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14-03)
하나님과 상관없는 결정한 사울
사무엘상 14장 36-52절
하나님 나라를 섬기는 사람들이나 자리는 저마다 다릅니다. 세워주신 자리에 따라 감당해야 할 책임의 무게 또한 다릅니다. 무게는 다르지만, 그 하나님 나라를 섬김에 있어 요구되는 덕목은 같습니다. 어떤 역할을 맡느냐보다 더 앞서는 것은 어떤 태도로 섬기느냐입니다.
- 사울은 여호와께서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승리를 주시는 것을 보고 좀 더 많은 여호와의 도움을 얻고 싶은 생각에 백성들에게 금식을 강요합니다. 그런데 정작 사울의 아들 요나단은 사울의 금식 맹세를 듣지 못하고 땅에 있는 꿀을 먹어 금식 맹세를 어기게 됩니다. 그날 전쟁에서 큰 승리를 하게 되어 사울의 금식명령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결과적으로 백성들이 고기를 피째 먹는 죄를 저지르고 요나단도 맹세를 어긴 것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전쟁의 중단(36-37)
모든 성공은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는 증거라 확신할 수 있습니다. 더욱 자신의 성공을 과시하기 위해 가족이나 연약한 지체나 공동체를 배려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원하시지 않는 성공일 수 있습니다. 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떠난 죄악일 수 있습니다.
36사울이 이르되 우리가 밤에 블레셋 사람들을 추격하여 동틀 때까지 그들 중에서 탈취하고 한 사람도 남기지 말자 무리가 이르되 왕의 생각에 좋은 대로 하소서 할 때에 제사장이 이르되 이리로 와서 하나님께로 나아가사이다 하매 37사울이 하나님께 묻자오되 내가 블레셋 사람들을 추격하리이까 주께서 그들을 이스라엘의 손에 넘기시겠나이까 하되 그 날에 대답하지 아니하시는지라(36-37)
누가 보아도 패배할 수밖에 없는 전쟁에서 놀랍게도 승기를 잡았습니다. 믿을 수 없는 승리를 일궈냈습니다. 사울 왕의 어리석음과 영적으로 준비되지 못한 모습에도 불구하고, 요나단의 믿음과 용기로 블레셋을 이스라엘 지경에서 쫓아내고 승기를 잡았을 때, 사울의 흥미해서 너무 흥분한 나머지 무모한 결정을 내립니다.
지도력의 부재로 사울은 승리의 기쁨은 누리지 못한 채 자식과 백성 모두의 마음을 잃고 맙니다. 그러나 사울에 대한 이러한 부정적인 묘사와 함께 서술된 기사는 이스라엘을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줍니다.
(1) 전쟁을 다시 시작하려 함(36)
사울은 전쟁을 서둘러 하루 만에 끝마치기 위해 이미 지쳐 있는 군사에게 금식을 명령했습니다. 그리고 36절에 전쟁에서 승리하자 여세를 몰아 밤에 전쟁을 수행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블레셋과 전투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모으고 밤에 추격하여 새벽까지 블레셋을 탈취하고 한 사람도 남기지 말자고 제안합니다(36). 여기서 한 사람도 남기지 말자는 표현은 거룩한 여호와의 전쟁의 요소 중 하나인 진멸을 생각나게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칠대로 지치고 또 금식 선언까지 해서 아무것도 먹지 못한 상태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다시 밤에 추격전을 벌이게 합니다. 그는 이 전쟁을 완전한 여호와의 전쟁으로 만들기 원한 것입니다. 자신의 금식 맹세가 여호와의 전쟁의 의미를 퇴색시켰다는 사실을 아직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왕의 제안에 백성들도 찬성합니다(36b). 지금 기세로 보았을 때 충분히 블레셋을 완전히 몰아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인간적인 동기로 그리고 이기적인 동기로 자기 명예와 자존심을 세울 수 있는 기회로 삼아서 백성의 상태, 군대의 사기도 아랑곳하지 않고, 지금 자기 명성으로 영광을 차지하기 위해서 무리한 전쟁을 시도합니다.
이때 처음으로 제사장들이 나서서 하나님께로 가자고 말합니다. 이것은 전쟁을 하러 올라갈지 말지를 여호와께 여쭤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뜻을 묻는 것은 여호와의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2) 하나님의 뜻을 물음(37)
사울은 제사장의 권고를 따라 하나님께 자신이 블레셋을 추적해도 될지, 그리고 여호와께서 그들을 이스라엘의 손에 넘기실지 묻습니다. 하지만 여호와께서는 묵묵부답이셨습니다. 응답지 않았을 때, 우리는 분별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실질적으로 하나님의 거절을 의미합니다. 여호와께서 기뻐하지 않으신다는 뜻입니다. 요나단의 물음에는 하나님께서 응답하시고 이스라엘의 손에 블레셋을 넘기실 것을 알려주신 것과 대조됩니다(삼상 14:12).
전쟁의 중단의 원인(38-46)
하나님께 기도했지만, 기도의 응답이 되지 않을 때 정말 당황스럽습니다. 당황스러운 이유 중 하나는 하나님을 이용하려는 욕망에서 시작한 기도일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그분을 자기 정당화를 위해 하나님을 이용한다면, 하나님께서는 반응하지 않으십니다. 겸손함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38사울이 이르되 너희 군대의 지휘관들아 다 이리로 오라 오늘 이 죄가 누구에게 있나 알아보자 39이스라엘을 구원하신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 아들 요나단에게 있다 할지라도 반드시 죽으리라 하되 모든 백성 중 한 사람도 대답하지 아니하매 40이에 그가 온 이스라엘에게 이르되 너희는 저쪽에 있으라 나와 내 아들 요나단은 이쪽에 있으리라 백성이 사울에게 말하되 왕의 생각에 좋은 대로 하소서 하니라 41이에 사울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 아뢰되 원하건대 실상을 보이소서 하였더니 요나단과 사울이 뽑히고 백성은 면한지라 42사울이 이르되 나와 내 아들 요나단 사이에 뽑으라 하였더니 요나단이 뽑히니라 43사울이 요나단에게 이르되 네가 행한 것을 내게 말하라 요나단이 말하여 이르되 내가 다만 내 손에 가진 지팡이 끝으로 꿀을 조금 맛보았을 뿐이오나 내가 죽을 수밖에 없나이다 44사울이 이르되 요나단아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이 내게 벌을 내리시고 또 내리시기를 원하노라 하니 45백성이 사울에게 말하되 이스라엘에 이 큰 구원을 이룬 요나단이 죽겠나이까 결단코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여호와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옵나니 그의 머리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할 것은 그가 오늘 하나님과 동역하였음이니이다 하여 백성이 요나단을 구원하여 죽지 않게 하니라 46사울이 블레셋 사람들 추격하기를 그치고 올라가매 블레셋 사람들이 자기 곳으로 돌아가니라(38-46)
사울에게는 밤에 전쟁을 해야할 지 물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응답하지 않으셨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고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가 해야 할지, 물어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답하지 않은 것을 하나님께서 진노하셨다고 속단하셨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중에 죄가 있어서 대답하지 않았다는 것을 속단하고 진상규명을 위해 모든 군대 지휘관들을 다 모아서 느닷없이 처형을 공언하며 주변 사람의 죄를 추궁합니다.
(1) 제비뽑기(38-42)
하나님께서 응답하지 않으신 것을 거절의 의미로 알아들은 사울은 자신들 안에 숨겨진 죄가 있어서 응답이 없는 것이라고 판단합니다. 누군가 몰래 금식 맹세를 어겼기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지 않으셨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사울은 군대의 지휘관들을 불러 누구에게 죄가 있는지 알아보자고 말하며, 만일 요나단이라도 죄가 있다면 여호와의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하기를 반드시 것이라고 합니다(38). 하나님께서 응답하지 않으신 것 사울의 어리석은 맹세 때문인데 사울은 다시 어리석은 맹세를 반복한 것입니다(39). 그런데 사울은 자기 맹세의 진실성을 드러내기 위해 수사적으로 한 말이었지만, 이 말은 실제적으로 끔찍한 현실을 담고 있었습니다.
이런 사울의 말에 모든 백성 중에 한 사람도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백성들이 요나단을 보호하기 위해 침묵한 것입니다. 백성들은 요나단이 사울의 금식 명령을 어기고 꿀을 먹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그 결과 사울의 맹세가 요나단을 죽게 만들 것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 사실은 백성들과 독자들도 알고 있지만, 오직 사울만 모르고 있습니다. 이런 인식의 불일치를 통해 독자들은 얼마나 어리석고 위험한 일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사울이 그 사실을 알았을 때 어떤 반응을 할지 걱정하는 마음으로 지켜보게 됩니다.
백성들이 죄를 고백하지도, 누구를 고발하지도 않고 침묵하자, 사울은 이것을 승인으로 생각하고 여호와의 신탁을 통해 죄인을 밝히기로 합니다. 사울은 자신과 요나단을 한편으로 하고 나머지 백성들을 다른 한편으로 하여 신탁을 받겠다고 합니다. 이런 사울의 결정에 백성들은 왕의 마음대로 하라고 말합니다. 백성들은 이미 결과를 알고 있고 차마 자신들의 입으로 요나단의 죄를 말할 수 없기 때문에 사울이 하는 대로 내버려둔 것입니다. 결국 우림과 둠밈으로 제비를 뽑았는데 요나단과 사울이 뽑히고 백성들은 면제되었습니다(41). 여기서 의도적으로 사울과 요나단이 아니라 요나단과 사울이라고 이름을 바꿔 요나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상황에서 자신과 요나단을 두고 다시 제비뽑기를 합니다. 사울은 자신들이 뽑혔을 때 혹시 요나단이 잘못을 한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백성들 앞에서 맹세한 것이 있기 때문에 그만두지 못하고 계속 강행합니다. 그리고 결국 사울을 제외한 모두가 예상한 대로 요나단이 뽑히게 되었습니다(42).
(2) 요나단의 자백(43)
요나단이 뽑히자 사울은 그가 무슨 일을 했기에 뽑히게 되었는지 알기 원했습니다. 아마 사울은 상당히 당황스럽고 곤혹스러울 것입니다. 그는 무섭게 추궁합니다. 자신이 만들어놓은 맹세의 덫에 자신의 아들이 걸려 죽게 생긴 것입니다.
이에 요나단은 자신이 꿀을 막대기에 찍어 조금 맛만 보았다고 말합니다(43). 이 말은 27절에서 화자의 설명과 동일합니다. 다만 자신은 정말 맛만 보았다는 말 속에는 그의 억울한 심정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고작 꿀 한 번 찍어 먹은 것으로 죽어야 하는 상황을 믿을 수 없고 억울했던 것입니다. ‘보소서 내가 죽어야만 합니다’라는 말은 자신이 기꺼이 죽겠다는 의미보다는 자신이 죽어야 한다는 사실을 믿지 못해 정말 죽어야 하는지 아버지 사울에게 묻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영어 NIV는 이런 의미로 ‘내가 죽어야 합니까?’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사울은 요나단에게 반드시 죽어야 하며, 그러지 않으면 자신의 맹세대로 자신이 여호와께 벌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자신이 하나님께 맹세한 것이 있기 때문에 요나단을 죽이지 않으면 자신에게 재앙이 온다는 것입니다.
(3) 사울의 선고(44)
일차적으로는 하나님께 맹세하였기 때문에 비록 아들이라도 맹세는 지켜야 한다고 말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이면적으로 사울은 백성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맹세한 것이기 때문에, 이 맹세를 철회할 경우 왕으로서의 체면이 크게 손상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그는 요나단을 죽이고 왕으로서 자신의 명예를 지키고 재앙을 피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4) 백성의 변호(45)
이런 사울의 모습은 맹세를 통해 자신의 딸을 죽음의 위기로 몰아넣은 입다의 모습과 동일합니다. 둘 다 백성들 앞에서 자신의 명예와 지위를 지키기 위해 죄 없는 자식들을 희생시키려고 합니다. 하지만 입다의 딸과 다르게 요나단은 백성들이 구해줍니다. 백성들이 사울과 요나단 사이의 재판관으로 나서며 오늘 이스라엘의 큰 구원을 이룬 사람이 요나단이며, 그야말로 하나님과 동역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백성들은 사울이 아니라 요나단이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자신들을 구원하고 클레셋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주역이라고 평가하며, 그를 죽이지 않기로 맹세를 합니다. 사울의 맹세에 대해 백성들도 맹세로 대응하였습니다. 사울이 비록 금식을 맹세하고 하나님 앞에 맹세를 갖는 등 매우 신앙적인 것같은 행동을 하고 있지만, 백성들은 하나님을 의지하여 단 둘이서 블레셋 진영을 쳐들어간 것과, 이로 인해 이스라엘이 블레셋을 크게 이기게 한 것이 진정으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행동이라고 평가한 것입니다. 백성들의 이런 평가는 곧 하나님의 평가로 볼 수 있습니다. 사울의 맹세 자체가 잘못이기 때문에 요나단을 죽이면 오히려 죄를 더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울에게는 백성들의 말을 듣고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 자신의 어리석음을 회개하는 것이 올바른 해결책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울은 회개하지 않았고, 자신이 맹세한 저주 아래 놓이게 됩니다.
(5) 전쟁 중단(46)
블레셋과의 전쟁은 완성되지 못하고 여기서 끝나게 됩니다. 전쟁이 갑작스럽게 끝나는 것을 통해 사울의 어리석은 맹세가 블레셋을 완전히 몰아낼 기회를 놓치게 만들었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사울의 어리석은 맹세를 보면서 아무것으로도 맹세하지 말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잘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사울의 업적과 그의 집안(47-52)
지도자들은 자신을 보좌해줄 영재를 영입하여 함께 일하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일꾼들도 지도자가 되었을 때, 지도자로서 인재를 영입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먼저 모든 일은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진행하는 것이 좋습니다. 하나님보다 그들을 더 의지한다는 말 같아 불안합니다.
47사울이 이스라엘 왕위에 오른 후에 사방에 있는 모든 대적 곧 모압과 암몬 자손과 에돔과 소바의 왕들과 블레셋 사람들을 쳤는데 향하는 곳마다 이겼고 48용감하게 아말렉 사람들을 치고 이스라엘을 그 약탈하는 자들의 손에서 건졌더라 49사울의 아들은 요나단과 이스위와 말기수아요 그의 두 딸의 이름은 이러하니 맏딸의 이름은 메랍이요 작은 딸의 이름은 미갈이며 50사울의 아내의 이름은 아히노암이니 아히마아스의 딸이요 그의 군사령관의 이름은 아브넬이니 사울의 숙부 넬의 아들이며 51사울의 아버지는 기스요 아브넬의 아버지는 넬이니 아비엘의 아들이었더라 52사울이 사는 날 동안에 블레셋 사람과 큰 싸움이 있었으므로 사울이 힘 센 사람이나 용감한 사람을 보면 그들을 불러모았더라(47-52)
사울을 통해 블레셋을 중앙 산지로 몰아냄으로써 기름 부은 자를 통해 블레셋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겠다(9:16)는 약속을 지키셨습니다.
(1) 이스라엘을 구원한 사울(47-48)
사울이 왕위에 있는 동안 치른 전투에 대한 요약으로 사울이 많은 적들과 전쟁을 하며 이스라엘의 구원자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고 사무엘서는 최종적으로 평가해주고 있습니다. 비록 그가 하나님 보시기에 신실하지 못하고 다윗을 죽도록 미워하였지만, 기본적인 왕으로서의 임무는 수행했다는 것입니다.
(2) 사울의 가족(49-51)
그의 가족과 군대 장관의 이름이 나오는데, 이 이름들은 후에 다윗의 이야기 속에서 계속 등장합니다.
(3) 사울 통치의 요약(52)
사울이 왕으로서 계속해서 군사력을 증강하기 위해 용사들을 모았다고 설명합니다. 이것은 후에 다윗이 골리앗을 죽인 후 어떻게 그렇게 쉽게 사울의 무기 드는 자가 될 수 있었는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하나님의 뜻과 내면의 목소리를 어떻게 구분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는지, 공평과 정의, 자비심이 있는지 여부로 결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것이 모자랐을 때, 주변 사람조차 가차 없이 회생시킬 수 있다는 경각심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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