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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15-01)


하나님보다 사람들을 두려워하는 사울

사무엘상 15장 1-15절


 

하나님의 계획은 영원불변하십니까? 하나님께서는 사울을 버리셨다고 말씀하셨으니 더 이상 그에겐 기회가 주어지지 않겠습니까? 그런 하나님이라면 너무 가혹하지 않습니까? 왜냐하면 사람은 누구나 실수하고, 실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울은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에 어떻게 반응합니까?

 

  • 사울이 사무엘이 올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자신이 직접 제사를 드린 일과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금식 맹세를 강요한 일로 일해 하나님과 점점 멀어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비록 그가 왕으로서 이스라엘의 구원자 역할을 잘했다고 평가받지만, 하나님의 충실한 종으로서의 역할은 하지 못한 것입니다. 사무엘과 마지막으로 만난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사울은 하나님께 완전히 버림을 받게 됩니다.

 

여호와의 명령(1-3)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는 사람은, 먼저 자신 안에 있는 적을 물리쳐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신 후에 성도들에게는 그 말씀을 따라 순종하도록 촉구합니다. 공의와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말씀을 묵상하고 그 가운데 기록된 대로 지켜 행함으로써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할 기회를 주십니다.

 

1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어 왕에게 기름을 부어 그의 백성 이스라엘 위에 왕으로 삼으셨은즉 이제 왕은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 2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아말렉이 이스라엘에게 행한 일 곧 애굽에서 나올 때에 길에서 대적한 일로 내가 그들을 벌하노니 3지금 가서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되 남녀와 소아와 젖 먹는 아이와 우양과 낙타와 나귀를 죽이라 하셨나이다 하니(1-3)

 

아말렉은 출애굽 후 광야를 행군하는 이스라엘을 비겁하게 뒤에서 공격했고, 그 후에도 지속적으로 이스라엘을 괴롭혔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아말렉을 천하에서 기억도 못 하게 하겠다고 선언하셨고(출 17:14; 신 25:19), 이제 그 뜻을 실행하시기 위해 사울에게 아말렉을 진멸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1) 왕으로 세우신 여호와(1)

 

다시 사무엘이 등장하는데 그는 선지자로서 하나님의 명령을 전달하기 위해 사울을 방문하였습니다. 여기서 사무엘은 여호와를 ‘만군의 여호와’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많은 군대를 거느린 여호와’라는 뜻으로 거룩한 전쟁의 문맥에 잘 어울리는 호칭입니다.

 

(2) 아말렉에 대한 명령(2-3)

 

2절에서 왜 아말렉을 쳐야 하는지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나온 역사는 출애굽기 17:8-16에 언급된 아말렉이 막 출애굽한 이스라엘을 공격한 사건입니다.

이 사건에 대해 하나님께서 왜 아말렉에 대해 심하게 진노하시는지 그 이유가 신명기 25장 17-19절에 나오는데, 피곤하고 약한 자들을 공격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말렉의 공격을 정정당당한 전쟁이 아니라 약자를 약탈하고 짓밟는 것으로 보신 것입니다. 또한 여호와를 두려워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방 나라들이 알 정도로 출애굽하면서 큰 이적을 행하시므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을 알리셨습니다. 아말렉이 감히 하나님의 백성을 공격하여 하나님의 주권을 침해하려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말렉에 대하여 대대로 싸우겠다고 선언하셨고, 지금 사울 왕에게 아말렉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를 시행하라고 명하신 것입니다.

3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진멸을 선언하십니다. 진멸은 거룩한 전쟁 혹은 여호와의 전쟁의 한 요소로 남녀와 소아와 젖먹이와 우양과 낙타와 나귀 등 살아있는 모든 것을 죽여서 하나님께 바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편으로 보면, 잔인해 보이는 이 진멸은 하나님의 심판을 철저하게 받아야 하는 대상에게만 이루어진 것이며, 모든 전쟁에서 행해진 것은 아닙니다. 진멸의 대상이 되는 전쟁은 가나안 일곱 족속과 아말렉과의 전쟁에 한정되어 있고, 나머지 민족들과의 전쟁은 사람들을 포로로 잡고 그들의 재산은 노획하는 일반적인 고대 근동의 전쟁 규례를 따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말렉에 대한 진멸하라는 명령은 하나님께서 사울에게 특별히 내리신 임무입니다.

이것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사울에게 지난 잘못들을 만회할 기회를 주신 것으로 생각됩니다. 만일 지난번과 달리 이번 임무를 하나님의 명령대로 잘 수행하였다면, 하나님께서는 사울이 회개한 것으로 여기고 지난 잘못을 덮어 주려 하셨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진정으로 회개하는 자들에게 가장 너그러우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아멜렉을 진멸하지 않은 사울(4-9)

행복(幸福)은 물질적인 만족이 아니라 정신적인 기쁨에서 얻을 수 있다. 개인주의자들은 무엇인가 손에 잡힐 때 행복합니다. 하지만 남을 배려하는 사람은 마치 벌꿀처럼 말없이 부지런히 일하면서 봉사와 희생을 통해 행복을 느낍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명령이 자기 생각과 다를지라도 전적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4사울이 백성을 소집하고 그들을 들라임에서 세어 보니 보병이 이십만 명이요 유다 사람이 만 명이라 5사울이 아말렉 성에 이르러 골짜기에 복병시키니라 6사울이 겐 사람에게 이르되 아말렉 사람 중에서 떠나 가라 그들과 함께 너희를 멸하게 될까 하노라 이스라엘 모든 자손이 애굽에서 올라올 때에 너희가 그들을 선대하였느니라 이에 겐 사람이 아말렉 사람 중에서 떠나니라 7사울이 하윌라에서부터 애굽 앞 술에 이르기까지 아말렉 사람을 치고 8아말렉 사람의 왕 아각을 사로잡고 칼날로 그의 모든 백성을 진멸하였으되 9사울과 백성이 아각과 그의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 또는 기름진 것과 어린 양과 모든 좋은 것을 남기고 진멸하기를 즐겨 아니하고 가치 없고 하찮은 것은 진멸하니라(4-9)

 

성도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는 것은 우상 숭배와 같은 무거운 죄로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됨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중히 여겨 인생의 최우선 순위에 두고 지킴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의 본분을 지켜야 합니다.

 

(1) 군대 소집(4-5)

 

사울은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서 아말렉과 전쟁하기 위해 백성들을 소집합니다. 자신의 상비군 이외에 전쟁을 위해서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서 군사를 불러 모았는데, 숫자가 보병이 이십만 명이고 유다 사람이 만 명이었습니다. 사무엘상 11:8에서도 유다가 독립적으로 언급되고 있습니다. 사울은 군대를 모아 아말렉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는 지역의 골짜기에 매복시키고 공격할 준비를 하였습니다.

 

(2) 겐 사람에 대한 조치(6)

 

그런데 여기서 사울은 아말렉에 거주하는 겐 사람들에게 자신들이 공격할 것임을 알려주며 그곳에서 떠나라는 권고를 합니다.

본문에서 그 이유를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올라올 때 이스라엘을 선대하였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겐 사람은 모세의 장인의 후손들로 이스라엘과 오랫동안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모세의 장인은 광야에서 모세에게 백성들을 통제하는 관리 제도를 알려주었습니다. 또한 이들은 사사기 1장 16절에 따르면 유다 자손과 같이 가나안 땅으로 들어와 유다 남방에 거하였다고 말하고, 겐 사람의 아내 야엘은 이스라엘의 적인 시스라를 죽이며 이스라엘을 구원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3) 전쟁의 승리(7-9)

 

이런 사울의 경고를 들은 겐 사람들은 아말렉 사람들 가운데서 떠나갔습니다. 이 부분에서 출애굽 시 광야에서 이스라엘을 선대한 백성은 구원받고 이스라엘을 공격한 아말렉은 심판을 받는 모습을 대조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8절에서 사울은 아각을 사로잡고 칼날로 모든 백성을 진멸하였다고 말합니다. 여기까지 보면 사울이 매우 성공적으로 여호와의 명령을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9절에서 사울과 백성들이 아각과 소와 양과 살진 짐승들의 가장 좋은 것과 보기에 좋은 가축들은 모두 남겼다고 보고합니다. 그들이 진멸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쓸모없어 버려질 만한 것들만 죽였습니다. 본문에서 ‘진멸하다’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이렇게 쓸모없는 것만 골라서 죽이는 것에 대해 ‘진멸하다’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데, 이런 부적절한 단어를 사용함으로 사이 여호와께서 내리신 진멸의 명령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울이 진멸하기를 좋아하지 않은 이유는 두 가지인데, 첫째는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당장 눈앞의 이익에 눈이 멀었기 때문입니다. 너무나 좋은 수많은 가축들을 죽이는 것이 아깝다고 여겼던 것입니다. 진멸이란 모두 죽여서 하나님께 바치는 것을 의미하는데, 그는 이런 진멸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입니다. 둘째는 하나님보다는 같이 전쟁한 백성들의 눈치를 본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전쟁에서 이기면 많은 노획물을 얻어 백성들에게 나누어 줌으로써 백성들에게 왕으로서의 능력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모두 죽이면 백성들의 손에 돌아가는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백성들이 사울에 대해 불평하게 됩니다. 그는 이런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분명히 가르치고 백성들을 설득하는 역할을 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하고, 백성들의 눈치를 살피며 그들이 원하는 대로 해준 것입니다. 이렇게 사울은 하나님께서 주신 또 한 번의 기회를 놓쳐버리고 하나님께 완진히 버림을 받게 됩니다.

 

여호와의 평가(10-15)

세상적인 기념비를 남기려는 관심에서 시작한 일에서는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수 없습니다. 자신이 유능하다는 인생을 주면서 동시에 하나님께서 전지전능하시다는 인상을 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주님의 기대를 저버리는 삶을 살고 있거든 더 늦기 전에 돌아서야 합니다.

 

10여호와의 말씀이 사무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11내가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을 후회하노니 그가 돌이켜서 나를 따르지 아니하며 내 명령을 행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하신지라 사무엘이 근심하여 온 밤을 여호와께 부르짖으니라 12사무엘이 사울을 만나려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났더니 어떤 사람이 사무엘에게 말하여 이르되 사울이 갈멜에 이르러 자기를 위하여 기념비를 세우고 발길을 돌려 길갈로 내려갔다 하는지라 13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른즉 사울이 그에게 이르되 원하건대 당신은 여호와께 복을 받으소서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행하였나이다 하니 14사무엘이 이르되 그러면 내 귀에 들려오는 이 양의 소리와 내게 들리는 소의 소리는 어찌 됨이니이까 하니라 15사울이 이르되 그것은 무리가 아말렉 사람에게서 끌어 온 것인데 백성이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 하여 양들과 소들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남김이요 그 외의 것은 우리가 진멸하였나이다 하는지라(10-15)

 

사무엘의 숨은 동기를 여호와는 아시고 그를 왕 삼으신 것을 후회하셨습니다. 눈에 보이는 삶의 환호와 인정을 위해 진정한 왕을 버린 사울을 보고 마음이 아프셨습니다.

 

(1) 여호와의 말씀(10-11)

 

이런 사울의 모습을 본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에게 나타나셔서 자신이 사울을 왕으로 삼은 것에 대해 후회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신인동형론적 표현으로 사울에 대한 하나님의 섭섭한 감정을 이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말렉을 진멸하라는 명령을 통해 사울이 하나님께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셨지만, 그는 하나님의 명령을 또다시 어긴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죄를 지으면 바로바로 심판하시는 분이 아니라 경고하시고 또다시 기회를 주시며 우리가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분입니다. 하지만 이런 기회를 자꾸 놓치게 되면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울을 완전히 포기하신 것을 알게 된 사무엘은 하나님의 실망스런 마음을 이해하며 사울의 어리석은 행동에 대해 분노합니다. 이렇게도 하나님의 마음을 모르고 기회를 잃어버린 사울에 대해 일차적으로 분노가 일어난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그치지 않고 사울의 안타까운 운명을 생각하며 하나님께 그를 도와달라고 간절히 부르짖습니다. 여기서 ‘부르짖다’는 여호와께 간절히 도움을 구할 때 쓰는 표현으로 사무엘은 사울을 위해 하나님께 끝까지 중보기도를 한 것입니다.

 

(2) 사울의 기념비(12)

 

다음 날 사울을 만나기 위해 가던 사무엘은 사울의 어리석은 행동 하나를 더 듣게 됩니다. 그가 자신의 업적을 기념하기 위해 기념비를 세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보다 자신의 이름을 남기기에 애쓰는 사울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울은 사무엘을 만나자 자랑스럽게 자신이 여호와의 명령을 행했다고 말합니다.

 

(3) 사무엘과 사울의 대화(13-15)

 

모든 것을 알고 있었던 사무엘은 사울이 남겨놓은 가축들의 소리를 지적하며 이것이 무엇이냐고 묻습니다. 이것은 몰라서 묻는 것이 아니라 사울의 말에 대한 비난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행했다면서 남아 있는 가축들은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이런 사무엘의 지적에 사울은 백성들이 끌고 온 가축으로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기 위해 가장 좋은 가축들을 남긴 것이라고 변명합니다. 그는 가축을 남긴 것은 백성들이라고 말하며 진멸을 행하지 못한 일차적 책임을 백성들에게 돌립니다. 또한 제사를 위한 것이라고 하면서 물질에 대한 자신의 욕심을 신앙적 행동인 것처럼 포장합니다. 이렇게 사울은 죄를 고백하고 하나님의 용서를 받을 마지막 기회마저 놓치고 맙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회개할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사무엘이 사울에게 여호와의 말씀을 전한 것은 그에게 새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사울은 이 기회를 저버리고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행동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승리를 자신의 전과로 바꾸며 하나님의 목소리를 무시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는 그가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고 있는지를 시험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기회를 소중히 여기고 온전히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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