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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01-02)


서원한 대로 약속을 지키는 한나

사무엘상 1장 19-28절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리고 갚지 못하면 ‘신용불량자(信用不良者)’가 됩니다. 본인의 신용도가 나빠집니다. 신용불량자는 다음에 대출하려고 할 때 많은 제약을 받습니다. 심지어는 대출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신용불량자보다 더 무서운 것이 그리스도인에게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약속을 저버리는 ‘신앙불량자(信仰不良者)’입니다. 보편적으로 주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 환경일 때, 신실하게 하나님을 약속을 믿는 것은 대단한 믿음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을 때,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살아간다는 것 또한 더욱 대단한 믿음입니다. 본문에서는 그러한 훌륭한 믿음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간절한 한나의 기도를 통해 불임의 고통을 돌아보셨습니다. 기도할 때, 아들을 주시면 나실인으로 드리겠다고 했습니다. 그녀를 돌아보시고 그녀에게 사무엘을 주셨습니다. 그녀는 사무엘이 성장하여 젖을 떼자 하나님께 서원한 대로 하나님께 드립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의 역사는 신실하게 반응하는 백성들을 통해 진행됩니다.

 

사무엘을 낳은 한나(19-20)

매우 풍족한 가정 일지라도 자식이 없으면 가정 분위기가 우울합니다. 옛 여인들은 결혼해서 남편과 시가족들에게 잘하면 칭찬과 사랑을 받습니다. 그러지만 모든 잘해도, 자식을 낳지 못하면 소박을 맞은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자녀가 없다는 것은 하늘로부터 저주를 받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가정에 아이의 탄생은 새로운 희망을 줍니다.

19그들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여호와 앞에 경배하고 돌아가 라마의 자기 집에 이르니라 엘가나가 그의 아내 한나와 동침하매 여호와께서 그를 생각하신지라 20한나가 임신하고 때가 이르매 아들을 낳아 사무엘이라 이름하였으니 이는 내가 여호와께 그를 구하였다 함이더라(19-20)

한나의 가정은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없는 암울한 가정이었습니다. 엘가나의 화려한 족보 앞에, 한나는 매우 초라하기만 했습니다. 그녀의 슬픔은 남편의 사랑과 위로로도 해결해주지 못했습니다. 이 문제는 사람이 해결할 문제가 아니란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녀는 하나님의 성전에서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한나를 보시고 긍휼이 여기셨던 것입니다.

한나의 “나를 생각해 달라”(11)는 기도에 대제사장 엘리를 통해서 응답하셨습니다. 한나의 간구를 들으시고 “생각하신 하나님”께서는 엘리를 통해 축복을 선포하십니다. 영적으로 어두운 대제사장 엘리이지만, 한나는 하나님의 응답으로 받아들렸습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라마’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갑니다. ‘라마’는 ‘라마다임소빔’의 줄임말로, 베냐민 땅의 라마(수 18:25)와 구별됩니다. 여호와께서는 한나를 생각하셨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한나는 남편 엘가나와 동침하였고, 하나님께서는 한나의 기도와 고통을 생각하시고 아들을 해주셨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사무엘상 1:5-6), 태를 열고 닫는 분은 여호와라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그녀는 천하를 얻을 것처럼 기뻤을 것입니다.

아이를 임신한 한나는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래서 그 이름을 ‘하나님께 구하여 얻었다.’는 뜻으로 ‘사무엘’이라고 하였습니다. 한나가 더 기뻐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버리지 않았으며, 자신과 함께 하신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입니다.

영적으로 살펴보면, 우울한 한나의 가정은 당시 암울한 이스라엘의 모습을 보여준 것입니다. 믿음으로 불신의 시대에 믿음이 잉태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한나의 가정을 이스라엘의 새로운 역사를 펼쳐갈 창조적인 모판으로 사용하셨습니다. 화려한 인간의 족보로는 그치게 할 수 없었던 절망적인 시간이 여호와께서 시작케 하신 사무엘이라는 새로운 족보로 인해 회복과 기쁨의 시간으로 변한 것입니다.

 

사무엘을 양육하는 한나(21-23)

모든 일에는 정한 때가 있습니다. 자기 생각에 아무리 급해보여도 하나님의 정하신 때가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 때가 차기까지 인내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기다림은 결코 정체(停滯)의 시간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새롭게 창조하는 시간입니다.

21그 사람 엘가나와 그 온 집이 여호와께 매년제와 그 서원제를 드리러 올라갈 때에 22오직 한나는 올라가지 아니하고 그 남편에게 이르되 아이를 젖 떼거든 내가 그를 데리고 가서 여호와 앞에 뵈게 하고 거기 영영히 있게 하리이다 23그 남편 엘가나가 그에게 이르되 그대의 소견에 선한대로 하여 그를 젖 떼기까지 기다리라 오직 여호와께서 그 말씀대로 이루시기를 원하노라 이에 그 여자가 그 아들을 양육하며 그 젖 떼기까지 기다리다가(21-23)

아이 사무엘이 출생한 후 매년마다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남편 엘가나과 가족들은 제사를 드리기 위해 실로로 향했습니다. 하지만 한나는 참석하지 않길 원했습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던 시대를 살던 한나도 뜻을 이루고 난 후, 그 시대 사람들처럼 자신의 뜻대로 행동한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그렇지 않았습니다.

한나는 남편 엘가나에게 매년 드리는 제사에 참석지 않기를 요청했습니다. 다만 자신의 서원대로 사무엘을 하나님께 적당한 시기를 기다리겠다고 동의를 구했습니다. 그것은 아이가 성장해서 젖을 떼거든 자신이 직접 아이를 데리고 가서 여호와 앞에 영원히 있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한나의 요청에 남편 엘가나는 흔쾌히 격려해줍니다. 그는 한나의 소견에 좋을 대로 행하라고 말합니다. 이는 다른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서원을 어기려는 것은 아닙니다. 사무엘이 아직 젖을 떼지 못할 만큼 어린데다가, 사무엘이 자라면 그때 데리고 가서 하나님께 드리려했기 때문입니다. 엘가나는 한나의 소견에 옳은 대로 하라는 것은, 사사기의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는 비슷한 뉘앙스처럼 보입니다. 사사기의 의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따르지 않고, 세상적인 방식대로 살아가는 불순종의 사람들의 행동을 비판하기 위해 사용되었습니다. 하지만, 한나에게는 동시대 사람들과 달리 올바른 지혜와 영성을 지닌 인물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엘가나는 한나에게 “여호와께서 그의 말씀을 이루시길 원하노라”는 기원으로 말을 맺습니다. 한나의 하나님의 약속인 서원이 하나님께 상달되길 원한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지길 원하는 간구를 통해서, 영적으로 어두운 사사시대에 숨통이 점점 트이는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한나는 사무엘을 젖떼기까지 특별한 애정과 정성으로 키웠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의 젖먹이를 끼우는 풍습은 대략 3년 정도 젖을 먹였습니다. 그 동안 사무엘을 가슴에 앉고 영적인 교육을 시켰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과의 서원한 것을 항상 준비해 왔습니다. 이것은 아이보다 하나님께 대한 서원을 지키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사무엘을 하나님께 바치는 한나(24-28)

종종 다급할 때, 서원하는 기도를 해서 응답 받습니다. 종종 자신의 처지를 합리화하며 그 약속을 파기(破棄)하는 경우를 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어떤 환경에서든지 손해가 난다 할지라도 그 하나님과의 서원은 반드시 지킵니다. 한나의 부부의 경우에도 한마음이 되어 서원을 지키기로 다짐합니다.

24젖을 뗀 후에 그를 데리고 올라갈새 수소 세 마리와 밀가루 한 에바와 포도주 한 가죽부대를 가지고 실로 여호와의 집에 나아갔는데 아이가 어리더라 25그들이 수소를 잡고 아이를 데리고 엘리에게 가서 26한나가 이르되 내 주여 당신의 사심으로 맹세하나이다 나는 여기서 내 주 당신 곁에 서서 여호와께 기도하던 여자라 27이 아이를 위하여 내가 기도하였더니 내가 구하여 기도한 바를 여호와께서 내게 허락하신지라 28그러므로 나도 그를 여호와께 드리되 그의 평생을 여호와께 드리나이다 하고 그가 거기서 여호와께 경배하니라(24-28)

사무엘은 젖을 뗄 만큼 성장하였습니다. 한나는 하나님과 남편에게 약속한 대로 시간이 지난 후에, 약속대로 자신의 서원을 지킵니다. 본문에 행동의 주어가 남편 엘가나도 나타나지 않고 한나로 나타난 것을 볼 때, 주도적이고 독립적으로 사무엘을 하나님께 드린 것을 한나가 주관한 것을 봅니다. 그녀의 남편은 서원을 이행하도록 도왔던 것입니다. 그녀에게 모정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약속이었습니다.

한나는 아주 신실하게 사무엘을 위한 서원제사를 드리기 위해 제물들을 준비합니다. 율법의 규정대로 신실하게 드립니다(민수기 15:8-10). 하나님께 드릴 예물로 “수소 세 마리와 밀가루 한 에바와 포도주 한 가죽부대”(24) 등을 준비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서원을 갚기 위한 화목제물을 드릴 때는, 화목제물에는 소나 양으로 암수 상관없이 드릴 수 있습니다. 당시 수소를 드린 것은 가장 비싸고 예물로 대제사장이나 백성 전체의 죄를 위한 속죄를 드릴 때 사용되었습니다. 그리고 곡식가루나 전병들도 함께 드리기 때문에 밀가루를 준비하였고, 포도주는 제물 위에 뿌리는 전제를 위해 준비하였습니다. 잠시 한나의 제물을 살펴보면, 이렇게 많은 제물은 하나님께 매우 정성껏 드렸다는 의미입니다. 그녀는 자신과 같이 미약한 여인에게 서원을 이루어주신 하나님께 진심 어린 감사의 표현하는 것입니다.

더욱 사무엘에 대해 “아이가 어리다”라는 표현으로 아주 어린 것을 강조합니다. 이런 표현은 한나가 얼마나 큰 헌신을 하고 있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직 네 살 정도밖에 되지 않아서 말도 제대로 못하는 사무엘이 엄마와 떨어지기에는 힘들 일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약속한 대로 하나님의 전에 영원히 바치기 위해서 데리고 간 것입니다

한나는 먼저 하나님께 수소를 잡아 서원제를 드리고, 망설이지 않고 어린 사무엘을 대제사장 엘리에게 갑니다. 이전에 자신이 성전 곁에서 기도하던 여인임을 상기시키고, 데리고 온 아이가 그때 하나님께 간구해서 얻은 아이임을 밝힙니다. 서원대로 아이를 여호와께 그것도 평생 드려 여호와를 섬기게 하겠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에 응답하여 아들을 주셨으니, 자신 또한 약속대로 사무엘을 하나님의 종으로 드리겠다고 말했습니다. 사무엘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와서 하나님께 드려진 자가 되었습니다.

그 결과 이후 어린 사무엘은 엄마 한나와 떨어져 집이 아닌 성전에서 여호와를 섬기며 자라게 되었습니다. 한나는 사무엘을 떠나보내고 겪게 될 모든 고통을 기꺼이 감내하기로 하고, 자신에게 신실하신 하나님께 자신의 신실함을 보인 것입니다. 이제 사무엘은 한 가정의 아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당신의 계획대로 이뤼 가실 미래를 위해 쓰임 받을 아들이 된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서원하는 것을 감사함으로 드리는 신앙을 볼 수 있습니다. 젖을 뗀 아이들과 헤어진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입니다. 사무엘이 하나님께 받은 하나님의 소유임을 인정합니다.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그대로 돌려 드린 것입니다. 이 신앙은 하나님께서 아들 이삭을 모리아산에 바치라고 했을 때, 주저하지 않고 드리는 아브라함의 신앙과 같음을 볼 수 있습니다(창세기 22장). 이스라엘 민족이 아브라함에게서 시작했던 것처럼,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을 가진 한나에게서 새로운 이스라엘 왕국을 열기 시작합니다.

암담한 시대에 이스라엘에 영적인 위대한 지도자가 나올 수 있었던 것은, 한나와 같이 훌륭한 믿음의 사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녀에게서 신실한 싹이 출생하고 성장하였습니다. 그의 나머지 생애는 하나님의 성소에서 성장했기 때문에 어두운 이스라엘을 깨우는 위대한 영적 지도자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어려운 중에 서원한 후에 응답을 받습니다. 그리고 배은망덕하게 서원을 잊어버리고, 자신의 생각대로 행동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한나는 하나님과의 서원을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끝까지 하나님께 받은 것을 온전히 드렸습니다. 이처럼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하나님께 드린 것을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이러한 부모의 신앙을 보고 배우고 자란 것입니다. 그 결과 자녀들 또한 훌륭한 믿음의 사람이 되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가정이 됩니다. 자녀들이 사무엘처럼 훌륭한 지도자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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