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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23-02)


다윗을 죽이려고 십까지 찾아간 사울

사무엘상 23장 15-29절


 

진실한 성도는 자신의 소명을 아는 사람입니다. 자신이 이 땅에서 감당해야할 역할을 아는 사람은 인생을 낭비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보내고 있는 모든 시간, 만나는 모든 사람,자신이 당한 모든 일들이 자신의 소명이라는 결과를 이루기 위해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조성하신 환경이라고 믿기 때문에 항상 감사하고, 항상 자신을 더 낫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합니다.

 

  • 그일라가 블레셋의 침략을 받았다는 소식에 다윗은 그일라를 구원하러 갑니다. 하지만 이 소식을 들은 사울은 다윗을 잡을 절호의 기회로 여기고 군사를 모아 다윗을 잡기 위해 그일라를 공격하려고 합니다. 이 소식을 들은 다윗은 여호와께 뜻을 묻고 그일라를 무사히 탈출합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사울의 손에 넘겨줄 생각이 없으시지만, 사울은 끝까지 다윗을 잡으려고 하였기에 사울의 추격전은 계속됩니다.

 

십 광야에서 다시 만난 요나단(15-18)

다른 사람들이 하는 일을 부러워하고, 다른 사람들의 앉은 자리를 탐하고 시기하는 사람은 자기 목숨을 스스로 쇠하게 하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나갈 때와 물러설 때, 일어설 때와 앉을 때를 분별할 줄 아는 사람이 지혜입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그런 때가 있다는 것을 인정할 때 그는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인정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15다윗이 사울이 자기의 생명을 빼앗으려고 나온 것을 보았으므로 그가 십 광야 수풀에 있었더니 16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일어나 수풀에 들어가서 다윗에게 이르러 그에게 하나님을 힘 있게 의지하게 하였는데 17곧 요나단이 그에게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 아버지 사울의 손이 네게 미치지 못할 것이요 너는 이스라엘 왕이 되고 나는 네 다음이 될 것을 내 아버지 사울도 안다 하니라 18두 사람이 여호와 앞에서 언약하고 다윗은 수풀에 머물고 요나단은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15-18)

 

하나님께서는 그일라에서는 직접 다윗에게 자신의 뜻을 드러내시고 피할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본문에서는 다윗의 가장 강력한 대적이 될 수 있었지만, 도리어 사랑의 맹세를 기억한 요나단을 통해 위로와 확신을 주십니다.

 

(1) 십 광야 수풀로 피신한 다윗(15)

 

요나단은 하나님 앞에서 정말 멋있는 사람입니다. 세상적인 상식적으로는 그는 왕자이기 때문에 다음 왕이 될 사람입니다. 누구보다도 아버지 사울이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요나단이 왕이 되어야 사울도 끝까지 안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정치 보복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하든지 왕권을 아들 요나단에게 물려주려고 합니다.

요나단의 생각은 이스라엘의 왕은 하나님께서 정하신다고 믿었습니다. 진행된 상황을 보면 자신이 아니라 다윗을 통해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요나단은 자신이 왕이 되려 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사울 왕의 핍박을 피해서 십 광야로 도망갔을 때의 사건들로 십 광야로 도망한 다윗을 찾기 위해 사울도 십 광야로 옵니다. 그리고 그런 사울을 멀리서 보고 다윗은 재빨리 숲속으로 숨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다윗의 모습을 요나단이 보았습니다. 본문에서는 말하고 있지 않지만, 사울이 다윗을 잡으러 쫓아다닐 때 요나단도 동행한 것 같습니다. 사울 옆에 있다가 다윗이 숨는 것을 보고 요나단은 사울과 다른 군사들의 눈을 피해 몰래 다윗을 만나러 숲으로 들어갑니다.

 

(2) 요나단의 권면(16-17)

 

이런 요나단의 행동은 다윗을 위험하게 만들 수도 있었지만, 그런 위험보다는 다윗을 보고 무사한지를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기에 요나단은 다윗을 만나러 갑니다. 다윗을 만난 요나단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힘을 내라고 위로한 뒤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사울이 결코 다윗을 잡지 못할 것이라고 그는 믿고 있었습니다. 이 말은 14절에서 하나님께서 다윗을 사울의 손에 넘기지 않으셨다고 한 말과 같은 의미로 두 문장 모두에 ‘사울의 손’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요나단은 하나님께서 다윗을 지키고 계시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았습니다. 이전에 요나단은 ‘아버지에게 함께하신 하나님이 너와 함께하시길’이라고 하거나, 자신과 자신의 집안을 살려달라는 말로 암시적으로 표현하였는데, 이번에는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말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지위도 다윗을 위한 이 인자가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다윗의 신하가 되겠다는 의미입니다. 그렇게 될 것을 자기 아버지도 알고 있다고 합니다.

 

(3) 요나단과 다윗의 언약(18)

 

이제 요나단은 여호와 앞에서 다윗과 언약을 맺습니다. 이것은 이전에 맺었던 언약들을 다시 한 번 여호와 앞에서 확인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잠깐 만난 후에 헤어지는데, 이것이 둘의 마지막 만남이 되고 맙니다.

여기서 다시 한 번 요나단과 사울의 태도가 비교됩니다. 요나단은 하나님께서 다윗을 왕으로 선택하셨다는 사실을 알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면서 다윗을 주군으로 섬기겠다고 결심하고 충성을 다짐합니다. 하지만 사울은 하나님의 뜻을 알면서도 다윗을 죽여 하나님의 의지를 막으려는 반역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다윗이 자신을 반역했다고 죽이러 다니지만, 정작 자신은 이스라엘의 진정한 왕이신 하나님께 반역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울을 돕는 십 사람들(19-24a)

우리가 말과 삶이 일치하므로, 열매로 우리의 믿음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으로 인정하겠다고 하셨습니다. 곁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거론하다고 그 사람을 신령하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열매로 우리의 삶을 증명해 보이는 것입니다.

 

19그 때에 십 사람들이 기브아에 이르러 사울에게 나아와 이르되 다윗이 우리와 함께 광야 남쪽 하길라 산 수풀 요새에 숨지 아니하였나이까 20그러하온즉 왕은 내려오시기를 원하시는 대로 내려오소서 그를 왕의 손에 넘길 것이 우리의 의무니이다 하니 21사울이 이르되 너희가 나를 긍휼히 여겼으니 여호와께 복 받기를 원하노라 22어떤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그는 심히 지혜롭게 행동한다 하나니 너희는 가서 더 자세히 살펴서 그가 어디에 숨었으며 누가 거기서 그를 보았는지 알아보고 23그가 숨어 있는 모든 곳을 정탐하고 실상을 내게 보고하라 내가 너희와 함께 가리니 그가 이 땅에 있으면 유다 몇 천 명 중에서라도 그를 찾아내리라 하더라 24그들이 일어나 사울보다 먼저 십으로 가니라(19-24a)

 

다윗이 도망한 십 지역 사람들은 도엑처럼 의와 불의를 따지지 않고 자신들의 안전을 위해 권력자의 편에 서서 하나님의 사람을 핍박하였습니다. 사울도 그들에게 ‘여호와의 축복’을 비는 종교적인 제스처로 화답하며 끝까지 자신을 합리화했습니다.

 

(1) 십 사람들의 고발(19-20)

 

사울은 십 광야에서 다윗을 찾지 못하자 다시 자신의 성읍인 기브아로 돌아갑니다. 그때 십 사람들이 기브아에 있는 사울에게로 와서 다윗이 자신들이 사는 지역인 여시몬 남쪽 하길라 산 숲속 요새에 숨어있다고 알려줍니다. 그러면서 왕이 내려오고 싶을 때면 언제든지 내려오시라고 말합니다. 또한 다윗을 왕의 손에 넘기는 것은 자신들의 의무 혹은 자신들의 일이라고 말합니다. 이들은 사울에게 절대적인 충성심을 보인 것입니다.

이런 십 사람들의 말에 사울은 자신의 심정을 알아준 것에 고마워하며 여호와의 이름으로 이들을 축복합니다. 그런데 이 십 사람들은 유다 지파 사람들로 같은 지파 사람인 다윗을 지지하지 않고 사울을 지지하며 사울에게 축복을 받습니다. 이런 모습은 사울이 같은 베냐민 사람들에게 자신을 배신하고 자신에게 정보를 주지 않으며 자신을 위해 슬퍼하지도 않는다고 꾸짖던 모습과 대조가 됩니다. 이런 모습들을 보면 무조건 같은 지파 사람이라고 편을 들어주는 것은 아니고, 오직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서만 움직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십 사람들은 불안한 새로운 권력보다는 안정적인 현재의 권력을 따르기로 한 것입니다.

 

(2) 사울의 지시(21-23)

 

사울은 이들에게 다윗이 숨어있는 곳을 자세히 살피라고 당부하는데, 장소뿐만 아니라 누가 보았는지까지 아주 자세하게 조사해서 확실해지면 자신에게 보고하라고 합니다. 그동안 여러 번 소식을 듣고 움직였다가 허탕을 쳤기 때문입니다. 또한 사울은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를 설명하는데, 자신이 듣기로 다윗은 너무 영리하게 행동해서 그의 행방을 정확하게 알 수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사울은 하나님께서 다윗을 못 잡도록 막고 계신 것을 다윗이 영리하게 머리를 써서 도망간 것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리 넓지 않은 지역에서 다윗이 사울을 피해 이리저리 숨어 다닐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께서 다윗을 돕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실을 알지 못하는 사울은 이들의 협력에 매우 고무되었습니다. 만약 이들이 도와준다면 유다 지파 사람들 수천 명 속에서도 다윗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기뻐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도우심이 아닌 사람의 도움에 의지하며 계속해서 하나님을 거역하고 있습니다.

 

사울에게 죽을 뻔한 다윗(24-29)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잘 몰라서 불순종하는 것보다 알고도 온전히 순종하지 않는 것이 더 많습니다. 멸망이 눈 앞에 있고, 하나님의 경고가 세찬데도 듣고도 못들은척하면서 멸망의 길로 걸어가고 있을 때가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알고도 순종하지 않는 권력자 사울보다는, 알고 있는 만큼 순종하고 있는 요나단 같은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24그들이 일어나 사울보다 먼저 십으로 가니라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광야 남쪽 마온 광야 아라바에 있더니 25사울과 그의 사람들이 찾으러 온 것을 어떤 사람이 다윗에게 아뢰매 이에 다윗이 바위로 내려가 마온 황무지에 있더니 사울이 듣고 마온 황무지로 다윗을 따라가서는 26사울이 산 이쪽으로 가매 다윗과 그의 사람들은 산 저쪽으로 가며 다윗이 사울을 두려워하여 급히 피하려 하였으니 이는 사울과 그의 사람들이 다윗과 그의 사람들을 에워싸고 잡으려 함이었더라 27전령이 사울에게 와서 이르되 급히 오소서 블레셋 사람들이 땅을 침노하나이다 28이에 사울이 다윗 뒤쫓기를 그치고 돌아와 블레셋 사람들을 치러 갔으므로 그 곳을 셀라하마느곳이라 칭하니라 29다윗이 거기서 올라가서 엔게디 요새에 머무니라(24-29)

 

사울과 십 사람들은 자신들이 모든 상황을 다 통제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용의주도하게 준비하고 빠질 틈 없이 촘촘히 포위망을 좁혀 다윗을 에워쌌지만, 블레셋의 출현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1) 마온 황무지 피신(24-25)

 

사울의 요청을 받은 십 사람들은 다윗을 찾기 위해 사울보다 먼저 십 광야로 돌아갑니다(24a). 십 사람들이 다윗을 찾기 위해 출발한 즈음에 다윗과 그의 사람들은 십 광야 남쪽에 있는 마온 광야로 이미 이동한 상태였습니다. 다윗은 항상 사울이나 그를 찾는 자들보다 한 발 앞서 움직이는데, 여기서 그 이유는 설명되고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일라에서 도망한 사건에서 유추해 보면, 다윗과 함께 있는 아비아달을 통해 하나님께 어디로 도망갈지를 물으면서 다녔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는 사울처럼 다윗에게도 소식을 전해주는 정보원들이 존재하고, 이들이 항상 사울의 움직임을 전해주고 있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2) 사울이 다윗을 추격함(26)

 

다윗은 사울과 그의 군사들이 자신을 찾으러 온다는 소식을 듣고, 절벽 혹은 바위산에서 내려와 마온 광야에 거하였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사울은 다윗을 따라 마온 광야로 들어가서 바위산을 중심으로 한 쪽 방향으로 돌면서 다윗을 포위하려고 하였습니다. 다윗은 그 사실을 알고 다른 방향으로 피하려고 하였지만, 본문을 보면 사울의 인원수가 더 많기 때문에 다윗은 포위를 풀고 피하기가 어려운 상황에 몰린 것 같습니다. ‘다윗이 사울을 두려워하여 급히 피하려 하였다’는 표현은 다윗이 궁지에 몰렸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사울은 자신이 말한 것처럼 십 사람들의 도움으로 다윗을 찾아내어 거이 잡을 수 있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게 한 발짝만 나가면 다윗을 잡을 수 있었고, 다윗은 거의 죽을 지경이 되었습니다.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 다윗은 두려움에 떨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구원의 손길이 옵니다.

 

(3) 블레셋의 침략으로 돌아가는 사울(27-29)

 

사울이 다윗을 거의 잡게 된 상황에서 갑자기 전령이 나타나 블레셋 사람들이 노략질하기 위해 쳐들어왔다는 급박한 소식을 전해줍니다. 이 소식을 들은 사울은 다윗을 추적하는 것을 멈추고 블레셋 사람들과 전투하기 위해 셀라하마느곳(나누어진 바위)으로 갑니다. 아마도 사울이 다윗을 포기하고 달려가야 할 만큼 블레셋의 침략이 매우 심각하였던 것 같습니다. 이번에는 다윗이 블레셋과 싸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에 사울이 달려간 것입니다. 일단 나라가 있어야 왕권 다툼도 할 수 있기 때문에, 블레셋부터 막기로 결정한 것 같습니다. 기가 막힌 타이밍에 블레셋이 쳐들어와 다윗은 사울의 포위에서 풀려나 도망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고는 다시 도망하여 북쪽에 있는 엔게디 요새에 머물게 됩니다. 엔게디 요새는 샘이 풍부하고 동굴이 많은 지역으로 도망하기에 적당한 곳입니다. 블레셋이 이 시점에 쳐들어온 것은 우연이 아니라 다윗을 사울의 손에서 건져내기 위한 하나님의 손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사울의 손에 넘겨주지 않기로 결정하셨기 때문에 위험한 순간에 그를 건져주시고 구원해주신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사람은 원수의 손과 악인들의 덫에서 건져주시고 구원해주시며 안전하게 보호해 주시고 인도해주십니다. 다윗은 사울을 피해 도망 다니는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보호하심을 날마다 체험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알아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고난 전에 말씀으로 먼저 찾아오십니다. 다윗은 요나단을 만나 위로의 말씀을 먼저 들었습니다. 그 후에 사울이 다윗을 추적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새겨들어야만 고난 속에서 흔들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요나단을 통해서 들었던 위로의 말씀이 있었기에, 다윗은 사울이 이리저리 쫓아오는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보호하시는 손길을 경험하고 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고난 가운데 힘들어하는 것은, 혹시 고난 그 자체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없기 때문이 아닙니까! 고난 가운데도 여전히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는 말씀을 붙들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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