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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23-01)

  


진수성찬이나 재물을 경계하라

잠언 23장 1-14절


누군가와 함께하는 식사는 단순히 음식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나누고 삶을 나누는 행위입니다. 그런 식탁의 자리가 ‘회식’ 혹은 ‘접대’라는 이름 아래 탐심과 탐식으로 변질하곤 합니다. “밥 한번 먹자”라는 말이 그저 공허한 인사말이 되거나 무슨 의도입니까? 고민하게 하는 말이 되었습니다. 언제쯤 우리는 밥과 말에 정직할 수 있습니까?

 

본 단락의 중심 주제는 탐욕에 대한 경고와 자녀 교육입니다. 1-5절은 탐욕에 대한 첫 번째 경고로서, 맛있는 음식을 탐하는 것을 상징적 이미지로 사용해서 과한 욕심을 부리지 말 것을 권고합니다. 6-11절은 탐욕에 대한 두 번째 경고로, 이웃의 지계석을 옮기지 말라고 권고합니다. 12-14절은 자녀에 대한 훈계가 꼭 필요함을 가르칩니다.

 

탐욕에 대한 경고 1(1-5)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과 음식을 먹게 될 경우, 차려진 음식에 정신이 팔려서는 안 된다고 권면합니다. 그가 나를 시험하는 자리일지 모릅니다. 그가 차려준 산해진미를 먹는 것이 내게 독이 될지도 모릅니다. 특히 인색한 자와 함께하는 식탁이라면 더욱 조심해야 합니다.

1네가 관원과 함께 앉아 음식을 먹게 되거든 삼가 네 앞에 있는 자가 누구인지를 생각하며 2네가 만일 음식을 탐하는 자이거든 네 목에 칼을 둘 것이니라 3그의 맛있는 음식을 탐하지 말라 그것은 속이는 음식이니라 4부자 되기에 애쓰지 말고 네 사사로운 지혜를 버릴지어다 5네가 어찌 허무한 것에 주목하겠느냐 정녕히 재물은 스스로 날개를 내어 하늘을 나는 독수리처럼 날아가리라(1-5)

‘속이는 음식’을 조심해야 합니다. 아랫사람을 위하는 마음으로 대접하는 경우도 있지만, 많은 경우 통치자들은 자기 뜻을 관철하기 위해 사람들을 대접하고 자기편으로 만듭니다. 그리고 식탐을 경고합니다.

(1) 음식에 대한 욕심을 절제하라(1-3)

23장의 첫 단락은 맛있는 음식을 상징적 이미지로 사용해서 탐욕을 부리지 말 것을 권합니다.

1절은 솔로몬은 한 가지 특수한 상황을 상정합니다. 관원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경우입니다. 여기서 ‘관원’이란 ‘다스리는 자’로 정치적, 행정적 권세를 행사하는 사람입니다. 즉 자신보다 더 큰 권세를 지닌 사람과 식사 자리에 동석한 경우, 우리는 맛있는 음식에 관심을 기울이면 안 되고, 그 사람에게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2절은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만일 음식을 탐하는 사람이라면, 정말 조심해야 한다고 경고합니다. 이것은 하나의 비유로서, ‘내가 연약하고 민감하고 넘어지기 쉬운 영역’이 있다면, 그에 관해서는 더욱 과한 욕심을 부리지 않기 위해 주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본문은 목에 칼을 두라고까지 말합니다. 욕심을 내는 것을 반드시 절제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목’은 탐욕을 가리킵니다. 본문에서 사용하는 탐하는 것의 원어가 ‘네페쉬’인데, 이 단어는 동시에 목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따라서 본 절의 의미는 ‘탐욕을 부리고 싶어 하는 마음 그것에 칼을 겨눠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3절은 연이어서 음식을 탐하면 안 되는 이유를 설명합니다. 그 탐욕은 바로 ‘속이는 음식’이기 때문입니다. 3절은 2절에서 제시한 권고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어떻게 될 것인지를 보여줍니다. 목에 칼을 겨누지 않고 탐욕에 져서 그 음식을 먹게 되면, 먹을 때는 맛있게 느껴지겠지만 나중에는 그 음식이 나를 속이게 될 것입니다. 그 음식은 맛있는 음식이 아니라, 나를 어려움으로 몰아넣는 쓰디쓴 음식임이 결국 밝혀지기 때문입니다.

(2) 재물에 대한 욕심을 버리라(4-5)

4절은 부자가 되려는 욕심을 멀리하라고 권고합니다. 이 역시 탐욕에 대한 경고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재물을 과하게 모으려 한다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도 있음을 알려줍니다. 4b절은 우리에게 지혜를 사용해서 욕심을 버려야 한다고 말합니다. 개역개정의 ‘네 사사로운 지혜를 버릴지어다’보다는 ‘네 지혜를 사용하여 욕심을 멈추라고 해석하는 것이 더 적절합니다.

5절은 재물에 탐욕을 부리면 안 되는 이유를 설명합니다. 우리가 재물에 눈길을 주는 순간, 그 재물은 없어집니다. 재물에 독수리와 같은 날개가 생겨서 하늘로 날아가고 만다는 것입니다. 이것 역시 하나의 비유입니다. 우리가 욕심을 내는 순간, 그 재물을 갖지 못하게 된다는 것을 비유를 통해 전달하는 것입니다. 재물은 그 자체로서 절대적인 가치를 지니지 못합니다. 바른 관점과 태도로 재물을 대해야 그 재물을 소유할 수 있고 사용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적 관점으로 재물을 관리하지 않는다면, 재물은 어느 순간 없어지고 맙니다. 좀 더 깊이 해석해보면, 설사 우리가 재물을 계속 갖고 있게 된다손 치더라도, 과욕에 치우쳐서 그 재물을 올바로 사용하지 못하게 될 것이기에, 올바른 의미의 재물은 가지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두 손에 가득한 불의의 재물은, 올바른 의미의 재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탐욕에 대한 경고 2(6-11)

하나님께서는 고아들의 구속자이십니다.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기업은 지계석으로 표시되었는데, 권력자들은 그것을 옮겨 약자들의 권리를 발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힘없는 자들의 재산을 약탈하려는 자들을 대적하시고, 약자들의 구속자가 되어 그들의 권리를 보호해주십니다.

6악한 눈이 있는 자의 음식을 먹지 말며 그의 맛있는 음식을 탐하지 말지어다 7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 그가 네게 먹고 마시라 할지라도 그의 마음은 너와 함께 하지 아니함이라 8네가 조금 먹은 것도 토하겠고 네 아름다운 말도 헛된 데로 돌아가리라 9미련한 자의 귀에 말하지 말지니 이는 그가 네 지혜로운 말을 업신여길 것임이니라 10옛 지계석을 옮기지 말며 고아들의 밭을 침범하지 말지어다 11대저 그들의 구속자는 강하시니 그가 너를 대적하여 그들의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6-11)

부자가 되려는 마음을 경고합니다. 이 역시 탐욕입니다. 재물을 과하게 모으려고 하거나, 남의 지계석을 옮겨서라도 모으려고 한다면 그 과정에 탈이 납니다. 과한 물욕을 절제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재물은 손쉽게 우리 손에 들오지 않습니다.

(1) 음식에 대한 욕심을 버리라(6-8)

6-8절은 다시금 음식에 대한 욕심으로 되돌아갑니다. 악한 눈을 가진 자의 음식을 먹지 말라고 말합니다. ‘악한 눈’이란 인색한 자를 의미합니다.

6절에서 말하는 ‘악한 눈을 가진 자’는 1-3절에서 말한 ‘관원’보다 좀 더 직접적인 비유입니다. 이 사람은 음식을 나눠줄 생각이 처음부터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의 음식은 결코 탐해서는 안 됩니다.

그 이유가 7절에 나옵니다. 그 사람은 겉으로는 ‘음식을 맛있게 드세요’라고 권하는데, 그의 속마음은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먹고 마시라는 그의 권유는 유혹이요. 어려움으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그의 사람됨은 그가 겉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 속으로 하는 생각에 있습니다. 그러니 그런 사람의 음식은 결코 먹어서는 안 됩니다.

만약 그런 음식을 먹으면 8절이 말하는 결과를 맛보게 됩니다. 먹은 것을 다시금 토해내야 하게 되고, 아름다운 말은 헛된 데로 돌아가게 됩니다. 먹은 것만큼 다시 내놓아야 하므로, 그것은 먹은 것이 아니게 됩니다. 또한, 그 음식을 먹으려고 그 사람에게 해야 했던 여러 가지 말도 결국 아무런 효과가 없게 됩니다.

6-8절은 우리가 탐욕을 부리는 상황을 비유로 표현한 것입니다. 내게 무언가를 줄 생각이 없는 사람이 겉으로 아무리 좋게 말하더라도, 그것이 정말인지 생각해봐야 한다는 뜻입니다. 과욕을 부려 무언가를 취하더라도, 결국은 아무런 소용이 없게 될 뿐입니다.

(2) 이웃의 지계석을 옮기지 말라(9-11)

9절은 미련한 자의 귀에 말하지 말라는 권고입니다. 미련한 자는 더 이상 교훈을 받지 않습니다. 이는 그가 이미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를 거절했기 때문입니다. 지혜로운 자는 더 지혜로워지고, 미련한 자는 더 미련해지기 마련입니다(9:7-12 참고). 그렇다면 어떻게 지혜롭게 살 수 있습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관점에서 살아야 합니다. 탐욕을 버리고 하나님을 높이기 위해 살아야 합니다.

그 한 예가 10절에 나옵니다. 10절은 선조가 세운 이웃의 지계석을 옮기지 말고 고아들의 밭을 침범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이것 역시 탐욕에 대한 경고입니다. 이웃의 지계석을 옮기는 것은 내 땅을 넓히고 싶은 욕심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웃에게 주신 땅을 침범하는 행위입니다. 고아들의 밭을 침범하는 것은 부모를 잃어 자신들의 땅을 보호할 힘이 없는 아이들의 땅을 빼앗는 악한 행위입니다. 탐욕으로 인해 다른 사람에게 불의와 악을 행하는 경우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행위를 하면 안 되는 이유가 11절에 등장합니다. 탐욕으로 다른 사람의 것을 빼앗으면, 하나님께서 그들의 구속자가 되어 주십니다. 그래서 그들을 위해서 변호해주실 것이고, 결국 그들이 빼앗긴 것을 되찾아주실 것입니다.

 

자녀에 대한 훈계(12-14)

훈계를 위한 사랑의 체벌은 필요합니다. 아이를 위한다고 그릇된 행동에도 매를 아끼면 아이의 영혼과 인생을 망칠 수 있습니다. 물론 냉혹한 책망과 분노를 쏟아내는 체벌은 피해야 하지만 따뜻하고 애정이 넘치는 책망과 체벌은 꼭 필요합니다. 중요한 것은 책망과 체벌을 하는 부모나 받는 자녀 모두 사랑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12훈계에 착심하며 지식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라 13아이를 훈계하지 아니하려고 하지 말라 채찍으로 그를 때릴지라도 그가 죽지 아니하리라 14네가 그를 채찍으로 때리면 그의 영혼을 스올에서 구원하리라(12-14)

본 단락의 마지막 구절은 자녀에게 주는 훈계에 대한 말씀입니다. 여기서 훈계란 단순히 누군가를 야단치는 것이 아닙니다. 훈계란 어떤 목표를 가지고 누군가를 훈육하는 것을 말합니다. 잘못된 것은 잘못되었다고 말해주고 바르게 지도하는 것입니다.

12절은 잠언 독자들에게 이런 훈계를 마음에 두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그런 후, 13절에서는 이 훈계를 자녀들에게도 전달해주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잠언을 통해 배운 교훈을 자신에게 엄격하게 적용해야 하며, 그것을 또한 자녀들에게도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자녀를 훈계할 때 채찍으로 때려도 그가 죽지 않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채찍은 비유적인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좋습니다. 실제로 사랑의 매도 때에 따라서는 필요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앞서 22:6에서 언급한 것처럼 여기서 ‘아이’로 번역된 단어는 ‘나아르’로서 젊고 건장한 청년까지 포함하는 의미 범주를 지녔습니다. 건장한 청년을 채찍으로 내려친다는 것은 비유적인 표현으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합니다. 지혜를 선택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바른 관점으로 살아가도록 철저하게 지도한다는 의미로 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14절에서는 그 ‘나아르’를 채찍으로 때리면 영혼을 스올에서 구원한다고 말합니다. ‘스올’은 음녀의 집입니다(7:27:9:13), 따라서 훈계는 ‘나아르’를 음녀의 집으로부터 구원하는 것입니다. 12-14절은 잠언 독자에게 먼저 자신을 지혜의 말씀으로 채찍질하고, 그 후 자신이 가르치고 인도해야 할 사람들에게 지혜의 길로 가도록 엄중히 권하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회는 진실된 밥상공동체입니다. 정직하고 검소한 음식이 차려지고 서로를 향한 사랑가 진리의 언어가 오고 가는 성도들의 식탁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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