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20-02)
다윗의 도망길을 도와준 요나단
사무엘상 20장 24-42절
최근에 자기 스스로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지 못해 사건 소식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사소한 일에도 불같이 화를 내고 분노를 통제하지 못해 끔찍한 일을 저질렀다는 뉴스가 심심찮게 들려옵니다. 그 이유가 사회가 불안해서입니까? 혹시 기도와 성찰의 시간이 갖지 못할 정도로 너무 바빠서는 아닙니까?
- 사울이 자신을 죽이려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된 다윗은 요나단을 찾아가 자신의 형편을 설명하고 도와달라고 부탁합니다. 요나단은 다윗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약속하고 대신 자신과 자기 집안을 살려달라고 요청하며 언약을 맺습니다. 그리고 요나단과 다윗은 구체적으로 사울의 의도를 알아낸 후에 연락할 방법을 논의합니다. 다윗은 자신의 계획대로 들어 숨고 초하루 잔치는 다윗 없이 시작됩니다.
월삭일 잔치에 참석지 않은 다윗(24-29)
성도들은 기도하면서 자신의 감정을 잘 조절해야 합니다.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면 결말은 끔찍합니다. 한 사람의 조절하지 못한 감정은 많은 사람에게 피해를 주기 때문입니다. 세상에는 얼마나 악하고 잔인하고 비정한지를 알아야 합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순진한 것과 선하고 순한 것은 다릅니다.
24다윗이 들에 숨으니라 초하루가 되매 왕이 앉아 음식을 먹을 때에 25왕은 평시와 같이 벽 곁 자기 자리에 앉아 있고 요나단은 서 있고 아브넬은 사울 곁에 앉아 있고 다윗의 자리는 비었더라 26그러나 그 날에는 사울이 아무 말도 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생각하기를 그에게 무슨 사고가 있어서 부정한가보다 정녕히 부정한가보다 하였음이더니 27이튿날 곧 그 달의 둘째 날에도 다윗의 자리가 여전히 비었으므로 사울이 그의 아들 요나단에게 묻되 이새의 아들이 어찌하여 어제와 오늘 식사에 나오지 아니하느냐 하니 28요나단이 사울에게 대답하되 다윗이 내게 베들레헴으로 가기를 간청하여 29이르되 원하건대 나에게 가게 하라 우리 가족이 그 성읍에서 제사할 일이 있으므로 나의 형이 내게 오기를 명령하였으니 내가 네게 사랑을 받거든 내가 가서 내 형들을 보게 하라 하였으므로 그가 왕의 식사 자리에 오지 아니하였나이다 하니(24-29)
다윗은 사울이 자신을 죽이려 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오늘도 다윗은 사울이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의중을 알아보기 위해 매월 첫 일의 잔치인 월삭일 잔치에 참석하지 않습니다.
(1) 첫째 날 잔치에서 다윗을 찾지 않는 사울(24-26)
요나단과 약속한 뒤에 다윗은 계획대로 들에 숨습니다. 초하루 잔치의 첫째 날, 사울은 평상시처럼 자신의 자리에 앉아 있고 요나단은 서 있었으며 아브넬은 사울 곁에 앉아 있었고 다윗의 자리는 비어 있었습니다. 사울은 다윗의 부재에 뭔가 찜찜했지만 왜 안 왔는지 묻지 않습니다. 다윗이 피치 못하게 정결하지 못한 상태가 되어 잔치에 올 수 없었을 것으로 생각하면서 자신의 불안한 마음을 가라앉혔습니다.
26절에서 ‘부정한가보다 참으로 부정한가 보다’라는 말을 반복적으로 하는 것은 그의 불안한 마음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2) 둘째 날 잔치에서 다윗을 찾는 사울(27-29)
불안한 첫째 날을 보내고 잔치 둘째 날이 왔습니다. 초하루 잔치는 보통 3일 동안 벌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윗이 3일 동안 숨어 있겠다고 한 것입니다.
이날도 다윗의 자리가 비어 보이지 않자, 드디어 사울은 요나단에게 왜 다윗이 나오지 않았느냐고 묻습니다(27). 여기서 사울은 다윗을 자기 사위로 부르지 않고, ‘이새의 아들’로 부르는데 이것은 다윗을 폄하할 때 사용하는 호칭으로 이후에도 사울은 다윗을 계속 이렇게 부릅니다. 이미 이 호칭에서 사울의 기분이 나쁘다는 것이 드러납니다. 사울의 질문에 요나단은 다윗이 부탁한 대로 대답하지만 좀 더 설득력이 있기 위해 ‘제발’이라는 단어를 반복적으로 사용하여 다윗이 자신에게 매우 간곡하게 부탁했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29절의 우리말 번역에서는 안 나타나는데 ‘나에게 가게 하라’로 번역된 것도 원문에서는 ‘제발 나를 보내주십시오’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다윗이 자신에게 제발 잔치에 빠지고 다녀올 수 있게 해달라고 간곡히 요청했기 때문에 자신이 허락하였고, 그래서 잔치에 참여하지 못했다고 설명하였습니다. 이런 설명을 하면 요나단은 과연 사이 어떤 반응을 할 것인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바라보았을 것입니다.
분노를 조절하지 못한 사울(30-34)
우리의 삶은 항상 순조롭게 돌아가는 것은 아닙니다. 뜻대로 안 되는 일, 마음을 거슬리며 다가오는 일, 전방위적으로 다양한 공격을 받기도 합니다. 어쩌면 살아가는 것 자체가 화가 나고, 분통이 터질만한 일들이 끊임없이 다가와 한바탕 전쟁과 같은 일이 연속일 수 있습니다. 성령님 안에서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계속 이어가고, 말씀으로 단단히 무장해야 합니다.
30사울이 요나단에게 화를 내며 그에게 이르되 패역무도한 계집의 소생아 네가 이새의 아들을 택한 것이 네 수치와 네 어미의 벌거벗은 수치 됨을 내가 어찌 알지 못하랴 31이새의 아들이 땅에 사는 동안은 너와 네 나라가 든든히 서지 못하리라 그런즉 이제 사람을 보내어 그를 내게로 끌어 오라 그는 죽어야 할 자이니라 한지라 32요나단이 그의 아버지 사울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그가 죽을 일이 무엇이니이까 무엇을 행하였나이까 33사울이 요나단에게 단창을 던져 죽이려 한지라 요나단이 그의 아버지가 다윗을 죽이기로 결심한 줄 알고 34심히 노하여 식탁에서 떠나고 그 달의 둘째 날에는 먹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의 아버지가 다윗을 욕되게 하였으므로 다윗을 위하여 슬퍼함이었더라(30-34)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할 때, 요나단은 다윗에 대해 변호하는 태도에 섭니다. 사울 왕은 다윗이 참석하지 않음과 요나단의 변호에 대해 불과 같이 화를 냅니다. 그러한 행동에 저주를 퍼붓는 것도 부족해서 아들을 향해 칼을 던졌습니다.
(1) 요나단을 책망하는 사울(30-31)
다윗이 다해 화를 내는 사울이 요나단의 말에 사울은 물같이 화를 냅니다. 요나단의 말을 들으면서 요나단이 자기 뜻을 어기고 다윗을 살려주기 위해서 보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사울은 요나단의 말에 속지 않았고 본심을 완전히 드러냅니다. 사울은 요나단을 ‘반항적이고 삐뚤어진 여자의 아들’이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요나단의 어머니 아히노말을 욕보이는 표현이자 더 이상 요나단을 아들로 생각하지 않겠다는 표현입니다. 그는 요나단이 자신이 아니라 다윗을 선택한 것에 대해서 너와 너의 어머니에게 수치가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런 사울의 말은 일견 들리지 않습니다. 다윗이 왕이 되는 순간 사울의 집안과 요나단의 집안은 아무도 살아남을 수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31절에서 사울은 다윗이 살아있는 한 너와 너의 나라를 세울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이것도 맞는 말입니다. 사울은 아버지로서 자신의 뒤를 이어 요나단이 왕위를 계승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다윗을 자기 수준에서 이해한 것입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좀 더 깊이 사울의 마음을 들여다본다면, 그가 단순히 요나단을 걱정해서 다윗을 죽이려고 한 것은 아닙니다. 요나단도 하나의 핑계가 될 수 있지만, 사울에게 더 중요한 것은 당장 자신의 왕권을 유지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 그는 자신의 깊은 속마음은 숨기고 오직 너를 위한 아버지 마음을 모른다고 요나단을 비난하며 반드시 다윗을 잡아 죽여야 한다고 소리칩니다.
이런 상황에서 요나단은 다윗의 편을 들며 ‘다윗이 무슨 일을 했느냐?’며 아버지 사울에게 대듭니다. 본문에서 사흘에 대해서는 계속해서 ‘요나단의 아버지’라는 표현을 사용하므로 사울은 요나단을 버렸지만, 요나단은 사울을 버리지 않았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요나단은 비록 자신이 왕위를 계승하지 못하더라도 죄 없는 다윗을 죽이는 일과 아버지가 살인죄를 저지르는 것을 막으려고 한 것입니다.
다윗을 옹호하며 자신에게 대드는 요나단의 모습에 사울은 더 큰 배신감과 분노를 느끼고 다윗에게 던졌던 단창을 이번에는 요나단을 향해 던져 요나단을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지금 사울은 분노로 이성을 상실한 것입니다. 마치 여호와의 악령이 임해 이성을 잃고 다윗을 죽이려던 모습과 유사합니다.
(2) 요나단의 분노(32-34)
이런 사울의 모습을 보면서 요나단은 정말 아버지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한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았고, 지난번처럼 자신이 아버지를 막을 수 있다는 희망을 버렸습니다. 이제 요나단도 화를 내고 식탁에서 일어나 나가버립니다. 그리고 사울이 다윗을 모욕한 것에 대해 가슴 아파하며 식사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다윗을 모욕했다는 것은 사울이 다윗에게 죄가 없는데도 죽이려 하는 것을 표현한 것입니다.
현재 상황에서 요나단이 아버지에게 분노하고 다윗에 대해 가슴 아파했다는 것은 요나단이 아버지 사울의 편이 아니라 다윗의 편에 섰다는 것을 말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요나단이 자신의 아버지 사울을 버리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는 사랑하는 두 사람의 갈등에서 옳은 것을 선택하는 결단을 내린 것뿐입니다.
사울 왕을 피해 떠나는 다윗(35-42)
작은 일이라도 하나님께서 맡겨 주셨다고 생각하면 그 일을 성실히 해 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하는 작은 일이 하나님과 동역해 나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작은 실천일 것입니다. 그런 작은 일이 모여서 하나님의 사랑이 사람들에게 전해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요나단이 다윗과 하나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하나님께 대한 신앙에서 출발합니다. 그는 하나님께 대한 신앙을 바탕으로 전장에 나갔던 것입니다.
35아침에 요나단이 작은 아이를 데리고 다윗과 정한 시간에 들로 나가서 36아이에게 이르되 달려가서 내가 쏘는 화살을 찾으라 하고 아이가 달려갈 때에 요나단이 화살을 그의 위로 지나치게 쏘니라 37아이가 요나단이 쏜 화살 있는 곳에 이를 즈음에 요나단이 아이 뒤에서 외쳐 이르되 화살이 네 앞쪽에 있지 아니하냐 하고 38요나단이 아이 뒤에서 또 외치되 지체 말고 빨리 달음질하라 하매 요나단의 아이가 화살을 주워 가지고 주인에게로 돌아왔으나 39그 아이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요나단과 다윗만 그 일을 알았더라 40요나단이 그의 무기를 아이에게 주며 이르되 이것을 가지고 성읍으로 가라 하니 41아이가 가매 다윗이 곧 바위 남쪽에서 일어나서 땅에 엎드려 세 번 절한 후에 서로 입 맞추고 같이 울되 다윗이 더욱 심하더니 42요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우리 두 사람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영원히 나와 너 사이에 계시고 내 자손과 네 자손 사이에 계시리라 하였느니라 하니 다윗은 일어나 떠나고 요나단은 성읍으로 들어가니라(35-42)
사울의 단창을 피한 요나단은 사울의 의도를 확신합니다. 사전에 계획된 대로 다윗을 찾아가 탈출 신호를 보냅니다. 요나단은 하나님이 다윗과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1) 다윗에게 도망가라는 신호를 한 요나단(35-40)
사울의 마음을 확실히 알게 된 요나단은 다윗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시중 한 명을 데리고 약속한 장소에 나가서 활을 쏩니다. 요나단은 시종이 활을 줍기 위해서 먼저 달려 나가는 것을 보고 시종을 훌쩍 넘겨 시종의 앞쪽으로 활을 쏜 뒤 다윗과 약속한 대로 도망가라는 신호인 ‘앞쪽에 화살이 있겠느냐?’고 말합니다. 또한 요나단은 시종 뒤에서 빨리 서둘러라 서 있지 말라고 명령합니다. 다윗에게 당장 도망가라는 말을 하면서 사태의 시급함을 알려주었습니다.
시종은 영문도 모른 채 주인의 명령대로 열심히 달려가 화살을 주워가시고 돌아왔습니다. 본문에서 아이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였고 요나단과 다윗만 그 일을 알았다고 하여 둘만의 은밀한 신호가 성공적으로 전달되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요나단은 자신이 다윗과 한 약속을 철저하게 지키며 다윗이 도망가는 길을 도와주었습니다.
(2) 다윗과 요나단의 작별 인사(41-42)
요나단은 다윗에게 신호를 보내 상황을 알린 뒤에 시종을 먼저 성읍으로 보내고 자신은 들에 남습니다. 다윗과 작별 인사를 하기 위해서 시종을 먼저 보낸 것입니다. 시종이 사라지자 다윗은 자신이 숨어 있던 바위에서 나와 땅에 엎드려 요나단에게 세 번 절합니다. 일반적으로 땅에 엎드려 절하는 것은 신하가 왕을 만났을 때나 종이 주인에게 하는 인사로 그동안 자신을 지극히 사랑해준 것과 자신이 무사히 도망갈 수 있도록 도와준 것에 대한 마지막 인사로 매우 정중하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존경심을 표현한 것입니다. 그리고 서로 입 맞추고 작별 인사를 하며 울었습니다. 여기서 다윗이 더욱 심히 울었다고 말함으로 요나단과의 작별을 다윗이 더욱 아쉬워하고 가슴 아파했다는 것을 표현합니다. 다윗과 요나단의 이별 장면은 룻기에서 오르바와 룻과 나오미의 이별 장면을 떠올리게 합니다.
요나단은 마지막으로 다윗에게 평안히 가라고 인사하면서 두 사람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한 맹세를 잊지 말라고 당부합니다. 여호와께서 너와 나 사이에 그리고 너의 자손과 나의 자손 사이에 계시다는 말은 여호와께서 다윗과 요나단이 한 약속에 대한 영원한 증인이시라는 의미로 반드시 지켜달라고 다시 한번 부탁한 것입니다. 비록 자신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왕권을 포기하고 다윗을 지지하고 있지만 자신의 목숨과 자식들에 대한 걱정을 안 할 수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요나단의 인간적인 갈등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적인 관점에서 보면 어리석어 보이는 요나단의 선택이 결과적으로는 그의 아이들을 살리는 현명한 선택이었다는 것이 나중에 드러납니다. 하나님의 선택을 따르는 자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방법으로 보호해주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요나단은 자신의 사랑하는 친구이자 아버지의 정적인 다윗을 눈물로 보내주었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무사히 사울의 집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분노는 우리의 이성을 마비시켜 비극적인 결과를 불러옵니다. 노골적으로 다윗을 죽이려고 했던 사울은 다윗이 초하루 만찬에 참석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분노합니다. 심리적 정치적 분야 상태를 엿보입니다. 요나단의 해명에 사울은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을 퍼붓습니다. 그런 사울이 요나단에게 저주를 퍼붓는 것도 부족해 칼을 던졌습니다. 분노로 인해 다윗이 아닌 이제 자기 아들을 향해서도 칼을 던집니다. 사울이 단창을 피한 요나단은 사울의 의도를 확신하고, 이제 사전에 계획된 대로 다윗을 찾아가 탈출 신호를 보냅니다. 결국 이러한 사울로 인해 요나단과 다윗은 헤어지고 함께 하지 못하게 됩니다. 특정한 한 사람을 향한 분노는 결국 우리 주변의 모든 관계를 망치고 맙니다. 우리도 사울처럼 분노에 휩싸여 소중하게 지켜야 할 관계는 파괴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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