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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23-02)


술과 음식에 대한 지혜

잠언 23장 15-35절


세상이 좀처럼 사람을 사람답게 대우해주지 않습니다. 그들은 자원일 뿐이고 심하게 말하면 부속품일 뿐입니다. 필요할 때 쓰고 편하게 버리도록 법까지 만들어 주었습니다. 마음 둘 곳이 없는 현실은 이겨낼 대상이 아니라 체념하고 순응할 대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상황이 녹록지 않으니 사람들은 술을 찾습니다. 이런 때에 믿음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본문은 크게 두 문단(15-21, 22-35)으로 나뉩니다. 각 문단은 지혜를 얻으라는 권고로 시작하고 술에 대한 경고로 마칩니다. 첫째 문단은 이 내용을 간략하게 가르치는 데 비해, 둘째 문단은 매우 자세한 가르침을 베풀고 있습니다. 지혜를 얻어야 하며, 술을 멀리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본문에서의 술은 물론 술 자체를 가리키지만, 동시에 상징적 의미로 음녀의 유혹을 뜻합니다.

 

첫 번째 권고(15-21)

지혜로운 자녀를 보는 부모는 기쁩니다. 정직한 아들을 보면 부모는 유쾌합니다. 죄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않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식을 보는 것이 부모의 소원입니다. 부모가 아니라 바로 그 지혜의 삶이 그들에게 안전한 미래, 의로운 미래를 열어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15내 아들아 만일 네 마음이 지혜로우면 나 곧 내 마음이 즐겁겠고 16만일 네 입술이 정직을 말하면 내 속이 유쾌하리라 17네 마음으로 죄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고 항상 여호와를 경외하라 18정녕히 네 장래가 있겠고 네 소망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19내 아들아 너는 듣고 지혜를 얻어 네 마음을 바른 길로 인도할지니라 20술을 즐겨 하는 자들과 고기를 탐하는 자들과도 더불어 사귀지 말라 21술 취하고 음식을 탐하는 자는 가난하여질 것이요 잠자기를 즐겨 하는 자는 해어진 옷을 입을 것임이니라 22너를 낳은 아비에게 청종하고 네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지니라(15-22)

하나님의 말씀대로 세상을 살아가야 합니다. 많은 재물을 모으고 높은 자리에 오르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부모로서, 혹은 교사로서 나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있습니까?

(1) 지혜를 얻으라(15-19)

오늘의 본문은 지혜의 길을 따라가야 한다는 권고로 시작합니다.

15-16절은 마음이 지혜로워야 하고 입술이 정직을 말해야 함을 가르칩니다. 여기서는 이해력을 담당하는 기관인 ‘마음’이라는 단어를 반복적으로 사용하여 강조하고 있습니다. ‘정직’은 ‘메샤림’이라는 단어로, ‘공평’으로도 번역되는데 올곧고 바름'을 뜻하며, 지혜의 길을 선택한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특징입니다. 지혜를 선택하면 부모의 마음이 즐겁고 기쁠 것이라는 부탁입니다.

17-18절에는 지혜를 선택해야 하는 이유가 등장합니다. 먼저 17절에서는 죄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고 여호와 경외에 힘쓸 것을 주문합니다. 여기 ‘부러워하다’라는 ‘시기하다’라는 단어입니다. 지혜자는 악인의 번영을 시기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일을 시기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18절에서 말하듯이, 여호와를 경외할 때 장래가 있고 소망이 끊어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15-18절은 지혜를 선택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복을 허락하신다는 내용입니다.

이어서 잠언 기자는 19절에서 19장을 연상시키는 권면을 합니다. “내 아들아 너는 듣고 지혜를 얻어 네 마음을 바른 길로 인도할지니라.”

(2) 술에 대한 경고(20-21)

20-21절에서는 조금 갑작스럽게 음식을 탐하는 것에 대한 경고가 나옵니다. 술을 즐겨하고 고기를 탐하는 자와 함께하지 말라는 내용인데, 그런 자들에게서 영향을 받아서 술을 즐겨하고 음식을 탐하는 자가 되거나 잠에 취한 게으른 자가 되면, 지금 있는 재산조차 모두 탕진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술과 고기를 탐하지 말라는 내용은 그 자체로는 유익한 조언입니다. 신명기 21:20에서도 제멋대로인 젊은이들은 공동체에 의해 죽임을 당할 것이라는 경고가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조언이 왜 이 문맥에서 등장하고 있는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으며, 27-35절에서 명확해질 것입니다. 일단 우리가 여기서 해석하고 적용할 수 있는 것은 먹는 것에 탐욕을 부리거나 게으른 사람이 되면 안 된다는 메시지입니다.

 

두 번째 경고(22-35)

술이 주는 기쁨에 취해서 술의 노예가 되고 결국 죄악에 무감각한 자가 되어 자신을 스스로 파멸시키고 말 것입니다. 이는 음녀의 유혹에 넘어가 그녀에게 자기 영혼을 팔아넘기는 사람처럼 어리석습니다. 술은 분별력과 절제력을 앗아가며, 아주 천천히 우리를 죽이는 독사의 족과 같습니다. 그 외적인 화려함과 거짓 만족의 늪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23진리를 사되 팔지는 말며 지혜와 훈계와 명철도 그리할지니라 24의인의 아비는 크게 즐거울 것이요 지혜로운 자식을 낳은 자는 그로 말미암아 즐거울 것이니라 25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를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 26내 아들아 네 마음을 내게 주며 네 눈으로 내 길을 즐거워할지어다 27대저 음녀는 깊은 구덩이요 이방 여인은 좁은 함정이라 28참으로 그는 강도 같이 매복하며 사람들 중에 사악한 자가 많아지게 하느니라 29재앙이 뉘게 있느뇨 근심이 뉘게 있느뇨 분쟁이 뉘게 있느뇨 원망이 뉘게 있느뇨 까닭 없는 상처가 뉘게 있느뇨 붉은 눈이 뉘게 있느뇨 30술에 잠긴 자에게 있고 혼합한 술을 구하러 다니는 자에게 있느니라 31포도주는 붉고 잔에서 번쩍이며 순하게 내려가나니 너는 그것을 보지도 말지어다 32그것이 마침내 뱀 같이 물 것이요 독사 같이 쏠 것이며 33또 네 눈에는 괴이한 것이 보일 것이요 네 마음은 구부러진 말을 할 것이며 34너는 바다 가운데에 누운 자 같을 것이요 돛대 위에 누운 자 같을 것이며 35네가 스스로 말하기를 사람이 나를 때려도 나는 아프지 아니하고 나를 상하게 하여도 내게 감각이 없도다 내가 언제나 깰까 다시 술을 찾겠다 하리라(23-35)

술 취함은 재앙과 근심, 분쟁과 원망과 상처의 원인입니다. 술은 마치 뱀과 같아서, 한번 물리면 감각을 마비시키고 허튼소리를 하게 합니다. 이것이 지속하면 거대한 파도가 몰아치는 바다 한가운데 누운 사람처럼, 또 몸을 가눌 수 없는 돛대의 꼭대기에 있는 사람처럼 위태롭게 됩니다.

(1) 지혜를 얻으라(22-26)

먼저 22-26절은 다시금 지혜를 얻으라는 권고를 전해줍니다. 특별히 22, 24-25절은 부모와의 관계를 언급합니다. 지혜를 얻은 자가 되면 부모의 기쁨이 된다는 사실을 매우 강조합니다.

22절은 부모에게 순종하고 어머니가 나이가 들어갈 때 경히 여기지 말라고 말합니다. 23절은 그렇게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 중 중요한 부분이 지혜를 얻는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24-25절은 자녀가 지혜를 얻게 될 때 부모가 크게 즐거워할 것을 말합니다. 26절 역시 자녀의 마음을 아버지에게 주어야 함을 말합니다. 부모의 가르침에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2) 술에 대한 경고(27-35)

이제 27절부터는 다시금 술에 대한 경고가 나옵니다. 20-21절에서는 술, 고기, 잠자는 것에 대한 경고가 함께 등장했는데, 27-35절에는 술에 대한 경고가 집중적으로 등장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술에 대해서 가르치기 위해서 먼저 27-28절에서는 기생과 이방 여인의 이미지를 사용합니다.

27절은 기생과 이방 여인을 피하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깊고 좁은 구덩이여서, 한번 빠져들게 되면 헤어날 수 없는 덫과 같은 존재이기 때문입니다(28). 그들은 강도같이 매복하고 있으며 사람들 중에 사악한 자가 많아지게 만듭니다. 여기서 기생과 이방 여인은 잠언의 독자들이 피해야 할 좋지 않은 여인들에 대한 내용입니다.

그런데 이 내용은 29절부터 이어지는 술에 대한 내용과 병행되면서 상징적인 의미를 동시에 갖게 됩니다. 이를 살피기 위해 29절 이하를 먼저 생각하고, 이후 이 두 가지를 연결해보시길 바랍니다. 29절은 ‘~이 뉘게 있느뇨’라는 질문을 여섯 번이나 던집니다. 재앙, 근심, 분쟁, 원망, 까닭 없는 상처, 그리고 붉은 눈이 뉘게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답은 30절에 나오는데, 바로 술입니다. 술에 의해서 삶의 모습이 흐트러진 사람에게 재앙, 근심, 분쟁, 원망 등이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31절은 그 술의 일종인 포도주를 언급합니다. 포도주는 매우 ‘올곧음’ 보입니다. ‘올곧음’으로 번역되는 ‘메샤림’이라는 단어를 사용해서 포도주가 순하게 내려감을 묘사합니다. 그런데 그 ‘올곧음’은 32절이 말하는 것과 같이 나중에는 뱀같이 쓰고 물것입니다. 즉, 처음에 좋게 보이는 포도주가 나중에는 생명을 해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처음 보이는 모습에 속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 포도주에 속아 넘어가 빠지게 되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맞게 됩니다.

그 결과가 33-35절에 나옵니다. 먼저 33절에 나오는 것처럼, 눈에 괴이한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누군가가 자신을 때려도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정도에까지 이르게 되고, 그런 상태에서도 다시금 술을 찾는 지경에 빠지게 됩니다. 즉, 술에 중독이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괴이한 것’으로 번역된 원어를 직역하면 ‘음녀들’입니다. 포도주에 빠지면 눈에 ‘음녀들’이 보인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슨 뜻입니까? 여기서 우리는 27-28절에서 기생과 이방 여인이 언급되었던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잠언 1-9장에서 음녀와 이방 여인은 지혜 여인과 대조를 이루는 상징이었습니다. 지혜의 길이 아닌 죽음의 길, 멸망의 길로 가도록 유혹하는 존재였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23장 본문에서 ‘술’은 곧 ‘음녀’를 상징하거나, 아니면 적어도 ‘음녀와 같은 존재’로 묘사되고 있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술을 멀리해야 하는 것은 처음에는 그것이 좋아 보이지만, 나중에는 생명을 위협할 정도로 중독되기 때문입니다.

35절을 보면, 술에 취해 맥이 풀린 상태이면서도 허세와 호기를 부리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더는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그가 생각하는 것은 또 한 잔의 술뿐입니다. 술에 완전히 지배당하고 중독된 모습입니다. 이것은 음녀의 유혹을 물리쳐야 하는 이유와 비슷합니다. 잠언 5:1 이하에서 음녀에 대해 묘사하기를, 처음에는 달콤하지만, 나중에는 죽음에 이르게 하는 존재가 바로 음녀라고 말한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오늘 15-35절 본문 전체는 ‘지혜의 길을 가서 부모를 기쁘게 해야 한다’라는 가르침과 ‘술과 음녀와 같은 존재들을 피해야 한다.’라는 가르침으로 압축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삶을 살며, 음녀와 술과 같은 것들을 멀리하면서, 겉보기에 우리를 만족시킬 것처럼 유혹의 손길을 뻗는 미련함의 길을 멀리해야 할 것입니다.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하여 형통함을 위해 악인의 길을 따를 것인지, 아니면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로 살 것인지 우리는 결정하도록 요구받고 있습니다. 한쪽은 거짓 만족에 취해 있느라 나와 타인을 망가뜨리게 되지만, 다른 한쪽은 참된 기쁨과 즐거움을 안겨줄 것입니다. 아무리 힘겨운 현실일지라도, 그 너머에서 모든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하며 오늘도 지혜의 길을 걷는 성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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