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15-02)
범죄한 사울 왕을 버리신 하나님
사무엘상 15장 16-35절
지도자는 자신의 영향력 아래 있는 사람들의 필요와 생각을 자세하게 살펴야 합니다. 하지만 너무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다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일은 철저히 금해야 합니다. 사람들의 뜻과 하나님의 뜻이 일치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종종 자신의 욕망이 하나님의 뜻과 반대되는데, 진행됨으로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 아말렉을 진멸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은 사울은 아말렉과의 전쟁은 성공적으로 마치지만, 진멸 명령은 온전히 수행하지 못하고 좋은 가축들과 아말렉 왕 아각을 살려놓습니다. 이런 불순종에 하나님께서는 사울을 왕으로 세운 일을 후회하십니다. 하지만 사울은 여전히 자신의 잘못을 깨닫지 못하고 자신의 행동에 대해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으며, 그런 사울에게 사무엘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려주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는 사무엘(16-23)
순종의 3대 원칙은 일을 하면서 ‘즉각적으로’ ‘기쁘게’ 그리고 ‘온전하게’입니다. 이 원칙에서 벗어난 순종은 불순종에 가깝습니다.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도 않고, 어쩔 수 없이 인정한 후에도 그 진정성을 보이지 못하고 행동과 삶으로 변화된 모습을 입증해 보이지 못하면 위선자가 되는 것입니다. 큼 기대와 열망 속에 왕으로 뽑힌 사울은 실망스러운 면모를 자꾸 노출합니다. 사울의 입작이라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16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가만히 계시옵소서 간 밤에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신 것을 왕에게 말하리이다 하니 그가 이르되 말씀하소서 17사무엘이 이르되 왕이 스스로 작게 여길 그 때에 이스라엘 지파의 머리가 되지 아니하셨나이까 여호와께서 왕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을 삼으시고 18또 여호와께서 왕을 길로 보내시며 이르시기를 가서 죄인 아말렉 사람을 진멸하되 다 없어지기까지 치라 하셨거늘 19어찌하여 왕이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하고 탈취하기에만 급하여 여호와께서 악하게 여기시는 일을 행하였나이까 20사울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나는 실로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여 여호와께서 보내신 길로 가서 아말렉 왕 아각을 끌어 왔고 아말렉 사람들을 진멸하였으나 21다만 백성이 그 마땅히 멸할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으로 길갈에서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고 양과 소를 끌어 왔나이다 하는지라 22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23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하니(16-23)
사울은 이것도 하나님께 순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좋은 양과 살찐 소를 죽이는 것이 아까웠겠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묵과했습니다.
(1) 사무엘의 책망(16-19)
사무엘이 사울에게 진멸을 행하지 않은 것을 지적하였지만, 사울은 자신의 잘못을 깨닫지 못하고 변명으로 일관합니다. 이에 사무엘은 사울에게 ‘조용히 하라’고 경고하고 사울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합니다. 먼저 하나님께서 사울을 왕으로 삼으신 상황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사울이 왕이 된 것은 사울이 힘이 있어서가 아니라 여호와께서 사울을 선택하시고 기름을 부어 왕으로 삼으셨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지적합니다. 하나님께서 사울을 왕으로 선택하셨다는 말을 들었을 때 사울은 자신의 지파와 집이 미약하다는 사실을 피력하였고(9:21), 왕으로 선택된 순간에는 감당하기가 두려워 숨기까지 하였습니다(10:22).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자신감 없는 사울을 위해 세 가지 표징을 주시면서 하나님께서 그를 왕으로 선택했다는 확신을 주기까지 하셨습니다. 이렇게 사울을 왕으로 세우신 하나님께서 사울에게 죄인 아말렉 사람을 진멸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여기서 진멸을 강조하기 위해서 그들이 완전히 없어질 때까지 전쟁하라고 부가적으로 설명합니다. 19절은 수사의문문을 통해 사울의 죄를 지적하는데, 수사의문문은 ‘당신이 어떻게 이럴 수 있습니까?’라는 비난의 논조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무엘은 사울이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탈취물을 취하기에 급급한 모습을 보였는데, 그것이 여호와 눈에 악한 행동이라고 비난합니다. 하나님께서 사울에게 아말렉을 진멸하라고하신 이유는 아말렉이 여호와 앞에 죄를 범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18절에서 아말렉을 ‘죄인 아말렉’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왜 죄인인지는 이미 2절에서 설명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울을 통해 하나님의 공의를 드러내는 심판을 하실 계획이었고 그래서 노획물을 얻는 일반 전쟁이 아닌 진멸 전쟁을 명령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사울이 노획물을 남겨 둠으로써 이런 하나님의 계획이 심판의 진멸 전쟁이 아닌 노획물을 얻기 위한 일반적인 전쟁으로 변질되어버린 것입니다.
(2) 사울의 변명(20-21)
하지만 사울은 이런 사무엘의 지적에도 자신이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아각을 끌고 왔고 백성들을 다 죽였다고 주장합니다. 여기서 사울의 말에 모순이 있는데 진멸했다면 아각도 죽였어야 했는데, 아직까지 아각을 살려두고 있는 것입니다. 사울은 계속해서 자신은 온전히 순종했지만, 백성들이 당신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 가장 좋은 것을 가져온 것이라고 또다시 변명합니다.
(3) 여호와의 선고(22-23)
이런 사울에게 사무엘은 하나님께서 진정 원하시는 것은 순종이라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번제나 다른 제사와 같은 종교적 행위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그의 말씀대로 행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이 말은 제사 드리기 위해 가축들을 남겼다는 사울의 변명에 대한 하나님의 의견으로 제사나 번제를 싫어하신다는 의미는 아니다. 종교적 행위와 하나님 말씀에 대한 순종을 비교할 때 순종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와 희생을 실천하여 약자를 보호하고 정직한 삶을 사는 것 없이 예배 드리고 헌금하고 기도만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신앙이 아니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사무엘은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불순종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우상숭배의 죄와 같다고 비판합니다. 점치는 것과 우상숭배는 하나님 이외에 다른 존재를 의지하고 믿는 것을 말하는데, 불순종과 완고함을 하나님 이외의 다른 신을 믿는 행위로 간주한 것입니다. 이것은 명백한 배교로 죽음에 해당하는 죄입니다. 불순종과 완고함은 결국 하나님보다 자기 자신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자신의 생각을 하나님 생각보다 우선시하는 것이기에, 이러한 모든 것은 전부 우상숭배인 것입니다. 사무엘은 불순종한 사울이 여호와의 말씀을 거부하였다고 선언하며, 그렇기 때문에 여호와께서도 사울이 왕이 되는 것을 거부하셨다고 선언합니다.
자신의 죄를 시인하는 사울(24-31)
부모님은 우리가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것을 좋아하시고 기뻐하십니다. 부모가 좋아한다고 커닝과 같은 부정한 방법을 사용해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자를 들어 사용하십니다. 사람들이 낮은 자리에 있을 때는 겸손하지만, 높은 자리에 앉을 때도 겸손할 수 있는 사람이 진정한 겸손한 사람들입니다.
24사울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과 당신의 말씀을 어긴 것은 내가 백성을 두려워하여 그들의 말을 청종하였음이니이다 25청하오니 지금 내 죄를 사하고 나와 함께 돌아가서 나로 하여금 여호와께 경배하게 하소서 하니 26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나는 왕과 함께 돌아가지 아니하리니 이는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 왕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음이니이다 하고 27사무엘이 가려고 돌아설 때에 사울이 그의 겉옷자락을 붙잡으매 찢어진지라 28사무엘이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오늘 이스라엘 나라를 왕에게서 떼어 왕보다 나은 왕의 이웃에게 주셨나이다 29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하지 않으심이니이다 하니 30사울이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을지라도 이제 청하옵나니 내 백성의 장로들 앞과 이스라엘 앞에서 나를 높이사 나와 함께 돌아가서 내가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경배하게 하소서 하더라 31이에 사무엘이 돌이켜 사울을 따라가매 사울이 여호와께 경배하니라(24-31)
하나님께서 종들을 통해 책망하신 시점은 아직 늦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징계와 심판을 경고하고 있다면 그것은 아직 돌이킬 기회가 남아있다는 뜻이고 속히 돌아오라는 사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울은 주어진 마지막 기회조차 변명과 핑계로 상황을 피해 보려고만 했습니다.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최종 선고가 내려지고 말았습니다.
(1) 제사를 요구하는 사울(24-25)
사울의 가장 큰 불행은 돌이킬 기회가 주어졌을 때 회개하지 못한 것에 있었습니다. 사무엘이 사울의 죄를 지적했을 때, 사울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자신의 손으로 아말렉 왕 아각과 남겨둔 짐승을 진멸시켜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불순종은 무지나 연약함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고의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한 것입니다. 사울은 자신의 불순종을 알고 찾아온 사무엘에게 승전보를 전하며, 하나님께 제물로 바치기 위해 좋은 짐승들을 살려 주었다고 변명하였습니다.
사무엘이 하나님께서 왕을 거절했다고 최후의 통첩을 보내자, 그제야 사울은 자신의 죄를 시인합니다. 두 가지 잘못을 깨달은 것입니다. 첫째는 ‘내가 여호와의 명령과 당신의 말씀을 어겼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것은 ‘내가 맥성을 두려워하여 그들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보다 청종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는 자신을 세우신 하나님께서는 명령하신 대로 순종하지 않고, 자신의 판단과 백성의 여론을 따랐습니다. 또한 하나님보다 사람을 더 두려워하고 그들의 말을 따르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사울은 일단 권력을 갖게 되자 계속해서 권력을 유지하고 싶었고, 그러기 위해 백성들의 눈치만 살피며 일하게 된 것입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였으니 회개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너무 늦게 돌이킨 것입니다. 사무엘의 개인적인 인정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2) 거절하는 사무엘(26-29)
사울은 사무엘을 통해서라도 여호와의 자비를 얻기 원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사무엘은 이런 사울의 요청을 거절합니다. 23절에서 한 말을 반복하면서 ‘이는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 왕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음이니이다’(26)라고 이미 하나님께서 왕을 버렸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줍니다.
이런 사울의 모습과 대조를 이루는 사람이 다윗입니다. 다윗은 죄를 지적받자 바로 회개함으로 죄사함을 받습니다. 그가 비록 더 흉악한 죄를 지었지만, 회개의 기회에 올바로 반응했기에 하나님께 버림받지 않고 왕권을 지켜나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중요하게 배워야 할 것은, 죄를 짓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만일 죄를 지었다면 빨리 깨닫고 회개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사랑이 많은 하나님이시지만, 죄를 시인하지 않고 회개하지 않으면 용서하실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지존자이신 하나님께서는 거짓이 없으시고 사람과 같이 결정을 번복하거나 뒤집는 분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오해 참으시지만 영원히 참으시는 분은 아닙니다. 어느 날에는 회개할 수 없는 시간이 옵니다. 그때는 하나님의 분명한 심판이 임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직 기회가 있을 때 돌이켜 회개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고후 6:2). 기회가 있을 때 돌이키고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3) 다시 제사를 요구하는 사울(30-31)
사무엘은 사울에게 최후의 통첩을 전하는 이후, 단호하게 돌아서자 사울은 다급하게 사무엘의 겉옷자락을 붙잡습니다. 옷자락을 붙잡는다는 것은 그가 사무엘에게 간청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사울이 다급하게 붙잡았던지 이때 사무엘의 옷자락이 찢어져 버립니다. 사무엘은 사울에게 찢어진 옷에 대해 사무엘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왕에게서 찢어내서 왕보다 나은 왕의 이웃에게 주겠다고 상징으로 해석합니다. 그리고 이런 하나님의 결정이 결코 번복되지 않을 것임을 선언합니다. ‘변개함’으로 번역된 단어 ‘이나헴’은 11절과 35절에서 ‘후회하다’로 번역된 단어와 동일합니다. 11절과 35절에서는 후회하신 하나님께서 29절에서는 ‘후회하지 않는다’ 혹은 ‘변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시는 것은 모순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29절의 ‘변함이 없다’는 표현은 미래를 말하는 것으로 하나님께서 이번에 사울에 대해 결정하신 것은 앞으로 절대 바꾸지 않으실 것이라는 이성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반면에 11절과 35절의 ‘후회하다’라는 번역은 현재의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내적 감정을 표현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 때문에 슬퍼하시고 마음 아파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울은 이런 선언에도 사무엘에게 절박하게 매달립니다. 사울이 사무엘을 강하게 붙든 이유는 하나님께 버림받은 것에 대한 슬픔은 아닙니다. 유감스럽게도 그가 요청한 것은 사울이 가진 신앙 인격의 민낯이 드러납니다.
사울은 여전히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들을 두려워하고 사람들의 평가에 골몰하고 있습니다. 왕의 최면을 구기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비록 죄인일지라도 장로들과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는 여전히 자신의 왕권이 하나님의 지지를 받고 있음을 보여주고 싶은 것입니다. 사울은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조차 자신의 건재함을 증명하는 도구로 삼으려고 했습니다.
결국 사울의 절박한 요청에 사무엘은 마지못해 사울의 간청을 들어줍니다. 그러나 사울의 제사나 제물이 하나님의 뜻을 돌이킬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 버림받은 사울에게 이제 남은 것은 겉모양뿐입니다.
우리도 하나님보다는 사람을 의식하며 살 때가 많습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의를 행하기도 하고 때로는 사람들의 칭찬과 박수에 목말라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진정으로 두려워하고 섬겨야 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다윗의 고백처럼 ‘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시 56:11)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보증이 되시고 그 하나님을 의지하면 환경과 사람이 두렵지 않습니다.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시고 보증이 되시는 분이십니다.
아각을 처형한 사무엘(32-35)
하나님 뜻보다 사람의 눈치를 살피면 인기에 영합하는 삶의 태도가 불순종으로 이어집니다. 넘어짐의 결정적인 원인이 됩니다. 우리가 누리는 직위는 사람들에 의해서 세워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달려 있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사람을 두려워한 나머지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했습니다.
32사무엘이 이르되 너희는 아말렉 사람의 왕 아각을 내게로 끌어 오라 하였더니 아각이 즐거이 오며 이르되 진실로 사망의 괴로움이 지났도다 하니라 33사무엘이 이르되 네 칼이 여인들에게 자식이 없게 한 것 같이 여인 중 네 어미에게 자식이 없으리라 하고 그가 길갈에서 여호와 앞에서 아각을 찍어 쪼개니라 34이에 사무엘은 라마로 가고 사울은 사울 기브아 자기의 집으로 올라가니라 35사무엘이 죽는 날까지 사울을 다시 가서 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가 사울을 위하여 슬퍼함이었고 여호와께서는 사울을 이스라엘 왕으로 삼으신 것을 후회하셨더라(32-35)
끝까지 사울의 관심은 하나님 앞에서 회복되는 것보다 백성 앞에서 높아지는 것입니다. 죽음이 기다리는데도 즐거이 나아오는 철없는 아각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에게 더는 희망이 남아있지 않은 것을 안 사무엘은 크게 슬퍼합니다. 지도자의 헌신을 큰 슬픔으로 돌려주지 맙시다.
(1) 아각의 죽음(32-33)
사무엘은 자신의 손으로 여호와의 전쟁을 마무리하는데, 사울이 살려둔 아각을 여호와 앞에서 토막 내어 죽이고 아말렉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마무리합니다.
사무엘은 아각에서 칼을 들면서 ‘네 칼이 여인들에게서 자식을 빼앗아 간 것처럼 네 어머니에게도 자식이 없게 하겠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그동안 많은 무고한 살육과 전쟁을 일삼은 자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었습니다. 사무엘의 지적은 여호와 앞에 많은 죄를 지은 아각을 처형하는 것은 합당한 벌임을 알리기 위한 것입니다.
(2) 사울과 결별(34-35)
사무엘은 아각과 짐승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진멸합니다. 이 아막렉과의 전쟁은 여호와의 심판 전쟁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렇게 아말렉과의 전쟁을 마무리한 사울과 사무엘은 각자 자신의 집으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사무엘은 더 이상 죽는 날까지 사울을 만나지 않습니다. 더 이상 사울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지 않았다는 뜻이며 하나님의 임재가 살아졌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울을 버리셨기 때문에 더 이상 사무엘을 통해 사울에게 하실 말씀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울 한 개인에게도 불행한 일이었지만, 사울이 통치하는 이스라엘에게도 비극적인 일이 되었습니다. 이것 때문에 사무엘은 사울을 위하여 슬퍼하며 남은 생애를 보냅니다. 히브리어로 ‘슬퍼함’은 죽은 사람을 위해 슬퍼함을 의미합니다. 사무엘은 사울을 죽은 사람 취급했다는 의미입니다.
사무엘에게 사울은 특별한 사람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정시대를 연 사람이었고 사무엘 그 자신이 사울을 기름을 부어 세운 왕이었습니다. 사무엘은 겸손하고 능력 있는 준수한 청년인 사울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를 왕으로 세울 때 사무엘과 백성들이 크게 기뻐했습니다. 그러나 나라가 안정되고 국력이 강해지면서 사울은 조금씩 변질되여 갔습니다. 하나님 말씀보다 자신의 생각과 판단을 앞세우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승리하게 하신 전쟁에서 자기 전공(戰功)과 업적을 내세우려고 기념비를 세우는 자가 되었습니다. 잘못을 지적 받았을 때도 변명과 핑계로 모면하려 합니다. 하나님보다 사람을 더 두려워해서 눈앞에 이익을 따르게 됩니다. 이렇게 작은 죄들이 쌓여 결국 하나님께 버림 받는 왕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 모든 사울의 과정을 잘 알고 있고 중요한 순간마다 하나님의 뜻을 전달해왔던 사무엘이기에 더욱 마음 아프고 슬펐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사람들의 음성이 두려워집니다. 성도들은 삶에 불법적인 외식적인 형식보다 하나님께서 원하신 것은 마음의 중심을 보시길 원하십니다. 좋은 제물을 바치는 것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것을 더 기뻐하십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주신 회개의 기회를 놓지지 않길 바랍니다. 겸손하게 말씀 앞에 회개의 사역들이 풍성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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