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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06-02)


영혼을 망치는 죄에 대한 지혜

잠언 6장 20-35절


현대 사회는 소위 중독 사회입니다. 우리 사회는 각종 중독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있습니다. 5대 중독 퇴치를 위한 범국민운동과 법 제정이 거론되고 있지만, 그것은 인간의 내밀한 욕망을 간파하지 못한 임시방편일 뿐 궁극적인 해법은 될 수 없습니다. 중독은 중독을 통해서 치유됩니다. 빛이 어둠을 몰아내듯, 선한 중독이 악한 중독을 몰아냅니다. 지금 나는 무엇에 취해 있고 무엇에 침잠되어 있습니까?

 

음녀의 아름다운 외모와 눈짓과 달콤한 말에 유혹을 받고 간음을 저지르는 자는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가는 것입니다. 간음의 끝은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받게 될 수치와 능욕과 후회뿐입니다. 부모의 훈계를 저버리고 지혜로운 인도를 받지 않는다면 귀한 생명까지도 위협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아버지 강연(9) : 간음하는 여인을 피하라(20-35)

성경 없는 세상엔 의 기준도 없습니다. 이 성경을 묵상하지 않고서 유혹 많은 세상을 이길 길은 없습니다. 그러니 어떤 상황에서도 말씀을 붙드는 신실함이 우리를 시험에서 이기게 해주고 영원한 생명에 참여하도록 도와줄 것입니다. 말씀을 폐부 깊은 곳까지 거하게 하십시오. 환경이나 조건이 아니라 말씀에 대한 자기 태도가 내 현재와 미래를 결정할 것입니다.

 

20내 아들아 네 아비의 명령을 지키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고 21그것을 항상 네 마음에 새기며 네 목에 매라 22그것이 네가 다닐 때에 너를 인도하며 네가 잘 때에 너를 보호하며 네가 깰 때에 너와 더불어 말하리니 23대저 명령은 등불이요 법은 빛이요 훈계의 책망은 곧 생명의 길이라 24이것이 너를 지켜 악한 여인에게, 이방 여인의 혀로 호리는 말에 빠지지 않게 하리라 25네 마음에 그의 아름다움을 탐하지 말며 그 눈꺼풀에 홀리지 말라 26음녀로 말미암아 사람이 한 조각 떡만 남게 됨이며 음란한 여인은 귀한 생명을 사냥함이니라 27사람이 불을 품에 품고서야 어찌 그의 옷이 타지 아니하겠으며 28사람이 숯불을 밟고서야 어찌 그의 발이 데지 아니하겠느냐 29남의 아내와 통간하는 자도 이와 같을 것이라 그를 만지는 자마다 벌을 면하지 못하리라 30도둑이 만일 주릴 때에 배를 채우려고 도둑질하면 사람이 그를 멸시하지는 아니하려니와 31들키면 칠 배를 갚아야 하리니 심지어 자기 집에 있는 것을 다 내주게 되리라 32여인과 간음하는 자는 무지한 자라 이것을 행하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망하게 하며 33상함과 능욕을 받고 부끄러움을 씻을 수 없게 되나니 34남편이 투기로 분노하여 원수 갚는 날에 용서하지 아니하고 35어떤 보상도 받지 아니하며 많은 선물을 줄지라도 듣지 아니하리라(20-35)

 

첫 모음집의 아홉째 교훈은 다시 간음의 어리석음과 위험을 경고합니다. 음란한 여인은 아름다워 보이지만 실제로는 생명을 악탈하는 사냥꾼에 불과하며, 그 유혹에 넘어가 간음하는 자는 참혹한 대가를 될 것입니다.

 

(1) 내 말을 들어라(20-21)

잠언 6:20-35는 1-9장에서 ‘내 아들(들)아’로 시작하는 강연 중 아홉째에 해당합니다. 이 강연은 2:16-19과 5:1-23에 이어 음녀에 대한 경고를 담고 있습니다. 20-24절은 훈계를 들으라는 명령과 그것의 유익을 안내하는 서론 부분으로 볼 수 있습니다. 25-33절은 간음하는 여인을 피하라는 조언이고, 34-35절은 그 조언을 듣지 않은 자들이 받을 심판에 관한 내용입니다. 아들을 불러 주목하게 하고 언급하는 아버지의 첫마디는 다른 강연에서와 마찬가지로 “내 말을 듣고 지키라 ”입니다. 여기 20절에서는 특히 1:8과 같이 아버지의 명령만이 아니라 어머니의 법을 함께 언급하며 자식을 훈계로 양육하는 것이 아버지만의 의무가 아니라 어머니와 공동 책임이 있음을 드러냅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부모가 주는 명령을 항상 마음에 새기고 목에 매라고 명령합니다. 이러한 명령은 잠언 3:1-3이나 7:1-3에서 나오는 명령과 유사합니다. 이 구절들은 지혜의 말씀을 마치 반지나 목걸이처럼 자신의 신체에 달고 다니면서 그 지혜의 조언을 떠올림으로써 궁극적으로 말씀대로 하는 삶을 살도록 종용합니다. 이처럼 말씀을 몸에 붙이고 다니면서까지 순종하라는 명령은 잠언의 새로운 명령이 아니며, 이미 신명기 6:6-9에서 하나님이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에 명하신 말씀입니다.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6절 바로 전에 나오는 4-5절의 말씀입니다. 4-5절의 말씀은 순종과 결부되어 있으며, 순종 이전에 하나님의 백성이 미리 깨닫고 행해야 할 부분입니다.

먼저 하나님이 한 분이신 여호와임을 인식해야 합니다. 이 말은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삶의 우선순위에 두지 말라는 말이며, 하나님 명령이 인간이 따라야 할 최선이며 최고의 명령임을 내포합니다. 둘째로, 이런 하나님을 모든 마음과 모든 성품과 모든 힘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진정한 마음으로 내 모든 것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며 순종할 때 그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순종이 됩니다. 속 빈 강정이나 로봇처럼 진실한 마음과 태도 없이 기계적이고 형식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면 도리어 책망을 받을 것입니다(암 5:4-6; 미 6:-8).

위와 같이 하나님이 나 자신에게 어떤 분인지를 먼저 인식하고 그 하나님을 전적으로 사랑하며, 또 계속 사랑과 충성을 바칠 것을 다짐하며 6-9절의 말씀을 새겨들어야 합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씀을 먼저 마음에 새겨 그 말씀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순종하려는 결단을 내리라고 격려하십니다. 자신이 먼저 그 말씀이 어떤 내용인지 알지 못하거나 행하지 않고서 자녀에게 가르친다면 그 가르침은 거짓이며 위선이 될 뿐입니다. 그러므로 그 말씀을 손목에 매거나 미간에 붙이고 집의 문설주와 대문에도 붙여 하나님의 말씀을 어디에서든 기억할 수 있도록 하라고 강조하십니다. 그리고 이 말씀을 집에서든 나가서든 누웠을 때든 일어났을 때든 부지런히 자녀에게 반복해서 말해야 합니다. 신명기 6:6-7에서 잘 나타나, 잠언 6:20의 자녀를 향한 부모의 명령은 단순히 부모의 지식과 경험의 전수가 아니라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명하신 말씀의 전수입니다. 부모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또한 자기 자녀들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도록 그것을 전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 부모의 의무이며 하나님에 대한 순종의 표현입니다.

 

(2) 훈계는 생명의 길이다(22-24)

아버지와 어머니의 훈계는 우리의 삶에 절실히 필요합니다. 이는 부모의 명령과 법이 여호와 경외를 근본으로 하는 지혜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낮에 활동할 때에는 훈계하며 바른 길로 인도받게 되며, 밤에 잘 때는 보호를 받고, 깨어 있을 때는 계속적으로 그 훈계를 되새김질할 수 있습니다. 부모의 이러한 훈계와 책망은 하나님의 말씀이 자녀의 삶 전체를 조명하고 규제하고 인도하는 등불과 빛이 되어 생명의 길로 인도하도록 한몫을 담당합니다. 여기서 아버지가 명령과 훈계를 등불과 빛을 넘어 생명으로 연결하는 이유는 이제부터 언급될 음행이나 간음의 결과가 생명과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전하는 지혜로운 조언을 힘입는다면 아들은 악하고 음란한 여인의 부드럽고 매혹적인 말에 빠지지 않고 생명을 보존할 수 있게 됩니다. 6장의 음녀는 스스로 윤리적으로나 도덕적으로 규제를 받지 않는 여자로서 자기의 악하고 음란한 성품을 이용하여 남자를 꾀는 자이며 신앙과 윤리를 버리고 간음을 자행하는 자입니다.

 

(3) 간음하는 여인을 피하라(25-33)

25-33절은 아버지의 강연 가장 핵심 부분으로서 ‘간음하는 여인을 피하라’는 명령을 중점적으로 다룹니다. 아버지는 먼저, 음녀의 겉모습을 보고 마음에 정욕을 품지 말라고 아들에게 경고합니다. 음녀는 부드러운 말로 상대의 비위를 맞출 뿐 아니라 아름답게 꾸민 모습과 매혹적인 눈짓으로 상대를 유혹합니다. 남자들이 여자의 이러한 육체적인 아름다움에 취약하므로 그런 모습에 쉽게 유혹되지 않도록 아버지는 아들에게 강한 어조로 말하고 있습니다.

26절에서 아버지는 창녀와 유부녀에 대한 대조를 통해 아들로 하여금 음행이나 간음에 빠지지 않도록 권고합니다. 이 구절은 두 개의 다른 번역이 가능하며 이에 따른 각각의 해석이 제시됩니다. 하나는 음녀의 유혹에 넘어간 자는 재산을 탕진하여 그에게 빵 한 조각만 남게 되고 유부녀와 음행을 저지른 자는 귀한 생명을 잃는다는 해석입니다. 다른 하나는 창녀에게 가는 자는 그녀에게 빵 한 조각만 지불해도 되지만 유부녀와 간음한다면 목숨을 대가로 지불해야 한다는 해석입니다. 두 해석 모두 음행과 간음의 심각성과 대가를 지적합니다.

불을 갖고 놀면 몸에 화상을 입거나 옷을 태우게 되듯이, 남의 아내와 간음을 저지르거나 그녀를 만지기만 해도 그 일로 인해 정죄를 당하고 치명적인 상처를 입게 됩니다. 앞서 5:7-14에서 음녀의 유혹에 빠진 자가 받는 피해를 설명하였듯이, 간음하는 자도 자신의 지위, 명성, 재물, 건강, 신앙 등에 타격을 입고 사회적으로도 수치를 당하게 될 것이 뻔합니다. 아버지는 간음한 사람을 도둑과 비교하여 그가 도둑보다 훨씬 어리석고 돌이킬 수 없는 후회를 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배가 고파서 물건을 훔치는 일은 어리석은 행동이며 죄인 것이 확실하지만, 사람들은 그 도둑에게 동정심을 느껴 그를 멸시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간음하는 자는 어떤 상황에서도 사람들의 동정과 이해를 받을 길이 없습니다. 수치와 능욕과 패망과 죽음과 같은 치명적인 결과가 그를 기다릴 뿐입니다.

성경은 한 남자가 다른 남자의 아내를 취하는 행동이나 다른 여러 형태의 간음을 자신과 타인의 가정을 해치는 행위로 여깁니다. 첫째, 이는 후손을 생산할 권리와 땅을 적절한 후손에게 물려줄 권리를 해치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출 20:14). 둘째, 간음은 당사자 모두를 정결에서 떠나 부정하게 만듭니다(레 18:20). 셋째, 간음은 개인만이 아니라 그 사람이 사는 땅(공동체)을 부정하게 만드는 요인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의 여러 족속을 심판하려고 하신 이유 중에 간음을 비롯한 성적 문란도 포함되었습니다(레 18:24-25).

 

(4) 경고와 결론(34-35)

남의 아내와 간음한 자는 그녀의 남편 질투와 분노로 인해 어떤 용서나 이해도 받을 수 없습니다. 누구의 물건을 훔쳤다면 그에게 배상하거나 용서를 빌 수 있고 화난 사람에게는 선물을 주어 마음을 누그러뜨리기도 할 수 있지만 배신당하고 상처받은 남편의 분노를 진정시킬 길은 없습니다.

 


 

말씀의 지배를 받지 못하면 욕망의 지배를 받게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말씀의 유익과 욕망의 결과를 대조하여 무엇을 품고 살아야 하는지 도전하고 있습니다. 지금 말씀의 빛을 따라 거룩한 길을 걷고 있는지, 아니면 '욕망의 불을 품고 부정한 길을 가고 있는지 묻고 있습니다. 말씀을 대면할 때 우리가 피해야 할 길과 걸어가야 할 길을 제대로 알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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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06-01)

잠언(06-01).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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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 늦기 전에 벗어나는 지혜

잠언 61-19


살아가면서 모르고 당한 일보다 알고도 당하는 일들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상대의 의도를 알면서도 쉽게 마음을 내주다가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받기도 하고, 자신의 약함을 알면서도 버리지 못해 큰 곤경에 처하기도 합니다. 우리의 예측이나 예상은 늘 빗나가고, 그 파국을 알면서도 돌이키지 않는 것이 인간의 우매함이 아닌가 싶습니다. 오늘 본문은 자의든 타의든 자초한 위기 가운데서 어떻게 벗어나야 하는지를 교훈하고 있습니다.

 

어리석음과 악은 서로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 있습니다. 여기서 어리석음과 악은 단순히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영역만이 아니라 영적, 신앙적인 영역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같이 움직입니다. 하나님이 혐오하시는 태도와 언행을 떠나 선을 행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부록 : 어리석음과 악에 대한 네 가지(1-19)

온몸과 온 맘으로 악을 도모하며 싸움을 부추기고 공동체의 질서와 관계를 뒤틀고 뒤엎는 패역한 자에게 재앙이 임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삶의 기준을 멸시하고 악을 꾀하며 악한 일을 계속해 자행하는 자를 절대로 방관하지 않으시고 때가 되면 그의 교만과 속임과 방종에 대해 엄중히 심판하실 것입니다.

1내 아들아 네가 만일 이웃을 위하여 담보하며 타인을 위하여 보증하였으면 2네 입의 말로 네가 얽혔으며 네 입의 말로 인하여 잡히게 되었느니라 3내 아들아 네가 네 이웃의 손에 빠졌은즉 이같이 하라 너는 곧 가서 겸손히 네 이웃에게 간구하여 스스로 구원하되 4네 눈을 잠들게 하지 말며 눈꺼풀을 감기게 하지 말고 5노루가 사냥꾼의 손에서 벗어나는 것 같이, 새가 그물 치는 자의 손에서 벗어나는 것 같이 스스로 구원하라 6게으른 자여 개미에게 가서 그가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 7개미는 두령도 없고 감독자도 없고 통치자도 없으되 8먹을 것을 여름 동안에 예비하며 추수 때에 양식을 모으느니라 9게으른 자여 네가 어느 때까지 누워 있겠느냐 네가 어느 때에 잠이 깨어 일어나겠느냐 10좀더 자자, 좀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더 누워 있자 하면 11네 빈궁이 강도 같이 오며 네 곤핍이 군사 같이 이르리라 12불량하고 악한 자는 구부러진 말을 하고 다니며 13눈짓을 하며 발로 뜻을 보이며 손가락질을 하며 14그의 마음에 패역을 품으며 항상 악을 꾀하여 다툼을 일으키는 자라 15그러므로 그의 재앙이 갑자기 내려 당장에 멸망하여 살릴 길이 없으리라 16여호와께서 미워하시는 것 곧 그의 마음에 싫어하시는 것이 예닐곱 가지이니 17곧 교만한 눈과 거짓된 혀와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는 손과 18악한 계교를 꾀하는 마음과 빨리 악으로 달려가는 발과 19거짓을 말하는 망령된 증인과 및 형제 사이를 이간하는 자이니라(1-19)

첫 모음집의 여덟째 교훈은 크게 네 단락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처음 두 단락(1-11)이 개인의 신중하지 못하고 게으른 행동을 경고한다면, 나머지 두 단락(12-19)은 공동체에 불화를 초래하고 조화를 깨뜨리는 행동을 경고합니다.

 

(1) 담보와 보증에 대한 경고(1-5)

잠언 6장은 1-9장에서 지혜의 강연(1:20-33)과 지혜의 송가(3:13-20)에 이어 세 번째 등장하는 막간 형식의 부록으로 볼 수 있습니다.

첫 교훈인 1-5절은 담보나 보증을 하지 말라는 경고를 담고 있습니다. 남을 위해 담보하거나 보증을 서는 일은 내가 타인의 빚이나 책무에 대한 책임을 지는 행위입니다. 이런 일은 보통 사업 현장에서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거나 빚보증을 서는 양상으로 나타납니다. 잠언에서는 담보나 보증에 대해 여러 번 경고합니다. 누군가에게 빚을 졌으면 갚고, 채무자에게 이자를 추가하여 부담을 주거나 잘못된 빚보증을 서서 가산을 다 잃어버리지 않도록 주의를 줍니다(22:26-27). 남의 보증인이 되는 자는 지혜롭지 못한 자이며(17:18), 그런 자에게는 손해와 불안감이 따라오므로 보증을 서지 말고 평안을 찾으라고 격려합니다(11:15). 또한 타인(또는 타국인)을 위한 보증을 특히 주의하라고 합니다(20:16; 27:13).

1절의 네가 만일 이웃을 위하여 담보하며 타인을 위하여 보증하였으면이란 문장은 이웃타인이 동일 인물이냐 아니냐에 따라 다른 해석이 나올 수 있습니다. 만약 이웃과 타인이 동일 인물이라면 아들이 자기의 이웃을 위해 보증을 선 경우를 의미합니다. 그러나 동일 인물이 아니라면 아들이 잘 알지도 못하는 타인을 위해서 이웃에게 보증을 선 경우로 해석됩니다. 동일 인물일 경우는 아는 사람의 보증을 서지 말라는 일반적인 뜻으로, 동일 인물이 아닌 경우는 잘 아는 사람에게든 모르는 사람에게든 보증을 서지 말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이웃과 타인이 누구냐의 문제보다는 보증과 담보에 대한 경고가 더 중요합니다.

1절의 보증에 대한 경고는 2절에서 그로 인해 파생된 결과를 설명함으로써 계속됩니다. 고대의 보증은 문서로 남기기보다는 구두로 시행되고 서로 손바닥을 맞닿게 침으로써 성립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구두로 한 담보나 보증의 약속은 마치 덫이 새를 옭아매듯 당사자의 운명을 얽어매므로 쉽사리 빠져나올 수 없으며 혹 빠져나온다고 하더라도 상처를 입게 됩니다.

한편, 잠언 6장에 나오는 담보에 대한 경고는 잠언의 다른 곳에 나오는 구절과 비교했을 때 보증을 서지 말라는 경고만이 아니라 보증의 위기에서 벗어날 방법(3-5)을 제시한 점이 특별합니다. 아들이 이웃에게 빚을 진 경우 혹은 타인을 위해 이웃에게 담보가 된 경우, 이 문제에서 탈피하기 위해서는 찾아가서, 자신을 낮추고, 졸라야 합니다. 눈꺼풀에 졸음이 들지 않게 할 정도로 보증의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끊임없이 노력해야 합니다. 마치 노루나 새가 사냥꾼의 올무나 그물에서 나오려고 필사적으로 발버둥 치듯이, 설사 찢기고 상처가 나는 한이 있더라도 올무나 그물에서 빠져나와야 합니다. 네 자신을 구원하라 말이 3절과 5절에서 반복되어 스스로 위기에서 벗어나야 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보증 문제 해결이 급선무입니다.

 

(2) 게으름에 대한 경고(6-11)

보증에 이어 게으름에 대한 경고가 등장합니다. 잠언의 다른 부분에서도 게으름의 주제에 대해 종종 다루고 있습니다(10:26; 13:4; 15:19; 19:24; 22:13; 24:30-34; 26:13-16). 앞의 보충 문제는 본인과 다른 사람 간에 생겨난 문제로서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쌍방의 합의가 필요하지만, 게으름은 자기로 인해 생겨난 문제이므로 본인이 나서서 이 일을 해결해야 합니다게으른 자는 밥그릇에 손을 얹고도 입으로 퍼 올리기를 싫어하고(19:24) 침대에서만 뒹굴며(26:14; 26:15) 잠만 재촉하므로(6:10-11; 24:33-34) 원하는 것이 있어도 얻지 못합니다(13:4). 이처럼 게으른 자는 분별력이 없는 자(24:30)이므로 개미에게서라도 지혜를 배워야 합니다.

종종 자연의 동식물을 통해 해야 할 행동과 피해야 할 행동을 배울 수 있습니다. 개미는 작고 힘이 없지만, 여름에 먹을 것을 예비할 줄 아는 작지만 지혜로운 생물 중의 하나로 꼽히는 곤충입니다(30:25). 지도자나 감독도 없고 누가 시키지 않아도 열심히 일해서 양식을 모으는 개미처럼 게으른 자도 무덥고 건조한 여름 동안에 일해야만, 보리와 밀의 수확기인 여름 추수기나 곡식과 과실의 수확기인 가을 추수기에 양식을 거둘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조언을 듣지 않고 계속 잠만 자고 일을 미룬다면 가난과 궁핍을 피할 길이 없습니다. 더구나 가난은 강도나 무장한 군사처럼 뜻하지 않은 때 게으른 자를 습격하여 그에게 막대한 피해를 주고 큰 곤경에 빠뜨릴 것입니다.

 

(3) 악인의 일곱 가지 특징(12-15)

보증이나 게으름과 같은 경제와 관련된 문제를 떠나, 12절부터는 사회적인 문제를 논합니다. 먼저 12-15절은 악인의 일곱 가지 특징을 입, , , , 마음 등 신체 기관과 관련하여 묘사하고 악인의 종국에 대해 선언합니다.

악인은 먼저 무익함(또는 죄악)과 불의의 사람으로 정의되었습니다. 그의 불의한 행동은 거짓을 말하고, 눈짓을 건네거나 발이나 손가락을 움직여 공모자와 악한 일을 도모하며, 마음에 패역을 품고 늘 악을 계획하고 다툼을 일으키는 데에서 나타납니다. 이런 악한 행동은 이미 아들을 꾀는 악한 남자(1:11-14; 2:13-15; 3:14-17)나 음녀(2:16-19; 5:3-14)의 행동에서 목격되었습니다. 게으른 자에게 갑작스러운 곤경이 임하듯(15), 불의한 자에게도 재앙이 갑자기 임하여 순식간에 망하게 됩니다. 또한, 그 재앙은 회복할 길이 없을 정도로 치명적입니다.

 

(4)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일곱 가지(16-19)

16-19절은 마지막 경구로서 하나님이 혐오하는 일곱 가지를 나열하였습니다. 위의 불의한 자의 행동 목록과 같이 여기에서도 7이란 숫자를 사용한 것은 악의 총체성을 상징적으로 드러내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혐오 목록은 악인의 목록과 마찬가지로 신체 기관과 관련지어 설명되고 마음의 태도, 거짓말, 그리고 행악이라는 세 가지 면에서 소개됩니다첫째, 마음의 태도는 교만한 눈악한 계교를 꾀하는 마음으로 표현됩니다. 악은 마음의 생각과 계획으로부터 시작하며 교만과 항상 함께합니다둘째, 거짓말에 대해서 거짓된 혀거짓을 말하는 망령된 증인을 언급합니다. 구약에서 자주 거짓 증인에 대한 경고가 나옵니다. 이는 법정에서나 일상에서 거짓말을 하거나 위증을 하는 것이 중죄임을 말해줍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기 위한 지침서인 십계명에서도 거짓 증거 하지 말라고 단호히 명령합니다(20:16). 셋째, 행악에 관련해서는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는 손, 빨리 악으로 달려가는 발, 형제 사이에 다툼을 일으키는 행동으로 표현됩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행동은 12-15절에서의 악인의 행동과 마찬가지로 신체 기관과 연결하여 설명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혐오 목록과 악인의 행동 목록이 서로 연결되는 것은 도덕적, 윤리적인 악이 영적, 신앙적인 영역과도 밀접히 연결된다는 점을 드러냅니다. 이 조언을 듣는 자는 불의의 길을 떠나 하나님이 인정하고 사랑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악을 꾀하지는 자는 멸망의 심판을 면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몸과 맘의 원초적인 악한 욕구를 만족시키려고 살기보다는 전인격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의와 선을 위해 헌신하도록 말씀의 지혜로 잘 절제하고 통제하고 관리해야 합니다. 때늦은 후회는 있어도 때늦은 회개는 없습니다. 때를 놓치기 전에 남을 탓하기 전에, 말의 실수이든 태도의 문제이든 악의 올무이든 얼른 스스로 자초한 위기에서 벗어나기를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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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05-01)


음행을 멀리하고 아내를 사랑하라

잠언 5장 1-23절


가정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시자마자 세워주신 최초의 공동체입니다. 인간이 범죄하기도 전에 말입니다. 그래서 가정은 천국의 모형 또는 지상의 천국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런 말도 있습니다. 화성에서 온 남자하고 금성에서 온 여자가 만나 지구에서 사는 게 결혼이라고 말입니다. 부부의 결혼 생활이 만만치 않다는 뜻입니다. 지상의 천국이어야 하는 가정이 부부가 하기에 따라서 도리어 지상의 지옥이 될 수도 있는 겁니다
 
달콤한 말로 속삭이는 음녀에게 유혹되어 음행을 저지른 자들은 그들의 교만과 악행에 적합한 비참한 결과를 맞게 됩니다. 음녀의 부정한 행동은 그녀 자신을 파멸과 죽음으로 재촉하기 때문에, 그녀의 꾐에 넘어간 자들은 같은 운명에 처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지혜 있는 자는 자신의 아내에게만 집중하여 친밀한 사랑의 관계를 유지해야 합니다.
 

아버지 강연(08) : 내 명철에 귀 기울여라(1-2)

꿀처럼 달콤하고 기름처럼 미끄러운 음녀의 입술을 조심하라고 합니다. 실은 쑥같이 쓰고 칼같이 날카롭기 때문입니다. 지혜에 주의하고 명철에 귀를 기울이고 근신을 지킬 때, 생명의 평탄한 길을 걸을 수 있지만, 음녀는 우리를 사지로 인도합니다.
 
1내 아들아 내 지혜에 주의하며 내 명철에 네 귀를 기울여서 2근신을 지키며 네 입술로 지식을 지키도록 하라(1-2)
잠언 5장은 ‘내 아들아’로 시작하는 아버지의 강연 중 여덟째로 ‘음녀를 피하고 아내를 사랑하라’라는 주제를 중점적으로 다룹니다. 음녀에 대한 경고는 잠언 1-9장에서 자주 언급되는 주제입니다(2:16-19; 5:1-23; 6:20~35; 7:1-27; 19:13-18). 음녀와 아내는 대부분 육체적 관계로 묘사되지만, 우매와 지혜의 의인화된 모습으로도 이해해야 합니다. 즉,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면으로 이해함과 동시에 영적이고 신앙적인 면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4장에서는 ‘의인의 길과 악인의 길’이라는 두 길의 특징과 그 최후를 제시하며 아버지가 아들에게 지혜와 우매 사이에서 올바른 선택을 하도록 요구하듯, 5장에서는 ‘음녀’와 ‘여인’의 대조를 통하여 아들에게 같은 요구를 반복합니다. 아버지는 여느 강연에서처럼 ‘내 아들아’라고 부르며 아들이 자신의 말에 주목하기를 명합니다. 이때 아버지는 자신의 말을 지혜와 명철로 지칭하는데 이는 그의 말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의 말씀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들이 아버지로부터 지혜와 명철의 말을 들으면 판단력(근신)과 지식을 간직할 수 있게 됩니다. 근신과 지식을 지키는 것은 생명과도 같습니다(3:21). 올바른 판단력은 우리를 악한 사람들로부터 보호하고 구해줍니다(2:11-19).
한편 2절의 ‘입술로 판단력과 지식을 간직하게 된다.’라는 표현은 제사장이 지식을 간직하여 그 입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듯이(말 2:7) 아들도 바른 판단력과 통찰력을 가지고 지혜의 말을 선언해야 함을 나타냅니다.
 

음녀에 대한 묘사(3-6)

음행의 유혹을 경계해야 합니다. 음녀의 유혹은 매우 달콤해서 쾌락을 자극하고, 악으로 달려가는 발길을 합리화하게 하며, 바른 판단력을 마비시킵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쑥처럼 쓰고 두 날 가진 칼처럼 예리한 상처를 남길 뿐입니다.
 
3대저 음녀의 입술은 꿀을 떨어뜨리며 그의 입은 기름보다 미끄러우나 4나중은 쑥 같이 쓰고 두 날 가진 칼같이 날카로우며 5그의 발은 사지로 내려가며 그의 걸음은 스올로 나아가나니 6그는 생명의 평탄한 길을 찾지 못하며 자기 길이 든든하지 못하여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느니라(3-6)
이제 다룰 3-20절은 5장의 본론이며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 부분(3-14)에서는 ‘음녀를 피하라’는 내용을 음녀에 대한 묘사(3-6)와 음녀를 피하지 않았을 때 치러야 할 대가(7-14)를 설명함으로써 구체화합니다. 둘째 부분(15-20절)에서는 음녀의 유혹을 막아낼 대안으로써 ‘아내를 사랑하라’라고 충고합니다. 아버지는 먼저, 겉과 속이 다른 음녀를 묘사함으로써 아들이 그녀의 실체를 직시할 수 있도록 조언합니다. 아들을 유혹하는 음녀는 20절에서처럼 ‘이방 계집’으로도 불리며(2:16; 5:20; 7:5), ‘젊은 시절의 남편을 배반하고 결혼 서약을 깬 자’(2:17), ‘유부녀’(6:26[‘음란한 계집’으로 번역됨), ‘남의 아내’(6:29; 7:19~20), ‘창녀’(6:26[‘음녀’로 번역됨]: 7:10) 등으로 소개되었습니다. 문맥상에서 볼 때 음녀는 ‘낯선 여자.’ ‘남의 여자,’ ‘음란한 여자’로서 도덕적으로나 관습적 테두리 밖에 있는 여자를 지칭합니다.
특히, 5장에서 음녀의 특징은 신체 중 입술과 발과 관련하여 기술되었습니다. 첫째, 음녀는 상대방의 기분을 좋게 하는 말로 그 사람을 유혹합니다. 꿀을 떨어뜨리는 입술이나 기름처럼 미끄러운 입이란 음녀의 달콤하고 듣기 좋은 소리를 가리킵니다. 음녀의 입술에서 나오는 달콤하고 속이는 말은 2절의 아들의 입술에서 나오는 지혜의 말과 대조됩니다. 아들의 말은 분별력 있고 생명을 가져오는 말이므로 자신과 남에게 유익을 줍니다. 그러나 음녀의 말은 처음에는 꿀처럼 달콤하지만, 나중에는 쑥처럼 쓴맛을 내며 양날 달린 칼처럼 잔인하고 치명적이어서 상대에게 심각한 타격을 입힙니다. 둘째, 음녀는 상대방을 사지로 내몰고 죽음으로 이끕니다. 그러므로 음녀나 그녀를 따라가는 자는 생명의 길을 찾을 수 없고, 가는 길에 방황하더라도 그것을 깨달을 분별력이 없으므로 결국 음부에 이르고야 맙니다.
 

음녀를 피하라(7-14)

음행은 모든 것을 빼앗습니다. 음녀의 매력은 강력하기 때문에 자신의 의지와 결심만 믿고 가까이하다가는 넘어지기 쉽습니다. 유혹이 다가올 때는 요셉처럼 단호하게 뿌리치고 그 상황을 벗어나야 합니다(창 39:12). 혹시 지금 음행의 유혹을 받을 수 있는 환경에 머물러 있지는 않습니까?
 
7그런즉 아들들아 나에게 들으며 내 입의 말을 버리지 말고 8네 길을 그에게서 멀리 하라 그의 집 문에도 가까이 가지 말라 9두렵건대 네 존영이 남에게 잃어버리게 되며 네 수한이 잔인한 자에게 빼앗기게 될까 하노라 10두렵건대 타인이 네 재물로 충족하게 되며 네 수고한 것이 외인의 집에 있게 될까 하노라 11두렵건대 마지막에 이르러 네 몸, 네 육체가 쇠약할 때에 네가 한탄하여 12말하기를 내가 어찌하여 훈계를 싫어하며 내 마음이 꾸지람을 가벼이 여기고 13내 선생의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하며 나를 가르치는 이에게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였던고 14많은 무리들이 모인 중에서 큰 악에 빠지게 되었노라 하게 될까 염려하노라(7-14)
사망으로 이끄는 음녀에게 절대 다가가지 말아야 합니다. 아버지는 겉으로 보이는 음녀의 모습과 그녀의 실체를 설명한 후, 1-2절과 유사하게 다시금 ‘아들들’을 불러 주의를 집중시킵니다. 그리고 자기 말을 명심하여 음녀를 피하라고 아들들에게 신신당부합니다.
아버지는 아들들에게 “음녀를 멀리하고 그 근처에 얼씬거리지도 말라”고 명합니다. 왜 음녀를 피해야 합니까? 그것은 음녀를 가까이할 때 입게 되는 피해가 치명적이고 돌이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그 피해를 세 가지 즉, 명예, 재물, 육체와 관련해서 조목조목 설명합니다.
첫째, 음녀를 따라가는 자는 존영과 수한을 빼앗깁니다. 존영과 수한은 평생 쌓아온 지위, 명예, 명성을 의미하는데, 이것들을 하루아침에 그것도 포악한 자들에게 다 빼앗길 수 있습니다. 둘째, 애써서 모은 소유와 재물을 잃게 됩니다. 그 재산은 이제 다른 사람의 손에 넘어가게 됩니다. 셋째,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쇠진할 것입니다. 이같이 음녀의 유혹에 넘어가는 자는 사회적, 경제적, 육체적 고통을 당하여 뼈저린 후회를 하게 될 것입니다. 그때야 이 모든 고통의 원인이 자신이 스승의 훈계를 싫어하고 가볍게 여기며 무시한 데서 비롯되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불순종과 교만과 미련함의 결과로 개인적인 수치만이 아니라 공동체로부터 수치를 당하게 될 것입니다.
 

아내를 사랑하라(15-20)

음행에 빠지지 않는 가장 좋은 길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배우자를 뜨겁고 신실하게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결혼이라는 울타리 안에서만 성적인 즐거움을 누리도록 허락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울타리를 부정하고 무분별하게 쾌락을 추구해나갑니다.
 
15너는 네 우물에서 물을 마시며 네 샘에서 흐르는 물을 마시라 16어찌하여 네 샘물을 집 밖으로 넘치게 하며 네 도랑물을 거리로 흘러가게 하겠느냐 17그 물이 네게만 있게 하고 타인과 더불어 그것을 나누지 말라 18네 샘으로 복되게 하라 네가 젊어서 취한 아내를 즐거워하라 19그는 사랑스러운 암사슴 같고 아름다운 암노루 같으니 너는 그의 품을 항상 족하게 여기며 그의 사랑을 항상 연모하라 20내 아들아 어찌하여 음녀를 연모하겠으며 어찌하여 이방 계집의 가슴을 안겠느냐(15-20)
아버지는 아무 대책 없이 음녀를 피하라고만 권면하지 않습니다. 실제적으로 음녀의 유혹을 이겨내고 치명적인 피해를 입지 않기 위한 대안으로 아내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친밀한 관계를 맺으라고 조언합니다.
15-16절에 나오는 ‘우물’과 ‘샘’ 그리고 ‘샘물’과 ‘도랑물’은 모두 ‘아내’를 비유적으로 표현하는 단어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우기와 건기로 나뉘고 강우량이 적어 우물이나 샘에서 물의 근원을 찾는 일이 매우 중요했습니다. 그러므로 아내를 우물이나 샘으로 비유하여 아내가 남편에게 이와 같이 귀중한 존재임을 암시합니다. 또한, 물을 마심으로써 갈증을 해소하듯이 아내를 통해서만 성적 충족감을 얻으라는 암시입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젊어서 취한 아내를 사랑스러운 암사슴과 암노루에 비유하며 항상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로부터 만족감을 얻으라고 거듭 독려합니다. 동시에 “이런 아내를 두고 어찌 음녀를 탐하려느냐?”라고 다그치며 음녀의 유혹과 위험에서 철저히 벗어나기를 한 번 더 명령합니다.
이처럼 잠언 5장에서는 실제 인간인 아내와 음녀를 대조하여 설명하지만, 그 이면에는 여전히 여인으로 의인화된 지혜와 우매에 대한 대조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지혜는 평생 사랑하고 품어야 할 아내로 여기고 대해야 하며 우매는 미련하고 음란한 음녀와 같음을 알고 매 순간 유혹의 속삭임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악인의 최후(21-23)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의 삶의 여정을 감찰하십니다. 사람의 행위와 마음의 숨은 동기까지 헤아리시기 때문에 아무도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악을 숨길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악인 자기 악에 걸리고 죄의 줄에 매이게 하셔서 그가 저지른 죄의 대가를 치르게 하십니다.
 
21대저 사람의 길은 여호와의 눈 앞에 있나니 그가 그 사람의 모든 길을 평탄하게 하시느니라 22악인은 자기의 악에 걸리며 그 죄의 줄에 매이나니 23그는 훈계를 받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아 죽겠고 심히 미련함으로 말미암아 혼미하게 되느니라(21-23)
‘길’로 비유된 사람의 모든 행위는 하나님 앞에 다 드러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길을 하나하나 주목하고 세심히 살피시며 어떤 길인지에 따라 마땅한 심판을 내리십니다. 악인의 경우, 다른 사람 때문에 죄악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바로 자신의 정욕과 욕심과 우매함으로 인해 죄에 묶임을 당합니다. 특히 22-23절에서 말하는 악인에는 위에서 언급한 ‘음녀를 피하라’는 경고를 무시한 미련한 자도 포함됩니다. 한편, 악인이 덫에 걸리고 줄에 묶이는 비유는 1:17-19의 경고를 기억하게 합니다. 새도 자기 눈앞의 위험을 알고 피할 줄 알지만, 악인은 경고를 듣고도 자처하여 덫으로 들어감으로써 목숨을 잃게 되는 미련한 자입니다. 이처럼 훈계를 듣지 않고 교만하고 방자하게 행하는 자들은 그로 인해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됩니다.

 


시편 말씀이 생각납니다. “여호와께서 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시 127:1). 가정은 하나님께서 세우고 지켜주셔야 안전하고 천국으로 가꿀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한 사람 한 사람을 이끌어 가정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배우자는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사람 맞습니다. 이런 믿음이 중요합니다. 또한, 배우자가 하는 것 기다려봐서 사랑하지 말고 하나님의 사랑이 그러하듯이 배우자를 먼저 아껴주고 먼저 사랑할 때 가정이 천국이 되어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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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04-02)


의인의 길, 바른 길의 지혜

잠언 410-27


인생은 길을 걷는 것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내가 길을 만들기도 하고, 이미 존재하는 길을 선택하기도 합니다. 숱한 길이 있지만, 성경은 양자택일만 제시합니다. 의인의 길과 악인의 길, 지혜로운 길과 미련한 길,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입니다. 빨리 가는 것보다 제대로 가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멋지게 가는 것보다 올바르게 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길을 가느냐 하는 것입니다. 인생에서 우리는 두 길 사이에서 끊임없는 선택을 요구 받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잠언 기자는 결코 겹칠 수 없는 두 길을 제시하고, 생명의 길을 선택하기 위해서 마음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의인의 길과 악인의 길 중에 어느 길로 갈 것입니까? 아버지의 훈계와 가르침을 통해 지혜의 길로 인도받으면 의와 정직을 기본으로 한 삶에 분별력과 통찰력이 생깁니다. 그러므로 어떤 상황에서도 악인이 추구하는 불의와 폭력의 죄악에 빠지지 않습니다. 훈계를 듣고 무엇보다 마음을 주의 깊게 살피면서 생명을 주는 바르고 의롭고 지혜로운 길로 계속 전진해야 합니다.

 

강연(06) : 지혜로운 길로 가라(10-19)

정직하고 의로운 길을 가라 지혜로운 자가 걷는 길은 정직한 길이고 의로운 길입니다. 그 길을 걸을 때 곤고하지 않고 실족하지 않을 수 있기에 결국 길게 생명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의인의 길은 한낮의 광명 아래서 걷는 것과 같기에 넘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마치 초행이지만 안내 표지판이 잘 갖춰져 있고 친절하고 노련한 가이드를 곁에 두고 가는 여행이 참으로 안전하고 즐거운 것과 같습니다. 그러니 걸려 넘어질 일도 없을 것입니다.

 

10내 아들아 들으라 내 말을 받으라 그리하면 네 생명의 해가 길리라 11내가 지혜로운 길을 네게 가르쳤으며 정직한 길로 너를 인도하였은즉 12다닐 때에 네 걸음이 곤고하지 아니하겠고 달려갈 때에 실족하지 아니하리라 13훈계를 굳게 잡아 놓치지 말고 지키라 이것이 네 생명이니라 14사악한 자의 길에 들어가지 말며 악인의 길로 다니지 말지어다 15그의 길을 피하고 지나가지 말며 돌이켜 떠나갈지어다 16그들은 악을 행하지 못하면 자지 못하며 사람을 넘어뜨리지 못하면 잠이 오지 아니하며 17불의의 떡을 먹으며 강포의 술을 마심이니라 18의인의 길은 돋는 햇살 같아서 크게 빛나 한낮의 광명에 이르거니와 19악인의 길은 어둠 같아서 그가 걸려 넘어져도 그것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느니라(10-19)

분별력이 모자라서 일을 그르치지도 않을 것입니다. 정직하고 의로운 길이 당장에는 에둘러 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가장 빠르고 가장 안전하고 가장 확실한 결과가 보장된 길입니다. 고난으로 인한 숱한 예외도 있지만, 이것만큼 보편적인 질서도 없습니다.

 

(1) 지혜로운 길로 가라(10-13)

잠언 4:1-9의 아버지의 다섯째 강연에 이어, 오늘 본문은 여섯째(10-19)와 일곱째(20-27) 강연을 수록하였습니다. 먼저 10-19절의 강연은 악인과 의인의 길을 소개하며 악인의 길을 피하고 의인의 길로 가라는 주제를 담고 있습니다. 다른 강연에서와 마찬가지로 아버지는 아들에게 내 말을 받으라며 조언을 시작합니다. 받으라는 표현은 귀로 듣는 것만이 아니라 마음으로 그 말을 받아들이라는 요구입니다.

아버지의 말을 수용할 때 듣는 이는 장수하는 선물을 받습니다. 장수는 축복의 대표적인 예로 사용되었습니다. 장수는 순종으로 인한 선물만이 아니라 지혜를 얻거나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주어지는 선물로도 언급되었습니다(3:2; 19:11; 10:27). 또한,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명령을 행할 때에 주어지는 대표적인 약속으로 소개되었습니다(4:40; 5:16, 33; 6:2; 12:25; 22:7). 그러므로 여기서나 잠언의 다른 부분에서 나오는 아버지의 말은 단순히 아버지의 입에서 나오는 명령이 아니라 여호와 경외를 바탕으로 하는 지혜를 담고 있는 말이며 하나님의 명령을 담고 있는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의 말을 경청하는 행동이 장수의 약속과 연결되는 것입니다. 한편, 아버지는 훈계를 통해 아들에게 지혜로운 길과 정직한 길을 가르치고 그 길로 인도합니다. 여기서 지혜로운 길은 정직한 길과 동일한 길이며 의인의 길의 다른 표현입니다. 정직한 길은 또한 구부러진 길(2:15)과 반대되는 곧은길이라는 이중적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길에서는 장애물이나 어둠으로 인해 발걸음이 비틀거리거나 잘못 디뎌 넘어지지 않습니다. , 의와 정직을 기본으로 하는 지혜의 삶을 살 때 분별력이 없어서 일을 그르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아버지에 의해 지혜의 길로 인도받았으므로, 아버지의 훈계를 꽉 붙들어서 놓치지 말고 소중히 지켜야 합니다. 지혜와 훈계는 그것을 얻은 자에게 생명이 되므로(3:22; 4:22; 8:35) 어둠과 사망으로 가는 길에서 구해줍니다.

 

(2) 악인의 길을 피하라(14-17)

의인의 길로 계속 가기 위해서는 악인의 길을 피해야 합니다. 아버지는 지혜의 길로 인도받은 아들에게 이제 그 길과 정반대인 악인의 길을 언급합니다. 아버지는 아들로 하여금 어떻게 해서든지 그 길을 피하도록, 여섯 차례나 다른 표현을 써가며 다음과 같이 명령합니다: 그 길로 들어가지 말라”, “다니지 말라”, “피하라”, “지나가지 말라”, “돌이키라”, “떠나라.” 아버지가 악인의 길로 가지 말라고 이토록 강조하는 이유는 악인의 사악한 행동 양식을 통해 밝혀집니다.

첫째, 악인은 악을 저지르지 못해 안달하며 악을 저지르는 데에 집착하는 자들입니다(16). 그들은 악을 행하고 사람들에게 해코지를 하지 않고서는 잠도 오지 않습니다. 이러한 행동은 미가 선지자가 신랄하게 비판했던 이스라엘의 권력자들에게서도 발견됩니다. 그들은 잠자리에서 사악한 일을 궁리하고 악을 꾀하다가 아침이 밝으면 남의 밭이나 집을 빼앗는 등 지난밤에 계획한 악을 실천합니다(2:1-2). 그런데 그들이 밤새 궁리한 악을 실행할 수 있었던 것은 소위 가진 자로서 자기들의 재물과 권세와 지위를 이용했기 때문입니다. 잠언이나 미가서에서 기술하는 이 악한 자들의 행위는 하나님의 성소를 짓기 위한 장소를 찾을 때까지 졸음이나 잠을 쫓겠다고 한 다윗의 행동과 대조됩니다(132:3-5).

둘째, 악인의 삶은 불의와 폭력으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불의의 빵을 먹고 강포의 포도주를 마신다(17)는 말은 이중적인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 악인이 불의와 폭력을 밥 먹듯이 저지른다는 의미로도 볼 수 있고 악인이 불의와 폭력으로 얻은 소득으로 번창한다는 의미로도 볼 수 있습니다.

 

(3) 의인의 길과 악인의 길(18-19)

의인의 길과 악인의 길 중에서 어느 길을 택할 것입니까? 두 길은 4:10-17에서 지혜와 곧은 길 또는 죄악과 폭력의 길로 소개되며 대조되었지만, 이 길들은 또한 각각 지혜의 길과 우매의 길입니다. 아버지는 이제 두 길에 대한 결론을 제시하며, 아들이 지혜로운 가르침을 받아 지혜의 길로 들어섰으므로 앞으로도 부단히 그 길로 가고 어떤 일이 있어도 죄와 우매가 가득한 악인의 길로 가지 않도록 격려합니다.

먼저, 의인의 길은 빛입니다. 의인은 인도와 보호를 받으므로 그들의 삶은 마치 해가 뜨기 시작하여 점점 그 빛이 환해지고 정점에 올라 세상에 따스함과 빛을 선사하듯 자기뿐 아니라 다른 자들도 의의 길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그에 반해, 악인의 길은 어둠입니다. 정직한 길을 저버리고 거짓과 불의와 불공평의 어두운 길로 들어갑니다 (2:13). 그는 자신의 악한 행동에 대해 눈이 가려지고 판단력을 잃어 자신의 악행으로 인해 멸망을 당해도 그 원인이 자기 자신에게서 온 것임을 모르고 하나님의 섭리와 심판에 의한 것임을 깨닫지 못합니다.

 

아버지 강연(07) : 내 말에 귀 기울여라(20-27)

마음을 지키라 의롭고 정직한 지혜의 길을 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악인으로부터 우리 전 존재를 지키는 것입니다. 눈과 귀와 마음과 입, 눈꺼풀과 발 등 우리 모든 감각이 악인들의 그릇된 주장에 현혹되지 않도록 지켜야 합니다. 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가장 예민하게 가장 마지막까지 철저히 지켜야 하는 것은 마음입니다. 그 마음에서 생명의 근원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20내 아들아 내 말에 주의하며 내가 말하는 것에 네 귀를 기울이라 21그것을 네 눈에서 떠나게 하지 말며 네 마음 속에 지키라 22그것은 얻는 자에게 생명이 되며 그의 온 육체의 건강이 됨이니라 23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24구부러진 말을 네 입에서 버리며 비뚤어진 말을 네 입술에서 멀리 하라 25네 눈은 바로 보며 네 눈꺼풀은 네 앞을 곧게 살펴 26네 발이 행할 길을 평탄하게 하며 네 모든 길을 든든히 하라 27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네 발을 악에서 떠나게 하라(20-27)

악인의 길에 들어가지 말라 의인의 길이 있다면 악인의 길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그의 법을 경시하는 미련한 자의 길입니다. 탐욕이 지배하고 경쟁이 이끌고 이기심에 사로잡혀 분별력을 잃어버린 자의 길입니다. 그런 길에는 들어서지 말고 피해야 하고 이미 그 길에 들어섰다면 속히 돌이켜 떠나야 합니다.

 

(1) 내 말에 귀 기울여라(20-22)

20-27절은 아버지의 일곱째의 강연으로서, 10-19절의 여섯째 강연에 이어 계속 길에 대해 조언합니다. 이 강연은 바른 길로 걸어라라는 주제로 요약됩니다. 이 강연의 특징은 귀, , 마음, , 입술, 눈꺼풀, 발이라는 일곱 가지의 신체 기관을 언급하며, 아들이 훈계를 따라 바른 길로 가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먼저 아버지는 10절에서와 마찬가지로 아들에게 자신의 훈계를 따르라고 명합니다. 특히 귀와 눈과 마음으로 자신의 말에 집중하고 떠나지 말라고 강력히 말합니다. 13절에서도 언급했듯이 아버지는 자기가 전하는 훈계가 그것을 찾는 자에게 생명이 된다고 말합니다. 앞서 3:228:35에서는 지혜가 생명이 된다고 설명했으므로 아버지의 훈계와 지혜가 연결됩니다. 여기 4:22에서는 생명이 영적, 정신적 치유만이 아니라 육체적 치유도 가져다준다고 덧붙입니다. 이러한 육체적 치유와 활력은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않고 오직 여호와만 의지하는 자에게 제공되는 선물로 설명되기도 하였습니다(3:8). 이런 관련성을 종합해 볼 때 아버지의 훈계는 여호와를 신뢰하는 데서 나오는 지혜로운 조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를 수용하는 자는 영적, 정신적, 육체적 회복을 경험할 것입니다.

 

(2) 생명의 근원인 네 마음을 지켜라(23)

아버지는 아들에게 그 어떤 것보다 네 마음을 지키라고 충고합니다. 여기서 동사 지키다보호하다’, ‘관찰하다’, ‘감시하다를 뜻하므로 우리 마음을 살피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마음을 이렇게 조심스레 지켜야 하는 이유는 마음에서 생명의 근원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3) 바른 길로 걸어라(24-27)

강연의 마지막 부분인 24-27절은 마음을 살펴 바른길로 걸으라는 조언입니다. 23절의 마음을 지키는 일은 24-27절에서 말과 행동으로 연결됩니다. 만약 우리가 선한 것을 마음에 쌓아둔다면 입, , 발 등을 통해 선한 말과 태도와 행동이 나옵니다. 바른 길로 가기 위해서는 가치 없는 것에 눈길을 주지 말고 도덕적으로 신앙적으로 방해가 되는 것을 제거하여 길을 평탄케 해야 합니다. 또한 오로지 앞만 보고 걸어 바른 길에서 벗어나는 어떠한 길로도 치우치지 말아야 합니다. 특히 14-17절에서 언급된 죄악과 폭력으로부터 발길을 끊어야 합니다.

 


마음으로부터 다른 모든 감각 기관들이 영향을 받으며, 또 다른 감각기관들로부터 들어오는 정보를 판단하고 분별하는 것도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지혜에 의해 장악될 때 우리는 온 존재로,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질서를 따라 복을 누리며 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좌로나 우로 치우치지 않고 오직 그 마음으로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에게 평탄한 길이 열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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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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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를 얻고 그것을 떠나지 말라

잠언 41-9


사사기는 다음세대가 다른세대가 되었다고 탄식합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신앙의 유산이 전수되지 않고 세상의 문화와 가치관에 자녀들의 영혼이 점령당했습니다. 우리의 현실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젊은이와 어린이들을 찾아보기 어려운 상황을 보면 조국 교회에 있는가 싶은 생각마저 듭니다. 그 이유는 하나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을 전수해주지 못했거나 전수해줄 신앙의 유산이 없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어떠한 대가를 지불해서 라도 명철을 얻어야 합니다. 지혜는 그 정도로 귀하고 소중합니다. 지혜는 사랑의 대상이므로 지혜와 지혜를 찾는 자 사이에는 상호적인 관계가 절실히 필요합니다. 아들이 애써 찾은 여인을 아내로 맞아 평생 사랑하고 충성하며 보호할 의지를 가져야 하듯, 지혜를 아내로 삼아 평생 친밀한 사랑과 주고받는 관계를 지속하며 살아야 합니다.

 

아버지의 훈계를 들어라(1-2)

부모들이 지혜의 삶을 산다면, 자식들에게 잔소리하지 않더라도 그들은 부모님 지혜의 삶을 물려받고 싶어 할 것입니다. 부모들이 여전히 세상적인 지혜를 통해 자식들이 세속적인 성공을 얻기만을 바란다면 앞이 캄캄합니다. 부모는 자식들에게 삶과 교육으로 하나님의 지혜를 교육해서 자식들도 하나님을 섬기는 삶을 이어가야 합니다.

 

1아들들아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명철을 얻기에 주의하라 2내가 선한 도리를 너희에게 전하노니 내 법을 떠나지 말라(1-2)

본 장은 자식들을 가르치기 위한 아버지의 간절한 마음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솔로몬은 구체적으로 훈계를 하기 전에 먼저 자신의 훈계에 집중할 것을 간곡히 당부합니다. 이 가르침은 개인적인 교훈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소개합니다.

잠언 4장은 1~9장에서 내 아들()로 시작하는 열 번의 강연 중 다섯째(1-9), 여섯째(10-19), 일곱째(20-27)에 해당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각 강연은 지혜를 얻고 사랑하라’, ‘악인의 길을 피하고 의인의 길로 가라’, ‘바른 길로 걸어라의 주제를 논합니다.

다섯째 강연에 해당하는 4:1-9은 다른 강연에서와 달리 내 아들아가 아닌 복수형의 아들들아로 시작합니다. 아버지는 아들들에게 자신의 훈계를 듣고 명철을 얻는 데에 주의를 온전히 기울이라고 명합니다. ‘~하라혹은 ‘~하지 말라는 훈계는 잔소리처럼 들리기 일쑤라 아들이 이를 무시하고 싶을 것임을 아버지는 잘 알고 있습니다.

 

할아버지로부터 전수 받은 지혜의 교훈(3-9)

지혜는 가장 먼저 얻어야 할 가치입니다.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가르침의 골자는 지혜가 제일이기에 지혜를 얻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인생의 안전과 생명을 보장하며, 무엇보다 비교할 수 없는 최고의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그 어떤 대가를 지불한다 해도 반드시 얻어야 할 가치입니다.

 

3나도 내 아버지에게 아들이었으며 내 어머니 보기에 유약한 외아들이었노라 4아버지가 내게 가르쳐 이르기를 내 말을 네 마음에 두라 내 명령을 지키라 그리하면 살리라 5지혜를 얻으며 명철을 얻으라 내 입의 말을 잊지 말며 어기지 말라 6지혜를 버리지 말라 그가 너를 보호하리라 그를 사랑하라 그가 너를 지키리라 7지혜가 제일이니 지혜를 얻으라 네가 얻은 모든 것을 가지고 명철을 얻을지니라 8그를 높이라 그리하면 그가 너를 높이 들리라 만일 그를 품으면 그가 너를 영화롭게 하리라 9그가 아름다운 관을 네 머리에 두겠고 영화로운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하셨느니라(3-9)

자기의 훈계를 잘 듣고 명철을 얻으라고 조언하는 아버지는 자기가 아들들에게 전하는 이 훈계가 다름 아닌 자신의 아버지에게서 직접 들은 명령이었음을 밝힙니다. 이와 같은 대를 잇는 자식 교육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자녀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르치고 강론해야 하는 의무가 있었습니다(4:9-10; 6:7). 또한, 자녀들은 하나님께서 과거에 하신 일에 대해 부모에게 질문함으로써 계속적으로 교육을 받도록 격려되었ㅅ브니다(32:7). 부모가 자식을 훈육하며 하나님의 말씀으로 키우는 전통은 이처럼 이스라엘 가정에서 계속되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들에게 자신도 부모에게 아들이었고 더구나 그는 부모가 보기에 연약하여 애지중지 보살핌 받은 외아들이었다고 말합니다. 아버지의 이러한 표현은 첫째, 그 자신과 부모 사이에 연대감이 있었음을 나타냅니다. 그와 같은 연대감은 이제 아버지가 된 자신과 자기 아들들 사이에서도 이미 형성되었습니다. 둘째, 아버지는 부모로부터 각별한 애정과 관심 속에서 지혜의 교육을 받았음을 알려줍니다. 부모가 된 아버지는 아들들에게 자기가 부모에게서 받았던 것과 같이 애정과 관심으로 그들을 교육하려고 합니다.

4절부터 아버지는 자신의 아버지로부터 전수 받은 지혜의 교훈을 아들들에게 전합니다. 4-9절에 이르는 할아버지 말씀의 첫마디는 자신의 말들을 마음으로 단단히 붙들고 그 명령들을 지키고 살라는 훈계입니다. 내 말을 듣고 지키라는 말은 이제 부모가 된 아버지가 아들들에게 주는 조언의 첫마디가 되었습니다(1). 여기만이 아니라 1~9장 사이에 나오는 강연은 모두 이와 같은 내용의 명령으로 시작합니다(1:8; 2:1; 3:1; 4:1,10,20; 5:1;6:20; 7:1; 참고로 둘째 강연[2:1-22)은 조건절로 시작하지만 내용은 같다).

5-9절은 지혜를 얻고 사랑하라로 요약됩니다. 이 명령과 더불어 지혜를 얻은 결과로 따라오는 유익을 나열하여 듣는 이를 격려합니다. 먼저, 지혜를 얻으라 명철을 얻으라는 명령은 5절과 7절에서 반복되어 무엇보다 지혜를 꼭 얻으라는 간절함을 드러냅니다. 할아버지는 자신의 아들에게 이 명령을 잊지 말고 또한 여기서 벗어나지 말도록 경고합니다. 자신이 전해주는 귀중한 지혜의 유산을 아들이 늘 기억하여 그 말에서 떠나지 않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지혜를 얻으라는 명령은 지혜를 버리지 말고 사랑하라는 내용으로 이어집니다. 지혜는 단순히 얻어야 할 대상만이 아니라 사랑해야 할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지혜를 찾는 자는 지혜를 얻어 일시적인 유의을 누리는 데서 끝내려 하지 말고 지혜를 열렬히 사랑하고 끝까지 지켜야 합니다. 그러면 지혜가 그의 사랑과 충성에 대한 응답으로 그를 보호하고 살피고 지켜줄 것입니다. 지혜가 지혜를 얻은 자를 악한 남자와 악한 여자로부터 지켜주고 바른 길로 인도한다고 예시한 2:11-22이 그런 예의 하나입니다.

이처럼 6-9절에서 지혜는 신부와 아내처럼 비유되었습니다. 이는 아들이 평생 함께할 신붓감을 찾는 일이 중요하고 그녀를 애써 찾아야 할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심혈을 기울여 신부를 찾고 그녀를 아내로 맞아 평생토록 사랑해야 하듯 지혜를 얻고 지혜를 끝까지 버리지 말고 사랑하라고 조언합니다. 이처럼 여자로 의인화된 지혜는 1~9장의 아버지의 강연(및 잠언) 전체에 걸쳐 나옵니다. 특히 4-7장은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훈계로서 지혜의 여인과 미련하고 음란한 여인에 대한 대조를 통해 지혜의 귀중함과 필요성을 강조합니다.

8-9장은 여인으로 의인화된 지혜가 여호와 하나님과 긴밀한 관계가 있음을 부각하고 우매에서 벗어나 지혜를 얻으려면 하나님을 경외하고 찾아야 함을 보여줍니다.

한편, 6절의 지혜를 버리지 말라지혜가 너를 지키리라(보호하리라'로 번역됨)라는 문장은 각각 2절의 내 법을 버리지(‘떠나지로 번역됨) 말라4절의 내 명령들을 지켜라라는 문장에서 사용된 동사를 반복함으로써 아버지의 말씀이 지혜로운 말씀이며 아버지의 말을 지키면 지혜를 얻어 그 지혜가 아들을 지킬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와 같은 연결을 통해 아버지의 말씀이 지혜와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강조합니다. 7절의 지혜가 제일이니 지혜를 얻으라는 문장은 지혜의 시작(근본)’은 이것입니다. ‘지혜를 얻으라로 번역할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지혜가 최상이며 동시에 기본이라는 이중적인 의미가 함축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지혜가 제일이며 최고이고 지혜의 시작은 바로 지혜를 얻는 시도와 노력에서 비롯되므로 우리가 소유한 모든 것으로 명철을 얻어야 합니다. 마치 밭에 숨긴 귀한 진주를 발견한 상인이 그 진주를 얻기 위해 모든 소유를 팔아 밭을 산 것처럼(13:45-46) 어떠한 대가를 지불해서라도 명철을 얻어야 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지혜를 돈으로 사라고 부추기거나 지혜를 돈으로 살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들이 재물에 대한 관심이 많고 그 가치를 잘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지혜가 온갖 재물을 바꿔서 얻을 만할 정도로 귀하고 소중하다는 점을 강화하려는 의도입니다.

한편, ‘지혜의 시작(근본)’이라는 번역은 1:7이나 9:10을 상기시켜, 지혜를 얻는 데에 여호와 경외가 빠질 수 없음을 떠올리게 합니다. 또한, 위의 지혜를 얻는 방법과 관련하여, 지혜를 얻기 위해서는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하는데, 그 대가의 시작이 바로 여호와 경외입니다. 3장에서 잘 보여주듯이 여호와 경외를 바탕으로 하나님(3:1-12)과 이웃(3:21-35)을 사랑한다면 그 자가 바로 지혜를 얻은 자라고 불릴 것입니다.

지혜를 얻은 자는 신부를 사랑하듯 사랑하고 또 그녀를 높여주며 품에 안아주어야 합니다. 지혜를 높이라는 말은 지혜에 최고의 가치와 의미를 두며 지혜를 귀하게 여기라는 뜻입니다. 지혜를 품에 안으라는 말은 이제 지혜와 친밀하고 상호적인 사랑을 주고받으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6절에서처럼 지혜가 그의 사랑에 화답하여, 자기를 높여준 그를 높여주고 존경하여 영화롭게 해줄 것입니다. 마치 신부를 간절히 찾아 드디어 결혼이 성사되는 날 신랑이 영화로운 면류관을 수여 받듯이 지혜를 자신의 배우자로 얻은 자는 지혜로부터 아낌없는 사랑과 대접을 받을 것입니다. 9절의 아름다운 관이나 ;영화로운 면류관;이란 표현은 결혼식에서 신랑과 신부가 연합하는 것을 상징하는의미로 신랑의 머리에 관을 씌우는 전통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해됩니다. 아름다운 관이나 면류관은 1:9에서 부모의 지혜로운 훈계를 듣는 자로 하여금 전쟁의 승리자에게 수여하는 화려한 승리의 관이나 새로이 직책을 맡은 관리에게 수여하는 금사슬을 상기시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부모의 가르침을 경청하는 자식이 형통하듯이 지혜를 평생의 배우자로 삼아 사랑하고 높이고 품는 자는 보호와 존귀와 영광을 얻게 됩니다.


지혜는 가장 먼저 얻어낼 가치입니다. 조상에게 물려받은 가르침에 골자는 지혜가 제일이기에 지혜를 얻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인생의 안전과 생명을 보장하며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최고의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따라서 자신의 가진 모든 것을 다 죽어서라도 지혜를 얻어야 합니다. 이는 밭에 감춘 보물을 발견한 사람이 자신의 전 소유를 지불하여 보물을 얻는다는 비유로 떠오르게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지혜로써 우리에게 진정한 안전과 생명을 가져다 주십니다. 당신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무엇입니까? 자녀들에게 세상의 돈이나 명예 권력 학식보다 하나님의 지혜를 얻는 것이 우리의 모든 것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가르치고 있습니까? 당신과 우리 가족이 가장 먼저 구해야 할 것이 지혜라는 것,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라는 것을 잊지 않고 살아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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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03-02)


지혜의 가치와 실천

잠언 3장 11-35절


길거리에 수많은 청소년이 지나갑니다. 그들 중에는 한 청소년이 교복을 입고 길거리에서 못된 짓을 하고 있다고 가정해봅시다.  많은 어른이 지나면서 혀를 차지만, 그를 책망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지나가는 많은 어른 중에 유독 달려가서 책망하고, 심하게 꾸중하는 어른이 있다면 그 사람은 누군지 아십니까? 그 사람은 바로 아이의 부모이거나 보호자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지혜를 얻은 사람은 얼마나 행복합니까! 세상의 보화나 어떤 귀중한 것도 지혜에 견줄 만한 것이 없습니다. 지혜의 유익이나 축복은 인간의 삶에 평강과 생명을 제공하는 것으로 나타날 뿐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 사역에도 그 영향력을 나타냈습니다. 이러한 유익을 주는 지혜를 얻은 자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돌보는 의무를 수행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장수와 부귀를 가진 지혜(11-18)

고난으로부터 속히 벗어나려고만 하지 말고 하나님의 메시지가 무엇인지 살피는 지혜도 필요합니다. 지혜가 주는 이익은 은이나 정금이나 진주보다 비교할 수 없습니다. 한순간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와 분별력을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책망은 자녀를 기대하기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책망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대하시기 때문에 주신 것입니다.
 
11내 아들아 여호와의 징계를 경히 여기지 말라 그 꾸지람을 싫어하지 말라 12대저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기를 마치 아비가 그 기뻐하는 아들을 징계함 같이 하시느니라 13지혜를 얻은 자와 명철을 얻은 자는 복이 있나니 14이는 지혜를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낫고 그 이익이 정금보다 나음이니라 15지혜는 진주보다 귀하니 네가 사모하는 모든 것으로도 이에 비교할 수 없도다 16그의 오른손에는 장수가 있고 그의 왼손에는 부귀가 있나니 17그 길은 즐거운 길이요 그의 지름길은 다 평강이니라 18지혜는 그 얻은 자에게 생명 나무라 지혜를 가진 자는 복되도다(11-18)
하나님께서는 훈계와 책망을 통해 지혜를 가르치십니다. 마치 아버지가 사랑하는 아들을 꾸짖듯 성도를 징계하십니다. 징계로 인한 고난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 표현이며 우리의 유익을 위한 것입니다. 우리는 고난을 통해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식을 얻으며, 훈계와 책망을 통해 지혜를 얻게 됩니다.
 
(1) 여호와의 징계를 들어라(11-12)
3:1-12의 아버지의 강연 마지막 부분에 해당하는 단락입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하나님의 훈계나 꾸지람을 거절하지 말고 언짢게 여기지 말라고 조언합니다. 이는 하나님이 그를 징계하는 이유와 목적이 그를 사랑하여 하나님이 원하시는 완전함에 이르도록 이끄심에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버지가 아들을 훈육하듯 사랑과 훈계로써 그의 백성을 양육하십니다.
 
(2) 지혜를 얻은 자의 행복(13-18)
‘내 아들아’로 시작하는 셋째 강연(1-12)이 끝나고, 넷째 강연(21-35)이 시작되기 전인 13~20절은 ‘지혜의 송가’로 불리며, 지혜에 대한 유익을 찬양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송가는 지혜를 얻은 자는 얼마나 행복한가!'로 시작하며, 지혜가 금은보화나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값어치가 높다고 설명합니다.
욥기 28에서도 세상의 어떤 진귀한 보석과도 비교할 수 없고 그 값을 제대로 매길 수도 없을 정도로 귀한 지혜의 가치를 찬양합니다. 시편에서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명령을 순금이나 수천의 금은보다 더 귀한 것으로 찬양하였는데(시 19:10; 119:72,127), 이로써 지혜와 말씀과의 밀접한 관련성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지혜가 왜 그렇게 값집니까? 지혜는 금은보화가 가져다줄 수 없는 장수, 부귀, 즐거움, 평강, 생명을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금은보화 자체도 지혜가 주는 것과 같은 종류와 질은 아니더라도 사람들에게 기쁨과 안락한 생활을 제공합니다. 하지만 오히려 재물로 인해 불안, 욕심, 재앙, 분쟁, 죽음이 더 자주 일어납니다. 또한, 재물은 강제로 빼앗길 수도 있으며, 빼앗긴 후에는 재물이 가져다준 어떠한 유익도 남아 있지 않게 됩니다. 그러나 지혜는 아무에게도 빼앗길 염려가 없으며, 그 유익이 부귀영화를 뛰어넘어 삶에 평강과 생명을 공급해줍니다.
 

질서와 평강을 가진 지혜(19-26)

하나님께서는 지혜를 가진 사람들에게 이웃들과 화목하고 정직한 삶을 살아가길 원하십니다. 이러한 삶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임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이단에 빠진 자들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가정과 이웃과의 관계를 파괴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혜를 발견하고 얻을 뿐 아니라, 그것을 지키고 행해야 합니다.
 
19여호와께서는 지혜로 땅에 터를 놓으셨으며 명철로 하늘을 견고히 세우셨고 20그의 지식으로 깊은 바다를 갈라지게 하셨으며 공중에서 이슬이 내리게 하셨느니라 21내 아들아 완전한 지혜와 근신을 지키고 이것들이 네 눈 앞에서 떠나지 말게 하라 22그리하면 그것이 네 영혼의 생명이 되며 네 목에 장식이 되리니 23네가 네 길을 평안히 행하겠고 네 발이 거치지 아니하겠으며 24네가 누울 때에 두려워하지 아니하겠고 네가 누운즉 네 잠이 달리로다 25너는 갑작스러운 두려움도 악인에게 닥치는 멸망도 두려워하지 말라 26대저 여호와는 네가 의지할 이시니라 네 발을 지켜 걸리지 않게 하시리라(19-26)
하나님께서는 지혜로 세상 모든 만물을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세상의 기초를 놓고 만물에 질서를 부여합니다. 지혜는 하나님의 경륜과 섭리의 근본적 원리이므로 이를 따라 사는 자는 생명과 안전이 보장됩니다.
 
(1) 창조에 나타난 지혜(19-20)
1장부터 계속해서 지혜의 유익과 축복이 인간에게 크게 작용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는데, 3:19에 이르러서는 지혜가 창조질서를 이루는 데까지 사용되었음을 소개합니다. 지혜의 가치는 인간의 영역뿐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 사역의 영역에까지 미치고 있습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지혜가 그토록 귀중하고 유익이 될 수 있는 이유는 세상의 창조주이신 여호와가 이미 그 지혜를 아셨고 그 지혜를 사용하여 세상 만물을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땅과 하늘로 세상의 기초를 만드시고 심연에서 샘과 강을 터뜨려 내시며(창 7:11; 시 74:15) 사람들과 만물을 위하여 하늘로부터 이슬과 비를 제공하시는 등 하늘과 바다와 물의 질서를 세우셨습니다(시 104:2-9), 창조 사역에 있어 지혜의 역할은 잠언 8:22-31에서 더 풍성하게 기술됩니다.
하나님의 지혜가 창조주 하나님의 창조 역사에 적극적으로 참여되었듯이, 이제 그 지혜가 창조물 전체에게까지 스며들게 됩니다. 그러므로 지혜 있는 자는 우주 만물이 살아 움직이며 돌아가는 데에서 하나님의 임재와 주권 그리고 그의 전지전능하심을 인지하며 하나님을 드높일 수 있습니다. 지혜로운 삶은 하나님을 계속 닮아가고 창조질서에 순응하는 것입니다.
 
(2) 지혜가 주는 유익(21-26)
지혜의 송가가 끝나고 21절부터 ‘내 아들아’로 시작하는 아버지의 넷째 강연(21-35)이 시작됩니다. 아버지의 넷째 강연은 세 부분으로 나뉘었으며, 첫 부분인 21-26절에서는 아버지의 두 가지 명령과 지혜가 주는 유익을 설명합니다.
첫 명령은 완전한 지혜와 근신을 살펴 시야에서 벗어나지 않게 하라는 것입니다. 완전한 지혜와 근신은 사리분별력과 통찰력을 의미하며 지혜의 유익으로 설명되었습니다(2:7). 이처럼 지혜를 얻어 분별력과 통찰력을 가진 자는 깨어 활동할 때나 잠잘 때나 안전과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둘째 명령은 갑작스러운 두려움이나 악인의 심판을 보고 두려워 말라는 내용입니다. 왜냐하면, 안전과 평안 또는 두려움과 심판을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지만,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면 우리를 지켜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로서 ‘네 발을 거치지 않게 하겠다’(26)는 약속은 바로 지혜의 유익(23)과 같은 내용입니다. 이로써 지혜와 하나님의 밀접한 관계가 다시 수면 위에 떠오릅니다. 이는 22-24절에 기술된 지혜로 인한 유익이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는 데서 비롯된다는 점을 시사해줍니다.
 

화목과 정직을 가진 지혜(27-35)

선택해야 할 두 길이 있습니다. 어느 길을 선택하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길과 동행하는 축복된 길에서 무엇을 선택하길 원하십니까? 저주의 길과 축복의 길, 영광의 길과 수치의 길, 하나님의 비웃음을 사는 길과 은혜를 입고 살아가는 길이 있습니다. 당신은 어느 길에 선택하길 원하십니까?
 
27네 손이 선을 베풀 힘이 있거든 마땅히 받을 자에게 베풀기를 아끼지 말며 28네게 있거든 이웃에게 이르기를 갔다가 다시 오라 내일 주겠노라 하지 말며 29네 이웃이 네 곁에서 평안히 살거든 그를 해하려고 꾀하지 말며 30사람이 네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였거든 까닭 없이 더불어 다투지 말며 31포학한 자를 부러워하지 말며 그의 어떤 행위도 따르지 말라 32대저 패역한 자는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 정직한 자에게는 그의 교통하심이 있으며 33악인의 집에는 여호와의 저주가 있거니와 의인의 집에는 복이 있느니라 34진실로 그는 거만한 자를 비웃으시며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나니 35지혜로운 자는 영광을 기업으로 받거니와 미련한 자의 영달함은 수치가 되느니라(27-35)
지혜의 가치와 그로 인한 유익을 언급한 데 이어 지혜로운 자의 이웃에 대한 태도에 관한 교훈합니다. ‘...하지 말라’는 명령은 사람이 지켜야 할 하한선으로서, 여섯 번에 걸쳐 ‘말며’ 혹은 ‘말라’로 끝맺음 되는 31절까지의 훈계는 내용상 살펴볼 수 있습니다.
 
(1) 지혜자의 이웃에 대한 책임(27-31)
이제 아버지는 여섯 차례의 ‘~하지 말라’는 단호한 명령형을 이용하여, 하나님을 신뢰하며 지혜를 얻고 그 유익을 누리려는 자에게는 이웃을 돌보고 사랑해야 하는 책임이 뒤따름을 언급합니다.
명령의 내용은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 나에게 재물, 힘, 능력 등 무엇인가 남에게 줄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뭔가 부족하여 스스로 채우거나 해결할 능력이 없는 자에게 아낌없이 베풀어야 합니다. 둘째, 까닭 없이 이웃과 분쟁하거나 악한 일을 계획하지 말아야 합니다. 셋째, 폭력을 행사하는 악인을 부러워하거나 그가 하는 행위를 선택하지 말아야 합니다. 포학한 자란 바로 27-30절의 명령을 어기는 자인 셈입니다. 폭력은 말과 태도의 폭행과 신체적인 폭행을 모두 포함합니다. 언뜻에는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이 힘을 가진 것 같지만 대부분은 자기 내면의 약함을 방어하기 위해 언어나 물리적인 힘을 외면으로 표출하는 것입니다. 이런 행위를 보고 독려 받으면 나도 그런 행위에 빠지기 쉽습니다. 폭력자의 어떤 행위도 ‘선택하지 말라’(‘좇지 말라’로 번역됨)는 조언에서 말해주듯 이런 행위를 하지 않겠다는 결단과 순간의 지혜로운 선택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2) 악인과 의인의 대조(32-35)
아버지는 마지막으로 악인과 의인의 대조적인 모습을 설명하여 아들로 하여금 의인의 길로 가도록 격려합니다. 이 구절들은 31절의 폭력자를 부러워하지 말고 어떤 행동이든 선택하지 말라는 명령에 대한 이유를 제시해줍니다. 동시에 진정한 지혜는 이웃을 돌보는 것으로 나타나야 한다는 것과 이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여기서 악인과 의인의 대조는 두 가지 양상으로 나타납니다.
먼저, 악인과 의인은 그들의 기본 됨됨이와 행동 양식에서 대조됩니다. 악인은 패역과 거만함을 특징으로 갖고 있는 자들이며 이들은 결국 미련한 자로 결론이 납니다. 반면, 의인은 정직과 겸손을 소유한 자들로서 지혜로운 자와 동일시됩니다. 이 대조를 통해 지혜자란 마음과 태도뿐 아니라 언행에 있어서도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정의와 사랑의 삶을 실천하는 자임이 부각됩니다. 다른 한 가지 대조적 양상은 악인과 의인 그리고 그들 각각의 집안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에서 나타납니다.
하나님께서는 악인을 미워하고 비웃고 그들의 집을 저주하시며 그들의 미련함으로 수치를 당하게 하십니다. 그러나 의인과는 교제를 나누시고 그의 집에 복과 은혜를 베푸시며 하나님의 임재를 의인 자신만이 아니라 그 후손까지도 유산으로 누릴 수 있게 하십니다.
3장 전체를 통틀어 볼 때, 지혜자는 하나님과 건강하고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자(1-12)임과 동시에 이웃과도 건강하고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자입니다(21-35). 이런 사람은 지혜의 근원이 하나님께 있음을 알고 지혜의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소중한 가치를 깨달은 자이며, 그 결과로 지혜가 주는 유의 누리는 자입니다(13-20).
 


징계와 책망을 받으면 즐겁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징계와 책망 앞에서 어떤 태도를 보이느냐에 따라서 지혜로운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으로 나눕니다. 하나님의 지혜를 잘 받아드리면 그 속에 질서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 때문에 즐겁고 평안한 길을 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징계와 책망, 그리고 지혜롭지 못한 행동함으로 이웃에게서 오는 징계와 책망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습니까? 기쁘게 받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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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03-01)

 


여호와를 경외하는 지혜

잠언 31-10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들은 한결같이 오래 살고 성공하길 원합니다. 그렇다면 장수와 성공의 비결은 무엇입니까? 이스라엘 역사 속에 가장 지혜로웠고 가장 많은 부와 명예를 누린 솔로몬은 자신의 아들에게 오래 살고 성공하는 방법을 가르쳐 줍니다.

 

지혜는 하나님과 나 자신의 관계를 정립해줍니다. 아버지의 지혜로운 조언을 따라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나 자신의 지혜와 능력이 있더라도 겸손하게 하나님의 간섭하심을 기대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신뢰는 지식이든 물질이든 내 삶의 모든 영역에서 나타나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자기를 신뢰하는 자에게 아낌없는 선물을 베푸시며 그를 아들처럼 사랑과 훈계로 이끄십니다.

 

아버지 강연(03) : 여호와를 신뢰하고 공경하라(1-10)

말씀을 기억하고 순종하는 자의 삶에 평강과 영생의 길을 주십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께 순종하라는 명령을 받았고, 하나님께서는 그 명령에 순종하는 자들에게 장수와 평강의 복을 허락해주십니다. 자신의 삶을 제어하고 속박하기 위해 명령하시는 것이 아니라, 자유와 번영의 복을 주시려고 오늘도 말씀으로 찾아오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 깊은 묵상을 하시길 바랍니다.

 

1내 아들아 나의 법을 잊어버리지 말고 네 마음으로 나의 명령을 지키라 2그리하면 그것이 네가 장수하여 많은 해를 누리게 하며 평강을 더하게 하리라 3인자와 진리가 네게서 떠나지 말게 하고 그것을 네 목에 매며 네 마음판에 새기라 4그리하면 네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으리라 5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6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7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 8이것이 네 몸에 양약이 되어 네 골수를 윤택하게 하리라(1-8)

 

잠언 3장은 세 부분으로 구성됩니다. 전반부와 후반부에 1-9장의 내 아들()로 시작하는 강연 중 셋째(1-12)와 넷째(21-35)에 해당하는 강연이 등장하고 그 중간에 막간처럼 지혜의 송가’(13-20)가 나옵니다.

내용상 셋째와 넷째 강연은 각각 여호와를 향한 태도와 이웃을 향한 태도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으므로 서로 연결됩니다. 중간에 위치한 지혜의 송가는 1장부터 계속해서 여기저기에 등장하는 지혜가 주는 유익을 다룹니다.

 

(1) 나의 법을 잊어버리지 말라(1-4)

잠언 3:1-12에 나타난 아버지의 강연은 내용에 따라 네 단락(1-4, 5-8, 9-10, 11-12)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4절은 나의 법을 잊어버리지 말라’, 5~8절은 여호와를 의지하라’, 9-10절은 첫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11-12절은 여호와의 징계를 들어라라는 명령을 담고 있습니다. 또한, 각 부분은 명령 자체뿐만 아니라 명령을 지킴으로써 받는 유익이나 이유를 공통적으로 기술하고 있습니다.

먼저, 첫 단락인 1-4절에서 아버지는 앞의 두 강연(1:8-19; 2:1-22)에서와 마찬가지로 아들을 불러 주의를 집중시키고 내 말을 듣고 지키라는 내용의 조언을 던집니다. 특히 3:1에서는 나의 법나의 명령을 문장 맨 처음에 언급함으로써 아버지의 말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그 법과 명령을 잊지 말고 지키라고 명합니다. 잊지 말라는 부정문 형태의 훈계는 부정적인 언어를 사용한 것이 아니라 단지 기억하라의 또 다른 표현일 뿐입니다. 바로 뒤에 나오는 긍정 명령의 지키라’(‘보호하라’, ‘관찰하라’, ‘간직하라의 뜻)와 짝을 이루어 아버지의 말에 순종하도록 독촉하는 것이 주된 목적입니다. 이처럼 같은 내용을 부정과 긍정의 두 가지 형태로 함께 표현하는 형식은 1~12절 사이에 계속 나타나 이 강연의 특색을 이룹니다(1,3,5,7). 아들이 아버지의 말을 기억하고 마음에 간직하면 그는 장수와 평강을 선물로 받을 것입니다. 솔로몬이 하나님께 지혜를 구했을 때도 하나님께서는 그가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면 장수를 선물로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왕상 3:14). 그런데 순종의 선물로서의 장수나 평강과 같은 축복은 오늘 본문의 8절이나 10:27에서 여호와 경외에 대한 선물로도 소개됩니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훈계와 그 훈계에 순종하는 것에는 기본적으로 여호와 경외가 그 밑바탕에 깔려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1절에 이어 3절에서 아버지는 인자와 진리가 너를 버리지 않게 하라고 명합니다. 여기서 인자와 진리는 새로운 내용이 아니라 1절에서 아버지가 전하는 법과 명령을 가리킵니다. 왜냐하면, 인자와 진리가 바로 아버지의 명령을 대변하는 속성이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또한 인자와 진리를 목에 매고 마음 판에 새기라고 명합니다. 이 두 가지 긍정 명령은 앞의 부정 명령과 같은 의미로서, 인자와 진리를 목걸이를 매고 다니듯 일상에서 생활화하고 마음에 새겨 지워지지 않도록 기억하고 실행하라는 뜻입니다. 이 명령은 하나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가르치고 손이나 이마에 표로 삼고 문설주와 대문에 기록하라는 신명기 6:6-9을 상기시킵니다.

이와 같은 명령의 관련성을 보더라도 아버지가 아들에게 주는 훈계는 부모의 경험이나 지식으로 자식에게 일러주는 처세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바탕으로 하고 하나님의 말씀과 밀접히 관련된 훈계임을 나타냅니다. 인자와 진리로 평가되는 아버지의 훈계를 간직하고 순종한다면 아들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과 좋은 평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성경 인물 중에서 하나님과 사람에게서 은총을 입은 사람의 예로 요셉이나 사무엘 또는 예수님을 들 수 있습니다(39:4, 22: 삼상 2:26; 2:52). 이들이 사람과 하나님 앞에서 은총을 입은 이유는 하나님께서 이들과 함께하셨기 때문입니다. 2절과 더불어 4절에서 언급하는 순종의 선물 또한 하나님과의 관계를 떠나서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2) 여호와를 의지하라(5-8)

우리가 인생의 모든 길에서 하나님을 인정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길을 지도하셔서 우리의 길을 형통하게 만들어 주십니다. 형통한 길로 인도하십니다. 자기 힘이나 슬기를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한 일을 피할 때 우리의 길이 형통하게 될 뿐만 아니라 건강하게 됩니다.

 

둘째 단락인 5-8절은 한마디로 하나님을 신뢰하라로 요약됩니다. 이 단락은 앞의 1-4절 단락과 마찬가지로 다섯 가지의 명령이 부정과 긍정 형식으로 번갈아 가며 나오는데, 다만 긍정 형식으로 시작된 점이 다릅니다.

먼저, 5절의 두 가지 명령은 같은 의미로서 서로 의미를 풀이해줍니다. , 하나님을 온 마음으로 신뢰한다는 말은 자기 자신의 명철에 기대지(‘의지하지로 번역됨)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사람의 이성적 판단이나 경험이나 지식이 헛되고 쓸모없다는 의미가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성도들도 나름대로의 지능과 경험과 지식이 있으므로 어떤 상황이 벌어질 때 자신의 판단에 따라 예측하고 행동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때에도 하나님께서 내 삶의 주권자임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간섭과 인도를 그 어떤 것보다 더 우위에 두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말은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을 뜻합니다. 내가 가고 행하는 모든 길(6: ‘범사에로 번역됨)에서 나 자신이나 타인을 의지하지 않고 오로지 하나님을 신뢰하여 그분의 절대적 주권이 그 길에 행사되고 있다는 점을 인지하면, 내가 가는 울퉁불퉁하고 다양한 길을 하나님께서 직접 평탄하게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6: ‘지도하시리라로 번역됨).

 

7절의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네 눈에 보기에 지혜롭다 여기지 말라는 뜻으로, 5절의 네 명철에 기대지 말라와 같은 의미입니다. 이 말을 다른 식으로 표현하면 하나님을 신뢰하고 인정하고 또한 경외하라는 말입니다. 5절에서와 마찬가지로, 각자에게 있는 지능과 능력을 무시하라는 말이 아니라 자신의 지능과 능력이 최선이며 최고라고 여기는 교만한 태도를 삼가라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이런 태도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배제된 데에서 나오기 때문이며 하나님 보시기에 악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스승인 아버지는 아들에게 자신이 인생의 주인인 양 여기는 악으로부터 돌아서고 자신의 약함을 인정하여 모든 일에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분의 주권과 통치를 인정하라고 부단하게 강조합니다. 이와같이 자기를 지혜롭게 여기지 않고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신뢰하면 하나님의 인도(6)와 더불어 몸과 뼈가 치유되며 활력을 공급받을 얻을 것입니다. 이 약속은 하나님과의 건강한 관계가 성립될 때 영적, 신앙적 유익뿐 아니라 육체적, 정신적 유익도 함께 누릴 수 있음을 나타냅니다.

 

(3) 첫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9-10)

자신의 지혜대로 살지 않고 하나님을 인정하고 경외하는 사람은 자신의 모든 수확물이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알기에, 감사와 공경의 표시로 수확의 일부를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립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다시 그 사람의 삶을 풍성하게 채우십니다. 작은 감사는 큰 감사를 불러옵니다.

 

9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10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포도즙 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9-10)

아버지는 아들에게 하나님을 경외하고 인정하는 표현으로 하나님께 재물과 모든 소산의 첫 열매를 드리라고 조언합니다. 하나님께 소산의 처음 수확을 드리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이며(34:26; 23:10-11) 하나님께서 모든 것의 주인임을 인정하고 고백하며 감사하는 표현입니다.

재물로 하나님을 공경하라고 명하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지식이나 눈에 보이는 우리 몸의 수고와 대가의 소유주가 하나님임을 인정하고, 몸과 마음과 재물을 하나님께 바침으로써 하나님에 대한 완전한 신뢰와 헌신을 나타내라는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하나님께 첫 소산을 드리는 헌신을 보일 때 하나님께서는 한량없는 축복으로 응대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물질의 전부가 아니며 일부일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창고와 포도주 통이 가득 차고 넘치는 축복을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이처럼 자비롭고 후하며 아낌없습니다.


하나님을 기억하라! 하나님을 신뢰하라! 하나님을 공경하라! 이 세 명령 속에 지혜의 길이 담겨 있습니다. 이 세 명령을 따라 살 때, 존재의 원점으로 돌아와 인간됨의 본분을 지키며 하나님을 참되게 예배하는 인생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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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02-02)

 


음녀에게서 건져줄 지혜

잠언 216-22

 


간통법이 폐지됐습니다. 이제 성인들의 지극히 사적인 성적 선택권을 존중하기 위해 법으로 통제하기를 포기한 것입니다. 이 세상의 변화를 생각하면 놀랄 일도 아닙니다. 분명한 것은 세상이 점점 성경적인 질서에서는 멀어지고 있고, 어느새 그것이 상식과 문화로 자리잡고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 청소년들의 거의 50%가 동성결혼에 대해서 거부감을 보이지 않는다는 결과는 이전과 그리고 성경과는 전혀 다른 의식이 우리가 사는 세상을 지배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지혜를 찾는 자는 음녀에게서도 건짐을 받습니다. 음녀는 듣기 좋고 매혹적인 말로 나를 유혹할 수 있지만, 내 마음에 자리 잡은 지혜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러면 지혜가 나에게 분별력을 주므로 나를 유혹하는 음녀에게서 건짐을 받아 사망이 아닌 생명의 길로 인도 받게 됩니다.

 

아버지 강연(02-2) : 지혜를 찾으라(16-22)

()”은 생명을 잉태하는 사랑의 수단으로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소중한 선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결혼 관계안에서 부부관계로 을 바르게 사용해야 합니다. 하지만 악한 자들은 육체적인 쾌락을 위해 무분별하게 사용하도록 부추깁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예수님)과 성도들의 관계를 부부관계로 많이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 하나님과 성도들의 관계를 깨드리는 것을 부부 사이에서도 깨드려진 도구를 비유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지지 않도록 권고하고 있습니다.

 

16지혜가 또 너를 음녀에게서, 말로 호리는 이방 계집에게서 구원하리니 17그는 젊은 시절의 짝을 버리며 그의 하나님의 언약을 잊어버린 자라 18그의 집은 사망으로, 그의 길은 스올로 기울어졌나니 19누구든지 그에게로 가는 자는 돌아오지 못하며 또 생명 길을 얻지 못하느니라 20지혜가 너를 선한 자의 길로 행하게 하며 또 의인의 길을 지키게 하리니 21대저 정직한 자는 땅에 거하며 완전한 자는 땅에 남아 있으리라 22그러나 악인은 땅에서 끊어지겠고 간사한 자는 땅에서 뽑히리라(16-22)

2장은 지혜를 찾으라는 주제의 강연인데, 1-4절은 아버지가 아들에게 자신의 말을 듣고 지혜를 간절히 구하라고 호소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1) 음녀에게서 보호하는 지혜(16-19)

5-8절은 지혜를 찾은 결과로 영적인 유익을 얻게 되는데 먼저 여호와 경외를 깨닫게 되고 지혜의 소유자인 하나님으로부터 지혜와 보호를 선물로 받는다고 설명합니다. 9-11절은 도덕적이고 실제적인 삶의 유익에 대한 설명으로서 지혜를 얻으면 지혜의 주도 하에 선한 삶을 살며 기쁨을 누리고 지혜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12-19절은 지혜의 유익에 대한 연장된 설명입니다. 12-15절은 악한 남자(악인)로부터 건짐을 받는 유익을, 16~19절은 악한 여자(음녀)로부터 건짐을 받는 유익을 설명합니다. 그리고 결론 부분인 20~22절은 의인의 길로 가기를 촉구하며 의인과 악인의 최후를 땅과 관련지어 선언합니다.

오늘 본문의 첫 부분인 16-19절은 우리가 지혜를 찾고 얻으면 지혜가 음녀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여 사망에서 생명의 길로 인도한다는 점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16~19절의 음녀와 12-15절의 악인은 둘 다 속이는 말로 우리를 유혹하여 패역과 사망이 도사리는 길로 인도하는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음녀에 대한 경고는 여기만이 아니라 5장전체, 6:20~35, 7장 전체, 9:13-18에도 나옵니다. 이와 같이 음녀에 대해 자주 집중적으로 다루는 이유는 아마도 현재 아버지가 아들에게 충고하면서 앞으로 배우자를 찾을 아들이 유혹하는 음녀를 구별하여 그 유혹을 뿌리치고 지혜로운 여자를 찾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나온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아들을 유혹하는 음녀는 음녀이방 계집으로 불리며(5:20; 7:5도 마찬가지), 6:26에서는 음란한 계집’, 7:1에서는 창녀로도 소개되었습니다. ‘음녀이방 계집은 둘 다 이방인의 뜻을 갖고는 있지만, 이방 여인이라기보다는 문맥상 낯선 여자’, ‘남의 여자’, ‘음란한 여자로서 도덕적, 관습적 제약 밖에 있는 여자를 가리킵니다. 이 여인은 젊은 시절의 자기 남편을 버리고 하나님께 맹세한 결혼 서약을 깬 자입니다. 남편을 버린 이 여인의 행동은 13절에서 악인이 정직한 길을 버린(‘떠나로 번역됨) 행동을 상기시키며, 자의적으로 올바른 길을 버리고 악을 선택했음을 말해줍니다.

음녀는 말로 아들을 유혹합니다.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매끄럽고 매혹적인 말로 그에게 알랑거리고 기분 좋게 만들어 어떻게 해서든 그의 몸과 마음을 사로잡으려 합니다. 이 음녀의 말은 1:11-14에서 아들을 꾀는 강도의 말과도 밀접하게 연결됩니다. 강도의 말은 남자다운 힘과 의리와 공정함을 내세우는 듯 들리지만 실제로 그들에게는 게으름, 포악함, 뻔뻔함, 사악함이 가득 차 있습니다. 이와같이 이 여인의 접근과 수려한 말은 듣기에 기분 좋을 수 있으나, 이 여인은 이미 결혼 서약을 파기하고 남편을 배신한 자이고 수치를 모르는 뻔뻔한 자며 달콤한 말로 남을 꾀어 자기의 목적을 달성하려는 간교함을 가진 여자입니다. 그러므로 이 여인이 어느 남자에게는 정절과 충성을 다할 리 만무합니다.

더구나 음녀가 젊은이를 꾀어 인도하려는 목적지는 사망이며 죽은 자들의 영혼이 있는 곳(음부)입니다. 이 목적지는 1:11-19의 강도의 무리나 9:13-18의 우매한 여인의 유혹에 빠진 자들이 가게 될 목적지와 동일합니다(1:19;9:18). 그녀의 아첨하는 말은 듣는 그 순간에는 기쁨을 주는 말같이 들리나 실제로는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해를 끼치게 되는 함정입니다. 그러므로 솔깃하게 들리는 음녀의 말을 따라 그녀에게 들어가는 모든 자는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죽음의 세계로 인도됩니다.

 

(2) 의인과 악인이 받는 땅의 약속(20-22)

세상에는 인간의 지혜가 뛰어난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렇지만 인간의 지혜로 살아가려는 사람은 자신의 한계성을 인정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 지혜가 인간의 악한 꾀를 만들어 간사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하나님의 약속 땅에서 누리는 것이 아니라면 사망에 이르는 지름길일 뿐입니다. 잠깐의 영광을 위해 영원한 영광을 버리는 어리석은 길에서 속히 떠나야 합니다.

20-22절은 2장 전체의 결론으로서 20절에서는 길에 초점을 두어 16-19절에 소개된 악인의 길과 대조되는 의인의 길을 소개합니다. 그리고 21-22절은 과 관련하여 각각 의인과 악인에게 적용될 약속을 선언합니다. 이러한 선언의 주된 목적은 독자가 지혜를 찾아 의로운 삶을 살도록 격려하는 데 있습니다.

먼저 과 관련하여, 16-19절의 음녀는 자신에게 온 자를 죽음으로 직행하는 길로 이끌지만, 지혜는 자기를 찾는 자들을 선하고 의로운 자들의 길로 인도합니다(20). 지혜를 찾고 지혜의 인도를 받는 자들은 정의, 공평, 정직 등 모든 선한 길을 깨달을 뿐 아니라 지혜의 보호를 받습니다.

그 결과 비뚤어지고 사악한 자들과 그들의 길에서 구원을 받고, 음부에 다다르는 길을 피하여 선과 정의의 길로 행하고, 결국 생명길을 얻게 될 것입니다(9-12,20).

둘째로 땅과 관련해서는, 지혜를 통해 정직과 완전함을 추구하는 의인들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을 기업으로얻고 거기서 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온전함으로 행하는 자들에게 방패가 되어 주신다고 약속하셨으므로(7) 의인들은 하나님께서 제공하신 땅에서 안전과 평안과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주신 기업을 제대로 누려 대대손손 땅에 머물며 남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믿을 수없게 행동하는 악인들은 땅에서 끊어지고 땅에서 뽑히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광야에서의 40년 방랑 생활을 마치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려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씀대로 살지 않고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으면 앞으로 차지할 땅에서 뽑힐 것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28:63). 시편에서도 악을 행하는 자들은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께 소망을 두는 사람은 땅을 차지할 것이라고 말합니다(37:9), 의인은 땅에 거하고 악인은 끊어지는 이유는 하나님이 공평을 사랑하시므로 하나님의 율법을 마음에 두고 사는 의인은 버리지 아니하고 영원히 보호하시지만, 악인은 그리하지 않으므로 하나님의 보호를 받을 수 없고 대신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끊어지게 됩니다(37:28-21). 이 약속은 단순히 의인과 악인 당사자만이 아니라 그의 후손에게까지도 미칩니다(37:28).

한편, 20-22절의 의인과 악인의 구분은 지혜를 얻은 자인지 아닌지 또는 정직과 완전함을 추구하며 사는 사람인지 아닌지에 따라 나뉩니다. 이처럼 잠언(및 성경 전체)에서는 지혜로운 사람과 의인을, 미련한 사람과 악인을 동일시합니다. 보통 의인은 도덕적으로 칭찬받을 만한 사람으로 악인은 큰 악행을 저지르는 사람으로 묘사되고 있지만, 실제적으로 사람은 누구나 거짓말이나 불의한 언행을 자의로는 실수로는 하기 때문에 지금 의인과 지혜자로 여겨진다 해서 미래에도 자동적으로 의인의 삶과 연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실용적인 판단력과 통찰력을 가진 것에 앞서 영적으로, 도덕적으로 여호와를 자기 삶의 주권자로 인정하여 그를 신뢰하고 그의 말씀에 따라 의와 선의 길로 행하는 의로운 자가 바로 지혜로운 자입니다. 악인은 여호와의 주권과 간섭을 인정하려 들지 않으며 훈계를 거부하고 자신의 지식과 판단을 의지하여 거리낌 없이 불의와 부정을 일삼는 자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 앞에서 지혜자와 우매자로 분리되는 것은 이러한 지식의 많고 적음이나 도덕적인 기준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기본적 신앙의 태도와 그 결단에 따라 사느냐에 달려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개인적인 교제를 나누며 살아야 그의 지혜의 말씀을 이해할 수 있고 그의 뜻에 가깝게 살 수 있습니다.

 


지혜는 우리가 하나님께서 본래 우리를 부르시면서 맺은 언약에 충실할 수 있게 해줍니다. 그것은 곧 관계의 존재인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 타인과의 관계, 그리고 피조물과의 관계에서 하나님의 질서와 성품을 반영하며, 거기서 나온 참된 축복을 누릴 수 있게 해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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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02-01)


지혜가 주는 유익

잠언 21-15


사람에게는 사람의 길이 있고 자연에게는 자연의 길이 있습니다. 인간이 가장 인간답기 위해서는 그 길을 따르고 그 질서가 인간의 세계에 임해야 합니다. 그 질서에는 인간과 세계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성품과 의지가 반영되어 있기 때문에, 창조주를 의지할 때 우리는 가장 인간다운 인간이 될 수 있습니다. 세상의 온갖 혼돈과 무질서는 인간이 인간의 자리를, 피조물이 피조물의 자리를 떠나면서 생겼습니다. 그렇다면 구원은 바로 그 질서를 회복하는 일이요 인간됨을 되찾는 것을 말할 것입니다. 그 질서를 아는 것을 지혜라고 부르기에 인간다운 인간은 지혜로운 인간이 되는 여정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 경외는 지혜의 출발점일 뿐 아니라 지혜를 얻는 목표가 됩니다. 지혜로운 조언과 명령을 따라 지혜를 간절히, 열심을 다해 구할 때 여호와 경외하기를 깨닫게 됩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알고 교제를 지속함으로써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지혜를 공급받고 보호하심을 입습니다. 또한, 마음에 자리 잡은 지혜를 통해 영적으로, 도덕적으로 정의와 선을 추구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아버지 강연(02-1) : 지혜를 찾으라(1-15)

지혜는 절로 인간에게 찾아오지 않습니다. 그동안 사람들의 지혜가 하나님의 방법과 전혀 다른 세계관과 가치관에 노출되어 살아왔기 떄문입니다. 그러므로 지혜는 의지적으로 찾아야 하고 구해야 하고 간직해야 하는 대상이 되었습니다. 잠언은 그 지혜를 우리가 받고 간직하고(쌓아두고) 큰 소리로 불러서 초대해야 할 대상으로 묘사합니다.

1내 아들아 네가 만일 나의 말을 받으며 나의 계명을 네게 간직하며 2네 귀를 지혜에 기울이며 네 마음을 명철에 두며 3지식을 불러 구하며 명철을 얻으려고 소리를 높이며 4은을 구하는 것 같이 그것을 구하며 감추어진 보배를 찾는 것 같이 그것을 찾으면 5여호와 경외하기를 깨달으며 하나님을 알게 되리니 6대저 여호와는 지혜를 주시며 지식과 명철을 그 입에서 내심이며 7그는 정직한 자를 위하여 완전한 지혜를 예비하시며 행실이 온전한 자에게 방패가 되시나니 8대저 그는 정의의 길을 보호하시며 그의 성도들의 길을 보전하려 하심이니라 9그런즉 네가 공의와 정의와 정직 곧 모든 선한 길을 깨달을 것이라 10곧 지혜가 네 마음에 들어가며 지식이 네 영혼을 즐겁게 할 것이요 11근신이 너를 지키며 명철이 너를 보호하여 12악한 자의 길과 패역을 말하는 자에게서 건져 내리라 13이 무리는 정직한 길을 떠나 어두운 길로 행하며 14행악하기를 기뻐하며 악인의 패역을 즐거워하나니 15그 길은 구부러지고 그 행위는 패역하니라(1-15)

첫 모음집의 다음 교훈은 하나님의 지혜를 찾아 구하라는 것입니다. 지혜를 구하는 자는 주님을 경외하는 길과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얻으며, 지혜의 돌봄과 보호를 받게 됩니다.

 

(1) 내 말을 듣고 지혜를 찾으라(1-4)

1-4절은 만약 네가 내 말을 듣고 지혜를 찾는다면이란 내용으로 아버지가 아들의 주의를 거듭 집중시키며, 아버지의 말에서 발견되는 지혜를 찾으라고 조언합니다. 마음과 말과 행동으로 이 지혜를 얻으라고 가르칩니다.

첫째, 지혜를 얻기 위해서 아버지가 전하는 말을 받고 마음에 간직해야 합니다. 받고 간직하라는 의미는 아버지의 명령을 인정하고 미래나 안전을 위해 보물이나 물건을 쌓아두듯이 그 말을 중히 여기고 기억하라는 뜻입니다.

둘째, 귀와 마음을 지혜에 기울이고 집중해야 합니다. 여기에서 아버지의 이나 계명은 지혜를 얻는 통로가 아니라 지혜’, ‘명철또는 지식과 동일시됩니다. 또한, 아버지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행동이나 손을 뻗듯 마음을 명철을 향해 펼치는 행동은 적극적인 경청과 순종의 의미를 내포합니다.

셋째, 지식과 명철을 향해 외쳐야 합니다. 마음과 귀로만이 아니라 이제는 입을 열어 지혜를 찾아야 합니다. 앞서 1:20-21에서 지혜가 사람들에게 열심히 소리치며 호소하는 모습을 그렸다면 여기서는 지혜를 얻으려는 자들이 지혜를 향해 열심을 다 해 외쳐야 함을 보여줍니다.

넷째, 값진 보물이나 숨겨진 보석을 찾듯 지혜를 찾아야 합니다. 욥기 28장에서도 지혜를 보석에 비유하면서, 사람들이 보석의 가치를 알므로 그것을 얻으려고 산이나 강이나 어두운 갱도나 가리지 않고 찾아다니고 목숨을 걸고 위험을 무릅쓰며 온갖 어려운 일을 하려 든다고 설명합니다(28:1-11). 이와같이 아들은 보석보다도 더 값진 지혜의 가치를 깨닫고 열성적으로 지혜를 구하고 찾아야 합니다.

 

(2) 지혜를 주시고 의인을 돌보시는 여호와(5-8)

1-4절의 만약 네가 내 말을 듣고 지혜를 찾는다면의 조건절이 다 끝나고, 그리하면으로 시작하는 5절부터는 그 결과로서 지혜가 가져다주는 유익을 설명합니다.

아들이 아버지의 말을 경청하여 지혜에 관심 두고 보물을 찾듯 지혜를 찾는다면, 그는 여호와 경외하는 법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이 말은 내적, 외적 요소인 몸과 마음을 다 집중해 지혜를 추구하면 영적인 유익을 얻을 것임을 드러냅니다.

여기서 여호와 경외여호와를 아는 것, ‘그와 친밀한 관계를 지속하는 것이라고 정의합니다. 이와 같은 정의는 9:10에도 나타나 강조됩니다. 그렇다면, 왜 지혜가 여호와 경외와 밀접하게 관련이 있습니까? 그 이유는 지혜를 주시는 주체가 바로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6).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이 지식과 명철이며, 지혜의 소유자로서 사람들에게 지혜를 부어주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이 설명은 욥기 28장에서도 잘 나타납니다. 세상의 어느 보물보다도 그 가치가 월등히 뛰어난 지혜가 사람들에게는 감추어졌지만, 하나님께는 그의 주권 아래 다 드러나 있습니다(28:23-27). 잠언 8장에서도 하나님께서 창조 이전에 이미 지혜를 만드셨다고 설명하며 하나님께서 지혜의 소유자임을 나타냅니다(8:22-31).

하나님께서는 그의 소유인 지혜를 정직하고 온전함으로 행하는 자들에게 베푸십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를 소유하기 위해서는 먼저 지혜의 말씀에 귀 기울여 지혜를 찾는 수고가 필요합니다. 본문 1절의 아버지의 조언처럼 우리가 잠언에 기록된 아버지나 어머니의 말씀을 쌓아둔다면, 하나님께서 쌓아두신(7: 예비하시며로 번역됨) 사리 분별과 같은 지혜를 얻을 수 있게 됩니다.

둘째, 정직, 온전함, 공평 등 하나님의 성품을 닮은 삶을 살아야 합니다. 7절의 정직하고 온전함으로 행하는 자들(‘행실이 온전한 자로 번역됨)이란 죄가 없는 자들이라는 뜻이 아니라 모두 영적으로나 도덕적으로 고결함을 지키는 자들이란 뜻입니다. 그런 자들이 정의와 공평의 길로 행하는 자들이며 하나님의 성도라 일컬음 받습니다. 이처럼 지혜는 단순히 지식의 축적이나 성공의 길이 아닙니다. 지혜는 근본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며, 하나님을 알고 그와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며, 그가 주신 명령에 따라 정의와 공평을 추구하고 행함으로써 얻습니다. 욥기 28:28에서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을 악을 떠나는 것이라고 정의한 것과 일치합니다. 악을 떠나는 것은 시편 기자가 청년에게 충고하는 것처럼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을 두고 그 말씀에 따라 죄를 삼가는 것을 의미합니다(119:11-16).

하나님께서는 또한 그를 경외하는 공의로운 백성에게 지혜를 주시며 그들을 돌보시고 방패가 되어주십니다. 그들이 공평의 길 즉, 공평을 추구하는 삶을 살아갈 때 지켜보십니다. 때로 어려움과 고난 속에서도 계속 정직과 공평의 길로 행할 수 있도록 보호하십니다. 정의의 하나님이시므로 세상의 정의와 공평을 보호하십니다.

 

(3) 지혜를 얻은 자의 유익(9-11)

지혜의 근원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의 의지가 지혜이고, 그분이 세상을 경영하는 방식이 지혜입니다. 따라서 그분과의 관계가 지혜를 결정하며, 지혜로워진다는 것은 하나님을 닮아가고 그분의 생각에 내 생각을 맞춰간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 즉 여호와를 여호와로 인정하고 그분의 주권과 능력과 성품을 인정하는 것이 지혜를 얻는 첫째 단계입니다.

1-4절의 만약 네가 내 말을 듣고 지혜를 찾는다면에 대한 귀결절은 5절뿐 아니라 9절에서 또 소개됩니다. 5-8절에서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유익을 소개하였고, 이제 9-11절에서는 지혜로부터 오는 유익을 소개합니다. 아버지의 지혜의 가르침은 의, 공평, 정직, 선을 깨닫게 해줍니다. 왜냐하면, 그의 가르침이 5-8절에 설명된 여호와 경외를 근본으로 이루어졌으며 하나님이 추구하시는 정직과 공평에 일치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지혜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때 지혜가 마음에 들어와 자리 잡고 우리에게 즐거움을 줄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과 마찬가지로 지혜가 우리에게 근신과 명철 즉, 판단력과 현명함을 주어 우리를 지키고 보호할 것입니다.

 

(4) 악인의 길로부터 보호하는 지혜(12-15)

지혜로운 자는 이제 자기중심적인 세계관을 버리고 하나님 중심적인 세계관, 이타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생각의 출발점부터가 여호와로부터 시작합니다. 따라서 지혜로운 사람들의 삶에는 공의와 정의가 있고 그들은 정직하고 선한 길을 걷게 될 것입니다.

5절에 소개된 여호와 경외는 지혜의 출발점뿐 아니라 지혜를 찾는 목표가 됩니다. 지혜를 얻은 자는 여호와 경외를 깨달아 하나님과의 영적 교제를 유지할 수 있고, 그의 보호를 누릴 수 있으며(5-8), 그 결과 지혜의 도움으로 도덕적이고 경건한 삶을 사는 법을 인지할 수 있습니다(9-11). 지혜는 지혜를 얻은 자를 악인의 길로부터(12-15) 그리고 음녀의 유혹으로부터(16-19) 구해줍니다.

지혜가 마음에 들어오면 판단력과 현명함이 생겨 악인의 길에서 건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여기서 악인은 12절에서 패역을 말하는 자로 설명되었는데, 진리를 왜곡하여 사람들을 악한 길로 유혹하는 자를 뜻합니다. 이 악인의 무리가 살아가는 삶의 방식은 13-15절에서 로 비유되어 설명되는데, 이들의 길은 하나님으로부터 지혜를 선물로 받은 자들이 걷는 길과 뚜렷한 대조를 보입니다.

첫째, 지혜를 구하는 자들은 정직과 공평을 추구하여 온전함으로 행하지만, 악인의 무리는 스스로 정직과 공평의 길을 버리고 어둠의 길을 택하여 그 길로 행합니다. 둘째, 지혜를 얻은 자들은 지혜의 주도 하에 살게 되어 진정한 기쁨을 누리지만 악인들은 악을 행하기를 기뻐하며 비뚤어지고 사악한 행위(패역)를 즐거워합니다. 셋째, 지혜를 얻은 자의 삶은 의, 공평, 정직을 추구하여 모두 선한 길로 연결되지만 악인의 길은 구부러지고 비뚤어진 길입니다. 악인들에게는 근본적으로 여호와를 경외하는 태도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지혜 또한 이들에게서 아주 멉니다. 지혜는 이런 악인의 길에서 우리를 구합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질서를 따라서 하나님의 리듬에 맞춰 걸어가는 길에는 즐거움이 있어서 고난 중에도 그 길을 고수할 힘을 얻게 됩니다. 반면에 지혜를 떠난 악한 자는 정직한 길을 떠나 흑암의 길을 걸으며 멸망으로 치달으면서도 그걸 모른 채 그 행악을 기뻐하고 즐거워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혜자를 악인의 구부러지고 패역한 길에서 지켜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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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01-03)


지혜가 전하는 경고

잠언 120-33

 


인간의 지적인 수준과 문화생활 수준이 눈부시게 높아졌습니다. 넉넉한 예금 잔고, 으리으리한 고급 아파트, 번쩍거리는 외제 자가용, 각종 명품, 눈부신 학벌, 탄탄한 인맥 등등. 예전엔 억대 부자라는 말이 있었지만, 요즘은 억대 재산으로는 수도권에서 전셋집 하나도 얻을 수 없을 만큼 엄청난 돈이 도는 풍요로운 세상입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바보들의 풍요에 익숙해지고 세상이 어리석은 자들의 낙원으로 변질되 가고 지식과 물질이 풍요로워졌지만 그럴수록 우리네 세상이 온통 도가니처럼 추하게 들끓는 이유는, 악한 본성에 젖어 사는 사람들이 참 지혜를 거부하고 지혜의 부름에 더 이상 귀를 기울이지 않기 때문(24-25)입니다.

 

어리석은 자는 근본적으로 여호와 경외하기를 거부하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여호와 경외를 기초로 한 지혜의 훈계에 동의하지 않고 오히려 그 훈계를 업신여깁니다. 지혜는 공공연하게 그에게 훈계를 외치지만 그가 지혜를 찾지 않으므로, 후에 지혜가 절실히 필요하여 찾을 때 그는 결코 지혜를 발견할 수 없을 것입니다.

 

지혜의 초청과 약속 잠언(20-23)

지혜는 길거리와 광장과 시끄러운 길목에서 크게 소리를 높입니다. 사람이 지혜를 따르지 않는 것은 지혜를 듣지 못해서나 몰라서가 아닙니다. 미련한 마음으로 고집 피우고 자기 마음대로 계속 행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지혜를 알고 싶어도 알 수 없다고 생각하며 지혜를 저 멀리 은밀한 곳에 숨겨진 것이라 여깁니다.

20지혜가 길거리에서 부르며 광장에서 소리를 높이며 21시끄러운 길목에서 소리를 지르며 성문 어귀와 성중에서 그 소리를 발하여 이르되 22너희 어리석은 자들은 어리석음을 좋아하며 거만한 자들은 거만을 기뻐하며 미련한 자들은 지식을 미워하니 어느 때까지 하겠느냐 23나의 책망을 듣고 돌이키라 보라 내가 나의 영을 너희에게 부어 주며 내 말을 너희에게 보이리라(20-23)

잠언 1:9-19에서는 아버지가 아들에게 이익을 탐하는 악인을 따르지 말라는 경고를 하였고, 이제 1:20-33에서는 지혜가 의인화된 여성으로 등장하여 사람들에게 나의 책망(지혜를 거절하지 말라)으로 돌이키라(23)고 경고합니다.

잠언에 지혜가 여성으로 의인화되어 자주 나오는데, 이는 지혜가 히브리어로 여성형 명사(호크마)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잠언에서 대부분 아버지가 아들에게 충고의 말을 전하며 아들이 사랑하고 찾아야 할 배우자로서 여성을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에, 지혜가 여성으로 자연스럽게 의인화되어 나타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지혜가 마을의 광장과 길거리에서 사람들에게 외치며 그녀의 말을 전합니다. 광장과 길거리는 마을의 지도자들이 모여 소송을 처리하는 곳(29:7; 4:11)이며 시장이 형성되어 사람들이 몰려(왕하 7:1) 북적이는 곳입니다. 지혜는 마을 사람들이 거의 다 모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곳에서 사람들이 들을 수 있도록 소리를 질러가며 말을 전하고 있습니다. 젊은이가 이런 사회에 나와 적응하려 할 때, 두 목소리가 그를 사로잡아 그의 삶을 형성하려 든다. 한 목소리는 1:20-338~9장에 나오는 지혜의 목소리이며, 다른 하나는 1:10-14의 악인의 속삭임이나 5:36:24에 나오는 음녀의 유혹에서 발견되는 우매의 목소리입니다. 이런 두 목소리가 존재하는 사회 안에서 젊은이는 사리를 제대로 분별할 줄 아는 판단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배워야 합니다. 지혜가 외치는 곳은 바로 그의 삶의 중심부로서, 그가 그곳에서 다른 사람들과 교류하며 살 때 어떤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충성을 다하느냐에 따라 자기 자신뿐 아니라 그가 속해 있는 사회가 흥왕하거나 망하게 됩니다(11:10-11).

오늘 지혜의 외치는 목소리는 공개적인 장소에서 모든 이의 귀에 들리고 있는데, 특히 어리석은 자들을 향한 훈계의 외침에 그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어리석은 자란 지력이 모자라는 사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22절과 29-30절을 보면 이들은 자기의 어리석음을 사랑하되 지식을 미워하는 자들이고, 남을 비웃는 자들이며, 부모나 다른 이들을 통한 지혜로운 교훈과 책망을 거절하고 업신여기는 자들이고, 공통적으로 여호와를 두려움과 떨림으로 대하지 않는 자들입니다. 더구나 이들의 문제는 이러한 어리석고 뻔뻔한 행동을 오랜 기간 지속했다는 데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혜는 대체 언제까지 어리석음을 좋아하고 책망을 듣지 않겠느냐?”(22)라고 외칩니다. 나의 책망으로 돌이키라(23)고 외치는 지혜의 명령은 책망의 말에 지혜가 들어 있으므로 그 책망을 무시하지 말고 책망에 반응하여 행동이나 태도를 변화시키라는 뜻입니다. 타인에게서 책망을 들으면 자신에 대한 수치와 굴욕감이 들어 자신을 방어하거나 그 사람을 공격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 쉽습니다. 그러나 감정에 치우쳐 나를 위해 변명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화풀이를 하기보다는 냉정하게 그리고 겸손하게 그 책망의 내용 자체를 곰곰이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면 책망에서 드러난 자신의 약점, 무지, 실수, 죄 등을 인정할 수 있습니다. 그런 다음 지적받은 것을 고쳐 실천한다면 앞으로 그런 책망을 다시 받을 기회는 확연히 줄게 되고 하나님께서 나에게 바라시는 성품에 더 가까이 나갈 수 있습니다.

지혜는 어리석은 자들에게 책망으로만 다가가지 않습니다. 지혜는 그녀의 신()을 부어주고 그녀의 말을 깨닫도록 해주겠다는 약속도 덧붙입니다. 이는 지혜가 지혜의 영을 그에게 주어 지혜가 원하는 생각과 말을 숨김없이, 아낌없이 제공하겠다는 의미입니다. 지혜가 이러한 약속을 제공하는 것은 어리석은 자들이 어리석음과 교만을 버리고 지혜를 수용하길 바라는 마음에서입니다.

이와 같이 책망을 듣고 돌아서는 데에는 단순히 나의 이성적인 판단과 결단만으로 가능하지 않고, 지혜의 영인 하나님의 성령의 도우심과 은혜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지혜를 멸시한 미련한 자(24-25)

지혜가 부르는 소리와 내민 손을 무시했던 자들은 결코 핑계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지혜의 소리가 작아서 듣지 못한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교훈과 책망을 듣지 않은 사람이 맞게 되는 결과는 명확합니다. 그는 재앙을 피할 수 없습니다. 처음에는 자기 마음대로 살고 악의 유혹을 따라가는 것이좋아 보여도 결국 두려움과 근심이 악할 뿐입니다.

24내가 불렀으나 너희가 듣기 싫어하였고 내가 손을 폈으나 돌아보는 자가 없었고 25도리어 나의 모든 교훈을 멸시하며 나의 책망을 받지 아니하였은즉(24-25)

지혜는 어리석은 자가 훈계에 귀를 기울이고 지혜의 약속을 받기 원하지만, 어리석은 자는 지혜의 외침을 듣고 관심을 가지라는 손짓을 보고서도 이를 거절하는 쪽을 택했습니다. 그는 지혜의 모든 책망과 교훈을 멸시하고 그 말씀에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어리석은 자는 지혜의 훈계를 들을 기회가 없었던 자가 아니라 스스로 어리석음을 택하고 어리석음을 사랑한 미련한 자입니다(22).

 

미련한 자의 미래(26-31)

바다에서 멀리 큰 해일이 몰려오는 모습이 보이면 피하려고 하겠지만, 사람의 눈에 그 해일이 보일 때는 이미 늦습니다. 인생의 재앙도 그렇습니다. 사람의 판단으로 문제가 생겼다고 느껴지면 이미 돌이킬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미련한 사람은 경고를 무시하고 자신이 직접 보기 전에 믿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26너희가 재앙을 만날 때에 내가 웃을 것이며 너희에게 두려움이 임할 때에 내가 비웃으리라 27너희의 두려움이 광풍 같이 임하겠고 너희의 재앙이 폭풍 같이 이르겠고 너희에게 근심과 슬픔이 임하리니 28그 때에 너희가 나를 부르리라 그래도 내가 대답하지 아니하겠고 부지런히 나를 찾으리라 그래도 나를 만나지 못하리니 29대저 너희가 지식을 미워하며 여호와 경외하기를 즐거워하지 아니하며 30나의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나의 모든 책망을 업신여겼음이니라 31그러므로 자기 행위의 열매를 먹으며 자기 꾀에 배부르리라(26-31)

어리석은 자들이 지혜의 책망을 거절했으므로, 그 대가로 그들이 지혜를 필요로 할 때(26: 재앙을 만날 때’, ‘두려움이 임할 때) 지혜는 그들을 비웃고 대꾸하지 않을 것입니다. 지혜를 필요로 하는 때는 그들이 곤란에 처해 명료하고 효과적인 사고가 절실할 때입니다. 이런 시기는 광풍과 폭풍같이 예고 없이 그리고 엄청난 힘으로 불어닥치므로 어리석은 자는 근심과 더불어 심한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때 지혜는 그들에게 닥친 재앙을 보고 비웃을 뿐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기서 지혜의 비웃음은 무정함을 나타내는 표현이 아니라, 지혜를 비웃고 어리석음을 택하여 재앙을 자초한 어리석음에 대한 반응을 나타냅니다. 어리석은 자들은 뒤늦게 지혜를 부르고 부지런히 찾겠지만 그들은 결코 지혜를 찾을 수 없습니다.

지혜는 그동안 지속적으로 그들에게 손을 내밀었습니다. 어느 누구도 지혜의 외침을 못 들어서 지혜를 얻을 기회가 없었다고 핑계 댈 수 없습니다. 지혜는 자기의 모든 유익을 주겠다는 약속까지 하며(23) 그들에게 지혜를 거절하지 말라고 호소했습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자들은 그 호소에 콧방귀도 뀌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절박하게 지혜를 필요로 할 때 그들은 지혜 대신 시련과 난관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지혜는 광장에서 오가는 사람들에게(또 현재 우리에게) 그들이 듣는 지식이나 교훈 또는 책망을 제대로 듣기 위해서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필수라고 말합니다. 지혜는 이미 22절에서 미련한 자들은 지식을 미워하고 어리석음을 좋아하며 남을 비웃기를 즐긴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제 29절에는 그 근본적인 이유가 그들이 여호와를 경외하기를 선택하지(29: 즐거워하지로 번역됨) 않기 때문임을 밝힙니다. 그들이 지혜의 교훈과 책망을 거부한 동기는 그만큼 자의적이고 의도적입니다. 귀에 들린 이 모든 말을 듣기 싫어하고 거절하는 이유는 자신의 생각과 판단을 하나님의 생각과 명령이 담긴 말보다 더 높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판단과 생각은 지혜를 배제하는 어리석음이며, 때가 이르면 그 행위에 대한 마땅한 심판을 받게 됩니다.

 

지혜를 듣는 자와 듣지 않는 자(32-33)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막고 사는 것은 하나님께 등을 돌리고 사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지식이 넘치고 과학기술의 발단로 풍요가 넘치는 세상이, 하나님 없이 거만한 자세로 살아가는 죄인들에게 마치 낙원처럼 보이겠지만, 조금만 더 정직한 눈으로 이 도가니 같은 세상을 보면 곳곳에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습니다.

32어리석은 자의 퇴보는 자기를 죽이며 미련한 자의 안일은 자기를 멸망시키려니와 33오직 내 말을 듣는 자는 평안히 살며 재앙의 두려움이 없이 안전하리라(32-33)

잠언에 경고된 어리석은 자의 형벌은 그들의 악행에서 초래된 자연적인 결과입니다. 지혜를 거부하는 행동은 하나님으로부터 등을 돌리는 교만과 배교(퇴보)이며, 변화를 두려워하여 자기 안일과 만족에 머무는 행위입니다.

책망을 업신여겨 받아들이지 않고 책망 받을 행동을 계속하는 것이 그 당시 내 눈에는 지혜롭게 보일 수 있으나 그것은 착각입니다. 돌이키지 않는다면 그것이 초래하는 결과를 피할 수 없습니다. 그 결과는 멸망이며 불안이고 재앙입니다. 그러나 지혜를 듣는 자는 하나님의 보호 속에 안전과 평안을 누립니다(32:18).

 


순종할 때 인생길을 평안하고 안전하게 걸어갈 수 있습니다. 지혜의 말씀이 들릴 때 즉각 순종해야 합니다. 순종할 때 재앙을 피해 갈 수 있습니다. 항상 자신이 말씀에 비추어 봄으로 이것이 바로 우리가 평안하고 안전하게 인생길을 가는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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