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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14-02)

 


어리석은 맹세로 백성을 혼란시킨 사울

사무엘상 14장 24-35절


 

우리의 전통이나 규례는 참 소중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것이 하나님 말씀보다 더 우선이 된다면, 아무리 아름다운 전통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을 거스르게 되는 것이 됩니다. 현대 사회는 항상 자기중심적으로 자기의 경험과 철학이 우선 되는 삶입니다. 이런 시대에 사는 우리는 하나님 말씀에 우선하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주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든 그것이 하나님 말씀과 어떻게 연관이 되어 있을까를 항상 연구하고 비교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모든 판단이 우리에게서 나오지 않고, 하나님 말씀이 기준이 되어서 모든 것들을 판단할 때, 우리의 삶은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그런 삶이 될 것입니다.

 

  • 사울이 원수에게 보복하는 때까지 무엇이든 먹는 사람은 저주받을 것이라고 백성에게 맹세시킵니다. 이 일은 백성들을 위태롭게 할 뿐 아니라 아들 요나단마저 위태롭게 합니다. 요나단은 이 사실을 몰랐기에 벌집의 꿀을 먹습니다. 몹시 허기진 백성이 탈취한 짐승을 잡아 피째 먹어 하나님께 죄를 짓습니다. 사울이 큰 돌 하나를 굴려다가 거기서 짐승을 잡도록 명합니다.

 

금식을 맹세하는 사울(24-26)

하나님을 우리의 뜻을 이루어 주시는 분으로 여겨 그분의 뜻을 바꾸려 해서는 안 됩니다. 그저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는 개인의 욕심 때문에 하나님이나 사람을 도구화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에 연합하고 동역해야 합니다.

 

24가 날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피곤하였으니 이는 사울이 백성에게 맹세시켜 경계하여 이르기를 저녁 곧 내가 내 원수에게 보복하는 때까지 아무 음식물이든지 먹는 사람은 저주를 받을지어다 하였음이라 그러므로 모든 백성이 음식물을 맛보지 못하고 25그들이 다 수풀에 들어간즉 땅에 꿀이 있더라 26백성이 수풀로 들어갈 때에 꿀이 흐르는 것을 보고도 그들이 맹세를 두려워하여 손을 그 입에 대는 자가 없었으나(24-26)

 

전쟁이라고 말할 수 없이 일방적인 싸움 같았던 블레셋과 이스라엘 백성의 전쟁은 믿을 수 없는 하나님의 역사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이 승기를 잡습니다.

요나단의 믿음과 용기 헌신적인 행동으로 블레셋은 자중 질환이 일어나고 블레셋 편으로 가담했던 히브리 사람들도 돌아서서 이스라엘 편으로 가담하고, 도망갔던 사람들도 전쟁에 참여함으로 믿을 수 없는 승리를 거둡니다.

패배가 확실했던 전쟁을 승리하고 있었지만, 군사들은 피곤하였습니다(24). 전투에 후유증이기도 했지만, 사울의 무모한 결정 때문이었습니다. 전쟁할 때는 더 먹어야 하고, 더 힘을 내야 되는데, 그는 백성들에게 금식을 명령했습니다. ‘이 전쟁이 끝날 때까지 아무도 먹지 말라. 먹으면 저주를 받을 것이다’라고 그는 무모한 맹세와 저주를 선언하고 백성들에게 맹세하게 합니다.

여기서 맹세는 저주를 포함한 맹세로, 만일 금식을 하지 않으면 저주를 받을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그가 강압적으로 백성들에게 금식을 강요하였음을 보여줍니다.

금식은 구약 성경에서 회개와 간구 그리고 죽은 이를 위한 애도할 때 나타납니다. 다윗은 아들을 죽이지 말아 달라는 간절한 간구를 위해 금식했습니다. 그리고 사사기 20장에서 백성들은 베냐민 지파와의 전쟁에서 패하고 와서 하나님께 회개와 간구하는 금식을 하였습니다. 미스바에서는 회개를 위한 금식을 하였으며, 에스더는 왕의 호의를 얻기 위해 광고하며 금식합니다.

 

사울은 저녁때까지 음식을 먹는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선포했습니다. 금식을 선포한 이유는 자신의 원수들에게 복수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여기서 원수는 블레셋 군대이기에 꼭 사울 개인의 복수를 위한 것은 아닌데, 사울은 ‘나의 원수를 내가 보복하겠다’고 하여, 사사로운 복수에 전쟁을 이용하는 사람이 되고 있습니다.

사울이 금식을 선포한 이유는 여호와의 도우심을 더 많이 얻기 위해서였습니다. 요나단이 여호와의 도우심을 입고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을 본 사울은 일단 전쟁이 여호와의 손에 달려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됩니다. 그래서 사울은 금식하면 여호와께서 더 많이 도와주실 것이라 생각하여 백성들에게 금식을 강요한 것입니다.

하지만 사울이 여기서 몰랐던 것이 있습니다. 여호와의 전쟁은 여호와께서 자신의 백성을 구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참여하시고 도와주시는 것일 뿐, 인간의 희생이나 헌신을 보시고 그 대가로 도와주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사기나 여호수아에 나온 수많은 여호와 전쟁 이야기는 인간의 헌신과 관계없이 자기 백성의 부르짖음에 응답하시고 구원해 주신 전쟁들입니다.

그런데 사울은 블레셋과의 전쟁을 여호와의 전쟁으로 보지 못한 채 자신의 전쟁으로 생각하였고 여호와는 단지 도와주시는 분으로 생각하였습니다. 따라서 자신과 백성의 헌신과 희생에 따라 여호와의 도움 정도가 달라진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사사기에서 입다도 판단을 잘못하여 전쟁에서 이기게 해주시면 제일 먼저 나오는 사람을 번제로 드리겠다고 맹세하였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은 구원을 받았지만, 입다 개인은 딸을 번제로 바치는 비극을 겪게 됩니다. 그는 여호와의 전쟁을 자신의 입지를 굳히기 위한 수단으로 삼았습니다. 맹세를 통해 여호와를 조종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사울과 마찬가지로 착각하기 쉬운 것은 내가 일하고 하나님은 나를 도우시는 분 정도로 여기고, 여러 수단을 사용해 그분을 나의 뜻대로 조종하려는 태도입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이 일하시고 나는 하나님의 일을 돕는 자로서 하나님의 생각과 뜻에 맞추어 나를 사용하실 수 있게 헌신해야 합니다. 요나단이 하나님의 일을 위해 자신을 헌신한 것처럼 말입니다.

 

사울의 이런 어리석은 맹세로 인해 하루 종일 전투한 백성들은 음식을 먹지 못하였습니다. 심지어 숲 속에서 발견한 꿀도 먹을 수 없었습니다. 숲 속에 꿀이 있다는 사실과 그것도 매우 손쉽게 얻을 수 있도록 땅 위를 흐르는 골이 있다는 것을 반복적으로 언급함으로써 사울의 맹세가 얼마나 어리석은지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사울의 어리석음은 29-30절에서 요나단의 입을 통해서 확인됩니다.

 

요나단의 금식령 거부(27-30)

누구나 자기 자신에게만 집중하면 경솔하게 행동하기 마련입니다. 문제는 경솔함 뒤에는 허영, 자만, 욕심이 따른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이 개인의 문제에서 그치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타인과 공동체에 영향을 미치게 되면 위기가 찾아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교만은 멸망의 지름길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27요나단은 그의 아버지가 백성에게 맹세하여 명령할 때에 듣지 못하였으므로 손에 가진 지팡이 끝을 내밀어 벌집의 꿀을 찍고 그의 손을 돌려 입에 대매 눈이 밝아졌더라 28그 때에 백성 중 한 사람이 말하여 이르되 당신의 부친이 백성에게 맹세하여 엄히 말씀하시기를 오늘 음식물을 먹는 사람은 저주를 받을지어다 하셨나이다 그러므로 백성이 피곤하였나이다 하니 29요나단이 이르되 내 아버지께서 이 땅을 곤란하게 하셨도다 보라 내가 이 꿀 조금을 맛보고도 내 눈이 이렇게 밝아졌거든 30하물며 백성이 오늘 그 대적에게서 탈취하여 얻은 것을 임의로 먹었더라면 블레셋 사람을 살륙함이 더욱 많지 아니하였겠느냐(27-30)

 

27절은 ‘그런데 요나단은’으로 시작하는데, 이것은 요나단이 백성들과 대조적으로 행동한 것을 강조하기 위한 문학적 장치입니다.

모두 금식하며 꿀을 바라보고만 있는 상황에서 요나단은 아버지가 백성들에게 금식하도록 맹세를 시킨 사실을 모르고서 꿈을 보자 지팡이로 찍어서 손으로 옮겨 입에 대었습니다. 여기서 ‘지팡이로 찍어서 먹었다’고 간단하게 표현하지 않고 ‘손을 입에 대었다’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26절에서 백성들이 손을 입에 대지 못하였다는 것과 분명히 대조하기 위해서입니다. 그 결과 요나단의 눈이 밝아졌습니다. 여기서 눈이 밝아졌다는 것은 새로운 기운이 생겼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이런 요나단의 모습을 보고 있던 백성 중 한 사람이 ‘당신의 부친이 백성에게 맹세하여 엄히 말씀하시기를 오늘 음식물을 먹는 사람은 저주를 받을지어다 하셨나이다’(28)라고 요나단에게 전합니다. 사울이 금식하도록 맹세시키고 저주까지 한 사실을 알려주면서 자신들은 그 맹세시키느라고 기운이 없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기운이 없다는 것은 ‘눈이 밝아졌다’라는 표현과 반대입니다. 요나단은 꿀을 먹고 기운을 얻었고 백성들은 먹지 못하여 기존이 없었던 것입니다.

이 말을 듣고 요나단은 자신이 저주받을 것에 대해 염려는 하지 않고, 오히려 아버지의 결정이 이 땅을 곤란하게 만들었다고 하며 사울을 비판합니다. 여기서 ‘땅을 곤란하게 하다’라는 표현은 ‘재난을 가져오다’ 혹은 ‘혼란에 빠뜨리다’라는 의미입니다. 이 표현이 사용된 가장 잘 알려진 맥락은 열왕기상 18:17-18에서 엘리야와 아합이 가뭄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가를 논쟁할 때입니다. 이는 사울이 백성들을 어려움에 빠지게 했다는 뜻입니다. 만일 백성들이 블레셋에게서 빼앗은 노획물을 배불리 먹고 기운을 얻어 싸웠으면 더 많은 블레셋 사람들을 죽일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요나단은 금식과 같은 종교 행위가 아닌 전쟁 자체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블레셋과의 전쟁은 여호와의 전쟁이기에 전력을 다하여 싸우는 것이 여호와의 전쟁에 임하는 최선의 모습이며, 그것이 여호와를 경외하는 태도입니다. 이미 여호와가 함께 계시기 때문에 금식과 같은 종교 행위는 필요가 없으며 주어진 조건을 최대한 이용하여 전쟁에서 더 큰 전과를 올리는 승리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것이 가장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이런 명령이 떨어지지 않고 이스라엘 백성이 지쳤을 때, 하나님께서 예비한 물건들로 기력을 보강했더라면 더 놀라운 전과를 이룰 수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본질을 놓칠 사울과 같은 종교인으로 변질되기 쉽습니다. 어리석은 결정은 사실은 눈에 보이기에는 경건에 보이고 신앙적으로 보일지라도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자신 안에 불안함을 떨치기 위한 하나님과 상관없는 종교적인 열심은 자기를 해칠 뿐만 아니라 공동체에도 심각한 피해를 줄 수 있습니다. 특별히 영적 지도자의 잘못된 종교적인 열심은 공동체 전체를 오히려 곤경으로 이끌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군사들이 저지른 죄(31-35)

공동체에서 지도자가 자기중심적인 경솔한 태도로 행동하면 타인에게 쉽게 전염됩니다. 갈급하고 긴급할수록 경솔함보다 진중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분별해야 합니다. 자신의 영향력 아래 있는 사람들을 통제의 대상으로 바라보지 말고, 그들이 하나님 앞에 바르게 설 수 있도록 섬기며 도와야 합니다.

 

31그 날에 백성이 믹마스에서부터 아얄론에 이르기까지 블레셋 사람들을 쳤으므로 그들이 심히 피곤한지라 32백성이 이에 탈취한 물건에 달려가서 양과 소와 송아지들을 끌어다가 그것을 땅에서 잡아 피째 먹었더니 33무리가 사울에게 전하여 이르되 보소서 백성이 고기를 피째 먹어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이다 사울이 이르되 너희가 믿음 없이 행하였도다 이제 큰 돌을 내게로 굴려 오라 하고 34또 사울이 이르되 너희는 백성 중에 흩어져 다니며 그들에게 이르기를 사람은 각기 소와 양을 이리로 끌어다가 여기서 잡아 먹되 피째로 먹어 여호와께 범죄하지 말라 하라 하매 그 밤에 모든 백성이 각각 자기의 소를 끌어다가 거기서 잡으니라 35사울이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으니 이는 그가 여호와를 위하여 처음 쌓은 제단이었더라(31-35)

 

결국 금식하면서 그날의 전쟁은 끝났고, 이스라엘은 믹마스에서부터 벧아원(벧호론)을 지나 아얄론까지 블레셋 사람들을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아얄론은 단 지파 지역에 있는 골짜기로 베냐민 지파의 지경에서 블레셋 군대를 거의 몰아낸 것입니다. 하루 사이에 엄청난 전과를 올렸습니다.

요나단의 담대한 믿음으로 이스라엘에게 큰 승리가 주어졌지만, 이스라엘은 큰 기쁨이 아니라 심한 피로를 느꼈습니다(31). 하루 종일 금식하며 전쟁을 했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너무 허기졌습니다. 전쟁을 승리로 마치자 허기를 참지 못하고 블레셋 사람들에게서 탈취한 소와 양들을 잡아 고기를 급히 피째 먹었습니다. 너무 배가 고팠기 때문에 가축을 잡고 피 빼는 자리를 만들고 피가 빠지기를 기다릴 겨를이 없었던 것입니다.

32절에서 백성들이 가축을 향해 달려갔다고 표현하는 것은 그들이 얼마나 굶주렸는지를 보여줍니다. 이스라엘의 백성들은 율법이 피를 먹는 것을 금지함에도 탈취한 가축을 잡아 피를 다 빼기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먹기 시작합니다

 

이런 피채 먹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행동이 사울에게 전달됩니다. 백성들 중 한 무리가 사울에게 가서 백성들이 가축을 잡아 피째 먹는 죄를 범하고 있다고 알립니다. 이 소리를 들은 사울은 백성들이 신실하지 못하게 행동한다고 비난합니다.

사실 백성들이 이렇게 행동하도록 원인을 제공한 바로 자신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백성들이 신실하지 못하다고 비난하는 아이러니한 모습이 나타나는데, 이런 모습을 통해 사울이 백성들을 올바르게 다스리지 못하는 왕이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한 공동체 지도자의 판단에 따라 그 공동체가 옳은 길로 갈 수도 있고 잘못된 길로 갈 수도 있기 때문에, 지도자의 역할은 정말로 중요합니다. 비록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이지만, 사울이 아니라 요나단이 왕이었으면 백성들을 좀 더 편하게 인도하였을 것입니다. 비극적이지만 요나단은 사울이 갖추었어야 할 왕으로서의 자질을 대신 보여줌으로써 사울의 부족한 면을 드러내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사울은 더는 백성들이 죄를 짓지 않게 하기 위해 커다란 돌을 가져오게 하여 제단을 만들어서 짐승을 잡고 피를 뺄 자리를 마련해줍니다. 그리고 모든 백성들에게 고기를 피째 먹어 여호와께 범죄하는 일을 하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34절 끝부분에서 이 일이 ‘그 밤에’ 이루어졌다고 말합니다. 이때는 금식의 명령이 해제된 시간입니다. 이렇게 허기져서 규례를 어기면서까지 고기를 먹으려는 백성들의 모습을 통해 사울의 판단이 틀렸고 요나단의 판단이 더 옳았다는 것을 또 한 번 확인할 수 있습니다.

 

35절은 일종의 후기 같은 것으로 사울은 그곳에 여호와를 위한 제단을 쌓는데, 이것은 여호와께 예배를 드리기 위한 제단입니다. 사울은 이곳에서 처음으로 사무엘 없이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렇게 사울의 어리석은 금식 맹세는 일단락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여전히 불씨는 남아있습니다.

 

사울은 왕으로서 첫 번째 전쟁에서 전반적으로 하나님을 온전히 의뢰하고 거룩한 전쟁을 선포하고 전쟁의 승패가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선언해야 했습니다. 그런데도, 그 가장 기본적인 일을 불순종하면서 사소한 일로 하나님 앞에 종교적 열심을 보이고 뒤늦게 승리의 제사를 드리는 사울의 연약한 신앙은 그가 실패하는 결정적인 계기였습니다. 어려울수록 믿음으로 무장하고 말씀으로 믿음이 자랄 수 있도록 선한 싸움을 다 싸워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날도 믿음을 가진 사람을 통해 역사를 이루어갑니다. 요나단 한 사람을 통해서 이스라엘 전체를 구원하셨습니다. 이처럼 공동체 내에서 한 사람의 믿음이 중요합니다. 종교적인 행위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어떤 두려움과 위기 상황 속에서도 나를 지켜 주시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신뢰한 만큼 나타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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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14-01)


신앙과 용기로 무장한 요나단

사무엘상 14장 1-23절


 

하나님께서 역사를 이루어 가시는 것은 큰 무리를 사용하신 것이 아니라 작을지라도 믿음의 사람을 사용합니다. 사람들의 생각은 많은 숫자라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을 통해서 역사를 이루어가십니다. 믿음의 사람은 위기를 당할 때 그 진면목(眞面目)이 드러납니다. 그때는 먼저 자신을 잘 관리해야 합니다. 우리 힘이나 능력으로 해설할 수 없을 것 같은 위기를 만날 때, 우리는 믿음으로 대처해야 합니다.

 

  • 블레셋과의 대규모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하나님의 두려움이 블레셋 사람들에게 임하여 정신없이 도망하는데, 크게 혼란스러웠으므로 자기들끼리 죽이고 있었습니다. 이를 본 사울의 군대가 블레셋을 쫓아가 쳤고, 블레셋 진영에 속하던 히브리 사람들이 이스라엘 군대와 합류했으며, 에브라임 산지에 숨어 있던 이스라엘 사람들도 뛰어나와 전쟁에 참여했습니다.

 

전쟁 전의 상황(1-5)

 

믿음의 행동이라고 떠들썩하거나 과시하지 않습니다. 조용히 행동으로 실천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부족할 때, 조용하게 그 필요를 채워주는 역할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요나단은 그런 인물이었습니다. 오늘날도 많은 소리보다 조용한 실천을 요구하는 시대입니다. 골방으로 들어가서 나라를 위해, 지역을 위해, 믿음의 공동체를 위해 기도하는 백성들이 되어야 합니다.

 

1하루는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자기의 무기를 든 소년에게 이르되 우리가 건너편 블레셋 사람들의 부대로 건너가자 하고 그의 아버지에게는 아뢰지 아니하였더라 2사울이 기브아 변두리 미그론에 있는 석류나무 아래에 머물렀고 함께 한 백성은 육백 명 가량이며 3아히야는 에봇을 입고 거기 있었으니 그는 이가봇의 형제 아히둡의 아들이요 비느하스의 손자요 실로에서 여호와의 제사장이 되었던 엘리의 증손이었더라 백성은 요나단이 간 줄을 알지 못하니라 4요나단이 블레셋 사람들에게로 건너가려 하는 어귀 사이 이쪽에는 험한 바위가 있고 저쪽에도 험한 바위가 있는데 하나의 이름은 보세스요 하나의 이름은 세네라 5한 바위는 북쪽에서 믹마스 앞에 일어섰고 하나는 남쪽에서 게바 앞에 일어섰더라(1-5)

 

본문은 13:16-19과 연결되어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사울이 왕으로 등극한 후, 첫 번째 전쟁은 블레셋과의 전쟁입니다. 이 전쟁에서 사울의 믿음의 실체가 드러납니다. 소수의 사울 군대와 대규모 블레셋 군대가 대치하고 있는 위기의 상황에서 다시 요나단이 등장합니다.

 

(1) 요나단의 결심(1-3)

 

요나단은 겁 없이 블레셋을 자극하여 현재 상황을 만든 장본인입니다. 수적 열세가 심하기 때문에 감히 블레셋과 싸울 엄두를 내지 못하고 대치만 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요나단은 자신의 무기를 든 소년에게 건너편에서 진을 치고 있는 블레셋 부대로 가자고 제안합니다. 그리고 이 일을 아버지에게 말하지 않았다고 화자가 설명해주면서 이 일이 전적으로 요나단이 단독으로 벌인 일이었음을 강조하며, 사울이 가만히 있는 것과 요나단의 역동적인 모습을 대조합니다.

 

2-3절은 당시 사울의 군대 상황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울은 기브아 부근의 미그론의 석류나무 아래 앉아 있었고, 그와 함께하는 육백 명의 군사도 그곳에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제사장인 아히야가 에봇을 가지고 그곳에 같이 있었습니다. 에봇은 원래 대제사장의 옷으로 하나님의 신탁을 받을 때 입는 옷입니다. 당시 전쟁할 때는 하나님의 신탁을 듣기 위해서 항상 제사장들이 같이 전쟁터에 참여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사울도 전쟁에 대한 하나님의 신탁을 듣기 위해 아히야를 대동한 것입니다.

3절에서 아히야의 족보가 나오는데, 그는 엘리의 증손이고 비느하스의 손자이며 이가봇의 조카입니다. 이것을 보면 엘리 가문이 여전히 제사장직을 수행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사울은 전쟁에서 하나님의 신탁을 듣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지만, 정작 움직이지는 못하고 상황만 살피고 있었습니다.

 

(2) 지형 소개(4-5)

 

요나단이 블레셋으로 건너가려는 지형에 대한 설명으로 그곳은 아주 가파르고 험한 바위들이 있는 험준한 지형입니다. 아마도 매우 험하기로 유명하기 때문에 바위에 보세스와 세네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서 요나단이 가려고 한지형이 매우 험준하다는 것을 말하는 이유는 요나단이 이런 험한 길인데도 용기를 잃지 않고 무모한 도전을 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입니다.

 

여호와의 표징을 구하는 요나단(6-10)

하나님의 역사는 세상의 위대한 사람들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는 보잘것없는 작은 믿음의 사람을 통해 이루어가십니다. 마치 걷잡을 수 없는 큰 산불도 작은 불씨가 시작한 것처럼, 작고 힘이 없어 보지만 큰 믿음을 가진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 가십니다.

 

6요나단이 자기의 무기를 든 소년에게 이르되 우리가 이 할례 받지 않은 자들에게로 건너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일하실까 하노라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이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아니하였느니라 7무기를 든 자가 그에게 이르되 당신의 마음에 있는 대로 다 행하여 앞서 가소서 내가 당신과 마음을 같이 하여 따르리이다 8요나단이 이르되 보라 우리가 그 사람들에게로 건너가서 그들에게 보이리니 9그들이 만일 우리에게 이르기를 우리가 너희에게로 가기를 기다리라 하면 우리는 우리가 있는 곳에 가만히 서서 그들에게로 올라가지 말 것이요 10그들이 만일 말하기를 우리에게로 올라오라 하면 우리가 올라갈 것은 여호와께서 그들을 우리 손에 넘기셨음이니 이것이 우리에게 표징이 되리라 하고(6-10)

 

이런 상황에서 요나단은 사울처럼 가만히 앉아 있지 않고 자신들이 움직이면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일하실까 하노라’라고 고백하며 블레셋 부대로 가서 싸우려 합니다.

여기서 ‘건너가자’는 것은 싸우러 가겠다는 의미입니다. 이런 대범한 일을 할 수 있는 이유는 여호와의 구원이 사람 수의 많고 적음에 제한받지 않는다는 신앙 때문입니다. 그는 여호와께서 전쟁에 나서신다면 자신과 자신의 종 두 사람만으로도 충분히 바다의 모래같이 많은 블레셋 군대를 이길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전쟁은 전적으로 여호와의 손에 달린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움직인다고 해서 하나님도 움직여주셔야 한다는 기계적 신앙은 문제가 있습니다. 하지만 ‘혹시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해 일하실지 누가 알겠느냐?’라는 말을 통해서 여호와께서 자신의 움직임에 동의해주시고 안 해주시고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의지에 달렸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전쟁이 여호와의 손에 달렸다는 요나단의 신앙은 아버지 사울이 품지 못했던 그 신앙입니다. 후에 사무엘상 17:47에서 다윗이 요나단과 동일한 신앙 고백을 하며 골리앗을 죽인 후 하나님의 사랑받는 왕으로 등극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사울에게 원하신 신앙이 이것입니다. 아무리 사울이 왕이어도 여전히 이스라엘의 왕은 여호와이시고 전쟁은 여호와의 손에 달렸기 때문에 여호와만을 바라보라는 것이었습니다. 요나단은 이 신앙이 어떤 큰 위력을 발하는지 블레셋 습격 사건을 통해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요나단은 전쟁을 해도 좋은지 아닌지 여호와의 뜻을 알기 위해 징조를 구합니다. 그는 블레셋 부대 앞에 가서 자신들을 보이고, 거기에 가만히 있으라고 하면 올라가지 않고 또 올라오라고 하면 여호와께서 그들을 자신의 손에 넘기신 징표로 알고 올라가 블레셋과 싸우겠다고 합니다. 이것은 매우 위험천만한 행동인데, 블레셋 주둔 부대가 있는 곳에 달랑 둘이 가서 그들에게 정면으로 노출되는 행동이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목숨을 온전히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뜻이면 전쟁에 이겨 살겠고, 아니면 죽어도 좋다는 태도입니다.

 

요나단이 블레셋 진영을 침(11-15)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사람을 대신하여 영적 전쟁을 감당해 주십니다. 믿음으로 담대히 실천하는 자와 함께하사 같이 싸워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같이 싸워 주시면 그 수가 적고 무기가 변변치 않더라도 승리하게 마련입니다.

 

11둘이 다 블레셋 사람들에게 보이매 블레셋 사람이 이르되 보라 히브리 사람이 그들이 숨었던 구멍에서 나온다 하고 12그 부대 사람들이 요나단과 그의 무기를 든 자에게 이르되 우리에게로 올라오라 너희에게 보여 줄 것이 있느니라 한지라 요나단이 자기의 무기를 든 자에게 이르되 나를 따라 올라오라 여호와께서 그들을 이스라엘의 손에 넘기셨느니라 하고 13요나단이 손 발로 기어 올라갔고 그 무기를 든 자도 따랐더라 블레셋 사람들이 요나단 앞에서 엎드러지매 무기를 든 자가 따라가며 죽였으니 14요나단과 그 무기를 든 자가 반나절 갈이 땅 안에서 처음으로 쳐죽인 자가 이십 명 가량이라 15들에 있는 진영과 모든 백성들이 공포에 떨었고 부대와 노략꾼들도 떨었으며 땅도 진동하였으니 이는 큰 떨림이었더라(11-15)

 

요나단의 용기는 하나님을 모독하는 블레셋을 더 이상 보고만 있을 수 없었습니다. 믿음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 증거를 보여 주셨습니다. 요나단의 전투를 도와 적군 블레셋 사람들에게 혼란과 두려움 속에 빠뜨리십니다.

 

(1) 블레셋 사람의 조롱(11-12)

 

요나단과 그의 좋은 모든 것을 여호와께 맡긴 채 블레셋 부대 쪽으로 건너가 블레셋 사람들에게 자신을 드러냈습니다. 이들을 본 블레셋 사람들은 히브리 사람들이 이제야 굴에서 나온다며 비웃었습니다. 그리고 이리로 올라오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요나단이 기다리던 하나님의 징조입니다. 그들이 ‘너희에게 알려줄 것이 있다’고 말한 것이 조롱이든 협박이든 이 상황에서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올라오라’는 말을 통해 여호와께서 블레셋을 이스라엘의 손에 넘기셨음을 알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요나단의 말대로 징조를 주신 것입니다. 여호와의 응답을 들은 요나단은 손과 발로 기어서 블레셋 진영으로 올라갔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손발로 기어서 절벽을 올라오는 요나단과 그의 병기든 자를 보고 다가올 자신들의 운명도 모른 채 비웃으며 바라보고 있었을 것입니다.

 

(2) 요나단의 승리(13-15)

 

그런데 요나단 일행이 다 올라오자 상황은 완전히 반전되어 블레셋 사람들이 요나단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쓰러지고, 병기를 든 자는 쓰러진 자를 재빨리 죽이며 블레셋 진영을 혼란에 빠뜨렸습니다. 이들이 얼마나 재빠르게 죽였는지를 표현하기 위해 14절에서 대략 130-180미터 되는 거리 안에서 20명가량을 죽였다고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요나단과 무기를 든 자는 엄청난 전과를 올렸습니다. 드디어 하나님께서 이 전쟁에 개입하셨습니다. 15절에서 언급하는 떨림은 여호와께서 블레셋 진영에 일으키신 지진으로 여호와께서 초자연적인 힘으로 블레셋을 치신 것입니다.

 

블레셋에서 구원받은 이스라엘(16-23)

오늘날 개인 편의주의에 따라 ‘나 홀로 신앙’을 지키며 살아가려 합니다. 반대로 요나단과 같은 믿음의 일꾼을 통해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것처럼, 믿음의 한 사람으로 전체 믿음의 공동체를 살리는 능력이 있습니다. 주의 편에 서는 일이 때론 외롭고 힘겹고, 또 전혀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하찮은 일로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상급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인간적인 방법으로 사람을 늘리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이 우리 편에 서시도록 묵묵히 순종해야 합니다.

 

16베냐민 기브아에 있는 사울의 파수꾼이 바라본즉 허다한 블레셋 사람들이 무너져 이리 저리 흩어지더라 17사울이 자기와 함께 한 백성에게 이르되 우리에게서 누가 나갔는지 점호하여 보라 하여 점호한즉 요나단과 그의 무기를 든 자가 없어졌더라 18사울이 아히야에게 이르되 하나님의 궤를 이리로 가져오라 하니 그 때에 하나님의 궤가 이스라엘 자손과 함께 있음이니라 19사울이 제사장에게 말할 때에 블레셋 사람들의 진영에 소동이 점점 더한지라 사울이 제사장에게 이르되 네 손을 거두라 하고 20사울과 그와 함께 한 모든 백성이 모여 전장에 가서 본즉 블레셋 사람들이 각각 칼로 자기의 동무들을 치므로 크게 혼란하였더라 21전에 블레셋 사람들과 함께 하던 히브리 사람이 사방에서 블레셋 사람들과 함께 진영에 들어왔더니 그들이 돌이켜 사울과 요나단과 함께 한 이스라엘 사람들과 합하였고 22에브라임 산지에 숨었던 이스라엘 모든 사람도 블레셋 사람들이 도망함을 듣고 싸우러 나와서 그들을 추격하였더라 23여호와께서 그 날에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므로 전쟁이 벧아웬을 지나니라(16-23)

 

세상을 살아가면서 악한 세력은 힘으로 성도를 핍박할 수는 있겠지만, 결코 성도의 신앙이나 선한 양심을 꺾거나 산 소망을 넘어뜨릴 수 없습니다. 먼저 적들이 성도들의 능력을 알고 두려워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하게 믿음으로 나가길 바랍니다.

 

(1) 상황 파악(16-17)

 

이런 블레셋 진영이 혼란스러운 상황을 사울 진영의 파수꾼이 보고서, 사울에게 보고하게 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보고받은 사울은 혹시 이스라엘 군사 중에 누가 가서 혼란을 일으킨 것은 아닌가 확인하기 위해 점호를 명령하였습니다. 그 결과 자기 아들 요나단과 무기 든 자가 없는 것을 알게 됩니다.

 

(2) 신탁을 묻는 사울(18-20)

 

사울은 이를 통해 블레셋의 혼란이 요나단 때문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정상적인 행동이라면, 아버지로서 전쟁에 나간 아들을 보며, 물불 안 가리고 현장에 나갈 것입니다.

하지만, 사울은 이런 상황을 피해 보려는 마음으로 블레셋을 치러 나갈지를 여호와께 묻는다고, 제사장 아히야에게 하나님의 궤를 가져오라고 명령합니다. 여전히 가만히 앉아서 여호와의 신탁이 내리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신탁을 기다리는 동안에 전장에서는 혼란이 더 심해졌습니다. 블레셋과의 전투를 더 지체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여 신탁받는 것을 중지합니다.

 

여호와의 뜻을 묻는 요나단과 사울의 방법은 크게 대조됩니다. 요나단은 목숨을 하나님께 맡기고 움직이면서 여호와의 뜻을 구했지만, 사울은 안전한 곳에서 여호와의 뜻이 확실해지면 움직이겠다는 소극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블레셋 진중에서 요나단과 그의 무기든 자는 목숨을 걸고 블레셋과 전투하고 있는데 사울은 하나님의 뜻을 묻는다며 안전히 기브아에서 미적 거리고 있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화자는 우리가 누구를 닮았는지를 묻고 있습니다.

 

(3) 전쟁 참여한 사울(21-22)

 

이제 전투는 요나단의 전투에서 이스라엘 전체의 전투로 번집니다. 블레셋 진영에 사울의 부대가 도착하자 블레셋을 돕던 히브리 사람들도 이스라엘과 사울과 요나단의 편에서 돕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산지에 숨어있던 이스라엘 사람들도 모두 몰려나와 전투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요나단이 시작한 전투는 모든 이스라엘이 힘을 합하고 여호와께서 도와주셔서 승승장구하였고, 블레셋 사람들을 베냐민 내륙 지역에서 벧아웬까지 몰아내는 등 큰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이 전투에서 다음과 같은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첫째는 전쟁은 여호와의 손에 있다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여호와의 일을 시작하면 하나님께서 도우실 뿐만 아니라 돕는 자들을 계속해서 붙여주신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쳐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날도 믿음의 사람들을 통해 역사를 이루어갑니다. 믿음의 사람 요나단을 통해 이스라엘 전체를 구원하셨습니다. 이처럼 공동체 내에서 한 사람의 믿음이 중요합니다. 어떤 두려움과 위기 상황 속에서도 자신을 지켜 주시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담대하게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하나님을 신뢰한 만큼 나타납니다. 한 사람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구성원이 하나님의 기적을 맛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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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13-02)


하나님의 명령을 무시한 결과

사무엘상 13장 13-23절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말씀은 곧 생명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 인생의 본분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거역하는 것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종교적 행위에 열심을 내는 것으로 여겨서는 안 됩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명령에 언제나 믿음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 사무엘은 하나님의 명령을 지지지 않은 사울을 책망합니다. 그의 나라가 오래가지 않을 것이며 하나님께서 마음에 맞는 사람을 백성의 지도자로 세우셨다는 것입니다. 사울과 함께한 백성은 약 600명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에는 철공이 없어서 칼이나 창은 사울과 요나단에게만 있었습니다.

 

사울을 향한 책망(13-15a)

우리가 하나님의 복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그분의 말씀을 바르게 알고 철저히 순종하는 데 있습니다. 종교적 열심을 통해 복을 받으려는 것은 어리석은 태도입니다.

 

13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도다 왕이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에게 내리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리하였더라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위에 왕의 나라를 영원히 세우셨을 것이거늘 14지금은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령하신 바를 왕이 지키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여호와께서 그를 그의 백성의 지도자로 삼으셨느니라 하고 15사무엘이 일어나 길갈에서 떠나 베냐민 기브아로 올라가니라(13-15a)

 

이스라엘의 왕은 하나님의 권위와 명령에 온전히 순종한 하나님의 대리자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스라엘의 전쟁은 거룩한 전쟁, 하나님의 전쟁을 감당해야 하고 이스라엘 백성들과 군대는 하나님의 군대여야 합니다. 그리고 왕이 백성들에게 가르쳐야 할 것은 먼저 왕이 하나님의 권위에 온전히 순종하고 그리고 전쟁의 승패가 군인의 숫자나 무기에 달려 있지 않고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확신시켜야 될 사람이 왕입니다.

 

(1) 사무엘의 책망(13-15a)

 

사울은 왕으로 세워진 후에 공식적으로 수행하는 첫 번째 전쟁이 블레셋과의 전투입니다. 그는 이곳에서 결정적인 실수를 범합니다.

블레셋과의 전투를 앞두고 사무엘이 하나님께 제사를 지내기로 약속한 시간에 오지 않았습니다. 블레셋과의 전투를 앞두고 군사들이 요동하며 흩어지는 상황을 위기로 여겨 직접 번제를 드립니다. 하나님의 법을 어겼습니다. 당시 다른 나라들은 왕이 곧 제사장이고 선지자였습니다. 그래서 제사까지도 병행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왕과 제사장의 직분이 구분되어 있었기에 왕이 제사를 드릴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사울이 드린 제사는 하나님을 전심으로 의지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종교의식을 통해 병사들의 사기를 고취하고, 긍극적으로 왕권을 강화하려 있음을 알았기에 사울의 제사를 망령된 것이라고 선언합니다(13).

 

사무엘은 사울은 기다리지 못하고 직접 제사를 집례하고 드립니다. 그 결과 사무엘은 사울을 질책하고 있습니다. 사무엘이 질책하는 핵심은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드린 제사라 하더라도 다른 목적과 의도가 숨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께 망령된 행위일 뿐입니다. 사울은 종교 행위에 열심을 낼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 그 말씀에 순종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순종하지 않았기에 그의 왕위에 타인에게 넘어갈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한 사람이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로 새롭게 세워질 것이라고 선언합니다(14).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지도자는 능력이 탁월하지만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는 왕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는 사람, 그분의 마음에 합당한 사람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울은 사무엘이 떠나간 후에 사울은 사울의 고향인 베냐민 기브아로 올라갑니다(15a).

 

블레셋과 대치 중인 사울의 군대(15b-18)

성도들의 삶에 있어서 자신이 범한 죄는 자신과 자신에게 속한 자들을 실족시킬 뿐 아니라 죄의 세력에게 더 큰 용기를 줍니다. 그리고 자신의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 자의 삶은 비참하고 쇠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즉 죄는 우리의 삶을 파산시키는 무서운 적입니다(롬 6:23). 진정한 신앙을 가진 사람은 현실 가운데서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가를 깨닫고 실제적인 준비와 활동을 하지만, 종교행위만 붙잡고 있는 사람은 엉뚱한 열심만 내다가 모든 자원을 허비합니다.

 

15…사울이 자기와 함께 한 백성의 수를 세어 보니 육백 명 가량이라 16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과 그들과 함께 한 백성은 베냐민 게바에 있고 블레셋 사람들은 믹마스에 진 쳤더니 17노략꾼들이 세 대로 블레셋 사람들의 진영에서 나와서 한 대는 오브라 길을 따라서 수알 땅에 이르렀고 18한 대는 벧호론 길로 향하였고 한 대는 광야쪽으로 스보임 골짜기가 내려다 보이는 지역 길로 향하였더라 19그 때에 이스라엘 온 땅에 철공이 없었으니 이는 블레셋 사람들이 말하기를 히브리 사람이 칼이나 창을 만들까 두렵다 하였음이라 20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각기 보습이나 삽이나 도끼나 괭이를 벼리려면 블레셋 사람들에게로 내려갔었는데 21곧 그들이 괭이나 삽이나 쇠스랑이나 도끼나 쇠채찍이 무딜 때에 그리하였으므로 22싸우는 날에 사울과 요나단과 함께 한 백성의 손에는 칼이나 창이 없고 오직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에게만 있었더라 23블레셋 사람들의 부대가 나와서 믹마스 어귀에 이르렀더라(15b-23)

 

오늘날 성도의 싸움에서도 역시 문제가 되는 것은 유능한 무기의 유무가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하느냐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전쟁에 능하신 분으로 우리를 넉넉히 이기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1) 이스라엘 군대(15b-16)

 

사무엘이 떠난 후 사울은 고양 기브아로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자기 곁에 남은 군인의 수를 계수합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면서까지 스스로 번제를 드렸지만, 600명이 남아 있었습니다. 원래 사울은 이스라엘 역사상 최초로 상비군 3,000명을 편성했지만, 현재 5분의 1로 줄어들었습니다(2). 블레셋의 엄청난 군사력에 비하면, 이스라엘은 군대라고 할 수조차 없을 정도입니다(15b). 이스라엘 백성들은 블레셋과 비교했을 때, 너무 미비해서 두려워서 도망간 것입니다.

사울이 백성들이 흩어지는 것을 걱정하는 것은 상황적으로 보면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본문은 하나님의 명령은 지켜야만 한다고 말합니다. 그것이 신앙이기 때문입니다. 사울과 요나단은 일단 적은 인원수로 베냐민 게바에 진을 쳤습니다.

 

(2) 블레셋 군대(17-18,23)

 

믹마스에 진을 치고 있던 블레셋은 기습조를 셋으로 나누어 베냐민 게바에 600명밖에 없는 사울의 군대를 사방으로 포위하였습니다. 그들은 병거 3만 대와 마병 6천명, 셀 수 없이 많은 보병의 위세와 비교해 보면, 이스라엘은 비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사울의 이스라엘 군대는 이 공격을 막아낼 어떤 능력도 없었습니다. 이처럼 완전히 블레셋의 군대에 둘러싸여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알지 못하고, 종교 행위에만 매달리는, 껍데기만 남은 신앙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3) 이스라엘의 무기(19-22)

 

이제 사울의 군대의 무기 상태에 대한 설명으로 이스라엘 군대는 무기도 블레셋 군대와 비교할 만한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에는 당시에 첨단기구에 속한 철을 다룰 수 있는 철 대장장이가 없었습니다.

블레셋은 당시 철기 문명을 누리고 있었지만, 이스라엘에게는 철을 다스린 기술을 전수해주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농기구 하나를 고치거나 만들려고 해도 블레셋 사람들의 도움이 없이는 안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렇게 문명사적으로 이스라엘은 아직 청동기 문명에 속해 있었고 블레셋은 농기구나 칼이나 창 같은 무기뿐만 아니라 철로 전차까지도 만드는 발전된 철기 문화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철로 된 무기라고는 칼 두 개밖에 없는 이스라엘과 병거를 3만 대나 가지고 있는 블레셋의 전쟁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은 절대적으로 열세였습니다. 이는 이스라엘이 블레셋과 싸워 이길 승산이 전혀 없었음을 말해 줍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친히 싸워 주셔서 이스라엘은 대승을 거두게 됩니다. 전쟁은 사람의 능력으로 치를 수 있는 전쟁이 아니며 여호와께서 싸워 주셔야 하는 전쟁이라는 것을 암시적으로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사울은 어떤 환경과 위기적인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만 의지해야 할 분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렸습니다. 위기 상황 속에서 두렵고 당황한 나머지 자신의 해야 할 일에 대한 선을 넘어버렸던 것입니다. 그리고 월권(越權)행위로 하나님께 대한 신뢰를 깨트려 버렸던 것입니다. 위기는 우리가 예측하지 못할 때에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찾아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끝까지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위치를 지켜 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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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13-01)


두려움 때문에 어리석음을 동반한 사울

사무엘상 13장 1-15절


 

절박한 문제를 만날수록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교훈이 실생활에 적용되기란 쉽지 않습니다. 급박한 일이 발생되면, 먼저 자신이 스스로 급한 불부터 끄고, 하나님의 방법은 나중에 찾는 것이 우리의 태도입니다. 이러한 생활이 반복되면 성숙한 믿음으로 성장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조급하고 급한 일이 생겼을 때라도 하나님 앞에 잠잠히 기다려 보고 하나님께 묻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을 때까지 멈추어 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되길 바랍니다.

 

  • 본문은 사울이 왕으로서 첫 전쟁을 수행하려고 군대를 이끄는 모습을 기록합니다. 사울이 블레셋의 위협에 대항하여 군데를 모으는데, 그 수가 많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무기도 변변치 않아서 사울과 요나단만 제대로 된 무기를 들고 있었습니다. 선지자 사무엘과의 관계도 처음부터 어긋나기 시작했습니다. 사무엘은 여호와께서 이미 사울이 아닌 다른 사람을 주권자로 선택하시고 사울의 나라가 길지 않을 것이라고 선포했습니다.

 

블레셋과의 전투 준비(1-7)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보호하심보다 스스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선택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멀지 않아 자신들의 잘못된 선택을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통치보다 사람의 지배를 받고자 선택했던 이스라엘은 그 기대에 못 미치는 연약한 국방력을 소유해야 했습니다.

 

1사울이 왕이 될 때에 사십 세라 그가 이스라엘을 다스린 지 이 년에 2이스라엘 사람 삼천 명을 택하여 그 중에서 이천 명은 자기와 함께 믹마스와 벧엘 산에 있게 하고 일천 명은 요나단과 함께 베냐민 기브아에 있게 하고 남은 백성은 각기 장막으로 보내니라 3요나단이 게바에 있는 블레셋 사람의 수비대를 치매 블레셋 사람이 이를 들은지라 사울이 온 땅에 나팔을 불어 이르되 히브리 사람들은 들으라 하니 4온 이스라엘이 사울이 블레셋 사람들의 수비대를 친 것과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들의 미움을 받게 되었다 함을 듣고 그 백성이 길갈로 모여 사울을 따르니라 5○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모였는데 병거가 삼만이요 마병이 육천 명이요 백성은 해변의 모래 같이 많더라 그들이 올라와 벧아웬 동쪽 믹마스에 진 치매 6이스라엘 사람들이 위급함을 보고 절박하여 굴과 수풀과 바위 틈과 은밀한 곳과 웅덩이에 숨으며 7어떤 히브리 사람들은 요단을 건너 갓과 길르앗 땅으로 가되 사울은 아직 길갈에 있고 그를 따른 모든 백성은 떨더라 (1-7)

 

본 장은 사울이 블레셋 사람들의 침공에 대항하여 전쟁한 초기 전쟁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다른 여러 나라들처럼 왕을 원했던 이스라엘은 이제 그들이 왕을 가지게 되자 심히 크고 강한 나라가 될 것이라는 환상 속에 빠져들었습니다.

 

(1) 도입부(1)

 

분열 왕국 시대 왕들의 기록을 시작할 때 열왕기는 가장 먼저 즉위 나이와 통치 기간을 소개합니다. 사울의 나이 40세에 등극했다고 소개합니다. 왕으로 등극한 지 2년째 되는 해, 이제 왕으로서 어느 정도 안정이 되었을 것입니다.

 

(2) 사울 군대의 모습(2-4)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압제하고 있는 블레셋을 이스라엘에서 몰아내고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서 전쟁을 준비시키십니다.

왕이 된 사울이 제일 먼저 한 일은 이스라엘을 지킬 상비군 편성이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모두 3,000명을 택하여 자신의 군대를 만들었습니다. 그가 왕으로서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는 군대가 필수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사사시대에는 따로 상비군이 있지 않았습니다. 위기 때마다 또 군대가 필요할 때, 소집 나팔을 불면 자원하는 사람이 몇 명이든 이 자원하는 사람과 함께 하나님의 전쟁을 수행했지만, 사울은 이제 3000명 상비군을 만들었던 것입니다.

 

사울은 3000명 군대를 두 개의 부대로 나누어 2,000명은 자신이 지휘하고 1,000명은 아들 요나단이 지휘하게 한 다음 블레셋과의 전쟁을 위해 믹마스와 벧엘과 베냐민 기브아에 배치했습니다(2).

 

군대가 만들어진 후 첫 전투는 요나단에 의해서 시작됩니다(3). 요나단은 베냐민 지파의 도시 게바에 있던 블레셋 수비대를 기습으로 공격합니다. 블레셋 평야에서 볼 때 상당히 내륙 지역인 게바까지 블레셋의 수비대가 있었다는 것은 당시 블레셋이 이스라엘 지역에서 세력을 크게 확장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여기서 전쟁을 일으킨 요나단의 행동이 옳았느냐 어리석었느냐에 대한 평가는 없습니다.

하지만 13-14장 전체를 보면, 요나단의 행동은 여호와를 의지하는 행동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사울은 온 땅에 나팔을 불어 군대를 소집합니다. 상비군 3,000명으로는 블레셋 군대를 상대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울이 블레셋 수비대를 친 일과 이로 인해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불쾌하게 생각한다는 것을 듣고 사울의 부름에 응하여 길갈로 모였고, 사울과 함께 전쟁을 준비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의 왕과 처음으로 하는 전쟁입니다.

 

(3) 이스라엘의 공포심(5-7)

 

그런데 이스라엘과 전쟁하러 온 블레셋 군대의 숫자는 만만치 않았습니다. 믹마스에 진친 블레셋의 군대는 병거가 30,000명, 마병이 6,000명이었고 나머지 군인들도 바다의 모래같이 많았습니다(5).

너무나 많은 블레셋 군인과 병거 수를 보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낙심하여, 싸우기도 전에 사기가 땅에 떨어져 공포에 휩싸여 숨을 곳을 찾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6). 7절에서는 심지어 요단강을 건너 요단 동편 지역인 갓과 길르앗으로 도망가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블레셋에 대한 이스라엘 사람들의 공포가 얼마나 컸는지를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전쟁을 시작한 것은 이스라엘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전의를 상실한 쪽은 이스라엘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은 기드온 사사시대에 미디안 군대가 수많은 낙타와 나귀들을 몰고 바다의 모래처럼 쳐들어온 것과 비슷합니다(삿 7장). 이때도 사람들은 동굴에 숨으며 무서워하였습니다. 하지만 기드온 군대도 여호와께서 도와주셨기 때문에 이번에도 분명히 도와주실 것인데, 백성들은 그 사실을 기억하지 못하고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런데 일반 백성들뿐 아니라 전쟁하기 위해 길갈에 모인 군인들도 두려워 떨고 있었습니다. 요나단의 도발이 너무나도 큰 재앙을 불러온 것입니다.

하지만 군사력으로는 싸움이 되지 않는 이 전쟁에서 오직 하나님의 도우심과 함께 하심을 의뢰하고 하나님의 전쟁을 수행해야 합니다. 이때 사람을 의지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온전히 의지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거룩한 전쟁을 수행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사울 왕은 지금 안정되고 있는 누가 보더라도 왕다운 품위를 갖추고 있었지만, 위기 앞에서 사울 왕의 영적인 참모습이 드러난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문제점은 블레셋 전쟁에서 군대의 다수가 아니라 그들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불신앙에 있었던 것입니다.

 

 

사무엘을 기다리지 못한 사울(8-15a)

 

지도자가 자신의 힘과 능력도 모르고 교만해져서 행해졌던 행동 하면 사람들에게는 부정적인 영향을 줍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는 신뢰를 쌓기보다는, 주변 환경을 두려워하는 백성들로 만들어 버립니다. 오늘날 성도들의 삶이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생활을 통하여 하나님과 더욱 깊은 교제를 나누어야 합니다.

 

8사울은 사무엘이 정한 기한대로 이레 동안을 기다렸으나 사무엘이 길갈로 오지 아니하매 백성이 사울에게서 흩어지는지라 9사울이 이르되 번제와 화목제물을 이리로 가져오라 하여 번제를 드렸더니 10번제 드리기를 마치자 사무엘이 온지라 사울이 나가 맞으며 문안하매 11사무엘이 이르되 왕이 행하신 것이 무엇이냐 하니 사울이 이르되 백성은 내게서 흩어지고 당신은 정한 날 안에 오지 아니하고 블레셋 사람은 믹마스에 모였음을 내가 보았으므로 12이에 내가 이르기를 블레셋 사람들이 나를 치러 길갈로 내려오겠거늘 내가 여호와께 은혜를 간구하지 못하였다 하고 부득이하여 번제를 드렸나이다 하니라 13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도다 왕이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에게 내리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리하였더라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위에 왕의 나라를 영원히 세우셨을 것이거늘 14지금은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령하신 바를 왕이 지키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여호와께서 그를 그의 백성의 지도자로 삼으셨느니라 하고 15사무엘이 일어나 길갈에서 떠나 베냐민 기브아로 올라가니라(8-15a)

 

준비되지 않는 사람은 반드시 그 실체가 드러납니다. 항상 영적으로 무장하고 있어야 합니다. 믿음으로 주 앞에 서 있습니까! 사울 왕이 왕으로 취임하고 공식적인 왕의 첫 전쟁을 블레셋과의 전쟁을 수행합니다.

 

(1) 사울의 번제(8-9)

 

이렇게 블레셋과 전투의 두려운 상황에서 사울은 선지자인 사무엘이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사울은 남들 보기에는 용사요 영웅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능히 이끌만한 지도자처럼 보였지만, 첫 전쟁에서 그의 참모습의 실체와 인격 그리고 신앙이 드러났습니다. 시작은 요나단으로부터 촉발되었습니다.

사무엘 선지자는 사울에게 하나님께 제사하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전쟁을 수행하고 길갈에서 기다리라고 7일을 명령했습니다.

고대 이스라엘의 전쟁은 먼저 제사장이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고 승리에 대한 확신 혹은 전쟁 방법에 대한 신탁을 받습니다. 사사기에서도 전쟁 전에 하나님께 묻는 장면들이 여러 번 등장하는데 모두 이런 관습을 전제한 것입니다.

그래서 사울은 약속한 7일 동안 사무엘을 기다렸지만, 사무엘은 오지 않았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불안해진 백성들은 두려움으로 점점 흩어지기 시작하였습니다(8). 그렇지 않아도 군대가 수적으로 열세인 상황에서 백성들이 흩어지는 것을 본 사울은 급하고 불안한 마음으로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어버립니다.

사무엘 선지자의 명령을 어기고 성급한 마음으로 직접 번제와 화목제를 드립니다. 그는 왕이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도 제사장의 자리를 왕이 대신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행동은 월권행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급한 마음으로 백성들과 블레셋 군대를 두려워해서 무모한 행동을 했던 것입니다. 두려워 도망가는 백성들 앞에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어쨌든 제사 드리면, 하나님께서 함께하리라는 그의 어리석은 믿음 때문에 그가 스스로 제사를 드립니다. 이러한 행동은 하나님의 규제를 무시하는 처사였습니다(9).

 

(2) 사울의 변명(10-12)

 

마치 기다리기라도 한 듯 사울이 제사를 마치자마자 사무엘 선지자가 등장합니다(10). 조금만 더 하나님을 신뢰하고 기다렸더라면 사무엘이 와서 하나님께 제사드리고 거룩한 전쟁을 하나님의 축복 속에 수행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울의 준비되지 않는 영적인 모습들이 완전히 드러납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지 못한 모습이 여실히 드러납니다.

그리고 사무엘은 사울에게 지금 무슨 일을 한 것이냐며 질문하는데 이것은 아무리 급해도 자신이 올 때까지 기다렸어야 한다는 질책입니다(11).

이에 대해 사울은 11-12절에서 자신의 믿음 없음을 고백하고 회개했어야 합니다.

사울은 회개하고 자신의 책임으로 돌리지 않고 전부 다른 사람 탓합니다. 자신의 실수를 회개하고 책임을 사무엘에게 전가합니다. 그는 현재의 급박한 상황. 즉 백성들은 흩어지고 당신은 안 오고 블레셋 사람들은 믹마스에 모여 있고 블레셋 사람들이 지금 쳐들어올 것 같은 상황들을 설명하며 그래도 여호와의 호의를 얻고 전쟁을 해야겠기에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합니다.

이런 사울의 말은 상황적 논리적 이성적으로 틀리지 않습니다. 우리도 상황이 급하고 이때를 놓치면 큰일 날 것 같을 때 사울과 같은 행동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사무엘은 이런 사울의 통등을 어리석은 행동이라고 질책하며 사울이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언급된 여호와의 명령은 사무엘상 10:8과 연결된 것으로 10:8에서 사무엘이 한 말은 여호와의 명령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0장과 13장 사이의 시간 간격이 얼마나 되는지 알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왜 길갈에서 일주일을 기다려야 하는지도 알 수도 없습니다. 본문이 명확하게 말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울의 실패는 자기 자신의 잘못을 시인한 정직함을 잃어버린 믿음의 실패입니다. 그의 실패는 하나님을 경외함과 신뢰함에 대한 실패였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나님을 신뢰하는 일을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도 사울처럼 실수하고 잘못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때 겸손하게 회개하고 잘못을 시인하고 하나님의 용서를 구하면 또다시 긍휼히 여기시고 겸손한 자와 함께 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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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12-02)


퇴임사를 발표하는 사무엘

사무엘상 12장 16-25절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시는 분이시지만 사람은 완벽한 존재가 아닙니다.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실수할 수 있습니다. 실수한 다음이 중요합니다. 그 후에 회개하며 기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하지만, 잘못을 범하지 않기 위해 먼저 기도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이제 이스라엘의 미래는 지난 과거를 얼마나 기억하고 기도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 12장 전반부에 이어서 사무엘의 고별 설교가 이어집니다. 왕을 구한 죄가 크다는 것을 증명하는 우렛소리가 들리고 비가 내렸습니다. 백성들이 용서를 구하면서 사무엘에게 기도를 부탁했습니다. 사무엘은 백성에게 우상을 버리고 여호와를 섬기라고 권면하면서, 여호와의 신실하심에 대한 믿음을 촉구했습니다. 사무엘 자신은 기도하며 가르치는 일을 계속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왕정에 대해 경고하면서 설교를 끝냈습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왕을 구한 죄(16-19)

주의 뜻을 헤아리지 않고 내 필요만 채우는 기도는 도리어 하나님을 우상으로 만드는 죽을 죄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들도 말씀에 대한 태도가 분명해야 합니다. 자신이 깨어지지 않을 때는 자신의 생각이 먼저 앞섭니다. 다양한 하나님의 메시지들을 받을 때, 인간의 육신적인 생각으로 하게 되어집니다. 설교를 들을 때, 하나님께서는 용기를 주시고 책망도 하시고, 설교 속에서 능력을 주시기도 합니다.

 

16너희는 이제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너희 목전에서 행하시는 이 큰 일을 보라 17오늘은 밀 베는 때가 아니냐 내가 여호와께 아뢰리니 여호와께서 우레와 비를 보내사 너희가 왕을 구한 일 곧 여호와의 목전에서 범한 죄악이 큼을 너희에게 밝히 알게 하시리라 18이에 사무엘이 여호와께 아뢰매 여호와께서 그 날에 우레와 비를 보내시니 모든 백성이 여호와와 사무엘을 크게 두려워하니라 19모든 백성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당신의 종들을 위하여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여 우리가 죽지 않게 하소서 우리가 우리의 모든 죄에 왕을 구하는 악을 더하였나이다(16-19)

 

하나님께서는 왕을 주시면서도 왕을 요구한 의도 자세가 얼마나 불순한지는 그냥 넘기지 않으십니다. 그 의도가 앞으로 모든 불신앙의 출발이 될 것이며, 이스라엘의 존재 목적을 왜곡하는 지점이기 때문입니다.

 

(1) 사무엘의 도전(16)

 

본문은 사무엘의 퇴임식이라고 할 수 있는 장면입니다. 사무엘은 자신의 사역에 마침표를 찍으면서, 이제부터가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이스라엘이 새로운 왕과 더불어 새 시대를 시작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중요한 시기를 시작하며 이스라엘은 무엇을 결단해야 합니까?

마지막 연설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여호와의 명령에 순종하며 살 것을 권면하고 그러지 않을 경우 여호와의 벌이 있을 것을 경고하였습니다. 이렇게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살라는 고별 설교는 이전에 모세도 했고 여호수아도 했습니다. 이들은 모두 여호와의 명령에 순종하며 성공적으로 사명을 감당했던 지도자들입니다. 자신이 살아본 결과 여호와의 명령에 순종하며 사는 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잘 사는 길임을 알기에 이런 권면을 하였습니다.

사무엘은 권면이 끝난 후 백성들에게 ‘너희는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너희 눈앞에서 행하시는 큰일을 보라’고 명령합니다. 이 문구는 출애굽기 14:13과 역대하 20:17에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것을 보라는 것으로 사용되었지만, 여기서는 역설적으로 이스라엘을 징벌하시는 것을 보라는 말입니다. 여호와의 놀라운 능력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수도 있지만, 이스라엘에게 징벌을 내리실 수도 있는 것입니다.

 

(2) 여호와의 이적(17)

 

사무엘은 밀 베는 때에 우레와 비를 내려달라고 여호와께 간구하면 여호와께서 우레와 비를 보내주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이 왕을 구한 죄가 얼마나 큰지 직접 경험하고 알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사무엘은 자신이 말한 그대로 여호와께 비와 우레를 보내달라고 부르짖었고 여호와께서는 그런 사무엘의 소리에 응답하셔서 그날에 우레와 비를 내리셨습니다. 밀 베는 시기는 건기로 비가 좀처럼 오지 않는데 갑자기 천둥이 울리고 번개가 치고 폭우가 쏟아진 것입니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권능으로 이루어진 것임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사기 5장에서도 건기에 갑자기 내리는 비를 통해 하나님의 권능을 보여주신 예가 있습니다.

 

(3) 백성의 두려움과 자백(18-19)

 

이 놀라운 이적을 체험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와 사무엘을 두려워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모습은 출애굽기 14:31에서 여호와의 큰 권능을 보고 여호와를 경외하며 여호와와 모세를 믿게 된 것과 비슷합니다. 여기서 ‘경외하다’와 ‘두려워하다’는 ‘야레’로 같은 뜻입니다.

사무엘의 말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보면서 백성들은 사무엘의 말처럼 자신들이 왕을 구한 것이 여호와 앞에 죄를 범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이들은 자신들에게도 이방 나라들처럼 왕이 있는 것이 당연하고 좀 더 합리적이라고만 생각했지, 그것이 여호와를 왕으로 섬기지 않는 심각한 죄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런데 사무엘의 지적과 여호와의 징벌을 통해 세상의 관습이나 풍조를 따르는 것이 여호와를 떠나는 길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범하는 죄는 우리도 너무 쉽게 범할 수 있는 죄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종종 세상적인 편의와 관습을 따르면서 그것이 죄임을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들이 많이 있습니다. 다행히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사무엘이라는 영성 깊은 지도자가 있어서 이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천둥과 폭우를 통해 표현된 여호와의 진노를 보며 혹시 여호와께서 자신들에게 진노를 퍼부어서 죽이시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그래서 이들은 사무엘에게 중보기도를 부탁합니다. 중보기도는 선지자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로 역사상 가장 뛰어난 중보 기도자는 모세입니다(출 32:11-13), 후에 예레미야 15:1의 “만약 모세와 사무엘이 나의 앞에 섰다 할지라도 내 마음은 이 백성을 향할 수 없나니”에서 모세와 함께 사무엘을 가장 뛰어난 중보기도자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사무엘의 마지막 권고(20-25)

마음에 받아들기 좋은 것만 받아드리면 편식(偏食)입니다. 영적인 편식을 하면, 영적으로 성장할 수 없습니다. 어느 때는 쓴 음식도, 단 음식도 달갑게 먹을 줄 알아야 성장할 수 있습니다. 말씀에 대한 바른 태도를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속에서 자신에게 주신 영적인 영양분을 취해 먹으므로 건강하게 세우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20사무엘이 백성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가 과연 이 모든 악을 행하였으나 여호와를 따르는 데에서 돌아서지 말고 오직 너희의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섬기라 21돌아서서 유익하게도 못하며 구원하지도 못하는 헛된 것을 따르지 말라 그들은 헛되니라 22여호와께서는 너희를 자기 백성으로 삼으신 것을 기뻐하셨으므로 여호와께서는 그의 크신 이름을 위해서라도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실 것이요 23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하지 아니하고 선하고 의로운 길을 너희에게 가르칠 것인즉 24너희는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행하신 그 큰 일을 생각하여 오직 그를 경외하며 너희의 마음을 다하여 진실히 섬기라 25만일 너희가 여전히 악을 행하면 너희와 너희 왕이 다 멸망하리라(20-25)

 

사무엘은 비록 정치 지도자의 자리는 사울 왕에게 물려주었지만, 그는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끝까지 중단없이 기도와 가르침에 사역은 하겠다고 약속합니다. 이제 왕 앞에서 하나님 역할을 대신할 것입니다.

 

(1) 사무엘의 첫째 권면(20-21)

 

고별사 후에, 갑자기 마른 하늘에서 우뢰와 장대비가 쏟아지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두려워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사무엘 선지자에게 기도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이에 사무엘은 그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합니다. 이번 이적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권능을 보이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잘못을 깨닫게 하기 위한 것이지 결코 이스라엘 백성들을 죽이기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분명 이스라엘 백성들이 잘못하였지만, 그러나 이제부터는 여호와를 따르는 데서 돌이키지 말고 전심으로 여호와만을 섬기고 우상을 섬기지 말라고 권고합니다. 우상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허구의 것이기 때문에 이스라엘에게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

 

(2) 신실하신 여호와(22)

 

여기서 사무엘은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용서를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22절에 언급되는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자신의 백성으로 삼은 것도 철저히 하나님의 자유로운 의지로 결정하신 일이며, 하나님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결코 이스라엘을 버리지는 않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신학적 이슈들이 등장하는데 먼저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하신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자유로운 선택이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에게 어떤 장점이나 공적이 있어서 선택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둘째로는 하나님의 명예에 대한 문제로 ‘그의 크신 이름을 위해서’는 ‘여호와의 명예’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시내산에서 이스라엘을 나의 백성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즉, 그 이후로부터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백성’으로 온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고 여호와와는 뗄 수 없는 관계가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죽이고 멸망시키시는 것은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여호와의 실패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스라엘에게 여호와의 이름을 두셨다는 것은 자신의 명예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맡기셨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날도 자신의 명예를 우리에게 두셨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는 순간부터 우리는 예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이고 우리가 세상에서 잘못하면 우리만 욕을 먹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명예도 땅에 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크리스천 혹은 기독교인이라는 이름의 무게입니다. 이렇게 보잘것없는 이스라엘에게 여호와의 이름을 두셨다는 것은 그 자체가 영광이며 은혜로 하나님은 자신의 이름을 둔 자신의 백성들을 위해 그들이 먼저 하나님을 버리지 않는 한 그들의 죄를 용서하시고 끝까지 그들과 함께하겠다고 약속하십니다.

 

(3) 사무엘의 결심(23)

 

이스라엘 백성을 위한 사무엘의 결심으로 백성들이 여호와를 잘 섬기게 하기 위해 자신이 할 수있는 부분을 하겠다고 말합니다. 첫째는 기도이고, 둘째는 가르침입니다.

사무엘은 자신이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기도하기를 멈추는 죄를 절대로 범하지 않겠다고 결심합니다. 이것은 선지자로서 늘 하나님께 중보기도를 하겠다는 의미입니다. 그는 기도하기를 멈추는 것을 죄라고 스스로 규정하는데 이것은 기도를 남은 평생 자신의 사명으로 삼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반영한 것입니다. 둘째는 선하고 올바른 길을 가르치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길로 앞으로도 계속해서 하나님의 뜻을 백성들에게 가르치고 전달하겠다는 것입니다.

23절에서 사무엘이 말한 기도와 가르침은 선지자의 주된 사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사무엘은 백성을 다스리던 사사에서 기도와 가르침에 전념하는 선지자로 직분이 바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후에 나타나는 사무엘의 사역들은 선지자로서 하나님의 명령을 전달하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4) 사무엘의 둘째 권면(24-25)

 

사무엘은 한 번 더 권면합니다. 연설의 결론 부분으로 하나님께서 너희를 위해 하신 일을 기억하고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라는 권면과 그러지 않고 계속해서 악을 행하면 너희와 너희 왕이 망할 것이라는 경고가 나옵니다.

이 부분은 14-15절의 반복으로 사무엘은 반복적으로 여호와 경외와 섬김을 강조하면서 그러지 않으면 멸망 당할 수 있음을 경고합니다. 아무리 이스라엘을 지키기 위한 왕을 세워도 인간 왕은 결코 하나님을 이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스라엘 백성이 의지해야 할 것은 왕이 아니라 하나님 한 분이신 것입니다. 눈앞에 보이는 힘과 권력과 돈을 의지하려는 우리에게 사무엘은 그런 것은 모두 소용없고 오직 하나님만을 왕으로 섬기며 순종할 때 우리가 승리하고 살아갈 수 있음을 알려줍니다. 그 이유는 바로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지금까지 우리를 구원하시며 도우시고 복을 주시는 진정한 왕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같이 연약한 사람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신 것을 기뻐하시고 잘못할 때는 벌하시더라도 절대로 버리지는 않으십니다. 사무엘은 믿음이 약한 백성을 위해 항상 기도하고 많은 것을 가르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큰일을 기억하고, 그만 경외하며 마음을 다해 진실하게 섬겨야 했습니다. 이것이 성도들이 해야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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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12-01)


고별 설교한 선지자 사무엘

사무엘상 12장 1-15절


 

능력 있는 사람은 삶에서 능력이 그대로 나타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인격, 청결한 양심, 청렴결백한 삶이 그대로 나옵니다. 사무엘은 이러한 생활에 모델이었습니다. 오늘날은 사회적으로나 교계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비리가 너무 난무한 시대입니다. 정말 하나님만 사랑하는 깨끗한 사람이 필요할 때입니다.

 

  • 사울은 제비뽑기로 왕이 되었지만, 모든 백성에게 구원자로 인식되고 그들의 지지 받게 된 것은 암몬과의 전쟁 이후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사울을 미리 왕으로 선택하셨지만, 백성이 지지하고 믿고 따를 때까지 기다려주셨습니다. 사울이 이스라엘의 공식적인 지도자인 왕으로 등극하면서, 사무엘은 나이가 많아 공식적인 사역에서 은퇴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은퇴 연설하고 있습니다.

 

사무엘의 고별사(1-5)

오늘날 우리 시대에는 리더십의 위기라고 합니다. 정치 지도자나 심지어는 영적 지도자들까지도 믿고 본받고 모든 사람이 존경하고 신뢰할 만한 지도자를 찾기가 어렵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특별히 지도자의 자리를 통해 섬기는 지도자, 정직한 지도자, 흠 없는 지도자의 모습을 정치 지도자는 물론이고, 영적 지도자에게서도 찾아볼 수 없다고 합니다. 사무엘은 이러한 면에서 훌륭한 지도자로서 본보기가 되었던 사람입니다.

 

1사무엘이 온 이스라엘에게 이르되 보라 너희가 내게 한 말을 내가 다 듣고 너희 위에 왕을 세웠더니 2이제 왕이 너희 앞에 출입하느니라 보라 나는 늙어 머리가 희어졌고 내 아들들도 너희와 함께 있느니라 내가 어려서부터 오늘까지 너희 앞에 출입하였거니와 3내가 여기 있나니 여호와 앞과 그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 앞에서 내게 대하여 증언하라 내가 누구의 소를 빼앗았느냐 누구의 나귀를 빼앗았느냐 누구를 속였느냐 누구를 압제하였느냐 내 눈을 흐리게 하는 뇌물을 누구의 손에서 받았느냐 그리하였으면 내가 그것을 너희에게 갚으리라 하니 4그들이 이르되 당신이 우리를 속이지 아니하였고 압제하지 아니하였고 누구의 손에서든지 아무것도 빼앗은 것이 없나이다 하니라 5사무엘이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가 내 손에서 아무것도 찾아낸 것이 없음을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대하여 증언하시며 그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도 오늘 증언하느니라 하니 그들이 이르되 그가 증언하시나이다 하니라(1-5)

 

사무엘은 사울이 초대 왕으로 취임식을 마친 다음, 평생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백성을 섬겼던 일을 마칩니다. 그는 이스라엘이 원했던 왕이 세워지므로 마지막 사사로 퇴임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고별사를 하고 있습니다. 가나안 정착 시점에 여호수아의 고별사가 주어진 것처럼, 왕국 시대의 시점에서도 사무엘의 고별사로부터 시작합니다.

 

(1) 왕을 세운 사무엘(1-2)

 

사울이 정식으로 왕으로 등극하고 통치권을 갖자 사무엘은 사사직에서 완전히 물러나면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고별 연설합니다. 사무엘이 비록 사사직에서 물러나지만, 여전히 선지자이며 제사장이기에 영적인 지도력은 가지고 있었고, 이것은 13장과 15장에 잘 나타납니다.

 

사무엘의 연설은 자신의 은퇴 이유와 사역에 대한 평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사무엘이 은퇴하는 이유는 왕이 세워졌기 때문입니다. 그는 백성들의 요청대로 왕을 세우는 일을 마쳤고, 그래서 이제 왕이 이스라엘 백성을 다스리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 사무엘이 지도력을 가질 수 없었습니다.

사무엘은 비록 백성들의 왕을 세워달라는 요구를 자신을 더는 지도자로 생각하지 않다는 것으로 여기고 섭섭했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백성들의 요청을 들어주었습니다. 자신의 임무를 충실하게 수행한 후에 지도자 자리에서 은퇴한 것입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흰머리가 될 때까지 평생 이스라엘의 지도자로서 일하였지만, 그것에 연연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떠나라고 하실 때 미련 없이 떠나고 있습니다.

 

(2) 의로운 통치(3-4)

 

사무엘의 연설에서 두 번째 부분은 자신의 사역에 대한 평가입니다. 사무엘은 여호와와 그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 즉 왕을 재판장으로 앉히고 백성들을 증인으로 세우고 있습니다. 그동안 자신이 청렴결백하게 사역하였다는 것을 주장하기 위해 재판의 상황을 설정한 것입니다.

 

사무엘은 증인으로 설정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자신에 대해 불리한 증언을 해보라고 말하면서, 구체적으로 다섯 가지의 질문을 통해 자신의 결백함을 주장합니다. 소ㆍ나귀는 당시 사람들의 일반적인 재산을 상징하는 것으로 사무엘은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백성들의 재산을 함부로 빼앗지 않았음을 주장하는 것입니다. 권력을 가진 사람은 그 권력을 이용해서 부를 축적하려 하기 때문에 힘없는 사람들의 재산을 빼앗는 일이 비일비재했습니다. 그러나 사무엘은 부당하게 부를 축적하는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자신이 백성들에게 폭정을 행했느냐고 묻습니다. 권력자들은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약자들을 억압하고 자신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으면 함부로 폭력을 행사했습니다. 하지만 사무엘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권력을 함부로 사용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마지막으로 사무엘은 자신의 눈을 흐리게 만드는 뇌물을 받았느냐고 묻습니다. 이것은 정의의 문제와 관련된 질문으로 사사 사무엘은 재판하거나 백성간 소송을 다룰 때 뇌물을 받음으로 정의를 굽게 만드는 일을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무엘의 질문은 모두 당시 권력자들이 행하고 있던 잘못된 행태를 지적하며 자신은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았음을 주장하는 것입니다.

 

(3) 증인 소환(5)

 

사무엘의 질문에 백성들은 당신은 우리를 속이지 않았고 압제하지 않았고, 특히 누구의 손에서 아무것도 빼앗지 않았다고 말함으로 사무엘이 완벽하게 결백하다는 것을 증언합니다. 백성들의 증언에 사무엘은 너희의 증언에 대해 여호와와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증인이라고 말하며, 그래도 괜찮은지 물어봅니다. 그러자 백성들은 그들이 증인이 되어도 된다고 말합니다. 이것으로 그들은 자신들의 말이 진심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무엘은 모든 백성들이 인정하는 청렴결백하고 정의로운 지도자였습니다. 이런 지도자로 평생을 살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하나님을 진정으로 두려워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함부로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는 행동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구원 역사(6-11)

하나님께서는 이방 나라의 압제에서 신음하여 부르짖을 때마다 그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하고 왕을 세워달라고 요구하였던 것입니다. 따라서 그들의 요구에 따라 왕을 세워 통치권을 넘겨주는 자리에서 사무엘은 마지막으로 그들의 잘못을 책망하면서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고 섬기며 그분의 명령에 따르지 않을 경우 당할 무서운 징벌을 경고하였습니다.

 

6사무엘이 백성에게 이르되 모세와 아론을 세우시며 너희 조상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이는 여호와이시니 7그런즉 가만히 서 있으라 여호와께서 너희와 너희 조상들에게 행하신 모든 공의로운 일에 대하여 내가 여호와 앞에서 너희와 담론하리라 8야곱이 애굽에 들어간 후 너희 조상들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을 보내사 그 두 사람으로 너희 조상들을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 이 곳에 살게 하셨으나 9그들이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잊은지라 여호와께서 그들을 하솔 군사령관 시스라의 손과 블레셋 사람들의 손과 모압 왕의 손에 넘기셨더니 그들이 저희를 치매 10백성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우리가 여호와를 버리고 바알들과 아스다롯을 섬김으로 범죄하였나이다 그러하오나 이제 우리를 원수들의 손에서 건져내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주를 섬기겠나이다 하매 11여호와께서 여룹바알과 베단과 입다와 나 사무엘을 보내사 너희를 너희 사방 원수의 손에서 건져내사 너희에게 안전하게 살게 하셨거늘(6-11)

 

사무엘은 지난 역사를 회고하면서 하나님께서 얼마나 언약에 신실하셨는지를 환기시킵니다. 또한 그것을 줄곧 그 하나님께 반역했던 백성들의 역사와 대조합니다. 분에 넘치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으면서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려 보다는 열방과 같이 왕을 요구하는 것은 분명히 욕심입니다.

 

(1) 이스라엘의 해방(6-8)

 

이 단락에서도 앞 단락의 법정 설정이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앞 단락에서는 사무엘에 대한 무죄가 증명되었다면, 이 단락에서는 여호와의 무죄를 천명합니다.

 

사무엘은 6절에서 여호와를 소개하면서 모세와 아론을 세워 애굽 땅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신 분이라고 합니다(6). 오경 밖에서는 모세뿐만 아니라 아론도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한 인물로 함께 등장합니다(수 24:5; 미 6:4: 시 77:21; 105:26).

사무엘은 여호와를 소개한 뒤에 백성들에게 ‘너희는 가만히 있으라’라고 말하고 자신이 여호와 앞에서 여호와를 변론하겠다고 합니다. 이것은 자신이 여호와에 대해서 말하는 것을 잘 들으라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사무엘은 여호와를 위한 변호사 역할을 하고, 백성들은 배심원이자 증인으로, 그리고 여호와는 재판관이자 피고인으로 설정됩니다. 사무엘은 일단 여호와는 이스라엘과 이스라엘의 조상들에게 공의를 행하신 분이라고 주장합니다.

 

(2) 사사들의 구원(9-11)

 

그리고 9-11절은 여호와께서 공의로운 분이 되시는 역사적 증거들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첫째 증거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의 압제에서 구원하신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심한 노역으로 인해 괴로워하며 여호와께 부르짖을 때 응답하시고 구원해주셨고 그들에게 가나안 땅을 주셨습니다.

둘째 증거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살면서 여호와를 잊고 가나안 우상을 섬길 때, 이들을 하솔 왕 시스와 블레셋 사람들과 모압 왕의 손에 넘겨서 징벌하셨지만, 이스라엘 백성이 다시 여호와께 부르짖으며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자 다시 구원자들을 보내주셔서 구원하신 일입니다. 여기서 ‘구원자’, 즉 ‘사사’로 언급된 인물들은 여룹바알인 기드온과 입다와 사무엘과 베단입니다. 이것을 보면 사무엘도 사사 중의 한 명인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어려운 것은 ‘베단’입니다. 사사들 중에 베단이라는 인물은 없습니다. 70인경(LXX)에서는 ‘베단’을 ‘바락’으로 번역하고 있고, 이 전통을 따라 히브리서 11:32의 믿음의 인물 명단에서 ‘바락’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 다. 이 ‘베단’이라는 이름은 ‘바락’과 ‘드보라’ 이름의 첫 자음들이 섞여 있는 형태이기 때문에, 정확히 누구를 말하는지 알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사사기의 전통에 따르면, 시스라와 전쟁할 당시 사사는 드보라이고 바락은 군대 장관으로 드보라의 명령을 따르던 인물입니다. 그러므로 베단은 드보라를 잘못 표기한 것으로 보는 것이 사사기와의 연결 속에서 볼 때 더 타당해 보입니다. 혹자는 드보라가 전쟁에 직접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구원자가 아니며, 바락을 사사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11절에 등장한 사무엘도 직접 칼을 들고 전쟁에 참여한 인물이 아니기에 그런 이유로 드보라를 사사의 명단에서 제외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라고 권고(12-15)

여호와를 경외함은 두려워하고 존경하는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을 말합니다. 즉 가장 존엄한 분이시며 우주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가까이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지 않음은 하나님의 율법을 그대로 실천하는 삶을 말합니다.

 

12너희가 암몬 자손의 왕 나하스가 너희를 치러 옴을 보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너희의 왕이 되심에도 불구하고 너희가 내게 이르기를 아니라 우리를 다스릴 왕이 있어야 하겠다 하였도다 13이제 너희가 구한 왕, 너희가 택한 왕을 보라 여호와께서 너희 위에 왕을 세우셨느니라 14너희가 만일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를 섬기며 그의 목소리를 듣고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지 아니하며 또 너희와 너희를 다스리는 왕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따르면 좋겠지마는 15너희가 만일 여호와의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고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면 여호와의 손이 너희의 조상들을 치신 것 같이 너희를 치실 것이라(12-15)

 

이스라엘은 왕과 백성 모두 주변 나라와 같은 왕이나 그런 나라를 동경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왕은 하나님 한 분만 왕으로 모시고 언약을 준수하며 사는 백성이 되어야 합니다. 사무엘은 왕정 제도가 비록 하나님의 뜻에 따라 시작된 것은 아닐지라도, 장차 그들이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행하느냐에 따라서 축복과 저주의 길이 엇갈리게 될 것을 경고하였습니다.

 

(1) 왕정 수립(12-13)

 

하나님의 무죄 혹은 의로움을 주장한 사무엘은 이번에는 백성들을 고발합니다. 그들이 왕이신 여호와를 버리고 인간 왕을 세워달라고 한 것이 고발 사유입니다.

사무엘은 백성들의 요청을 듣고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왕을 세우는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사울을 왕으로 세웠습니다. 하지만 사무엘상 8:7-8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한탄을 기억하고 있던 사무엘은 그들이 하나님 대신 인간 왕을 세우는 것이 어떤 의미였는지를 백성들에게 분명히 알려주고 있습니다. 암몬와 나하스가 이스라엘을 공격하려고 하자 왕을 세워달라고 요청한 것은 지금까지 그들의 왕으로 계시며 그들을 구원해 주신 하나님을 버리는 행위였다는 것입니다. 이런 백성들의 행동을 지금 여호와께 고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2) 순종의 권면(14-15)

 

하지만 여기서 끝나지 않고 사무엘의 연설은 권고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비록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너희가 구하던 왕을 세워주시는 은혜를 베풀어주셨다고 말하면서, 이렇게 하나님께서 너희 말을 들어주셨으니 너희도 여호와의 말씀을 잘 들으라고 합니다. 너희와 너희 왕이 여호와를 경외하고 그의 말씀에 순종하면 좋겠지만, 만일 그렇지 않으면 여호와의 손이 사사시대처럼 이스라엘 백성을 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비록 인간 왕이 세워졌지만,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것은 사사시대와 마찬가지로 여호와이시며 이스라엘의 궁극적인 왕은 여호와이시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사무엘은 끝까지 지도자로서 백성들의 잘못을 지적하고 바르게 살 수 있도록 지도하였습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율법 아래 순종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나 왕이나 모두 하나님의 율법 아래 순종해야할 존재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왕정을 허락하셨지만, 여전히 하나님만이 왕이라는 시내산 언약은 유효합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이방 나라 같은 왕이 세워졌을지라도 이방 나라 같은 왕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기는 인간 왕이 되어야 하며, 그 왕을 통해 온전히 하나님을 더 왕으로 모셔야 되는 것이 그들의 과제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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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11-01)


지도자로서 시험대에 오른 사울

사무엘상 11장 1-15절


 

다윗 왕에 다음으로 왕위에 오른 솔로몬은 하나님께 제일 먼저 일천 번제를 드립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 지혜의 응답하십니다. 기도 응답을 받은 솔로몬은 하나님께 지혜를 받았습니다. 지혜를 받은 다음에는 그 지혜가 있는지 없는지에 시험대에 오릅니다. 그것이 바로 유명한 ‘솔로몬의 재판’입니다.

 

  • 본문은 사울의 왕권이 온 백성의 지지를 받게 되는 결정적 계기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암몬 사람 나하스의 침공으로 국가적인 위기를 맞습니다. 이러한 위기 속에서 사울은 여호와의 신에 감동되어 암몬과의 전쟁에 동참하고 위기를 극복하게 됩니다. 이것이 이스라엘 왕으로서 리더십이 확실히 서는 계기가 됩니다.

 

암몬의 야베스 침공(1-4)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 사명을 감당할 힘과 용기를 구한다면 반드시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서 자신의 자격을 바라보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덧입도록 간절히 기도하며 부르심에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소심한 사울을 담대하게 하신 하나님께서 바로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1암몬 사람 나하스가 올라와서 길르앗 야베스에 맞서 진 치매 야베스 모든 사람들이 나하스에게 이르되 우리와 언약하자 그리하면 우리가 너를 섬기리라 하니 2암몬 사람 나하스가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 오른 눈을 다 빼야 너희와 언약하리라 내가 온 이스라엘을 이같이 모욕하리라 3야베스 장로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에게 이레 동안 말미를 주어 우리가 이스라엘 온 지역에 전령들을 보내게 하라 만일 우리를 구원할 자가 없으면 네게 나아가리라 하니라 4이에 전령들이 사울이 사는 기브아에 이르러 이 말을 백성에게 전하매 모든 백성이 소리를 높여 울더니(1-4)

 

사무엘은 사울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삼았고, 또 제비뽑기를 통해서 왕으로 선택받았습니다. 하지만 사울이 이스라엘 사람들의 필요를 위해서, 그들의 지지를 받고 왕으로 세움을 받은 사람이 아닙니다. 따라서 백성들이 보내는 인기와 인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정으로 왕권 유지를 결정할 것입니다. 이제 왕으로 뽑힌 사울은 이제 왕으로서 전투력과 지도력을 입증해야 할 과제를 안게 되었습니다.

 

(1) 암몬의 공격(1-2)

 

사무엘에 의해 제비뽑기를 통해 사울이 왕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입니다. 아직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울을 왕으로 완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을 때, 암몬 사람 나하스가 길르앗 야베스로 올라와 전쟁하려고 진을 쳤습니다(1). 70인경(LXX)에서는 대략 한 달 정도 지났다고 말합니다.

길르앗 야베스는 요단강 동편에 있는 지역으로 사사기에서 보듯이 당시에는 요단강 동편과 서편 사이에는 갈등이 있었고, 하나의 공동체라는 의식이 약했습니다.

길르앗 야베스에 암몬 사람 나하스가 쳐들어오자 야베스 사람들은 나하스와 싸우기보다는 조약을 맺고 봉신으로서 섬기겠다고 제안합니다(1b). 암몬과 전쟁하는 것을 두려워하였기에 차라리 조공을 바치는 속국이 되겠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사사 시대에 이스라엘이 이방 민족의 지배를 받는 일이 흔히 있었습니다(삿 3:8; 6:1-2).

야베스 사람들의 이런 제안에 대해 암몬 나하스는 길르앗 야베스 사람의 오른쪽 눈을 다 빼내야 조약을 맺겠다고 치욕적인 조약을 제하며 조롱합니다(2). 여기서 오른쪽 눈을 뺀다는 것은 전투력을 상실하게 만들어 항복하게 하거나 싸울 수 없는 상대를 모두 죽이겠다는 의미입니다. 더욱이 나하스는 오른쪽 눈을 빼는 것이 이스라엘을 조롱하는 것이라고까지 말합니다. 그의 목적은 길르앗 야베스를 속국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조롱하고 모욕을 주다가 모두 죽이는 것이었습니다. 더 나가서 나하스는 모든 이스라엘까지 공격할 수도 있음을 암시합니다.

 

(2) 야베스 사람들의 구원 요청(3-4)

 

이런 암몬 나하스의 어처구니없는 요구에 길르앗 야베스의 장로들은 일주일 말미를 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들은 나하스에게 이스라엘 전 지역에 전령을 보내어 자신들을 위해서 싸워줄 구원자를 찾지 못하면 나하스가 원하는 데로 항복하겠다고 약속합니다. 자신들을 위해 싸워줄 구원자를 찾을 시간을 달라는 길르앗 야베스 장로들의 부탁은 항복하기 전에 일말의 희망이라도 잡아보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제안을 암몬 나하스가 쉽게 허락해 줍니다. 이는 나하스의 양보는 이스라엘의 전쟁 능력을 얕보고 군사적 우월감에서 나온 것입니다. 일주일 안에 이스라엘 안에서 구원자를 찾기 어려울 것이고, 군사를 모으더라도 자신의 상대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한 것입니다. 시간을 주었는데도 구원자를 못 구하면 그것으로 이스라엘을 더 조롱하겠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런 나하스의 판단은 당시 이스라엘의 군사적 상황이 주변 나라에게 조롱을 받을 만큼 열악했음을 보여줍니다.

 

야베스의 전령들이 요단강을 건너 서쪽 지역까지 이스라엘 전역을 돌아다니다 소식을 전했고, 사울이 살고 있는 기브아까지 도착하게 됩니다. 길르앗 야베스에서 기브아까지는 대략 이틀 정도 거리입니다.

기브아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처지를 알리자 기브아의 사람들은 큰 소리로 울면서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의 불행에 같이 슬퍼하였습니다. 역사적으로 베냐민을 상대로 한 지파 전쟁에 야베스 사람들은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야베스 사람들은 거의 진멸을 당하고 처녀 400명만 남게 되었고, 이들은 베냐민 남자들과 결혼하게 됩니다(삿 21:8-14). 이렇게 길르앗 야베스와 베냐민 지파는 관계가 긴밀한 관계이기 때문에 기브아 사람들이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의 상황에 매우 슬퍼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른 나라처럼 자신들을 대신해 이웃 나라와 싸워줄 왕을 세워달라고 요구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런 위기 속에서도 직접 하나님께 간구하거나 왕으로 뽑은 사울에게 도와달라고 부탁하는 모습은 등장하지 않습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직 사울을 구원자, 왕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사울의 등장과 승리(5-11)

하나님의 백성들의 일하는 방식은 단 하나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을 받고 그의 도우심을 받는 것입니다. 전력이 약하고 조롱당하더라도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고 도와주시면 어떤 적이라도 무력하게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사울은 전쟁은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5마침 사울이 밭에서 소를 몰고 오다가 이르되 백성이 무슨 일로 우느냐 하니 그들이 야베스 사람의 말을 전하니라 6사울이 이 말을 들을 때에 하나님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매 그의 노가 크게 일어나 7한 겨리의 소를 잡아 각을 뜨고 전령들의 손으로 그것을 이스라엘 모든 지역에 두루 보내어 이르되 누구든지 나와서 사울과 사무엘을 따르지 아니하면 그의 소들도 이와 같이 하리라 하였더니 여호와의 두려움이 백성에게 임하매 그들이 한 사람 같이 나온지라 8사울이 베섹에서 그들의 수를 세어 보니 이스라엘 자손이 삼십만 명이요 유다 사람이 삼만 명이더라 9무리가 와 있는 전령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길르앗 야베스 사람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내일 해가 더울 때에 너희가 구원을 받으리라 하라 전령들이 돌아가서 야베스 사람들에게 전하매 그들이 기뻐하니라 10야베스 사람들이 이에 이르되 우리가 내일 너희에게 나아가리니 너희 생각에 좋을 대로 우리에게 다 행하라 하니라 11이튿날 사울이 백성을 삼 대로 나누고 새벽에 적진 한가운데로 들어가서 날이 더울 때까지 암몬 사람들을 치매 남은 자가 다 흩어져서 둘도 함께 한 자가 없었더라(5-11)

 

사울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왕으로 선출되긴 했지만, 아직까지 보편적으로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과거처럼 자기 직업인 농사를 짓는 형편이었습니다. 하지만 위기에 진정한 리더십은 드러납니다.

 

(1) 군대를 소집하는 사울(5-8)

 

이런 상황에서 사울이 등장합니다. 본문은 ‘히네’라는 단어를 통해 강조하면서 구원자의 등장을 알리고 있습니다.

 

사울은 왕이 되었지만, 아직까지 이스라엘에게 왕으로서 인정받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나랏일보다 원래 자신이 하던 일, 즉 밭을 갈다가 소를 몰고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성읍에서 백성들이 우는 것을 보고 그냥 지나치지 않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자초지종을 물었습니다.

 

이에 백성들은 야베스 사람들의 말을 사울에게 전해주었습니다. 이 말을 들을 때 사울에게 하나님의 영이 강하게 임하였고, 사울은 크게 분노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울은 이스라엘의 구원자로서 하나님의 이스라엘 백성에게 고난과 이방인의 조롱을 참을 수가 없었고, 하나님의 영은 사울에게 이들을 구원할 힘과 용기를 준 것입니다.

 

(2) 군대 소집(7-8)

 

사울은 한 겨리의 소를 각을 떠서 이스라엘 모든 지역에 보내 군사를 소집합니다. 사울이 매우 단호하게 “누구든지 나와서 사울과 사무엘을 따르지 아니하면 그의 소들도 이와 같이 하리라”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짐꾸러미에서 숨어서 떨던 그 겁쟁이 사울이 맞나 싶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이 임하면 소심쟁이 사울 왕이 이렇게 대단한 하나님의 용감한 왕으로 그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변화될 수 있다는 볼 수 있습니다.

 

사사 시대에는 지파들이 다 흩어져서 함께 힘을 합하여 싸우거나 한마음으로 모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달라졌습니다. 지역마다 세워졌던 사사들이 물러가고, 이제 한 왕이 통치하는 중앙집권 정치가 시작된 것입니다.

사울이 온 이스라엘에게 급히 전령을 통해 연락을 보냈습니다. 온 백성들에게 ‘여호와의 두려움’이 임해 하나같이 나아왔습니다. 그 모인 사람들이 이스라엘 지파에서 30만 명, 유다 지파에서 3만 명이 모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나아갈 때 돕는 손길을 붙여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면, 사람의 마음은 하나로 모입니다.

 

(3) 야베스 사람의 기쁨(9-10)

 

전쟁 준비를 마친 사울은 전령들을 통해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에게 다음 날 구원받게 될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야베스 사람들은 암몬 사람들에게 다음 날 항복하겠다고 하면서 방심하게 만듭니다. 이튿날 새벽, 사울은 드디어 군사작전을 감행합니다. 그는 군사를 셋으로 나누고 유인과 매복을 통한 양동작전을 쓴 것입니다. 적진 한가운데로 들어가 싸웠고, 하나님께서는 큰 승리를 주십니다(11).

 

암몬과의 전쟁은 시작부터 과정, 마지막 승리에 이르기까지 하나님께서 함께하신 전쟁입니다. 그 결과는 당연히 큰 승리였습니다. 사울을 이스라엘 왕으로 세우신 하나님께서는 사울이 이끄는 군대에게 큰 승리를 주심으로 그의 왕권을 든든하게 세워주셨습니다.

 

길갈에서의 즉위식(12-15)

사람들의 인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정이 중요합니다. 온전한 리더십은 결코 칼끝에서 세워지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지도자는 사람들의 인정보다 하나님의 인정이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능력으로 사람들의 인정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자로서 살아가야 합니다.

 

12백성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사울이 어찌 우리를 다스리겠느냐 한 자가 누구니이까 그들을 끌어내소서 우리가 죽이겠나이다 13사울이 이르되 이 날에는 사람을 죽이지 못하리니 여호와께서 오늘 이스라엘 중에 구원을 베푸셨음이니라 14사무엘이 백성에게 이르되 오라 우리가 길갈로 가서 나라를 새롭게 하자 15모든 백성이 길갈로 가서 거기서 여호와 앞에서 사울을 왕으로 삼고 길갈에서 여호와 앞에 화목제를 드리고 사울과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거기서 크게 기뻐하니라(12-15)

 

전쟁에서 승리한 이스라엘은 이제 두려움이 기쁨으로 변합니다. 백성은 사울의 비방했던 자들을 복수하겠다고 나설 만큼 사울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며 그의 공로를 인정합니다. 하지만 사랑과 관용으로 이스라엘을 인도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1) 백성들의 사울 지지(12-13)

 

사울이 큰 승리를 이끌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제야 사울의 지도력을 인정합니다. 그들이 그토록 원했던 전쟁에 나가서 대신 싸워줄 왕이 필요하다고 외쳤었는데, 바로 사울이 그런 왕의 모습을 보인 것입니다.

 

승리에 고무된 이스라엘 백성들이 전에 사울을 업신여기며 조롱했던 불량배들에게 본때를 보여줄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들을 색출해 처치하자고 충돌질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12). 그들은 미스바에서 반대하는 불량배들이 사울을 향해 ‘이 사람이 어떻게 우리를 구원하겠느냐?’(10:27)라고 조롱했었습니다. 결국 ‘사울이 우리를 다스릴 수 있겠느냐?'라는 말입니다. 다스리는 것은 구원하는 것을 전제하기 때문입니다.

 

사울은 승리에 도취되어 잘못된 반판을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여호와께서 구원을 주신 기쁜 날에 형제를 죽이는 일이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언제나처럼 신중하고 겸손하고 사람들을 품는 사랑의 태도를 보입니다. 품이 넓은 리더, 온유한 리더, 지혜로운 리더의 모습으로 변화된 사울입니다. 바람직한 리더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울의 고백처럼 여호와께서는 구원을 이루신 분입니다.

 

(2) 길갈의 즉위식(14-15)

 

사울을 돋보이게 한 것은 그의 곁에 사무엘이 있다는 것입니다. 사무엘은 승리의 감격으로 한껏 고무된 백성을 진정시키면서, 길갈로 이끌고 나아갑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감사와 기쁨의 제사를 올려드립니다.

사무엘은 전쟁의 승리를 백성들만 즐거워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온 백성이 기뻐할 수 있는 그 제자로 이어지게 합니다. 그리고 나라를 새롭게 하자고 설득합니다. 이에 백성이 함께 길갈로 가서 공식 즉위식을 열어 사울을 왕으로 추대하고, 하나님 앞에 화목제 제사드리며 기뻐했습니다. 사울 왕의 공식적인 취임을 선포합니다. 길갈은 여리고 북동쪽에 있을 것으로 추측되며 정확한 위치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수 4:19).

 

사울의 즉위는 세 단계로 이루어졌습니다. 첫째, 여호와의 기름부음을 받았고(10:1), 둘째, 미스바에서 왕으로 선출 되었고(10:17-24). 셋째, 길갈에서 민족 대통합 즉위식을 거행하였습니다(11:15).

 

여호와께서 이 모든 과정을 계획하시고 주도적으로 이끌어가셨습니다. 마지막 사사이며 선지자였던 사무엘이 사울을 적극적으로 도왔습니다. 사울은 겸손하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사무엘의 지도를 받았습니다.


사울은 공동체가 처한 위기에 용기 있게 대응합니다. 거룩한 분노와 결기, 지혜와 능력, 용서와 포용력으로 왕의 권위를 인정받습니다. 사람들은 힘을 가지면 자기를 증명하고 싶어지지만, 그는 슬기롭게 유혹을 극복하고 이스라엘의 왕으로 등극합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무엇을 주셨습니까? 하나님의 권능과 권위를 갖게 하셨습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두렵고 떨림으로 행사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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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10-02)


백성 앞에서 왕으로 추대되는 사울

사무엘상 10장 17-27절


 

사람들은 많은 사람에게 인정받으려고 노력합니다. 인기인이 되기 위해 얼마나 노력합니까? 스포츠인으로, 연예인으로 그리고 자기 분야에 최고가 되기 위해 밤낮으로 쉬지 않고 노력합니다. 성도들은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려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다는 것을 압니다.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먼저 하나님께 인정받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인정받고 나면, 결국에는 사람들에게도 인정받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구한 것처럼 왕을 세웁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정치는 ‘왕정정치(王政政治)’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관하는 ‘신정정치(神政政治)’라는 것을 선포합니다. 그리고 사무엘은 개인적으로 사울에게 기름을 부어서 그가 왕이 되었음을 인정했고, 그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공식적인 과정을 걸쳐서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사울을 왕으로 세워 가십니다.

 

왕을 선출하는 미스바 성회(17-21)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망각하면서, 눈에 보이는 힘과 권력을 쫓는 속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문제가 발생하면 전능하신 하나님께 구하기보다는 다른 곳에서 해결책을 찾으려고 합니다. 이러한 모습을 보고, 하나님께서는 서운함을 느끼십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만왕의 왕으로 섬기시길 원합니다.

 

17사무엘이 백성을 미스바로 불러 여호와 앞에 모으고 18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고 너희를 애굽인의 손과 너희를 압제하는 모든 나라의 손에서 건져내었느니라 하셨거늘 19너희는 너희를 모든 재난과 고통 중에서 친히 구원하여 내신 너희의 하나님을 오늘 버리고 이르기를 우리 위에 왕을 세우라 하는도다 그런즉 이제 너희의 지파대로 천 명씩 여호와 앞에 나아오라 하고(17-19)

 

사무엘은 사울에게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고 성령이 임하며 왕이 될 모든 절차와 준비를 마쳤습니다. 이제 사울이 백성들 앞에서 왕으로 등극하는 일만 남았습니다. 이 일을 준비하면서 사무엘은 온 이스라엘 백성들을 미스바로 불러 여호와 앞에 모이게 하였습니다.

 

(1) 선출 장소(17)

 

사무엘은 이스라엘 백성을 미스바로 불렀습니다. 왜냐하면 기름 부음을 통해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사울을 왕으로 세울 정치적 절차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미스바는 베냐민 땅의 북서 경계선에 해당하는데, 7장에서 사무엘이 취임한 이후에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기 위해 공식적인 모임을 가진 장소입니다. 여기서 민족의 대규모 집회가 자주 개최되었습니다(삿 20:1,3; 삼상 7:5,6). 당시 미스바가 이스라엘의 종교적 정치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 도시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2) 사무엘의 선언(18-19)

 

사무엘은 왕을 선출하기 위해 모든 이스라엘 백성을 미스바로 불러 모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미스바로 모이자, 사무엘은 선지자로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그는 먼저 앞서서 백성들에게 이스라엘의 진정한 왕이신 하나님께서 이 백성들을 위해 어떤 일을 하셨는지를 하나하나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여기서 사무엘은 “여호와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길”라고 말합니다(18). 이 문구는 선지자들이 전하는 전형적인 표현입니다. 이 문구 다음에는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시는 것으로 나옵니다.

하나님께서는 왕을 제비뽑기하기 전에, 먼저 ‘내가 너희를 애굽인의 손과 너희를 압제하는 모든 나라의 손에서 건져내었다’(1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표면적으로 출애굽과 가나안 정복 사건을 요약해서 말씀하고 있는 것 같지만, 이렇게 역사적 사건을 언급하신 진짜 이유는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이스라엘이 왕에게 바라는 모든 일, 즉 적들의 손에서 구원한 일을 신실하게 하신 이스라엘의 진정한 왕이라는 것입니다. 즉, ‘내가 너희의 진정한 왕이다.’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마음을 사무엘은 조금 더 자세히 “너희는 너희를 모든 재난과 고통 중에서 친히 구원하여 내신 너희의 하나님을 오늘 버리고 이르기를 우리 위에 왕을 세우라 하는도다”(19)라고 설명합니다. 이것은 출애굽이나 가나안 정복 사건 말고도, 이스라엘이 어렵고 힘들 때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보호해 주시고 구원해 주시는 왕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지금 너희의 왕을 뽑는 행동이 하나님께는 어떤 의미 행동인지 분명히 알려 주십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구원하셨는데, 이스라엘은 구원자이신 여호와를 거부하고 왕을 세우기를 요청했습니다. 만왕의 왕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고 다른 나라처럼 우리도 왕을 세워달라고 요구하며 부르짖었던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을 위해 한 왕을 세워 주셨음을 결정하심을 알립니다.

 

여기서 왕정제도에 대한 하나님의 관점을 보여줍니다. 왕정제도에 대한 하나님의 조건적 관용을 베푸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원하고 당시 고대 근동의 모든 나라에서 왕정제도를 시행하고 있었기에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허락하시되 주변 나라들과 달리 하나님께서 왕을 선택하시고 왕은 하나님 말씀에 복종하여 하나님을 왕으로 여기며 섬겨야 됩니다.

여기에서 눈에 띄는 문장은 “오늘 하나님을 버리고”라는 말입니다. 이 선언에서 인간 왕을 요구하면서 그들의 왕이신 하나님을 버리는 이스라엘의 믿음 없음을 사무엘은 비난하고 있습니다. 그 왕을 더 의지하고 갈망하는 세상 속한 왕이 있다는 것은 바로 하나님을 버리는 것이다 라는 말입니다. 하지만 사무엘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제비뽑기를 통한 왕 선출 절차를 진행합니다. 사무엘은 이미 사울의 머리에 기름을 부어 그를 왕으로 정해 두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사실을 백성들 앞에서 공포만 해도 큰 무리는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초대 왕은 백성의 공감을 얻어 세워지기 위해서는 보다 공식적인 과정이 필요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울을 선택하여 세우셨다는 것을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확증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사무엘은 백성을 모아 놓고 일련의 선출과정을 거친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사무엘은 어떠한 영향력도 행사하지 않았습니다.

 

왕을 선택하기 위한 제비뽑기(20-24)

구원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옴을 기억해야 합니다. 왕을 세우는 것은 백성들의 소원이 이루어진 날이지만, 하나님께는 불순종한 날입니다. 이스라엘처럼 우리가 섬기는 왕의 실체가 무엇인지 밝히 드러날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때 부끄러움의 자리에 있지 않도록 오직 주님을 우리의 왕으로 모시고 우리의 유일한 구원자란 것을 잊지 않고 살아가는 주의 백성들이 되어야 합니다.

 

20사무엘이 이에 이스라엘 모든 지파를 가까이 오게 하였더니 베냐민 지파가 뽑혔고 21베냐민 지파를 그들의 가족별로 가까이 오게 하였더니 마드리의 가족이 뽑혔고 그 중에서 기스의 아들 사울이 뽑혔으나 그를 찾아도 찾지 못한지라 22그러므로 그들이 또 여호와께 묻되 그 사람이 여기 왔나이까 여호와께서 대답하시되 그가 짐보따리들 사이에 숨었느니라 하셨더라 23그들이 달려 가서 거기서 그를 데려오매 그가 백성 중에 서니 다른 사람보다 어깨 위만큼 컸더라 24사무엘이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여호와께서 택하신 자를 보느냐 모든 백성 중에 짝할 이가 없느니라 하니 모든 백성이 왕의 만세를 외쳐 부르니라(20-24)

 

하나님의 심정을 설명한 후에 사무엘은 드디어 왕을 뽑는 의식을 시작합니다. 제비뽑기 방법은 먼저 열두 지파 중에서 한 지파를 뽑고, 그 다음 부족 단위에서 한 부족을 뽑고, 그 다음 가족별로 뽑고, 그 가족 중에서 한 사람을 제비로 뽑는 방식을 택하셨습니다.

 

(1) 제비뽑기(20-21)

 

사무엘은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제비뽑기로 왕을 선출합니다. 제비뽑기 방식은 구약에서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는 가장 흔한 방법으로 여호수아서에서 땅을 나눌 때도 이런 방식을 사용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울을 왕으로 뽑아줄 것을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먼저 기름 부으시고 그 백성들 앞에서 하나님께서 친히 이 모든 과정을 이루고 계시고, 그분이 친히 왕을 선출하시는 분이심을 보여주는 장면을 봅니다.

 

사무엘은 온 이스라엘 앞에서 제비뽑기를 통해 지파들 중에서 베냐민 지파가 뽑혔고, 그 다음으로 가족 중에는 마드리 가족이 뽑혔습니다. 여기서 가족은 대가족을 의미하는 말이며, 한국 성경에서는 ‘족속’이라고 번역되었습니다.

‘마드리’라는 이름은 여기서만 나타납니다. 마드리 가족 중에서는 기스의 아들 사울이 뽑혔습니다. 그런데 사울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사울이 제비뽑기 자리에 없었는데도 뽑혔다는 것에서 적어도 마지막 제비뽑기 절차에서는 당사자가 나오지 않아도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첫째 단계에서 지파를 선출하고, 둘째 단계에서 (대)가족(미쉬파하)을 선출하며, 마지막 셋째 단계에서 가문을 선택하는데, 이때는 아마도 각 가문에서 자기들의 왕 후보자를 미리 정해놓은 다음, 그 가문의 대표가 제비뽑기 자리에 나가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을 것입니다.

이 단계에서 마드리 가족의 기스가 뽑혔고, 이는 기스 가문에서 왕 후보자로 등록해 두었던 사울이 뽑힌 것으로 간주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울을 ‘기스의 아들 사울’이라 불렀을 것입니다.

 

(2) 숨은 사울(22-23)

 

원래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사울이 제비뽑기를 통해 공식적으로 선택된 것입니다. 하지만 결과를 미리 알고 있었던 사울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 숨었습니다.

사울이 뽑혔지만, 사람들은 그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수많은 백성이 보는 앞에서 왕으로서 등극해야 할 주인공이 나타나지 않는 황당한 사건이 발생한 것입니다. 그는 왕의 자리를 그만큼 부담스러워 짐 보따리 사이에 숨어서 나오지 못했습니다. 사무엘이 이야기하고 기름 부음을 받을 때도 정신없이 긴가민가하면서 기름 부음을 받았지만, 제비뽑기를 통해 온 이스라엘 앞에서 현실로 자신의 이름이 불리자 왕에 대한 직책의 중압감이 몰려오고 있었던지 두려움에 숨어 있는 그에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사울을 찾기 위해 여기저기 찾아다녔지만 찾지 못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이스라엘 백성들은 선출된 왕이 매우 궁금했을 것입니다. 다시 하나님께 질문합니다. 사울이 철저하게 자신을 숨겼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그가 짐보따리 사이에 숨어 있다는 것을 말씀해주십니다. 이런 하나님의 응답은 혹시 사울이 오지 않아서 다른 사람을 뽑아야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잠재우고 하나님께서 사울을 뽑으셨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확신시켜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사울에게도 왕이 되는 것은 숨거나 피한다고 피할 수 있는 일이 아님을 알려 주신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빨리 사울을 찾기 위해 달려갔고, 짐보따리 사이에 숨어 있던 사울을 찾아 데리고 옵니다. 사울은 겸손하게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마음이 있었으므로 자신을 감추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사울의 행동이 그 자신을 돋보이게 했습니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극적인 등장 순간을 연출할 수 있었습니다. 남들이 사울을 내리고 나올 때, 사울은 당당하게 이스라엘 앞에 설 것입니다. 이것은 꾸며내고자 함이 아니라, 겸손하면서도 자기를 위해 분위기를 만들 수 있는 사울의 본성에 의한 자연스러운 행동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본 사울의 첫 인상은 다른 사람보다 어깨 위만큼 큰 기골이 장대한 모습이었습니다. 고대 사회에서 기골이 장대한 모습은 뛰어난 전사의 모습으로 골리앗은 키가 3m정도 되어 그 모습만으로도 이스라엘 사람들의 기를 완전히 죽였습니다. 그리고 9장 2절에서 사울의 외모는 키가 클 뿐 아니라 매우 준수했다고 말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서 사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왕으로 세워도 될 만큼 든든하고 호감이 가는 인상을 주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무엘은 사울을 백성들에게 소개합니다.

 

(3) 즉위식(24)

 

사무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사울에 대해 두 가지를 선포했습니다.

첫째, 사울이 여호와께서 선택하신 왕이라는 것을 강조하였습니다. 모세가 가르친 왕 규례에 왕을 선택하는 조건이 제시되는데, 왕은 형제 가운데서 여호와께서 선택하신 자여야 한다는 것입니다(신 17:15). 사무엘은 사울이 그 조건을 충족하였으므로 왕으로서 합당하다고 선언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선택하신 왕은 여호와께서 버리지 않는 한 사람들에 의해 버림받을 수 없습니다.

둘째, 모든 백성 중에서 최고의 인물입니다. 사무엘은 사울을 만나는 순간부터 그를 좋아했습니다. 첫 만남의 때에 사무엘은 하나님의 직접적인 소개를 통해 사울을 만났습니다(9:17). 그 후 사무엘은 사울을 상석으로 모시고 가장 좋은 부위의 고기로 정성껏 대접하였고, 밤새워 대화하면서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길갈에서 다시 만나는 등 최선을 다해 도울 것을 약속했습니다(10:8). 이런 사무엘의 태도는 사울에 대한 그의 진심 어린 호감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본문에서도 사무엘은 사울이 최고라고 소리치면서 그에 대한 확고한 지지를 보여줍니다.

 

사무엘의 선포에 모든 이스라엘 백성은 기쁨으로 ‘왕의 만세!’하고 외쳤습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자를 사무엘이 왕으로 추대하였고, 백성들은 환호함으로써 자기들의 왕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일련의 순서는 약식으로 거행된 일종의 즉위식입니다. 이로써 사울은 정식 왕이 되었습니다.

 

사울이 왕으로 뽑힌 것에 대한 반응들(25-27)

세상의 제도는 완전한 제도는 없습니다. 왕정이든, 민주정이든지 인간의 모든 제도에는 부족한 점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공평과 정의, 인내와 사랑을 담기에 더 나은 그릇이 무엇인지 고민하면 됩니다. 주의 백성들은 시스템보다 하나님 앞에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에 더 관심을 두어야 합니다. 사람들의 평가보다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25사무엘이 나라의 제도를 백성에게 말하고 책에 기록하여 여호와 앞에 두고 모든 백성을 각기 집으로 보내매 26사울도 기브아 자기 집으로 갈 때에 마음이 하나님께 감동된 유력한 자들과 함께 갔느니라 27어떤 불량배는 이르되 이 사람이 어떻게 우리를 구원하겠느냐 하고 멸시하며 예물을 바치지 아니하였으나 그는 잠잠하였더라(25-27)

 

사무엘은 나라의 제도를 기록으로 남긴 후 백성을 보냅니다. 사울이 집으로 갈 때 그를 도와서 나라를 세워갈 사람들이 따릅니다. 하지만 악한 자들은 사울의 능력을 의심하며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1) 왕정제도의 법제화(25)

 

사무엘은 왕을 뽑은 후에 왕정제도에 대해 백성들에게 설명합니다. 왕정제도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새로운 제도였기 때문에 이기에 알맞은 법도와 율법들이 필요했습니다.

그 “나라의 제도”는 아마도 신명기 17장의 왕 규례에 근거하여 보완한 것으로, 왕과 백성이 지켜야 할 실제적인 지침서에 해당할 것입니다.

 

이 부분은 아무리 왕이라도 마음대로 나라를 다스릴 수 없다는 것을 뜻합니다. 왕도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과 법도를 따라 백성들을 다스려야 하고 자신도 하나님의 율법을 준수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이스라엘의 최고 권력자는 여전히 여호와 하나님이시며, 왕은 하나님의 대리자이기 때문입니다.

 

사무엘은 왕정이 시작되는 시기에 이 점을 분명히 하기 위하여 법도를 정하고 이것을 기록하여 한 부는 여호와 앞에 두었습니다. 여호와 앞에 두었다는 것은 성소에 보관하는 것을 의미하며, 가장 안전하고 확실한 보관 방법입니다.

또한 아마도 왕이 된 사울도 필사해서 한 부를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신명기 17장 18-19절에 따르면 왕도 한 부를 복사하여 옆에다 두고 항상 읽으며 여호와의 말씀과 규례를 지켜 행하라고 명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2) 사울을 찬성한 사람들(26)

 

왕이 세워지고 왕정제도가 만들어지는 모든 절차가 끝나자 백성들은 각기 집으로 돌아갔고, 사울도 기브아 자기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아직 왕궁이 있거나 수도가 따로 정해진 것은 아니기 때문에 기브아는 이제부터 왕도(王都)가 될 것입니다.

마음이 하나님께 감동된 유력한 자들이 함께 갔습니다. “하나님께 감동된 유력한 자들”은 문자적으로 번역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에 손을 대신 힘 있는 자들’입니다. 이들의 힘은 육체적인 것이 아니라 재력과 권력을 의미합니다. 즉, 혈연 중심의 이스라엘에서 각 지역 공동체를 이끄는 지도자들일 것입니다. 이들이 사울을 따라갔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울을 도울 자들을 준비해 주셨다고 본문은 말하고 있습니다. 마치 모세가 성막을 지을 때 부살렐과 오홀리압을 세워 주신 것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2) 사울을 반대하는 사람들(27)

 

사울이 자신들을 구원할 것이라 믿지 않고, 멸시하며 예물을 드리지 않는 불량배들도 있었습니다.

본문은 ‘벨리알의 자식들’이라고 부릅니다. 그들이 소외 계층이나 하류층이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들이 예물을 드리지 않았다고 지적하는 이유는 그들이 예물을 내야 할 부유층 또는 상류층이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이들은 사울의 통치에 반대하는 지방 세력가들입니다. 그들은 공개적으로 사울이 자기들을 구원할 수 없다고 말하며 “이 사람이 어떻게 우리를 구원하겠느냐”라고 다른 사람들을 선동했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여기에 반응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보기에 그는 잠잠히 있는 듯했습니다. 자신을 반대하는 사람이 있을 때, 그는 겸손한 태도로 그들의 비판을 수용하면서 그들에게 자신의 능력을 입증할 기회를 가만히 기다립니다. 이것은 훗날 그가 영적인 감각을 잃고서 그에게 반대하지 않는 다윗마저 제거하려고 했던 것과 대조됩니다.

 

왕 선출 과정에서 보여주는 이와 같은 사울의 모습은 어느 정도 사무엘의 조언을 받아들인 결과일 것입니다. 사무엘은 사울에게 기름을 부은 후 길갈에서 다시 만나기로 약속하면서, 그때 사울이 행할 것을 가르치겠다고 말했습니다(10:8). 그러므로 길갈의 만남은 미스바 집회를 대비하여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뜻을 백성들에게 나타내시고 그 뜻을 이루어 가십니다. 하나님의 선택에는 책임이 뒤따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자녀의 특권을 책임을 가지고 이루어가는 성도들이 되길 바랍니다. 때로는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사울처럼 묵묵히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길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세우시고 능력을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면 반드시 승리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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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10-01)


기름 부음으로 왕권을 선포하는 사무엘

사무엘상 10장 1-16절


 

사원을 모집할 때, 회사에서 요구하는 능력을 갖춘 사람을 뽑습니다. 그러나 요즘에는 조직에 화합 능력이 있는 지까지 살핍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사람들을 모집하실 때, 가장 먼저 보시는 조건이 있습니다. 사람들의 관점에, 조금 부족하고 모자라 보일 수 있어도 하나님의 말씀에 철저히 순종하는 사람을 선택하십니다. 그리고 선택하신 일꾼에게 감당할 만한 능력과 은혜를 풍성히 주시고 사용하십니다. 자신이 부족해 보인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길 바랍니다.

 

  • 사무엘이 사울에게 기름을 부어 하나님께서 그를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로 선택하셨음을 알려줍니다. 이는 이스라엘 역사의 전환점을 이루는 일이며 전례 없는 특별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사울이 소명을 확신할 수 있도록 세 가지 표징이 주어집니다. 암나귀에 관한 일을 알려줄 두 사람을 만나는 것, 벧엘로 올라가는 세 사람을 만나는 것, 선지자 무리를 만나며 여호와의 영으로 충만해지는 것입니다.

 

사울에게 기름을 부은 사무엘(1)

구약에서 기름부음을 받는 사람은 세 종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제사장, 선지자 그리고 왕입니다. 기름을 붓는 것은 그가 하나님께서 세우신 하나님의 일꾼이라는 것을 의미하고, 또한 하나님의 영이 그에게 임하시리라는 것을 나타내는 의식입니다.

 

1이에 사무엘이 기름병을 가져다가 사울의 머리에 붓고 입맞추며 이르되 여호와께서 네게 기름을 부으사 그의 기업의 지도자로 삼지 아니하셨느냐(1)

 

사울은 아버지의 잃어버린 나귀를 찾아 나섰던 그는 전혀 예상치 못하게 사무엘을 만나고, 이스라엘 지도자로 세워지며 기름부음을 받습니다. 그는 정말 당황스럽고 두렵고 놀라운 마음이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 사울에게 하나하나 설명하며 하나님의 섭리를 알리는 사무엘을 봅니다.

 

사울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사무엘은 사환을 앞에 보내고, 사울과 단 둘이 남게 됩니다. 사무엘은 준비한 기름병을 가져와서 사울의 머리에 기름을 붓습니다. 하나님의 대리인으로서 기름을 부을 때, 가능한 한 은밀하게 의식을 치릅니다.

 

고대 근동의 관습에 따라 왕이 신하의 머리에 기름을 부음으로 주종관계를 표현하였던 것처럼, 이스라엘에서는 대제사장을 세울 때 머리에 기름을 부음으로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종이라는 표시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 범위가 확대되어 왕에게도 기름을 부음으로 왕도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선택된 종임을 나타낸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왕은 절대 권력을 가진 독자적인 존재가 아니라 항상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이스라엘을 다스려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그 의미를 더욱 분명하게 하는 것은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기업이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즉,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기업, 즉 하나님의 소유이기 때문에 왕은 하나님의 기업을 잘 관리하고 유지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을 받을 것에 대한 예언(2-8)

하나님의 일꾼에게는 성령이 임하여 새로운 삶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갑니다. 세움을 받은 사람들은 항상 성령충만하며, 끝까지 겸손하게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임하면 이러한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본문은 사울의 왕권은 스스로 얻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2네가 오늘 나를 떠나가다가 베냐민 경계 셀사에 있는 라헬의 묘실 곁에서 두 사람을 만나리니 그들이 네게 이르기를 네가 찾으러 갔던 암나귀들을 찾은지라 네 아버지가 암나귀들의 염려는 놓았으나 너희로 말미암아 걱정하여 이르되 내 아들을 위하여 어찌하리요 하더라 할 것이요 3네가 거기서 더 나아가서 다볼 상수리나무에 이르면 거기서 하나님을 뵈오려고 벧엘로 올라가는 세 사람을 만나리니 한 사람은 염소 새끼 셋을 이끌었고 한 사람은 떡 세 덩이를 가졌고 한 사람은 포도주 한 가죽부대를 가진 자라 4그들이 네게 문안하고 떡 두 덩이를 주겠고 너는 그의 손에서 받으리라 5그 후에 네가 하나님의 산에 이르리니 그 곳에는 블레셋 사람들의 영문이 있느니라 네가 그리로 가서 그 성읍으로 들어갈 때에 선지자의 무리가 산당에서부터 비파와 소고와 저와 수금을 앞세우고 예언하며 내려오는 것을 만날 것이요 6네게는 여호와의 영이 크게 임하리니 너도 그들과 함께 예언을 하고 변하여 새 사람이 되리라 7이 징조가 네게 임하거든 너는 기회를 따라 행하라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시느니라 8너는 나보다 앞서 길갈로 내려가라 내가 네게로 내려가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리니 내가 네게 가서 네가 행할 것을 가르칠 때까지 칠 일 동안 기다리라(2-8)

 

사울은 기름부음을 받았지만, 아직까지도 자기가 왕으로 세움을 받은 것을 신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무엘은 아직까지 얼떨떨한 사울에게 기름을 부은 뒤, 하나님께서 바로 그날에 그에게 왕으로 세움을 받았다는 것을 세 가지 표징이 있을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1) 첫 표징 : 잃어버린 나귀에 대해 알려주는 두 사람(2)

 

사울이 하나님께 선택받았음을 증명하는 첫 번째 표징은, 사울이 사무엘을 떠나 베냐민 경계에 있는 셀사에 이르면 라헬의 무덤 근처에서 두 사람을 만나게 될 것이며, 그들은 사울을 만나자마자 사울의 아버지의 암나귀들을 찾았다는 것을 알려줄 것입니다. 그래서 사울의 아버지는 암나귀에 대한 염려는 이제 놓았는데, 아버지가 사울을 걱정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할 것입니다. 여기서 말을 전하는 사람들은 아버지의 말을 직접 화법으로 인용하여 아버지의 걱정을 좀 더 생생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2) 둘째 표징 : 벧엘의 하나님께 올라가는 세 사람(3-4)

 

두 번째 표징은 거기서 더 나아가서 다볼 상수리나무에 이르면, 하나님을 뵈려고 벧엘로 올라가는 세 사람을 만날 것이라고 합니다. 그들 중에 한 사람은 염소 새끼 세 마리를 끌고 있고, 한 사람은 떡 세 덩이를 가지고 있고, 한 사람은 포도주 한 가죽 부대를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그들이 사울을 보자마자 문안하고, 떡 두 덩이를 주면 사울이 받을 것이라고 합니다.

 

(3) 셋째 표징 : 하나님의 산에 선지자 무리(5-6)

 

셋째 표징으로, 사울은 하나님의 산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그곳에 블레셋 군대의 영문(블레셋의 수비대)이 있는 곳이 있습니다. 그곳을 지나 성읍으로 들어갈 때, 거문고를 연주하며 소고를 치고 피리를 불고 수금을 연주하면서 산당에서부터 내려오는 선지자의 무리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모두 춤을 추고 소리를 지르면서 예언하며 내려오고 있을 것입니다. 그때 사울에게도 기브아에 들어가면서 하나님의 영이 사울에게 아주 강하게 임할 것입니다. 사울이 새사람이 되고 그들처럼 춤을 추면서 큰소리로 예언하게 될 것입니다. 여기서도 사울에게 여호와의 영이 임하여 새로운 사람으로 변한다는 것은 사울이 이제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지도자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이 세 가지 표징에 대한 예언은 사울이 자신이 왕이 되는 것에 대해 여전히 불안해하고 의심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에게 확증을 주기 위한 하나님의 배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미리 준비하시고 사울을 선택하셨지만, 아직 준비가 안 된 사울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주저하고 두려워하고 있었기에 표징들을 주신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기를 두려워하고 주저하는 자들을 계속 설득하시고 그와 함께하심을 보여주며 힘을 주시는 분입니다.

 

(4) 길갈의 제사 약속(7-8)

 

사무엘은 사울에게 이런 징조가 있으면,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하신다는 뜻이니, 그 후부터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가는 자가 되라고 명령합니다. 왕의 직분도 하나님께서 주셨고, 소심한 성격까지 왕으로서의 담대한 카리스마를 갖도록 하셨으며, 그밖에 모든 것을 다 주셨으니 그 후부터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가는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항상 사울과 함께하실 것을 예언합니다.

마지막으로 사무엘은 사울에게 길갈로 먼저 가서 7일 동안 기다리라고 명령합니다. 그런데 이 명령은 후에 13:7-15과 연결되어 사울과 사무엘의 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사무엘의 예언이 성취됨(9-13)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하기 전에, 먼저 우리를 변화시키십니다. 사울의 마음을 변화시키고 하나님의 영으로 강하게 하셨습니다. 지역을 변화시킬 강력한 지도자로 세움을 받길 원하신다면, 하나님의 변화를 기대하시길 바랍니다. 묵은 생각으로 시대와 지역을 새롭게 변화시킬 수는 없습니다. 성령의 강력한 능력을 통해 새롭게 변화하시길 바랍니다.

 

9그가 사무엘에게서 떠나려고 몸을 돌이킬 때에 하나님이 새 마음을 주셨고 그 날 그 징조도 다 응하니라 10그들이 산에 이를 때에 선지자의 무리가 그를 영접하고 하나님의 영이 사울에게 크게 임하므로 그가 그들 중에서 예언을 하니 11전에 사울을 알던 모든 사람들이 사울이 선지자들과 함께 예언함을 보고 서로 이르되 기스의 아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느냐 사울도 선지자들 중에 있느냐 하고 12그 곳의 어떤 사람은 말하여 이르되 그들의 아버지가 누구냐 한지라 그러므로 속담이 되어 이르되 사울도 선지자들 중에 있느냐 하더라 13사울이 예언하기를 마치고 산당으로 가니라(9-13)

 

사울은 사무엘에 기름부음을 받고 그에게 예언을 들고서 출발합니다. 사울의 시작은 이렇게 성령의 충만함으로 하나님의 기름 부음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새 영이 부어지고 새로운 사람으로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하실 것입니다. 사울에게 사무엘의 예언이 성취되어갑니다.

 

(1) 표징의 실현(9)

 

사무엘을 떠나면서 마음이 완전히 변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새로운 마음을 주셨습니다. 즉, 확신도 없고 믿음도 없어 불안해하던 마음이 사무엘의 예언을 들으면서 자신이 왕이 되는 것은 하나님의 계획이며 하나님께서 이루실 것임을 알게 되었고, 무엇보다 사무엘이 예언한 모든 일들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의 사역임을 확신하게 됩니다.

 

(2) 선지자 무리와 만나(10-13)

 

사무엘의 예언 중 셋째 예언이 성취되는 것만을 하나의 예로 보여주는 것으로 사무엘의 예언처럼 그들이 기브아에 도착하자 놀랍게도 때마침 선지자 무리를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사무엘의 예언처럼 하나님의 영이 사울에게 임했습니다. 사울은 그들 가운데서 예언하였습니다. 10절은 6절의 표현을 반복적으로 사용하여 사무엘의 예언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사울이 예언한 것에 대한 성읍 사람들의 증언으로 이것은 사울에게 일어난 일이 사울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에게 목격되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사울이 선지자 무리와 함께 예언하는 모습을 보고, 사울을 알던 성읍 사람들은 놀라워합니다. 그들은 ‘기스의 아들도 선지자가 된 것이냐?’라고 수군거렸습니다. 또한 이 선지자 무리의 지도자가 누구인지 궁금해했습니다.

 

사명을 전하지 않은 사울(14-16)

교회나 단체 그리고 지역사회를 이끌어가는 지도자가 될 때, 그 지도자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지혜 중에 많은 것들이 있겠지만, 솔로몬과 같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로 충만해야 합니다. 먼저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때, 따르는 사람들을 바른 길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때가 될 때까지 겸손하게 기다리는 인내도 필요합니다.

 

14사울의 숙부가 사울과 그의 사환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디로 갔더냐 사울이 이르되 암나귀들을 찾다가 찾지 못하므로 사무엘에게 갔었나이다 하니 15사울의 숙부가 이르되 청하노니 사무엘이 너희에게 이른 말을 내게 말하라 하니라 16사울이 그의 숙부에게 말하되 그가 암나귀들을 찾았다고 우리에게 분명히 말하더이다 하고 사무엘이 말하던 나라의 일은 말하지 아니하니라(14-16)

 

사울뿐만 아니라 주변에 있던 사람들도 그의 변화를 알아차리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소문이 납니다. 제일 먼저 나귀를 찾으러 떠났던 사울의 변화를 눈치채고 궁금해 하면서 호기심을 가지고 꼬치꼬치 묻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바로 사울의 숙부였습니다.

숙부는 사울에게 ‘사무엘이 너희에게 이른 말을 내게 말하라’(15)라고 묻습니다. 하지만 사울은 자신에게 일어났던 일들은 말하면서도 사무엘 선지자를 만나 일어난 일에 대해 알리지 않습니다. 그것은 사무엘이 “내가 네게 가서 네가 행할 것을 가르칠 때까지 칠 일 동안 기다리라”(8)라고 한 것처럼 기다리고 순종하고 있었습니다. 아직은 그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와 관련된 이야기들은 하지 않고 기다립니다.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기는 했지만, 아직 정식으로 공표된 것도 아니고 아직도 혼란스럽고 두렵기만 한 사울은 한마디도 나라에 대한 사역에 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나중에 사무엘을 기다리지 못하고 제사장 일을 대신하는 그런 죄를 범하는 사울을 뒤에 만나게 됩니다. 하지만, 지금 겸손하고 신중했던 이런 사람의 모습으로 시작되었구나라는 것을 이렇게 바라보면서 안타까운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과 지역을 변화시킬 일꾼들을 찾고 있습니다. 그 일꾼들의 조건은 유능한 사람을 모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라면 철저하게 순종할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순종함으로 소명에 응답하면 하나님께서는 성령의 능력이 부어주실 것입니다. 이렇게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야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할 수 있는 훌륭한 사명자가 됩니다. 시간에 사명에 순종하는 일꾼이 되길 위해 기도하길 바랍니다. 그리고 성령이 당신에게 풍성히 임할 수 있도록 순종함으로 하나님께 나가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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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09-02)


사무엘에게 초대받아 간 사울

사무엘상 9장 15-27절


 

얼마 전 장로님 한 분을 만났습니다. 살아오신 과정을 이야기하면서, 자신에게 영향을 준 사람들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은 “내 인생에 그 장로님을 만난 것은 축복입니다. 나도 그 장로님과 같은 훌륭한 장로가 되어야겠다고 항상 생각합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인생은 많은 만남을 통해 자신을 만들어갑니다.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서 인생이 달라집니다. 훌륭한 사람을 많이 만나면 그만큼 좋은 인물로 성장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야 합니다. 다 나가서 자신이 좋은 사람이 되어서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 청년 사울은 아버지 암나귀를 잊어버림으로 그 나귀들을 찾아 나서서 사흘 동안 헤매고 다녔습니다. 이 과정에서 뜻하지 않는 만납니다. 이 만남을 통해, 당대 최고 영적 지도자인 사무엘을 만납니다. 더 나가서 사무엘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자신을 왕으로 세워지는 놀라운 말씀을 받습니다.

 

미리 알려준 하나님의 사역(15-17)

사람들 관점에서 보면, 모든 일을 스스로 결정하고 행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배후에 계시는 하나님께서 역사하십니다. 이 사실은 모든 역사는 하나님께서 주관하시고, 왕정시대가 시작되는 첫 순간부터 하나님께서 역사하심을 분명히 가르쳐줍니다. 사울과 사무엘의 만남에는 하나님께서 먼저 역사하셨습니다.

 

15사울이 오기 전날에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알게 하여 이르시되 16내일 이맘 때에 내가 베냐민 땅에서 한 사람을 네게로 보내리니 너는 그에게 기름을 부어 내 백성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삼으라 그가 내 백성을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구원하리라 내 백성의 부르짖음이 내게 상달되었으므로 내가 그들을 돌보았노라 하셨더니 17사무엘이 사울을 볼 때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보라 이는 내가 네게 말한 사람이니 이가 내 백성을 다스리리라 하시니라(15-17)

 

하나님께서는 사울을 사무엘 선지자를 만나게 하십니다. 사울이 사무엘 선지자에게 오기 하루 전날에 미리 사무엘에게 ‘베냐민 땅에서 한 사람을 네게 보낼 것임이라 그에게 기름을 부을 것이라’라고 알려주십니다. 그 사람이 이스라엘을 구원할 자임을 알려주십니다.

 

(1) 여호와의 예고(15-16)

 

하나님께서는 사무엘 선지자에게 나타나 계시해주시는 장면으로 사무엘의 귀를 열어 아주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왕을 선출하는 중요한 일이므로 조금의 실수도 허용되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내일 이맘 때”라고 구체적인 시간까지 말씀하심으로써 사무엘이 실수하지 않도록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울이 오기 전날 사무엘에게 미리 계시해주십니다. 이 사실은 지금까지 진행된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이 역사했다는 사실입니다.

 

“내일 이맘 때에 내가 베냐민 땅에서 한 사람을 네게로 보내리니 너는 그에게 기름을 부어 내 백성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삼으라.”(16)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가 기름을 붓는 것은 하나님께서 기름을 붓는 것과 같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특별한 사명을 맡기시면서 그가 그 사명을 성취하기까지 그를 보호하며 그의 필요를 채우겠다고 약속하시는 의식이며, 또 기름부음을 통해 그와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시는 영적 의식입니다. 그러므로 기름부음 받은 자를 공격하는 것은 하나님께 대적하는 것과 같습니다(26:9).

한편 사울을 왕으로 선출하는 것은 미스바에서 이루어집니다(10:24). 사울에게 기름을 붓는 의식과 미스바에서 그를 왕으로 선출하는 과정은 모순된 중복이 아닙니다. 후자는 전자로 인해 반드시 따라와야 하는 정치적 절차에 해당합니다. 사울은 ‘나기드’, 즉 왕이 될 것으로 예정된 사람으로 기름부음을 받을 것이며, 블레셋으로부터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해야 하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비록 사무엘이 블레셋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었으나, 이제 사울에게로 책임이 넘어갔습니다(7:13-14).

 

(2) 여호와의 선언(17)

 

사무엘이 사울과 만났을 때, “그에게 이르시되 보라 이는 내가 네게 말한 사람이니 이가 내 백성을 다스리리라”(17)라고 사울이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자임을 알려주셨습니다. 사울을 선택하는 과정에 이처럼 하나님의 섬세한 개입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울이 이스라엘을 다스릴 것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여기서 ‘다스리다’라고 번역된 단어는 ‘아차르’이며, 이는 ‘통제하다’, ‘유지하다’를 의미합니다. 사사들은 백성을 통제하지 못했으나, 왕은 백성을 통제하여 어떤 방향으로든 이끄는 권세를 갖고 있습니다. 또 그는 이스라엘의 현 상황을 유지하게 될 것입니다.

 

사무엘의 초대(18-21)

우리가 몰라서 그러지 하나님께서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 놀라운 계획은 사울은 왕으로 부르심을 받았지만, 우리들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부름을 받았습니다. 겸손히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 성도들이 되어야겠습니다. 자녀로 주신 특권을 누리고 사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18사울이 성문 안 사무엘에게 나아가 이르되 선견자의 집이 어디인지 청하건대 내게 가르치소서 하니 19사무엘이 사울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선견자이니라 너는 내 앞서 산당으로 올라가라 너희가 오늘 나와 함께 먹을 것이요 아침에는 내가 너를 보내되 네 마음에 있는 것을 다 네게 말하리라 20사흘 전에 잃은 네 암나귀들을 염려하지 말라 찾았느니라 온 이스라엘이 사모하는 자가 누구냐 너와 네 아버지의 온 집이 아니냐 하는지라 21사울이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이스라엘 지파의 가장 작은 지파 베냐민 사람이 아니니이까 또 나의 가족은 베냐민 지파 모든 가족 중에 가장 미약하지 아니하니이까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이같이 말씀하시나이까 하니(18-21)

 

사울은 성문 가운데 있는 사무엘을 보았으나 그가 선견자임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에게 선견자의 집이 어디에 있으냐고 묻습니다. 사무엘은 자신이 그라고 밝히면서 왕이 될 사울을 최대한 예의를 갖추어 말합니다.

 

(1) 사울의 질문(18)

 

사울이 성을 들어설 때, 성문 가운데 있는 사무엘을 만났습니다. 그는 자신이 찾는 선견자인 것을 알지 못하고, 선견자의 집이 어디에 있는지 물었습니다. 사울이 영적으로 민감하지 못한 것을 암시하는 행동일 것입니다.

 

(2) 사무엘의 초대(18-20)

 

사무엘은 친절하게 사울의 질문에 대답하고서, 자기보다 먼저 산당으로 올라가라 하고 그를 초청했습니다. 이것은 사울을 존중하여 자신보다 앞세우고 자신은 뒤따라가려는 것입니다.

사무엘이 생각해둔 일정은 먼저 식사하고, 그다음 함께 밤을 보내고, 다음 날 아침에 사울을 떠나보내는 것입니다. 그동안 사울은 잃어버린 나귀 문제뿐만 아니라, 선견자에게 묻고 싶어서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것을 다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울이 자신이 왕이 될 것인지에 관해 묻고 싶었다고 생각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렇더라도 사무엘이 대화를 유도하면서 사울에게 나랏일에 관하여 질문할 수 있도록 기회를 만들어주었을 것입니다. 사무엘은 사울에게 사흘 전에 잃어버린 암나귀들을 이미 찾았으니 염려하지 말고 자신과 함께 시간을. 보내자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사무엘은 이스라엘의 모든 사모함이 너와 네 아비 집에 있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사모한다’는 말은 좋아한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사람 가운데 그들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는 아마도 사울의 가문이 이미 경제적으로 혹은 정치적으로 유력한 가문이 되었고 앞으로 더 그렇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울도 자신의 능력으로 이미 주변 지역에서 명성을 얻었을 것입니다.

 

(3) 사울의 대답(21)

 

사무엘의 말에 사울은 “나는 이스라엘 지파의 가장 작은 지파 베냐민 사람이 아니니이까 또 나의 가족은 베냐민 지파 모든 가족 중에 가장 미약하지 아니하니이까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이같이 말씀하시나이까”(21)라고 겸손하게 대답합니다. 그 말에는 사울의 겸손함을 나타냅니다. 베냐민 지파를 이스라엘 지파 가운데 가장 작은 지파라고 하는 것은 사사 시대 기브아를 중심으로 베냐민 지파 사람들이 죽임을 당했던 사건 때문일 것입니다(삿 20:46-48). 이 사건은 베냐민의 인구를 매우 감소시켰을 뿐 아니라, 열두 지파 가운데서 베냐민 지파의 지위를 낮추었습니다. 또 사울은 자신의 가족이 베냐민 지파 모든 가족 중에 가장 미약하다고 말합니다. 가족은 ‘미쉬파하’의 번역입니다. 이렇게 말한 사울의 생각은 지극히 상식적이고 당연한 반응입니다. 왕은 자신을 지지하는 세력이 많을수록 강력한 왕권을 만들 수 있고, 왕권을 안전적으로 지켜나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여러 가족이 모인 대가족을 가리키는데, 흔히 ‘가족’(수 21:4)이나 ‘족속’(삼하 14:7; 대상 4:8)이라 번역됩니다. ‘가족’이 모이면 ‘족속’이라 불리며, ‘족속’이 모이면 ‘지파’가 됩니다. 이는 사울의 족보(9:1)에 등장하는 사람이 기스를 제외하면 모두 역대기의 베나민 지파 계보에 나오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그의 가문이 혈통적으로 비주류에 속했기 때문입니다. 역대기 족보는 사울 가문의 시작이 기브온의 조상 여이엘이라고 말합니다(대상 9:35). 그런데 ‘여이엘(아비엘)’은 베냐민 지파의 공식 족보에서 이름을 찾을 수 없는 비주류에 속한 사람입니다(대상 8:1-28). 사울은 현재 자신의 집이 유력하다는 사실을 내세워 교만한 태도를 보이지 않았으며, 자신의 처지를 겸손하게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장 약한 자를 통해서 일하시며 그를 통해 하나님 나라와 백성을 다스리십니다.

 

산당에서의 식사(22-24)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뜻과 맞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것이라고 동참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사무엘의 위대함이 이곳에서 나타납니다. 원래 사무엘 선지자는 왕정 정치에 대해 반대하는 사람이지만, 하나님의 뜻을 알고 철저하게 순종합니다. 이러한 모습에서 훌륭한 하나님의 일꾼입니다. 그러니깐 하나님께서 크게 사용하신 것입니다.

 

22사무엘이 사울과 그의 사환을 인도하여 객실로 들어가서 청한 자 중 상석에 앉게 하였는데 객은 삼십 명 가량이었더라 23사무엘이 요리인에게 이르되 내가 네게 주며 네게 두라고 말한 그 부분을 가져오라 24요리인이 넓적다리와 그것에 붙은 것을 가져다가 사울 앞에 놓는지라 사무엘이 이르되 보라 이는 두었던 것이니 네 앞에 놓고 먹으라 내가 백성을 청할 때부터 너를 위하여 이것을 두고 이 때를 기다리게 하였느니라 그 날에 사울이 사무엘과 함께 먹으니라(22-24)

 

갑작스런 사무엘의 말에 사울은 겸손하게 대답합니다. 이처럼 사울은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인간적인 덕성은 신앙에 뿌리를 두지 못한 것이었기에 계속되지 못했습니다.

 

(1) 사울과 사환의 자리(22)

 

사무엘은 사울과 사환을 인도하여 잔치가 벌어진 객실로 인도합니다. 그 두 사람을 초청받은 30명가량 손님 가운데 잔칫상의 상석에 앉게 하였습니다. ‘객실’이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리쉬카’는 흔히 성전이나 성소 혹은 왕궁에 부속된 방을 가리킵니다(렘 35:2; 36:12).

 

(2) 보관했던 좋은 고기(23-24)

 

사무엘은 자신이 요리인에게 미리 준비시킨 고기를 사울에게 가져오라고 명합니다. ‘요리인’은 ‘탑바흐’의 번역인데, 이 단어는 고기 요리를 담당하는 요리사를 가리킵니다(8:13). “이 때”는 ‘모에드’의 번역입니다. ‘모에드’는 ‘만남’이라는 의미를 가지며, ‘만남의 시간’ 혹은 ‘만남의 장소’를 뜻할 수 있습니다.

사무엘이 요리인에게 미리 준비하면서 고기의 넓적다리 부분을 따로 보관하도록 미리 지시했습니다. 화목제 제물 중 넓적다리 부분은 제사장들의 몫으로 좋은 부위로 여겨졌습니다(출 29:26-28). 그러나 여기서 사무엘이 사울을 제사장으로 취급한 것은 아닙니다. 사무엘은 자신에게 주어진 가장 좋은 부위를 사울에게 줌으로써 암시적으로 사울을 왕으로 대접하고 있습니다.

 

성읍에서의 교제(25-27)

훌륭한 지도자가 된다는 것은 높은 직책(position)에만 있다고 해서 지도자가 아닙니다. 사람들이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을 때, 교육을 시켜서 긍정적인 사람으로 만들어가는 과정도 지도자의 할 일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불평할 때 같이 불평한다면 지도자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크게 사용하실 때는 자신의 뜻대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할 때입니다. 순종할 때에 기쁘게 순종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모습을 보시고 더 높이 쓰실 것입니다.

 

25그들이 산당에서 내려 성읍에 들어가서는 사무엘이 사울과 함께 지붕에서 담화하고 26그들이 일찍이 일어날새 동틀 때쯤이라 사무엘이 지붕에서 사울을 불러 이르되 일어나라 내가 너를 보내리라 하매 사울이 일어나고 그 두 사람 사울과 사무엘이 함께 밖으로 나가서 27성읍 끝에 이르매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사환에게 우리를 앞서게 하라 하니라 사환이 앞서가므로 또 이르되 너는 이제 잠깐 서 있으라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네게 들려 주리라 하더라(25-27)

 

사울은 왕으로서 마음을 준비되어 있지 않지만, 왕으로 자질을 충분히 가지고 있었습니다. 준비된 사울을 하나님께서 왕으로 세우십니다. 준비된 만큼 하나님은 축복하십니다.

 

(1) 지붕 위 담화(25)

 

잔치가 끝나고 사울과 함께 산당에서 내려온 사무엘은 지붕에 사울이 잘 곳을 마련해줍니다. 여기서 지붕 위는 집의 2층 혹은 3층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이스라엘의 지붕들은 평평했기 때문에 그곳에 방이 있었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그리고 그 방들은 통풍이 더 잘되어 가족들이 활동하고 잠을 자기에 더 좋은 곳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이런 학자들의 견해에 따르면 사무엘은 사울을 위해 좋은 곳에 잠자리를 마련해주고 잘 잠들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늦게까지 대화하다가 잠들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두 사람의 대화는 사무엘의 주도로 진행되었을 것입니다. 사무엘은 사울이 왕으로서 준비된 사람인지 확인하기 위해 “나라의 일”(10:16)에 관해 질문하여 그의 대답을 유도하고, 이스라엘 민족의 나아갈 길에 관한 자기 생각을 사울에게 전해주었을 것입니다.

 

(2) 사무엘의 메시지(26-27)

 

지붕에서 밤을 지낸 사무엘이 동틀 때쯤 일찍 일어나서 사울을 데리고 밖으로 나온 뒤 성읍 끝에서 사환을 앞서 보내고 둘만 남자 하나님께서 사울에게 전달하라는 말을 하겠다며 사울에게 기름 부을 준비를 합니다. 사울이 왕이 된다는 것은 사울과 사무엘 사이의 비밀이기 때문에 둘만 남아 기름 부을 의식을 준비한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왕을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문제에 대해 하나님께 기도할 때 우리보다 한 걸음 앞서 가시며 준비하시는 하나님을 믿어야 할 것입니다.


당신은 좋은 영향을 받아서 전달할 준비되었습니까? 될 수 있으면 사무엘과 같은 좋은 사람을 만나야 합니다. 그래야 더욱 축복의 통로로 나갈 수 있습니다. 좋은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받아서 더 많이 살리시길 바랍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키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당신의 삶이 다른 사람을 변화시키고 지역을 변화시키는 놀라운 축복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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