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21-01)
블레셋 땅으로 도피하는 다윗
사무엘상 21장 1-15절
세상이 빠르게 변화하고 새로운 것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요즘은 더 많은 위기 상황들이 주에 도사리고 있습니다. 한 나라의 위기는 그 나라에만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일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이 같은 위기의 상황 속에서도 어떤 나라들은 위기 극복을 위한 의견들을 모으고 정책들을 수립하는가 하면, 또 어떤 나라들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손을 놓고 있는 상황입니다. 우리가 위기를 맞이하게 될 때 당황하며 어찌할 바 몰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현실에서 정신을 차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한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게 된 요나단은 사울의 진노와 설득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다윗을 도와주기로 합니다. 그래서 약속대로 다윗에게 도망가라는 신호를 보내며 다윗이 무사히 도망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줍니다. 그는 이 결정이 자신의 미래를 불확실하고 어렵게 만든다고 하더라도 일단 옳은 일을 선택한 것입니다. 이제 이야기의 중심은 다윗에게로 넘어가며 다윗의 길고 긴 도피 생활이 시작됩니다.
다윗이 대제사장 아히멜렉에게 도망감(1-6)
죄악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이 믿음을 감당하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일입니까! 그러나 믿음의 길로 나아가는 것이 어려울지라도 우리는 항상 함께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데로 순종하시길 바랍니다. 먼저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신 예수님을 따라가므로 승리해 가야 합니다. 그 길이 생명의 길이고 회복의 길입니다.
1다윗이 놉에 가서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이르니 아히멜렉이 떨며 다윗을 영접하여 그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네가 홀로 있고 함께 하는 자가 아무도 없느냐 하니 2다윗이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이르되 왕이 내게 일을 명령하고 이르시기를 내가 너를 보내는 것과 네게 명령한 일은 아무것도 사람에게 알리지 말라 하시기로 내가 나의 소년들을 이러이러한 곳으로 오라고 말하였나이다 3이제 당신의 수중에 무엇이 있나이까 떡 다섯 덩이나 무엇이나 있는 대로 내 손에 주소서 하니 4제사장이 다윗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보통 떡은 내 수중에 없으나 거룩한 떡은 있나니 그 소년들이 여자를 가까이만 하지 아니하였으면 주리라 하는지라 5다윗이 제사장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참으로 삼 일 동안이나 여자를 가까이 하지 아니하였나이다 내가 떠난 길이 보통 여행이라도 소년들의 그릇이 성결하겠거든 하물며 오늘 그들의 그릇이 성결하지 아니하겠나이까 하매 6제사장이 그 거룩한 떡을 주었으니 거기는 진설병 곧 여호와 앞에서 물려 낸 떡밖에 없었음이라 이 떡은 더운 떡을 드리는 날에 물려 낸 것이더라(1-6)
다윗은 자신을 죽이겠다는 사울 왕의 진심을 분명하게 확인했습니다. 그는 요나단의 도움을 받아서 서둘러 예루살렘을 빠져나갔습니다. 그가 도피처로 생각했던 첫 번째 장소는 바로 놉이라 곳이었습니다.
(1) 아히멜렉의 질문(1-2)
다윗은 사울에게서 도망하여 ‘놉’Nob에 있는 대제사장 아히멜렉에게 갑니다. 놉은 예루살렘 북쪽, 기브아 남쪽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엘리의 죽음 이후 이곳이 제사장의 도시가 되었습니다. 제사장들이 이곳에 거주하였습니다. 놉은 실로의 성소가 파괴된 후 새로운 성소의 역할을 감당하던 지역이었습니다.
아히멜렉은 사울 당시 대제사장으로 사울의 제사장인 아히야의 형제로 소개됩니다. 다윗이 나타났을 때 아히멜렉은 떨었습니다. 이것은 다윗이 혼자서 예고도 없이 나타난 것에 대해 무슨 안 좋은 일로 온 것 아닌가 걱정했기 때문입니다. 이 단어는 16장 4절에서 사무엘이 베들레헴에 왔을 때 장로들이 보인 반응과 동일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히멜렉은 다윗에게 “어찌하여 네가 홀로 있고 함께 하는 자가 아무도 없느냐?”(1)라고 정말 혼자 온 것인지 묻습니다.
사울의 강력한 죽음의 기운이 다윗은 목을 점점 조여오고 있을 때, 다윗은 가장 먼저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성소를 찾았습니다. 성경에서는 다윗이 하나님께 자주 질문하며 주님의 뜻을 찾고 구했다고 설명합니다. 그가 놉으로 간 것은 제사장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서 하나님의 도움을 받기 위해서 간 것입니다. 그는 죽음의 위기 앞에서 주님이 임재하신 성소를 향했고 그것을 섬기고 있던 제사장 아히멜렉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대제사장 아이멜렉의 질문에 다윗은 왕이 자신에게 명령하기를 왕이 보내는 것과 명령한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하셔서 자신의 병사들은 모처에 가 있으라고 지시했다고 말합니다. 다윗은 은밀함을 강조하기 위해 병사들이 모인 가상의 장소를 익명으로 표현하였습니다. 자신이 비밀 임무를 맡고 온 것이라고 거짓말한 것입니다. 사울에게 쫓기고 있는 입장에서 정황상 사울과 가까운 사람인 아히멜렉에게 솔직하게 말하는 것은 위험하기 때문이었습니다(2).
(2) 양식을 얻는 다윗(3-6)
다윗은 아무런 준비 없이 도망쳐 왔기 때문에 상당히 허기진 상태였습니다. 그런 후에 다윗은 먹을 것이 있으면 떡 다섯 덩이나 혹은 있는 대로 달라고 요청합니다(3). 떡 다섯 덩어리는 혼자 먹기는 많은 양이고 많은 사람이 먹기는 적은 애매한 양이지만 다윗과 그의 종 서넛이 먹기에는 충분한 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윗의 요청에 대제사장 아히멜렉은 일반 사람들이 일반 떡은 없고 거룩한 떡밖에 없다고 합니다. ‘거룩한 떡’은 진설병으로 불리는데, 성전에 7일 동안 성소에 진설되었다가 나온 떡, 진설병입니다. 모세의 제의법에 따르면, 그 떡은 오직 아론과 그의 자손인 제사장만 거룩한 장소에서 먹어야 했습니다(레 24:5-9).
하지만 대제사장 아히멜렉은 다윗과 그 일행이 굶주렸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윗과 일행이 제물을 먹을 수 있는 정결한 상태인지를 묻습니다. 일행이 여자를 가까이만 하지 않았으면 떡을 기꺼이 주겠다고 합니다(4). 남녀가 관계를 가지며 설정을 하게 되면 설정으로 인해 하루 동안 부정해집니다. 아히멜렉이 여자와 가까이 있는 것을 물은 것은 소년들이 제물을 먹을 수 있는 정결한 상태인지 물은 것입니다.
그러자 다윗은 3일 동안이나 여자를 가까이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세속적인 일을 수행하러 다닐 때도 거룩성을 유지하는데, 하물며 거룩한 성소에 올 때는 당연히 거룩한 상태에서 왔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성소에 오기 위해 미리 준비하고 왔다는 말로 사울의 명령을 준행하기 위해 철저히 준비한 것처럼 느끼게 만듭니다. 다윗의 말을 들은 아히멜렉은 안심하고 거룩한 떡을 주었습니다. 다윗에게 준 떡에 대한 설명을 자세히 하는 이유는 일반인이 먹어서는 안 되는 떡을 다윗에게 준 이유를 분명히 밝히기 위한 것입니다(6).
이런 아히멜렉의 행동은 레위기 제사법을 분명히 어긴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제사법보다 인간에 대한 자비심이 더 중요하다고 설명하시면서 이 예를 들고 있습니다(마 12:3-4). 구약 본문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른 평가가 없는 것을 보면 아히멜렉의 행동을 크게 문제 삼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윗에게 골리앗의 무기를 줌(7-9)
하나님께서는 아무리 ‘좋은 칼’이라고 해도 아직 그것을 마음대로 사용할 힘이 없을 때, 때가 될 때까지 친히 보관해 두고 합당할 때 허락해 주십니다. 우리 생각에는 이제 ‘좋은 칼’만 있으면 마음껏 힘을 발휘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을 때도,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것 가지고 함부로 놀다가 사람 다치게 할 위험을 아십니다. 아직은 미숙하기 때문에 우리 손에서 멀찍이 떨어진 곳에 숨겨두고 계시는 것입니다.
7그 날에 사울의 신하 한 사람이 여호와 앞에 머물러 있었는데 그는 도엑이라 이름하는 에돔 사람이요 사울의 목자장이었더라 8다윗이 아히멜렉에게 이르되 여기 당신의 수중에 창이나 칼이 없나이까 왕의 일이 급하므로 내가 내 칼과 무기를 가지지 못하였나이다 하니 9제사장이 이르되 네가 엘라 골짜기에서 죽인 블레셋 사람 골리앗의 칼이 보자기에 싸여 에봇 뒤에 있으니 네가 그것을 가지려거든 가지라 여기는 그것밖에 다른 것이 없느니라 하는지라 다윗이 이르되 그같은 것이 또 없나니 내게 주소서 하더라(7-9)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이루신 승리의 순간들이 있습니다. 그 승리의 기억을 붙잡고 살아갈 때 더 큰 믿음과 담대함이 생기게 될 것입니다. 아히멜렉은 어느날 갑자기 찾아온 다윗과 그의 부하들을 보고 떨며 그들을 영접했습니다. 그러나 제사장 아히멜렉은 다윗을 환대해 주었습니다. 최선을 다해 도와주었습니다.
(1) 사울의 신하 도엑(7)
다윗이 놉의 성소에 갔던 그때 마침 그곳에 사울의 신하 한 사람이 와 있었습니다. 그는 에돕 사람인 도엑이라는 사람입니다. 에돕 사울의 군사 지도자들 가운데 가장 뛰어난 인물로 아마 사울의 신임이 깊은 인물이었을 것입니다.
그가 에돔 사람이라는 신분은 소개한 것은 뒤에, 그가 제사장들을 죽이게 됩니다. 그는 아무 거리낌이 없었던 이유를 설명해 줍니다. 그의 존재는 다윗의 도망과 아히멜렉의 운명에 불길한 느낌을 줍니다.
(2) 무기를 요구한 다윗(8-9)
다윗은 무기가 필요했습니다. 양식을 얻은 다윗은 아히멜렉에게 자신이 급하게 오느라 무기를 가져오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이곳에 칼이나 창 같은 무기가 있는지 묻습니다. 군인이 무기를 가지고 다니지 않는다는 것은 믿기 어려운 변명입니다.
아히멜렉은 다윗을 전혀 의심하지 않고, 다윗이 죽인 골리앗의 칼이 있으니 그것을 가져가라고 말합니다. 골리앗의 칼은 다윗이 골리앗에게 물맷돌을 던져 쓰러뜨린 후에 칼집에서 꺼내 골리앗의 머리를 벤 그 칼이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골리앗의 머리는 예루살렘으로 가져가고, 골리앗의 갑주는 다윗이 챙겨서 자신의 장막에 두었습니다. 그동안 골리앗의 칼은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보자기에 둘둘 감겨 에봇 뒤에 놓여 있다는 것은 골리앗의 칼을 블레셋에 대한 승리의 기념으로 성소에 보관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에봇에 싸여 있는 것이 아니라 에봇 뒤에 있다는 것은, 이 에봇이 기드온이나 미가가 만든 것처럼 금이나 다른 금속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우상처럼 세워진 형태를 하고 있었다고 추측됩니다. 이런 것을 보면 이 시대의 제사 제도나 성전 제도가 아직 완전하게 자리 잡지 못하고 이방적인 요소들이 간간히 섞여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검 이야기를 듣는 순간 다윗은 그 검처럼 좋은 검이 없다고 생각하고 갖기를 원했습니다. 다윗은 우연히 자신이 죽였던 장수의 무기를 손에 넣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우연을 통해 다윗이 당연히 가져야 할 것을 다윗에게 주셨습니다. 칼을 시작으로 다윗은 왕으로서 갖추어야 할 것들을 하나하나 얻어가게 됩니다.
아기스 앞에서 미친 척하는 다윗(10-15)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왕국에 왕으로 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영원한 본향인 천국의 왕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고 거부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미친 사람이라며 주님을 조롱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하고 믿을 수 있게 된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임을 깨닫게 됩니다.
10그 날에 다윗이 사울을 두려워하여 일어나 도망하여 가드 왕 아기스에게로 가니 11아기스의 신하들이 아기스에게 말하되 이는 그 땅의 왕 다윗이 아니니이까 무리가 춤추며 이 사람의 일을 노래하여 이르되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한지라 12다윗이 이 말을 그의 마음에 두고 가드 왕 아기스를 심히 두려워하여 13그들 앞에서 그의 행동을 변하여 미친 체하고 대문짝에 그적거리며 침을 수염에 흘리매 14아기스가 그의 신하에게 이르되 너희도 보거니와 이 사람이 미치광이로다 어찌하여 그를 내게로 데려왔느냐 15내게 미치광이가 부족하여서 너희가 이 자를 데려다가 내 앞에서 미친 짓을 하게 하느냐 이 자가 어찌 내 집에 들어오겠느냐 하니라(10-15)
다윗은 쫓기는 몸으로 블레셋 땅으로 들어갔지만, 이스라엘 땅의 왕의 모습으로 적들이 가득한 블레셋 땅으로 들어갔습니다. 다윗은 성소가 있던 놉에서 음식을 먹고 휴식을 취한 뒤에 이스라엘과 원수 관계 있었던 블레셋 땅으로 들어갔습니다.
(1) 아기스의 신하들(10-11)
놉에서 양식과 무기를 얻은 다윗은 사울을 피하여 블레셋 성읍 중 하나인 가드로 도망가 가드 왕 아기스에게 의탁하려고 하였습니다. 가드는 골리앗의 고향으로 지금 다윗은 골리앗의 칼을 들고 골리앗의 고향으로 간 것입니다. 이런 다윗의 선택에 대해 본문은 어떤 이유도 설명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다윗의 이런 선택에 대해 여러 가지 추측을 해볼 수밖에 없습니다. 첫째, 블레셋 도시로 도망한 것은 블레셋에는 사울의 영향력이 미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지역은 사울의 영향력 아래 있기 때문에 다윗이 어디에 있든지 소식을 듣고 바로 잡으러 올 수 있기에 다윗은 블레셋 도시로 도망한 것입니다. 둘째, 블레셋과 이스라엘은 늘 전쟁 중에 있고 그렇기 때문에 사울과 블레셋은 사이가 안 좋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다윗은 자신이 사울에게 쫓기고 있으며 자신을 받아주면 열심히 싸우겠다고 말하면 받아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사울이 공통의 적이 되기 때문에 둘의 연합이 가능하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뒤에 나오는 27장에서는 이 방법이 아기스에게 먹혔습니다. 셋째, 지정학적으로 가드가 다윗의 고향인 베들레헴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블레셋 도시이기 때문입니다. 베들레헴에서 가드는 서쪽으로 직선거리에 있어 고향 집과 연락하기가 용이하기 때문에 선택하였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어떤 이유 때문에 다윗이 가드의 아기스 왕을 선택하였는지는 모르지만, 그의 시도는 실패로 끝났습니다. 아기스의 신하들은 다윗을 보자 골리앗과의 전투를 기억하였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노래 부르며 추앙하던 다윗이라는 사실을 아기스 왕에게 알려줍니다. 신하들이 아기스 왕에게 하는 말을 들은 다윗은 아기스 왕에게 의탁하려는 자신의 계획이 실패하고 오히려 적의 소굴에 제 발로 들어온 꼴이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2) 다윗의 연기(12-13)
다윗은 아기스가 자신을 죽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전략을 바꾸어 자신은 죽일 필요도 없는 쓸모없는 존재라고 믿게 하기 위해 미친 척하며 성읍 사람들이 늘 다니는 성 문짝에 알아볼 수도 없는 그림을 그리고 침을 흘리며 돌아다녔습니다.
(3) 아기스의 반응(14-15)
이런 다윗의 모습에 아기스는 다윗이 정말 미쳤다고 생각하고 미치광이를 자신에게 데려왔다며, 신하들에게 화를 내고 자신의 집에 다윗이 들어오지 못하게 합니다.
이렇게 다윗은 자신이 찾은 첫 번째 망명지에서 죽을 고비를 넘기고 구사일생으로 도망 나오게 됩니다. 여기서는 다윗을 도와주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다윗도 하나님께 도와달라고 요청하는 부분이 없습니다. 자신의 지혜로 도피처를 찾으려다 실패한 다윗을 통해서 우리는 싸움이나 전쟁뿐만 아니라 도망가는 일이나 일상적인 부분까지도 하나님께 의지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율법의 정신은 사랑과 선을 강조합니다. 진설병은 제사장에게만 허락된 떡이었습니다. 제사장 말고 이 떡을 먹는 사람과 건너 준 사람은 모두 율법을 범하는 것입니다. 아히멜렉은 사울의 신하 도엑이 지켜보는 가운데 다윗에게 진설병을 건네줍니다. 이렇게 아히멜렉이 망명을 앞둔 다윗의 요구를 들어준 이유는 사울이 두렵지 않아서가 아니라 권력이나 율법이 사람의 생명보다 앞설 수 없다는 신념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혹시 당장 나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들 앞에서 여러 가지 그럴듯한 이유로 도움을 회피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도움이 필요한 곤란한 처지에 있는 자를 돕는 것이 바로 율법의 정신입니다. 율법은 그 자체를 지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지킴으로 하나님께서 무엇을 소중히 여기시는지를 알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말씀을 지킴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지키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는 주의 백성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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