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14-01)
신앙과 용기로 무장한 요나단
사무엘상 14장 1-23절
하나님께서 역사를 이루어 가시는 것은 큰 무리를 사용하신 것이 아니라 작을지라도 믿음의 사람을 사용합니다. 사람들의 생각은 많은 숫자라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을 통해서 역사를 이루어가십니다. 믿음의 사람은 위기를 당할 때 그 진면목(眞面目)이 드러납니다. 그때는 먼저 자신을 잘 관리해야 합니다. 우리 힘이나 능력으로 해설할 수 없을 것 같은 위기를 만날 때, 우리는 믿음으로 대처해야 합니다.
- 블레셋과의 대규모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하나님의 두려움이 블레셋 사람들에게 임하여 정신없이 도망하는데, 크게 혼란스러웠으므로 자기들끼리 죽이고 있었습니다. 이를 본 사울의 군대가 블레셋을 쫓아가 쳤고, 블레셋 진영에 속하던 히브리 사람들이 이스라엘 군대와 합류했으며, 에브라임 산지에 숨어 있던 이스라엘 사람들도 뛰어나와 전쟁에 참여했습니다.
전쟁 전의 상황(1-5)
믿음의 행동이라고 떠들썩하거나 과시하지 않습니다. 조용히 행동으로 실천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부족할 때, 조용하게 그 필요를 채워주는 역할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요나단은 그런 인물이었습니다. 오늘날도 많은 소리보다 조용한 실천을 요구하는 시대입니다. 골방으로 들어가서 나라를 위해, 지역을 위해, 믿음의 공동체를 위해 기도하는 백성들이 되어야 합니다.
1하루는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자기의 무기를 든 소년에게 이르되 우리가 건너편 블레셋 사람들의 부대로 건너가자 하고 그의 아버지에게는 아뢰지 아니하였더라 2사울이 기브아 변두리 미그론에 있는 석류나무 아래에 머물렀고 함께 한 백성은 육백 명 가량이며 3아히야는 에봇을 입고 거기 있었으니 그는 이가봇의 형제 아히둡의 아들이요 비느하스의 손자요 실로에서 여호와의 제사장이 되었던 엘리의 증손이었더라 백성은 요나단이 간 줄을 알지 못하니라 4요나단이 블레셋 사람들에게로 건너가려 하는 어귀 사이 이쪽에는 험한 바위가 있고 저쪽에도 험한 바위가 있는데 하나의 이름은 보세스요 하나의 이름은 세네라 5한 바위는 북쪽에서 믹마스 앞에 일어섰고 하나는 남쪽에서 게바 앞에 일어섰더라(1-5)
본문은 13:16-19과 연결되어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사울이 왕으로 등극한 후, 첫 번째 전쟁은 블레셋과의 전쟁입니다. 이 전쟁에서 사울의 믿음의 실체가 드러납니다. 소수의 사울 군대와 대규모 블레셋 군대가 대치하고 있는 위기의 상황에서 다시 요나단이 등장합니다.
(1) 요나단의 결심(1-3)
요나단은 겁 없이 블레셋을 자극하여 현재 상황을 만든 장본인입니다. 수적 열세가 심하기 때문에 감히 블레셋과 싸울 엄두를 내지 못하고 대치만 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요나단은 자신의 무기를 든 소년에게 건너편에서 진을 치고 있는 블레셋 부대로 가자고 제안합니다. 그리고 이 일을 아버지에게 말하지 않았다고 화자가 설명해주면서 이 일이 전적으로 요나단이 단독으로 벌인 일이었음을 강조하며, 사울이 가만히 있는 것과 요나단의 역동적인 모습을 대조합니다.
2-3절은 당시 사울의 군대 상황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울은 기브아 부근의 미그론의 석류나무 아래 앉아 있었고, 그와 함께하는 육백 명의 군사도 그곳에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제사장인 아히야가 에봇을 가지고 그곳에 같이 있었습니다. 에봇은 원래 대제사장의 옷으로 하나님의 신탁을 받을 때 입는 옷입니다. 당시 전쟁할 때는 하나님의 신탁을 듣기 위해서 항상 제사장들이 같이 전쟁터에 참여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사울도 전쟁에 대한 하나님의 신탁을 듣기 위해 아히야를 대동한 것입니다.
3절에서 아히야의 족보가 나오는데, 그는 엘리의 증손이고 비느하스의 손자이며 이가봇의 조카입니다. 이것을 보면 엘리 가문이 여전히 제사장직을 수행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사울은 전쟁에서 하나님의 신탁을 듣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지만, 정작 움직이지는 못하고 상황만 살피고 있었습니다.
(2) 지형 소개(4-5)
요나단이 블레셋으로 건너가려는 지형에 대한 설명으로 그곳은 아주 가파르고 험한 바위들이 있는 험준한 지형입니다. 아마도 매우 험하기로 유명하기 때문에 바위에 보세스와 세네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서 요나단이 가려고 한지형이 매우 험준하다는 것을 말하는 이유는 요나단이 이런 험한 길인데도 용기를 잃지 않고 무모한 도전을 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입니다.
여호와의 표징을 구하는 요나단(6-10)
하나님의 역사는 세상의 위대한 사람들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는 보잘것없는 작은 믿음의 사람을 통해 이루어가십니다. 마치 걷잡을 수 없는 큰 산불도 작은 불씨가 시작한 것처럼, 작고 힘이 없어 보지만 큰 믿음을 가진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 가십니다.
6요나단이 자기의 무기를 든 소년에게 이르되 우리가 이 할례 받지 않은 자들에게로 건너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일하실까 하노라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이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아니하였느니라 7무기를 든 자가 그에게 이르되 당신의 마음에 있는 대로 다 행하여 앞서 가소서 내가 당신과 마음을 같이 하여 따르리이다 8요나단이 이르되 보라 우리가 그 사람들에게로 건너가서 그들에게 보이리니 9그들이 만일 우리에게 이르기를 우리가 너희에게로 가기를 기다리라 하면 우리는 우리가 있는 곳에 가만히 서서 그들에게로 올라가지 말 것이요 10그들이 만일 말하기를 우리에게로 올라오라 하면 우리가 올라갈 것은 여호와께서 그들을 우리 손에 넘기셨음이니 이것이 우리에게 표징이 되리라 하고(6-10)
이런 상황에서 요나단은 사울처럼 가만히 앉아 있지 않고 자신들이 움직이면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일하실까 하노라’라고 고백하며 블레셋 부대로 가서 싸우려 합니다.
여기서 ‘건너가자’는 것은 싸우러 가겠다는 의미입니다. 이런 대범한 일을 할 수 있는 이유는 여호와의 구원이 사람 수의 많고 적음에 제한받지 않는다는 신앙 때문입니다. 그는 여호와께서 전쟁에 나서신다면 자신과 자신의 종 두 사람만으로도 충분히 바다의 모래같이 많은 블레셋 군대를 이길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전쟁은 전적으로 여호와의 손에 달린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움직인다고 해서 하나님도 움직여주셔야 한다는 기계적 신앙은 문제가 있습니다. 하지만 ‘혹시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해 일하실지 누가 알겠느냐?’라는 말을 통해서 여호와께서 자신의 움직임에 동의해주시고 안 해주시고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의지에 달렸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전쟁이 여호와의 손에 달렸다는 요나단의 신앙은 아버지 사울이 품지 못했던 그 신앙입니다. 후에 사무엘상 17:47에서 다윗이 요나단과 동일한 신앙 고백을 하며 골리앗을 죽인 후 하나님의 사랑받는 왕으로 등극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사울에게 원하신 신앙이 이것입니다. 아무리 사울이 왕이어도 여전히 이스라엘의 왕은 여호와이시고 전쟁은 여호와의 손에 달렸기 때문에 여호와만을 바라보라는 것이었습니다. 요나단은 이 신앙이 어떤 큰 위력을 발하는지 블레셋 습격 사건을 통해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요나단은 전쟁을 해도 좋은지 아닌지 여호와의 뜻을 알기 위해 징조를 구합니다. 그는 블레셋 부대 앞에 가서 자신들을 보이고, 거기에 가만히 있으라고 하면 올라가지 않고 또 올라오라고 하면 여호와께서 그들을 자신의 손에 넘기신 징표로 알고 올라가 블레셋과 싸우겠다고 합니다. 이것은 매우 위험천만한 행동인데, 블레셋 주둔 부대가 있는 곳에 달랑 둘이 가서 그들에게 정면으로 노출되는 행동이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목숨을 온전히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뜻이면 전쟁에 이겨 살겠고, 아니면 죽어도 좋다는 태도입니다.
요나단이 블레셋 진영을 침(11-15)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사람을 대신하여 영적 전쟁을 감당해 주십니다. 믿음으로 담대히 실천하는 자와 함께하사 같이 싸워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같이 싸워 주시면 그 수가 적고 무기가 변변치 않더라도 승리하게 마련입니다.
11둘이 다 블레셋 사람들에게 보이매 블레셋 사람이 이르되 보라 히브리 사람이 그들이 숨었던 구멍에서 나온다 하고 12그 부대 사람들이 요나단과 그의 무기를 든 자에게 이르되 우리에게로 올라오라 너희에게 보여 줄 것이 있느니라 한지라 요나단이 자기의 무기를 든 자에게 이르되 나를 따라 올라오라 여호와께서 그들을 이스라엘의 손에 넘기셨느니라 하고 13요나단이 손 발로 기어 올라갔고 그 무기를 든 자도 따랐더라 블레셋 사람들이 요나단 앞에서 엎드러지매 무기를 든 자가 따라가며 죽였으니 14요나단과 그 무기를 든 자가 반나절 갈이 땅 안에서 처음으로 쳐죽인 자가 이십 명 가량이라 15들에 있는 진영과 모든 백성들이 공포에 떨었고 부대와 노략꾼들도 떨었으며 땅도 진동하였으니 이는 큰 떨림이었더라(11-15)
요나단의 용기는 하나님을 모독하는 블레셋을 더 이상 보고만 있을 수 없었습니다. 믿음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 증거를 보여 주셨습니다. 요나단의 전투를 도와 적군 블레셋 사람들에게 혼란과 두려움 속에 빠뜨리십니다.
(1) 블레셋 사람의 조롱(11-12)
요나단과 그의 좋은 모든 것을 여호와께 맡긴 채 블레셋 부대 쪽으로 건너가 블레셋 사람들에게 자신을 드러냈습니다. 이들을 본 블레셋 사람들은 히브리 사람들이 이제야 굴에서 나온다며 비웃었습니다. 그리고 이리로 올라오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요나단이 기다리던 하나님의 징조입니다. 그들이 ‘너희에게 알려줄 것이 있다’고 말한 것이 조롱이든 협박이든 이 상황에서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올라오라’는 말을 통해 여호와께서 블레셋을 이스라엘의 손에 넘기셨음을 알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요나단의 말대로 징조를 주신 것입니다. 여호와의 응답을 들은 요나단은 손과 발로 기어서 블레셋 진영으로 올라갔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손발로 기어서 절벽을 올라오는 요나단과 그의 병기든 자를 보고 다가올 자신들의 운명도 모른 채 비웃으며 바라보고 있었을 것입니다.
(2) 요나단의 승리(13-15)
그런데 요나단 일행이 다 올라오자 상황은 완전히 반전되어 블레셋 사람들이 요나단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쓰러지고, 병기를 든 자는 쓰러진 자를 재빨리 죽이며 블레셋 진영을 혼란에 빠뜨렸습니다. 이들이 얼마나 재빠르게 죽였는지를 표현하기 위해 14절에서 대략 130-180미터 되는 거리 안에서 20명가량을 죽였다고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요나단과 무기를 든 자는 엄청난 전과를 올렸습니다. 드디어 하나님께서 이 전쟁에 개입하셨습니다. 15절에서 언급하는 떨림은 여호와께서 블레셋 진영에 일으키신 지진으로 여호와께서 초자연적인 힘으로 블레셋을 치신 것입니다.
블레셋에서 구원받은 이스라엘(16-23)
오늘날 개인 편의주의에 따라 ‘나 홀로 신앙’을 지키며 살아가려 합니다. 반대로 요나단과 같은 믿음의 일꾼을 통해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것처럼, 믿음의 한 사람으로 전체 믿음의 공동체를 살리는 능력이 있습니다. 주의 편에 서는 일이 때론 외롭고 힘겹고, 또 전혀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하찮은 일로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상급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인간적인 방법으로 사람을 늘리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이 우리 편에 서시도록 묵묵히 순종해야 합니다.
16베냐민 기브아에 있는 사울의 파수꾼이 바라본즉 허다한 블레셋 사람들이 무너져 이리 저리 흩어지더라 17사울이 자기와 함께 한 백성에게 이르되 우리에게서 누가 나갔는지 점호하여 보라 하여 점호한즉 요나단과 그의 무기를 든 자가 없어졌더라 18사울이 아히야에게 이르되 하나님의 궤를 이리로 가져오라 하니 그 때에 하나님의 궤가 이스라엘 자손과 함께 있음이니라 19사울이 제사장에게 말할 때에 블레셋 사람들의 진영에 소동이 점점 더한지라 사울이 제사장에게 이르되 네 손을 거두라 하고 20사울과 그와 함께 한 모든 백성이 모여 전장에 가서 본즉 블레셋 사람들이 각각 칼로 자기의 동무들을 치므로 크게 혼란하였더라 21전에 블레셋 사람들과 함께 하던 히브리 사람이 사방에서 블레셋 사람들과 함께 진영에 들어왔더니 그들이 돌이켜 사울과 요나단과 함께 한 이스라엘 사람들과 합하였고 22에브라임 산지에 숨었던 이스라엘 모든 사람도 블레셋 사람들이 도망함을 듣고 싸우러 나와서 그들을 추격하였더라 23여호와께서 그 날에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므로 전쟁이 벧아웬을 지나니라(16-23)
세상을 살아가면서 악한 세력은 힘으로 성도를 핍박할 수는 있겠지만, 결코 성도의 신앙이나 선한 양심을 꺾거나 산 소망을 넘어뜨릴 수 없습니다. 먼저 적들이 성도들의 능력을 알고 두려워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하게 믿음으로 나가길 바랍니다.
(1) 상황 파악(16-17)
이런 블레셋 진영이 혼란스러운 상황을 사울 진영의 파수꾼이 보고서, 사울에게 보고하게 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보고받은 사울은 혹시 이스라엘 군사 중에 누가 가서 혼란을 일으킨 것은 아닌가 확인하기 위해 점호를 명령하였습니다. 그 결과 자기 아들 요나단과 무기 든 자가 없는 것을 알게 됩니다.
(2) 신탁을 묻는 사울(18-20)
사울은 이를 통해 블레셋의 혼란이 요나단 때문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정상적인 행동이라면, 아버지로서 전쟁에 나간 아들을 보며, 물불 안 가리고 현장에 나갈 것입니다.
하지만, 사울은 이런 상황을 피해 보려는 마음으로 블레셋을 치러 나갈지를 여호와께 묻는다고, 제사장 아히야에게 하나님의 궤를 가져오라고 명령합니다. 여전히 가만히 앉아서 여호와의 신탁이 내리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신탁을 기다리는 동안에 전장에서는 혼란이 더 심해졌습니다. 블레셋과의 전투를 더 지체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여 신탁받는 것을 중지합니다.
여호와의 뜻을 묻는 요나단과 사울의 방법은 크게 대조됩니다. 요나단은 목숨을 하나님께 맡기고 움직이면서 여호와의 뜻을 구했지만, 사울은 안전한 곳에서 여호와의 뜻이 확실해지면 움직이겠다는 소극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블레셋 진중에서 요나단과 그의 무기든 자는 목숨을 걸고 블레셋과 전투하고 있는데 사울은 하나님의 뜻을 묻는다며 안전히 기브아에서 미적 거리고 있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화자는 우리가 누구를 닮았는지를 묻고 있습니다.
(3) 전쟁 참여한 사울(21-22)
이제 전투는 요나단의 전투에서 이스라엘 전체의 전투로 번집니다. 블레셋 진영에 사울의 부대가 도착하자 블레셋을 돕던 히브리 사람들도 이스라엘과 사울과 요나단의 편에서 돕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산지에 숨어있던 이스라엘 사람들도 모두 몰려나와 전투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요나단이 시작한 전투는 모든 이스라엘이 힘을 합하고 여호와께서 도와주셔서 승승장구하였고, 블레셋 사람들을 베냐민 내륙 지역에서 벧아웬까지 몰아내는 등 큰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이 전투에서 다음과 같은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첫째는 전쟁은 여호와의 손에 있다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여호와의 일을 시작하면 하나님께서 도우실 뿐만 아니라 돕는 자들을 계속해서 붙여주신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쳐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날도 믿음의 사람들을 통해 역사를 이루어갑니다. 믿음의 사람 요나단을 통해 이스라엘 전체를 구원하셨습니다. 이처럼 공동체 내에서 한 사람의 믿음이 중요합니다. 어떤 두려움과 위기 상황 속에서도 자신을 지켜 주시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담대하게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하나님을 신뢰한 만큼 나타납니다. 한 사람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구성원이 하나님의 기적을 맛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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