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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22-01)

  


재물에 대한 지혜

잠언 22장 1-16절


당신은 정직한 자의 형통을 믿습니까? 그렇다면 불의한 이들이 얻은 부 또는 정직한 이들의 가난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겠습니까? 지혜자는 지혜롭고 의로운 자가 복을 받고 악하고 미련한 자가 망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의 현실은 이 지혜자의 말씀을 비웃습니다. 우리는 이 부조화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겠습니까?

 

잠언 10:1-22:16의 마지막 단락으로서, 부와 가난의 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시작(1-2)과 끝(16)이 부와 가난의 문제를 다루며, 4, 5, 9절 역시 이 문제를 언급합니다. 문맥의 흐름을 보면, 지혜로운 삶과 미련한 삶을 대조하면서 지혜로운 삶을 선택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부와 가난의 문제(1-2)

제대로 분별이 곧 지혜입니다. 무엇이 더 가치가 있고, 언제 행동하며 어디로 가야 할지 분별할 수 있는 지혜는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입니다. 정직하게 땀 흘려 일한 사람은 그대로 합당한 대가를 얻어야 합니다. 게으른 사람이 양식을 얻지 못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1많은 재물보다 명예를 택할 것이요 은이나 금보다 은총을 더욱 택할 것이니라 2가난한 자와 부한 자가 함께 살거니와 그 모두를 지으신 이는 여호와시니라(1-2)

1절은 재물의 문제를 다룹니다. 많은 재물보다 명예를 선택해야 하고, 은이나 금보다 은총을 택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재물은 우리의 삶에 중요하지만, 절대적인 기준이 되지는 않습니다. 재물보다 자신의 명예나 하나님의 은총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1절은 재물은 객관적인 실체일 뿐이지, 거기에 어떤 가치를 부여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2절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우리 사회 속에 가난한 자와 부한 자가 함께 섞여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언급합니다. 하나님께서 가난한 자와 부한 자 모두를 만드셨고 그들이 함께 살아가도록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난이나 부에 대해 어떤 절대적 가치를 부여해서는 안 되고, 그 모든 것을 지으시고 이끄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가치로 재물의 문제를 바라보고 해석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지혜로운 삶과 미련한 삶(3-15)

잠언은 율법이나 약속이라기보다는 일반적인 진리나 교훈에 해당합니다. 따라서 그 말씀들이 그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실망한 필요는 없습니다. 권선징악, 인과응보가 하나의 공식처럼 이루어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잠언의 가르침은 하나님께서 정의를 통해 세상의 질서를 세우신다는 믿음에서 기초해 있습니다.

3슬기로운 자는 재앙을 보면 숨어 피하여도 어리석은 자는 나가다가 해를 받느니라 4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상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 5패역한 자의 길에는 가시와 올무가 있거니와 영혼을 지키는 자는 이를 멀리 하느니라 6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7부자는 가난한 자를 주관하고 빚진 자는 채주의 종이 되느니라 8악을 뿌리는 자는 재앙을 거두리니 그 분노의 기세가 쇠하리라 9선한 눈을 가진 자는 복을 받으리니 이는 양식을 가난한 자에게 줌이니라 10거만한 자를 쫓아내면 다툼이 쉬고 싸움과 수욕이 그치느니라 11마음의 정결을 사모하는 자의 입술에는 덕이 있으므로 임금이 그의 친구가 되느니라 12여호와의 눈은 지식 있는 사람을 지키시나 사악한 사람의 말은 패하게 하시느니라 13게으른 자는 말하기를 사자가 밖에 있은즉 내가 나가면 거리에서 찢기겠다 하느니라 14음녀의 입은 깊은 함정이라 여호와의 노를 당한 자는 거기 빠지리라 15아이의 마음에는 미련한 것이 얽혔으나 징계하는 채찍이 이를 멀리 쫓아내리라(3-15)

하나님께서는 선한 사람에게 복을 주시고, 악한 자들을 징계하십니다. 많이 가진 자는 나누고 섬겨야 할 책임이 있고, 적게 가진 자 역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믿음의 반응이 삶에서 나타나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날마다 의식하지 않으면, 결코 성경이 말하는 지혜롭고 선한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1) 지혜로운 삶(3-6)

3절은 슬기로운 자와 어리석은 자를 대조합니다. 슬기로운 자는 악을 만나게 될 것 같으면 피해 가지만, 어리석은 자는 악을 향해 계속 가서 악을 만나게 되고 그래서 결국 해를 당하게 됩니다. 지혜는 악을 버리고 피하는 것입니다.

4절은 겸손과 여호와 경외를 강조합니다. 하나님 앞에 겸손하고 주님을 경외하면 큰 유익을 얻게 되는데 바로 재물과 영광과 생명입니다. 얻게 되는 유의 중에 재물이 들어가 있다는 점이 주목을 끕니다. 재물은 그 자체로 절대적 가치를 지닐 수 없습니다. 재물은 하나님에게서 오는 것이고, 주님에게서 얻어서 주님 앞에 바로 사용할 때 가치가 있게 됨을 알 수 있습니다.

5절은 자신의 영혼을 지키는 것이 중요함을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자신을 지키려는 자는 가시와 올무가 있는 패역한 자의 길을 멀리하려고 노력합니다. 3-5절은 어떤 길로 갈지를 선택하라고 우리에게 권고합니다. 악의 길을 멀리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길로 가야 자신의 영혼을 지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3-5절의 교훈은 6절에서 일종의 절정에 도달합니다. 6절은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고 권고합니다. 아이가 그 교훈을 배우면 일생 그 교훈에서 떠나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이 구절을 어린이 교육 혹은 청소년 교육을 말하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물론 가능할 것입니다. 그러나 위에서 이미 설명한 것처럼 ‘나아르’는 아이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청년까지 포함합니다. 잠언 1-9장의 가르침을 고려하면, ‘나아르’는 아직 지혜 여인과 음녀 사이에서 누구를 선택할지 결정하지 못한 미성숙한 사람을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그렇다면 6절의 가르침은 이렇게 선택을 앞두고 있는 사람을 가르쳐서 지혜의 길 즉 여호와를 경외하는 길로 가도록 해야 한다는 의미가 됩니다. 3-6절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길을 선택해야 한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강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2) 지혜로운 삶과 미련한 삶(7-11)

7절은 재물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부자가 가난한 자를 주관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현실을 그대로 표현한 것이며, 부자가 가진 재물의 가치를 절대화하는 내용은 결코 아닙니다.

7절은 뒤이어 나오는 구절들과 연결해서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8절은 악을 뿌리면 재앙을 거두게 된다는 것입니다. 심은 대로 거두는 법칙입니다. 7절과 연결해서 생각하면, 가난한 자를 주관하는 부자는, 자신의 재물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서 선을 거둘 수도 있고 재앙을 거둘 수도 있습니다. 8b절의 설명처럼 재물이 있다고 해서 악하게 사용하면 나중에는 자신이 휘두르던 힘이 쇠약해지고 그 재물마저 잃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9절은 재물 사용을 선하게 해야 함을 말합니다. 자기가 먹을 양식을 다른 이에게 나누어주면 오히려 복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나의 재물을 다른 이를 위해 사용할 줄 아는 것이 참 지혜의 길입니다.

10절은 거만한 자를 쫓아내면 다툼도 없어지게 됨을 말합니다. 잠언에서 거만한 자는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자이니, 우리는 거만한 자가 되어서도 안 됩니다.

11절은 마음의 정결을 사모하는 자에 대하여 말합니다. 그런 자는 입술에 덕이 있어서 왕의 친구가 된다는 것입니다. 10절의 거만한 자의 결국과는 정반대의 결과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7-11절의 내용을 정리하면, 지혜로운 삶의 방식과 미련한 삶의 방식이 있는데 우리에게 주어진 것들을 지혜롭게 사용하면 좋은 결과를 가져오게 되지만 그것들을 미련하게 사용하면 오히려 가진 것조차 잃고 쫓겨나게 됨을 알 수 있습니다. 재물이 그 대표적인 예로 사용됩니다. 재물은 절대적인 가치를 지니지 못했기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의 관점에서 사용해야만 합니다.

(3) 미련한 삶(12-15)

 12-15절은 미련한 삶의 여러 가지 형태들을 열거합니다.

12절은 여호와께서 지식을 지키시기에 사악한 사람의 말을 패망하게 하신다고 말합니다. 사악한 자는 여호와께로부터 심판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13절은 게으른 자에 관해서 설명합니다. 사자가 밖에 있으니 두려워서 밖에 있으니 두려워서 밖에 나가지 못하겠다고 말한다는 것입니다. 게으른 자는 자신의 게으름을 깨닫지 못하고, 주어진 일에 충실하게 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삶의 자리를 지킬 줄 모르는 것입니다.

14절은 음녀에게 빠진 자에 대해 언급합니다. 여기서 음녀는 여성 복수 형태로, 잠언 1-9장에 나타난 음녀를 가리키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즉 지혜의 길과 반대되는 미련한 길, 여호와를 떠난 길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산 자는 이러한 음녀의 길에 빠지게 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떠난 자가 지혜 대신 음녀의 길을 선택하여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부와 가난의 문제(16)

현실은 종종 우리의 믿음을 배신합니다. 자녀들에게 마땅히 행할 길을 가르쳤는데도 그 길을 떠나는 자녀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도 가르쳐야 합니다. 음란을 버리고 정결을 사모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교만을 걷어내고 겸손을 심어야 합니다. 필요하다면 엄한 훈계로 옳은 길을 지도해야 합니다.

16이익을 얻으려고 가난한 자를 학대하는 자와 부자에게 주는 자는 가난하여질 뿐이니라(16)

마지막 구절인 16절은 가난과 부의 문제를 다시금 언급합니다.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서 가난한 자를 학대하거나 부자에게 뇌물을 주는 사람은 결국 이익을 얻기는커녕 가난해집니다.

16절은 재물이 절대적 가치가 될 수 없고 삶의 목표도 될 수 없음을 말합니다. 재물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그 재물을 올바른 가치를 가지고 활용하면 복이 됩니다. 여기서 올바른 가치란 물론 지혜 즉 여호와 경외의 관점을 말합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바른 재물 활용을 할 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이 임하게 될 것입니다.


‘값없이 은혜로 얻은 구원’에 대한 믿음 때문에 ‘뿌린 대로 거둔다.’라는 진리를 무시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구원 역시 주께서 뿌린 피로 이룬 것입니다. 피 흘림이 없으면 죄 사함도 없습니다. 주의 은혜를 값싼 은혜로 만들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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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21-02)

 


의인과 악인을 대조하는 지혜

잠언 21장 15-31절


악인은 본성상 정의와 무관한 삶을 살뿐 아니라 정의롭게 사는 의인을 간교한 계략으로 함정에 빠뜨립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결국 의인을 들어 형통하게 하고 악인을 심판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자신이 속한 곳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모함을 받거나 따돌림당한 경험이 있는지 되돌아봅시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정직한 자의 편에 서 계십니다. 정직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공의를 실천하며 살아갑니다.

 

본 단락은 먼저 지혜를 떠난 자의 모습을 집중적으로 조명한 후(16-19), 지혜를 얻은 자의 모습을 깊이 있게 묘사합니다(20-23). 그런 후에 악인과 의인의 모습을 서로 비교합니다(24-29). 그 결론은 여호와께서 참된 지혜의 기준이 되시므로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의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30-31). 지혜와 미련함, 의와 악의 구분은 하나님께 있으며, 여호와를 경외하는 태도로만 그 차이를 분별해낼 수 있습니다.

 

공의를 행하는 삶(15)

명철의 길을 버리고 연락을 좋아한 자, 다투며 성내는 자는 이 땅에서 가난하고 관계를 온전히 누리지 못하며 결국엔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반면에 지혜 있는 자, 공의와 인자를 따라 구하는 자, 입과 혀를 지키는 자는 이땅에사도 안전과 번영을 누리며 궁극적으로 생명과 공의와 영광을 얻습니다.

15정의를 행하는 것이 의인에게는 즐거움이요 죄인에게는 패망이니라(15)

이 구절은 21장의 문맥 흐름상 독특한 위치에 놓여 있습니다. 왜냐하면, 의인과 악인을 대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앞서 살펴본 대로 5-14절은 주로 악인의 삶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다루었는데, 15절에 와서는 의인과 악인을 대조하고 있습니다. 정의를 행하는 것이 의인에게는 즐거움이나 악을 행하는 자에게는 멸망이 된다는 것입니다. 21장은 여기서부터 의인과 악인, 지혜를 얻은 자와 지혜를 놓친 자를 대조해 나가기 시작합니다. 21장의 새로운 흐름이 시작되는 부분입니다.

 

지혜를 버린 자의 삶(16-19)

지혜로운 사람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을 살피고 그것을 먼저 구하는 사람입니다. 악인은 하늘의 지혜를 떠나 생명 없는 무리와 함께 패망을 맞이하지만, 하나님의 기쁨이 나의 기쁨임을 알게 된 의인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생명과 공의, 영광을 받아 누리게 될 것입니다.

16명철의 길을 떠난 사람은 사망의 회중에 거하리라 17연락을 좋아하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술과 기름을 좋아하는 자는 부하게 되지 못하느니라 18악인은 의인의 속전이 되고 사악한 자는 정직한 자의 대신이 되느니라 19다투며 성내는 여인과 함께 사는 것보다 광야에서 사는 것이 나으니라(16-19)

먼저 16-19절은 지혜의 길을 떠난 자의 삶을 묘사합니다.

16절은 명철의 길을 떠난 자는 죽음에 이르게 됨을 말합니다. ‘사망’이라고 번역된 단어는 죽은 자를 뜻합니다. 이 단어는 우리에게 잠언 전체의 서론인 1-9장의 마지막 구절인 9:18을 생각나게 합니다. 9:18은 지혜 여인을 버리고 미련한 여인을 따라가면 죽은 자들이 있는 곳에 이르게 된다고 가르쳤습니다. 21:16은 지혜를 버리고 음녀/미련한 여인을 택한 자들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17절은 육체적인 쾌락을 추구하는 자는 가난하게 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좋은 음식을 먹는 것 자체가 나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지나치게 사랑하면 잘못을 범하게 됩니다. 핵심은 지혜를 버린 것입니다. 지혜를 버리면 분별력을 잃고 술과 음식에 탐닉하게 됩니다. 바른 삶의 태도를 갖지 못하기에, 선하게 쓰면 유익이 될 것들을 잘못된 방식으로 사용하게 되는 것입니다.

18절은 악인이 의인 대신 벌을 받게 됨을 말합니다. 처음 보기에는 악인이 악한 방법으로 성공하는 것 같고 의인은 어려움을 겪는 것 같으나, 결국에는 악인이 모든 책임을 지고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의인들에게는 하나님의 은혜와 회복이 임할 것입니다.

19절은 다툼에 관한 가르침입니다. 다투는 여인과 함께 사는 것보다 광야에서 홀로 지내는 것이 낫다는 비교 잠언입니다. 이 19절은 바로 위에 있는 9절과 매우 유사합니다. 차이점은 9절은 지붕 위에서 홀로 사는 것을 말하고 19절은 광야에서 홀로 사는 것을 말한다는 점뿐이며, 그 내용은 사실상 동일합니다. 공동체 안에서의 다툼이 얼마나 큰 해악을 끼치는가에 관한 서술입니다. 악한 자는 다툼을 일으키고 그 다툼을 계속 이어나가서, 가족과 같은 친밀한 공동체를 깨뜨려 공동체 구성원들을 아프게 합니다.

 

지혜를 얻은 자의 삶(20-23)

의인은 정의를 실천하여 하나님의 기쁨에 동참합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을 살피고 그것을 먼저 구하는 사람입니다. 악인은 하늘의 지혜를 떠나 생명 없는 무리와 함께 패망을 맞이하지만, 하나님의 기쁨이 나의 기쁨임을 알게 된 의인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생명과 공의, 영광을 받아 누리게 될 것입니다.

20지혜 있는 자의 집에는 귀한 보배와 기름이 있으나 미련한 자는 이것을 다 삼켜 버리느니라 21공의와 인자를 따라 구하는 자는 생명과 공의와 영광을 얻느니라 22지혜로운 자는 용사의 성에 올라가서 그 성이 의지하는 방벽을 허느니라 23입과 혀를 지키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환난에서 보전하느니라(20-23)

20절부터는 지혜를 얻은 자의 삶이 나옵니다. 먼저 20절에서는 지혜자의 집에 보배와 기름이 있다고 말합니다. 20절의 보배와 기름 17절에서 악한 자가 술과 기름을 좋아한다는 서술과 연결됩니다. 보배와 기름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이므로, 지혜롭게 사용하면, 얼마든지 복된 물질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20절 하반절은 미련한 자가 이 보배와 기름을 삼켜버린다고 말합니다. 미련한 자는 보배와 기름 자체에 욕심을 낸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자는 이러한 물질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된 것임을 알고 지혜롭게 대처하기에, 오히려 그 보배와 기름을 늘 간직할 수 있게 됩니다.

21절은 공의와 인자를 구하는 자가 생명과 공의와 영광을 얻게 됨을 가르칩니다. 공의와 인자는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하는 대표적인 어휘입니다. 따라서 공의와 인자를 구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아간다는 지표다. 지혜로운 삶을 산다는 의미입니다. 지혜롭게 살면, 생명과 공의와 영광을 얻게 됩니다. 그 예들을 우리는 22-23절에서 만나게 됩니다.

22절은 지혜로운 자가 용사들이 지키는 성을 얻게 된다고 말합니다. 용사들이 지키는 성이란, 함락하기 불가능한 성입니다. 그런데 지혜자는 그 성을 얻습니다. 이것은 사람의 힘과 능력이 여호와를 경외하는 지혜를 이기지 못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사람 즉 지혜를 얻은 사람은 세상의 그 어떤 권세 앞에서도 당당하며 결국 승리를 얻게 됩니다.

23절은 입과 혀를 지키는 자가 자기 영혼을 환난에서 보전함을 알려줍니다. 입과 혀를 지키는 자는 자신의 언어생활을 다스릴 줄 아는 자로, 지혜의 입술을 가진 자로 해석해야 합니다. 지혜를 얻은 자는 언어생활에서도 실수하지 않고 좋은 열매를 얻습니다.

 

의인과 악인의 대조(24-29)

지혜를 멸시하는 악인은 무례하고 교만하며 게으르고 종일토록 탐하기만 합니다. 거짓 증거를 일삼으면서도 뻔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바친 제물을 가증하게 여기십니다. 반면에 의인은 확신 있는 발언을 하며, 자기 손으로 일하기를 기뻐하고, 그렇게 모은 것을 나누는 데 후하고 관대합니다.

24무례하고 교만한 자를 이름하여 망령된 자라 하나니 이는 넘치는 교만으로 행함이니라 25게으른 자의 욕망이 자기를 죽이나니 이는 자기의 손으로 일하기를 싫어함이니라 26어떤 자는 종일토록 탐하기만 하나 의인은 아끼지 아니하고 베푸느니라 27악인의 제물은 본래 가증하거든 하물며 악한 뜻으로 드리는 것이랴 28거짓 증인은 패망하려니와 확실히 들은 사람의 말은 힘이 있느니라 29악인은 자기의 얼굴을 굳게 하나 정직한 자는 자기의 행위를 삼가느니라(24-29)

24절부터는 의인과 악인을 대조합니다. 먼저 24-25절은 악인에 대해서 말합니다.

24절은 무례하고 교만한 자가 거만한 자임을 밝힙니다. 거만한 자라는 표현은 잠언의 거시적 맥락에서 미련한 자 혹은 악한 자와 같은 의미를 지닙니다. 따라서 거만한 자가 무례하고 교만하다는 24절의 가르침은, 지혜를 떠난 자 곧 악인은 무례하고 교만한 삶을 살게 된다는 사실을 알려주려 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25절은 게으름에 대해서 알려준다. 게으름은 자신을 죽인다는 것입니다. 연이어서 26절은 탐욕에 관해서 말합니다. 온종일 탐욕만 부리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25절과 26절을 묶어서 생각해보면, 악인의 특징이 게으름과 탐욕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26절 하반절에서는 의인을 등장시켜서 의인이 베풀기를 즐겨하고 베푼 후에도 후회하지 않는다는 점을 말합니다. 지금까지 설명한 악인의 게으름과 탐욕을 의인의 선한 마음과 대조하는 것입니다. 의인은 나누는 것을 기뻐하는 성품을 지녔습니다.

27절은 악인이 간교하고 교활한 의도를 가지고 제물을 드리는 것이 심각한 잘못임을 지적합니다. 악한 성품을 지녔기에 그 제물 자체가 가증할 것인데, 그 위에 간교한 계교까지 더해서 제물을 가져온다면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실 것임을 명확히 하는 내용입니다.

28절은 거짓 증거는 신속히 없어지지만 참된 증거는 계속해서 남아 효력을 발휘할 것을 말합니다. 악인의 증거와 의인의 증거를 대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29절은 악인이 자신의 얼굴을 뻔뻔하게 하는 것과 정직한 자가 자신의 길을 정직하게 세우는 것을 대조합니다. 악인은 겉모습을 꾸며 사람을 속이려 하나, 정직한 자는 내면의 정직함으로 일을 도모합니다.

 

참된 지혜이신 여호와(30-31)

하나님의 지혜를 당해낼 인간의 지혜나 명철은 없습니다. 그러니 그분을 경외하고 의지하고 인정하는 것이 참다운 지혜입니다. 열심히 전쟁을 준비해도 승패를 좌우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을 앞세우고, 그분을 의지할 때 이길 수 있습니다. 대적과 싸우기 전에 자신과 싸움에서 승리해야 합니다.

30지혜로도 못하고, 명철로도 못하고 모략으로도 여호와를 당하지 못하느니라 31싸울 날을 위하여 마병을 예비하거니와 이김은 여호와께 있느니라(30-31)

마지막 구절인 30-31절은 여호와 하나님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언급합니다.

30절을 직역하면 “여호와 앞에서는 지혜도 없고 명철도 없고 모략도 없다”로 번역됩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지혜, 명철, 모략이 의미를 잃는다는 것입니다. 지혜, 명철, 모략의 참 기준과 진정한 의미는 오로지 여호와 하나님에게서만 발견됨을 강조하기 위한 화법입니다. 지혜로운 자가 되어 복된 삶을 영위한다는 것은 결국 여호와 하나님을 찾고 그분을 두려워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지혜, 복, 성공과 같은 것들보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앙이 삶의 핵심입니다.

31절은 그러한 참 지혜의 삶에 대한 적절한 예를 제공합니다. 마병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말과 병거는 전쟁을 위해 꼭 필요한 것들이지만, 그것으로 승리를 얻을 수는 없으며 승리는 오직 여호와께로부터 나옵니다. 지혜는 유익한 것이나 그 지혜가 하나님으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잊으면 더 이상 지혜가 아닌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 중심의 신앙으로 살아야 함을 강조하면서 30~31절은 전체 논의를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우리 역시 하나님께서 우리 삶에 허락하신 여러가지 선한 것들을 바라볼 때, 그 선한 것들에 눈이 치우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지혜가 절실할수록 더욱 겸손해져야겠습니다. 미련해 보이는 십자가의 도를 더욱 붙들어야겠습니다.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고전 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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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21-01)


정의를 행함이 하나님의 기쁨

잠언 21장 1-14절


어린 아이에게 ‘정의가 뭔지 아나?’라는 질문에 아이가 떠올린 것은 슈퍼 히어로였습니다. 아이에게 정읠란 나쁜 사람들을 혼내주는 영웅 이야기였던 것입니다. 특별한 능력의 영웅에 의해 한 번에 정의가 세워지는 일은 없다는 것을 아이도 곧 알게 되겠습니다. 악인이 형통하는 이 현실에 대해 우리는 자라나는 다음 세대에게 어떤 말로 설명해주어 합니까?

 

잠언 20:1-14은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먼저 1-4절에는 여호와 하나님이 집중적으로 언급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주권적으로 인도하시니, 그분 앞에 의로운 삶의 열매를 맺어야 함을 말합니다. 이어지는 5-14절은 여호와 하나님의 주권에 복종하지 않는 악한 자의 삶의 모습들을 묘사합니다. 악한 삶의 특징뿐 아니라, 악한 삶을 살았을 때 맞게 될 결과들도 비교적 자세히 그려냅니다.

 

판단의 기준이 되시는 여호와(1-4)

악한 이들이 성공하는 것을 보고, 그들이 높은 자리에 올라 권력으로 불법을 자행하는 것을 봅니다. 이것을 지켜보는 이들은 혼란스럽습니다. 하지만 성공이라는 결과가 모든 것을 정당화하지 못합니다. 그들의 심히 구부러진 길이 그들의 죄를 폭로합니다. 모든 것이 잘 물린다고 해도 ‘악인의 형통은 죄’라는 준엄한 선언을 피해갈 수 없습니다.

1많은 재물보다 명예를 택할 것이요 은이나 금보다 은총을 더욱 택할 것이니라 2가난한 자와 부한 자가 함께 살거니와 그 모두를 지으신 이는 여호와시니라 3슬기로운 자는 재앙을 보면 숨어 피하여도 어리석은 자는 나가다가 해를 받느니라 4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상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1-4)

하나님께서는 인생의 가야 할 길을 인도하고 세밀히 감찰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께 취해야 할 태도는 자기 뜻을 굽히지 않는 오만한 모습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기대로 겸손히 자신을 맡겨드리는 것입니다.

(1) 주권적으로 인도하시는 여호와(1-2)

1절은 왕에 대하여 언급하는데,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는 물줄기와 같아서, 그 흐름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바대로 인도해 가신다는 사실을 말합니다. 인간 세상에서 가장 높은 통치권자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통치 앞에서는 복종할 수밖에 없음을 알려줍니다.

2절은 사람의 행위를 하나님께서 친히 감찰하심을 말합니다. 그 어떤 사람도 하나님 앞에서는 의롭다 말할 수 없으며 겸손하게 하나님의 평가를 받아야 함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2) 여호와 앞에서의 삶의 열매(3-4)

이렇게 주권적으로 통치하시는 여호와 앞에서 우리의 삶이 평가되므로, 우리는 단순히 겉모습만의 종교 생활로 만족해서는 안 되며, 한 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의 열매를 맺기 위해 애쓰고 수고해야 합니다.

3절은 제사 드리는 것보다 공의와 정의를 행하는 것이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일임을 천명합니다. 지혜로운 자가 맺어야 하는 삶의 열매가 바로 정의와 공의입니다.

4절은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죄에 대해 언급합니다. 교만한 눈, 절제할 줄 모르는 마음, 그리고 악인의 변화되지 못하는 상태가 바로 죄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열매를 맺기 위해 힘써야 하며, 악인의 모습을 버리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악인의 삶의 모습(5-14)

결국 악인의 길은 자멸의 길입니다. 조그바여 거짓으로 재산을 모은 자는 궁핍해질 것입니다. 가난한 이들의 부르짖음에 귀를 막으면 자기가 부르짖을 때 아무도 듣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을 것입니다. 불의에 눈 감으면 그 불의가 나를 공격합니다. 자신이 취두른 폭력에 의해 스스로 망합니다.

5패역한 자의 길에는 가시와 올무가 있거니와 영혼을 지키는 자는 이를 멀리 하느니라 6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7부자는 가난한 자를 주관하고 빚진 자는 채주의 종이 되느니라 8악을 뿌리는 자는 재앙을 거두리니 그 분노의 기세가 쇠하리라 9선한 눈을 가진 자는 복을 받으리니 이는 양식을 가난한 자에게 줌이니라 10거만한 자를 쫓아내면 다툼이 쉬고 싸움과 수욕이 그치느니라 11마음의 정결을 사모하는 자의 입술에는 덕이 있으므로 임금이 그의 친구가 되느니라 12여호와의 눈은 지식 있는 사람을 지키시나 사악한 사람의 말은 패하게 하시느니라 13게으른 자는 말하기를 사자가 밖에 있은즉 내가 나가면 거리에서 찢기겠다 하느니라 14음녀의 입은 깊은 함정이라 여호와의 노를 당한 자는 거기 빠지리라(5-14)

불법으로 얻는 부와 형통은 경계와 단절의 대상이지 부러움의 대상이 아닙니다. 교만한 악인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과 형통이란 없습니다. 사라질 안개처럼 잠시 만족할지 모르지만, 악인은 결국 하나님께서 던져버린 막다른 길, 더 이상 자기 지혜로 예측할 수 없는 굽은 길에서 더 큰 절망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1) 악한 삶의 결과 1(5-7)

이 단락에서는 악한 삶의 여러 모습을 소개하면서, 그 결과를 더불어 가르쳐줍니다.

5절은 부지런함과 조급함을 대조하면서 부지런함은 풍부함에 이르지만 조급함은 궁핍에 이르게 됨을 가르칩니다. 그렇다면 부지런함과 조급함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부지런한 자는 깊은 생각을 통해 계획을 세웁니다. ‘경영’이라고 번역된 원어는 ‘생각들’이라는 말입니다. 부지런함은 조급함과는 다릅니다. 지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운데 신중한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는 데 있어서 부지런한 것입니다. 이러한 지혜가 없는 부지런함은 조급함일 뿐이며, 궁핍에 이르게 될 뿐입니다.

6절은 거짓말로 모은 재물이 한순간의 숨결과도 같아서 금방 없어지고 만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심지어 이런 불의의 재물은 죽음을 구하는 것과 같아서 멸망에 이르게 할 것이므로, 우리는 재물을 얻는 데 있어서 정직함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7절은 악인의 폭력성이 악인을 끌고 간다고 말합니다. 폭력성이라는 악한 성품에 물들게 되면, 그 폭력성이 그 사람을 지배하게 됩니다. 그 결과, 그는 3절에서 말한 하나님의 공의를 지키지 못하게 되어, 하나님의 선하신 지혜의 길에서 멀리 떠나게 됩니다. 폭력성은 우리가 매우 조심해야 할 악한 성품입니다.

(2) 악한 삶의 특징(8-11)

8-11절 역시 악한 삶의 여러 가지 태도에 대해서 말하는데, 다만 그 결과를 서술하지는 않고 악한 삶 자체에 대해서 좀 더 깊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8절은 굽은 길로 가는 자는 음녀의 길로 가는 것과 같지만 정결한 자는 올바른 행동을 한다고 말합니다. 이리 저리 굽은 길, 좌우로 치우치는 행보를 피해야 함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9절은 다투는 여인과 함께 큰 집에서 사는 것보다는 차라리 지붕 위에서 홀로 사는 것이 낫다고 가르칩니다. ‘~ 보다,’ ‘~이 더 낫다’라는 비교 잠언의 형식을 통해서 다툼을 일삼는 여인과 함께 사는 삶의 고통을 보여줍니다. 이는 다툼을 일삼는 것이 악한 삶의 형태임을 우리에게 일깨워줍니다. 다툼은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이 삶의 형태와 습관으로 자리 잡으면 지혜의 길에서 떠나는 것이 되며 가정과 같은공동체를 파괴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10절은 악인의 마음은 재앙을 원한다는 사실을 지적합니다. 그래서 같은 공동체에 속한 이웃이라 할지라도 악인에게서는 은혜를 받지 못합니다. 이 구절은,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 구성원에게조차 선을 행하지 못하는 사람이 악인이며, 그 마음에는 항상 재앙을 도모하는 잘못된 욕망이 꿈틀대고 있음을 알려줍니다. 자신의 마음 깊은 곳에서 공동체 구성원을 향한 선한 마음이 흘러나오고 있는지를 늘 점검해야 할 것입니다.

11절은 거만한 자를 훈계하면 어리석은 자가 지혜를 얻게 되고, 지혜로운 자가 교훈을 받으면 지식이 더한다고 가르칩니다. ‘어리석은 자’는 ‘미성숙한 자’로서, 교훈을 주면 배워서 변화될 가능성이 있는 자이고, 거만한 자는 더 이상 가르침을 받지 못하는 완고한 자입니다. 11절은 악한 삶을 사는 자를 보게 될 때, 그 악인의 삶의 결과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점을 가르쳐줍니다. 거만한 자가 받는 결과 즉 5-14절에 걸쳐 나타나는 여러가지 해로운 결과들을 지켜보고 교훈을 얻어 지혜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는 점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3) 악한 삶의 결과2(12-14)

12-14절은 악한 삶을 살 때 맞게 될 결과를 다시 한 번 설명합니다. 그 성격에 있어서 12-14절은 5-7절과 유사합니다.

12절은 의로우신 자가 악인을 감찰하셔서 그를 환난에 던지신다고 말합니다. 본문에서 ‘의로우신 자’라고 번역된 원어는 ‘짜티크’로서 '‘의로운 자’라는 의미인데, 이 의로운 자가 악인을 환란에 던지는 존재이기에 대개 이 의로운 자를 하나님으로 해석합니다. 악인은 의로우신 하나님에 의해서 재앙에 던져질 뿐입니다.

13절은 가난한 자의 부르짖음을 듣지 않고 거절하면, 나중에 자신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아무도 돕지 않을 것임을 말합니다. 즉 자신이 다른 이에게 악하게 행한 그대로 받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악인의 악함은 스스로를 멸망시키는 지름길과 원동력이 될 뿐이니, 우리는 이런 악한 삶을 버리고 다른 이를 돕고 섬기는 선한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14절은 선물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데, 상반절에 ‘은밀한 선물’이라고 표현되어 있으므로, 우리는 이 선물을 뇌물로 이해해야 합니다. 뇌물은 분노를 그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악인이 자신의 악함으로 인해 멸망 당하게 될 때, 불의한 뇌물로 상황을 해결하려고 시도할 것을 말합니다. 이 구절은 뇌물을 사용하여 문제를 해결하라는 뜻이결코 아닙니다. ‘선물’이란 원래 좋은 것이고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선한 결과를 낳지만, 그것을 ‘은밀하게’ 사용하려는 잘못된 시도는 악한 삶의 태도임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5-13절에 악한 삶의 특징과 그 결과를 언급한 문맥을 생각할 때, 14절을 이렇게 해석하는 것이 가능할 것입니다.


모든 것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의의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다음 세대들이 정의를 영화 속에서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와 교회 성도들의 삶에서 발견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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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20-02)


여호와를 기억하고 기다리라

잠언 20장 16-30절


‘100퍼센트 진짜 순 참기름’이란 말이 있습니다. 오죽 믿지 못하면 이런 말이 생겼을까 싶습니다. 정치인의 말을 있는 그대로 믿는 사람이 없고, 언론도 이제는 신뢰를 잃어버렸습니다. 종교인들의 말이라고 크게 나을 것이 없습니다. 서로가 서로의 말을 믿지 못하는 사회는 병든 사회입니다. 이런 세상 속에서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는 계명을 주의 명령으로 받은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본 단락은 여호와를 의지하는 삶의 중요성을 21-25절을 통해 강조하고, 또 내면 변화의 중요성을 26-30절을 통해서 강조합니다. 여호와를 의지하는 삶은 결국 내면의 변화라는 진정성 있는 열매를 맺게 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와 더불어 삶의 구체적인 현장에서 지혜로운 선택을 해야 하며(16-18) 공동체를 해치는 말을 삼가야 한다(19-20)는 가르침도 함께 주어집니다.

 

선택의 결과(16-18)

삶은 선택의 연속입니다. 선택은 전적으로 내 책임이며 내가 그 결과를 감당해야 합니다. 따라서 자기 욕망이 이끄는 대로 선택하기보다는 지혜롭게 선택해야 합니다. 보증을 서는 것이나 거짓된 행실은 뼈아픈 대가를 치르게 합니다. 하지만 유익한 조언을 청취하는 좋은 선택은 이로운 결과를 가져옵니다. 이렇듯 잠언은 상식적인 인과율을 지지합니다.

16타인을 위하여 보증 선 자의 옷을 취하라 외인들을 위하여 보증 선 자는 그의 몸을 볼모 잡을지니라 17속이고 취한 음식물은 사람에게 맛이 좋은 듯하나 후에는 그의 입에 모래가 가득하게 되리라 18경영은 의논함으로 성취하나니 지략을 베풀고 전쟁할지니라(16-18)

거짓말은 자신과 타인의 삶을 망가뜨리고 관계를 깨뜨리며 공동체를 무너뜨립니다. 남을 속여 부당한 이익을 취합니다. 싸게 사서 비싸게 팔기 위해 적당히 거짓말을 섞습니다. “이 물건은 거룩하다”하며 과대포장과 헛된 맹세를 서슴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런 거짓말들은 결국 자신에게 덫이 됩니다. 남을 속여 번 돈으로 누리는 즐거움은 머지않아 모래를 씹는 듯한 고통으로 변할 것입니다. 화려한 말의 포장이나 맹세가 없어도 말 그 자체로 신뢰를 얻으려면 우리는 얼마나 진실하게 살아야 할까요?

(1) 잘못된 선택의 결과(16-17)

16절은 보증을 설 때 맞게 되는 결과를 묘사합니다. 문법적으로는 보증 선 자의 옷을 취하라는 명령법으로 되어있으나, 사실상 이런 표현은 반어법으로 보증을 서면 자신의 옷을 빼앗기게 되고 자기 몸을 담보로 잡히게 된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잘못된 선택은 해가 되어 돌아옵니다.

17절은 거짓말을 할 때의 결과를 서술합니다. 거짓말하는 순간은 달콤할지 모르나, 나중에는 모래를 입에 담은 것처럼 쓰디쓴 결과를 맞게 될 것입니다. 16-17절은 이렇듯 잘못된 선택의 결과를 보여줍니다.

(2) 올바른 선택의 결과(18)

16-17절이 잘못된 선택의 결과를 보여준 데 반하여, 18절은 올바른 선택이 가져오는 긍정적인 결과를 서술합니다. 다른 이의 의견을 듣고 의논하면 생각을 다듬을 수 있고, 계획을 세워서 전쟁하면 승리를 거둘 수 있다는 것입니다. 18절은 의논의 중요성을 말하는 동시에, 올바른 선택을 했을 때 유익한 결과를 맞게 됨을 알려줍니다. 우리는 경제적인 부분에서(16), 언어사용의 부분에서(17), 또한 계획을 세우고 의논하는 부분에서(18), 올바른 선택을 해서 유익한 결과를 맞도록 해야 합니다.

 

공동체를 해치는 언어행위(19-20)

에덴에서의 인간의 타락은 곧 언어의 타락이었습니다. ‘거짓의 아비’인 마귀에게 속은 아담과 하와는 진실 없는 말로 변명을 늘어놓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거짓말 속에 담긴 악의 실체를 깨닫고 맞서야 합니다. 키질하여 알곡과 가라지를 구별하듯, 진실과 거짓을 분별하는 세심한 눈과 지혜가 필요합니다.

19두루 다니며 한담하는 자는 남의 비밀을 누설하나니 입술을 벌린 자를 사귀지 말지니라 20자기의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는 자는 그의 등불이 흑암 중에 꺼짐을 당하리라(19-20)

이 두 구절은 공동체를 해치는 잘못된 언어 행위에 대한 경고를 담고 있습니다. 19절은 다른 사람에 대하여 험담하는 행위를 하는 자를 벗으로 사귀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다른 사람의 비밀을 누설하여 해를 끼치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20절은 부모를 저주하는 자는 가장 어두운 흑암 중에서 그의 등불이 꺼지게 된다는 점을 말합니다. 부모를 저주하는 언어행위를 하게 되면, 그 저주가 자신에게로 돌아와, 나에게 필요한 것을 가장 필요한 순간에 빼앗기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19-20절은 공동체 구성원에게 해악을 끼치는 언어행위를 하지도 말고 그런 자를 사귀지도 말라는 가르침을 줍니다. 우리는 이런 잘못된 언어행위들을 쉽게 용납하거나 그런 행위에 동참하는 실수를 범하지 말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다른 이들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올바른 언어를 사용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여호와를 의지하는 삶(21-25)

미련한 자는 성급합니다. 일의 전후를 살피거나 앞날을 예측하지도 않고 속단하는 것은 어리석습니다. 서두르면 사업도 망하고 함부로 서원하면 득이 아니라 덫이 됩니다. 함부로 보복하면 억울한 사람을 만들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참 지혜입니다. 그분은 전후좌우를 아시기 때문입니다.

21처음에 속히 잡은 산업은 마침내 복이 되지 아니하느니라 22너는 악을 갚겠다 말하지 말고 여호와를 기다리라 그가 너를 구원하시리라 23한결같지 않은 저울 추는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는 것이요 속이는 저울은 좋지 못한 것이니라 24사람의 걸음은 여호와로 말미암나니 사람이 어찌 자기의 길을 알 수 있으랴 25함부로 이 물건은 거룩하다 하여 서원하고 그 후에 살피면 그것이 그 사람에게 덫이 되느니라(21-25)

하나님께서는 가야 할 길로 인도해주십니다. 한 치 앞도 분별할 수 없는 인생길을 안내자 없이 홀로 걷는 용기가 아니라, 어리석은 것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온전한 인도자이신 하나님을 신뢰하여, 내딛도록 보여주신 길을 따라 걷습니다.

(1) 성급한 결정에 대한 경고(21)

21절은 성급한 결정에 대하여 경고합니다. 급하게 얻은 재산이 나중에 복이 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성급한 결정에 대한 경고는 25절에 다시 한번 나오게 되는데, 그 중간 부분인 22-24절은 여호와를 의지하는 삶에 대해서 말합니다. 즉 22-24절은 성급한 결정에 대한 두 가지 경고에 의해 인클루지오 기법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2) 여호와를 의지하는 삶(22-24)

이 세 구절은 여호와를 의지하는 삶에 대하여 가르칩니다. 22절은 악한 일을 당했을 때 스스로 원수를 갚으려 하지 말고 여호와를 먼저 의지해야 함을 말합니다. 의인을 구원하고 악인을 심판하는 권세가 여호와께 있음을 신뢰하고 그분을 의지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23절은 한결같지 않은 저울추와 속이는 저울을 여호와께서 싫어하심을 언급합니다. 거짓된 경제행위에 대한 언급인데, 경제활동을 함에 있어서 여호와를 의지하면서 정직한 삶의 태도를 견지해야 함을 알려줍니다. 24절은 사람이 자신의 길을 스스로 깨달을 수 없고 그 길은 오직 여호와께 달려있음을 말합니다. 24절은 22-23절의 두 경우 즉 악인에 대한 심판과 경제활동 문제에 있어서 하나님을 신뢰해야 하는 이유를 제시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자기 생각으로 올바른 길을 찾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자기 생각에는 직접 악인에게 보복하는 것이 좋아 보이고, 거짓된 방법으로라도 이익을 취하는 것이 좋아 보이나, 모든 길을 판단하시고 인도하시는 여호와 앞에서 그러한 행동들은 결국 심판을 초래하고 말 것입니다.

(3) 성급한 결정에 대한 경고(25)

25절은 21절에 이어서 다시 한번 성급한 결정에 대한 경고를 제공합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서원이라 할지라도 너무 성급하게 하면 나중에 후회하게 되고 결국 자신에게 덫이 되고 맙니다. 따라서 거룩한 신앙의 결단이라 할지라도 깊이 생각한 후에 행해야 합니다. 이러한 25절의 메시지는 21절과 함께 인클루지오 기법을 이루어, 여호와께서 성급한 결정을 좋게 평가하지 않으신다는 점을 알려줍니다. 성급하게 악을 갚으려고 하거나 불의의 이익을 취하지 말고 오직 여호와를 의지하면서 차근차근 삶의 걸음을 걸어 나갈 때, 여호와께서 인도하시는 인생의 길을 걸어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내면 변화의 중요성(26-30)

정말 중요한 것은 위가 아니라 아래일 수 있고, 앞이 아니라 뒷일 수 있으며, 겉이 아니라 속일 수 있습니다. 지혜로운 왕은 선과 악을 분별해냅니다. 그러니 속일 생각 말아야 합니다. 내면까지 살피기에 사랑의 매를 통해서라도 내면을 가꾸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혜로운 노인의 백발이 아름다운 것은 그 내면 때문입니다.

26지혜로운 왕은 악인들을 키질하며 타작하는 바퀴를 그들 위에 굴리느니라 27사람의 영혼은 여호와의 등불이라 사람의 깊은 속을 살피느니라 28왕은 인자와 진리로 스스로 보호하고 그의 왕위도 인자함으로 말미암아 견고하니라 29젊은 자의 영화는 그의 힘이요 늙은 자의 아름다움은 백발이니라 30상하게 때리는 것이 악을 없이하나니 매는 사람 속에 깊이 들어가느니라(26-30)

이 단락은 사람의 내면의 모습을 주로 다룹니다.

먼저 26절에서는 왕이 사람들을 평가한다는 사실을 말합니다. 지혜로운 왕은 타작마당에서 키질하듯이 사람들의 선함과 악함을 분별해냅니다. 권위자 앞에서 우리의 삶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27절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여호와께서 사람의 내면을 살피신다는 점을 서술합니다. 여호와께서는 사람에게 호흡을 주셨는데, 그 호흡은 여호와의 등불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호흡이 사람 속에 들어가고 나오듯이, 여호와의 등불은 사람 속을 비추고 그 내면을 감찰하고 평가한다는 것입니다.

28절은 왕의 인자함과 진실함이 왕의 자리를 보존해준다는 점을 기술합니다. 왕이 자신의 왕위를 지키는 비결이 인자함과 진실함을 지키는 것이라는 말로서, 이 역시 내면세계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왕위는 권력 같은 인간적인 방법으로 지켜지지 않습니다. 그 내면의 성품이 아름답고 복될 때 왕위가 지켜질 수 있습니다.

29절은 젊은 사람에게는 힘이 곧 영광이지만 나이 든 사람에는 백발이 아름다움이 된다는 사실을 말합니다. 나이가 들게 되면 젊었을 때 자랑하던 힘은 잃어버리게 되지만, 힘보다 더 아름다운 백발이라는 선물을 갖게 됩니다. 백발의 아름다움을 언급하는 이유는, 육체의 겉모양이 절대적 가치를 지니고 있지 않음을 알려주기 위해서입니다. 육체는 쇠하여져도 더 아름다워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30절은 사랑의 매가 사람 속에 깊이 들어가 악을 없앤다는 점을 말합니다. 이 구절은 27절과 상당히 유사합니다. 27절은 여호와께서 사람의 내면을 살피심을 말했고, 30절은 부모나 스승의 훈계가 사람의 내면을 변화시킴을 말합니다. 우리는 내면의 변화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고 각자의 속사람 모습에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내면을 감찰하시고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성실한 과정 없이 부를 얻고자 기대하지 말아야 합니다. 불의한 방법이나 노력 없이 거저 얻은 부로 풍요롭게 사는 사람을 부러워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을 그다지 가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부 자체가 사람에게 절대적 행복의 조건이 되지 못하며, 불성실하게 얻은 부는 반드시 그 폐해가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한 사람들은 어리석게 일확천금이나 불로소득을 바라보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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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20-01)


지혜롭고 겸손한 삶의 지혜

잠언 20장 1-15절


사람에게 거짓이 통한다고 해서 하나님까지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거짓된 모습은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알고 계시기에 우리는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마음이 상하면 상한 대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면 됩니다. 우리 모습이 아무리 초라해도 주님은 우리를 씻기고 치료해 주실 것입니다.

 

잠언 20장 전반부는 주로 성실함과 정결함에 대한 잠언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성실과 정결에 대한 여러 다양한 삶의 측면들이 제시됩니다. 지혜로운 자는 자신에게 맡겨진 삶을 성실하게 살아내며, 불의의 이득으로부터 자신을 지켜 정결함을 유지합니다. 이 단락의 마지막 구절인 14-15절은 지혜로운 언어생활을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거만함에 대한 경고(1)

술 취하면 사람은 절제력을 잃어버립니다. 멋대로 떠들고 마음대로 행동합니다. 그런데 술 취한 사람처럼 겁 없이 마음대로 하는 행동은 용기도 아니요, 지혜도 합니다. 모든 것이 드러나면 심판받을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1포도주는 거만하게 하는 것이요 독주는 떠들게 하는 것이라 이에 미혹되는 자마다 지혜가 없느니라(1)

이 구절은 처음 보기에는 독주와 포도주에 대한 내용을 소개하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하지만 잠언에서 매우 중요한 표현인 ‘거만하다’라는 말과 ‘지혜’라는 말이 대조되어 사용되는 사실에 주목하게 되면, 1절이 독주와 포도주에 대한 경고라기보다는 거만함에 대한 경고임을 알 수 있습니다. 거만함은 포도주나 독주와 같아서 사람을 취하게 하고 떠들게 합니다. 거만함에 취하게 되면 실수를 저지르게 되니 주의해야 합니다. 이 구절은 앞서서 거만함의 주제를 집중적으로 다룬 19:25-29의 연장 선상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입니다.

 

성실한 삶의 중요성(2-7)

죄성으로 인해 교묘한 모습, 거짓된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도 겉으로는 매우 경건해 보입니다. 사람의 숨은 의도가 무엇인지 알아차리기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혜가 있으면 그것을 알아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거짓은 영원할 수 없습니다. 때가 되면 사실이 드러납니다.

2왕의 진노는 사자의 부르짖음 같으니 그를 노하게 하는 것은 자기의 생명을 해하는 것이니라 3다툼을 멀리 하는 것이 사람에게 영광이거늘 미련한 자마다 다툼을 일으키느니라 4게으른 자는 가을에 밭 갈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거둘 때에는 구걸할지라도 얻지 못하리라 5사람의 마음에 있는 모략은 깊은 물 같으니라 그럴지라도 명철한 사람은 그것을 길어 내느니라 6많은 사람이 각기 자기의 인자함을 자랑하나니 충성된 자를 누가 만날 수 있으랴 7온전하게 행하는 자가 의인이라 그의 후손에게 복이 있느니라(2-7)

어리석은 자들은 헛소리를 내뱉을 때까지 독주를 마시고, 의로운 왕의 통치에 떨며, 파종할 시기를 놓쳐 추수하지 못합니다. 또 작은 이득을 위해 사람을 속이지만, 그것으로 하나님의 노여움을 사는 더 큰 해를 자초합니다.

(1) 왕의 권위(2-3)

2절은 왕의 진노를 언급합니다. 왕의 진노를 일으키면 생명이 위험해진다는 것입니다. 3절은 다투는 것은 미련한가 하는 행동이므로 다투는 행위를 피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2절과 3절은 모두 분노 혹은 다툼 등의 연관된 주제를 다룹니다. 이렇게 분노와 다툼이 연결되어 나오는 현상을 우리는 19:10-14에서 이미 목격한 바 있습니다. 그렇다면 20:2-3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물론 분노와 다툼을 피해야 한다는 것인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2b절로서 왕의 분노를 사게 되면 생명을 위협당한다는 점입니다. 왕은 권위자를 뜻하므로, 2b절은 권위자의 분노를 일으킬만한 잘못한다는 뜻이 됩니다. 3a절에서도 다툼을 멀리하는 것이 영광된다는 표현을 주목해야 합니다. 어떻게 다툼을 피하는 것이 영광될 수 있습니까? 이것은 권위자 앞에 선 현장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됩니다. 왕 앞에서 다툼과 분쟁이 없는 것이 영광스러운 삶으로 이끄는 것입니다. 즉 2-3절은 권위자 앞에서 올바른 삶의 태도를 지녀야 한다는 함의를 제시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2) 성실한 삶의 중요성(4-7)

이 네 구절은 성실한 삶의 모습을 강조합니다. 4절은 게으름에 대해 경고하는데, 해야 할 일을 적절한 시기에 하지 못하면 나중에 아무런 결과도 얻지 못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시간에 대한 성실함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5절은 사람의 마음에 있는 계획은 알아내기 어렵지만, 지혜로운 자는 그 계획을 파악해낸다고 말합니다. 5절의 의미는 6절과 연결해서 생각했을 때 분명해집니다. 6절은 많은 사람이 자신의 성실함을 자랑하지만 그런 성실함을 지닌 자를 실제로 찾기는 어려움을 가르쳐줍니다. 5절과 6절을 함께 생각해보면, 겉모습뿐 아니라 내면까지 성실한 사람은 많지 않지만, 지혜로운 자는 그런 사람을 구별해낸다는 의미가 됩니다. 7절은 온전하게 행하는 자가 의인이며 그 후손에게 복이 있음을 말합니다. 7절을 앞 구절들과 연결해보면, 온전히 행하는 자란 삶을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성실한 사람을 찾기는 어렵지만, 지혜로운 자는 그런 사람을 찾아낼 것이며, 그런 성실한 사람은 결국 복을 받게 됨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시간의 측면에서 성실한 사람이 되어야 하고, 성실한 사람이 될 때 결국을 받게 될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러한 의미를 2-3절과 연결해보시길 바랍니다. 성실함의 여부는 결국 왕과 같은 권위자 앞에서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성실하면 복을 받게 되나, 성실하지 못함이 드러나면 진노를 받게 되어 자신의 생명을 위협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입니다.

 

정결한 삶의 중요성(8-13)

하나님을 속일 수 없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믿음을 장담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처럼 꾸민다 해도 하나님께서는 겉모습에 속지 않으십니다. 외모를 취하지 않으시고 중심을 보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거짓말을 할 때 어른이 보면 뻔히 보이는데도 끝까지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8심판 자리에 앉은 왕은 그의 눈으로 모든 악을 흩어지게 하느니라 9내가 내 마음을 정하게 하였다 내 죄를 깨끗하게 하였다 할 자가 누구냐 10한결같지 않은 저울 추와 한결같지 않은 되는 다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느니라 11비록 아이라도 자기의 동작으로 자기 품행이 청결한 여부와 정직한 여부를 나타내느니라 12듣는 귀와 보는 눈은 다 여호와께서 지으신 것이니라 13너는 잠자기를 좋아하지 말라 네가 빈궁하게 될까 두려우니라 네 눈을 뜨라 그리하면 양식이 족하리라(8-13)

충성은 믿음과의 통합니다. 온전히 행하는 자는 아쉬울 때만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변하지 않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충성스러운 믿음이 복을 누리게 합니다. 사람을 지으신 하나님께서 사람의 마음을 파악하지 못하실 리가 없습니다.

(1) 왕의 권위(8)

8-13절도 앞 단락인 2-7절과 같이 왕에 대한 잠언으로 시작합니다. 8절은 왕이 모든 악을 분별해낸다는 사실을 제시합니다. 여러 가지 일들이 왕 앞에 펼쳐지더라도, 그중에서 선한 일과 악한 일을 왕은 가려낼 수 있습니다. 8절은 우리가 하는 모든 행동들의 진정성이 차후에 그 일들을 판단할 권위자 앞에 낱낱이 드러나게 될 것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2) 정결한 삶의 중요성(9-13)

9-13절은 정결한 삶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정결한 삶을 위한 여러 교훈을 제시합니다.

9절은 자신의 마음을 정결하게 하였다고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누구일지 묻습니다. 수사적 의문문의 형태로서 ‘그런 사람은 없다’라는 의미입니다. 이 구절을 완전히 정결한 자는 없다는 어떤 존재론적 선언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오히려 이 구절은 나 자신에게 정결하지 못한 모습이 있을 수 있기에 늘 조심해야 한다는 가르침으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10절은 한결같지 않은 저울추와 되를 여호와께서 미워하신다는 사실을 언급합니다. 상황에 따라 기준을 바꾸는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정결한 삶이 아닙니다. 정결함이란 자신의 이익을 좇아 다른 이들을 속이는 거짓 행위를 멀리하는 것입니다.

11절은 비록 어린아이라 할지라도 그 행동거지에서 자신의 정결 여부와 정직 여부가 다 드러난다는 것을 말합니다. 정결/정직의 여부는 결코 숨길 수 없습니다. 12절은 여호와께서 눈과 귀를 지으셨음을 말합니다. 단순히 창조행위를 말하는 것으로 제한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눈과 귀를 지으셨으므로 눈과 귀로 보고 듣는 것을 통해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12절을 10-11절과 연결해보면, 정결하지 못한 행동은 반드시 드러나게 되어 있고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니 결코 그런 행동을 해서는 안 되다는 점을 알 수 있게 됩니다.

13절은 잠자기를 좋아하지 말아야 하고 눈을 떠야만 풍족한 양식을 얻을 수 있음을 말합니다. 13절과 12절은 ‘눈’이라는 주제로 연결됩니다. 13절은 눈을 감아서 잠들 때에 대해 경고하는데, 잠자는 것은 여호와께서 지으신 눈을 감는 것이며, 결국 정결하지 못한 삶을 용인하는 것을 뜻하게 됩니다. 우리는 눈을 바로 뜨고 하나님을 경외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 정결한 삶을 유지해 나가야 합니다. 우리의 정결 여부와 정직 여부는 언젠가 드러나게 됩니다. 8절에서 왕의 권위를 언급한 것처럼, 권위자 앞에서 우리의 정결/정직 여부를 판단 받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참된 권위자이신 여호와를 생각한다면, 우리는 반드시 정결한 삶을 추구해야 합니다.

 

지혜로운 언어생활(14-15)

지혜로운 의인은 구체적인 삶의 방식에 있어서 어리석은 악인과 구별됩니다. 언어는 마음에 담겨 있는 것을 표현하는 도구이기 때문에 지혜로운 입술을 가진 사람의 마음에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순종하는 지식이 들어야 합니다. 두루 다니며 남을 비방하고 헛된 소문을 퍼뜨리는 자들은 형제를 이간하는 사악한 자이기 때문에 멀리해야 합니다.

14물건을 사는 자가 좋지 못하다 좋지 못하다 하다가 돌아간 후에는 자랑하느니라 15세상에 금도 있고 진주도 많거니와 지혜로운 입술이 더욱 귀한 보배니라(14-15)

이 두 구절은 지혜로운 언어생활에 대해서 알려줍니다. 14절은 일반적인 사람들의 언어 행위를 묘사합니다. 물건을 살 때는 물건 가격을 깎기 위해서 물건이 좋지 않다고 말하지만, 물건을 사서 돌아간 후에는 그 물건을 값싸게 샀다는 사실을 자랑한다는 것입니다.

이 구절은 사람들의 언어 행위가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언어 행위를 우리는 어떻게 평가해야 할 것입니까? 그 기준이 15절에 나타납니다. 세상에는 금과 진주가 많지만 지혜로운 입술이 금과 진주보다 더 귀하다는 것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서 변덕스러운 말을 하는 입술보다 하나님을 경외하기 위해서 진실한 말을 하는 입술이 더 귀하다는 의미입니다. 지혜로운 입술이 가장 큰 유익을 가져다주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상황에 따라 자꾸 말을 바꾸는 사람이 되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우리의 언어 행위를 통해 하나님을 높이고 그분을 경외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비전이란 말을 자주 듣습니다. 많은 경우 무엇이 되는 것에 초점을 두지만, 핵심은 어떤 사람이 되는가입니다. 소유의 허상으로 자신을 세우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인정하고 아름다운 내면을 바르게 표현하는 인격적 삶에 관심 두십니다. 이것을 추구하는 것이 신자의 참 비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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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19-02)


하나님의 경건한 사람들

잠언 19장 15-29절


 

잠언은 하나님의 은혜를 전제로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의 지혜를 찾고 실현하기 위해서 마땅히 감당해야 할 책임을 강조합니다. 그 책임에 따른 상과 벌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닙니다. 간간이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의 중요성을 말하며 또 궁극적으로는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생각하고 행동하더라도 “하나님의 뜻만이 완전히 서게” 될 것이라고 말하는 책입니다. 그러니까 세상에 돌아다니는 윤리와 도덕에 관한 경구들을 모아놓은 책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만 참된 윤리와 도덕이 세워지고, 진정으로 선과 악이 결정 난다고 분명히 밝히는 책입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책임이 적절하게 조화된 이 책의 성격이 오늘 본문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본문은 선한 일에 열심을 내야 하는 경우들(15-19)과 거만한 자를 주의해야 하는 이유(24-29)를 설명하는데, 이 두 문단 사이에 여호와 경외 신앙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문단이 위치해 있습니다(20-23). 첫 문단과 셋째 문단은 모두 게으름에 대한 경고로 시작하는 공통점을 지닙니다. 선한 일에 열심을 내며, 여호와를 경외하고, 거만한 자를 주의하라는 것이 본 단락의 메시지입니다.

 

선한 일에 열심(15-19)

미련한 자는 게으릅니다. 그들은 점점 자기 행동에 대해 무감각해지고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합니다. 당연히 가난은 피할 수 없게 됩니다. 지혜자는 하나님께서 다 해주실 것을 기대하는 자가 아니라 자기 일에 열심을 다 하는 자입니다. 하지만 과도한 열심을 오히려 해를 끼치게 되니 조심해야 합니다.

15게으름이 사람으로 깊이 잠들게 하나니 태만한 사람은 주릴 것이니라 16계명을 지키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지키거니와 자기의 행실을 삼가지 아니하는 자는 죽으리라 17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것이니 그의 선행을 그에게 갚아 주시리라 18네가 네 아들에게 희망이 있은즉 그를 징계하되 죽일 마음은 두지 말지니라 19노하기를 맹렬히 하는 자는 벌을 받을 것이라 네가 그를 건져 주면 다시 그런 일이 생기리라(15-19)

지혜 있는 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갑니다. 삶에서 게으름을 몰아내고,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며, 부모는 자녀를 훈육하고 자녀는 부모를 공경하며, 사람들에게 인자히 행하여 존경과 사랑을 받습니다.

(1) 게으름에 대한 경고(15)

15절은 게으름에 대한 경고다. 게으름은 사람으로 하여금 깊이 잠들게 하고 굶주리게 한다는 것입니다. 게으름을 피우는 순간은 즐겁고 편할지 모르나, 결국 그로 인해서 큰 피해를 당하게 됨을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게으름이 사람으로 하여금 깊이 잠들게 한다는 점을 주목해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잠든다는 것은 비유로서, 자기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 무감각하게 되고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자신이 열심을 내야 할 일들을 놓치게 되는 것입니다. 게으름은 우리가 매우 주의해야 할 잘못이며 실수입니다.

(2) 열심을 내야 하는 경우들(16-19)

이 구절들은 게으름을 피워서는 안 되는 여러 가지 경우들을 제시합니다. 이 일들을 올바로 해내지 못하면 해가 되는 결과를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16절은 계명을 지키지 않거나 자신의 행실을 삼가지 않는 경우, 자신의 영혼에 해를 가하게 되며 심지어는 죽게 된다고 가르칩니다. 계명을 지키고 행실을 삼가는 것에 게으름을 피워서는 안 됩니다.

17절은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면 하나님께서 갚아 주심을 말합니다. 가난한 자를 돌보는 것에 우리가 열심을 내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18절은 아들에게 희망이 있을 때 양육하고 훈계하기를 힘써야 함을 말합니다. 아직 기회가 남아있을 때 열심을 내어서 자녀를 돌봐야 합니다. 여기서 18b절은 한 가지 제한선을 설정합니다. 과도하게 자녀를 징계하다가 죽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즉 열심을 내는 것은 좋지만, 그것이 과도한 정도의 잘못된 열심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의미입니다.

19절은 심하게 화를 내는 자들을 조심하라는 경고의 메시지를 줍니다. 심하게 화를 내는 버릇은 고치기 어렵기 때문에, 그런 사람을 용서해주어도 그가 깨닫고 화내는 버릇을 고치지는 못할 것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이러한 19절은 18b절의 죽일 마음을 두지 말라는 내용과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무슨 일이든 과도한 열심을 내면 역효과가 나게 됩니다. 화를 심하게 내는 것도 그런 경우이고, 자녀를 심하게 징계하여 죽일 마음을 품는 것도 그런 경우입니다. 모든 일에 선한 열심을 내되, 과하지 않게 적절한 선에서 열심을 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앙의 중요성(20-23)

미련한 자는 거만합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법을 무시하고 정의를 업신여기며 심지어 “죄악을 삼키는 자”가 됩니다. 거만한 자는 징계를 받아도 안 변하지만, 그것을 본 어리석은 자, 즉 미성숙한 자는 지혜를 배울 것입니다. 그들이 살길은 지혜의 말씀을 붙잡는 것입니다. 이런 이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심판이요 채찍질입니다.

20너는 권고를 들으며 훈계를 받으라 그리하면 네가 필경은 지혜롭게 되리라 21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만이 완전히 서리라 22사람은 자기의 인자함으로 남에게 사모함을 받느니라 가난한 자는 거짓말하는 자보다 나으니라 23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사람으로 생명에 이르게 하는 것이라 경외하는 자는 족하게 지내고 재앙을 당하지 아니하느니라(20-23)

이 네 구절은 선한 열심의 주제로부터 전환하여 새로운 주제로 묶여 있습니다. 바로 여호와 신앙과 지혜에 관련된 주제입니다.

20절은 권고를 듣고 훈계를 받아 지혜롭게 되어야 함을 말합니다. 잠언에서 지혜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앙적 관점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므로, 20절은 암시적으로 여호와 경외 신앙을 말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21절은 지혜를 배워야 하는 이유를 말합니다. 사람이 많은 것을 계획하더라도, 그중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이 허락하시고 뜻하시는 것뿐입니다.

22절은 해석하기가 쉽지 않지만, 그 대략적인 의미를 파악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사람에게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인자함입니다. 인자함이란 약속에 대한 성실함을 뜻합니다. 하반절의 ‘가난한 것이 거짓말하는 것보다 낫다’라는 구절은 거짓말의 해악을 강조한 표현이므로, 22절 전체는 다른 사람과의 약속을 성실하게 지켜야 함을 강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23절은 여호와를 경외하면 생명을 얻게 됨을 말합니다. 여호와 경외는 재앙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고 풍성한 생명을 가져다줍니다. 21-23절을 거시적으로 이해해본다면,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우리 삶의 모든 측면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메시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를 15-19절의 열심의 주제와 연결해보자. 우리는 게으름을 피하고 선한 열심을 내야 하는데, 과도한 열심은 피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과도하게 열심을 내는 경우는 무엇입니까? 그에 대한 일종의 대답을 20-23절이 주고 있는 듯합니다. 열심을 낼 때,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 안에서 열심을 내야 하며, 다른 사람을 향해 성실함을 지키는 범주 안에서 열심을 내야 하고, 나의 계획이 아닌 하나님의 계획이 설 것이라는 신앙적 겸손으로 열심을 내야 합니다.

 

거만한 자에 대한 경고(24-29) 

게으름과 거만함의 치료책은 ‘여호와 경외’입니다. 그것이 사망의 길에서 건져 생명의 길로 갈 수 있게 해줍니다. 창조주요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인정하고 신뢰하고, 결국 인간이 그 무엇을 마음에 경영한들 결국 하나님의 뜻만이 오롯이 설 것이라고 믿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24게으른 자는 자기의 손을 그릇에 넣고서도 입으로 올리기를 괴로워하느니라 25거만한 자를 때리라 그리하면 어리석은 자도 지혜를 얻으리라 명철한 자를 견책하라 그리하면 그가 지식을 얻으리라 26아비를 구박하고 어미를 쫓아내는 자는 부끄러움을 끼치며 능욕을 부르는 자식이니라 27내 아들아 지식의 말씀에서 떠나게 하는 교훈을 듣지 말지니라 28망령된 증인은 정의를 업신여기고 악인의 입은 죄악을 삼키느니라 29심판은 거만한 자를 위하여 예비된 것이요 채찍은 어리석은 자의 등을 위하여 예비된 것이니라(24-29)

게으름은 하나님께서 주신 소중한 기회를 저버리고 삶을 무가치하게 여기는 죄악된 습관입니다.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즉시 헤어나오지 못하는 것은 게으름을 쉼, 또는 안식으로 오해하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게으름으로 자신을 망치거나 주변 사람들에게 어려움을 주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주신 시간과 환경을 낭비하지 말고 성실히 살아갑시다.

(1) 게으름에 대한 경고(24)

24절은 게으름에 대한 경고를 전해줍니다. 이 구절은 15절과 매우 유사합니다. 다만 다른 점은, 15절은 게으름이 사람을 잠에 빠뜨려 죽음에 이르게 한다는 결과적 측면을 강조했지만, 24절은 게으름의 현상 자체를 강조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음식이 가득한 그릇에 손을 넣고도 먹지 않는다는 24절의 묘사는 게으름이 자신이 누릴 수 있는 것조차 누리지 못하는 잘못된 삶의 태도이기에, 한번 게으름에 빠지면 자신의 삶을 개선해 나가지 못할 것이라는 점을 우리에게 깨우쳐줍니다.

이러한 24절의 메시지는 25절 이하로 나타나는 거만한 자의 이미지와 연결될 수 있습니다. 거만한 자야말로 게으른 자의 대표적인 경우로서, 자기 삶의 잘못된 측면을 개선하거나 변화시키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2) 거만한 자에 대한 경고(25-29)

25-29절은 주로 거만한 자에 대한 여러 가지 잠언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25절은 거만한 자를 때리면 미성숙한 자가 옆에서 보고 지혜를 배울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거만한 자를 때렸을 때, 거만한 자 자신은 지혜를 배우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미성숙한 자조차 지혜를 배우며, 명철한 자는 지식을 얻는데, 거만한 자는 자기가 훈계를 받았음에도 지혜를 얻지 못합니다. 거만한 자는 스스로 잘못을 돌이킬 줄 모르는 자입니다.

26절은 부모를 멸시하고 쫓아내는 사람은 부끄러움과 수치를 불러들이는 자임을 말합니다. 26절은 27절과 함께 이해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27절에 “내 아들아”라는 말이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27절의 화자는 아버지이고 청자는 아들입니다. 화자는 아들에게 지식의 말씀 즉 지혜의 말씀을 떠나게 하는 교훈을 멀리하라고 가르칩니다. 다시 말해 지혜의 말씀을 굳게 붙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26-27절은 우리가 지혜를 굳게 붙잡아야 하며, 그렇게 하지 않을 때 수치와 능욕을 불러들이게 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28-29절은 다시금 거만한 자에 대하여 언급합니다. 28절은 망령된 증인이 정의 앞에서 거만하게 행동한다는 사실을 지적합니다. 여기서 거만함이란 참된 증거 대신 거짓 증거를 내세우는 잘못입니다. 25절에서 거만한 자는 자신의 삶을 개선하지 못하는 자로 묘사되었는데, 이제 28절에서 거만한 자는 더욱 적극적으로 죄를 행하는 자로 묘사됩니다. 거만한 자는 죄악을 삼키는 악인과 같은 수준의 사람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29절은 거만한 자가 결국 심판을 받게 될 것을 말합니다. 이제 거만한 자는 미련한 자와 동급으로 묘사됩니다. 25-29절은 거만한 자가 자기 삶의 잘못된 부분을 고치지 못하는 자이고, 지혜를 붙잡으라는 부모의 가르침을 버리는 자이며, 그리하여 결국 심판을 당하게 되는 자임을 차례로 가르칩니다. 우리는 결코 이러한 거만한 자가 되어서는 안 되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참 지혜에 거하여 선한 열심을 내고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게으름과 거만함의 치료책은 ‘여호와 경외’입니다. 그것이 사망의 길에서 건져 생명의 길로 갈 수 있게 해줍니다. 창조주요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인정하고 신뢰하며, 결국 인간이 그 무엇을 마음에 경영한들 결국 하나님의 뜻만이 오롯이 설 것이라고 믿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할 때 생명에 이르고 족하게 살며 재앙에 이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이 지혜의 길이며 의의 길이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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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18-02)

 

 


인간관계와 말하는 지혜

잠언 18장 13-24절


사람은 한 번 봐서 알 수 없습니다. 말도 한 번 들어서는 그 진의를 파악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니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한 사람을 볼 때도 한 “이야기”로 보고 한 “역사"로 보는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한 사람의 말뜻을 이해하기 위해 신중히 기다리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그러지 않고 자기 이야기로 상대방의 이야기를 자의적으로 해석하거나 속단하면 관계를 건강하게 형성할 수 없습니다. 자기 지식이나 자신의 사회, 경제적 신분으로 상대방을 함부로 판단하여 오만한 말을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말을 포함하여 건강한 공동체의 관계를 위해서 필요한 것들에 대해 다양한 지혜를 주고 있습니다.

 

18장 후반부는 다양한 주제들을 거론하는데, 그중 공동체 안에서 어떻게 지혜롭게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주제들이 많이 다루어진다는 점이 시선을 끕니다. 경청의 문제, 마음의 문제, 선물의 문제, 재판의 문제, 언어사용의 문제, 가정 및 친구의 문제 등이 공동체의 삶과 연결되어 다뤄지고 있습니다. 이 중 가장 집중적으로 다뤄지는 주제는 17-19절의 재판의 문제입니다.

 

지혜와 미련의 여러 가지 경우들(13-16)

사람은 한 변 봐서 일 수 없습니다. 말도 한 번 들어서는 그 진의를 파악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니 지혜로운 사람은 한 사람을 볼 때도 한 “이야기”로 보고, 한 “역사”로 봅니다. 말뜻을 이해하기 위해 신중하게 기다립니다. 특별히 재판과정에서는 치우침이나 서두름이 없는 이런 신중함이 더욱 절실하게 필요한 지혜입니다.

13사연을 듣기 전에 대답하는 자는 미련하여 욕을 당하느니라 14사람의 심령은 그의 병을 능히 이기려니와 심령이 상하면 그것을 누가 일으키겠느냐 15명철한 자의 마음은 지식을 얻고 지혜로운 자의 귀는 지식을 구하느니라 16사람의 선물은 그의 길을 넓게 하며 또 존귀한 자 앞으로 그를 인도하느니라(13-16)

지혜를 가진 사람은 사연을 듣되 한쪽에 치우치지 않기에 올바르게 판단할 수 있습니다. 인간관계에 많은 영향을 끼치는 것은 사람의 말이며, 지혜를 공유할 때 참된 교제가 가능하게 됩니다.

(1) 경청의 중요성(13)

13절은 어떤 일에 대해 듣기 전에 그 문제에 대해서 대답하는 것이 지혜롭지 못하다는 사실을 말합니다. 다른 이의 말을 들을 때에 먼저 경청해야 함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경청’이란 단순한 ‘듣기’뿐 아니라, 해당 문제에 대한 깊은 숙고와 분석까지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개역개정에서 “대답하는 자”라고 번역된 원문은 ‘문제를 되돌린다.’라는 뜻으로 그 문제에 대하여 모종의 결론이나 해답을 내린다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그 문제에 대하여 충분히 듣고 알아보기 전에 섣불리 판단하지 말라는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지 않을 때는 수치와 욕을 당하게 됩니다.

(2) 마음의 중요성(14)

사람의 마음은 원래 건강한 힘이 있어서 병을 이길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마음이 상하게 되면 병을 이길 수 없게 됩니다. 14절은 마음이 상하게 되는 경우의 심각성을 언급하면서, 마음을 건강하게 지켜나가는 것이 중요함을 서술하고 있습니다.

(3) 지식을 구하는 태도의 중요성(15)

15절은 지식을 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명철한 자와 지혜로운 자는 늘 지식을 찾고 구합니다. 여기서 ‘지식’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잠언 전체의 거시적인 시각에서 해석되어야 합니다. 단순한 지적인 학습 이상의 의미를 지니는 것입니다. 지식이란 사실상 지혜 혹은 명철과 같은 범주에 들어가는 지혜 어휘군(群)에 속하는 단어입니다. 따라서 명철한 자와 지혜로운 자가 지식을 추구한다는 것은, 그냥 공부를 열심히 한다는 정도의 뜻을 뛰어넘어, ‘지혜를 가진 자는 지혜를 더욱 열심히 추구한다.’라는 의미로 이해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를 배운 자는 하나님을 더 경외하기에 힘쓰지만, 이런 지혜를 갖지 못한 자는 지혜의 중요성을 알지 못하여 지혜를 더욱 무시하는 태도를 보입니다.

(4) 선물의 중요성(16)

선물을 주면 기회가 열려서 존귀한 자 앞으로 가게 된다는 의미인데, 선물을 통해서 자기가 원하는 바를 이루라는 뜻으로까지 해석하기는 어렵습니다. 즉 선물이 그런 효과를 낼 수 있는 것이 현실이라는 단순한 서술일 뿐입니다. 선물을 통해서 부당한 이득을 취하려고 생각한다면 그 선물은 뇌물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앞 구절인 15절과 연결해서 생각해보면, 지혜롭고 명철한 자는 선물을 지혜롭게 다루어서 물이 되지 않도록 할 것이 분명합니다.

 

공동체 안에서의 관계의 중요성(17-19)

관계는 생명과 같습니다. 한 가지 공식만 존재하지 않고 상황과 처지와 조건에 따라서 다양한 행동 방식과 관계 맺기 방식이 필요합니다. 한 가지 방법만을 고민하지 않고 공평하지만 동시에 창의적인 길을 모색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배우자와 친구, 가난한 자와 부자 등 다양한 관계 속에서 오직 지혜만이 그 관계에 생명력을 부여합니다.

17송사에서는 먼저 온 사람의 말이 바른 것 같으나 그의 상대자가 와서 밝히느니라 18제비 뽑는 것은 다툼을 그치게 하여 강한 자 사이에 해결하게 하느니라 19노엽게 한 형제와 화목하기가 견고한 성을 취하기보다 어려운즉 이러한 다툼은 산성 문빗장 같으니라(17-19)

17절부터 14절은 공동제안에서의 관계 문제를 다룹니다.

17절은 재판을 할 때 한 사람의 말만 듣고 모든 것을 판단할 수는 없음을 지적합니다. 다른 사람이 와서 다른 의견이나 진술을 제시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18절은 여러 사람의 의견을 모두 듣고 나서도 판결을 내릴 수가 없을 때는 제비뽑는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제비가 다툼을 그치게 하고 강한 자의 얽힌 관계를 풀어준다는 것입니다. 즉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그 문제의 여러 측면을 소상하게 살펴보고 판결을 내려야 하며, 판결이 어려울 때는 제비뽑기를 통해 양쪽이 이해할 수 있는 해법을 제시해야 함을 말합니다.

19절은 재판과 연관하여 다툼의 문제 자체를 다룹니다. 다툼은 해결하기가 너무 어려워서, 차라리 견고한 성읍을 공격하여 점령하는 것이 더 쉽게 생각될 정도입니다. 따라서 처음부터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만약 다툼이 일어난다면, 17-18절에서 서술된 것처럼 공정하게 모든 측면을 잘 살펴야 하고, 양측이 받아들 수 있는 해법을 제시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17-19절을 좀 더 넓게 적용한다면, 재판하는 경우뿐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 어떤 분쟁이나 다툼이 일어났을 때 대한 말씀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은 교회나 가정이나 직장에서 발생한 일들을 어떻게 해결해 나가야 할지 보여주는 기본적인 원리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올바른 언어사용의 중요성(20-21)

지혜자는 말로 관계를 생성하고 이어갑니다. 자신뿐 아니라 상대방에게도 만족을 주는 것은 바로 바른 말입니다. 말의 열매로 나와 타인을 배부르게 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그것은 도움이 되는 데 그치지 않고 죽고 사는 것까지 결정할 정도로 그 영향력이 큽니다. 사회, 경제적 지위를 막론하고 모두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인정하고 주님 대하듯 말을 한다면 생명의 열매로 배부를 것입니다.

20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열매로 말미암아 배부르게 되나니 곧 그의 입술에서 나는 것으로 말미암아 만족하게 되느니라 21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20-21)

이 두 구절은 다시금 언어사용의 중요성에 대해 말합니다.

20절은 우리가 입술의 열매로 인해서 만족하게 된다고 말함으로써, 내가 말하는 것이 곧 나에게 돌아오게 된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말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21절 역시 유사한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죽고 사는 것이 혀에 달려 있어서 혀를 쓰면 혀의 열매를 맺습니다. 무엇인가 말하면 그것이 내게 돌아온다는 것으로, 말할 때 주의해서 지혜롭게 말해야 하며, 그 말의 책임을 스스로 져야 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공동체 생활의 여러 가지 경우들(22-24)

지혜자는 말로 관계를 생성하고 이어갑니다. 나 자신뿐 아니라 상대방에게 만족을 주는 것은 바로 바른 말입니다. 심지어 그것은 도움이 되는 데 그치지 않고 죽고 사는 것까지 결정할 정도로 그 영향력이 큽니다. 사회, 경제적 지위를 막론하고 모두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인정하고 주님 대하듯 말을 한다면 생명의 열매로 배부를 것입니다.

22아내를 얻는 자는 복을 얻고 여호와께 은총을 받는 자니라 23가난한 자는 간절한 말로 구하여도 부자는 엄한 말로 대답하느니라 24많은 친구를 얻는 자는 해를 당하게 되거니와 어떤 친구는 형제보다 친밀하니라(22-24)

18장의 마지막 세 구절은 공동체 생활의 여러 가지 단면을 묘사합니다.

22절은 가정에 대해 언급하는데, 아내를 얻은 자가 하나님으로부터 은총을 얻은 자임을 말합니다. 고대의 여러 역본들은 ‘좋은 아내를 얻은 자’로 번역하는데, 마소라 사본은 그냥 ‘아내를 얻은 자’로 봅니다. 아내라는 존재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허락하셔야 얻을 수 있다는 말로서, 아내를 대할 때 여호와 하나님을 기억해야 한다는 적용점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내를 귀중하게 여기고 그 아내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며, 이런 적용점은 아내가 남편을 생각할 때도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합니다.

23절은 가난한 자와 부한 자의 대화를 보여주는데, 가난한 자가 간절한 말로 구하지만, 부자는 거친 말로 대답한다는 현실을 묘사합니다. 이것은 부자의 태도를 변호하는 의미는 아닐 것입니다.

24절은 해를 당할 때 친구가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음을 말하면서, 친구나 형제보다도 더 가깝게 나를 사랑해주는 이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드러냅니다. 즉, 주변에 사람이 많은 것보다 나를 사랑해줄 수 있는 몇몇 사람을 가지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22절에 나오는 아내가 바로 그런 존재일 것이며, 그렇게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은 23절에 나오는 부자와 같이 거칠게 대답하지 않고 오히려 도움을 주려고 노력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22-24절은 공동체 안에서 하나님께서 내게 허락해주시는 가까운 사람과 깊이 교제하며 사랑의 관계를 만들어나가는 것이 반드시 필요함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경솔하게 말을 해 다른 이에게 상처를 주지 않도록 합시다. 잘못된 말을 하는 것은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입니다. 입술에서 올바른 찬송이 나오도록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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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18-01)

 


미련한 사람의 언행에 대한 지혜

잠언 18장 1-12절


성경은 '부의 위험성을 지적하지만 부 자체를 나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결핍이나 빈곤 등을 해결해야 할 일로 말하며 풍성함을 복이라고 말해줍니다. 심지어 생명력이 고갈되어 온전하지 못한 상태를 죽음에 이미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말할 정도입니다. 따라서 재물에 대한 공정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그 가치를 긍정할 뿐 아니라 돈이 가진 막강한 파괴력도 잘 인지하여 우리 시대에 돈이 갖는 전능성과 거룩성을 과감하게 폭로하고 해체하는 것이 하나님을 아는 자들의 몫입니다.

 

18장 전반부는 미련한 자의 삶을 다루는데, 1-3절에서는 미련한 자의 여러 가지 실수들을 묶어서 서술합니다. 4-8절은 미련한 자의 언어사용에 대하여 언급하며, 9-12절은 망대, 성, 성벽, 교만 등의 어휘들을 사용하여 높음이라는 공통된 주제를 다룹니다. 재물과 같은 인간적인 높음을 추구하지 말고 높은 망대가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신뢰할 것을 권고합니다.

 

미련한 자의 생활(1-3)

지혜는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그것은 사랑이고 자비이고 배려이고 관용입니다. 그것은 겸손이고 섬김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바로 그 지혜의 절정인 이유가 바로 이 모든 것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미련한 자는 이기적입니다. 자기만 생각하고 공동체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더불어 사는 지혜를 멸시하며, 명철한 길을 들어도 거절합니다.

1무리에게서 스스로 갈라지는 자는 자기 소욕을 따르는 자라 온갖 참 지혜를 배척하느니라 2미련한 자는 명철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자기의 의사를 드러내기만 기뻐하느니라 3악한 자가 이를 때에는 멸시도 따라오고 부끄러운 것이 이를 때에는 능욕도 함께 오느니라(1-3)

교만하고 미련한 사람은 생명의 길로 이끄는 지혜의 말씀을 거부하며, 입을 열어 자기 어리석음과 악한 생각을 드러냅니다. 이들의 종착역은 수치요, 멸망이기에 그들의 악에 물들지 않도록 자신을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1) 공동체와의 관계(1)

1절은 자신의 욕심 때문에 공동체를 저버리는 이기심에 대해서 다룹니다. 공동체 전체의 유익을 생각하기보다 개인의 이익을 더 중요시할 때, 공동체에 해를 끼치게 된다는 점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이러한 태도는 미련한 자가 가지고 있는 잘못된 삶의 가치관을 반영하고 있으며, 따라서 참 지혜를 배척하는 태도일 뿐입니다.

(2) 미련한 자의 마음 관리(2)

1절에서 언급된 미련한 자의 이기적인 모습은 2절에서도 계속됩니다. 미련한 자는 자기 마음을 드러내는 데만 관심이 있고 명철에는 관심이 없다는 것입니다. 1-2절의 문맥에서 명철이란 공동체 전체의 이익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미련한 자는 자기 자신의 마음만 돌보려 합니다. 자기 생각, 자신의 관점, 자신의 입장 만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의 유익이 공동체 전체의 유익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습니다.

(3) 멸시와 능욕(3)

개역개정에서는 악한 자가 이를 때는 멸시도 따라온다고 번역했는데, 악한 자라고 번역한 ‘라샤’는 ‘악함’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문맥상 더 적절합니다. 악함이 오면 멸시도 반드시 따라온다는 것으로, 악하게 행동하면 반드시 멸시를 받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하반절도 유사한데, 부끄러운 일을 행하면 결국 능욕을 당하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1-3절의 다양한 언급들을 묶어 함께 생각해보면, 미련한 자는 자기 자신의 이익만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공동체 전체의 유익을 돌보지 않는 자이며, 이런 삶의 태도는 결국 악하고 부끄러운 삶의 방식일 수밖에 없어서 결국은 수치와 능욕을 당하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런 미련한 삶의 방식을 버리고 지혜의 길을 선택해야 합니다. 자신의 이익만을 고려하기보다 공동체의 유익을 생각하고, 자신의 마음만 드러내기보다 다른 이들의 마음도 함께 고려하여, 악하고 부끄러운 삶의 태도가 아니라 선하고 덕스러운 삶의 태도를 지향해야 할 것입니다.

 

언어생활의 지혜(4-8)

말에는 인격성과 창조성이 있습니다. 말은 그 사람이며, 무슨 말을 하는지에 따라 생명을 낳기도 하고 사망을 낳기도 합니다. 지혜자는 하나님의 말씀이 서게 하는 자입니다. 지혜자는 하나님의 창조를 행하는 자입니다. 어리석은 자는 자기 욕망의 나라를 만들려고 타인을 희생시키는 자입니다. 파괴적인 언어로 자신에게 찬동하지 않고 무릎 꿇지 않는 자를 망가뜨리는 자입니다.

4명철한 사람의 입의 말은 깊은 물과 같고 지혜의 샘은 솟구쳐 흐르는 내와 같으니라 5악인을 두둔하는 것과 재판할 때에 의인을 억울하게 하는 것이 선하지 아니하니라 6미련한 자의 입술은 다툼을 일으키고 그의 입은 매를 자청하느니라 7미련한 자의 입은 그의 멸망이 되고 그의 입술은 그의 영혼의 그물이 되느니라 8남의 말하기를 좋아하는 자의 말은 별식과 같아서 뱃속 깊은 데로 내려가느니라(4-8)

4절부터 8절까지는 언어생활이라는 한 가지 주제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17장의 마지막 구절인 27-28절에서는 지혜로운 언어생활을 다루었는데, 이제 18:4-8은 미련한 자의 언어생활이 어떠한지를 집중적으로 서술합니다.

먼저 4절은 지혜자의 언어생활을 언급하면서 바른 기준을 제시합니다. 개역개정은 상반절을 “명철한 사람의 입의 말”이라고 번역했는데, 원어를 직역하면 ‘사람의 입의 말’이라고 해야 옳습니다.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깊은 물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말을 해야 합니까? 4b절은 그 말들이 지혜의 샘에서 나와야 한다고 명시합니다. 그러나 미련한 자는 지혜의 샘에서 말을 길어내지 못하고 오히려 잘못된 말을 일삼습니다. 그 예들이 5-8절에 연속하여 등장합니다. 5절에서는 악인을 두둔하거나 재판에서 의인을 억울하게 하는 것을 언급합니다. 악과 선을 구별하지 못하고 오히려 악인의 편을 드는 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권고입니다. 6절은 미련한 자의 입술이 다툼을 일으킬 뿐 아니라 스스로 해가 되고 만다는 점을 상기시킵니다. 7절은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미련한 자의 입은 스스로 멸망이 되고 자기 영혼에 덫이 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5-7절은 미련한 자의 언어사용이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칠 뿐 아니라 결국에는 자신을 망하게 한다는 점을 점층적으로 표현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미련한 자는 언어생활을 통해서 자신의 이익을 꾀하려고 하는데, 이는 결국 스스로 해를 끼치는 결과를 낳고 맙니다. 이것은 1-3절에서 미련한 자가 이기심을 따라 살지만 결국은 멸시와 능욕을 당하게 된다고 가르친 내용과 일맥상통합니다.

8절은 이러한 미련한 자의 입술에 대하여 한 가지 가르침을 추가합니다. 다른 사람을 헐뜯는 말은 맛있는 음식 같아서 배의 깊은 곳으로 들어간다는 것인데, 다른 이에 대한 험담에 귀가 솔깃하여 그 험담에 동참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옮기는 실수를 범하기가 매우 쉽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문맥상 8절의 역할은 5-7절에 나온 미련한 자의 언어생활에 빠지기가 얼마나 쉬운지를 알려주는 것입니다. 미련하게 말하는 것이 나쁜 결과를 가져올 줄 알면서도, 그 미련한 말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할 수 있음을 현실적으로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8절은 우리가 미련한 자의 언어생활 방식을 받아들이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함을 알려줍니다.

 

올바른 높음과 잘못된 높음(9-12)

지혜로운 사람은 여호와의 지혜와 능력을 의지하기에 그분에게 피하며 그분을 견고한 망대로 여깁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지혜자를 높은 곳에 두시니 늘 안전합니다. 반대로 미련한 자는 하나님보다는 자신을 스스로 높입니다. 그런 교만은 멸망으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9자기의 일을 게을리하는 자는 패가하는 자의 형제니라 10여호와의 이름은 견고한 망대라 의인은 그리로 달려가서 안전함을 얻느니라 11부자의 재물은 그의 견고한 성이라 그가 높은 성벽 같이 여기느니라 12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니라(9-12)

의인은 하나님을 의지하지만, 악인은 재물을 의지합니다. 악인들은 재물이 안전과 생명을 준다고 믿기에 불법과 속임수, 폭력을 통해서도 재물을 모으고 지키려 하지만, 그는 그 재물로 인해 멸망하게 될 것입니다.

(1) 게으름(9)

19절은 게으름의 주제에 대해서 다룹니다. 자기의 일을 게을리하는 사람은 사실상 멸망하는 자의 형제라는 것인데, 이는 게으름이 멸망과 매우 가깝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게으르게 살면 멸망하게 되기 쉽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이 9절 자체의 의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런 9절의 의미를 지금까지 살펴본 미련한 자의 주제와 연결한다면, 특별히 미련한 자의 언어생활을 다룬 4-8절과 연결시킨다면 어떤 적용이 가능합니까? 자기의 일을 게을리하는 일 중 하나가 지혜로운 말 대신 미련한 말을 일삼는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올바른 말에 힘쓰지 않고 자신의 삶을 게으름에 버려두면, 미련한 말을 하게 되고, 그것은 곧 멸망으로 자신을 이끌게 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2) 올바른 높음과 잘못된 높음(10-12)

10-12절은 ‘높음’이라는 주제를 다룹니다. 10절에 나타난 ‘망대’는 ‘높은 곳’이라는 말이며, 안전함을 ‘얻는다’라는 말은 높아진다는 뜻입니다. 11절에는 ‘높은 성벽’이 나오며, 12절에는 ‘높아진 마음’이 나타납니다. 이런 연결고리는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것입니까? 먼저 10절을 보면, 10절은 여호와의 이름이 견고한 망대가 된다는 사실을 말합니다. 여호와의 이름으로 달려가는 사람이 바로 의인이며, 여호와의 이름으로 피하면 안전하게 된다는 점을 알려줍니다. 여기서 ‘안전하게 된다’라는 말은 ‘높아진다’라는 말입니다. 물론 안전하게 된다는 함의를 지니고 있지만, 기본적인 의미는 그 이름에 피하는 자가 높은 망대에 거하게 되어 그도 높아지게 된다는 데 있습니다. 여호와께 피하면, 여호와께서 주시는 존귀함과 안전을 동시에 누리게 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11절은 10절과 반대되는 내용을 보여줍니다. 부자는 여호와의 이름 대신 자신의 재물을 견고한 성으로 여기고 높은 성벽처럼 여깁니다. 그는 여호와께 피하는 의인이 아니므로, 곧 악인입니다. 10절과 11절은 선명한 대조를 우리에게 보여주면서, 재물을 의지하는 악인이 되지 말고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는 지혜로운 자가 될 것을 요청합니다. 12절은 10절과 11절의 내용을 모두 다 포함하고 있습니다. 교만하면 멸망하게 되고 겸손하면 존귀하게 된다고 말하는데, 여기서 ‘교만’이란 원어를 보면 마음이 높은 것입니다. 12절을 문맥으로 해석해보면,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는 자는 겸손한 자여서 존귀하게 되나,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지 않는 자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물과 같은 것을 의지하기에 결국 멸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여 겸손하게 되는 참 지혜가 필요함을 알 수 있습니다.


말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자신의 의지를 말로 표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경솔하게 말해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잘못된 말을 하는 것은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입니다. 입술에서 올바른 칭찬과 찬송이 나오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말을 통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수 있도록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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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17-02)

 


 의인을 의롭게 하라

잠언 17장 15-28절


지혜는 심오하면서도 누구나 붙잡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스스로) 지혜롭고 슬기롭다고 하는 이들에게는 감추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셨습니다. 지혜의 근원은 하나님이시기에 하나님과의 관계가 지혜를 얻는 데 결정적으로 영향을 줍니다. 결국, 의와 지혜는 하나님의 관점으로 그분이 좋아하시는 일을 하는 것이며, 불의와 미련함은 그 반대입니다. 오늘은 인간관계, 말, 그리고 재판의 맥락에서 지혜와 미련함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잠언 17:15-28은 1-14절에 이어서 미련한 자라는 중심 주제를 이어가면서 여러 가지 다양한 주제들을 펼칩니다. 미련한 자의 삶에서 벗어나 지혜로운 자가 되어 공동체와 자기 자신에게 유익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하며, 그렇게 하려고 지혜로운 언어사용을 할 필요가 있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지혜와 인간관계(15-18)

지혜롭지 못한 것은 미숙함과 어리숙함을 의미합니다. 그는 때에 맞게 행동하지 못하고 행동의 강조를 조절하지 못합니다. 사랑해야 할 때와 사랑을 거둘 때, 도와주어야 할 때와 참아야 할 때를 분별하지 못하여, 결국 자기 자신을 어려움에 몰아넣고야 맙니다. 선한 의도가 어리석은 행실을 정당화하지 못합니다.

15악인을 의롭다 하고 의인을 악하다 하는 이 두 사람은 다 여호와께 미움을 받느니라 16미련한 자는 무지하거늘 손에 값을 가지고 지혜를 사려 함은 어찜인고 17친구는 사랑이 끊어지지 아니하고 형제는 위급한 때를 위하여 났느니라 18지혜 없는 자는 남의 손을 잡고 그의 이웃 앞에서 보증이 되느니라(15-18)

하나님 앞에서는 옳고 그름이 분명합니다. 이 둘을 혼동하거나 반대로 말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일입니다. 의인을 괴롭히거나 악을 대우하는 것도 그러합니다. 비록 완벽할 순 없더라도, 세상의 여러 일에 대해서 내 이익을 떠나, 옳고 그름을 바로 판단하고 바로 대할 수 있어야 합니다.

(1) 악인과 의인(15)

잠언 17장 후반부는 미련한 자라는 17장 전반부의 주제를 계속해서 이어 나갑니다. 미련한 자는 악인을 의롭다고 판단하고 의인을 악하다고 판단합니다. 이는 의도적인 악함이라기보다는 판단력이 부족한 경우를 말한다고 생각됩니다. 어떤 행동이 의로운 것인지, 어떤 행동이 악한 것인지에 대해서 올바로 판단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물론 17절의 의미를 악을 의롭게 평가하고 의로운 일을 악하게 평가하는 의도적인 거짓말로 볼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두 가지 해석 중 어떤 것을 취하든, 이러한 잘못된 평가 뒤에는 미련함이 도사리고 있다는 점은 명확합니다. 미련한 자는 선과 악을 구별하지 못합니다.

(2) 지혜의 가치(16)

“미련한 자는 무지하거늘 손에 값을 가지고 지혜를 사려함은 어찜인고”에서 ‘무지한 자’란 마음을 갖지 못한 자라는 뜻으로 판단력이 부족한 사람입니다. 판단력이 흐린 미련한 자는 지혜의 가치를 가늠하지 못해서 어떤 값을 주고 지혜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혜는 인간의 어떤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대상이 아닙니다. 오직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며, 이런 사실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바로 미련한 사람입니다.

(3) 지혜와 인간관계(17-18)

이 두 구절은 지혜로운 자와 미련한 자(지혜 없는 자)를 대비합니다. 지혜로운 자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공동체의 구성원들에게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베풉니다. 이웃을 향해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는 것이 지혜요 분별력인 것입니다. 그러나 미련한 자는 이러한 분별력을 갖고 있지 못하여 실수를 범합니다. 그 전형적인 예가 18절에 나오는 보증의 예입니다. 그는 ‘마음이 부족한 자’ 즉 판단력이 부족한 자입니다. 그는 다른 사람을 위해 보증을 서며 자신의 물건을 보증품으로 맡깁니다. 그것이 다른 이에게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하지만, 그러한 일은 그 사람에게 도움이 되지도 않고 자기 자신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이웃을 돕는 일은 반드시 필요하나, 적절한 분별력을 사용하여 참된 도움이 될 수 있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미련함의 결과(19-22)

참 지혜자는 바른말을 하면서 동시에 때에 맞는 말을 합니다. 바른말도 적절한 때를 맞추지 않으면 효과를 낼 수 없습니다. 때로 해야 할 말을 감추고 참는 것이 더 지혜로울 때가 있습니다. 가령 들을 귀 없는 자를 향하여 말을 삼가는 것이 적절하지 않은 충고로 관계를 어긋나게 하는 것보다 지혜롭습니다.

19다툼을 좋아하는 자는 죄과를 좋아하는 자요 자기 문을 높이는 자는 파괴를 구하는 자니라 20마음이 굽은 자는 복을 얻지 못하고 혀가 패역한 자는 재앙에 빠지느니라 21미련한 자를 낳는 자는 근심을 당하나니 미련한 자의 아비는 낙이 없느니라 22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19-22)

악인이 악을 드러내는 첫째 방법은 바로 혀입니다. 그들은 악한 생각을 말로 쏟아냅니다. 우리에게도 그런 본성이 있고, 타락한 생각을 말로 나타낼 수 있기에 성경은 말을 아끼는 것이 지식이요, 명철이라 가르칩니다.

(1) 미련함의 결과 1(19-20)

이렇듯 참된 분별력을 갖지 못하게 되면 여러 가지 잘못된 실수를 범하게 됩니다. 그 첫 번째 경우가 다른 사람과 다투거나 다른 사람 앞에서 자신을 높이려 하는 것입니다. 다툼으로써 자신에게 유익을 가져올 수 있다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 앞에서 자신을 높임으로 유익을 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이 바로 미련함이며, 그 결과 죄를 범하게 되고 스스로 멸망할 뿐입니다.

둘째, 이러한 자는 그 마음 즉 판단력이 굽었고 그래서 또한 혀도 굽었기에 어떤 말을 해야 할지를 알지 못하게 됩니다. 여기서 한 가지 분명히 기억해야 할 사실은 마음 곧 판단력이 굽게 되면 그 결과로 혀도 굽게 된다는 점입니다. 내면에 미련한 모습이 깃들게 되면, 그 미련함은 겉으로 나타나게 되는데, 특별히 혀를 잘못 사용하는 실수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언어사용의 문제는 27-28절의 언어생활에 대한 언급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게 됩니다.

(2) 미련함의 결과 2(21-22)

21절 “미련한 자를 낳는 자는 근심을 당하나니 미련한 자의 아비는 낙이 없느니라”에 의하면, 미련한 자는 자신의 부모에게 근심을 끼치게 됩니다.

21절은 25절과 사실상 같은 내용을 보여줍니다. 부모에게 근심을 끼친다는 것은 미련한 자가 속한 가장 기본적인 공동체인 가정에서 행복과 평안의 결과를 낳지 못하는 매우 심각한 영향을 미치게 됨을 의미합니다.

22절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라는 미련한 자 자신의 내면에 미치는 결과로서 마음이 상하게 되어 육신의 건강까지 해치게 됨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에 반하여, 마음이 즐거운 사람은 큰 유익을 얻게 됩니다. 미련한 사람이 되느냐 아니면 지혜로운 사람이 되느냐에 따라서 육신과 삶의 행복과 안녕이 좌우된다는 사실을 엿볼 수 있습니다.

 

미련함이 공동체에 미치는 결과(23-26)

지혜가 그 빛을 발휘하려면 용기가 필요합니다. 의로운 자를 외롭다고 하고 불의한 자를 불의하다고 말하기는 너무 쉽고 상식적인 것 같지만 사실은 때로 큰 용기가 필요한 일입니다. 의인을 벌하는 것과 귀인을 정직하다고 때리는 일이 세상에 비일비재합니다. 하지만 지혜자는 하나님께서 공의와 정의를 거스르는 일을 묵과하지 않으실 것을 믿는 자들입니다.

23악인은 사람의 품에서 뇌물을 받고 재판을 굽게 하느니라 24지혜는 명철한 자 앞에 있거늘 미련한 자는 눈을 땅 끝에 두느니라 25미련한 아들은 그 아비의 근심이 되고 그 어미의 고통이 되느니라 26의인을 벌하는 것과 귀인을 정직하다고 때리는 것은 선하지 못하니라(23-26)

미련한 사람은 자기 자신과 가족뿐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도 해악을 끼치게 됩니다. 그는 뇌물을 받고 재판을 굽게 합니다. 여기서 재판이란 ‘미쉬파트’라는 단어로, ‘공의’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즉 미련한 자는 공동체 안에서 지켜져야 하는 공의까지 어그러지게 만듭니다. 그 이유를 24절에서 찾을 수 있는데, 미련한 자는 눈을 땅끝에 두기 때문입니다. 미련한 자가 생각하는 바가 현실과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지를 묘사하는 문구입니다. 미련한 자는 공동체 안에서 이루어져야 할 공의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것입니다. 여기서 미련한 자가 부모에게 근심거리가 된다는 언급이 21절에 이어 다시 한번 언급됩니다. 미련한 자는 의인을 벌하고 정직한 귀인을 때리는데, 이것 역시 공동체 안에서 잘못된 영향을 미치게 되는 현상에 대한 언급입니다. 미련한 자는 결국 공동체에 유익을 끼치기는커녕 여러 해악을 끼치게 됨을 알 수 있습니다.

 

지혜와 말의 관계(27-28)

참 지혜는 바른말을 하는 것뿐 아니라, 때에 맞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침묵’은 단순히 ‘말 없음’이 아니며 그것도 하나의 언어입니다. 말과 말 사이의 멈춤도 언어입니다. 말하지 않음이 거부를 가리킬 수도 있고 비겁한 승인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불의에 대한 단호한 거부의 의미이기도 합니다.

27말을 아끼는 자는 지식이 있고 성품이 냉철한 자는 명철하니라 28미련한 자라도 잠잠하면 지혜로운 자로 여겨지고 그의 입술을 닫으면 슬기로운 자로 여겨지느니라(27-28)

17장의 마지막 부분인 27-28절은 미련한 자의 주제와 언어생활을 서로 연결합니다. 27절에 “말을 아끼는 자는 지식이 있고 성품이 냉철한 자는 명철하니라”라는 먼저 지혜로운 언어사용의 경우를 언급합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말을 삼가서 말을 많이 하지 않으려고 하고, 말이 적기 때문에 안정감 있는 성품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28절 “미련한 자라도 잠잠하면 지혜로운 자로 여겨지고 그의 입술을 닫으면 슬기로운 자로 여겨지느니라”라는 이런 언어생활의 주제에 있어서 반어법적인 언급을 제시합니다. 심지어 미련한 자라도 말을 적게 하면 지혜롭고 슬기로운 사람처럼 생각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말을 많이 하는 것이 심지어 미련한 것보다도 더 나쁜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는 점을 암시합니다. 지혜로운 사람이 되고 싶다면 말수를 줄이고 신중하게 언어생활을 해야 합니다. 말을 많이 하는 것은 반드시 좋지 않은 결과를 낳게 됩니다.


거짓으로 다툼을 일으키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람들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을 멸시하기 때문입니다. 새삼스럽게도 참 지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고 신뢰하는 데서 나온다는 진리를 확인하게 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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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15-02)


순종하는 자가 얻는 지혜

잠언 15장 19-33절


노르웨이는 6년 연속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로 선정된 바 있습니다. ‘2014 세계 번영 지수’에 따르면, 노르웨이는 8개 분야 중 특히 사회구성원 간의 협조나 네트워크, 자선 분야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반대로 우리나라는 이 분야에서 69위에 그치고 말았습니다. 잠언은 다양한 주체들을 통해 사회구성원 간에 구조적인 문제를 안고 있는 우리 사회에 필요한 지혜를 담고 있습니다.

 

사람의 지혜로움과 우매함의 구분이 ‘말’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부모의 가르침이나 조언자들의 조언에 귀를 기울이고 다른 사람에게 시기적절한 말로 도움을 주는 자가 지혜로운 자의 길을 가게 됩니다. 그러나 교만하여 부모를 경시하고 자신만 믿고 모든 것으로부터 귀를 닫아 버리는 자는 죽음의 길을 걷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우매자의 길과 지혜자의 길(19-24)

지혜자와 우매자를 여러 방면에서 대조합니다. 지혜자가 곧고 평탄한 길을 가는 자라면 미련한 자는 스스로 자기 삶에 장애물을 놓는 사람입니다. 지혜자는 타인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지만 미련한 자는 독선적이고 독단적이어서 경영이 무너집니다. 지혜자는 때에 맞는 말을 하며 생명으로 이어지는 길을 걷습니다. 이는 악인의 종착지가 사망인 것과 대조됩니다.

19게으른 자의 길은 가시 울타리 같으나 정직한 자의 길은 대로니라 20지혜로운 아들은 아비를 즐겁게 하여도 미련한 자는 어미를 업신여기느니라 21무지한 자는 미련한 것을 즐겨 하여도 명철한 자는 그 길을 바르게 하느니라 22의논이 없으면 경영이 무너지고 지략이 많으면 경영이 성립하느니라 23사람은 그 입의 대답으로 말미암아 기쁨을 얻나니 때에 맞는 말이 얼마나 아름다운고 24지혜로운 자는 위로 향한 생명 길로 말미암음으로 그 아래에 있는 스올을 떠나게 되느니라(19-24)

19-24절 단락은 처음과 마지막에 각각 ‘게으른 자의 길’과 ‘정직한 자의 길’ 그리고 ‘지혜로운 자의 생명길’이 나타나 수미일치(처음과 끝에 같거나 유사한 말을 써서 단락을 나타내고 강조하는 형식)를 이루며 한 단락을 이루고 있습니다.

19절의 금언은 게으른 자의 길을 가시밭으로, 정직한 자의 길을 ‘대로’(15:19)로 묘사합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게으른 자의 대조로 부지런한 자가 아니라 ‘정직한 자’를 들었다는 점입니다. 이는 게으름이 단순히 꾸물거리고 일을 미루는 것만이 아니라 부정직한 말이나 행동을 유발할 수도 있음을 암시적으로 보여줍니다. 이런 게으른 자가 가는 길은 가시 울타리와 같습니다. 이 ‘가시 울타리’는 게으른 자가 걷는 길에서 만나는 문제들, 곧 장애물을 말합니다. 반대로, ‘정직한 자’가 가는 길은 높이 쌓아 올린 길이며 장애물을 찾아볼 수 없는 곧고 평탄한 길입니다.

20-21절은 ‘즐거움’이라는 주제로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20절에서 지혜자는 10:1과 같이 부모를 기쁘시게 하는 태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지혜로운 아들은 출애굽기 20:12의 계명을 지키며 부모를 공경할 뿐만 아니라 부모가 전하는 훈계를 들으며 그 훈계로부터 지혜를 얻습니다(4:1; 13:1). 반면, 미련한 자는 부모의 가르침과 경책을 싫어할 뿐만 아니라(13:1; 15:5), 더 나아가 부모를 멸시하고 경멸합니다(19:26). 나를 낳고 기르신 부모를 공경하고 기쁘시게 하는 것이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일이며,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의 뜻을 따르는 지혜자의 참 모습입니다.

21절은 미련한 자의 헛된 즐거움을 20절의 지혜자의 참된 즐거움과 대조하여 교훈하는 금언입니다. 21절의 ‘미련한 것’은 문자적으로 ‘마음이 미련한 것’을 말합니다. 무지한 자가 스스로의 마음의 어리석음과 미련함을 따라 행악하기를 즐거워하며 악인의 길을 걷는다는 의미입니다(10:23; 15:9).

22-23절은 조언에 대한 금언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22절에서 미련한 자는 자기 계획이나 생각을 다른 이들과 의논하지 않는 자로 소개됩니다. 그는 스스로를 지혜롭게 여겨 자신의 미련함을 따라 혼자 결정하기 때문에 결국 뜻을 이루지 못합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자는 11:14과 같이 친밀하게 조언하는 자들을 곁에 많이 두고 신중하게 판단하여 행하기 때문에 자기가 뜻한 바를 이룹니다. 이처럼 일을 계획하고 진행함에 있어서 나를 맹신하는 교만에 빠지지 말고, 주위의 조언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뜻하는 바를 이루는 지혜입니다(13:10). 23절에서는 특히 적절한 때에 건네는 올바른 조언의 중요성을 말합니다.

24절에는 19절에 나타난 ‘길’의 주제가 다시 반복되어 나타나 서로 연결됩니다. 여기서도 선택할 수 있는 두 길을 제시합니다. ‘위로 향하는 길’과 ‘아래로 향하는 길’은 각각 ‘생명의 길’과 ‘스올(죽음)로 가는 길’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이 가는 길은 19절에 언급되었듯이 높이 쌓여 걸릴 것이 없는 곧게 뻗어 있는 길로서 생명을 주는 길입니다. 그러나 악인의 길이 지향하는 곳과 종착하는 곳은 죽음입니다.

 

여호와의 미워하시는 것과 기뻐하시는 것(25-29)

여호와는 자신을 경외하는 지혜자를 기뻐하시고 자신을 멸시하는 미련한 자를 미워하십니다. 교만한 자와 악인의 잔꾀를 미워하셔서 그들의 집을 허십니다. 그들이 뇌물로 얻은 불의한 이익이 도리어 그들의 집을 해롭게 하게 하십니다. 악인은 멀리하시지만, 의인의 기도는 들으십니다. 의인이 숙고하여 내놓은 선하고 정결한 말을 기뻐하십니다.

25여호와는 교만한 자의 집을 허시며 과부의 지계를 정하시느니라 26악한 꾀는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 선한 말은 정결하니라 27이익을 탐하는 자는 자기 집을 해롭게 하나 뇌물을 싫어하는 자는 살게 되느니라 28의인의 마음은 대답할 말을 깊이 생각하여도 악인의 입은 악을 쏟느니라 29여호와는 악인을 멀리 하시고 의인의 기도를 들으시느니라(25-29)

15장의 마지막 단락인 25-33절에는 ‘여호와’란 명칭이 다른 곳보다 자주 나타나면서(25, 26, 29, 33), 10-15장의 주제들을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즉, 지혜로운 아들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여호와의 훈계를 따르는 자라고 요약됩니다. 특히 25-29절은 말에 대한 주제가 두드러져, ‘의인의 선한 말’(26), ‘대답할 말’(28), ‘기도’(29)와 함께 악인의 입으로 쏟는 ‘악한 말’(28)이 나타납니다.

25절의 금언은 여호와가 교만한 자를 미워하고 그 집을 허무신다고 설명합니다. 여기서 ‘집’은 장소적 개념만이 아니라 가족 집안의 의미를 포함하고 모든 재물도 포함합니다. 그러므로 이 말은 교만한 자가 스스로를 지혜롭게 여기며 자신의 것을 쌓지만 여호와는 그의 모든 것을 무너뜨리심으로 그를 심판하심을 명백히 설명합니다. 반면, 가난한 과부는 의지할 곳이 없기에 겸손히 여호와만 의지하고 그의 도움을 받는 자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자는 하나님이 직접 그들의 삶에 관여하시고 그들을 돌보십니다.

26절에서 하나님은 눈에 보이는 악인의 집을 무너뜨리실 뿐만 아니라(25) 눈에 보이지 않는 악한 행위의 시발점이 되는 악한 생각과 계획도 몹시 싫어하심을 나타냅니다. 그러나 ‘꿀송이 같이 달아서 마음에 달고 뼈에 양약이 되는’(16:24) 의인의 선한 말은 여호와께서 귀히 여기십니다.

27절은 경제생활에 관한 금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합당하지 않은 이익에 마음을 빼앗겨 다른 이들을 해하며 이익을 챙기는 자를 싫어하십니다. 그와 같은 불의한 재물은 결국 그 사람의 집안을 해하는 것이 됩니다. 그러나 불의의 재물을 싫어하는 지혜로운 자는 생명을 소유하게 됩니다. 결국, 의인의 집은 든든히 세워지며, 여호와가 그 집을 풍성케 하십니다(12:7; 14:1; 14:11; 15:6).

28-29절에는 잠언의 주요 단어인 ‘의인’과 ‘악인’이 교차 대구를 이루며 언어생활에 관한 금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28절은 2절과 유사한 내용으로서 의인은 사려 깊은 말을 하지만, 악인은 거침없이 악을 내뱉어 사람들에게 해를 끼친다고 설명합니다. 29절에서는 각각 의인과 하나님, 악인과 하나님의 관계를 묘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악을 행하는 자와는 관계를 단절하시나 의인과는 가까이하시고 그의 기도에 귀 기울이십니다.

 

훈계를 따르는 자와 싫어하는 자(30-33)

지혜를 추구하는 삶은 삶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미치며, 동시에 우리 전 인격에 영향을 미칩니다. 지혜를 추구하면 마음에 선한 질서가 작동하여 몸과 마음이 건강해집니다. 마음의 즐거움으로 얼굴이 빛나고, 뼈가 든든해집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마음과 겸손한 마음은 우리를 존귀한 자로 사람과 하나님 앞에 서게 합니다. 이는 모든 관계에 있어서도 건강해진다는 의미 아니겠습니까?

30눈이 밝은 것은 마음을 기쁘게 하고 좋은 기별은 뼈를 윤택하게 하느니라 31생명의 경계를 듣는 귀는 지혜로운 자 가운데에 있느니라 32훈계 받기를 싫어하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경히 여김이라 견책을 달게 받는 자는 지식을 얻느니라 33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지혜의 훈계라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니라(30-33)

30-33절에는 ‘경계’, ‘훈계’, ‘견책’이라는 단어가 공통적으로 나와 서로 연결되며, 훈계를 따르는 자와 훈계를 싫어하는 자를 대조합니다.

30절의 금언은 지혜가 훈계를 따르는 자의 눈을 밝게 하고 마음을 즐겁게 할 뿐만 아니라 육체에도 활력을 주고 강건하게 만든다고 말합니다. 31절에서는 지혜자를 ‘생명을 주는 교훈을 듣는 귀를 가진 자’로 설명하는데 이는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지혜 말씀을 듣는다는 것이 귀로만 듣고 끝나는 행위가 아니라 삶으로 응답하는 순종이 있어야 함을 확실히 설명해줍니다.

이와 반대로, 훈계를 받기 싫어하는 자는 32절에서 자신의 생명을 가볍게 여기는 자라고 소개합니다. 그는 생명을 버리고 죽음의 길을 선택한 미련한 자입니다.

33절의 금언은 여호와 경외가 지혜의 훈계라고 선언합니다. 잠언의 서문(1:2)에서부터 나온 단어인 ‘훈계’는 무엇보다 지혜와 밀접한 관계가 있고, 지혜의 대치어로 나오며, 지혜를 얻을 수 있는 지름길로 소개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훈계 듣는 일을 기뻐하지 않지만, 잠언에서는 계속적으로 그 훈계를 소홀히 여기지 말고 거절하지 말라고 명령합니다. 그 이유는 첫째, 훈계를 들으면 지혜로운 분별력과 통찰력을 얻고 그에 따른 유익을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훈계는 여호와 경외를 그 밑바탕에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33절에서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바로 지혜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훈계의 내용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하나님과의 개인적이고 친밀한 관계를 통해 하나님을 아는 것(9:10)이며 나 자신의 판단을 신뢰하지 않고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것(3:5-7)을 의미합니다.


자기 입장과 맥란만 중요시하는 사회는 건강하지 않습니다. 고르반이나 모르쇠로 반응하지 말고 굳게 드리운 휘장을 찢고 때로는 부드럽게 때로는 적극적으로 다가갈 필요가 있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단절을 예방하는 방법은 많습니다. 각박한 일상에서 무엇을 통해 활력을 돋우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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