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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20-01)


하나님의 사랑을 나눈 요나단과 다윗

사무엘상 20장 1-23절


 

사랑하면 자신이 위에 서려는 갑보다, 섬기려고 을(乙)의 자리에 섭니다. 끝없이 주고 주어도 감사함을 느끼며, 상대방이 자신의 사랑을 받아만 주어도 고마워합니다. 언약적 관계에서 헤세드(인내)는 줌으로써 마음을 얻고, 받음으로써 마음을 내어주는 것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뜻에 최우선순위를 두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이익보다 하나님의 뜻을 앞세운 요나단의 모습을 본받아야 합니다.

 

  • 다윗을 죽이려던 사울의 계획이 이번에는 딸 미갈에 의해 실패하였고, 다윗은 사무엘이 살고 있는 라마로 도망갑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사울은 사람을 보내 다윗을 잡아오려 했지만, 전령들이 모두 황홀경에 빠짐으로써 실패합니다. 이에 사울은 자신이 직접 다윗을 잡으러 라마 나욧으로 가지만, 그 또한 황홀경에 빠져 꼬박 하루 동안을 사무엘 앞에 있게 됩니다. 그 사이 다윗은 요나단에게로 도망갑니다.

 

요나단에게 하소연하는 다윗(1-4)

 

대책 없이 사람을 믿었다가 사람도 잃고, 일도 그르치는 것은 지혜가 없는 행동입니다. 하지만, 진정한 사랑은 죽음의 경계를 넘은 것입니다. 진실한 사랑은 생명을 위해 자기 죽음조차 감수할 수 있습니다. 미래가 보이지 않는 다윗에게 요나단은 오히려 은총을 구합니다.

 

1다윗이 라마 나욧에서 도망하여 요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무엇을 하였으며 내 죄악이 무엇이며 네 아버지 앞에서 내 죄가 무엇이기에 그가 내 생명을 찾느냐 2요나단이 그에게 이르되 결단코 아니라 네가 죽지 아니하리라 내 아버지께서 크고 작은 일을 내게 알리지 아니하고는 행하지 아니하나니 내 아버지께서 어찌하여 이 일은 내게 숨기리요 그렇지 아니하니라 3다윗이 또 맹세하여 이르되 내가 네게 은혜 받은 줄을 네 아버지께서 밝히 알고 스스로 이르기를 요나단이 슬퍼할까 두려운즉 그에게 이것을 알리지 아니하리라 함이니라 그러나 진실로 여호와의 살아 계심과 네 생명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와 죽음의 사이는 한 걸음 뿐이니라 4요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 마음의 소원이 무엇이든지 내가 너를 위하여 그것을 이루리라(1-4)

 

사울이 라마 나욧까지 찾아오자, 그곳에서 도망한 다윗은 믿을 만한 조력자인 요나단에게로 갑니다. 정말 위험한 행동입니다. 사울의 정보망이 잘 작동하고 있었기 때문에 체포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요나단에게 자신의 억울한 심정을 토로합니다. ‘내가 무엇을 했기에, 내가 무슨 죄가 있기에, 내가 무슨 죄를 지었기에, 너희 아버지가 나를 죽이려 하는가?’라고 반복적으로 질문하며 억울함을 호소합니다. 다윗이 이렇게 감정을 드러낸 것은 사무엘서에서 골리앗의 방자한 말 때문에 화를 낸 이후 처음입니다. 그동안 사울에게 당한 것을 꾹꾹 참았다가 드디어 터트린 것입니다.

이에 요나단은 다윗을 안심시키며 절대 죽지 않을 것이라고 대답합니다(2). 이는 자신의 아버지가 다윗을 죽이려 했다면, 그 의중을 미리 자신에게 이야기하실 것인데, 그런 이야기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19장 1절에서 있었던 일을 근거로 한 것입니다. 요나단은 사울이 다윗을 얼마나 죽이고 싶어 하는지 아직도 잘 모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다윗은 요나단이 다윗을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사울이 알고 있고, 또한 다윗의 죽음에 상처를 받지 않게 하기 위해서 요나단에게 알리지 않을 수도 있다고 지적합니다. 다윗은 요나단이 다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자신의 목숨이 경각에 달린 것이 사실이라는 맹세까지 하면서 요나단에게 사태의 심각성을 일깨워줍니다. 이런 다윗의 말을 듣고서야 요나단은 다윗의 말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다윗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해주겠다고 약속합니다.

 

사울의 계획을 알려달라고 부탁한 다윗(5-10)

하나님 앞에 선 신앙은 모든 경계를 초월하게 합니다. 그렇지만 함부로 행동하지 않습니다. 정황만으로 충분히 확실할 만했지만, 끝까지 신중히 행해야 합니다. 선입견과 경솔한 속단으로 하나님께서 보배같이 여기시고, 기다리시는 지체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5다윗이 요나단에게 이르되 내일은 초하루인즉 내가 마땅히 왕을 모시고 앉아 식사를 하여야 할 것이나 나를 보내어 셋째 날 저녁까지 들에 숨게 하고 6네 아버지께서 만일 나에 대하여 자세히 묻거든 그 때에 너는 말하기를 다윗이 자기 성읍 베들레헴으로 급히 가기를 내게 허락하라 간청하였사오니 이는 온 가족을 위하여 거기서 매년제를 드릴 때가 됨이니이다 하라 7그의 말이 좋다 하면 네 종이 평안하려니와 그가 만일 노하면 나를 해하려고 결심한 줄을 알지니 8그런즉 바라건대 네 종에게 인자하게 행하라 네가 네 종에게 여호와 앞에서 너와 맹약하게 하였음이니라 그러나 내게 죄악이 있으면 네가 친히 나를 죽이라 나를 네 아버지에게로 데려갈 이유가 무엇이냐 하니라 9요나단이 이르되 이 일이 결코 네게 일어나지 아니하리라 내 아버지께서 너를 해치려 확실히 결심한 줄 알면 내가 네게 와서 그것을 네게 이르지 아니하겠느냐 하니 10다윗이 요나단에게 이르되 네 아버지께서 혹 엄하게 네게 대답하면 누가 그것을 내게 알리겠느냐 하더라(5-10)

 

요나단은 왕위에 관심을 두기보다 정의에 관심을 두었습니다. 사울과 그는 부자지간이지만, 그는 관계를 따르기보다 옳고 정의로운 일을 선택했던 사람입니다. 역학관계로 따져도 다윗은 요나단에게 큰 걸림돌이 되는 인물입니다. 그러나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절망에 빠진 다윗의 말을 경청하고 위로합니다.

 

다윗은 요나단이 도와주겠다고 약속하자 구체적인 계획을 알려줍니다. 내일이 초하루 잔치를 여는 날이기에 자신도 잔치에 참석해야 할 의무가 있지만, 자신은 들에 3일 동안 숨어 있겠다는 것입니다. 왜 참석하지 않았는지 묻거든 가족들과 매년제를 드리기 위해 베들레헴으로 가기를 간곡하게 요청하여 보냈다고 말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 말을 듣고 좋게 여기면 왕이 자신을 죽이지 않을 줄 알겠고, 그러지 않고 화를 내면 죽이기로 결심한 줄 알겠다고 이야기합니다.

다윗은 이전에 요나단이 블레셋 진영으로 갈 때 사용한 방법으로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하였습니다. 다윗은 자신을 요나단의 종이라고 지칭하면서 18장 3절에서 여호와 앞에서 맺은 언약을 기억하고 자신에게 인자를 베풀어달라고 간절히 사정합니다. 다윗은 요나단에게 마지막으로 강하게 말합니다. 자신에게 죄가 있으면 차라리 요나단의 손으로 죽이라고 말합니다. 다윗은 자신의 목숨을 걸고 억울함을 주장하였습니다. 그리고 그의 마음을 요나단도 알고 있습니다.

요나단도 아버지에게 다윗의 무죄함을 주장하며 다윗을 죽이지 말라고 설득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런 다윗의 말을 들은 요나단은 결코 다윗을 죽게 내버려두지 않겠다고 하고, 만일 아버지께서 다윗을 죽이기로 결심하신다면 그 사실을 자신에게 알리지 않을 수가 있겠느냐며, 자신이 이 일만은 반드시 막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요나단에게는 사울이 다윗을 죽이는 것을 막아야 할 이유가 다윗에 대한 사랑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동시에 사울이 살인죄를 저지르는 것도 막아야 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다윗은 만일 사울이 자신을 죽일 계획을 요나단이 자신에게 알리지 못하게 강압적으로 막으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묻습니다.

다윗은 모든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요나단이 어떻게 할지를 묻고 있습니다. 이런 다윗을 보면 사울을 떠나야 할 때를 안 후 자신이 어떻게 하면 살아서 무사히 사울의 손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요나단의 말의 허점을 지적하며 더 확실히 도망갈 방법을 모색하고 요나단을 설득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요나단과 다윗의 맹세(11-17)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영원하지 못합니다. 사람 사이의 약속과 신의도 의지만으로는 지키기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안에서 이루어지는 교제는 세상에 흔히 맺는 관계와는 다릅니다. 영원불변의 하나님께서 증인이 되시는 언약은 그 자체로 영원한 가치가 있습니다.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서로 사랑하는 것이 우리가 받은 큰 복입니다.

 

11요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오라 우리가 들로 가자 하고 두 사람이 들로 가니라 12요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증언하시거니와 내가 내일이나 모레 이맘때에 내 아버지를 살펴서 너 다윗에게 대한 의향이 선하면 내가 사람을 보내어 네게 알리지 않겠느냐 13그러나 만일 내 아버지께서 너를 해치려 하는데도 내가 이 일을 네게 알려 주어 너를 보내어 평안히 가게 하지 아니하면 여호와께서 나 요나단에게 벌을 내리시고 또 내리시기를 원하노라 여호와께서 내 아버지와 함께 하신 것 같이 너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니 14너는 내가 사는 날 동안에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내게 베풀어서 나를 죽지 않게 할 뿐 아니라 15여호와께서 너 다윗의 대적들을 지면에서 다 끊어 버리신 때에도 너는 네 인자함을 내 집에서 영원히 끊어 버리지 말라 하고 16이에 요나단이 다윗의 집과 언약하기를 여호와께서는 다윗의 대적들을 치실지어다 하니라 17다윗에 대한 요나단의 사랑이 그를 다시 맹세하게 하였으니 이는 자기 생명을 사랑함 같이 그를 사랑함이었더라(11-17)

 

다윗의 절박하고 매우 현실적인 말을 들은 요나단은 다윗과 함께 들로 나가자고 제안합니다. ‘들’이라는 장소는 상대적으로 다윗에게 안전한 장소로 다윗이 숨기도 좋고 도망가기도 좋은 곳입니다.

요나단은 다윗에게 좀 더 유리한 장소로 이동하며 분위기를 전환한 뒤에 자신의 계획을 다윗에게 알립니다. 내일이나 모레 아버지의 의향을 살펴고 다윗을 죽이지 않을 것 같으면 반드시 알려주겠다고 약속합니다. 요나단은 수사의문문을 써서 자신의 결심의 확고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또한 사울이 다윗을 해치기로 결심했다면 반드시 알려주겠다고 말하며 여호와께 맹세합니다.

요나단이 여호와계 맹세까지 하면서 다윗을 살리겠다고 말하는 이의는, 13절 하반절부터 16절에 걸쳐서 나옵니다. 13절 첫반절에 ‘여호와께서 내 아버지와 함께 하신 것 같이 너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라는 말은 다윗이 사울을 이어 왕이 될 것을 자신도 알고 인정한다는 의미입니다. 요나단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버지를 버리고 다윗을 새로운 왕으로 선택하신 사실을 알고, 이에 순종하기로 확고하게 결심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다윗에 대한 요나단의 태도는 이전과 다릅니다. 조금 전까지는 왕자로서 다윗을 살려주겠다고 말하였지만, 이제는 왕이 될 다윗에게 신하로서 자신과 자신의 가족을 살려달라고 부탁합니다. 14절에서 그는 자신이 사는 날 동안에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내게 베풀어서 나를 죽이지 말라고 말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자신의 가족까지도 살려달라고 부탁합니다.

15절에서 여호와께서 다윗의 대책을 지면에서 다 끊어버린다 할지라도 자신의 집은 영원히 끊지 말아달라고 부탁합니다. 여기서 ‘끊어버리다’는 가문을 완전히 멸족시키는 것을 말합니다. 반정을 일으켜 왕이 되든지, 사울이 죽어서 왕이 되든지 만일 다윗이 왕이 되면 왕자인 요나단과 그의 집안은 정치적으로 볼 때 제거 영순위가 되기에 온 집안이 죽임을 당하는 것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후에 사울 가문은 요나단의 집을 제외하고는 거의 다 죽게 됩니다. 이것을 알고 요나단은 다윗에게 왕이 된 후에 자신과 자신의 집안에 은혜를 베풀어달라고 요청한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뜻을 잘 분별하고 그 뜻에 순종한 요나단은 사울의 집안사람들이 모두 죽어 나갈 때, 자신의 아들과 집안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이런 요청에 다윗은 요나단과 언약을 맺었습니다. 그리고 요나단은 끝까지 다윗을 위해 ‘여호와께서 다윗의 원수를 치실지어다’라는 축복을 해줍니다.

17절은 요나단이 이렇게 다윗이 자신의 집안을 죽일 수 있는 인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축원해주고 살려주려고 애쓰는 이유를 다시 설명합니다. 다윗을 자신의 생명처럼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신실한 애정과 충성심 때문에 후에 다윗은 요나단에 대해 여인의 사랑보다 더 낫다고 평가한 것입니다.

 

둘 사이의 신호를 정함(18-23)

인간적인 조건을 따지면 만나는 관계는 상황에 따라 깨어지기 쉽습니다. 우리가 상대방의 인간적인 조건에 좌우되지 않고 서로의 관계 가운데 하나님의 통치를 온전히 인정할 때, 우리의 관계는 감정과 조건을 넘어서 변함없는 사랑의 관계로 더욱 발전하게 될 것입니다.

 

18요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내일은 초하루인즉 네 자리가 비므로 네가 없음을 자세히 물으실 것이라 19너는 사흘 동안 있다가 빨리 내려가서 그 일이 있던 날에 숨었던 곳에 이르러 에셀 바위 곁에 있으라 20내가 과녁을 쏘려 함 같이 화살 셋을 그 바위 곁에 쏘고 21아이를 보내어 가서 화살을 찾으라 하며 내가 짐짓 아이에게 이르기를 보라 화살이 네 이쪽에 있으니 가져오라 하거든 너는 돌아올지니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네가 평안 무사할 것이요 22만일 아이에게 이르기를 보라 화살이 네 앞쪽에 있다 하거든 네 길을 가라 여호와께서 너를 보내셨음이니라 23너와 내가 말한 일에 대하여는 여호와께서 너와 나 사이에 영원토록 계시느니라 하니라(18-23)

 

성도에게는 우연은 없습니다. 어디를 가든 보내신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이 사실을 굳게 믿는 사람은 어떤 상황에 놓여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세상은 가볍게 약속하고 성황이 여의치 않으면 쉽게 말을 바꿉니다. 그러나 성도는 하투루 말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진중하게 말하고, 그 말에 책임을 지는 사람입니다.

 

(1) 사흘간 숨어 있기(18-19)

 

모든 언약을 마친 후 둘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사울의 결심에 대한 정보를 알려줄지를 의논합니다. 요나단은 다윗에게 들의 에셀 바위 곁에 숨어 있으라고 하면서 자신이 화살을 쏘아서 종에게 화살이 종의 이쪽에 있다고 하면 평안히 돌아와도 되고, 만일 종의 앞쪽에 있다고 말하면 네 길을 가라고 말합니다. 요나단은 이전에 블레셋 사람과의 전투에서 여호와의 뜻을 분별했던 방법을 여기서도 사용하고 있습니다. 끝까지 여호와의 뜻에 순종하고 여호와께서 어떻게 다윗의 앞길을 인도하시는지 보려고 한 것입니다. 약속한 후에는 이것을 반드시 지키겠다는 의미로 여호와를 자신과 다윗 사이의 증인으로 세운다. ‘여호와께서 너와 나 사이에 영원토록 계시느니라’는 여호와를 증인으로 세운다는 의미입니다. 요나단은 끝까지 여호와 앞에서 신실하게 행동하겠다고 맹세한 것입니다.

 

(2) 화살 신호(20-23)

 

전체적으로 오늘 본문에서는 맹세와 언약, 죽음이라는 말이 많이 나옵니다. 이것은 다윗과 요나단의 상황이 매우 비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다윗은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이고, 요나단도 아버지와 자신과 집안의 목숨을 걸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힘들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 요나단은 자신의 생각이 아닌 하나님의 생각에 순종하는 쪽으로 결단을 내렸기에 더욱 우리에게 도전을 줍니다.


다윗과 요나단의 우정은 하나님의 인자에 기초한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온라인의 발전을 통해 소셜 미디어를 통해서도 인간관계들이 확장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넓어진 만큼 깊어지지 못한 듯합니다. 그러한 관계들은 더욱 우정이 깊어지는 것이 아니라 더 약화 되고 있습니다. 진실한 우정은 두 사람과의 수평적 관계만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수직적 관계로 확장되어야 합니다. 본문에 다윗과 요나단의 관계는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며 서로 신뢰를 갖고 위기를 함께 이어 나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의 삶을 통해서도 돌아보길 원합니다. 자신이 맺고 있는 관계가 단순히 많은 관계를 확장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관계를 통해 하나님을 바라보며 교제하는 귀한 동역자의 관계로 만들어 나가는 성도들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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