의와 신실함을 따라 갚아주시는 것을 고백합니다. 다윗은 심은 것을 거두게 하신 하나님께서 다윗이 사울의 생명을 크게 보아 중요하게 여긴 것처럼 하나님께서 자신의 생명을 중요하게 여기사 모든 환란에서 구해주시길 바란다고 사울을 향해 오쳤습니다.

 

(1) 사울의 자책(21)

 

이렇게 다윗이 사울의 죄를 지적하자 사울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며 다시 다윗을 나의 아들이라고 부르며 돌아오라고 요청합니다. 다윗이 오늘 자신의 생명을 귀하게 여겼기 때문에 자신도 해치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합니다. 다시 한 번 자신이 정말 바보 같은 행동을 했으며 매우 심각하게 잘못했다고 다윗에게 용서를 빕니다.

 

(2) 다윗의 무죄 주장(22-23)

 

다윗은 사울에게 가지 않습니다. 더 이상 사울의 말을 믿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 사울이 하는 말이 상황을 모면하려고 하는 변명이거나 다윗을 잡기 위한 술책일 수도 있습니다. 만약 진심이라 해도 지금 당장은 다윗이 살려주었기 때문에 진심일 수 있지만, 그 마음이 언제 변할지 알 수 없습니다. 지난번에도 자신이 잘못했다고 인정하고 다시는 안 그러겠다고 약속했지만, 그 말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대신에 다윗은 자신이 가져갔던 장을 돌려주겠다고 합니다. 당장은 사울 왕이 늘 가지고 다니던 단장으로 보이며, 이것은 사울 왕의 상징이자 왕권의 상징물이기 때문에 다윗은 왕권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창을 돌려주겠다고 합니다. 23절에서 다윗은 다시 한 번 자신이 사울을 죽이지 않은 이유를 설명합니다. 그것은 바로 여호와께서 사람의 행동에 따라 갚아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3) 여호와를 의지하는 다윗(24)

 

다윗은 이번에도 분명히 하나님께서 자신이 사울을 죽일 기회를 주셨지만, 자신은 여전히 여호와께 기름부음 받은 자를 치는 것을 여호와께서 기뻐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였고. 그래서 자신도 치지 않았다고 천명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왕의 생명을 중히 여긴 것처럼 여호와께서 자신의 생명을 귀중히 여기시고 모든 환란에서 구원해주시길 기원합니다.

 

(4) 사울의 축복(25)

 

그리고 25절에서 사울은 다윗의 말을 들은 후에 더 이상의 추적을 포기하고 돌아갑니다. 차마 자신을 살려준 다윗을 다시 죽이겠다고 쫓지는 못하였던 것입니다. 이 본문에서 다윗은 하나님의 선하심과 공의를 신뢰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사울을 살려줍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행위대로 갚으실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신앙은 신약시대를 사는 우리에게도 필요합니다. 우리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선하심과 공의를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이 우리보다 약한 사람이면 가차 없이 보복하기도 하고, 우리보다 강한 사람에 대해서는 억울해서 밤잠을 설치며 그가 망하기만을 바랍니다. 하지만 이 모든 일을 우리 하나님께서는 보고 계시고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그들의 행위를 따라 판결하십니다. 물론 하나님의 방법에는 사법적 판결이나 사회적 판결 같은 것도 포함됩니다. 다만 우리가 할 일은 우리의 억울함을 하나님께 말씀드리고, 하나님의 손에 넘긴 후에 하나님께서 판결해주실 것을 믿고,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임무들을 완수하기 위해서 선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원수는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믿으면서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우리가 받았던 은혜를 그들도 누리기를 기대하면서 기도하지 않으면, 악한 사람과 싸우다가 내가 악해지고 또 다른 악한 결과를 만들어내는 데 그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진실히 행하는 자의 생명을 붙잡아 주시고, 모든 환란에서 구하여 내십니다. 다윗은 자신의 삶과 환경이 조금 불편할지라도 하나님과의 관계만큼은 철저했습니다. 그토록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은혜로 갚아 주십니다. 원수를 죽이기 위해 힘쓰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목숨을 가는 사람이 되길 원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당신의 생명을 붙잡아 주시고 모든 환란에서 구해내 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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