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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29-01)


다윗이 전쟁 출정을 거부하는 블레셋 장군들

사무엘상 29장 1-11절


 

세상의 일은 자기 생각과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을 절실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생각지 않는 일들은 속수무책으로 언제든 닥칩니다. 어디에서도 우리 편을 찾아볼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자신의 능력과 지혜도 한계가 있습니다. 그때 바랄 것은 그 둘러싸인 적들이 순식간에 자신의 아군으로 변하든지, 적들끼리 자중지란에 빠지는 길뿐입니다. 다윗에게도 경우의 수는 단 하나뿐이었습니다.

 

  • 블레셋에 거주하는 다윗이 이스라엘과의 전투에 참전하라는 아기스의 명령을 받고 고민하는 동안 이스라엘에서는 사울이 사무엘의 영을 만나서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질 것이고 사울과 그의 아들들이 죽을 것이라는 예언을 받습니다. 블레셋과 이스라엘의 전쟁은 사울에게도 다윗에게도 쉽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이때 다윗은 블레셋 편에서 이스라엘과의 전투에 참전하게 됩니다.

 

블레셋 군대의 소집(1-2)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도우십니다. 당신의 상황이 하나님을 부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다윗처럼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시길 바랍니다. 그것을 통해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가 일어날 것입니다. 하나님을 끝까지 의지하시길 바랍니다.

 

1블레셋 사람들은 그들의 모든 군대를 아벡에 모았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스르엘에 있는 샘 곁에 진 쳤더라 2블레셋 사람들의 수령들은 수백 명씩 수천 명씩 인솔하여 나아가고 다윗과 그의 사람들은 아기스와 함께 그 뒤에서 나아가더니(1-2)

 

이 다윗의 이야기는 28장 1-2절과 연결되는 것으로 사울이 엔돌의 신접한 여인을 찾아가는 정면은 블레셋에서 이스라엘과의 전투를 준비하는 다윗의 이야기를 중간에 끊고 삽입된 이야기입니다. 28장 1-2절은 다윗의 위기를 보여주고, 28장 3-23절은 사울의 위기를 나란히 보여줍니다.

 

(1) 블레셋과 이스라엘의 대치(1)

 

뒤에 이어지는 29-30장은 28장의 다윗의 위기가 어떻게 해결되는지 보여줍니다. 여호와께서 함께하시는 사람의 형통을 보여주고 있고, 31장은 28장에서 받은 사울의 예언이 성취되는 것을 통해 여호와께 버림받은 사람의 비극적 죽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29-31장의 이야기는 다윗과 사울의 운명을 대조적으로 보여줍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이스라엘과 전쟁하기 전에 아벡에 모이는데, 이곳은 가드에서 42킬로미터 북쪽에 있으며 샤론 평지에 위치합니다. 이들은 이곳에 집결한 뒤 이스르엘 산지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에 대응하기 위해 이스르엘에 있는 샘 곁에 진을 쳤습니다. 이스르엘에 있는 하롯 샘은 이스르엘에서 동남동 방향 약 2.5킬로미터 지점에 있는 길보아 산지 북쪽 기슭에서 흘러나오는 샘으로 기드온이 미디안과 전쟁하기 위해 진을 친 곳입니다.

 

(2) 블레셋 군대의 행진(2)

 

블레셋의 수령들이 100명씩 혹은 1000명씩 부대를 이루어 행진하였고, 다윗과 그의 군사들도 아기스와 함께 그들 뒤에서 행진하고 있었다고 말하는데, 이것은 다윗과 그의 군사들도 전쟁에 참전하기 위해 아벡으로 집결하였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여기서 ‘수령들’이라고 말한 것을 볼 때 이번 전투는 블레셋 다섯 성읍의 군주들이 거의 모두 참여하는 대규모 전쟁이었던 것 같습니다.

 

블레셋 장군의 반대(3-5)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우리가 무엇을 하든 손가락 하나만 움직여도 하나님 나라를 배신하고 블레셋을 도울 수밖에 없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도 신실하게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는 분입니다. 어쩔 수 없다고 말하기 전에 하나님을 원 없이 믿어보시길 바랍니다.

 

3블레셋 사람들의 방백들이 이르되 이 히브리 사람들이 무엇을 하려느냐 하니 아기스가 블레셋 사람들의 방백들에게 이르되 이는 이스라엘 왕 사울의 신하 다윗이 아니냐 그가 나와 함께 있은 지 여러 날 여러 해로되 그가 망명하여 온 날부터 오늘까지 내가 그의 허물을 보지 못하였노라 4블레셋 사람의 방백들이 그에게 노한지라 블레셋 방백들이 그에게 이르되 이 사람을 돌려보내어 왕이 그에게 정하신 그 처소로 가게 하소서 그는 우리와 함께 싸움에 내려가지 못하리니 그가 전장에서 우리의 대적이 될까 하나이다 그가 무엇으로 그 주와 다시 화합하리이까 이 사람들의 머리로 하지 아니하겠나이까 5그들이 춤추며 노래하여 이르되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하던 그 다윗이 아니니이까 하니(3-5)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용맹함을 칭송하며 부른 노래를 기억하던 블레셋 방백들을 통해 다윗을 자기 백성 이스라엘과 싸울 위기에서 건져 내십니다. 다윗이 사울과 싸워서 이길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포기하고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1) 아기스의 변호(3)

 

블레셋의 방백들이 다윗이 전쟁에 참여하는 것에 대해 제동을 겁니다. 그들은 다윗과 그의 군사들을 ‘히브리 사람’이라고 낮추어 부르는데, 이 용어는 이방인들이나 사회적 소외계층의 사람들을 비하하여 부르는 호칭이. 즉 방백들은 다윗과 그의 군사들을 완전히 이방인 취급을 하면서 아기스에게 이들이 여기서 무엇을 하느냐고 묻습니다. 아기스가 다윗을 데리고 전쟁터에 온 것을 이해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아기스도 방백들이 무엇을 걱정하고 묻는 것인지 알고 있기에, 다윗에 대해 신뢰할 수 있는 인물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는 다윗이 원래 이스라엘 왕 사울의 신하였지만 자신에게 망명하여 온 후 일 년 넘게 보았는데 아무 허물도 찾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아기스의 입장에서 다윗은 유다 지역을 노략하고 자신에게 전리품을 가져다주며 충성을 바치고 있는 인물이기에 완전히 자기 사람으로 믿고 있었던 것입니다. 시글락과 가드가 멀기도 하고 다윗이 정보를 철저히 차단하는 노력을 기울인 덕분에 아기스는 다윗이 유다 지역이 아닌 유다의 적들을 노략하고 다닌다는 것을 전혀 몰랐습니다.

 

(2) 블레셋 장군들의 반대(4-5)

 

이런 아기스의 말에 블레셋의 방백들은 분노합니다. 그들은 아기스에게 다윗을 돌려보내라고 요구합니다. 이들은 다윗이 전쟁터에서 자신들의 대적이 되어 이스라엘을 위해서 싸울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다윗이 블레셋 사람의 머리를 가지고 가서 사울과 다시 화해할 수도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블레셋의 방백들은 사울과 다윗의 심각한 불화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이전에 다윗이 사울과 함께 골리앗과 블레셋을 친 후에 백성들에게서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라고 칭송했던 사건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21장에서 아기스가 다윗을 의심의 눈초리로 보게 했던 그 사건으로 상당히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블레셋 사람들의 뇌리에 다윗은 골리앗을 죽인 이스라엘의 영웅으로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이들의 말 속에 블레셋 사람들의 다윗에 대한 불신과 두려움이 잘 나타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블레셋의 방백들이 오히려 아기스보다 다윗이 어떤 사람인지 더 잘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다윗은 결코 블레셋 편이 될 수 없는 사람인 것입니다. 다윗은 미래에 이스라엘의 왕이 될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전투에 출정하지 못하게 됨(6-11)

어려운 상황에는 시편 기자의 고백처럼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나는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시편 42:11)라는 말씀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본의 아니게 난처한 상황에 처할 때가 있습니다.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근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중심에는 하나님께 있어야 합니다. 중심이 하나님께 있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피할 길을 주십니다.

 

6아기스가 다윗을 불러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네가 정직하여 내게 온 날부터 오늘까지 네게 악이 있음을 보지 못하였으니 나와 함께 진중에 출입하는 것이 내 생각에는 좋으나 수령들이 너를 좋아하지 아니하니 7그러므로 이제 너는 평안히 돌아가서 블레셋 사람들의 수령들에게 거슬러 보이게 하지 말라 하니라 8다윗이 아기스에게 이르되 내가 무엇을 하였나이까 내가 당신 앞에 오늘까지 있는 동안에 당신이 종에게서 무엇을 보셨기에 내가 가서 내 주 왕의 원수와 싸우지 못하게 하시나이까 하니 9아기스가 다윗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네가 내 목전에 하나님의 전령 같이 선한 것을 내가 아나 블레셋 사람들의 방백들은 말하기를 그가 우리와 함께 전장에 올라가지 못하리라 하니 10그런즉 너는 너와 함께 온 네 주의 신하들과 더불어 새벽에 일어나라 너희는 새벽에 일어나서 밝거든 곧 떠나라 하니라 11이에 다윗이 자기 사람들과 더불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떠나 블레셋 사람들의 땅으로 돌아가고 블레셋 사람들은 이스르엘로 올라가니라(6-11)

 

전에는 아기스 앞에서 미치광이처럼 행동하여 위기를 벗어난 것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전쟁에 나가지 못한 것에 크게 실망한 듯 연기하여 위기에서 벗어나고 있습니다. 이 속임수는 라합의 속임수(2:4)와 에훗(삿 3:20-21)과 야엘(4:18-21)과 삼손(16:1-3, 26-27)의 속임수처럼, 하나님의 주권을 신뢰하는 지돠들이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는 통쾌한 속임수였습니다.

 

(1) 다윗을 돌려보내는 아기스(6-7)

 

방백들의 생각지 못한 반발로 아기스는 다윗을 불러 같이 전쟁터에 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그는 다윗에게 매우 미안한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다윗의 고향인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신 여호와의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합니다. 당시는 여러 신들을 섬기는 다신 사회였기 때문에 사람들은 다른 나라의 신들의 존재도 인정하고 여러 신들을 함께 섬기기도 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아기스가 여호와를 믿어서가 아니라 다윗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말한 것입니다. 그는 자신이 얼마나 다윗을 믿고 있는지를 피력합니다. 자신이 보기에 다윗은 옳고 지금까지 어떤 악한 일도 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방백들을 설득하기 위해서 했던 말을 그대로 반복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블레셋의 수령들이 다윗이 함께 전쟁터에 나가는 것을 좋게 여기지 않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다윗을 돌려보내야 한다고 통보합니다.

아기스의 이런 말 속에는 다윗에 대한 미안함과 이 사태에 대한 유감스러움이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는 최대한 다윗이 기분 나쁘지 않게 조심스럽게 말하고 있는데, 이번 일로 자신과 다윗의 관계가 나빠지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입니다. 전쟁터에 나가지 못하게 하는 것을 이렇게 미안해하는 이유는 다윗과 그의 군사들은 현재 용병의 신분으로 전쟁 노획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고 전쟁에서 승리해야 명성을 높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용병에게 전쟁터에 오지 말라는 것은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는 것과 같았기에 아기스는 다윗에게 매우 조심스럽게 이야기한 것입니다. 왕은 다윗에게 조용히 돌아가서 블레셋 수령들이 싫어할 어떤 행동도 하지 말고 얌전히 있으라고 충고합니다. 이것은 다음 기회를 노리자는 뜻입니다. 다윗이 이런 부당한 처사에 어떤 항의도 하지 않고 돌아가서 얌전히 지낸다면 블레셋의 수령들이 다윗을 신뢰하고 다음에는 기회를 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2) 다윗의 항변(8)

 

다윗은 아기스의 말을 들었을 때 하나님께서 자신을 도우셔서 이 위기에서 벗어나게 하셨다고 생각하고 안도의 숨을 내쉬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다윗은 전혀 내색하지 않고 아기스 앞에서 연극을 합니다. 마치 이전 아기스 앞에서 미친 척 연극을 한 것처럼 말입니다. 그는 일단 아기스에게 항의합니다. 이것은 자신의 진심을 몰라주는 데 대한 서운함을 표현하기 위한 것으로 자신이 무슨 잘못을 했기에 자기 주인의 원수와 싸우지 못하게 하느냐고 말합니다. 다윗은 아기스를 자신의 주인으로 그리고 이스라엘을 주인의 원수로 표현하며 아기스에 대한 충성심을 다시 한 번 표현합니다.

 

(3) 아기스의 강요(9-11)

 

이런 다윗의 항의에 아기스는 진심으로 미안해하며 자신은 다윗을 하나님의 사자처럼 진실하다고 믿는다는 표현까지 사용합니다. 자신의 생각이 아니라 블레셋 방백들의 생각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그들의 말을 직접 인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마지막으로 단호하게 내일 새벽에 일어나 서둘러 떠나라고 명령합니다. 더 이상 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다윗은 다음 날 아기스의 명령대로 일찍 일어나 블레셋 사람들의 땅으로 갔고, 블레셋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땅인 이스르엘로 올라갔습니다. 두 집단의 대조되는 행보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다윗은 전쟁에 가지 못한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생각하여 기뻤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내색을 할 수 없는 형편이기에 서운한 척 연극을 하였고 아기스는 다윗의 속마음도 모르고 다윗을 달래기 위해 쩔쩔매고 있습니다. 이런 아기스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이 상황의 코믹성과 함께 하나님께서 상황을 다루시는 놀라운 솜씨를 볼 수 있습니다. 분명 이 상황은 다윗에게 너무나도 잘된 상황이었지만, 오히려 다윗이 불만스러워하고 아기스는 쩔쩔매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이 비록 형편 때문에 블레셋 사람 아기스의 수하에 들어가 있지만, 그곳에서 무시당하지 않고 살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이스라엘과 싸우는 진퇴양난의 어려움 속에서도 건져주신 것입니다. 이 본문에서는 아기스의 입에서 나온 ‘여호와’라는 말 이외에는 하나님의 직접적인 모습이 드러나지 않지만, 절묘한 상황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다윗과 함께하시며 돕고 계시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절묘한 한 수가 아니었다면 다윗은 어느 쪽으로든 그 난관을 극복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실 우리의 인생이 위기를 겪으면서도 지금까지 순항한 것은 알게 모르게 하나님의 묘수가 작용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의 자녀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모르는 시대입니다. 그만큼 지혜로운 삶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정말 자기 백성들을 위해 세세하게 눈동자와 같이 돌아봐 주십니다. 그 하나님만 신뢰하시면 다윗처럼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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