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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25-01)


다윗을 모욕한 어리석인 나발

사무엘상 25장 1-22절


 

성경에서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느니라”(마가복음 2:22)고 말씀하십니다. 시대가 변하면 새로운 시대에 맞는 그릇을 필요로 합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시대의 변화를 알지 못하고, 이전에 쓰였던 옛 그릇에 집착하는 사람입니다. 반면에 지혜로운 사람은 시대의 변화를 읽고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그릇을 만들어 내는 사람입니다. 본문은 지혜로운 한 여인과 어리석은 한 남자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 위대한 선지자 사무엘이 죽어 라마에 장사되었습니다. 다윗은 바란 광야로 내려갑니다. 그 지역에는 마온 사람 나발이 살고 있었습니다. 나발은 갈멜에서 양털 깎는다는 소식을 듣고 다윗은 소년들을 보내 도움을 구합니다. 하지만 나발은 다윗을 모욕합니다. 이를 전해 들은 다윗은 칼을 차게 하고 400명가량 데리고 올라갑니다.

 

사무엘의 죽음과 나발 등장(1-3)

성도들은 모든 분들이 서로 하나로 유기적(有機的)인 관계로 형성되어 있습니다. 유기적인 관계라는 것은 서로가 한 몸처럼, 반드시 필요한 존재로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공동체 안에 문제를 인식하면, 자신의 일이라고 생각하고 해결해 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을 세우는 일이, 곧 자신의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서로 진실하게 사랑하면 하나가 되어집니다.

 

1사무엘이 죽으매 온 이스라엘 무리가 모여 그를 두고 슬피 울며 라마 그의 집에서 그를 장사한지라 다윗이 일어나 바란 광야로 내려가니라 2마온에 한 사람이 있는데 그의 생업이 갈멜에 있고 심히 부하여 양이 삼천 마리요 염소가 천 마리이므로 그가 갈멜에서 그의 양 털을 깎고 있었으니 3그 사람의 이름은 나발이요 그의 아내의 이름은 아비가일이라 그 여자는 총명하고 용모가 아름다우나 남자는 완고하고 행실이 악하며 그는 갈렙 족속이었더라(1-3)

 

우리는 사명을 다할 때까지 최선을 다하되, 물러서야 할 때를 준비해야 합니다. 위대한 사사, 마지막 선지자인 사무엘은 사명을 다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갑니다. 정치적 리더십을 사울에게 넘겼고, 그의 죽음을 이을 지도자 다윗을 세우고는 하나님께로 돌아갔습니다.

 

(1) 사무엘의 죽음(1)

 

사무엘의 죽음에 대한 보고가 나옵니다. 사울과 다윗의 갈등이 점점 첨예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다윗이 후원자였던 사무엘이 죽습니다. 그의 죽음에 온 이스라엘 백성이 모여 애곡하였습니다. 이것은 백성들이 함께 사무엘의 죽음에 조의를 표했다는 것으로 사무엘은 이스라엘의 영적 지도자로서 온 백성들의 존경을 받았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는 라마의 자기 집에 묻히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영적으로 혼란에 빠진 이스라엘을 바로잡고 왕정의 기반을 세운 사무엘은 자신의 임무를 끝내고 조용히 집으로 돌아갔다. 라마 그의 집에 장사되었다는 표현은 마치 아기 때 집을 떠난 사무엘이 자신의 모든 임무를 마치고 드디어 집으로 돌아왔다는 느낌을 갖게 합니다. 한편 자신의 중요한 후원자를 잃어버린 다윗은 이 소식을 듣고 바란 광야 혹은 다른 이름으로 마온 광야로 내려가는데, 이곳은 엔게디보다 더 남쪽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사울과 좀 더 멀어지기 위해 남쪽으로 내려갔고, 이제 마온에서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2) 나발과 아비가일에 대한 소개(2-3)

 

이 부분은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배경과 인물들을 소개하는 단락으로 마온에 사는 매우 부유한 나발과 그의 아내 아비가일이 소개됩니다. 그는 갈멜에서 목축업을 하는 사람으로 얼마나 부유한지 양이 삼천 마리요 염소가 천 마리라고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갈멜은 마온에서 북쪽으로 1.6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는 곳입니다. 화자는 나발과 아비가일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평가하고 있는데, 아비가일에 대해서는 총명하고 아름다운 용모를 지녔다고 하고, 나발에 대해서는 완고하고 행실이 악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나발은 어리석은 사람이고 아비가일은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들이 가진 특징은 앞으로 진행될 이야기의 전제가 되며, 각각 죽음과 삶으로 끝나는 어리석음과 지혜의 두 길의 결과를 암시합니다.

 

나발에게 양식을 부탁하는 다윗(4-13)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를 기억한 것이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그 은혜를 기억하면서 은혜를 나누며 연약한 자들에게 섬길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하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자기만을 위해 물질과 시간을 사용한다면 사람들에게 대한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배은망덕한 삶입니다.

 

4다윗이 나발이 자기 양 털을 깎는다 함을 광야에서 들은지라 5다윗이 이에 소년 열 명을 보내며 그 소년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갈멜로 올라가 나발에게 이르러 내 이름으로 그에게 문안하고 6그 부하게 사는 자에게 이르기를 너는 평강하라 네 집도 평강하라 네 소유의 모든 것도 평강하라 7네게 양 털 깎는 자들이 있다 함을 이제 내가 들었노라 네 목자들이 우리와 함께 있었으나 우리가 그들을 해하지 아니하였고 그들이 갈멜에 있는 동안에 그들의 것을 하나도 잃지 아니하였나니 8네 소년들에게 물으면 그들이 네게 말하리라 그런즉 내 소년들이 네게 은혜를 얻게 하라 우리가 좋은 날에 왔은즉 네 손에 있는 대로 네 종들과 네 아들 다윗에게 주기를 원하노라 하더라 하라 9다윗의 소년들이 가서 다윗의 이름으로 이 모든 말을 나발에게 말하기를 마치매 10나발이 다윗의 사환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다윗은 누구며 이새의 아들은 누구냐 요즈음에 각기 주인에게서 억지로 떠나는 종이 많도다 11내가 어찌 내 떡과 물과 내 양 털 깎는 자를 위하여 잡은 고기를 가져다가 어디서 왔는지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주겠느냐 한지라 12이에 다윗의 소년들이 돌아서 자기 길로 행하여 돌아와 이 모든 말을 그에게 전하매 13다윗이 자기 사람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기 칼을 차라 하니 각기 칼을 차매 다윗도 자기 칼을 차고 사백 명 가량은 데리고 올라가고 이백 명은 소유물 곁에 있게 하니라 (4-13)

 

나발의 염치없는 거절에 다윗은 즉시 나발을 진멸할 결심을 할 만큼 분노합니다. 하지만 사울에게 그토록 관대했던 다윗답지 않은 모습입니다. 그간 숱하게 참아왔는데 이제 약자를 행해서는 자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1) 나발에게 문안하라고 지시하는 다윗(4-6)

 

이스라엘은 양털을 깎는 시간은 풍요로운 다른 사람들에게 나눈 시간입니다. 마치 우리나라 추수할 때, 세참을 나는 그런 풍경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나발의 가정이 양털을 깎는다는 소식을 듣고 열 명의 사람들을 보냅니다.

다윗은 나발이 갈멜에서 양털을 깎는다는 소리를 듣는데, 양털을 깎을 때는 보통 잔치를 벌이고 많은 사람들이 축하하며 수고한 목동들에게 임금을 계산해 줍니다. 창세기 38장에서도 유다가 양털 깎을 때, 잔치를 벌이고 술을 먹은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때 다윗은 자신의 하인 열 명을 보내어 자신의 이름으로 문안하고 나발을 ‘나의 형제’라고 친근하게 부르면서 그와 그의 가족과 그의 모든 소유에 대한 평안을 빌어줍니다. 이 인사는 자신은 나발과 그의 가족과 그의 소유에 대해 어떠한 손해를 입힐 의도가 없다는 것을 알리기 위한 것으로 다윗은 최대한 예의를 지키며 조심스럽게 나에게 접근하고 있습니다.

 

(2) 나발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다윗(7-8)

 

본론으로 갈멜에 있을 동안에 나발의 목자들과 함께 지내면서 자신의 수하들이 나발의 양을 지켜주었다는 사실을 말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종들에게 물어보면 알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니 이렇게 풍성하게 수확하는 좋은 날 자신의 수하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먹을 것을 좀 달라고 정중하게 부탁합니다. 나발의 부유함은 하나님께 받은 결과였습니다. 그리고 양도 나발이 주고 싶은 만큼 달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다윗은 자신을 최대한 낮추어 ‘나발의 아들’이라고 표현하여 나발에 대한 존경을 표하고 있습니다. 관례적으로 목동들에게 임금을 주는 날, 그동안 양을 지켜준 사람들에게도 일정 부분 사례를 하기 때문에 비록 정식 계약은 하지 않았지만, 상식적으로 나발도 자신들의 수고를 인정하고 얼마간의 양식을 줄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렇게 다윗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정중하고 겸손하게 나발에게 얼마간의 양식을 부탁한 것입니다.

 

(3) 나발의 반응(9-13)

 

다윗의 종들은 충실하게 다윗의 이름으로 다윗이 한 말을 잘 전했습니다. 하지만 나발의 반응은 다윗이 예상한 것과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다윗의 이름으로 문안한 다윗의 종들에게 다윗이 누구며 이새의 아들은 누구냐며 다윗을 주인에게서 도망친 종이라고 조롱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떡과 물과 고기는 자신과 자신의 양털 깎는 자의 것이기 때문에 어디서 왔는지도 모르는 자에게 줄 수 없다고 매몰차게 거절합니다. 거절만 한 것이 아니라 다윗을 도망친 종이라고 비아냥거리며 엄청난 모욕을 주었습니다. 이것을 보면 나발은 사울 정권을 지지하고 그에게 반역적인 모습을 보이는 다윗을 반대한 것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결국 다윗의 소년들은 빈손으로 돌아오게 되었고 그들은 다윗에게 나발에게서 들은 말을 그대로 전합니다. 다윗은 생각지도 못한 나발의 모욕과 거절을 당하자 엄청나게 분노를 하는데, 그의 분노는 후에 나오는 “내가 그에게 속한 모든 남자 가운데 한 사람이라도 아침까지 남겨두면 하나님은 다윗에게 벌을 내리시고 또 내리시기를 원하노라”(삼상 25:22)라는 다윗의 맹세에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런 모습은 이전에 사울에게 “여호와께서 나를 위하여 왕에게 보복하시려니와 내 손으로는 왕을 해하지 않겠나이다”(삼상 24:12)라고 말한 것과 대조됩니다. 여기서 다윗의 부정적인 모습이 처음으로 나타납니다. 그는 나발을 죽이기 위해 사백 명의 군사에게 칼을 차라고 명령하고 자신도 칼을 차고 갈멜로 올라갑니다. 자신을 거절하고 자신에게 모욕을 준 나발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출발한 것입니다. 이 본문에서 나타나는 다윗은 자신보다 힘세고 여호와의 기름부음을 받은 왕인 사울에게는 너그럽고 신앙적인 태도를 보이지만, 자신이 보기에 만만한 상대에 대해서는 신앙을 떠나 힘으로 해결하려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여줍니다.

 

아비가일에게 이 사건이 전해짐(14-22)

우리의 죄악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추악한 존재들입니다. 영원하신 하나님께 진노와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중보자로 오신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과 우리 죄인들 사이에 중재하시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아비가엘의 모습 속에 예수님의 중보자 역할을 아비가일 볼 수 있습니다.

 

14하인들 가운데 하나가 나발의 아내 아비가일에게 말하여 이르되 다윗이 우리 주인에게 문안하러 광야에서 전령들을 보냈거늘 주인이 그들을 모욕하였나이다 15우리가 들에 있어 그들과 상종할 동안에 그 사람들이 우리를 매우 선대하였으므로 우리가 다치거나 잃은 것이 없었으니 16우리가 양을 지키는 동안에 그들이 우리와 함께 있어 밤낮 우리에게 담이 되었음이라 17그런즉 이제 당신은 어떻게 할지를 알아 생각하실지니 이는 다윗이 우리 주인과 주인의 온 집을 해하기로 결정하였음이니이다 주인은 불량한 사람이라 더불어 말할 수 없나이다 하는지라 18아비가일이 급히 떡 이백 덩이와 포도주 두 가죽 부대와 잡아서 요리한 양 다섯 마리와 볶은 곡식 다섯 세아와 건포도 백 송이와 무화과 뭉치 이백 개를 가져다가 나귀들에게 싣고 19소년들에게 이르되 나를 앞서 가라 나는 너희 뒤에 가리라 하고 그의 남편 나발에게는 말하지 아니하니라 20아비가일이 나귀를 타고 산 호젓한 곳을 따라 내려가더니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자기에게로 마주 내려오는 것을 만나니라 21다윗이 이미 말하기를 내가 이 자의 소유물을 광야에서 지켜 그 모든 것을 하나도 손실이 없게 한 것이 진실로 허사라 그가 악으로 나의 선을 갚는도다 22내가 그에게 속한 모든 남자 가운데 한 사람이라도 아침까지 남겨 두면 하나님은 다윗에게 벌을 내리시고 또 내리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14-22)

 

나발의 종은 그의 아내 아비가일에게 찾아가서 주인 나발의 어리석은 행동에 대해 보고합니다. 이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그의 아비가엘 찾아갑니다. 아비가일은 총명하고 용모가 아름다운 여인이었습니다.

 

(1) 종들의 보고(14-17)

 

이렇게 다윗이 분노하여 나발을 죽이겠다고 쳐들어오는 상황에서 나발의 집에서는 하인 하나가 여주인 아비가일에게 다윗이 나발에게 축복의 인사를 하러 광야 먼 곳에서 사자들을 보냈다는 것과 나발은 이렇게 찾아온 다윗의 사자에게 소리를 지르며 모욕한 후에 빈손으로 돌려보냈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그러면서 다윗과 그의 군사들이 양을 칠 때에 자신들을 보호해주었다는 사실도 알립니다. 여기서 좋은 ‘밤낮 우리에게 담이 되었다’라는 표현을 하며 다윗과 그의 군사들이 얼마나 성실하게, 그리고 든든하게 자신들을 보호해주었는지 부연설명 해줍니다. 이 말은 나발의 처사가 매우 부당하다는 것을 암시적으로 말한 것입니다. 이 하인의 말을 통해 아비가일은 다윗의 요청이 정당하다는 것과 나발의 행동이 다윗의 분노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2) 아비가일의 준비(18-20)

 

종은 여기서 한 발 더 나가 여주인 아비가일에게 어떻게 대처하실 것인지 물으며 다윗이 나발과 나발의 집을 치기로 결정하였다는 매우 급박하고 위험한 상황을 전달합니다. 마지막으로 나발은 ‘불량한 사람’, 즉 이런 일을 의논할 만한 지혜가 없는 사람이라고 말하며, 아비가일에게 대책을 강구하라고 요청합니다. 나발에게 다윗이 주인의 말에 분노하여 지금 군사들을 이끌고 쳐들어온다고 해봐야 화만 내고 아무런 대책도 내놓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좋은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나발의 집에서 일하는 종들도 주인인 나발보다는 여주인인 아비가일이 더 지혜롭고 유능하며 믿음직스럽다고 생각하며 중요한 일은 나발이 아난 여주인인 아비가일과 의논하여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3) 다윗의 결심(21-22)

 

이렇게 나발은 어리석은 행동으로 인해 죽음의 위기를 맞게 되었고, 다윗은 자신을 무시하는 나발에게 분노하여 이성을 잃고 자신의 손으로 복수하겠다고 달려오는 위급한 상황이 전개됩니다. 두 남자의 어리석은 행동으로 발생한 위기에 대한 해결책은 오로지 지혜로운 아비가일의 손에 달려있었습니다.


잘못된 감정은 잘못된 결정을 가져옵니다. 다윗은 분노의 감정에 사로잡혀 쉽게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합니다. 감정이 중요하지만 잘못된 감정은 잘못된 결정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분노로 인한 행동은 자칫 악을 불러 일으켜 그 악을 정당하게 합니다. 지금까지 사울을 죽이지 않기 위해 노력했던 다윗이 이 감정에 휩싸혀 나발을 죽이라는 위험에 빠집니다. 우리가 일상 가운데 특정한 사건 때문에 분노에 사로잡혀 하나님께서 주신 소중한 일상들을 놓쳐버리는 선택을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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