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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02-02)


엘리의 아들, 한나의 아들

사무엘상 2장 11-21절


 

하나님께서는 만복의 근원이시며 주관자이십니다. 하나님께 어떻게 예배를 드리느냐 따라서 축복과 저주를 가늠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예배를 통해 은혜와 축복을 베풀어 주십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예배에 성공해야 합니다.

 

  • 한 사람에게 행해진 올바른 교육은 평생을 좌우합니다. 본문에는 엘리의 두 아들과 사무엘이 대조되고 있습니다. 엘리의 아들들은 하나님의 제물을 탈취하는 등 불의를 행하지만, 사무엘은 성전에 맡겨진 후 여호와 앞에서 섬기며 자라고 있습니다. 어떻게 자녀들을 교육해야 합니까?

 

여호와 앞에서 자라는 사무엘(11)

지도자는 한 순간에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자녀들을 훌륭한 지도자가 되길 원하신다면 사무엘처럼 믿음으로 양육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하나님 나라에 대한 믿음으로 성장하도록 일찍부터 가르쳐야 합니다. 자녀 중에 엘리의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와 같은 자녀들이 나오지 않도록 다시 기도하고, 바르게 믿음으로 양육하길 바랍니다.

 

11엘가나는 라마의 자기 집으로 돌아가고 그 아이는 제사장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기니라(11)

 

한나는 사무엘을 하나님께서 주신 것으로 확신합니다. 한나의 부부는 하나님과의 약속대로 사무엘이 젖을 떼자, 사무엘을 성전에서 성장하도록 성전에 위탁한 후에 기쁜 마음으로 돌아갑니다.

엘리는 사무엘을 맡아 성소에서 믿음으로 잘 양육합니다. 그리고 한나의 가정을 향해 사무엘을 대신할 자녀를 주시기를 축복하기도 합니다. 사무엘은 여호와를 섬기고, 여호와 앞에서 자랐습니다. 부모의 관심과 기대에 부응하여 사무엘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으로 성장했습니다.

한나의 기도가 끝난 후에 엘가나가 돌아간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1장 24절에서는 엘가나에 대한 언급이 없지만, 한나가 사무엘을 실로에 엘리에게로 데려갔을 때, 엘가나도 동행합니다. 한나가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기에 그의 이름만 언급되었습니다. 돌아가는 장면에서 엘가나를 같이 언급한 것입니다.

본 절은 집으로 돌아가는 사무엘의 아버지와 엘리에게 남겨진 사을 사무엘의 대조되면서 이제 사무엘은 엘리 아들로 지내게 됨을 암시합니다. 그곳에서 사무엘은 여호와를 섬겼습니다. 사무엘이 실제로 제사장직을 수행하기에는 너무 어렸습니다. 레위인은 25세, 므라리와 고핫 자손들은 30세가 되어야 공식적으로 직무를 수행할 수 있었습니다. 제사장직도 이와 같았을 것입니다. 이기에서는 사무엘이 엘리의 아들로 여겨져 제사장이 되기 위한 겸습장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무엘은 하나님 앞에서 믿음으로 자랐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훌륭한 믿음의 사람으로 자랐습니다.

 

엘리 아들들의 악한 행실(12-17)

자녀들의 영적인 실수를 바르게 훈계해야 합니다. 영적인 교육은 철저하게 시켜야 합니다. 일반적인 실수는 성장해 가면서 할 수 있겠지만, 영적인 부분은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장난처럼 교육하면 결국은 자녀를 방칩니다. 매를 아끼는 것만이 자녀가 바르게 성장한 것은 아닙니다. 징계할 때 제대로 징계하지 않으니깐 홉니와 비느하스가 나온 것입니다. 나중에 성장해서 아버지 엘리의 말도 듣지도 않습니다(2:25). 올바른 교육만이 자녀를 훌륭한 일꾼으로 세워가는 것입니다.

 

12엘리의 아들들은 행실이 나빠 여호와를 알지 못하더라 13그 제사장들이 백성에게 행하는 관습은 이러하니 곧 어떤 사람이 제사를 드리고 그 고기를 삶을 때에 제사장의 사환이 손에 세 살 갈고리를 가지고 와서 14그것으로 냄비에나 솥에나 큰 솥에나 가마에 찔러 넣어 갈고리에 걸려 나오는 것은 제사장이 자기 것으로 가지되 실로에서 그 곳에 온 모든 이스라엘 사람에게 이같이 할 뿐 아니라 15기름을 태우기 전에도 제사장의 사환이 와서 제사 드리는 사람에게 이르기를 제사장에게 구워 드릴 고기를 내라 그가 네게 삶은 고기를 원하지 아니하고 날 것을 원하신다 하다가 16그 사람이 이르기를 반드시 먼저 기름을 태운 후에 네 마음에 원하는 대로 가지라 하면 그가 말하기를 아니라 지금 내게 내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억지로 빼앗으리라 하였으니 17이 소년들의 죄가 여호와 앞에 심히 큼은 그들이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함이었더라(12-17)

 

제사장 엘리의 아들들은 하나님을 알지도 경외하지도 않았고, 여호와의 제사를 쉽게 생각하고 멸시했습니다. 제사장으로서 백성의 아픔에 참여하여 하늘 위로를 전하지 않았고, 자기 배를 채우고 자기 취향을 만족시키고 자기 야망을 이루는 데 만 급급했습니다.

 

(1) 여호와를 알지 못한 엘리 아들들(12)

 

어린 사무엘은 하나님 앞에서 ‘여호와를 섬기고’(11) 있을 때, 엘리의 두 아들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라고 소개합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니깐 권리를 남용하여 자기가 좋은 대로 행동해 버립니다. 그 행실에 대해 성경은 나쁜 행동을 한 ‘불량자(不良者)’이라고 소개합니다.

제사장 엘리의 아들을 소개하는데, 정말 이상하게 “엘리의 아들들은 행실이 나빠 여호와를 알지 못하더라”(12)라고 소개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 엘리가 제사장으로 제사를 집례하는 모습이나 종교적인 행위를 보고 자랐을 것입니다.

그들은 행실이 ‘나쁜 사람들(베네 벨리야알)’이라고 평가합니다. 성경에서 그렇게 지적한 사람들은 우상 숭배를 선동하는 사람들(신 13:14), 기브아의 불량자들(삿 19:22), 사울의 왕권을 인전하지 않는 자들(삼상 10:27), 다윗의 요청을 거부한 나발(삼상 25:17), 이세벨의 사주를 받아 나봇을 거짓으로 고소한 자들(왕상 20:10, 혹은 여로보암을 좇으며 르호보암을 대적한 자들(대하 13:7)이 ‘쓸모없는 사람들’이라 불렸습니다.

엘리의 두 아들은 여호와를 가장 잘 알아야 할 제사장들이면서도 여호와를 알지 못하였습니다. 이들은 여호와와 함께 있으며 자라나는 사무엘과 대조됩니다(21).

 

(2) 성소에서 행하는 죄(13-16)

 

엘리의 두 아들의 불량한 행동을 살펴보면, 사람들이 제사하려고 고기를 삶고 있으면 사환들을 보냈는데, 그 사환 손에는 세 살 갈고리가 들려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환은 고기를 삶고 있는 냄비나 솥 속으로 세 살 갈고리를 찍어 넣어서 그 갈고리에 걸려 올라오는 모든 것을 제사장에게로 가져갔습니다(13-14). 또 사람들이 기름을 태우기도 전에 제사장의 사환이 와서 제사장이 생고기를 원한다고 말하며 고기를 가져갔는데, 혹 사람들이 반대하면 강제로 가져가겠다고 위협하기를 일삼았습니다(15-16). 그들은 배교자와 같은 행동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행동을 하면서도 그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을 거역하면서도 아무런 거리낌 없이 행동합니다. 다른 사람을 희생시키면서까지 자기 살을 찌우는 무정한 사람이 됩니다.

이곳에서 말한 ‘사환’은 원문에 ‘나아르’라고 나타납니다. 이들은 제사장의 아이였습니다(13,15). 한편 이러한 제사장의 악행을 13절 서두에서 ‘관습’이라고 표현합니다. ‘관습’이란 표현은 제사장들의 행위가 일시작인 것이 아니며, 법으로 생각할 만큼 당연시되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3) 여호와의 제물을 멸시(17)

 

엘리의 두 아들의 행동을 단편적으로 “이 소년들의 죄가 여호와 앞에 심히 큼은 그들이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함이었더라”(17)고 표현합니다. 그러므로 2:11-21에 세 아이가 등장하는데, 아이 사무엘(11,21)과 아이 사환(13,15) 그리고 아이 제사장(17)입니다.

다양한 아이들 가운데 아이 사무엘의 뛰어남을 강조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습니다. 특히 제사장들을 아이라고 칭한 것은 그들의 미성숙함을 암시하는 한편 또 다른 아이인 사무엘과 그들을 대조하게 만듭니다. 이들의 죄는 여호와의 제물을 멸시한 것입니다. 사람에게 죄를 짓는 것보다 여호와께 죄를 짓는 것이 더 큰 죄입니다(25). 성소에서 섬기는 사람들이 제사장들의 죄에 영향을 받아 제사장의 악행을 가로막지 않고 오히려 협력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한나의 헌신과 여호와의 축복(18-21)

많은 성도들은 성공을 위해 뜁니다. 그러다 실수하는 것은 자녀들의 신앙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면, 자녀들에게 실패를 치닫게 할 것입니다. 성도들은 세상에 대한 것보다 하나님을 아는 자가 되도록 해야합니다. 직분을 이용해서 탐욕을 채우는 자가 아니라 섬기고 경배하는 직분자가 되어야 합니다.

 

18사무엘은 어렸을 때에 세마포 에봇을 입고 여호와 앞에서 섬겼더라 19그의 어머니가 매년 드리는 제사를 드리러 그의 남편과 함께 올라갈 때마다 작은 겉옷을 지어다가 그에게 주었더니 20엘리가 엘가나와 그의 아내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 여인으로 말미암아 네게 다른 후사를 주사 이가 여호와께 간구하여 얻어 바친 아들을 대신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니 그들이 자기 집으로 돌아가매 21여호와께서 한나를 돌보시사 그로 하여금 임신하여 세 아들과 두 딸을 낳게 하셨고 아이 사무엘은 여호와 앞에서 자라니라(18-21)

 

제사장 엘리는 사무엘을 맡아 성소에서 믿음으로 잘 양육하고, 한나의 믿음을 보고서 이 가정에 사무엘을 대신할 자녀 주시기를 축복합니다.

 

(1) 여호와를 섬기는 사무엘(18)

 

이어지는 사무엘과 그 부모들에 관한 이야기는 이들이 엘리의 가정과 얼마나 큰 대조를 이루는지 잘 보여줍니다. 엘리 제사장의 아들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죄를 범하고 살았지만, 사무엘이 믿음으로 성장하고 섬기는 모습을 다음과 같습니다. “사무엘은 어렸을 때에 세마포 에봇을 입고 여호와 앞에서 섬겼더라”(18)라고 말합니다. 제사장 엘리의 말을 따라 어릴 때부터 세마포 에봇을 입고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세마포 에봇이나 베 에봇(삼하 6:14)은 성소에서 봉사하는 사람들의 기본 복장입니다.

3살(한국나이로 4살)이면 부모를 떨어지지 않으려는 시기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무엘에는 떨어져 여호와 앞에 섬기고 있습니다. 그것은 젖먹이 시절부터 사무엘을 신앙교육을 바르게 시켜왔기 때문입니다.

 

(2) 한나의 축복(19)

 

해마다 한나는 자기 남편과 함께 매년제를 드리러 실로에 올라올 때 미리 지어둔 작은 겉옷을 사무엘에게 가져다주었습니다. 대제사장의 겉옷은 에봇 밑에 입는 옷으로서 청색이며 소매 없는 통옷으로 만들어졌습니다(출 39:22). 한나가 매년 어린 사무엘을 위해 만든 작은 겉옷 역시 이와 비슷한 형태일 것입니다.

 

(3) 엘리의 축복(20-21a)

 

매년마다 제사를 지내려 실로로 온 엘가나와 한나는 사무엘의 작은 겉옷을 지어서 그에게 가져다 주었습니다. 이러한 모습을 본 엘리 제사장은 영적으로 어두운 가운데서도 사무엘의 부모에게 축복을 합니다. “엘리가 엘가나와 그의 아내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 여인으로 말미암아 네게 다른 후사를 주사 이가 여호와께 간구하여 얻어 바친 아들을 대신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니 그들이 자기 집으로 돌아가매 21여호와께서 한나를 돌보시사 그로 하여금 임신하여 세 아들과 두 딸을 낳게 하셨고 아이 사무엘은 여호와 앞에서 자라니라”(20-21)

 

(4) 자라나는 사무엘(21b)

 

사무엘은 부모의 관심사가 오직 여호와 하나님이었듯이, 사무엘 역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으로 성장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영적으로 어두운 제사장이라고 한단지라도 하나님의 축복을 선언합니다. 한나의 믿음이 대단합니다. 부족한 종이 하는 축복이지만 이것을 하나님의 축복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큰 능력으로 나타납니다.

 

하나님께서 찾으신 일꾼은 하나님의 영광을 밝히 들어내려는 사람을 찾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자신의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철저하게 순종하는 사람을 찾는 것입니다. 한나는 그러한 사람이었습니다. 비록 부족한 제사장의 축복이지만 의심하거나 무시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을 그대로 받아 드렸을 때, 선포된 축복처럼 그대로 한나의 가정에 임했던 것입니다. 이런 한나의 믿음 가운데 사무엘은 어렸을 때부터 하나님의 권위에 대한 순종의 미덕을 배웠던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으려는 신앙 생활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인정받을 만한 신앙생활을 하면 당연히 사람들에게도 인정을 받습니다.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시작하면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한나와 같이 신실한 성도들을 찾고 계십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이런 사람에게 지역사회를 맡겨 주실 것입니다.


한나는 사무엘을 아름답게 지도함으로 훌륭한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선물로 받은 자녀들을 영적으로 바르게 가르쳐야할 의무가 있습니다. 이 의무를 소월하게 되면, 자녀들이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제 2의 홉니와 비느하스가 나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도와 말씀으로 자녀들을 잘 성장시키면, 사무엘과 같이 순종하는 일군이요, 훌륭한 믿음의 사람으로 세워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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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02-01)


한나의 찬양을 받은 하나님

사무엘상 2장 1-10절


 

미국 16대 대통령 아브라함 링컨은 9세 때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하지만 그는 평생 어머니의 기도를 기억하고 살았습니다. 그는 대통령이 된 후, “어머니가 가르쳐준 신앙 때문에 대통령이 되었다”라고 고백합니다. 또한 어머니의 기도에 대해 “어머니의 기도를 나는 기억합니다. 그 기도는 항상 나를 따라다녔습니다. 내 평생 그 기도는 나에게 꼭 매달려 떨어지지 않았습니다.”라고 소개합니다. 그의 삶의 원동력은 어머니의 기도라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위대한 인물 뒤에는 반드시 기도하는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 한나는 불임의 고통에서 하나님께 기도했고, 그 응답 받아서 사무엘을 출산합니다. 아이 사무엘을 젖 떼고 난 후에, 그를 약속대로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아들을 드린 후에 슬픔이 아니라 하나님께 찬양합니다. 본문은 하나님께 찬양하는 한나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찬양 속에서 하나님께서 어떤 분인지 밝혀주고 있습니다. 그녀가 발견한 하나님을 만나보시길 바랍니다.

 

찬양받으실 여호와(1-3)

하나님께서는 세상에 어떤 것보다 비교할 대상이 없는 거룩하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든든하게 의지할 반석이십니다. 모든 것을 다 아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자신을 오판한 오만한 자의 말과 악한 행동을 다 알고 그 무게를 달아서 반드시 심판하실 것입니다. 사람들이 염려하고 불안해하는 이유는 여호와를 대신할 것을 너무 많이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1한나가 기도하여 이로되 내 마음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내 뿔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높아졌으며 내 입이 내 원수들을 향하여 크게 열렸으니 이는 내가 주의 구원을 인하여 기뻐함이니이다 2여호와와 같이 거룩하신 이가 없으시니 이는 주 밖에 다른 이가 없고 우리 하나님 같은 반석도 없으심이니이다 3심히 교만한 말을 다시 하지 말 것이며 오만한 말을 너희의 입에서 내지 말지어다 여호와는 지식의 하나님이시라 행동을 달아 보시느니라(1-3)

 

하나님께 기도하기 전에는 고통 속에서 울며 기도한 한나입니다. 어렵게 아들 사무엘을 얻었지만, 이제는 헤어져야 하는 순간이 되었습니다. 그녀는 삶속에 살아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모습이 가득답겨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감동적으로 찬양합니다.

 

(1) 찬양(1)

 

한나는 불임으로 암울했던 자신을 구원해 주신 하나님을 기뻐한다고 고백합니다. 그녀에게 이제 아쉬운 탄식이 아니라 의기양양한 기쁨의 노래가 흘러나옵니다. 어렵게 얻는 사무엘을 갓 젖을 땐 후 서원대로 하나님께 성전에 드리고, 그녀는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립니다. 내용상 기도라기보다는 찬양 노래의 성격에 가깝습니다.

 

한나는 먼저 여호와로 인해 너무도 즐겁다고 고백합니다. “한나가 기도하여 이로되 내 마음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내 뿔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높아졌으며 내 입이 내 원수들을 향하여 크게 열렸으니 이는 내가 주의 구원을 인하여 기뻐함이니이다”(1) 그 이유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자신의 뿔이 높아졌다고 찬양합니다. ‘뿔’은 짐승의 머리에서 나는 것이지만, 상징적으로 위엄과 힘을 나타냅니다. 그러므로 뿔이 높아졌다는 것은 머리를 높이 쳐들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나는 불임으로 아이를 낳지 못했습니다. 주변에 사람들이 아이를 못난 저주받은 여인이라고 수군거렸고 멸시받았습니다. 아무런 대항을 하지 못하고 항상 움츠러들어야 했고 죄인처럼 머리를 숙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특히 남편 둘째 부인인 브닌나가 분노하는 말에 아무 대답도 못했습니다. 심지어는 기도조차도 당당하게 하지 못하고 중얼거리듯이 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여호와께서는 연약한 자신의 기도를 들어 주셨습니다. 이제 태의 문을 열어주심으로 당당하게 머리를 들고 다닐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자신에게 비웃던 자들에게 크게 비웃을 수 있었습니다. 이제 한나의 인생에 자존심을 찾아주셨습니다.

 

(2) 여호와의 속성(2-3)

 

한나는 결코 개인적인 복수로 그치지 않았습니다. 여호와를 비교할 수 없는 분임을 강조하는데, “여호와 같은 분은 없다”(2)고 반복하면서, 오직 여호와만 거룩하시고 여호와만 살아계신 신이시며 반석이시라고 고백합니다. 여호와만 신이라고 고백하는 한나의 신앙은, 당시 사사시대에 속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은 가나안에 있는 모든 이방신들을 섬기는 신앙과 대조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작고 연약할지라도 하나님을 기대하는 자기 백성을 사랑하시고, 기꺼이 그들을 위해 역사를 만들어내는 분이심을 확인하였기에 더 바랄 것 없는 사람처럼 찬양합니다.

 

한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아들이 아니라 여호와를 신뢰하는 모든 사람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고통을 헤아리는 분임을 입증해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침묵’을 ‘하나님의 없음’이라고 조롱하던 자들의 입을 막아주신 것입니다. 한나는 자신처럼 미약한 여인의 고통의 소리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신 것처럼, 백성들이 하나님께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들어주실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분임을 알게 된 것입니다.

 

인생의 주관자이신 하나님(4-8)

자신을 대단한 것처럼 생각하고 교만한 사람들은 스스로 대단한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이러한 오만한 사람의 행동을 얼마나 가볍게 생각하시고 그들을 모두 다 아십니다. 강한 용사처럼 보이는 사람도 꺾어버리시는 능력이 있습니다.

 

4용사의 활은 꺾이고 넘어진 자는 힘으로 띠를 띠도다 5풍족하던 자들은 양식을 위하여 품을 팔고 주리던 자들은 다시 주리지 아니하도다 전에 임신하지 못하던 자는 일곱을 낳았고 많은 자녀를 둔 자는 쇠약하도다 6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스올에 내리게도 하시고 거기에서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7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8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빈궁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올리사 귀족들과 함께 앉게 하시며 영광의 자리를 차지하게 하시는도다 땅의 기둥들은 여호와의 것이라 여호와께서 세계를 그것들 위에 세우셨도다(3-8)

 

감사의 기쁨의 고백에 이어 한나는 사람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며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찬양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역전의 하나님이십니다. 역전의 기준을 사회적인 지위나 물질만이 아니기 때문에 정치적인 혁명과는 다릅니다. 엘리의 가문처럼 제사장이지만 하나님이 역사의 주인되심을 부인하였고 가난하고 소외된 자를 무시하고 학대하는 오만한 자를 향한 역전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유하게도 하시며, 사람을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십니다.

 

(1) 반전의 하나님(4-5)

 

한나는 운명의 반전을 가져오시는 하나님을 묘사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면 모든 것을 꿰뚫어버리던 뭉족하던 자들이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일자리를 찾고, 주리던 자들은 배불리 먹습니다. 임신하지 못하던 여자가 일곱을 낳고, 많은 아들을 두었던 여자는 쇠약해집니다. 여기서 일곱은 완전수로 사용되었습니다. 즉 임신하지 못하던 여자가 일곱 아들, 즉 자신과 가족이 충분하다고 생각할 만큼 많은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아들이 없던 한나가 사무엘 외에도 3남 2녀를 낳았습니다(2:21). 모든 일을 자신의 기쁘신 뜻대로 이루시는 하나님께서 당신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의 일생에 반전을 일으키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강한 자가 자랑하지 못하며, 약한 자라도 절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2) 주관자이신 하나님(6-7)

 

사람이 경험하는 모든 흥망성쇠가 다 하나님의 뜻에 달려 있습니다. 죽음과 삶, 가난과 부, 비천과 영화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주어질 것입니다(신 32:39). “스올(음부)에 내리게도 하시고 거기에서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여기서 부활 사상을 찾는 것은 무리입니다. 단지 생명과 사망이 하나님의 뜻에 달려 있다는 의미입니다. 고대 이스라엘은 죽음 이후의 상태와 세계에 대해 명확한 개념을 소유하지 않았습니다. 구약에서 스올은 단지 무덤을 가리키거나 죽은 자들이 있는 곳을 의미합니다.

 

(3) 구원자이신 하나님(8)

 

여호와 하나님은 창조주로서 땅의 기둥을 세워 세상을 보존하시고 운영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가난하고 빈궁한 자를 비천한 처지에서부터 구원하여 귀족이 되게 하시며, 영광의 자리에 앉게 하실 수 있습니다. 기둥을 뜻하는 ‘마추크’는 여기와 14:5(믹마스 앞의 바위산)에서만 나타납니다. 기둥은 땅덩이를 받치는 물리적 개념이면서, 세상이 올바르게 운영되도록 받쳐주는 원리와 질서를 가리킵니다.

 

세상의 주관자이신 하나님(9-10)

하나님께서는 침묵하신 세대는 하나님께서 안 계신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침묵이 하나님의 무제를 말하는 것인 양 거만한 행동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힘 있는 자들이 만든 질서에 순응하시는 분이 아니라, 하나님만 기대하는 작고 연약한 백성을 위해 역사를 만드시는 하나님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공평하게 흔들림 없이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9여호와를 대적하는 자는 산산이 깨어질 것이라 하늘에서 우레로 그들을 치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땅 끝까지 심판을 내리시고 자기 왕에게 힘을 주시며 자기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의 뿔을 높이시리로다 하니라(9-10)

 

한나의 하나님께서는 땅의 시둥들 위에 세계를 세우신 능력이 있는 분입니다. 한나는 그분이 거룩한 자들의 발을 지키시고 악인들의 발을 잠잠하게 하실 것을 믿었습니다.

 

(1) 성도와 악인(9)

 

“거룩한 자들”은 ‘하시드’의 복수형으로 문자적으로는 ‘은혜를 입은 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백성이 된 사람들이며, 따라서 마땅히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하기에 “거룩한 자들”로 부릅니다. 이들의 반대 개념은 ‘악인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거룩한 자의 발, 즉 거룩한 자의 삶과 행실을 지키시지만, 악인들을 어두운 곳에 가두고 벌하십니다. 흑암 속에서 침묵한다는 말은 죽음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사람은 자기 힘으로 이러한 하나님의 사역을 기부할 수 없습니다.

 

(2) 대적자와 기름부음 받은 자(10)

 

여기서는 한나의 기도가 개인의 차원을 넘어서 이스라엘 민족, 더 나아가 인류 역사와 관련을 맺도록 만듭니다. “여호와를 대적하는 자”에서 ‘대적하는 자’(마리브)는 하나님 사역의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비난하고 반대하는 자를 가리킵니다. 여호와의 대적자들은 마치 용사의 강한 활이 부서지는 것처럼(4) 산산이 부서질 것입니다. 브닌나가 한나를 괴롭혀서 한나의 마음속에 천둥소리가 나게 하였는데(1:6), 하나님께서 자기를 대적하는 자를 천둥소리로 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땅 끝까지 심판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땅 끝까지 미치는 심판은 종말에 대한 예언입니다. 반면에 하나님께서는 자기 왕에게는 힘을 주십니다. 당시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나, 한나는 하나님의 감동으로 왕에 관해 말합니다. 이 왕은 기름 부음을 받은 자, 곧 메시아(마시아흐)입니다. 1절에서 한나는 자신의 뿔을 이야기했으나, 이제 마지막 절에서 기름부음 받은 자의 뿔에 관해 예언합니다. 한나의 뿔을 높이신 것은 사무엘의 탄생을 가리키며, 사무엘의 탄생은 그가 기름을 부어 왕으로 세울 자, 곧 메시아의 뿔을 높이시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뜻에 따라 메시아가 승리할 것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세상의 환경을 바라보면서 살아가는 것과 하나님만 바라보시길 바랍니다. 세상의 환경을 적응해 나가려고 할 때는 정말 힘듭니다. 그러나 하나님만 바라보고 나가면 모든 것을 승리케 해주십니다. 한나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어려운 환경을 보면서 한탄한 것이 압니다. 그녀는 하나님께 기도하고 응답받고 삶을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성도들도 한나처럼 기도하고 응답받아서 축복된 삶을 사는 성도들이 되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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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01-02)


서원한 대로 약속을 지키는 한나

사무엘상 1장 19-28절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리고 갚지 못하면 ‘신용불량자(信用不良者)’가 됩니다. 본인의 신용도가 나빠집니다. 신용불량자는 다음에 대출하려고 할 때 많은 제약을 받습니다. 심지어는 대출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신용불량자보다 더 무서운 것이 그리스도인에게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약속을 저버리는 ‘신앙불량자(信仰不良者)’입니다. 보편적으로 주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 환경일 때, 신실하게 하나님을 약속을 믿는 것은 대단한 믿음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을 때,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살아간다는 것 또한 더욱 대단한 믿음입니다. 본문에서는 그러한 훌륭한 믿음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간절한 한나의 기도를 통해 불임의 고통을 돌아보셨습니다. 기도할 때, 아들을 주시면 나실인으로 드리겠다고 했습니다. 그녀를 돌아보시고 그녀에게 사무엘을 주셨습니다. 그녀는 사무엘이 성장하여 젖을 떼자 하나님께 서원한 대로 하나님께 드립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의 역사는 신실하게 반응하는 백성들을 통해 진행됩니다.

 

사무엘을 낳은 한나(19-20)

매우 풍족한 가정 일지라도 자식이 없으면 가정 분위기가 우울합니다. 옛 여인들은 결혼해서 남편과 시가족들에게 잘하면 칭찬과 사랑을 받습니다. 그러지만 모든 잘해도, 자식을 낳지 못하면 소박을 맞은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자녀가 없다는 것은 하늘로부터 저주를 받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가정에 아이의 탄생은 새로운 희망을 줍니다.

19그들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여호와 앞에 경배하고 돌아가 라마의 자기 집에 이르니라 엘가나가 그의 아내 한나와 동침하매 여호와께서 그를 생각하신지라 20한나가 임신하고 때가 이르매 아들을 낳아 사무엘이라 이름하였으니 이는 내가 여호와께 그를 구하였다 함이더라(19-20)

한나의 가정은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없는 암울한 가정이었습니다. 엘가나의 화려한 족보 앞에, 한나는 매우 초라하기만 했습니다. 그녀의 슬픔은 남편의 사랑과 위로로도 해결해주지 못했습니다. 이 문제는 사람이 해결할 문제가 아니란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녀는 하나님의 성전에서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한나를 보시고 긍휼이 여기셨던 것입니다.

한나의 “나를 생각해 달라”(11)는 기도에 대제사장 엘리를 통해서 응답하셨습니다. 한나의 간구를 들으시고 “생각하신 하나님”께서는 엘리를 통해 축복을 선포하십니다. 영적으로 어두운 대제사장 엘리이지만, 한나는 하나님의 응답으로 받아들렸습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라마’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갑니다. ‘라마’는 ‘라마다임소빔’의 줄임말로, 베냐민 땅의 라마(수 18:25)와 구별됩니다. 여호와께서는 한나를 생각하셨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한나는 남편 엘가나와 동침하였고, 하나님께서는 한나의 기도와 고통을 생각하시고 아들을 해주셨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사무엘상 1:5-6), 태를 열고 닫는 분은 여호와라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그녀는 천하를 얻을 것처럼 기뻤을 것입니다.

아이를 임신한 한나는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래서 그 이름을 ‘하나님께 구하여 얻었다.’는 뜻으로 ‘사무엘’이라고 하였습니다. 한나가 더 기뻐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버리지 않았으며, 자신과 함께 하신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입니다.

영적으로 살펴보면, 우울한 한나의 가정은 당시 암울한 이스라엘의 모습을 보여준 것입니다. 믿음으로 불신의 시대에 믿음이 잉태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한나의 가정을 이스라엘의 새로운 역사를 펼쳐갈 창조적인 모판으로 사용하셨습니다. 화려한 인간의 족보로는 그치게 할 수 없었던 절망적인 시간이 여호와께서 시작케 하신 사무엘이라는 새로운 족보로 인해 회복과 기쁨의 시간으로 변한 것입니다.

 

사무엘을 양육하는 한나(21-23)

모든 일에는 정한 때가 있습니다. 자기 생각에 아무리 급해보여도 하나님의 정하신 때가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 때가 차기까지 인내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기다림은 결코 정체(停滯)의 시간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새롭게 창조하는 시간입니다.

21그 사람 엘가나와 그 온 집이 여호와께 매년제와 그 서원제를 드리러 올라갈 때에 22오직 한나는 올라가지 아니하고 그 남편에게 이르되 아이를 젖 떼거든 내가 그를 데리고 가서 여호와 앞에 뵈게 하고 거기 영영히 있게 하리이다 23그 남편 엘가나가 그에게 이르되 그대의 소견에 선한대로 하여 그를 젖 떼기까지 기다리라 오직 여호와께서 그 말씀대로 이루시기를 원하노라 이에 그 여자가 그 아들을 양육하며 그 젖 떼기까지 기다리다가(21-23)

아이 사무엘이 출생한 후 매년마다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남편 엘가나과 가족들은 제사를 드리기 위해 실로로 향했습니다. 하지만 한나는 참석하지 않길 원했습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던 시대를 살던 한나도 뜻을 이루고 난 후, 그 시대 사람들처럼 자신의 뜻대로 행동한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그렇지 않았습니다.

한나는 남편 엘가나에게 매년 드리는 제사에 참석지 않기를 요청했습니다. 다만 자신의 서원대로 사무엘을 하나님께 적당한 시기를 기다리겠다고 동의를 구했습니다. 그것은 아이가 성장해서 젖을 떼거든 자신이 직접 아이를 데리고 가서 여호와 앞에 영원히 있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한나의 요청에 남편 엘가나는 흔쾌히 격려해줍니다. 그는 한나의 소견에 좋을 대로 행하라고 말합니다. 이는 다른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서원을 어기려는 것은 아닙니다. 사무엘이 아직 젖을 떼지 못할 만큼 어린데다가, 사무엘이 자라면 그때 데리고 가서 하나님께 드리려했기 때문입니다. 엘가나는 한나의 소견에 옳은 대로 하라는 것은, 사사기의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는 비슷한 뉘앙스처럼 보입니다. 사사기의 의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따르지 않고, 세상적인 방식대로 살아가는 불순종의 사람들의 행동을 비판하기 위해 사용되었습니다. 하지만, 한나에게는 동시대 사람들과 달리 올바른 지혜와 영성을 지닌 인물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엘가나는 한나에게 “여호와께서 그의 말씀을 이루시길 원하노라”는 기원으로 말을 맺습니다. 한나의 하나님의 약속인 서원이 하나님께 상달되길 원한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지길 원하는 간구를 통해서, 영적으로 어두운 사사시대에 숨통이 점점 트이는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한나는 사무엘을 젖떼기까지 특별한 애정과 정성으로 키웠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의 젖먹이를 끼우는 풍습은 대략 3년 정도 젖을 먹였습니다. 그 동안 사무엘을 가슴에 앉고 영적인 교육을 시켰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과의 서원한 것을 항상 준비해 왔습니다. 이것은 아이보다 하나님께 대한 서원을 지키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사무엘을 하나님께 바치는 한나(24-28)

종종 다급할 때, 서원하는 기도를 해서 응답 받습니다. 종종 자신의 처지를 합리화하며 그 약속을 파기(破棄)하는 경우를 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어떤 환경에서든지 손해가 난다 할지라도 그 하나님과의 서원은 반드시 지킵니다. 한나의 부부의 경우에도 한마음이 되어 서원을 지키기로 다짐합니다.

24젖을 뗀 후에 그를 데리고 올라갈새 수소 세 마리와 밀가루 한 에바와 포도주 한 가죽부대를 가지고 실로 여호와의 집에 나아갔는데 아이가 어리더라 25그들이 수소를 잡고 아이를 데리고 엘리에게 가서 26한나가 이르되 내 주여 당신의 사심으로 맹세하나이다 나는 여기서 내 주 당신 곁에 서서 여호와께 기도하던 여자라 27이 아이를 위하여 내가 기도하였더니 내가 구하여 기도한 바를 여호와께서 내게 허락하신지라 28그러므로 나도 그를 여호와께 드리되 그의 평생을 여호와께 드리나이다 하고 그가 거기서 여호와께 경배하니라(24-28)

사무엘은 젖을 뗄 만큼 성장하였습니다. 한나는 하나님과 남편에게 약속한 대로 시간이 지난 후에, 약속대로 자신의 서원을 지킵니다. 본문에 행동의 주어가 남편 엘가나도 나타나지 않고 한나로 나타난 것을 볼 때, 주도적이고 독립적으로 사무엘을 하나님께 드린 것을 한나가 주관한 것을 봅니다. 그녀의 남편은 서원을 이행하도록 도왔던 것입니다. 그녀에게 모정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약속이었습니다.

한나는 아주 신실하게 사무엘을 위한 서원제사를 드리기 위해 제물들을 준비합니다. 율법의 규정대로 신실하게 드립니다(민수기 15:8-10). 하나님께 드릴 예물로 “수소 세 마리와 밀가루 한 에바와 포도주 한 가죽부대”(24) 등을 준비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서원을 갚기 위한 화목제물을 드릴 때는, 화목제물에는 소나 양으로 암수 상관없이 드릴 수 있습니다. 당시 수소를 드린 것은 가장 비싸고 예물로 대제사장이나 백성 전체의 죄를 위한 속죄를 드릴 때 사용되었습니다. 그리고 곡식가루나 전병들도 함께 드리기 때문에 밀가루를 준비하였고, 포도주는 제물 위에 뿌리는 전제를 위해 준비하였습니다. 잠시 한나의 제물을 살펴보면, 이렇게 많은 제물은 하나님께 매우 정성껏 드렸다는 의미입니다. 그녀는 자신과 같이 미약한 여인에게 서원을 이루어주신 하나님께 진심 어린 감사의 표현하는 것입니다.

더욱 사무엘에 대해 “아이가 어리다”라는 표현으로 아주 어린 것을 강조합니다. 이런 표현은 한나가 얼마나 큰 헌신을 하고 있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직 네 살 정도밖에 되지 않아서 말도 제대로 못하는 사무엘이 엄마와 떨어지기에는 힘들 일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약속한 대로 하나님의 전에 영원히 바치기 위해서 데리고 간 것입니다

한나는 먼저 하나님께 수소를 잡아 서원제를 드리고, 망설이지 않고 어린 사무엘을 대제사장 엘리에게 갑니다. 이전에 자신이 성전 곁에서 기도하던 여인임을 상기시키고, 데리고 온 아이가 그때 하나님께 간구해서 얻은 아이임을 밝힙니다. 서원대로 아이를 여호와께 그것도 평생 드려 여호와를 섬기게 하겠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에 응답하여 아들을 주셨으니, 자신 또한 약속대로 사무엘을 하나님의 종으로 드리겠다고 말했습니다. 사무엘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와서 하나님께 드려진 자가 되었습니다.

그 결과 이후 어린 사무엘은 엄마 한나와 떨어져 집이 아닌 성전에서 여호와를 섬기며 자라게 되었습니다. 한나는 사무엘을 떠나보내고 겪게 될 모든 고통을 기꺼이 감내하기로 하고, 자신에게 신실하신 하나님께 자신의 신실함을 보인 것입니다. 이제 사무엘은 한 가정의 아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당신의 계획대로 이뤼 가실 미래를 위해 쓰임 받을 아들이 된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서원하는 것을 감사함으로 드리는 신앙을 볼 수 있습니다. 젖을 뗀 아이들과 헤어진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입니다. 사무엘이 하나님께 받은 하나님의 소유임을 인정합니다.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그대로 돌려 드린 것입니다. 이 신앙은 하나님께서 아들 이삭을 모리아산에 바치라고 했을 때, 주저하지 않고 드리는 아브라함의 신앙과 같음을 볼 수 있습니다(창세기 22장). 이스라엘 민족이 아브라함에게서 시작했던 것처럼,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을 가진 한나에게서 새로운 이스라엘 왕국을 열기 시작합니다.

암담한 시대에 이스라엘에 영적인 위대한 지도자가 나올 수 있었던 것은, 한나와 같이 훌륭한 믿음의 사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녀에게서 신실한 싹이 출생하고 성장하였습니다. 그의 나머지 생애는 하나님의 성소에서 성장했기 때문에 어두운 이스라엘을 깨우는 위대한 영적 지도자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어려운 중에 서원한 후에 응답을 받습니다. 그리고 배은망덕하게 서원을 잊어버리고, 자신의 생각대로 행동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한나는 하나님과의 서원을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끝까지 하나님께 받은 것을 온전히 드렸습니다. 이처럼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하나님께 드린 것을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이러한 부모의 신앙을 보고 배우고 자란 것입니다. 그 결과 자녀들 또한 훌륭한 믿음의 사람이 되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가정이 됩니다. 자녀들이 사무엘처럼 훌륭한 지도자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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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01-01)


혼란스런 이스라엘과 같은 엘가나의 가정

사무엘상 1장 1-18절


바다 모래밭에서 조개가 숨을 쉬거나 먹이를 먹으면서 모래가 따라 들어갑니다. 조개 안으로 모래는 껍질 속에서 부드러운 조갯살에 상처를 냅니다. 조개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액을 분비해 내고 이것이 굳어져서 알맹이를 만들어냅니다. 이 알맹이를 ‘진주’라고 부릅니다. 고귀한 진주는 조개의 아픔을 통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조개들 중에 분비액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조개는 썩어 죽어버리고 맙니다. 위대한 인물 중에 고통의 과정을 통과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잠시 고통 가운데 두시는 것은 진주와 같이 아름다운 삶을 만들어내기 위한 계획이십니다. 훌륭한 믿음의 사람을 만들어가는 과정입니다. 고통 속에서 아름다운 진주와 같은 믿음을 만들어 내길 바랍니다.

 

선지자 사무엘이 활동하던 시대는 이스라엘의 사회적으로 혼란한 시기입니다. 이 시대를 설명한 말씀은, 사사기 마지막에서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사사기 21:25)고 소개합니다. 더 이상 하나님을 왕으로 섬지기 않고 자신의 생각이 옳은 데로 행하던 혼란의 사사시대가 마무리할 무렵 사무엘은 선지자로 활동합니다. 사무엘상의 범위는 사무엘부터 다윗의 왕국이 왕성할 때까지 기록합니다.

 

한나에 대한 소개(1-2)

시대적인 흑암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역사를 이루어 가실 계획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어두운 사사시대 430년을 마감하고 서서히 여명이 밝아오고 있습니다. 시대가 어두울수록 큰 인물을 준비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어두운 사사시대를 마감할 새로운 인물을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1에브라임 산지 라마다임소빔에 에브라임 사람 엘가나라 하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여로함의 아들이요 엘리후의 손자요 도후의 증손이요 숩의 현손이더라 2그에게 두 아내가 있었으니 한 사람의 이름은 한나요 한 사람의 이름은 브닌나라 브닌나에게는 자식이 있고 한나에게는 자식이 없었더라(1-2)

먼저 사무엘서의 시대적 배경은 삼손 이후 영적으로 혼란스럽고 어두운 사사시대였습니다. 아직 이스라엘의 왕이 선출되기 전, 사사들이 통치하던 상황이었습니다. 본문은 이러한 사사시대를 기반으로 사무엘 이야기의 배경과 등장인물을 소개하는 부분입니다.

(1) 엘가나의 가문(1)

이러한 상황 속에서 사무엘서는 먼저 ‘엘가나’라는 한 가정을 소개하며 시작합니다. 그는 라마다임소빔Ramathaim에 살고 있는 에브라임 사람이라고 불리는데, 그가 에브라임 산지에 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라마다임소빔은 후에 사무엘이 활동하는 근거지로 벧엘에서 북서쪽으로 20km 정도 떨어진 장소입니다.

여기서 엘가나를 에브라임 사람으로 소개함으로 아들 사무엘도 에브라임 사람으로 소개합니다. 역대기 6:34- 38를 참고 해보면, 사무엘의 족보를 볼 수 있는데, 제사장 지파인 레위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가문을 4대까지 거론할 만큼 뼈대 있는 집안이었습니다. 학자들은 사무엘이 에브라임 출신이지만, 나실인으로서 성막에 소속되었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레위 지파로 입적되었다고 소개합니다. 하지만 조금 더 보수적으로 설명하는 경우에는 엘가나를 에브라임 지방에 살고 있던 레위지파 한 사람으로 소개하기도 합니다.

(2) 엘가나의 두 아내(2)

레위 사람인 엘가나에게는 두 명의 아내가 있었습니다. 구약 시대 이스라엘 가정은 대체로 일부일처제를 따르고 있었지만, 한 사람이 여러 명의 아내를 맞이하는 것은 첫째 아내가 후손을 두지 못하는 경우처럼 특별한 상황에서 허용됩니다.

그의 아내 이름은 첫째 아내는 ‘한나’이고 둘째는 ‘브닌나’였습니다. 따라서 엘가나는 첫째 한나가 아이를 낳지 못하였으므로 후손을 얻을 목적에서 브닌나를 둘째 아내로 맞아들였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브닌나에게는 자식이 있었지만, 첫째 아내 한나에게는 없었습니다. 여기서 한나와 브닌나의 이름이 교차 대구를 이루며 한나의 불임이 더욱 강조됩니다. 한나의 불임 문제가 한낱 자신으로 인해 생긴 문제라는 것을 알려주며, 한나가 사회적 가정적 지위를 인정받기 매우 힘들었음을 짐작하게 합니다.

한나의 불임이 개인의 일처럼 보이지만, 크게 보면 당시 사사시대를 불임의 시대로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사시대의 영적 혼돈과 무질서를 극적으로 들어낸 것은 엘가나 가정의 모습입니다. 엘가나의 가정에 불임, 불화 그리고 무기력은 하나님의 구원을 소망하는 이스라엘의 탄식이며 역경입니다.

 

한나와 브닌나의 갈등(3-8)

내부에서 자란 고통은 담쟁이처럼 서서히 자신의 영혼을 갉아먹습니다. 하지만 고통을 견딜 줄 아는 사람은, 구부러진 나무가 자신의 그림자가 구부러진 것을 슬퍼하지 않고 한 폭의 동양화처럼 그 고통을 순수하게 받아들입니다.

3이 사람이 매년 자기 성읍에서 나와서 실로에 올라가서 만군의 여호와께 예배하며 제사를 드렸는데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여호와의 제사장으로 거기에 있었더라 4엘가나가 제사를 드리는 날에는 제물의 분깃을 그의 아내 브닌나와 그의 모든 자녀에게 주고 5한나에게는 갑절을 주니 이는 그를 사랑함이라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니 6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므로 그의 적수인 브닌나가 그를 심히 격분하게 하여 괴롭게 하더라 7매년 한나가 여호와의 집에 올라갈 때마다 남편이 그같이 하매 브닌나가 그를 격분시키므로 그가 울고 먹지 아니하니 8그의 남편 엘가나가 그에게 이르되 한나여 어찌하여 울며 어찌하여 먹지 아니하며 어찌하여 그대의 마음이 슬프냐 내가 그대에게 열 아들보다 낫지 아니하냐 하니라(3-8)

사무엘서를 기록한 저자는 한나의 불임 원인으로 하나님을 지목합니다. 그렇지만 이것이 그 집안의 죄에 관한 결과라는 인상은 주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무엘서에서는 불임한 이스라엘의 한 여인인 한나를 통해 어두운 이스라엘의 상황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1) 엘가나 가족의 제사(3-5)

엘가나는 당시 사사시대 사람들과는 다른 사람이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지 않았지만, 그는 해마다 온 가족들과 함께 성전으로 올라가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3).

“만군의 여호와”라는 칭호가 여기서 처음 사용되었습니다. 이 칭호는 예언서(이사야, 예레미야, 학개, 스가랴, 말라기)에 자주 나타나는데, 큰 군대를 가지고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왕권을 나타냅니다. 엘가나의 가족은 실로에 올라가서 제사를 드렸습니다. 실로는 에브라임 지파에게 할당된 성읍이며 벧엘과 세겜의 중간에 위치하였는데, 예루살렘으로부터 북쪽으로 대략 30km거리에 있습니다(수 16:6; 삿 21:19).

반대로 영적인 부분에는 성전에서 일하는 대제사장은 엘리였습니다. 그리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제사장으로 섬기고 있었습니다(3). 이 두 제사장들의 소개는 실로 성소에 대한 설명이면서 동시에 곧 태어날 사무엘이 아 둘의 역할을 대신하게 될 것을 미리 암시하고 있습니다.

훌륭한 엘가나의 가문에 첫째 아내 한나를 통해 자녀가 없었습니다. 자식이 없는 것은 미래가 없고, 가정적으로는 가문에 위기를 가져온 것입니다. 한나는 항상 괴로움 속에 살았습니다. 왜 이러한 고통이 자신에게 있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더욱 남편 엘가나는 다른 아내 브닌나를 얻어 자식을 보았습니다. 그녀의 슬픔은 모든 음식을 전폐할 정도로 슬픔이 켰습니다. 어떤 것도 이 슬픔을 위로해 주지 못했습니다.

(2) 브닌나의 질투(6-7)

평상시에는 둘째 아내인 브닌나와 다른 장소에서 살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대로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매년 실로에 있는 성소로 제사를 지내려 올라갈 때 함께 가야 했기 때문에, 두 사람의 갈등이 폭발했던 것 같습니다.

이들의 갈등 원인은 4-6절에 설명하고 있습니다. 남편 엘가나는 해마다 실로에 있는 성소에 올라가서 제사를 드릴 정도로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가정의 불화는 매년 제사하려고 갈 때마다, 더 폭발했던 것입니다. 그 이유는 제사를 드리는 제물의 양 때문이었습니다. 엘가나는 매년 자식이 있는 브닌나에게는 그녀와 자녀들의 몫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엘가나는 한나를 더 사랑했지만 자식이 없었기 때문에 브닌나만큼 제물을 줄 수 없었습니다. 이것을 빌미로 항상 브닌나는 이것을 빌미로 한나를 조롱하여 격분시켰던 것입니다(7).

이곳에서 ‘격분’이라고 번역한 단어는 원래 ‘천둥’이라는 뜻입니다. 브닌나가 얼마나 심하게 조롱하였던지, 한나가 천둥 같은 화를 내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일이 한 번으로 그친 것이 아니라 매년 제사를 드리려 갈 때마다 일어나는 연례행사 같은 것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본문은 한나가 이렇게 부닌나에게 수모를 당하는 이유를 반복해서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므로”(5,6)라고 반복해서 설명합니다. 성경에서 태를 여닫으신 분은 여호와이심으로 이 문제의 원인도 여호와이시고, 해결하실 뿐도 오직 여호와 밖에 없다라는 것입니다. 즉 한나의 불임은 한나의 잘못 때문이 아니었는데도, 사람들은 불임이라는 이유로 한나를 고통스럽게 하였습니다.

(3) 남편의 위로(8)

제사를 드리려 갈 때마다, 부닌나에게 고통을 당한 한나는 식음을 전폐하였고, 남편 엘가나는 한나를 더 사랑했습니다. 더욱 위로를 해주었지만, 진정한 위로가 되지 못했습니다. 여기서 보면 한나를 사랑한 엘가나의 사랑은 매우 지극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나가 괴로운 것은 자식을 둔 둘째 아내 브닌나가 계속적으로 충동질이었습니다. 실로에 올라갈 때마다 항상 브닌나는 한나를 화나게 만들었습니다. 한나의 마음을 뒤집어 놓았습니다. 얼마나 심하게 조롱했던지 한나가 마치 천둥 치듯이 매우 격분했던 것입니다.

엘가나가 “어찌하여”라고 말한 것은(7), 그가 이유를 몰라서 묻는 질문이 아니라 충분한 공감을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지극히 사랑해주는 남편이라도 한나의 고통을 해결해 줄 수는 없었습니다.

엘리나의 개인적인 가정의 암담한 현실은, 내적으로는 이스라엘의 암담한 현실을 반영하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에게는 다음 세대를 책임질만한 하나님의 지도자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홉니와 비느하스 같은 못된 자들뿐이었습니다. 어두운 이스라엘 상황을 사람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슬픔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영적 위기를 극복할 대안을 불임인 한 여인 한나를 통해 찾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간구하는 한나(9-18)

‘키에르 케고르’는 기도에 대해 “하나님을 변화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기도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생각대로 응답해 주시길 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위한 과정입니다. 일반적인 사람에게 기도란 단조롭고 무의미한 사람들의 집합에 지나지 않지만, 괴로움을 경험한 불행한 사람들에게는 하나님과 이야기 할 수 있는 숭고한 언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됩니다. 오직 우리의 시신을 생명의 하나님께 고정하는 것입니다.

9그들이 실로에서 먹고 마신 후에 한나가 일어나니 그 때에 제사장 엘리는 여호와의 전 문설주 곁 의자에 앉아 있었더라 10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11서원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나를 기억하사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고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12그가 여호와 앞에 오래 기도하는 동안에 엘리가 그의 입을 주목한즉 13한나가 속으로 말하매 입술만 움직이고 음성은 들리지 아니하므로 엘리는 그가 취한 줄로 생각한지라 14엘리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언제까지 취하여 있겠느냐 포도주를 끊으라 하니 15한나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 주여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나는 마음이 슬픈 여자라 포도주나 독주를 마신 것이 아니요 여호와 앞에 내 심정을 통한 것뿐이오니 16당신의 여종을 악한 여자로 여기지 마옵소서 내가 지금까지 말한 것은 나의 원통함과 격분됨이 많기 때문이니이다 하는지라 17엘리가 대답하여 이르되 평안히 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네가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 18이르되 당신의 여종이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하고 가서 먹고 얼굴에 다시는 근심 빛이 없더라(9-18)

괴로움을 당하던 한나는 오직 남편에게 위로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한나는 이제 환경에게 매달리지 않고,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신 분은 하나님이심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엎드린 방법밖에 없음을 알고 기도하기로 결심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한나를 기도의 사람으로 만드셨던 것입니다. 도움이나 방법이 없어질 때 하나님은 역사하십니다.

(1) 한나의 서원 기도(9-11)

매년 이렇게 남편의 위로를 받던 한나는 하나님께 기도하기로 결심합니다. 그리고 일어나서 음식을 먹고 마시고 정신을 차리고, 기도하기로 결심합니다(9). 이 문제를 해결해 주실 분은 오직 태를 여닫는 권능하신 여호와 한 분뿐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우리의 능력으로 안 되는 문제는 아무리 속을 끓여도 결코 해결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 앞에 엎드린 것 외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한나는 하나님께 기도하기 위해 성막으로 갔습니다. 기도하려 간 시간에 마침 그곳에는 대제사장 엘리가 성전 문설주 곁에서 의자에 앉아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결심하고 앞에 섰지만, 여전히 마음이 괴로웠습니다(10). 그래서 그녀는 하나님께 통곡하면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기도의 내용은 서원에 대한 부분으로 한나는 먼저 하나님께 간곡하게 부탁합니다.

한나는 서원에 대한 부분으로 한나는 먼저 하나님께 간곡하게 부탁합니다. 그녀는 “고통을 돌아보시고 기억하시고 잊지 않으셨다면”(11)이라고 삼중적인 표현으로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자비하심만 온전히 구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과거에 자기 조상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통 가운데서 돌아보신 후, 출애굽해 주셨던 하나님을 기억하고 간구합니다. 고통으로부터 해결 받을 수 있는 길은 문제해결의 근원자이신 하나님께 기도로 나가는 것뿐이었습니다. 고통의 때가 기도의 때인 줄 알았습니다.

한나는 하나님께서 자기를 기억하시고 아들을 주신다면, 아들을 성별하여 바치겠다고 서원했습니다(11). 그의 평생을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않고 평생 동안 하나님의 일꾼인 ‘나실인’으로 드리겠다는 약속이었습니다. 나실인에 대해서는 민수기 6장 1-21절에 나옵니다. 일정 기간 하나님께 구별하여 드리기를 서원하면 그 기간 동안 포도주와 독주를 금하고 부정한 것을 특히 머리에 삭도를 대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녀는 당대에 유명했던 삼손처럼 아들을 주신다면 평생 나실인으로 드리겠다고 서원한 것입니다.

삼손의 경우는 하나님께서 지명하셨지만, 사무엘은 자발적인 서원으로 나실인이 되었습니다. 한나는 자신에게 아들을 주시면 그를 하나님께 바쳐 온전히 하나님만을 섬기는 자로 살게 하겠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이 서원을 보면 한나가 아이를 갖는 것에 대해 얼마나 간절한 심정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녀는 다시 하나님께 바칠지언정 정말로 간절하게 자신의 속으로 아기를 낳고 싶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한나가 아이에 대한 간구가 얼마나 간절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자식을 향한 갈망을 대체할 수 있는 것도 없었습니다. 다시 하나님께 바칠지언정 정말 간절하게 자신의 속으로 아기를 낳고 싶었던 것입니다.

(2) 엘리와의 대화(12-16)

한나는 괴로운 마음으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소리도 내지 않고 자기의 속으로 하나님께만 간절히 털어놓았습니다. 소리 내지 않고 입술만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한나가 간절히 기도하고 있는 모습을 성전 문 앞에 앉았던 대제사장 엘리가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엘리의 눈에는 한나의 기도하는 모습이 술 취하여 중얼거리는 것으로 보였습니다(13). 대제사장 엘리는 한나가 중얼거리면서 기도하는 모습을 술 취한 것으로 보았던 것은 나이 들어 시력이 약해서이기도 하지만, 영적으로 민감하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엘리의 영적인 상태는 사사시대의 암흑기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들어냅니다. 그의 영적으로 어두운 모습은 뒤에서 여러번 관찰됩니다. 그는 한나에게 묻지도 않은 채 성급하게 판단하고 한나에게 술을 끊으라고 질책하였습니다(14).

한나는 이러한 엘리의 책망을 듣고 자신의 상황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합니다. 자신은 마음에 심한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으로 현재 하나님 앞에 자신의 심정을 모두 쏟아놓던 중이라고 상황을 설명합니다(15). 사실 너무도 고통스러운 사람은 이성을 잃고 부르짖거나 소리치거나 아니면 중얼거릴 수 있습니다.

(3) 엘리의 축복(17-18)

한나의 말을 듣고서야, 엘리는 한나에게 “평안히 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네가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17)라는 축복합니다. 복을 빌어주면서 하나님께서 그의 간구를 들어주시길 기원합니다. 영적으로 우둔한 엘리 제사장이었지만, 그를 통해서 하나님의 약속을 들었습니다. 영적인 사람은 기적을 체험합니다.

한나는 엘리에게 은혜를 간구합니다. 엘리의 기원이 이루어지길 원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녀는 “당신의 여종이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하고 가서 먹고 얼굴에 다시는 근심 빛이 없더라”(18)고 고백합니다. 엘리의 말대로 하나님께 상달되었다는 사실을 확신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녀는 돌아가서 먹고 다시는 이 일에 대해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해야 할 부분은 최선을 다하고, 온전히 하나님의 손에 넘겨드린 것입니다.

한나는 오랜 불임과 브닌나의 멸시 그리고 하나님의 침묵이 자신을 영적 절벽으로 몰았지만, 하나님으로부터 도망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더 신뢰하고 솔직한 자기감정을 하나님께서 표현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응답을 받았던 것입니다. 기도는 인간이 하지만, 이루시는 것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녀는 자신이 할 부분까지 최선을 다 하였고, 이제 아이가 생기는 여부는 하나님 손에 넘겨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괴로움을 쏟아내고 원통한 마음을 아뢸 수 있는 분이십니다. 한나는 음식을 먹지 못할 정도로 괴로웠습니다.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더 이상 없었습니다. 그런데 태를 막으신 분이 생명을 주관하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인정한 한나는, 그 해결 방법은 역시 하나님밖에 없다고 생각하여 기도하였던 것입니다. 문제의 해결자이신 하나님께 한나처럼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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