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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12-01)


의로운 삶을 사는 지혜

잠언 12장 1-14절


 

정의롭지 못한 세상을 살다보면, 이따금 ‘의롭게 살아서 뭐하나?’하는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편법과 이기심으로 사는 인생이 성공하는 듯 보이고, 원칙을 지키며 의의 길을 좇는 이들은 뒤처져 보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의로운 사람의 길은 생명이요, 미련한 사람의 길은 죽음이라고 경고합니다. 더불어, 의로운 삶의 유익을 보여주며 격려합니다.

 

의인과 악인 또는 지혜자와 우매자의 대조적인 모습은 그들의 생각, 말, 행동, 사람들에게서 듣는 평판,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보응 등 자신과 자신, 자신과 타인, 자신과 하나님 간의 관계에서 나타납니다. 이런 관계 안에서 현재 내가 선택하는 마음의 태도와 말과 행동이 내가 맺을 열매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의인과 악인의 특징(1-3)

자신이 가장 지혜롭고 완벽하다고 생각하여 훈계를 거부하는 사람이 사실상 가장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자신의 부족과 연약함을 깨닫고, 교훈과 책망을 수용할 때 지혜롭게 되는 것입니다. 의인의 뿌리가 흔들리지 않는 이유는 그 뿌리를 하나님께 내렸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무엇을 기반으로 삼고 있습니까?

1훈계를 좋아하는 자는 지식을 좋아하거니와 징계를 싫어하는 자는 짐승과 같으니라 2선인은 여호와께 은총을 받으려니와 악을 꾀하는 자는 정죄하심을 받으리라 3사람이 악으로서 굳게 서지 못하거니와 의인의 뿌리는 움직이지 아니하느니라(1-3)

잠언 12장은 의인과 악인의 본질을 언급하며 진실하고 화평한 말과 근면 정신을 함양합니다. 오늘 본문인 1-14절은 의인과 악인의 삶을 대조하는 금언 중 말과 재물의 주제가 상대적으로 두드러지며, 나머지 15-28절은 정직과 화평의 말과 근면이 강조되었습니다. 

먼저, 1-3절에서는 의인과 악인의 본질(1, 3)과 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보응(2)에 대해 말합니다. 의인과 악인의 본질적인 구분은 첫째, 훈계를 받아들이는 여부에서 나타납니다. 1절은 훈계를 좋아하는 자와 싫어하는 자를 각각 지식을 사랑하는 사람과 미련한 짐승으로 대조함으로써 의인과 악인을 구별하였습니다. 12:1의 현명한 사람과 미련한 짐승의 구별은 구체적으로 그들이 지식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에 따라 결정됩니다. 여기서 지식은 ‘지혜’의 다른 표현으로써 훈계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깨달음과 교훈을 지칭합니다.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다면 자신이나 타인의 생각과 판단이 최고라고 생각하기 때문에(3:5-7) 그런 교만한 마음에는 훈계가 들어갈 틈이 없습니다. 둘째, 의인과 악인은 그들이 삶의 기초를 어디에 뿌리내렸는지에 따라 달라집니다. 3절은 의인과 악인을 나무로 비유하여 각각의 뿌리가 선과 악에 있다고 설명합니다. 그 결과 악인에게는 불안하고 위태로운 미래가, 의인에게는 견고하고 안정된 미래가 기대됩니다. 이와 같은 비교는 시편 1편의 물가에 심긴 나무와 바람에 날리는 겨, 또는 예레미야 17:5-8의 사막의 마른 나무와 물가에 뿌리내린 청청한 나무의 비교와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습니다. 선으로 굳게 서는 의인은 결국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며 하나님의 말씀을 행하는 자입니다. 이와 같은 의인과 악인의 본질과 결과(1, 3)는 그들에게 나타나는 하나님과의 관계성(2)과도 연결됩니다. 하나님께서는 훈계를 좋아하고 선으로 견고히 서 있는 의인에게 은총을 주시나, 훈계를 싫어하고 악을 좋아하여 악을 꾀하는 자들은 정죄하실 것입니다.

 

의인과 악인의 언행과 결과(4-8)

말과 생각은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나타냅니다. 의인은 바른 생각과 정직한 행동으로 그가 의인임을 드러내고, 악인은 다른 사람을 해하며 속이는 일을 도모하여 그가 악인임을 나타냅니다. 그러나 아무리 악인이 날고뛰어도 결국 마지막에 남은 것은 의인입니다. 우리 생각과 말을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4어진 여인은 그 지아비의 면류관이나 욕을 끼치는 여인은 그 지아비의 뼈가 썩음 같게 하느니라 5의인의 생각은 정직하여도 악인의 도모는 속임이니라 6악인의 말은 사람을 엿보아 피를 흘리자 하는 것이거니와 정직한 자의 입은 사람을 구원하느니라 7악인은 엎드러져서 소멸되려니와 의인의 집은 서 있으리라 8사람은 그 지혜대로 칭찬을 받으려니와 마음이 굽은 자는 멸시를 받으리라(4-8)

4-8절의 금언들은 부인이 남편에게 미치는 영향력(4), 의인과 악인의 대조적인 생각, 말, 운명(5-8)에 대한 내용을 기술합니다. 먼저 4절은 ‘어진 여인’을 자기 남편의 면류관과 같은 존재로, ‘수치스러운 여자’를 자기 남편의 뼈를 썩게 하는 존재로 소개합니다. 어진 여인은 문자적으로는 힘의 여인이며 성경 다른 곳에서 ‘현숙한 여인’으로도 번역되었습니다(잠 31:10-31; 룻 3:11). 이때 ‘힘’이란 육체적 힘만이 아니라 성품, 경제력, 재능 등에서 뛰어남을 의미합니다. 잠언의 마지막 단락인 31:10-31의 ‘힘의 여인’에 대한 이상적인 묘사가 이 점을 잘 드러내 줍니다. 이 단락은 ‘힘의 여인을 누가 찾겠느냐?’라는 질문으로 시작하는데 이는 그와 같은 여인을 찾는 지혜로운 남자가 되라는 권면입니다. 이런 여인의 값어치는 진주보다 귀하며(31:10) 이와 같은 여인은 본인도 영광을 얻고(11:16) 그녀의 남편에게도 면류관(12:4)이 되어 남편 또한 영광을 얻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 여인이 힘의 여인으로 불리며 가정과 사회에서 칭찬을 받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그녀가 근본적으로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이기 때문이며 이를 삶에 실천하는 자이기 때문입니다(31:30). 한편, 수치스러운 여자는 어떠한가? 본인에게 치욕거리를 만드는 이 여인은 남편의 뼈를 썩게 하는 자입니다. 뼈가 썩는 것은 살에 상처가 나는 것보다 훨씬 그 상태가 심각하고 위중합니다. 몸 밖으로 드러나지 않아서 그렇지 썩어들어가는 고통과 냄새와 괴로움은 당사자의 몸과 마음을 다 망가뜨리고 죽음으로 몰아갑니다. 여기서 기억해야 할 것은 이 힘의 여인이나 수치스러운 여인을 잠언 1~9장에서 각각 여인으로 의인화된 지혜(1:20-33; 2:10-22; 4:5-9; 8:1-36; 9:1-6)와 우매(2:16-19; 5:1-23; 6:20-35; 7:1-27; 9:13-18)와도 연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여호와를 경외하는 현명한 여자를 찾고 음녀를 피하라고 권면한 것은 누구든 여호와 경외를 근본으로 하는 지혜를 얻고 미련함을 벗어나라는 권면이기 때문입니다. 5-8절은 의인과 악인의 대조적인 생각(5), 말(6), 운명(7-8)에 대한 금언들로 구성되어 의미상 연결됩니다. 5-6절은 의인과 악인의 말이 생각으로부터 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의인은 정의를 생각하고 정직한 말을 하므로 자신과 다른 이들을 궁지에서 구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악인은 속임수를 계획하고 남을 무고히 해치려고 음모를 꾸며 자신과 다른 이들을 궁지로 몰아넣습니다. 악인의 이런 모습은 1:8-19의 무죄한 사람을 까닭 없이 숨어 기다리며 사람의 피를 흘리려는 강도들을 떠오르게 합니다. 7-8절은 이 같은 악인과 의인의 언어와 행동으로 인한 결과를 공통적으로 말합니다. 7절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반응(행동)이며, 8절은 사람으로부터 오는 반응(말)입니다. 의인은 정직을 선택하는 지혜자이므로 사람들에게서 칭찬의 말을 듣고, 하나님으로부터 보호를 입어 그와 그가 속해 있는 공동체가 견고해집니다. 이와 반대로, 악인은 마음이 비뚤어져 거짓과 남을 해하려는 언행을 일삼으므로 사람들로부터 멸시의 말을 듣고,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그와 그의 공동체가 파괴되어 자취를 감출 것입니다.

 

의인과 악인이 맺는 열매(9-14)

불법으로 얻은 소득을 방탕하게 사용하고, 수고로이 일하지 않으면서 일확천금을 꿈꿉니다. 잠시 그럴듯한 모습을 갖추지만, 그 열매는 오래가지 못합니다. 의롭게 살아갈 때 참 열매를 얻을 수 있고, 깊은 뿌리로 말미암은 열매라야 튼실합니다. 속성으로 키워 모양만 낸 열매에 현혹되지 말고, 하나님께 깊이 뿌리를 내릴 수 있어야 합니다.

9비천히 여김을 받을지라도 종을 부리는 자는 스스로 높은 체하고도 음식이 핍절한 자보다 나으니라 10의인은 자기의 가축의 생명을 돌보나 악인의 긍휼은 잔인이니라 11자기의 토지를 경작하는 자는 먹을 것이 많거니와 방탕한 것을 따르는 자는 지혜가 없느니라 12악인은 불의의 이익을 탐하나 의인은 그 뿌리로 말미암아 결실하느니라 13악인은 입술의 허물로 말미암아 그물에 걸려도 의인은 환난에서 벗어나느니라 14사람은 입의 열매로 말미암아 복록에 족하며 그 손이 행하는 대로 자기가 받느니라(9-14)

9-14절의 금언들은 10절을 제외하고 의인과 악인의 재물(9, 11, 12)과 언어(13, 14) 그리고 이로 인한 열매를 대조합니다. 9절은 한마디로 ‘빛 좋은 개살구’보다 조개 속의 진주에 가치를 두라는 금언입니다. 가진 것이나 능력이 부족한데도 외적으로 뻐기며 포장하는 삶을 추구하는 자는 자신과 남을 속이는 미련한 자이며 후회와 고통만 증대됩니다. 그러나 설령 남들이 몰라주고 업신여긴다 해도 실제로는 종을 부릴 정도로 재물과 지혜와 능력을 갖춘 자는 삶에 기쁨과 만족이 넘칩니다. 10-14절은 의인과 악인의 대조라는 점에서는 공통적입니다. 10절은 의인과 악인의 사람에 대한 근본적인 태도를 다룹니다. 의인은 마음에 긍휼과 자비가 있어 사람뿐만 아니라 짐승까지도 보살필 정도입니다. 그러나 악인의 마음에는 긍휼이 없으며, 그에게 있어 긍휼이란 자신의 탐욕을 채우려고 꾸민 잔인하고 악한 궤계일 뿐입니다. 11-12절은 다시 재물과 그에 따른 결과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11절은 9절과도 내용상 연결됩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땅을 성실히 경작한 자는 그에 따라 풍성한 소득을 얻는 지혜로운 자입니다. 그러나 방탕하고 헛된 것을 뒤쫓는 자는 9절의 높은 체하고도 음식이 핍절한 자입니다. 그는 근본적으로 음식보다 분별력이 핍절한 자입니다. 11절에 이어 12절에서도 의인과 악인의 열매에 대해 말합니다. 악인은 다른 악한 자들의 탈취물까지도 탐하지만, 의인의 뿌리는 열매를 맺습니다. 이때 의인의 뿌리는 의인이 지향하는 삶의 방향을 상징하는 표현이며 하나님과 말씀에 대한 신뢰와 실천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13-14절은 입술의 열매에 대한 금언입니다. 악인은 본인의 말로 인해 스스로 덫에 빠져들지만, 의인은 환난에서 벗어납니다. 이처럼 사람은 자기가 뿌린 말과 행동의 열매를 먹게 됩니다.

 


 

불의한 방식으로 손쉽게 이익을 추구하는 사회에서 올바름을 추구하며 산다는 것은 힘겨운 일입니다. 쉽게 열매 맺지 못하는 일에 매진하는 것은 많은 인내를 요구합니다. 그럼에도 열매를 맺게 하시는 하나님을 믿어야 하며, 의로운 삶이 주는 유익과 가치를 확신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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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11-02)


생명나무 열매를 맺는 삶

잠언 11장 16-31절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심으신 포도나무나 무화과나무로 비유되었습니다(호 10:1; 시 80:8; 렘 24:1-3). 새 이스라엘인 교회도 접붙임을 받은 감람나무로 비유되었습니다(롬 11:17). 이는 은혜에 합당한 풍성하고 실한 열매를 기대하는 표현들입니다. 무릇 하나님의 백성들은 열매 맺는 삶을 살아야 하며, 이는 구원에 속한 확실한 증거입니다(히 6:9, 10).

 

외면의 아름다움이나 힘에 치중하는 것보다는 지혜와 은혜 등 내면의 고결한 성품을 키우는 것이 더 소중합니다. 또한, 재물을 의지하거나 인색하게 굴지 말고, 하나님이 재물의 주인이심을 인정하고 구제와 선을 쌓는 데 힘써야 합니다. 지혜와 인자한 성품, 너그러운 마음과 후한 손길은 자신과 타인을 이롭게 하며 하나님께 기쁨이 됩니다.

 

호의와 은혜를 베푸는 삶(16-22)

은혜의 사람, 인자한 사람은 영광을 얻고 자기 영혼을 이롭게 하지만 폭력적이고 잔인한 방법으로 재물을 모으는 사람은 도리어 자기 몸을 해롭게 합니다. 이는 악인의 재물은 바람같이 헛된 재물이 되며 악인의 끝은 사망이 되지만, 공의를 추구하는 의인은 하나님의 기쁨이 되어 자신뿐만 아니라 자손까지도 하나님의 구원을 경허하게 될 것입니다.

16유덕한 여자는 존영을 얻고 근면한 남자는 재물을 얻느니라 17인자한 자는 자기의 영혼을 이롭게 하고 잔인한 자는 자기의 몸을 해롭게 하느니라 18악인의 삯은 허무하되 공의를 뿌린 자의 상은 확실하니라 19공의를 굳게 지키는 자는 생명에 이르고 악을 따르는 자는 사망에 이르느니라 20마음이 굽은 자는 여호와께 미움을 받아도 행위가 온전한 자는 그의 기뻐하심을 받느니라 21악인은 피차 손을 잡을지라도 벌을 면하지 못할 것이나 의인의 자손은 구원을 얻으리라 22아름다운 여인이 삼가지 아니하는 것은 마치 돼지 코에 금 고리 같으니라(16-22)

잠언 11:1-15은 정직한 경제생활과 언어생활에 대한 금언이 주를 이루었고, 이제 16-31절에서는 의인과 악인의 보응, 은혜와 폭력의 사람, 구제, 재물을 의지하지 않는 삶에 관한 금언을 소개합니다. 특히 16-22절은 ‘유덕한 여자’로 시작하여 아름다운 여자로 마치며 그 중간에는 의인과 악인을 대조하는 금언이 들어있습니다. 23-31절은 재물을 의지하지 말고 구제하라는 조언과 의인의 보상에 대해 언급하는 금언이 대부분입니다. 먼저 16, 17절은 은혜와 인자가 있는 사람과 포악하고(근면한 남자로 번역됨) 잔인한 사람을 대조한 금언으로써, 서로 연결됩니다. 16절에서는 이들의 성품과 행동으로 남들에게서 얻는 반응을, 17절에서는 그것들이 자기 자신에게 미치는 영향을 진술합니다. 은혜롭고 인자한 사람은 다른 이로부터 존경을 받고 영광을 얻게 되며, 자기 자신도 이롭게 합니다. 그러나 폭력적이고 잔인한 자는 재물을 손에 쥘 수는 있으나 스스로 화를 불러오게 됩니다. 16, 17절에서 ‘폭력적인 남자’, ‘잔인한 남자’와 ‘인자한 남자’가 서로 대조되었다면, 이제 21절의 ‘아름다운 여인’은 16절의 ‘은혜로운 여인’과 대조됩니다. 남자의 경우는 행동(힘)과 성품이 대조되며, 여자의 경우는 성품과 외모(아름다움)가 대조됩니다. 이 구절들을 종합하면, 첫째, 지혜와 인자한 성품을 가진 자가 본인과 남에게 선한 유익을 줍니다. 둘째, 아름다움과 힘이 있다 하더라도 분별력과 인자함이 없다면 그것은 마치 돼지 코에 금 고리를 달아주는 격이 됩니다. 그러므로 외면적인 수려함이 아닌 내면에 있는 지혜와 고결한 성품이 더 값지다는 것을 인식하고, 이와 같은 내면의 수려함을 키우고 계발하는 것이 더 바람직합니다. 18-19절은 의를 뿌리고 의를 확고히 지키는 자는 확실한 보상과 생명을 얻으나, 악을 뒤쫓는 자는 거짓 소득을 얻고 사망에 이르게 된다고 선언합니다. 즉, 삶에서 무엇을 추구하고 실행하는지에 따라 생명과 사망이라는 대조격인 결과에 이르게 된다는 뜻입니다. 20절에서는 하나님께서 마음이 비뚤어진 자를 혐오하시나 행위가 온전한 자는 기뻐하신다고 밝힘으로써 하나님과 의인, 하나님과 악인 사이의 관계를 요약합니다. 하나님의 혐오 대상과 기름의 대상을 언급하는 금언은 11:1; 12:22; 16:8에도 나오는데, 모두 정직과 온전함이 하나님의 기쁨의 대상으로 소개되었습니다. 이런 성품은 바로 하나님을 대표하는 성품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이 자신의 성품을 닮으며 성장하기를 원하십니다.

 

재물을 의지하지 않는 삶(23-31)

지혜로운 자는 재물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알며 많고 적용과 관계없이 선물로 받았음을 인정합니다. 따라서 재물을 모으고 쓰는 일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소유권과 사용권을 인정하는 태도입니다. 인간적인 계산만으로 악착같이 모으면 많아지고 나누면 가난해진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나눔의 구제는 도리어 하나님의 풍요를 누리는 길이 됩니다.

23의인의 소원은 오직 선하나 악인의 소망은 진노를 이루느니라 24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25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자기도 윤택하여지리라 26곡식을 내놓지 아니하는 자는 백성에게 저주를 받을 것이나 파는 자는 그의 머리에 복이 임하리라 27선을 간절히 구하는 자는 은총을 얻으려니와 악을 더듬어 찾는 자에게는 악이 임하리라 28자기의 재물을 의지하는 자는 패망하려니와 의인은 푸른 잎사귀 같아서 번성하리라 29자기 집을 해롭게 하는 자의 소득은 바람이라 미련한 자는 마음이 지혜로운 자의 종이 되리라 30의인의 열매는 생명 나무라 지혜로운 자는 사람을 얻느니라 31보라 의인이라도 이 세상에서 보응을 받겠거든 하물며 악인과 죄인이리요(23-31)

23-31절은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이때 23-27절은 ‘선’으로 시작하여 선으로 마치며 그 중간에는 구제를 격려하는 금언이 소개되었습니다. 28-31절은 재물을 의지하지 말라는 조언과 의인이 받는 보상에 대한 금언이 기록되었습니다. 먼저 23, 27절에서는 의인과 악인이 삶에서 추구하는 대조적인 길과 그로 인한 결과를 언급합니다. 즉, 의인은 선을 기대하며 하나님의 은총을 얻지만, 악인은 악을 찾으므로 악과 하나님의 진노를 기대할 수밖에 없습니다. 위와 같은 삶은 24-26절, 28-29절에서 특별히 재물과 관련하여 설명됩니다. 특히 24-26절은 구제에 대한 금언인데, 이 금언들은 구제에 있어 기본적인 원리, 바람직한 기본 정신, 구세의 올바른 방법과 결과를 설명합니다. 28-29절은 24-26절의 구제와 관리하며 재물을 의지하지 말라고 교훈합니다.

24절은 구제의 기본 원리로서 구제와 과도히 아끼는 행위가 각각 가난과 부를 불러오지 않는다는 것과 구제의 배후에 하나님의 축복이 있음을 말해줍니다. 자신에게 있는 것을 남에게 너그러이 베풀어도 더욱 부하게 되기도 하지만, 당연히 쓸 것조차 억제하고 아껴도 궁핍해질 수 있습니다. 이제 25-26절은 ‘복’이란 공통단어로 서로 연결되며, 공통적으로 구제의 방법과 결과에 대해 설명합니다. 25절의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문자적으로 축복의 사람입니다. 이 같은 명칭은 남을 도와주고 구제하는 행위가 남을 축복하는 마음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물이 부족한 사람에게 물을 맘껏 마시게 해주거나 농경기에 물이 모자라는 자에게 자기가 모아둔 물을 풍족히 나누어주는(‘윤택하게 하는’) 관대하고 호의적인 행동이 필요합니다. 또한, 추수 때 곡식을 싸게 매점 매석하고 폭리를 취하려 들지 말고, 곡식을 필요한 때에 내놓고 적당한 가격에 팔아서(창 41:53-57) 이웃을 돌보며 바람직한 상거래 활동이 이루어지도록 힘써야 합니다. 이런 자는 그 결과로 본인도 건강과 풍요로움으로 살찌게 되고(24), 축복을 받아 차고 넘치도록 공급을 받게 되며(25). 백성들로부터 칭찬을 듣고 하나님으로부터 축복을 받을 것입니다(26). 반대로, 인색하게 굴고 이득만 보려는 사람은 자신도 가난해지고(24) 백성들로부터 원성을 들으며(26) 하나님의 축복을 누릴 수도 없습니다(25), 여기서 기억해야 할 것은 위의 금언들이 분수에 맞지 않게 무조건 퍼주기를 장려하거나 인색함 같은 어떤 특정한 행동을 비난하려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다만 물이 하나님께로부터 왔음을 일깨우고 재물을 의지하지 말라고 교훈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교훈은 28절의 “제물을 의지하면 망하지만(문자적으로 ‘떨어지다’), 하나님을 의지다면 나뭇잎에 싹이 돋는다”라는 금언에서 잘 나타납니다. 남을 구제할 때 나의 소유가 줄어든다는 생각은 이성적인 계산이지만, 여기에는 근본적으로 나 자신이 내 소유의 주인이지 주관자라는 인식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가진 소유는 모두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며 하나님께서 내 물길의 주인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내 재물을 주관하고 조종하실 수 있도록 맡겨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얼마든지 다른 방법으로 나를 축복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눅 6.38)라고 하시며 물질의 기본적 원리와 결과를 말씀하십니다. 29절은 ‘유산’(‘소득’으로 번역됨)처럼 재물과 관련 있는 단어가 나타나고 25절의 잎사귀와 대조적 비유인 ‘바람’(‘헛된 것’을 의미)이 나타나므로 23-28절과 관련해서 읽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기 자신과 자기가 가진 재물이나 다른 것을 의지하여 집안에 괴로움을 가져오는 자는 바람과 같이 헛된 것을 유산으로 물려받게 될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자신조차 구제할 수 없어 종의 신분으로 전락하여 지혜자의 종노릇을 하게 됩니다. 30-31절은 의인의 보응에 대해 말하며, 특히 30절은 28절에서처럼 의인을 나무로 비유하고 있으므로 서로 연결됩니다. 재물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는 가지와 잎사귀만 내는 나무가 아니라 열매를 맺는 생명 나무입니다. 의인은 자신의 성장과 번영을 이루는 것만이 아니라 다른 이에게도 활력과 위안과 치유를 제공합니다. 의인은 또한 지혜로운 사람이므로 다른 사람들을 지혜와 의로 이끕니다(단 1:23 고전 9:19-22: 약 5:20). 그러나 의인이라도 죄를 지으면 살아 있는 동안 그에 마땅한 징계와 심판을 받게 됩니다. 하물며 악인과 죄인에게 내리는 하나님의 정의는 얼마나 더 하겠습니까?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는 것은 모두의 기도 제목이어야 합니다(빌 1:11; 골 1:10). 은혜에 합당한 열매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히 12:14). 열매 없는 무성한 나무가 말고, 견실하고 풍성한 열매를 맺어 주님의 기쁨이 되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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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11-01)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지혜

잠언 11장 1-15절


어떤 사회학자의 말에 따르면, 아주 내성적인 사람일지라도 평생 동안 평균적으로 만 명의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다고 합니다. 모든 사람은 자신이 사는 자리에서 어떤 행태로든 영향을 미치게 되어 있습니다. 주님의 제자들인 우리는 세상에 어떤 영향력을 끼쳐야 합니까? 선한 영향력을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경제생활과 언어생활에 있어 정직함은 질서와 정의를 구성하는 필수 요소입니다. 모든 일에 정직과 온전함을 추구하고 실행하는 자는 그로 인해 평안과 안전을 얻습니다. 더구나 정직한 말과 행동은 이를 행하는 사람에게뿐 아니라 그가 속한 이웃과 사회와 국가에 즐거움과 평안을 가져다줍니다.

 

정직한 자와 사악한 자(1-8)

교만한 자는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기에 저울을 속여서 부당한 이득을 취합니다. 하지만 진노하시는 날에 그 불의한 재물 때문에 수치를 당하고 망하게 될 것입니다. 자신의 악에 사로잡히고 구원의 소망이 사라질 것입니다. 반면에 겸손한 자는 지혜롭고, 정직하며 공의를 추구합니다

1속이는 저울은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 공평한 추는 그가 기뻐하시느니라 2교만이 오면 욕도 오거니와 겸손한 자에게는 지혜가 있느니라 3정직한 자의 성실은 자기를 인도하거니와 사악한 자의 패역은 자기를 망하게 하느니라 4재물은 진노하시는 날에 무익하나 공의는 죽음에서 건지느니라 5완전한 자의 공의는 자기의 길을 곧게 하려니와 악한 자는 자기의 악으로 말미암아 넘어지리라 6정직한 자의 공의는 자기를 건지려니와 사악한 자는 자기의 악에 잡히리라 7악인은 죽을 때에 그 소망이 끊어지나니 불의의 소망이 없어지느니라 8의인은 환난에서 구원을 얻으나 악인은 자기의 길로 가느니라(1-8)

잠언 10-31장에는 다양한 주제 속에 지혜자와 우매자를 대조적으로 묘사한 금언들이 나타나며, 이를 통해 여호와 경외를 근본으로 한 지혜로운 삶을 고양합니다. 그런데 이런 금언들이 일정한 규칙이나 순서에 따라 배열되지 않았기 때문에 각 장에서 주제와 내용을 위주로 논리적 구조를 나누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렇더라도 우리는 먼저 각 장이나 단락에서 상대적으로 빈번하게 언급되는 주제가 있는지 살필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그 주제를 중심으로 읽어보면서, 그 주제가 어떤 특정한 삶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지 살펴볼 수 있습니다. 덧붙여 같은 주제라도 종종 다른 관점이나 결론을 제시할 수 있으므로, 그 부분들을 연결 시켜 보완하고 보충하여 좀 더 구체적인 결론에 이를 수 있습니다. 만약 한 절과 그 다음 구절의 내용이 서로 관련이 거의 없다면, 억지로 연결하기보다는 따로 떼어서 읽거나 비슷한 다른 구절과 비교하며 읽음으로 그 주제에 대한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잠언 11장은 대체로 10장과 비슷한 주제인 재물, 구제, 언어생활, 의인과 악인의 대조적 삶과 보응 등에 대한 금언을 소개하면서도 무엇보다 정직한 삶과 재물을 의지하지 않는 삶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본문 중 1-8절의 금언들은 대부분 정직한 경제생활을, 9-15절은 정직한 언어생활을 도모합니다. 이 목적을 위해 정직한 자에게 평안과 구원이 약속됨을 선언하고 의인과 악인의 대조적인 결말을 선언합니다. 1절은 거짓과 부당한 상거래가 아닌 정직과 공정을 기초로 한 상거래 행위를 실천하도록 권면합니다(16:11; 20:10, 23). 거짓 저울과 저울추로 사람들을 속여 물건은 적게 주고 돈을 많이 벌려는 심사는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상거래에 있어서 길이, 무게, 양 등을 잴 때 부정을 저지르지 말고 오직 공평한 저울과 추 그리고 공평한 측정법을 사용하라고 이미 명령하셨습니다(레 19:35-36). 2절에서 교만한 자란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고 자신이 최고인 양 착각하는 미련한 자이며 이런 자에게는 수치가 따라옵니다. 반면에 겸손한 자는 자신의 약함을 인지하고 마음으로 하나님을 인정하는 자(3:57)로서 지혜로운 자입니다. 이런 자에게는 칭찬과 축복이 임합니다(10:6-7). 2절과 1절을 연결해본다면 상거래 행위에 있어서 속임수를 쓰는 자들은 뻔뻔하고 남을 업신여기는 교만한 자들입니다. 거짓과 속임수로 얻은 그들의 재물이 증가함에 따라 그들의 수치와 다른 이로부터의 비판과 원한(10:7)도 함께 증가합니다. 3-6절에서는 ‘정직한 자’와 ‘속이는 자’(사악한 자로 번역됨)가 각각 3절과 6절에 나와 전체를 한 단락으로 묶어줍니다. 또한, 이 명칭들은 5절의 ‘완전한 자’, ‘악한 자’와 각각 연결됩니다. 전체 네 가지 금언은 ‘의인은 자신의 의로 구원을 얻고 악인은 자신의 악으로 멸망한다.’로 요약됩니다.

먼저 3, 5, 6절에서는 정직과 완전함이 강조되었습니다. 정직한 자나 완전한 자는 완전함(‘성실’로 번역됨)과 의를 추구하며 실천하므로 그들의 삶에서 걸려 넘어지거나 낭패를 보는 일없이 안전과 구원을 얻습니다(3:23, 26). 그러나 신의 없이 속이는 자는 그들이 갖고 있는 속임수나 사악함으로 삶을 꾸려가므로 자기들의 피와 행악으로 인해 넘어지고 패망하고 맙니다. 이처럼 아들의 삶의 대조적인 결과는 그들이 선택한 내면의 태도와 추구하는 삶의 방향에 따라 이미 결정 납니다. 4절은 경제생활에 대한 금언이며 의와 불의 그리고 이로 인한 심판을 다룹니다. 3, 5, 6절과 연결하여 볼 때, 거짓으로 얻은 재물의 무익함이 정직함으로 얻는 구원의 유익함과 대조됩니다. 이는 1-2절의 정직하고 겸손한 경제생활과 사회생활과도 연결해 생각할 수 있습니다. 4절의 금언에서는 재물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의 진노하시는 날 즉, 심판의 날에 무익하지만, 정의를 가진 사람은 그날에 구원을 얻는다고 말합니다. 이와 유사한 금언이 10:2에도 나오는데, 이를 연결해보면 11:4에서 언급하는 재물은 불의의 재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위의 1-3절에서 정직을 강조하고 있으므로, 이때 불의의 재물이란 속임수와 거짓의 산물입니다. 이런 재물을 쌓은 자는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정직과 정의를 실행하는 자는 이런 진노의 날에도 아주 해를 당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으로부터 구원을 얻습니다. 7-8절은 의인과 악인의 심판 날에 어떤 결과가 기다리는지를 대조합니다. 의인은 그의 삶에 어려움과 환난이 찾아온다고 하더라도 죄가 없음이 밝혀져 구원을 얻습니다. 반면, 악인은 의인이 무죄로 밝혀진 그 일에 자기의 죄가 드러나 심판을 받게 됩니다. 또한, 악인이 죽을 때, 그가 가졌던 소망이나 재물은 그와 함께 다 사라질 것입니다(10:28).

 

의인의 언어와 악인의 언어(9-15)

의인의 지혜롭고 정직한 말은 자신을 구원할 뿐 아니라 이웃도 구원하며 더 나아가 온 성읍에 평안을 안겨줍니다. 그의 형통을 성읍이 즐거워하고 그의 축복의 말을 통해 성읍이 번영을 누리게 됩니다. 반면에 두루 다니며 험담하고 이웃의 비밀을 퍼뜨리는 악인의 말은 이웃을 망하게 하고 자기 자신도 무너뜨리며 성읍도 무너지게 됩니다.

9악인은 입으로 그의 이웃을 망하게 하여도 의인은 그의 지식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느니라 10의인이 형통하면 성읍이 즐거워하고 악인이 패망하면 기뻐 외치느니라 11성읍은 정직한 자의 축복으로 인하여 진흥하고 악한 자의 입으로 말미암아 무너지느니라 12지혜 없는 자는 그의 이웃을 멸시하나 명철한 자는 잠잠하느니라 13두루 다니며 한담하는 자는 남의 비밀을 누설하나 마음이 신실한 자는 그런 것을 숨기느니라 14 지략이 없으면 백성이 망하여도 지략이 많으면 평안을 누리느니라 15타인을 위하여 보증이 되는 자는 손해를 당하여도 보증이 되기를 싫어하는 자는 평안하니라(9-15)

9-15절의 금언에는 내용 면에서 입, 축복, 침묵, 한담, 지략 등 언어와 관련 있는 단어나 주제가 나와 ‘언어생활’의 주제를 논합니다. 이 금언들은 정직하고 신실한 말을 하는 자에게 평안과 구원이 있음을 교훈합니다. 이 중 9-12절의 금언들은 형식면에서 모두 히브리어의 두 번째 자음인 ‘베트’로 시작하는 공통점이 있어 묶음을 강화합니다. 내용면에서, 1-8절이 경제생활의 정직을 강조한다면, 9-15절은 언어생활의 정직을 강조합니다. 또한, 1-8절이 의인과 악인의 삶 그리고 그 삶의 결과나 심판을 말한다면, 9-15절은 의인과 악인이 그들의 공동체인 이웃(9,12,13,15), 도시(10,11), 나라(14)에 끼치는 영향력을 언급합니다.

먼저, 9, 12, 13, 15절은 의인과 악인의 언어가 이웃에게 끼치는 영향을 말합니다. 특히 9절은 ‘악인의 언어’와 ‘의인의 지식’을 대조합니다. 이때 ‘악인’은 3, 6절의 신실하지 못한 자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을 저버린 자’, ‘불경건한 자’를 가리키므로. 여기서 ‘의인’은 특히 ‘하나님을 신뢰하는 경건한 자’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때 의인이 갖고 있는 ‘지식’은 여호와 경외를 기초로 하는 지식(17, 29; 2:5)이나 판단력을 뜻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떠난 불경건한 자는 말로 이웃을 망치지만, 의인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아는 지식을 기반으로 하는 판단력이 있으므로 지혜롭게 피할 수 있습니다.

12, 13절은 의인과 악인의 이웃에 대한 말에 대해 논합니다. 의인과 악인은 이웃을 대하는 태도가 다릅니다. 악인은 이웃을 멸시하는 데다 지각까지 없으므로 돌아다니며 이웃에 대해 중상모략을 일삼고 비밀을 누설합니다(10:18-19). 그러나 의인은 신실하므로 이웃을 음해하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또한, 분별력이 있어 입을 다물 때를 알고 이웃의 비밀을 덮어줍니다. 이처럼 의인의 혀는 이웃에게 생명의 샘과 같은 역할을 하지만 악인의 혀는 독을 머금어 해를 줍니다(10, 11). 그뿐 아니라 자기 자신들에게 영향을 미치므로 미련한 입은 수치와 허물을 벗어날 길이 없게 됩니다(10:19, 31). 15절은 보증에 대한 금언인데, 보증이 쌍방 간에 말로 합의를 본다는 점에서 위 구절들의 언어생활과 연결됩니다. 보증에 대한 경고는 이미 6:1-5에서 상세히 언급되었습니다. 즉, 빚보증을 서지 말고 혹 보증을 해준 경우 적극적으로 그 위험에서 벗어나도록 힘쓰라고 권합니다. 이제 10, 11절은 의인과 악인의 삶이 그들의 사는 마을이나 도시에 끼치는 영향을, 14절은 국가에 미치는 영향을 언급합니다. 성읍에서 의인이 형통하고 악인이 없어지면 그 성읍도 함께 즐겁고 번영하지만, 거짓과 한담하는 자가 있다면 성읍도 망하고 맙니다.


최근 우리 사회는 각종 비리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악하고 불의한 자들의 뇌물과 비리는 나라를 병들게 합니다. 악인이 끼치는 해악만큼이나 의인이 미치는 영향력 또한 큽니다. 공평하고 정의로운 사회, 누가 시작해야 합니까? 세상 속에 빛으로 남겨진 그리스도인들의 책임이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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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10-02)


성공과 행복을 위한 지혜

잠언 10장 18-32절


누구나 성공적인 생이길 원합니다. 누구나 행복한 삶이길 원합니다. 그런데 막연하게 성공과 행복만을 원할 뿐 그 의미를 바르게 정의하거나 길을 찾지는 않습니다. 성공하는 인생이란 무엇이며, 행복에 이르는 길은 어떤 것입니까? 지혜의 왕이 들려주는 성공과 행복에 대해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모든 축복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옵니다. 재물이나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이나 평안이나 모두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가 규정한 법을 따라 살 때 장수와 안전과 기쁨을 선물로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만을 신뢰하고 지혜롭고 정직한 말과 행동을 실천하는 자는 영원히 흔들리거나 요동함이 없습니다.

 

지혜자의 입술(18-32)

지혜자는 성공과 행복을 위해서 의인의 말을 할 것을 가르칩니다. 악인은 마음을 감추고 남에게 잘 보이려고 그럴듯하게 꾸며대는 말을 합니다. 마음의 감정을 숨긴 채 거짓말을 하거나, 그 미움의 마음을 비방으로 드러냅니다. 좀처럼 절제할 줄 모르며, 쉽게 악한 감정을 그대로 쏟아냅니다. 하지만 의인은 바른 말을 사용함으로 사람을 돌보고 돕는 목자가 됩니다.

18미움을 감추는 자는 거짓된 입술을 가진 자요 중상하는 자는 미련한 자이니라 19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하기 어려우나 그 입술을 제어하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 20의인의 혀는 순은과 같거니와 악인의 마음은 가치가 적으니라 21의인의 입술은 여러 사람을 교육하나 미련한 자는 지식이 없어 죽느니라 22여호와께서 주시는 복은 사람을 부하게 하고 근심을 겸하여 주지 아니하시느니라 23미련한 자는 행악으로 낙을 삼는 것 같이 명철한 자는 지혜로 낙을 삼느니라 24악인에게는 그의 두려워하는 것이 임하거니와 의인은 그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느니라 25회오리바람이 지나가면 악인은 없어져도 의인은 영원한 기초 같으니라 26게으른 자는 그 부리는 사람에게 마치 이에 식초 같고 눈에 연기 같으니라 27여호와를 경외하면 장수하느니라 그러나 악인의 수명은 짧아지느니라 28의인의 소망은 즐거움을 이루어도 악인의 소망은 끊어지느니라 29여호와의 도가 정직한 자에게는 산성이요 행악하는 자에게는 멸망이니라 30의인은 영영히 이동되지 아니하여도 악인은 땅에 거하지 못하게 되느니라 31의인의 입은 지혜를 내어도 패역한 혀는 베임을 당할 것이니라 32의인의 입술은 기쁘게 할 것을 알거늘 악인의 입은 패역을 말하느니라(18-32)

입술로 시작하고 끝맺으면서 말의 지혜를 교훈합니다. 또한, 의인의 삶과 악인의 삶을 비교하면서 그들이 맺게 될 삶의 열매나 보응을 대조하여 설명합니다.

(1) 의인의 언어와 악인의 언어(18-21)

잠언 10-15장에서 빈번히 논의되는 주제는 ‘언어’이며, 특히 지혜자와 우매자 또는 의인과 악인의 언어생활을 대조적으로 기술하고 있습니다.

이미 10:6-14에서 의인과 악인의 언어를 대조하였고, 이제 18-21절에서도 입술, 혀, 말 등의 단어를 사용하여 언어생활의 주제를 다시금 논하고 있습니다. 내용 면에서 6-14절의 금언들은 미련함과 폭력적 언어를 말하는 자는 패망을 맛보고 남에게 악한 영향을 미치나, 지혜의 말을 하는 자는 축복을 얻고 남에게 선한 영향을 미친다고 말합니다. 반면 18-21절의 금언들은 미련하고 악한 자의 언어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은 말의 질적, 양적인 면, 말의 가치, 말이 자신과 남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한 것입니다. 악인의 언어는 질적으로 분별력과 진실함이 없는 거짓말과 남을 헐뜯는 중상모략으로 나타납니다. 양적으로는 말이 많고 통제가 되지 않습니다. 이런 특징에서 그의 마음에 진실을 감추는 태도, 시기와 질투, 교만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마음에서 나오는 그의 말은 전혀 가치가 없습니다. 또한, 지각은 없으면서 말이 많으므로 그의 허물과 죄는 늘어가고, 그는 지식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영적으로 죽습니다. 반면, 의인의 언어에 대해서는 그 가치와 다른 사람에게 끼치는 영향력이 직접적으로 기술되고, 나머지는 악인의 언어를 통해 의인의 언어생활이 간접적으로 나타납니다. 의인의 말은 정직과 사랑을 베풉니다. 그의 마음에 분별력이 있으므로 말을 가려 할 줄 압니다. 그러므로 의인의 말은 최고의 은과 같은 가치를 가지며, 양에게 꼴을 먹이듯 그의 지혜로 다른 이들을 먹여 배부르게 만듭니다.

(2) 여호와, 의인, 악인(22-30)

22-32절은 계속해서 의인과 악인 또는 지혜자와 우매자를 대조합니다. 이 단락은 내용상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22-30절은 ‘여호와의 축복’, ‘여호와 경외’, ‘여호와의 도’ 등 여호와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주제를 통해 의인과 악인을 대조합니다. 31-32절은 다시금 ‘언어’를 통해 구분되는 의인과 악인을 언급합니다. 먼저 22-30절의 구조와 내용을 살펴보면, 위에서 말한 여호와의 축복, 경외, 도가 22, 27, 29절에 등장하며, 그 사이의 23-24절은 28절과 의미상 연결점이 있고, 25절은 30절과 연결점을 나타냅니다. 이로써 22-30절의 전체 내용을 묶어줍니다. 먼저 22절은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으로서의 부에 대한 금언입니다. 부는 사람이 성취하여 얻은 결과가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나의 부지런함과 능력으로 재물을 얻는 것처럼 생각되지만, 내가 열심히 일한다고 해서 또는 건강하고 재능이 있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부를 쌓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여기에 덧붙여 기억할 것은 현재 나에게 있는 재산의 많고 적음이 나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축복의 많고 적음을 측정하는 기준이 될 수 없다는 점입니다. 2절에서 언급하였듯이 불의로 모은 보화는 모은 자에게 걱정과 불안을 제공하여 무익하지만, 하나님이 허락하신 재물은 평안과 안전을 가져다주어 우리에게 유익을 줍니다. 23-26절은 의인과 악인에게 임하는 기쁨과 슬픔에 대해 말합니다. 미련한 자는 나쁜 짓을 하며 낄낄대고 좋아하지만, 명철한 자는 지혜를 소유한 것으로 기뻐합니다. 그러므로 미련한 자는 자신의 행악으로 인한 죄의식과 두려움으로 떨며 지내다 결국 심판을 받게 됩니다. 또한, 회오리바람과 같은 심판이 지나가면 그는 자취조차 찾기 어렵게 됩니다(시 1:4). 그러나 명철한 자는 정직과 지혜로 행하므로 자기의 바람이 성취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의인의 이 같은 결과는 22절에서 말하는 하나님이 내려주신 축복입니다. 마치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지혜로운 자처럼 홍수가 나도 그의 집은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마 7:24-27). 시편 47편에서 말하듯 성이 흔들리고 산과 바다가 요동해도 의인은 하나님을 피난처로 신뢰하므로 요동함이 없고 흔들리지 않습니다(46:1-11; 55:22). 25절은 2-5절처럼 게으른 자를 미련한 자로 설명하며, 게으름(6:6-11; 10:26; 13:4; 15:19; 19:24; 22:13; 24:30; 26:13-16)으로 인해 본인만이 아니라 다른 이에게까지 고통을 준다는 점을 교훈합니다. 게으른 자는 자기를 지혜롭게 여기지만(26:16), 사실 분별력이 없는 자입니다(24:30). 그러므로 그는 주인에게 유익을 주기보다는 이빨을 시게하는 신 포도주나 눈을 따갑게 만드는 연기와 같이 주인에게 괴로움과 고통을 주고 손해를 끼칩니다. 그러므로 15:19에서는 게으른 자의 길을 가시밭으로, 정직한 자의 길을 대로(15:19)로 칭하였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게으른 자’의 대조로 ‘정직한 자’를 들었다는 점입니다. 게으름은 단순히 꾸물거리고 일을 미루는 것만이 아니라 부정직한 말이나 행동을 유발할 수도 있다는 암시입니다. 밖에 사자가 있어서 나가면 죽는다(22:13; 26:13)며, 말도 안 되는 변명과 거짓말로 자신의 게으름을 정당화하려는 예에서도 이 점이 나타납니다.

22절에서는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으로 부에 대해 말했고, 이제 27-28절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에 대한 축복으로 장수와 기쁨을 얻는다고 말합니다. 여호와 경외의 선물인 장수의 축복(3:2; 9:11)은 지혜의 훈계에 순종했을 때의 선물로도 소개됩니다. 즉, 내면적으로 여호와를 신뢰하고 외면적으로 그의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을 나타내야 합니다. 여호와와 그의 말씀을 무시하므로 악인에게는 하나님이 약속하시는 축복이 아닌 두려움과 고통이 임합니다(23). 여기서도 덧붙여 기억해야 하는 것은 성도들의 수명 자체가 여호와 경외에 대한 척도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또한, 여호와를 경외하는 의인은 장수만이 아니라 24절에서 언급하듯 하나님께 간구하는 그의 소원이 이루어지는 기쁨을 맛보게 됩니다. 그러나 악인이 기대하는 것은 이루어지지 않고 망합니다(시 1:6).

29-30절은 마음으로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과 더불어 행동으로도 여호와의 도를 순종하라는 교훈을 주며 이에 따른 의인과 악인의 결말을 소개합니다. 하나님이 규정하신 길을 따라가는 자는 어떤 일을 만났을 때 말씀에 비추어 정직과 공의를 선택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25절에서 언급되었듯이 영원히 안전하며 요동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악인은 하나님의 도를 무시하고 미련한 행동을 선택하므로 궁극적으로 고통과 멸망에 이르게 됩니다. 27절에서 말하듯이 악인에게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태도가 없으므로 그의 수명이 짧아져 하나님이 기업으로 주신 땅에서 오랫동안 사는 축복을 누리지 못할 것입니다.

(3) 의인의 언어와 악인의 언어(31-32)

10장을 마무리하는 31-32절은 다시금 2-14, 18-21절의 주제인 ‘언어’로 돌아갑니다. 특히, 31절은 의인과 악인의 말을 나무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의인의 마음에 지혜를 심고 그의 입으로 지혜를 키워 점점 더 자라게 하여 지혜로운 행동과 결과로 열매를 맺습니다. 그러나 악인의 말은 왜곡되고 분별력이 없으므로 베임을 당해 성장이 멈추고 갈수록 마르고 쇠퇴합니다. 32절은 의인과 악인의 말의 내용에 대해 언급합니다. 의인은 어떤 말이 적절하고 은혜를 끼치는지 알므로 경우에 바른말을 하지만, 악인은 지각이 없어 마음에 쌓은 악을 입으로 내뱉으며 폭력으로 채웁니다(6, 11). 또한, 의인은 자신과 소통하는 자를 지식과 지혜로 먹일 수 있지만, 악인은 상대방에게 미련함과 허물을 보이는 등 고통을 주고 해만 끼치게 됩니다.

 


 

인간은 의롭게 살 때 참된 성공과 행복에 이를 수 있습니다. 불의한 삶은 늘 근심과 불안을 촉발하여 인간을 지치게 하고, 평안과 기쁨을 빼앗아 생명을 소진합니다. 언어와 재물 사용이 의롭게 되도록 훈련하시길 바랍니다. 경건의 연습은 금생과 내생에 약속을 가져다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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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10-01)

 


잘 사는 삶에 대한 지혜

잠언 10장 1-17절


 

서점에 가보면 삶의 기술을 가르쳐주는 다양한 실용서적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웰빙’이 우리 사대의 화도가 된 지도 꽤 오래되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잘사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고 있는 듯합니다. 그저 잘 먹고 편히 사는 것이 ‘웰빙’입니까? 잠언은 ‘잘 사는’ 것이 무엇인지 가르쳐줍니다.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의인과 악인 혹은 지혜자와 우매자를 구분 짓는 기준 중 하나입니다. 입으로 지혜와 지식의 말을 전하는 사람은 안전함과 축복의 삶을 살며, 다른 사람을 치유하고 살리는 생명의 샘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입에 미련함과 폭력을 가득 채운 자는 채찍과 가난의 고통을 겪으며 결국 패망에 이릅니다.

 

지혜자의 입술(1-17)

하나님께서는 의인을 돌보시고 악인을 벌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의인과 악인, 불의와 공의를 눈여겨보시며, 공의를 지켜가십니다. 혹 불의의 재물로 자신의 미래와 안전을 보장받으려 하지는 않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 필요를 채우시고 책임져주시는 사실을 믿고 힘써 이를 행해야 합니다.

 

1솔로몬의 잠언이라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를 기쁘게 하거니와 미련한 아들은 어미의 근심이니라 2불의의 재물은 무익하여도 공의는 죽음에서 건지느니라 3여호와께서 의인의 영혼은 주리지 않게 하시나 악인의 소욕은 물리치시느니라 4손을 게으르게 놀리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손이 부지런한 자는 부하게 되느니라 5여름에 거두는 자는 지혜로운 아들이나 추수 때에 자는 자는 부끄러움을 끼치는 아들이니라 6의인의 머리에는 복이 임하나 악인의 입은 독을 머금었느니라 7의인을 기념할 때에는 칭찬하거니와 악인의 이름은 썩게 되느니라 8마음이 지혜로운 자는 계명을 받거니와 입이 미련한 자는 멸망하리라 9바른 길로 행하는 자는 걸음이 평안하려니와 굽은 길로 행하는 자는 드러나리라 10눈짓하는 자는 근심을 끼치고 입이 미련한 자는 멸망하느니라 11의인의 입은 생명의 샘이라도 악인의 입은 독을 머금었느니라 12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느니라 13명철한 자의 입술에는 지혜가 있어도 지혜 없는 자의 등을 위하여는 채찍이 있느니라 14지혜로운 자는 지식을 간직하거니와 미련한 자의 입은 멸망에 가까우니라 15부자의 재물은 그의 견고한 성이요 가난한 자의 궁핍은 그의 멸망이니라 16의인의 수고는 생명에 이르고 악인의 소득은 죄에 이르느니라 17훈계를 지키는 자는 생명 길로 행하여도 징계를 버리는 자는 그릇 가느니라(1-17)

 

지혜로운 자는 마음에 훈계를 간직하며 말과 행동으로 선과 사랑을 베푸는 자입니다. 그러나 미련한 자는 말과 행동으로 미련함과 폭력을 나타내며 자신과 다른 이에게 고통을 줍니다.

 

(1) 표제 및 서론(1)

잠언 1-9장에는 주로 내 아들아로 시작되는 10절 내외의 권면을 담은 강연이 모여 있습니다. 반면, 10-30장에는 대부분 두 문장의 짧은 금언(=경구)이 나타납니다. 문맥과 내용 및 주제를 살펴보면, 1-9장의 강연들은 특정한 문맥 안에서 주제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주제는 대부분 여호와 경외와 관련이 있으며, 내용으로는 아버지의 훈계를 비롯하여 지혜의 초청, 지혜의 여인과 음녀의 비교가 자주 언급됩니다. 이에 반해, 10-30장의 금언들은 대부분 특정한 문맥이 없고 독립적이며 반의적이거나 비교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금언은 지혜자와 우매자(또는 의인과 악인)를 대조하고 있습니다. 배열에 있어서는 전체적으로 공통된 규칙이 있지는 않지만 어떤 한 단어나 주제 등의 의미 또는 공통된 형식을 토대로 소수의 금언들이 모여있는 형태가 여기저기 나타납니다.

한편, 잠언 10-30장 중 10:1-22:16은 ‘솔로몬의 잠언’이라는 표제(10:1) 아래 한 단락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 부분은 내용상 10-15장, 16-22장의 두 부분으로 나뉩니다. 먼저 10-15장에서는 지혜자와 우매자에 대한 대조적인 내용의 금언들이 주를 이루고 있으며, 상대적으로 말(언어)에 대한 경고가 빈번하게 나옵니다. 16-22장에서는 궁이나 사회생활에 있어서 지혜자와 우매자를 비교하는 금언들이 대부분이며, 계획과 실현, 정의, 사회성 등의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러한 주제들은 가정과 사회와 국가라는 배경 안에서 지식적, 경기 사회적, 도덕적, 영적 교훈을 제공합니다. 이제 본문으로 들어가서, 10장 또는 10-22장 단락의 첫 금언은 지혜로운 아들이 되어 부모에게 기쁨이 되라는 내용입니다. 자녀가 지혜롭고 의로운 삶이 어떤 것인지를 깨닫고 그런 삶을 실천하면 부모에게 기쁨을 줄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권고는 잠언 10-31장의 다양한 구절에서 나타납니다(15:20: 17:21,25; 19:13; 23:24–25; 27:11).

 

(2) 부와 가난(2-5)

‘솔로몬의 잠언’이란 표제 하에 가장 먼저 소개하는 주제는 부와 가난의 주제입니다. 이 주제는 재물과 의리, 의인과 악인,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처사, 게으름과 부지런함과 관련하여 설명되었습니다. 즉, 이 주제는 경제적, 사회적, 신앙적, 도덕적인 면에서 다루어졌습니다. 이 단락이 주는 교훈은 먼저, 악한 수단을 써서 얻은 재물은 죽음 앞에서 무익하다는 것입니다. 그런 재물은 사라지는 안개와 같고(21:6), 하나님의 심판을 받기 마땅합니다(1:19; 19:16). 오직 의로움(‘의리’로 번역됨)만이 온갖 고난 속에서도 우리를 구해줍니다. 둘째, 하나님께서는 종국에 의인과 악인에게 마땅한 상과 벌을 내리실 것입니다. 의인이 굶주리지 않고 죽음에서도 건짐을 받는 것은 하나님의 공급과 보살핌 때문입니다. 그러나 악인의 탐욕은 들어주지 않고 좌절시키십니다. 셋째, 근면하고 성실하고 장래를 대비해야 부하게 되며, 이런 자가 지혜로운 자입니다. 잠언에서 종종 게으름과 부지런함을 가난과 부로 직결시키는데 그 이유는 근면성을 함양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현재의 부나 가난이 그 사람의 근면과 성실함 또는 그가 지혜자인지 우매자인지를 측정하는 절대 기준은 아닙니다. 이와 같은 세 가지 교훈을 깨닫고 행하는 자는 지혜로우며, 1절에 언급되었듯이 이런 자식이 부모에게 기쁨이 될 것입니다.

 

(3) 의인의 언어와 악인의 언어(6-14)

위에서 언급했듯이 10-15장에서 빈번히 논의되는 주제는 ‘언어’입니다. 10장에서도 6-14절과 18-21절에 입, 입술. 혀 등의 단어가 등장하여 언어와 관련된 금언을 제시합니다. 언어생활을 통해 지혜자와 우매자, 악인과 의인이 구별됩니다. 먼저, 6절과 7절은 ‘의인’과 ‘악인’이란 단어뿐만 아니라 축복(각각 ‘복’과 ‘칭찬’으로 번역됨)이 공통으로 나와 서로 연결됩니다. 이 두 구절을 종합하면 의인은 사람들로부터 축복의 말을 듣지만, 악인은 입에 폭력과 저주의 말을 담고 있으므로 사람들로부터 저주의 말을 듣는다고 요약할 수 있습니다.

8,10,13,14절은 공통적으로, 입에 지혜와 지식을 간직한 자와 입이 미련한 자들을 대조합니다. 먼저, 이 구절들은 입이 미련한 자가 그의 미련한 말 때문에 채찍과 멸망을 자초한다고 공통으로 말합니다. 특히, 10절은 입과 더불어 눈을 추가하며 악인의 행악이 개인뿐 아니라 사회에 미치는 영향까지도 설명합니다. 공모자에게 눈짓을 보내어 은밀하게 악한 계획을 주고받거나(6:13; 16:30) 입으로 미련한 말을 전달하는 미련한 자의 행동은 다른 이에게 근심을 끼치고 본인에게 멸망을 초래할 뿐입니다. 반면, 이들과 대조를 이루는 지혜로운 자는 8, 13, 14절에서 공통적으로 ‘명령’, ‘지혜’, ‘지식’을 마음과 입술에 가까이 두는 자로 묘사됩니다. 마음이 지혜로운 자는 다른 이의 명령을 받아들여 더 지혜로워지고, 지식을 소중히 간직하고 지혜로운 말을 하므로 멸망에서 멉니다. 특히, 이 지혜자가 간직하는 ‘지식’은 1-9장에서 여호와 경외나 여호와를 아는 지식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설명되었습니다(1:7,22,29,2:5;8:12-13 등), 이러한 설명이 1-9장에 충분하고 확실하게 제시되었으므로, 형식 면에서 전환을 이루는 오늘 본문 10장과 이후로는 지식을 직접적으로 여호와 경외나 여호와를 아는 지식과 연결하여 설명하기보다는 이 지식이 바로 지혜로운 자와 미련한 자를 구별하는 척도임을 나타내는데 언급됩니다(12:1, 23: 14:6, 7, 18: 15:2, 714: 17:27: 18:15: 19:2, 25, 27: 21:11: 22:12: 29:7 등). 한편, 9절은 완전함으로(‘바른 길’로 번역됨) 걷는 자와 자기길을 굽게 만드는 자를 대조합니다. 여기서 길은 삶의 여정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 구절은 앞의 8절과 연결하여 읽을 수 있는데, 그 이유는 마음이 지혜로워 명령을 받은 자가 이제 그 명령을 실행함으로써 완전한 삶을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격과 신앙의 완전함을 목표로 사는 자는 그 삶이 안전하지만, 왜곡되고 사악한 행위를 선택하며 사는 자는 그 불의한 행위가 다 드러나게 됩니다.

11,12절은 의인과 악인의 언어가 다른 이에게 미치는 영향력에 대해 설명합니다. 의인의 말은 목마른 자의 갈증을 완전히 해소하며 생명을 소생시키는 샘처럼 듣는 이에게 삶의 활력과 기쁨을 줍니다. 또한, 허물을 가려주어 아픈 자리를 치유합니다. 그러므로 6-7절에서 언급하듯이 의인에게 축복이 임하며 의인은 축복의 말(칭찬)을 듣게 됩니다. 그러나 악인은 6절에서 언급되었듯 그 입에 폭력이 가득하므로 그의 폭언으로 인해 남에게 상처와 고통을 안겨줍니다. 폭언과 함께 그 내면에 자리 잡은 미움으로 인해 다툼을 불러일으킵니다.

 

(4) 부와 가난(15-16)

악인과 의인의 언어생활 뒤에 다시 부와 가난의 주제가 언급됩니다. 그러므로 15-16절에서는 지혜와 지식의 언어생활을 하는 자가 일을 통해 얻은 대가와 재물은 근심과 고통을 막아주는 견고한 성이 되며 생명을 줍니다. 그러나 미련하고 폭력적인 말을 하는 자는 불의의 소득을 얻으므로 심판을 받아 가난해지고 결국 패망에 이르게 됩니다.

 

(5) 훈계를 지키는 자와 버리는 자(17)

훈계나 징계를 지키는 자는 생명의 길로 가지만 그것들을 무시하고 버리는 자는 길을 잃어 방황하게 됩니다. 지금까지 부와 가난, 언어생활을 중심으로 훈계를 들었으므로 이제 이를 삶에 실천하여 지식, 도덕, 신앙 면에서 생명을 지속하고 성장하며 나가야 합니다.

 


잘 살기 원하십니까? 성공적으로 사는 인생이고 싶습니까? 잠언에서 삶의 기술을 배우십시오. 잠언의 권면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잘 사는 기술이란 의롭게 사는 것이고, 의롭게 사는 것이 성공과 행복에 이르는 유일한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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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09-01)

 


지혜자와 어리석은 자의 삶

잠언 9장 1-18절


 

지혜자의 삶과 어리석은 자의 삶은 시작이 비슷하게 출발합니다. 처음 삶의 여정을 시작할 때는 아주 사소한 삶의 태도에 따라 지혜자의 삶으로 나가느냐, 어리석은 자의 삶으로 나가느냐가 결정됩니다. 이렇게 그 시작은 지극히 작은 차이지만, 어느 삶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그 끝은 생명을 얻는 길(잠 9:6)과 죽은 자들이 떨어지는 길(잠 19:18)로 나뉘게 됩니다.

 

지혜와 우매가 각각 자신들의 연회에 오라는 초대장을 내밀 때 나는 어떤 초대에 응할 것입니까? 두 여인의 초청이 겉으로 보기에는 흡사하지만 연회의 준비, 음식, 초대의 결과는 극과 극의 대조를 이룹니다.

 

부록(05) : 지혜로운 여인의 초대(1-6)

오늘날 우리는 지식과 정보가 넘쳐나고 엄청난 속도로 기술이 발전하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우리가 이전 시대 사람들보다 더 지혜롭고 명철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지혜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지혜로 우리를 견고하게 세워줍니다. ㄱ러니 생명의 지혜를 붙들어 견고히 서야 합니다.

 

1지혜가 그의 집을 짓고 일곱 기둥을 다듬고 2짐승을 잡으며 포도주를 혼합하여 상을 갖추고 3자기의 여종을 보내어 성중 높은 곳에서 불러 이르기를 4어리석은 자는 이리로 돌이키라 또 지혜 없는 자에게 이르기를 5너는 와서 내 식물을 먹으며 내 혼합한 포도주를 마시고 6어리석음을 버리고 생명을 얻으라 명철의 길을 행하라 하느니라(1-6)

 

1-6절까지는 지혜의 여인이 마련한 초대를 묘사합니다. 지혜는 일곱 기둥으로 받쳐진 완벽한 집을 짓고 큰 연회를 베풀어 사람을 초청하려 합니다. 또 손님을 위해 푸짐하고 아낌없는 음식과 마실 것을 준비합니다. 향신료를 섞어 풍미를 높인 포도주와 고기는 잔치에서 최상의 음식을 상징합니다. 이러한 지혜의 손님맞이는 7장의 음녀가 자기 침대를 고가의 침대보와 이불로 장식하고 향수를 뿌려 자신의 먹잇감을 꾀려고 준비한 모습과 대조적입니다(7:16-17). 최상의 잔치를 준비한 지혜는 여종들을 보내어 성중 높은 곳에서 초대의 말을 외치게 하여 성안의 모든 사람이 지혜를 얻을 기회를 줍니다. 이처럼 지혜가 성의 높은 곳에서 모든 이에게 전파되는 사건은 하나님의 말씀이 높은 곳에 있는 성전에서 선포되어 만국의 사람들에게 전달되는 사건을 상기시킵니다. 특히 지혜가 초청하는 손님은 어리석고 분별력이 결여된 자들입니다. 지혜는 그들에게 두 가지를 권고합니다. 첫째 명령은 “지혜가 베푼 연회에 와서 음식을 먹고 포도주를 마시라”는 것입니다. 연회와 연회에서 제공되는 음식은 지혜가 사람에게 주는 유익과 선물의 상징적 표현입니다. 지혜가 마련한 최상의 음식을 먹고 마신 자는 그 결과로 한순간의 배부름과 만족이 아닌 생명과 명철의 삶을 얻을 수 있습니다. 둘째 명령은 “어리석음을 버리며 살고 명철의 길을 걸으라”는 것입니다(4:4; 7:2). 아버지가 전하는 지혜의 말을 지키고 생명을 얻으라는 권면과 같습니다. 이 구절들이 말해주듯 어리석음을 버리려면 지혜의 말을 붙잡고 지켜야 합니다. 지혜의 잔치에 응하여 지혜가 주는 분별력을 얻고 그에 따라 살 때 지혜의 삶, 영적으로 살아 있는 삶을 살게 됩니다.

 

여호와 경외가 지혜의 근본(7-12)

지혜란 단지 돈이 되는 정보나 지식이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그러한 지혜는 많은 유익을 누리게 해주지만, 가장 큰 유익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지혜롭지 못한 자가 받는 가장 큰 해는 하나님을 경시하며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당신은 지금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7거만한 자를 징계하는 자는 도리어 능욕을 받고 악인을 책망하는 자는 도리어 흠이 잡히느니라 8거만한 자를 책망하지 말라 그가 너를 미워할까 두려우니라 지혜 있는 자를 책망하라 그가 너를 사랑하리라 9지혜 있는 자에게 교훈을 더하라 그가 더욱 지혜로워질 것이요 의로운 사람을 가르치라 그의 학식이 더하리라 10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11나 지혜로 말미암아 네 날이 많아질 것이요 네 생명의 해가 네게 더하리라 12네가 만일 지혜로우면 그 지혜가 네게 유익할 것이나 네가 만일 거만하면 너 홀로 해를 당하리라(7-12)

 

7-12절은 앞뒤로 나오는 두 여인의 초대에 응하는 사람을 두 종류(거만한 자와 지혜로운 자)로 나누어 대조하고(7-9), 지혜와 우매의 근본적인 차이점이 여호와 경외의 유무에 있음을 부각합니다(10-12). 먼저 훈계의 대상으로서 거만한 자와 지혜로운 자에 대해 언급합니다. 7절은 거만한 훈계하지 말고 지혜로운 자를 훈계하고 가르치라고 명합니다. 거만한 자는 빈정대고 조롱하는 미련하고 악한 자를 가리키며 의인은 겸손하고 지혜로운 자를 가리킵니다. 미련하고 악한 자는 자기를 책망하는 사람을 미워하여 도리어 그를 모욕하고 흠을 잡는 등 더 많은 악과 우매한 행동을 저지릅니다. 그러나 지혜롭고 의로운 자는 자기를 훈계하는 목적이 자신에게 유익을 주기 위함임을 알고 있으므로 그 사람을 사랑하고, 그의 교훈을 받아 더 나은 판단력과 더 많은 배움을 얻습니다. 그렇다면 지혜로운 자가 책망을 받아들이는 근본적인 원인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것은 바로 그의 삶에 여호와 경외가 뿌리박혀 있기 때문입니다. 9:10의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라는 말은 여호와 경외가 지혜의 출발점이라는 의미이며, 이는 잠언 1-9장 전체 메시지의 핵심입니다. 1:7에도 요약된 이 메시지는 9:10에 반복 요약됨으로써 여호와 경외의 주제를 다시금 강조합니다. 어떤 사람의 태도나 지식이나 언행이 사람의 눈에 보기에 지혜롭고 현명하다 하더라도 여호와 경외가 결여된 지식이나 분별력은 하나님이 인정하고 성경이 말하는 지혜와 거리가 멉니다. 한편, 여기서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여호와를 아는 것이라고 설명되었습니다. 히브리어로 ‘알다(야다)’라는 동사는 일반적이거나 전문적인 지식을 소유했다는 의미뿐 아니라 어떤 대상과 긴밀한 관계를 갖고 있음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분을 알기 이전에 이미 우리를 알고 계십니다. 시편 139편에서 묘사한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개개인의 마음과 생각, 말과 행동을 속속들이 다 알고 계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과 개인적이고 친밀한 관계를 지속함으로써 그가 어떤 분이며, 무슨 일을 행하시는지,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시는지 알게 됩니다. 특히 성경이 하나님이 누구시며 어떤 일을 행하시는지 알려줍니다. 또한, 하나님의 명령과 말씀은 하나님의 성품과 말과 행동이 일치함을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그의 명령은 우리가 삶에서 어떤 방향으로 나가야 할지 인도해줍니다.

여호와 경외를 근본으로 하여 지혜를 얻을 때 그 유익으로 장수의 축복이 약속되었습니다. 잠언과 성경의 다른 책에 나오는 장수의 축복은 건강하고 평안한 삶을 사는 축복을 의미합니다. 이와 같이 지혜로 인한 유익과 축복을 받는 일차적인 대상은 나 자신입니다. 마찬가지로 미련함으로 인한 해를 받는 대상도 나 자신입니다. 그러므로 현명한 선택이 필수입니다.

 

우매한 여인의 초대(13-18)

혹시 다른 사람의 눈을 피해 몰래 마시며 즐기는 죄가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왜곡하며 쾌락과 이익만을 쫓는다면 그 끝은 틀림없이 파멸과 죽음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소리가 아니라 주님의 소리에 귀를 기울리며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13미련한 여인이 떠들며 어리석어서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14자기 집 문에 앉으며 성읍 높은 곳에 있는 자리에 앉아서 15자기 길을 바로 가는 행인들을 불러 이르되 16어리석은 자는 이리로 돌이키라 또 지혜 없는 자에게 이르기를 17도둑질한 물이 달고 몰래 먹는 떡이 맛이 있다 하는도다 18오직 그 어리석은 자는 죽은 자들이 거기 있는 것과 그의 객들이 스올 깊은 곳에 있는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13-18)

 

13-18절은 위 1-6절의 지혜의 여인과 대조되는 우매의 여인을 소개합니다. 이 우매한 여인은 잠언 1-9장의 여러 곳에서 ‘음녀’나 ‘이방 여인’으로 소개된 여인과 같은 유형의 여인입니다. ‘음녀’는 아첨하는 입과 화려한 외모로 거리에서든 광장 모퉁이에서든 유혹할 사람을 기다렸다가 적당한 사람이 오면 적극적으로 그 사람을 꾀는 여자입니다(7:12-13). 9장에서 소개되는 우매한 여인도 음녀처럼 지나가는 사람들을 유혹하는 여인입니다. 이 여인은 지혜의 여인을 따라 연회를 준비하고 사람들을 초청합니다. 그런데 이 여인은 제 길을 똑바로 가고 있는 자들 즉, 이미 분별력을 갖고 자기 할 일을 제대로 하고 있는 사람들까지 붙들어 자기 연회에 초청합니다. 더군다나 지혜의 여인과 똑같이 그들에게 “어리석은 자는 이리로 돌이키라”고 권고합니다(4,16). 여기서 잘 보여주듯이, 내가 현재 판단력을 갖고 지혜롭게 살고 있다 하더라도 어리석음은 나를 호시탐탐 노리며, 지혜와 똑같은 말을 들려주어 혼동을 줄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자신만만해하지 말고 한순간의 미련한 생각과 언행에 빠지지 않도록 겸손하게 또 적극적이면서도 지속적으로 지혜의 초청에 응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매한 여인이 준비한 잔칫상은 어떠합니까? 지혜로운 여인은 최고의 음식을 아낌없이 손수 준비하여 손님을 맞았습니다. 그러나 우매한 여인은 남이 수고하여 만든 떡과 음료를 도둑질하여 식탁을 준비해 놓았습니다. 여기서 우매의 인색함, 게으름, 남의 수고를 가로채는 뻔뻔함, 불의 등의 악한 성품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도둑질한 물이나 몰래 먹는 떡 즉, 남몰래 저지르는 악의 맛이 꿀맛이라고 평가합니다. 우매의 여인은 이와 같이 손님들의 주의를 돌려 떡과 음료의 맛에 집중하도록 함으로써 그 음식이 도둑질과 불의의 열매라는 사실을 소홀히 여기도록 만듭니다. 우매의 여인의 이러한 거짓말과 유혹에 빠진 예는 몰래 숨어 있다가 지나가는 사람의 돈과 목숨을 빼앗기를 일삼는 강도(2:16-17)나 신앙과 도덕을 저버리고 남의 눈을 피해 음행을 자행하면서 자기들의 만족을 좇는 음녀와 음녀를 찾는 자(7:10-20)에게서 이미 잘 나타났습니다. 와 같이, 악을 행하는 것이 마음을 두근거리게 하고 설레게 한다는 생각이나 이런 악행의 결과로 원하는 것을 쉽게 손에 쥐고 쾌락을 맛볼 수 있다는 생각은 자신을 어리석음의 수렁으로 밀어 넣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우매한 여인의 이 같은 초대에 응한 사람들의 마지막은 무덤과 사망입니다. 이 여인의 연회에 죽은 영혼이 있고 손님들이 이미 음부 깊은 곳에 있다(18)는 말은 그들이 이미 도덕적으로나 영적으로 죽은 자들이라는 뜻입니다. 이와 같은 죽음의 결과는 음녀의 꾐에 넘어가거나 음녀를 찾아가는 자에게도 마찬가지라고 잠언의 여러 곳에 기록되었습니다(2:18-19; 5:5-6; 6:33; 7:26~27). 이처럼 우매나 음녀의 초청을 받아들여 불의와 미련함을 버리지 못한다면 결국은 심판과 사망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어리석은 자는 책망을 싫어합니다. 반면에 지혜로운 자는 책망하는 자를 사랑합니다(잠 9:3b), 마음에 찔림이 있다는 것은 여러분이 지혜로운 자라는 증거입니다. 마음에 뉘우침이 있다는 것은 감사하게도 우리가 어리석은 자의 완고함으로부터 벗어나 있다는 반증입니다. 말씀 속에 깨우침을 받아, 어리석은 자의 삶에서 지혜자의 삶으로 변화되는 참 지혜가 임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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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08-02)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의 능력

잠언 8장 22-36절


잠언은 성공과 부를 얻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책이 아닙니다. 잠언을 읽으면 머리가 좋아지고, 똑똑해져서 이 세상에서 성공하도록 도와주는 책이 아닙니다. 오히려 잠언은 악한 세상에서 그리스도로 살아가는 길이 무엇인지를 보여줍니다.

 

지혜는 창조와 인간 삶에 있어 질서와 원동력을 제공합니다. 지혜는 창조 이전부터 존재하여 하나님의 우주 창조 사역에 있어 명장 역할로 동참하였습니다. 이제 지혜는 인간의 삶의 모든 영역에도 침투하여 영향력을 미치고 우리와 긴밀한 상호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지혜의 강연(02) : 창조 전에 태어난 지혜(22-26)

하나님의 지혜는 절대적이고 완전하고 영원합니다. 지혜는 근본적으로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과 구원의 근거는 영원 전부터 하나님과 함께하신 그리스도이십니다. 지혜이신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삶을 살 때 우리는 하나님 지혜의 능력을 매일의 삶 가운데 구체적으로 경험하며 살 수 있습니다.

 

22여호와께서 그 조화의 시작 곧 태초에 일하시기 전에 나를 가지셨으며 23만세 전부터, 태초부터, 땅이 생기기 전부터 내가 세움을 받았나니 24아직 바다가 생기지 아니하였고 큰 샘들이 있기 전에 내가 이미 났으며 25산이 세워지기 전에, 언덕이 생기기 전에 내가 이미 났으니 26하나님이 아직 땅도, 들도, 세상 진토의 근원도 짓지 아니하셨을 때에라(22-26)

 

본문 잠언 8:22-36은 지혜의 두 번째 강연에 해당하는 8:1-36의 후반부에 속합니다. 1-21절까지는 지혜의 초청과 유익, 지혜의 현재 속성과 통치 등을 기술하였습니다. 이제 22-31절은 내용상 두 부분으로 나뉘어, 창조 때의 지혜의 역할(22-31)과 지혜의 초청(32-26)을 묘사합니다.

이 단락에서 지혜는 하나님의 우주 창조에 관여한 하나님의 속성으로 소개됩니다. 지혜의 특별한 점은 지혜가 하나님께서 우주 만물을 창조하기 이전에 이미 존재했다는 데서 나타납니다. 이 점은 22-26절까지 무려 다섯 절에 걸쳐 나타날 정도로 강조되었습니다. 마치 어머니가 아이를 낳듯 지혜가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창세기 1:2에 따르면 창조 이전에 깊음(깊은 바다)이 이미 존재했음을 알 수 있는데, 지혜는 이 원시의 물보다 자기가 더 먼저 존재했음을 밝힙니다. 지혜는 시간상 영원 전부터 모습이 갖추어졌고, 산과 땅과 물 같은 피조물과 비교했을 때에도 그보다 먼저 태어났으며, 하나님께서 우주 창조를 시작하시기 전에 이미 존재했다고 설명하며 자신의 존재가 그 어느 피조물보다 앞섰음을 확실히 합니다. 지혜가 창조 전에 이미 존재했고 창조 때에 거기에 동참했다는 내용은 신약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묘사에도 동일하게 나타납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이 생기기 전에 자기가 하나님과 함께 계셨음을 언급했습니다(요 17:5).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가 말씀으로서 태초 전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창조 때에 동참하셨음을 서술하였습니다(요 1:1). 바울은 그리스도가 하나님에게서 나신 하나님의 능력이며 지혜라고 설명하였습니다(고전 1:24,30; 골 2:3).

 

창조 때의 지혜(27-29)

지혜는 하나님의 창조 사역의 원리이자 동역하는 존재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혜로 세상을 창조하셨고, 이제 지혜로 말미암아 만물이 질서와 조화 가운데 보존되고 견고하게 됩니다. 우리는 모든 피조물 가운데 드러난 하나님의 영광과 지혜를 높이고 찬양하며 살아야 합니다.

 

27그가 하늘을 지으시며 궁창을 해면에 두르실 때에 내가 거기 있었고 28그가 위로 구름 하늘을 견고하게 하시며 바다의 샘들을 힘 있게 하시며 29바다의 한계를 정하여 물이 명령을 거스르지 못하게 하시며 또 땅의 기초를 정하실 때에(27-29)

 

하나님의 어느 피조물보다 자신이 먼저 존재했음을 명백하게 밝힌 지혜는 이제, 하나님께서 사람들이 살 수 있는 터전을 비롯하여 우주 전체를 창조하실 때 자기가 하나님과 함께하며 창조 사역에 동참했음을 주장합니다.

27-29절은 하나님의 천지 창조의 둘째 날과 셋째 날에 집중하여 하늘의 창조부터 시작하여 바다를 나누어 위의 구름 가득한 하늘과 아래의 강과 바다로 정하신 것 그리고 땅을 창조하셨음을 기술합니다. 특히 하나님이 세상을 형성하는 데 있어 하늘을 세우고, 깊은 바다에 테를 두르고, 하늘의 구름들을 견고하게 하고, 깊은 바다의 샘들을 확정하고, 바다의 경계를 정하고, 땅의 기초를 정하실 때 지혜가 일일이 동참하였음을 두드러지게 묘사하였습니다. 욥기 28:24-26; 38:10-11이나 시편 104:1-9에서도 하나님께서 창조물이 각각 자기 위치를 지킬 수 있도록 일일이 경계를 정하시고 또 그것이 제대로 유지되도록 하셨음을 찬양합니다. 이와 같은 묘사는 하나님의 전능하신능력과 지혜를 드높입니다. 또한,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그 정한 위치에서 벗어나지 않으며 하나님의 주권 아래에 움직이는 것을 통해 하나님이 세상에 질서를 형성하시고 통치하시는 모습을 확실히 나타냅니다. 지혜는 하나님의 창조 사역의 모든 영역에서 동참자였으며 증인이었습니다(28:27).

 

창조주와 지혜의 기쁨(30-31)

성도는 하나님의 지혜를 소유하는 것을 최고의 가치와 목표로 삼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지혜가 능력이며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지혜는 ‘숙련된 기술자’처럼 맡겨진 창조 사역을 완벽하게 수행했습니다. 지혜는 하나님의 뜻을 완벽하게 실현합니다. 우리가 그 지혜를 갖게 될 때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되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게 됩니다.

 

30내가 그 곁에 있어서 창조자가 되어 날마다 그의 기뻐하신 바가 되었으며 항상 그 앞에서 즐거워하였으며 31사람이 거처할 땅에서 즐거워하며 인자들을 기뻐하였느니라(30-31)

 

27-29절에서는 하나님의 창조 사역과 하나님 곁에서 그 사역을 거들며 일하는 지혜의 모습에 초점이 맞추어졌고, 30-31절에서는 지혜를 기뻐하시는 하나님, 참조 때 일하시는 하나님 곁에서 뛰놀며 즐거워하는 지혜, 사람을 기뻐하는 지혜의 모습에 초점이 맞춰졌습니다.

먼저, 30절은 하나님과 지혜가 서로 즐거워하는 모습을 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조 때 옆에서 명장의 역할을 한 지혜를 기뻐하려고, 지혜도 자기 자신이 하나님 곁에 있음에 즐거워 웃고 뛰놀았습니다. 지혜는 하나님 곁에서 숙련공 창조주로 번역됨)의 역할을 하였습니다. 성막 축조 때의 숙련공이었던 브살렐과 오홀리압이 하나님으로부터 기술과 능력과 지식을 받아 지혜로운 사람으로 인정받았듯이(출 31:1-6), 숙련공은 지혜로운 자로 알려졌습니다. 여기서 지혜가 숙련공으로 지칭됨으로써 창조 사역에 있어 지혜의 기술과 역할이 부각되었습니다. 31절은 지혜가 피조물 중 특히 사람이 창조된 것을 보고 즐거워하고 기뻐하였음을 묘사합니다. 지혜가 하나님께 기쁨의 대상이었듯이, 이제 사람들이 지혜에게 있어 기쁨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지혜가 사람을 자기의 기쁨이라고 표현한 데에는 사람에 대한 지혜의 큰 관심과 애정뿐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이 하나님의 창조 정점임을 은근히 드러냅니다(창 1:26-28). 또한, 인간도 지혜를 각자의 기쁨으로 삼도록 넌지시 권유합니다.

 

지혜로의 초대(32-34)

하나님의 지혜를 추구하며 사는 것이 인간의 삶에서 가장 근본적인 것입니다. 지혜의 초청에 반응해 지혜를 얻는 자는 생명을 얻을 것이고, 지혜를 미워하고 거부하는 자는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성도는 지속적으로 지혜의 인도와 안내를 따라 그 교훈을 지키며 살아야 합니다.

 

32아들들아 이제 내게 들으라 내 도를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33훈계를 들어서 지혜를 얻으라 그것을 버리지 말라 34누구든지 내게 들으며 날마다 내 문 곁에서 기다리며 문설주 옆에서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나니(32-34)

 

32-36절은 8장의 서두 부분인 1-11절과 마찬가지로 지혜의 초청을 재차 언급하면서 독자들이 지혜를 얻도록 촉구합니다. 이때, 1-11절은 지혜가 성문이나 마을의 사거리 등 사람이 많이 있는 곳에서 그들을 기다리며 외치고 있는 장면을 묘사합니다. 이에 반려 32-36절은 지혜를 얻을 자들이 지혜의 문과 문설주 옆에서 기다리고 지혜의 말을 귀담아 듣는 장면을 묘사합니다.

결과적으로, 8장의 마지막 부분(32-36)인 ‘지혜의 초대에 대한 사람의 반응’은 첫 부분(1-11)의 ‘지혜의 초청’에 대한 화답이 됩니다. 중간 부분에 기록된 지혜의 현재와 과거의 역할과 유익(12-31)은 지혜의 초청을 들은 자들이 그 초청을 속히 수락하도록 촉구하는 구실을 합니다. 32-36절은 내용상 지혜의 초청(32-34)과 초청의 결과(35-36)로 구성되었습니다. 먼저, 32-34절은 ‘들어라’라는 명령이 세 번 반복되고, 시작과 끝에 “얼마나 행복한가!”(‘복이 있다’로 번역됨)라는 감탄 형식의 문장이 나와 한 단락을 형성합니다.

본문에서는 첫째, 지혜의 도를 듣고 지키는 자가 행복하다고 말합니다. 지혜는 아버지처럼 아들들을 흐리게 자신의 말을 들으라고 권합니다(시 119:1-2:128:1). 훈계와 지혜의 관련성은 이미 잠언의 목적과 요약에도 기술되었고(1:2.7), 여러 곳에서 반복되어, 지혜를 원한다면 훈계에 꼭 귀를 기울여야 함을 강조합니다.

 

둘째, 지혜의 말을 듣고 지혜가 거하는 곳 가까이에서 지혜를 기다리는 자는 행복합니다. 아버지의 말을 듣는 것은 곧 지혜의 말을 듣는 것과 같습니다. 기다리며 간절히 사모하고 적극적으로 찾을 때 지혜를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같이 ‘지혜를 문 옆에서 기다리라’(34)는 명령은 ‘음녀의 집 문에도 가까이 가지 말라’(5:8)는 명령을 상기시킵니다. 음녀를 찾아 거리와 골목을 헤매다 그녀의 집에 들어간 우매한 젊은이에게는 형벌과 사망이 기다리고 있지만(5:22-23), 지혜 옆에서 기다리고 기다리는 자는 행복한 자입니다.

 

지혜를 찾은 자와 놓친 자(35-36)

지혜는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생명과 관련된 문제입니다. 삶 가운데 우선적으로 실천해야 본질적인 가치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분별하고 그 뜻대로 순종하며 사는 것이 바로 진정한 지혜입니다. 지혜는 근본적으로 사람의 노력과 경험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35대저 나를 얻는 자는 생명을 얻고 여호와께 은총을 얻을 것임이니라 36그러나 나를 잃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해하는 자라 나를 미워하는 자는 사망을 사랑하느니라(35-36)

 

지혜를 찾은 자와 놓친 자의 최후는 극과 극입니다. 지혜의 초청에 귀 기울여 지혜를 찾는 자는 생명을 얻고 하나님의 은총을 얻게 됩니다. 하지만 지혜를 잡지 못하여 놓치거나 지혜를 미워하는 모든 자는 생명이나 하나님의 은총을 받을 기회를 잃고, 그 대신 사망의 위협을 받습니다. 이와 같이, 누구나 지혜를 얻느냐 못 얻느냐에 따라 생명과 사망이라는 극단의 결과를 맞으며 하나님의 심판 아래 놓이게 됩니다. 여기서 생명과 사망은 육체적 죽음에 앞서 영적, 도덕적, 사회적 죽음을 가리킵니다. 이러한 선언의 목적은 듣는 이로 하여금 지혜의 초대에 응하고 지혜의 집 문 가까이에 머물도록 촉구하는 데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호흡으로 창조된 존재입니다. 처음 창조에서 하나님의 호흡이 인간을 창조했다면, 그리스도인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새롭게 창조되었습니다(고후 5:17).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그분께서 사랑하는 사람들을 사랑하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리스도인은 복 받은 사람이요, 복을 나누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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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08-01)


지혜로운 자를 찾는 지혜

잠언 8장 1-21절


잠언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땅에서 살아가기 위해 꼭 귀담아들어야 할 말씀입니다. 단순한 조언 정도가 아니라 수용 여부에 따라 삶과 죽음이 결정되는 중요한 명령입니다. 감상이나 이해의 대상이 아니라 구체적인 선택에까지 이르는 순종을 요구하는 명령입니다.

 

지혜의 목소리를 듣고 명철을 얻어야 합니다. 지혜는 온갖 유익을 다 소유하고 있습니다. 지혜는 여호와 경외를 근본으로 하며 영적으로 도덕적으로 선을 추구하고 정의의 삶을 구현합니다. 이런 지혜의 실제 모습을 파악하고 지혜를 얻는 자는 지혜가 준비한 아낌없는 선물을 받아 누릴 수 있습니다.

 

지혜의 강연(01) : 지혜의 초청(1-21)

지혜가 큰 소리로 말하기 때문에 누구나 귀를 막지 않는 한 들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지혜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도 마찬가지입니다. 복음은 어떤 차별이나 체한 없이 모든 사람을 초대합니다. 그러나 어리석게도 이 부름에 귀를 막으면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이들이 많습니다.

 

1지혜가 부르지 아니하느냐 명철이 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느냐 2그가 길 가의 높은 곳과 네거리에 서며 3성문 곁과 문 어귀와 여러 출입하는 문에서 불러 이르되 4사람들아 내가 너희를 부르며 내가 인자들에게 소리를 높이노라 5어리석은 자들아 너희는 명철할지니라 미련한 자들아 너희는 마음이 밝을지니라 6너희는 들을지어다 내가 가장 선한 것을 말하리라 내 입술을 열어 정직을 내리라 7내 입은 진리를 말하며 내 입술은 악을 미워하느니라 8내 입의 말은 다 의로운즉 그 가운데에 굽은 것과 패역한 것이 없나니 9이는 다 총명 있는 자가 밝히 아는 바요 지식 얻은 자가 정직하게 여기는 바니라 10너희가 은을 받지 말고 나의 훈계를 받으며 정금보다 지식을 얻으라 11대저 지혜는 진주보다 나으므로 원하는 모든 것을 이에 비교할 수 없음이니라 12나 지혜는 명철로 주소를 삼으며 지식과 근신을 찾아 얻나니 13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 나는 교만과 거만과 악한 행실과 패역한 입을 미워하느니라 14내게는 계략과 참 지식이 있으며 나는 명철이라 내게 능력이 있으므로 15나로 말미암아 왕들이 치리하며 방백들이 공의를 세우며 16나로 말미암아 재상과 존귀한 자 곧 모든 의로운 재판관들이 다스리느니라 17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18부귀가 내게 있고 장구한 재물과 공의도 그러하니라 19내 열매는 금이나 정금보다 나으며 내 소득은 순은보다 나으니라 20나는 정의로운 길로 행하며 공의로운 길 가운데로 다니나니 21이는 나를 사랑하는 자가 재물을 얻어서 그 곳간에 채우게 하려 함이니라(1-21)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 살면서도 세상에 속하지 않는 삶, 즉 악에 빠지지 않고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는 삶으로 초대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혜의 소리를 듣고 안 듣고는 우리의 몫입니다. 그 지혜를 따르면 명철해지기도 하고 지각을 얻기도 할 것입니다. 반대로 자기 고집과 욕망을 따라 어리석음의 길을 고수하려는 자들도 있을 것입니다.

 

(1) 지혜의 초청(1-5)

잠언 1:20-33에 지혜의 첫 번째 강연이 나왔고, 이제 8:1-36에 지혜의 두 번째 강연이 소개됩니다. 1-9장 내에서 지혜가 어떤 모습으로 의인화되었는지 종합하여 살펴보면, 1:20-33에서는 악한 남자나 음녀와 대조되는 ‘지혜로운 여인’으로, 2:10-22에서는 악한 남자와 음녀에게서 구해주는 ‘구원자’로, 4:5-9에서는 우리가 평생 사랑하고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 또한 지혜를 신부로 얻은 자를 높이며 영화롭게 하는 주체로서, 8:1-36에서는 사람들을 초청하는 ‘지혜의 여인’과 하나님의 창조 때의 ‘조력자’의 모습으로, 9장에서는 연회를 베풀어 사람을 초대하는 ‘연회의 주최자’ 및 우매의 여인과 대조되는 ‘지혜의 여인’으로 묘사되었습니다.

이처럼 잠언에서 여인으로 의인화된 지혜의 특징은 적극적으로 대중을 부르고 초대하며 어디에서든지 발견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 같은 묘사는 욥기 28장에서 지혜를 숨겨져 있어 찾기 어려운 대상으로 묘사한 것과 사뭇 대조적입니다. 그러나 욥기의 의도는 지혜를 찾는 일이 불가능함을 설명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지혜가 어디 있는지 알 수 없다 하더라도 온갖 고난을 감수하고 찾을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음을 강조하고 다른 데가 아닌 오직 여호와를 통해서만 찾을 수 있음을 부각하는 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욥기 28장은 지혜의 시작이 여호와 경외와 악을 떠남에 있다고 결론 내리며 독자에게 여호와 경외를 시작으로 지혜를 얻으라고 권면합니다(욥 28:28).

본문 8:1-21은 지혜의 두 번째 강연의 전반부에 합니다. 여기에서 ‘지혜’는 위에서 언급했듯이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는 주체이자 모든 이가 찾을 수 있는 대상으로 묘사됩니다. 지혜는 길가 높은 곳이나 사거리 광장이나 성문이나 다른 여러 출입문 옆 등 마을 사람들이 많이 왕래하거나 모여 있는 곳에 나타납니다(1:20-21; 19:3). 그곳에서 지혜는 사람들에게 “명철을 얻으라”라고 외칩니다. 특히 지혜가 가장 절실히 필요한 어리석고 미련한 자들에게 관심을 쏟아 그들을 향해 외칩니다(1:22; 9:4-6). 그녀는 그들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지혜를 얻어 어리석음을 버리고 올바른 판단력과 지각을 얻으라(‘마음이 밝을지니라’로 번역됨)고 조언합니다(1:22,32).

 

(2) 지혜의 동기 부여(6-11)

사람들의 주목을 끈 지혜는 이제 “들어라!”라고 외치며, 사람들이 자기 목소리를 들어야 하는 이유를 제시합니다. 이로써 그들에게 동기를 부여하려 합니다. 지혜는 자신의 가르침의 합당성(6-9)과 자신의 뛰어난 가치(10-11)를 통해 매력을 발산합니다.

먼저, 지혜의 가르침이 합당한 이유는 지혜의 말에 고귀함이나 정직, 진리, 선, 정의 등의 속성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지혜에는 악이나 굽은 것이나 진리를 왜곡하는 사악함이 없습니다. 지혜는 도덕적으로나 신앙적으로 고상하고 선한 것을 사랑하지만, 그것에 못 미치는 것은 다 혐오합니다. 이러한 속성이 바로 지혜와 우매를 구별하는 기준이 됩니다. 내 마음의 생각이나 말이나 행동이 지혜가 실천하고 추구하는 선과 정직과 고상함에 속할 때 나에게 진정한 지혜가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것 하나라도 이런 속성에서 어긋나거나 거리가 멀다면 그것은 잠언에서 말하는,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지혜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이때, 지각이 있거나 지식을 찾는 자라면 그 사람 안에 지혜가 있으므로 지혜가 전하는 말과 훈계의 진가를 더 잘 알아볼 수 있습니다(9).

지식은 이미 1:7; 1:29; 2:5 등에서 여호와 경외나 여호와를 아는 지식과 긴밀히 연결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서도 지식이 가리키는 판단력과 통찰력에 여호와 경외와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내포되었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둘째, 지혜의 진정한 가치는 정금이나 보배에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뛰어납니다. 지혜는 2:4; 3:14-15 등에서 자주 보화와 비교되었습니다. 특히 욥기 28:15-19에서는 값비싼 보석의 이름을 줄줄이 열거한 후 지혜의 진정한 가치가 금은보화에 비교할 수 없다는 점을 드높이며 찬양합니다. 지혜의 훈계는 보배나 내가 원하는 어떤 것보다 더 소중하므로 지혜에게 귀를 기울이는 것이 합당합니다.

 

(3) 지혜의 속성(12-16)

모든 지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는 것에서 시작하며, 모든 어리석음은 하나님을 미워하고 무시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모든 악을 미워하는 것입니다. 교만과 거만, 악한 행실과 패역한 입은 모두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것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에서 떠난 사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6-11절에 이어 지혜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유익을 계속 설명하며 그들로 하여금 자신의 말에 귀 기울이도록 합니다. 특히, 12-21절에서는 지혜가 현재 이 세상에서 어떤 능력을 갖추고 어떤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지를, 22-31절에서는 지혜가 과거에 어떤 능력과 역할로 하나님의 창조 사역을 도왔는지를 설명합니다. 본문인 12-21절을 살펴보면, 먼저 12-16절에서는 지혜가 그녀의 속성과 능력으로 세상의 지도자를 공의로 세우는 일을 감당함을 설명하고, 17-21절에서는 지혜를 찾는 자에게 자신이 소유한 부귀와 재물을 공급할 것임을 기술합니다.

지혜와 함께 나타나는 명철이나 지식과 근신의 기초에는 여호와 경외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1:7; 37; 9:10과 더불어 8:7에서는 여호와 경외에 대한 구체적인 정의로서 ‘악을 미워하라’라고 합니다. 즉, 교만한 태도, 악한 행실, 거짓된 언어에서 나타나는 악을 버리고 겸손한 태도, 선한 행실, 정직한 언어를 통해 선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여호와 경외를 증명하는 길입니다. 지혜는 다시 한번 자신에게 명철, 도략, 여호와를 아는 지식, 능력이 있다고 자신을 소개하는데(14), 이러한 속성은 잠언과 다른 성경에서 하나님(2:6-7; 욥 12:13; 사 40:13-14: 롬 16:27)과 성령(사 11:2)의 속성을 소개하는 데서 동일하게 나타납니다. 이로써 지혜와 하나님과 성령의 연관성이 드러납니다. 지혜는 자신에게 이러한 속성이 있다는 것을 왕과 방백의 통치 세계를 근거로 증명합니다. 지혜는 왕이나 지도자들이나 재판관들이 백성들을 공의로 치리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솔로몬이 이스라엘을 공의와 공평으로 다스리기 위해 지혜를 구한 것이 한 예입니다(왕상 3:9; 대하 1:10).

 

(4) 지혜의 유익(17-21)

여호와를 경외하고 선을 추구하는 지혜는 자기를 사랑하고 찾는 자에게 사랑을 후히 베풀어주려 합니다. 지혜에게는 부귀와 재물과 정의가 있습니다. 더구나 생명 나무로 비유된 지혜(3:18)가 맺는 열매는 금은에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귀합니다. 그뿐 아니라 지혜의 삶은 오로지 정의와 공평으로 표현됩니다. 지혜는 이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이 같은 부와 정의를 선물로 주어 그들이 의롭고 풍성한 삶을 살도록 도울 것입니다. 이와 같은 지혜의 약속은 잠언 앞부분에서도 자주 소개되었습니다. 지혜는 그녀에게 돌아오는 자에게 지혜의 영을 주어 지혜가 원하는 생각과 말을 아낌없이 줄 것입니다(1:23), 신부를 찾듯 지혜를 간절히 찾고 그녀를 사랑하는 자를 지혜가 보호하며 높여주고 영화롭게 할 것입니다(4:6-9), 누구든 지혜를 열심히 찾으면 지혜는 그 사람을 만나고 그의 마음에 기쁨을 주고 그를 보호할 것입니다(2:4-11). 그러나 지혜는 모든 이에게 자신의 유익을 쏟아붓지는 않습니다. 지혜가 목청을 높여 자기를 찾으라고 했을 때 그녀의 훈계를 거절한 자들이 나중에 지혜가 필요하여 찾는다고 해도 지혜는 그들을 절대 만나주지 않을 것입니다(1:28-30).

신앙은 선택입니다. 부귀와 재물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선택하는 것이 신앙의 결단입니다.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선택해야 합니다(마 6:25,33). 부귀를 먼저 추구하면 부패하게 되지만, 지혜를 먼저 추구하면 부요하게 됩니다. 이 순서를 명심하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보다 복 주는 하나님을 먼저 찾고 구하는 자가 되시길 바랍니다.

 


악을 미워하고, 교만과 거만함, 악한 행실을 멀리하는 동시에 정의와 공정한 재판이 이루어질 때 모든 사람들이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을 찾을 때(17), 하나님처럼 정의와 진리를 추구할 때, 부귀와 재물은 선물로 주어집니다. 부귀와 재물은 하나님께 속해 있습니다. 부귀와 재물은 결과이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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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07-02)


유혹의 길에서 승리하는 지혜

잠언 7장 10-27절


성 윤리가 붕괴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온갖 매중 매체에는 성적인 감정을 자극하는 내용들이 범람합니다. 성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선물이지만, 그것은 인격적이고 언약적 관계 속에서 이루어질 때만 아름답고 고귀합니다.

 

교활한 음녀는 치장한 외모와 아첨하는 말과 담대하고 적극적인 태도로 유혹할 자를 사냥합니다. 그녀는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유혹할 자를 찾으며 부단히 남을 꾀어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는 자입니다. 이런 유혹에 넘어가 그녀를 따라가는 자는 이미 패망과 사망의 길로 들어선 것입니다.

 

아버지 강연(10) : 유혹하는 여자를 조심하라(10-27)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것을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나는 교회 다니니까!’라는 당연히 하나님을 믿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마치 과거형인 것처럼 여겨질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항상 현재진행형입니다. 지금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얼마나 집중하고 살아가는가입니다.

 

10그 때에 기생의 옷을 입은 간교한 여인이 그를 맞으니 11이 여인은 떠들며 완악하며 그의 발이 집에 머물지 아니하여 12어떤 때에는 거리, 어떤 때에는 광장 또 모퉁이마다 서서 사람을 기다리는 자라 13그 여인이 그를 붙잡고 그에게 입맞추며 부끄러움을 모르는 얼굴로 그에게 말하되 14내가 화목제를 드려 서원한 것을 오늘 갚았노라 15이러므로 내가 너를 맞으려고 나와 네 얼굴을 찾다가 너를 만났도다 16내 침상에는 요와 애굽의 무늬 있는 이불을 폈고 17몰약과 침향과 계피를 뿌렸노라 18오라 우리가 아침까지 흡족하게 서로 사랑하며 사랑함으로 희락하자 19남편은 집을 떠나 먼 길을 갔는데 20은 주머니를 가졌은즉 보름 날에나 집에 돌아오리라 하여 21여러 가지 고운 말로 유혹하며 입술의 호리는 말로 꾀므로 22젊은이가 곧 그를 따랐으니 소가 도수장으로 가는 것 같고 미련한 자가 벌을 받으려고 쇠사슬에 매이러 가는 것과 같도다 23필경은 화살이 그 간을 뚫게 되리라 새가 빨리 그물로 들어가되 그의 생명을 잃어버릴 줄을 알지 못함과 같으니라 24이제 아들들아 내 말을 듣고 내 입의 말에 주의하라 25네 마음이 음녀의 길로 치우치지 말며 그 길에 미혹되지 말지어다 26대저 그가 많은 사람을 상하여 엎드러지게 하였나니 그에게 죽은 자가 허다하니라 27그의 집은 스올의 길이라 사망의 방으로 내려가느니라(10-27)

 

음녀의 유혹은 달콤하고 아찔합니다. 영성과 이성과 감각을 마비시키는 치명적인 유혹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으면 유혹에 쉽게 노출됩니다. 하나님께서 원치 않는 삶을 살기 때문입니다. 그는 가지 말아야 할 유혹의 자리에 발을 들여놓습니다. 하지만 유혹의 마지막은 멸망으로 치닫는 완벽한 함정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1) 음녀를 만남(10-13)

본문인 잠언 7:10-27은 1-9장에서 ‘내 아들(들)아’로 시작하는 강연 중 마지막인 열째 강연에 해당하는 7:1-27의 후반부이며, 유혹하는 여자를 조심하라는 훈계를 주로 다룹니다. 아버지는 “내 말을 간직하라”라고 아들에게 조언한 후 6절부터 시작하여 자신의 눈으로 목격한 음녀의 유혹에 대해 진술하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한 젊은이가 깊은 밤에 음녀의 집 근처로 가는 것을 보았습니다(6-9). 이제 음녀가 어떻게 이 젊은이를 만나(10-13) 그를 유혹하는지(14-20)를 묘사하고, 음녀의 꾐에 넘어간 젊은이의 파국(21-23)에 관해 기술하며, 음녀의 길이 사망으로 이끌므로 “음녀의 길을 피하라”고 조언(24-27)함으로 강연을 마칩니다.

6-9절에서 밤중에 음녀의 집을 찾아가는 젊은이를 목격한 아버지는 이제 음녀가 나타나 그를 맞는 장면을 10-13절에서 설명합니다. 먼저 이 여인은 눈에 띄는 창녀의 옷을 입고 그에게 다가갑니다. 이 음녀는 간교하고 시끄럽고도 남의 말에 불복하는 고집이 센 여인입니다. 또한, 그녀는 동네 어디서라도 서서 기다리며 유혹할 대상을 찾습니다. 이러한 복장과 언행과 태도는 음녀의 일상을 잘 보여줍니다. 이리저리 유혹할 대상을 찾고 있던 음녀의 눈에 드디어 이 젊은이가 들어왔습니다. 음녀는 대담하고도 적극적으로 그를 환영하여 젊은이의 마음을 빼앗으려 합니다. 이 여인은 그를 보자마자 꽉 붙들고 그에게 입을 맞추며 부끄러움을 모르는 뻔뻔한 얼굴로 입을 엽니다. 먹잇감을 고르고 꾀는 데 익숙한 음녀는 이미 머릿속으로 무슨 말을 할지를 다 계산에 넣어두었습니다.

 

(2) 음녀의 유혹(14-20)

음녀는 자신을 예배자로 표현하며 젊은이에게 접근합니다. 그녀는 오늘 화목제를 드려 서원한 것을 다 이행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젊은이가 자신을 집에서 만날 수 없었음을 말해줍니다. 또한, 예배를 언급하며 자신이 영적, 신앙적 삶에 관심을 두고 이를 실행하고 있음을 보여주려고 합니다. 덧붙여, 서원제를 드리고 남은 고기로 함께 풍족하게 먹을 수 있음을 알려 젊은이의 욕구를 자극합니다. 음녀는 종교적인 의무를 다했으므로 이제야 거리에 나올 수 있었고, 이 젊은이를 애써 찾다가 드디어 만났다고 설명합니다. 사실 이 여인은 언제 어디서나 유혹할 사람을 호시탐탐 노리는 자입니다. 그러나 이 젊은이에게는 이 만남이 특별한 만남이며 우연한 만남임을 강조합니다. 게다가 음녀는 자신의 침실이 이미 아름답게 갖추어져 있다고 말하며 젊은이가 다른 생각을 할 틈을 주지 않고 계속 머릿속으로 자극적인 상상을 하도록 부추깁니다. 애굽의 질 좋고 화려한 이불과 염료로 물들인 리넨 그리고 몰약, 침향, 계피와 같은 외국의 비싼 향품이 준비됐음을 언급함으로써 음녀는 자신의 부를 과시하고 자신이 이날을 위해 얼마나 열심히 준비했는지를 넌지시 말하여 젊은이가 유혹을 거절할 수 없도록 계속해서 미끼를 던집니다.

이처럼 음녀는 이 밤에 젊은이를 만난 것이 운명적인 만남이며 그들이 쾌락을 누릴 수 있도록 모든 것이 때, 맞춰 갖추어져 있음을 부각시켜 말합니다. 그녀는 종교적으로도 의무를 다했고 침실도 화려하게 꾸몄으므로 이제 밤새도록 맘껏 성적인 욕망을 채우자며 젊은이를 유혹합니다. ‘오라’(또는 ‘자’)는 말로 시작하여 젊은이의 즉각적인 결단과 반응을 재촉합니다. 또한, 자신의 남편이 은 주머니를 가지고 먼 길을 떠나 돌아오려면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으므로 그들에게 즐길 수 있는 시간이 충분하고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다며 젊은이를 안심시키려 듭니다. 이 여자는 겉으로는 율법에 따라 서원을 갚고 예배를 드리는 신앙의 여인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자신의 육체적인 정욕을 채우기 위해 부끄러움이나 주저함 없이 노골적으로 젊은이를 유혹하는 탐욕적이고 간교한 여인입니다. 또한, 수치를 모르므로 자기 욕심을 위해 도덕이나 윤리나 신앙을 내팽개치는 여인입니다. 말로는 예배자이나 하나님의 언약을 잊어버린 자이며 자신의 남편을 배반하는 자이며 말로 아첨하여 젊은이를 꾀어 빠져나올 수 없는 함정으로 이끄는 여인입니다.

 

(3) 음녀의 유혹에 넘어간 젊은이(21-23)

음녀의 유혹은 힘센 장정이도 음녀를 당할 수 없습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당한 존재입니다. 주변에 존경받던 사람들이 성적 스캔들로 하루아침에 넘어지는 일들을 자주 접하고 있습니다. 그 유혹의 길은 도살장에 끌려가는 짐승과 같습니다. 다시 살아나올 수 없는 길을 가는 것입니다.

유혹하는 여자의 가장 확실하고 특징적인 유혹 기술은 ‘말’입니다. 그녀는 어떤 단어를 어떻게 구사해야 상대방의 기분을 좋게 하고 그를 구슬릴 수 있는지 잘 압니다. 14-20절의 음녀의 구체적인 말을 통해 잘 드러나듯 음녀는 말을 통해 다양한 색깔의 모습을 상대방에게 보이며, 그가 꾐에 빠져드는 찰나를 포착하려 듭니다.

음녀의 집을 자진하여 찾아갔다가(8) 거리에서 그녀를 만나게 된(13) 젊은이의 최후는 어떠합니까? 계획 없이 이 음녀를 만난 남자라 해도 온갖 달콤한 말로 덤비는 여인을 뿌리치기가 쉽지 않았겠지만, 본인의 발로 음녀가 나타나는 거리를 찾은 자였기에 금세 정신을 빼앗기고 거부감이나 저항 없이 선뜻 그녀를 따라갔습니다. 그러나 그의 발걸음은 소가 푸주로 들어가는 것과 같아, 그가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죽임을 당할 것입니다. 또한, 미련한 자가 벌 받기를 자원하여 풀 수 없는 쇠사슬을 스스로 묶는 것처럼 자신의 미련한 행동이 곧 어떤 고통을 가져다줄지 예상을 못 합니다. 7절에서 아버지가 이미 평가했듯이, 이 젊은이는 미성숙하고 판단력이 부족한 자이므로 자기 앞에 어떤 결과가 놓일지 전혀 짐작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이 젊은이가 음녀의 꾐에 빠져 그녀를 따라간 것은 화살이 부지불식간에 날아와 이미 간을 꿰뚫어 치명적인 상처를 입힌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새가 눈앞에 있는 그물을 보고 들어가면서 언제 잡혀 그 생명을 잃을지 전혀 알 수 없습니다. 이처럼 음녀의 유혹은 젊은이에게 처음부터 촉각을 곤두세우는 위험한 상황입니다.

 

(4) 아버지의 훈계(24-27)

아버지는 아들에게 자신의 말에 귀를 기울이라고 훈계하며 강연을 시작하였고 이제 강연의 마지막에 이르러 다시금 ‘아들들’을 부르며 주목시킨 후 자신의 훈계를 주의하여 들으라고 경고합니다. 5장에서와 마찬가지로(5:1,7), 아버지가 1절에서와 달리 24절에서 ‘아들’을 ‘아들들’로 부른 것은 1절의 호칭이 오로지 한 사람만을 지칭한 것이 아니라 여러 아들을 대표하여 부른 것으로 생각할 수 있게 합니다. 아들에게 주의하라고 명령하는 내용은 ‘음녀의 길로 향하지 말라’ 합니다. 음녀는 많은 사람을 쓰러뜨려 상처를 입혔고 힘센 자들도 그녀를 당해내지 못하고 죽음에 이르렀습니다. 여기서 죽음은 육체적 죽음만을 의미하지 않고 영적, 도덕적 죽음을 포괄적으로 의미합니다. 이처럼 음녀 근처에 가는 것은 사망으로 직행하는 것입니다.

음녀의 유혹을 가볍게 여기고 순간의 재미와 쾌락을 좇다가 도덕적으로 영적으로 낭패와 고통을 당한 사람이 성경에도 적지 않습니다. 이처럼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한 선택과 은총을 받았다 해서 유혹의 손길이 뻗치지 않거나 유혹을 쉽사리 뿌리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유혹에 대한 경고를 경청하고, 유혹에 넘어갔을 때의 치명적이고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인지하며, 유혹 앞에서는 강한 자가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여 겸손하고 두려운 마음으로 매사에 주의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잠언은 성공, 번영, 지식을 가져다주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잠언은 “음녀를 길로 치우치지 말며 그 길에 미혹되지 말지어다”(25)라고 경고하는 책입니다. 유혹에 노출되어 있습니까? 우리 영혼과 가정이 파괴되기 전에 어서 돌이키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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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07-01)

 


지혜와 유혹 사이에서 사는 지혜

잠언 7장 1-9절


강의를 할 때마다 묵상은 말씀을 기가 막히게 해석하는 기교나 기발하게 적용하는 기술이 아니라 말씀에 대한 태도라고 강조하곤 합니다. 방법이 아니라 마음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본문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우리의 마음과 태도를 묻고 도전하고 있습니다.

 

지혜를 담고 있는 아버지의 명령을 눈동자처럼 귀하게 여기며 지켜야 합니다. 이것이 생활화될 때 우리의 삶에 진정한 생명력이 넘치게 됩니다. 지혜는 내가 생애를 같이 보내야 할 동반자입니다. 지혜를 가까이하고 사랑하고 친밀한 관계를 유지한다면 지혜가 우리를 음녀와 같은 악인으로부터 또한 우매로부터 보호하고 지켜줄 것입니다.

 

아버지 강연(10) : 아버지의 가르침을 지켜라(1-9)

말씀을 소중히 여기며 가까이해야 합니다. 말씀으로부터 지혜가 임하기 때문입니다. 지혜가 없는 삶은 그 자체로 어둠의 삶이고 죽음의 삶입니다. 항상 말씀으로 자기 마음의 동기와 행동을 점검하며,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을 새겨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너무 쉽게 어둠의 길을 선택하여 갈 수 있습니다.

 

1내 아들아 내 말을 지키며 내 계명을 간직하라 2내 계명을 지켜 살며 내 법을 네 눈동자처럼 지키라 3이것을 네 손가락에 매며 이것을 네 마음 판에 새기라 4지혜에게 너는 내 누이라 하며 명철에게 너는 내 친족이라 하라 5그리하면 이것이 너를 지켜서 음녀에게, 말로 호리는 이방 여인에게 빠지지 않게 하리라 6내가 내 집 들창으로, 살창으로 내다 보다가 7어리석은 자 중에, 젊은이 가운데에 한 지혜 없는 자를 보았노라 8그가 거리를 지나 음녀의 골목 모퉁이로 가까이 하여 그의 집쪽으로 가는데 9저물 때, 황혼 때, 깊은 밤 흑암 중에라(1-9)

 

지혜를 외면할 때 유혹이 찾아옵니다. 말씀이 떠난 자리에 욕망이 대신 자리할 것입니다. 죄를 은밀하게 즐기면서 하나님과 친밀히 교제할 수 없듯이 지혜와 음녀를 동시에 사랑할 수 없습니다. 또 말씀을 우습게 생각하면 자신을 잃고 탐욕이 부리는 대로 살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 경외’와 ‘말씀 사랑’은 오래된 집착과 그릇된 탐닉에서 우리를 건져줄 것입니다.

 

(1) 음녀에게서 구원해줄 지혜(1-2)

본문인 잠언 7:1-9은 1-9장에서 ‘내 아들(들)아’로 시작하는 강연 중 마지막인 열 번째 강연에 해당하는 7:1-7의 일부로서, 유혹하는 여자를 조심하라는 주제를 다룹니다. 음녀에 대한 직접적인 묘사와 경고는 잠언 1-9장에서 네 번, 즉, 둘째(2:16-19), 여덟째(5:1-23), 아홉째(6:20~35), 열째(7:1-27) 강연에 등장합니다. 또한, 다섯째 강연이자 막간(Interlude)에 해당하는 9:13-18에서는 ‘음녀’라는 말이나 묘사는 없으나 음녀와 밀접하게 관련 있는 미련한 여인이 소개되었으므로 위의 네 강연과 함께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7장의 구조와 내용을 간략히 살펴보면, 이 장은 “내 말을 간직하라”는 아버지의 조언(1-5)으로 시작하여 “음녀의 길을 피하라”는 아버지의 조언(24-27)으로 끝나며, 그 중간(6-23)에는 아버지 눈으로 관찰한 음녀의 등장과 젊은이를 유혹하는 음녀의 기술 그리고 유혹에 넘어간 젊은이에 대해 중점적으로 기술합니다.

다른 강연에서와 마찬가지로 아버지는 아들을 부르며 주의를 환기시키고 “내 말을 지키라”라는 권고를 유사한 표현으로 재차 반복합니다. 2절의 ‘내 명령을 지켜서 살며’라는 명령은 4:4에서도 나오는데 이 명령은 ‘내 명령을 지키며 살라’ 또는 ‘내 명령을 지키면 살리라’로 번역이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이 부분은 아버지의 명령을 생활화하라는 의미와 명령을 순종한 결과가 생명이라는 이중적인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특히 ‘생명’은 마지막 27절에서 아버지의 말을 따르지 않은 결과로 맞게 될 ‘사망’과 대조를 이룹니다. 여기서 생명과 사망은 육체적인 면만이 아니라 신앙적, 도덕적, 사회적으로 다방면에서의 삶과 죽음을 암시합니다. 아버지는 자기의 훈계를 듣느냐 안 듣느냐가 생명과 죽음을 결정한다는 것을 부각하며 아들로 하여금 자기의 말을 눈동자를 귀히 여기고 보호하듯 지키고(신 32:10) 신중하게 받아들이도록 촉구합니다.

 

(2) 아버지의 가르침을 마음에 새겨라(3-5)

아버지의 가르침을 지키라는 권고는 이제 3-5절에서 그 가르침을 마음에 새겨 내면화하라는 권고로 연결됩니다. 3절의 “명령을 손가락에 매고 마음판에 새기라”는 말은 단순히 그 명령을 적어 몸에 지니거나 암기하는 소극적인 행동을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 무엇보다도 가까이 두고 기억해서 항상 그의 말씀을 따라 살라는 적극적인 행동을 요구하는 명령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끌어내실 때 그들을 위해 애굽에서 행하신 기적과 구원의 일을 기억하라는 뜻에서 유월절과 무교절을 지키라고 명하셨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자녀에게 이를 가르치고 그것을 손이나 이마에 표를 삼으라고 덧붙이셨습니다(출 13:9, 16), 또한 40년이 흘러 곧 가나안 땅에 들어갈 이스라엘의 새로운 세대에게 하나님 말씀을 마음에 두고 손목과 이마에 표를 삼고 자녀에게 가르치라고 명령하셨습니다(신 6:6-9; 11:18-20). 이 모든 명령의 목적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진정한 경외심을 갖고 순종하도록 하는 데 있습니다. 4절에서 아버지의 가르침은 ‘지혜’로 대치되며 여자, 특히, ‘신부’나 ‘아내’로 의인화됩니다. 아버지는 지혜를 ‘누이’로 또는 ‘친족’으로 부르라 명합니다. 이때 ‘누이’는 아내나 신부를 지칭할 때 사용되는 단어(아 4:9; 5:1)이며, 친족은 ‘친밀한 친구’란 뜻으로 둘 다 ‘아내’를 의미합니다. 아버지가 여기서 지혜를 특히 ‘아내’로 의인화한 것은 이제 곧 5절부터 등장하게 될 ‘음녀’를 염두에 두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의 말에 순종하여 아들이 지혜를 아내로 맞아 사랑하면, 그 지혜가 그를 음녀의 유혹으로부터 구해줄 것입니다. 음녀로부터 구해내는 지혜의 역할은 2:16이나 6:24에서도 이미 언급되었습니다. 이 여인의 특출한 기술은 매끄러운 말로 상대방의 기분을 좋게 만들어 유혹하는 데 있습니다. 이 여인은 문맥상 이방 여인이라기보다는 ‘낯선 여자’, ‘남의 여자’, ‘음란한 여자’를 지칭하며 사회의 어떤 관습이나 도덕적 제약 밖에 있는 여자를 가리킵니다. 2:16-19에서 이런 여인은 젊은 시절의 자기 남편을 버리고 하나님께 맹세한 결혼 서약을 깬 자로서 아첨하는 말로 남자를 유혹하는 여인으로 묘사되었습니다. 여기서도 비슷하게 이 여인은 창녀처럼 행동하며 남편을 두고도 남편이 여행을 떠난 틈을 이용하여 스스럼없이 간음을 저지르는 뻔뻔한 여인으로 묘사됩니다(10-20). 이처럼 ‘음녀’는 4절의 ‘누이’나 ‘친족’으로 불리는 ‘아내’와 대조됩니다. 아내는 남편에게 충실하고 헌신된 여인이지만 음녀는 어느 누구에게도 충성하거나 헌신하지 않고 자기 멋대로 사는 여인입니다. 음녀는 어느 남자에게나 매끄러운 말로 속이려 들지만, 아내는 정직과 의를 바탕으로 신뢰의 말을 쌓아갑니다. 이와 같이 인간인 ‘음녀’와 ‘아내’의 대조는 신붓감을 찾는 젊은이로 하여금 유혹하는 음녀의 실체를 미리 알아차려 그녀의 유혹 손짓에 반응하지 않고 진정한 신붓감을 찾도록 돕습니다. 이미 결혼한 남자에게는 결혼 서약을 깨고 간음을 행하는 일의 위험성을 알리고 자신의 아내에게만 집중하고 사랑하도록 권면합니다. 한편, ‘음녀’와 ‘아내’는 ‘우매’와 ‘지혜’라는 추상적인 실체로도 대조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음녀의 달콤한 속삭임처럼 우매는 우리의 입과 눈과 귀에 즐거움을 주는 것으로 여겨질 수 있습니다. 지혜가 추구하는 여호와 경외와 정의와 정직과 같은 속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면 우리에게 음녀의 말이 지혜롭게 들릴 수 있고 지혜의 말도 미련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

 

(3) 아버지의 관찰(6-9)

지혜 없는 젊은이는 자기 힘을 믿다가 그럴듯한 말에 잘 속아 넘어갑니다. 지혜가 없으면 젊음은 축복이 아니라 재앙입니다. 이상은 높지만 자기 욕망을 절제하는 법을 몰라서 어이없게도 음녀의 뒤를 따라갑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음녀에 대한 경고하기 위해 자신이 집 창문을 통해 직접 목격하고 관찰한 사건을 6-23절까지 들려줍니다. 6-9절에서는 젊은이의 등장을, 10-20절에서는 음녀의 등장(10-13)과 음녀의 유혹(14-20)을 묘사합니다. 21-23절에서는 젊은이에게 다시 주목하여 음녀의 꾐에 넘어간 파국적인 모습을 그립니다. 아버지는 창문을 통해 길거리를 내려다보다 한 젊은이를 보았습니다. 이 젊은이는 ‘어리석은 자’, ‘젊은이’, ‘지혜 없는 자’로 소개됩니다(7). 미성숙하고 판단력이 없는 자로서 잘 속아 넘어가는 자이며 아버지의 훈계 따위는 관심을 두지 않는 미련한 자입니다. 이 젊은이는 마을의 거리를 지나 음녀가 사는 골목을 따라 음녀의 집으로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음녀의 집을 찾아가는 이런 모습은 그가 음녀를 우연히 만난 것이 아니라 이미 음녀를 알고 있었고 뿐만 아니라 그녀의 집까지 알고 있었음을 드러냅니다. 거리와 골목 모퉁이를 지나 음녀의 집에 이르기까지 순조롭게 이어지는 방문은 이것이 젊은이의 자의적인 방문임을 알려주고 그 과정에 주저함 없는 단호함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경험 있고 현명한 아버지의 눈으로 봤을 때 이 젊은이의 발걸음은 죽음의 길을 자처하는 발걸음(22-23)이며, 이는 어리석고 지혜가 없는 자입니다. 한편, 이 젊은이가 음녀를 찾아간 때는 어둡고 캄캄한 밤입니다. 이 말은 문자 그대로 범죄가 일어나는 때가 사람의 눈을 피하기 쉬운 밤중임을 의미합니다. 동시에 죄짓는 자의 영적 상태가 밤과 같이 어둡고 죄에 대해 예민하지 못하다는 뜻도 내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지키면 그 말씀이 우리를 지켜줄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을 향한 말씀이 들리지 않을 때만큼 자신의 영혼이 위험한 상황은 없습니다. 때로는 직접적인 교훈으로, 때로는 완곡한 이야기로 세상의 악함과 우리의 지혜 없음을 일깨우실 때 어떻게 반응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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