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14-02)
어리석은 맹세로 백성을 혼란시킨 사울
사무엘상 14장 24-35절
우리의 전통이나 규례는 참 소중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것이 하나님 말씀보다 더 우선이 된다면, 아무리 아름다운 전통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을 거스르게 되는 것이 됩니다. 현대 사회는 항상 자기중심적으로 자기의 경험과 철학이 우선 되는 삶입니다. 이런 시대에 사는 우리는 하나님 말씀에 우선하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주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든 그것이 하나님 말씀과 어떻게 연관이 되어 있을까를 항상 연구하고 비교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모든 판단이 우리에게서 나오지 않고, 하나님 말씀이 기준이 되어서 모든 것들을 판단할 때, 우리의 삶은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그런 삶이 될 것입니다.
- 사울이 원수에게 보복하는 때까지 무엇이든 먹는 사람은 저주받을 것이라고 백성에게 맹세시킵니다. 이 일은 백성들을 위태롭게 할 뿐 아니라 아들 요나단마저 위태롭게 합니다. 요나단은 이 사실을 몰랐기에 벌집의 꿀을 먹습니다. 몹시 허기진 백성이 탈취한 짐승을 잡아 피째 먹어 하나님께 죄를 짓습니다. 사울이 큰 돌 하나를 굴려다가 거기서 짐승을 잡도록 명합니다.
금식을 맹세하는 사울(24-26)
하나님을 우리의 뜻을 이루어 주시는 분으로 여겨 그분의 뜻을 바꾸려 해서는 안 됩니다. 그저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는 개인의 욕심 때문에 하나님이나 사람을 도구화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에 연합하고 동역해야 합니다.
24가 날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피곤하였으니 이는 사울이 백성에게 맹세시켜 경계하여 이르기를 저녁 곧 내가 내 원수에게 보복하는 때까지 아무 음식물이든지 먹는 사람은 저주를 받을지어다 하였음이라 그러므로 모든 백성이 음식물을 맛보지 못하고 25그들이 다 수풀에 들어간즉 땅에 꿀이 있더라 26백성이 수풀로 들어갈 때에 꿀이 흐르는 것을 보고도 그들이 맹세를 두려워하여 손을 그 입에 대는 자가 없었으나(24-26)
전쟁이라고 말할 수 없이 일방적인 싸움 같았던 블레셋과 이스라엘 백성의 전쟁은 믿을 수 없는 하나님의 역사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이 승기를 잡습니다.
요나단의 믿음과 용기 헌신적인 행동으로 블레셋은 자중 질환이 일어나고 블레셋 편으로 가담했던 히브리 사람들도 돌아서서 이스라엘 편으로 가담하고, 도망갔던 사람들도 전쟁에 참여함으로 믿을 수 없는 승리를 거둡니다.
패배가 확실했던 전쟁을 승리하고 있었지만, 군사들은 피곤하였습니다(24). 전투에 후유증이기도 했지만, 사울의 무모한 결정 때문이었습니다. 전쟁할 때는 더 먹어야 하고, 더 힘을 내야 되는데, 그는 백성들에게 금식을 명령했습니다. ‘이 전쟁이 끝날 때까지 아무도 먹지 말라. 먹으면 저주를 받을 것이다’라고 그는 무모한 맹세와 저주를 선언하고 백성들에게 맹세하게 합니다.
여기서 맹세는 저주를 포함한 맹세로, 만일 금식을 하지 않으면 저주를 받을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그가 강압적으로 백성들에게 금식을 강요하였음을 보여줍니다.
금식은 구약 성경에서 회개와 간구 그리고 죽은 이를 위한 애도할 때 나타납니다. 다윗은 아들을 죽이지 말아 달라는 간절한 간구를 위해 금식했습니다. 그리고 사사기 20장에서 백성들은 베냐민 지파와의 전쟁에서 패하고 와서 하나님께 회개와 간구하는 금식을 하였습니다. 미스바에서는 회개를 위한 금식을 하였으며, 에스더는 왕의 호의를 얻기 위해 광고하며 금식합니다.
사울은 저녁때까지 음식을 먹는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선포했습니다. 금식을 선포한 이유는 자신의 원수들에게 복수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여기서 원수는 블레셋 군대이기에 꼭 사울 개인의 복수를 위한 것은 아닌데, 사울은 ‘나의 원수를 내가 보복하겠다’고 하여, 사사로운 복수에 전쟁을 이용하는 사람이 되고 있습니다.
사울이 금식을 선포한 이유는 여호와의 도우심을 더 많이 얻기 위해서였습니다. 요나단이 여호와의 도우심을 입고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을 본 사울은 일단 전쟁이 여호와의 손에 달려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됩니다. 그래서 사울은 금식하면 여호와께서 더 많이 도와주실 것이라 생각하여 백성들에게 금식을 강요한 것입니다.
하지만 사울이 여기서 몰랐던 것이 있습니다. 여호와의 전쟁은 여호와께서 자신의 백성을 구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참여하시고 도와주시는 것일 뿐, 인간의 희생이나 헌신을 보시고 그 대가로 도와주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사기나 여호수아에 나온 수많은 여호와 전쟁 이야기는 인간의 헌신과 관계없이 자기 백성의 부르짖음에 응답하시고 구원해 주신 전쟁들입니다.
그런데 사울은 블레셋과의 전쟁을 여호와의 전쟁으로 보지 못한 채 자신의 전쟁으로 생각하였고 여호와는 단지 도와주시는 분으로 생각하였습니다. 따라서 자신과 백성의 헌신과 희생에 따라 여호와의 도움 정도가 달라진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사사기에서 입다도 판단을 잘못하여 전쟁에서 이기게 해주시면 제일 먼저 나오는 사람을 번제로 드리겠다고 맹세하였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은 구원을 받았지만, 입다 개인은 딸을 번제로 바치는 비극을 겪게 됩니다. 그는 여호와의 전쟁을 자신의 입지를 굳히기 위한 수단으로 삼았습니다. 맹세를 통해 여호와를 조종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사울과 마찬가지로 착각하기 쉬운 것은 내가 일하고 하나님은 나를 도우시는 분 정도로 여기고, 여러 수단을 사용해 그분을 나의 뜻대로 조종하려는 태도입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이 일하시고 나는 하나님의 일을 돕는 자로서 하나님의 생각과 뜻에 맞추어 나를 사용하실 수 있게 헌신해야 합니다. 요나단이 하나님의 일을 위해 자신을 헌신한 것처럼 말입니다.
사울의 이런 어리석은 맹세로 인해 하루 종일 전투한 백성들은 음식을 먹지 못하였습니다. 심지어 숲 속에서 발견한 꿀도 먹을 수 없었습니다. 숲 속에 꿀이 있다는 사실과 그것도 매우 손쉽게 얻을 수 있도록 땅 위를 흐르는 골이 있다는 것을 반복적으로 언급함으로써 사울의 맹세가 얼마나 어리석은지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사울의 어리석음은 29-30절에서 요나단의 입을 통해서 확인됩니다.
요나단의 금식령 거부(27-30)
누구나 자기 자신에게만 집중하면 경솔하게 행동하기 마련입니다. 문제는 경솔함 뒤에는 허영, 자만, 욕심이 따른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이 개인의 문제에서 그치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타인과 공동체에 영향을 미치게 되면 위기가 찾아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교만은 멸망의 지름길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27요나단은 그의 아버지가 백성에게 맹세하여 명령할 때에 듣지 못하였으므로 손에 가진 지팡이 끝을 내밀어 벌집의 꿀을 찍고 그의 손을 돌려 입에 대매 눈이 밝아졌더라 28그 때에 백성 중 한 사람이 말하여 이르되 당신의 부친이 백성에게 맹세하여 엄히 말씀하시기를 오늘 음식물을 먹는 사람은 저주를 받을지어다 하셨나이다 그러므로 백성이 피곤하였나이다 하니 29요나단이 이르되 내 아버지께서 이 땅을 곤란하게 하셨도다 보라 내가 이 꿀 조금을 맛보고도 내 눈이 이렇게 밝아졌거든 30하물며 백성이 오늘 그 대적에게서 탈취하여 얻은 것을 임의로 먹었더라면 블레셋 사람을 살륙함이 더욱 많지 아니하였겠느냐(27-30)
27절은 ‘그런데 요나단은’으로 시작하는데, 이것은 요나단이 백성들과 대조적으로 행동한 것을 강조하기 위한 문학적 장치입니다.
모두 금식하며 꿀을 바라보고만 있는 상황에서 요나단은 아버지가 백성들에게 금식하도록 맹세를 시킨 사실을 모르고서 꿈을 보자 지팡이로 찍어서 손으로 옮겨 입에 대었습니다. 여기서 ‘지팡이로 찍어서 먹었다’고 간단하게 표현하지 않고 ‘손을 입에 대었다’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26절에서 백성들이 손을 입에 대지 못하였다는 것과 분명히 대조하기 위해서입니다. 그 결과 요나단의 눈이 밝아졌습니다. 여기서 눈이 밝아졌다는 것은 새로운 기운이 생겼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이런 요나단의 모습을 보고 있던 백성 중 한 사람이 ‘당신의 부친이 백성에게 맹세하여 엄히 말씀하시기를 오늘 음식물을 먹는 사람은 저주를 받을지어다 하셨나이다’(28)라고 요나단에게 전합니다. 사울이 금식하도록 맹세시키고 저주까지 한 사실을 알려주면서 자신들은 그 맹세시키느라고 기운이 없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기운이 없다는 것은 ‘눈이 밝아졌다’라는 표현과 반대입니다. 요나단은 꿀을 먹고 기운을 얻었고 백성들은 먹지 못하여 기존이 없었던 것입니다.
이 말을 듣고 요나단은 자신이 저주받을 것에 대해 염려는 하지 않고, 오히려 아버지의 결정이 이 땅을 곤란하게 만들었다고 하며 사울을 비판합니다. 여기서 ‘땅을 곤란하게 하다’라는 표현은 ‘재난을 가져오다’ 혹은 ‘혼란에 빠뜨리다’라는 의미입니다. 이 표현이 사용된 가장 잘 알려진 맥락은 열왕기상 18:17-18에서 엘리야와 아합이 가뭄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가를 논쟁할 때입니다. 이는 사울이 백성들을 어려움에 빠지게 했다는 뜻입니다. 만일 백성들이 블레셋에게서 빼앗은 노획물을 배불리 먹고 기운을 얻어 싸웠으면 더 많은 블레셋 사람들을 죽일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요나단은 금식과 같은 종교 행위가 아닌 전쟁 자체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블레셋과의 전쟁은 여호와의 전쟁이기에 전력을 다하여 싸우는 것이 여호와의 전쟁에 임하는 최선의 모습이며, 그것이 여호와를 경외하는 태도입니다. 이미 여호와가 함께 계시기 때문에 금식과 같은 종교 행위는 필요가 없으며 주어진 조건을 최대한 이용하여 전쟁에서 더 큰 전과를 올리는 승리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것이 가장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이런 명령이 떨어지지 않고 이스라엘 백성이 지쳤을 때, 하나님께서 예비한 물건들로 기력을 보강했더라면 더 놀라운 전과를 이룰 수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본질을 놓칠 사울과 같은 종교인으로 변질되기 쉽습니다. 어리석은 결정은 사실은 눈에 보이기에는 경건에 보이고 신앙적으로 보일지라도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자신 안에 불안함을 떨치기 위한 하나님과 상관없는 종교적인 열심은 자기를 해칠 뿐만 아니라 공동체에도 심각한 피해를 줄 수 있습니다. 특별히 영적 지도자의 잘못된 종교적인 열심은 공동체 전체를 오히려 곤경으로 이끌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군사들이 저지른 죄(31-35)
공동체에서 지도자가 자기중심적인 경솔한 태도로 행동하면 타인에게 쉽게 전염됩니다. 갈급하고 긴급할수록 경솔함보다 진중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분별해야 합니다. 자신의 영향력 아래 있는 사람들을 통제의 대상으로 바라보지 말고, 그들이 하나님 앞에 바르게 설 수 있도록 섬기며 도와야 합니다.
31그 날에 백성이 믹마스에서부터 아얄론에 이르기까지 블레셋 사람들을 쳤으므로 그들이 심히 피곤한지라 32백성이 이에 탈취한 물건에 달려가서 양과 소와 송아지들을 끌어다가 그것을 땅에서 잡아 피째 먹었더니 33무리가 사울에게 전하여 이르되 보소서 백성이 고기를 피째 먹어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이다 사울이 이르되 너희가 믿음 없이 행하였도다 이제 큰 돌을 내게로 굴려 오라 하고 34또 사울이 이르되 너희는 백성 중에 흩어져 다니며 그들에게 이르기를 사람은 각기 소와 양을 이리로 끌어다가 여기서 잡아 먹되 피째로 먹어 여호와께 범죄하지 말라 하라 하매 그 밤에 모든 백성이 각각 자기의 소를 끌어다가 거기서 잡으니라 35사울이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으니 이는 그가 여호와를 위하여 처음 쌓은 제단이었더라(31-35)
결국 금식하면서 그날의 전쟁은 끝났고, 이스라엘은 믹마스에서부터 벧아원(벧호론)을 지나 아얄론까지 블레셋 사람들을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아얄론은 단 지파 지역에 있는 골짜기로 베냐민 지파의 지경에서 블레셋 군대를 거의 몰아낸 것입니다. 하루 사이에 엄청난 전과를 올렸습니다.
요나단의 담대한 믿음으로 이스라엘에게 큰 승리가 주어졌지만, 이스라엘은 큰 기쁨이 아니라 심한 피로를 느꼈습니다(31). 하루 종일 금식하며 전쟁을 했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너무 허기졌습니다. 전쟁을 승리로 마치자 허기를 참지 못하고 블레셋 사람들에게서 탈취한 소와 양들을 잡아 고기를 급히 피째 먹었습니다. 너무 배가 고팠기 때문에 가축을 잡고 피 빼는 자리를 만들고 피가 빠지기를 기다릴 겨를이 없었던 것입니다.
32절에서 백성들이 가축을 향해 달려갔다고 표현하는 것은 그들이 얼마나 굶주렸는지를 보여줍니다. 이스라엘의 백성들은 율법이 피를 먹는 것을 금지함에도 탈취한 가축을 잡아 피를 다 빼기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먹기 시작합니다
이런 피채 먹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행동이 사울에게 전달됩니다. 백성들 중 한 무리가 사울에게 가서 백성들이 가축을 잡아 피째 먹는 죄를 범하고 있다고 알립니다. 이 소리를 들은 사울은 백성들이 신실하지 못하게 행동한다고 비난합니다.
사실 백성들이 이렇게 행동하도록 원인을 제공한 바로 자신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백성들이 신실하지 못하다고 비난하는 아이러니한 모습이 나타나는데, 이런 모습을 통해 사울이 백성들을 올바르게 다스리지 못하는 왕이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한 공동체 지도자의 판단에 따라 그 공동체가 옳은 길로 갈 수도 있고 잘못된 길로 갈 수도 있기 때문에, 지도자의 역할은 정말로 중요합니다. 비록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이지만, 사울이 아니라 요나단이 왕이었으면 백성들을 좀 더 편하게 인도하였을 것입니다. 비극적이지만 요나단은 사울이 갖추었어야 할 왕으로서의 자질을 대신 보여줌으로써 사울의 부족한 면을 드러내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사울은 더는 백성들이 죄를 짓지 않게 하기 위해 커다란 돌을 가져오게 하여 제단을 만들어서 짐승을 잡고 피를 뺄 자리를 마련해줍니다. 그리고 모든 백성들에게 고기를 피째 먹어 여호와께 범죄하는 일을 하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34절 끝부분에서 이 일이 ‘그 밤에’ 이루어졌다고 말합니다. 이때는 금식의 명령이 해제된 시간입니다. 이렇게 허기져서 규례를 어기면서까지 고기를 먹으려는 백성들의 모습을 통해 사울의 판단이 틀렸고 요나단의 판단이 더 옳았다는 것을 또 한 번 확인할 수 있습니다.
35절은 일종의 후기 같은 것으로 사울은 그곳에 여호와를 위한 제단을 쌓는데, 이것은 여호와께 예배를 드리기 위한 제단입니다. 사울은 이곳에서 처음으로 사무엘 없이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렇게 사울의 어리석은 금식 맹세는 일단락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여전히 불씨는 남아있습니다.
사울은 왕으로서 첫 번째 전쟁에서 전반적으로 하나님을 온전히 의뢰하고 거룩한 전쟁을 선포하고 전쟁의 승패가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선언해야 했습니다. 그런데도, 그 가장 기본적인 일을 불순종하면서 사소한 일로 하나님 앞에 종교적 열심을 보이고 뒤늦게 승리의 제사를 드리는 사울의 연약한 신앙은 그가 실패하는 결정적인 계기였습니다. 어려울수록 믿음으로 무장하고 말씀으로 믿음이 자랄 수 있도록 선한 싸움을 다 싸워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날도 믿음을 가진 사람을 통해 역사를 이루어갑니다. 요나단 한 사람을 통해서 이스라엘 전체를 구원하셨습니다. 이처럼 공동체 내에서 한 사람의 믿음이 중요합니다. 종교적인 행위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어떤 두려움과 위기 상황 속에서도 나를 지켜 주시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신뢰한 만큼 나타납니다.
구독과 아래 [광고베너] 클릭은
저의 성경 연구에 큰 힘이 됩니다
'09 사무엘상(완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무엘상(27) - 사무엘상 15장 1-15절 - 하나님보다 사람들을 두려워하는 사울 (0) | 2024.11.09 |
---|---|
사무엘상(26) - 사무엘상 14장 36-52절 - 하나님과 상관없는 결정한 사울 (0) | 2024.11.08 |
사무엘상(24) - 사무엘상 14장 1-23절 - 신앙과 용기로 무장한 요나단 (1) | 2024.11.08 |
사무엘상(23) - 사무엘상 13장 13-23절 - 하나님의 명령을 무시한 결과 (6) | 2024.11.07 |
사무엘상(22) - 사무엘상 13장 1-15절 - 두려움 때문에 어리석음을 동반한 사울 (3) | 2024.11.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