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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03-02)


지혜의 가치와 실천

잠언 3장 11-35절


길거리에 수많은 청소년이 지나갑니다. 그들 중에는 한 청소년이 교복을 입고 길거리에서 못된 짓을 하고 있다고 가정해봅시다.  많은 어른이 지나면서 혀를 차지만, 그를 책망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지나가는 많은 어른 중에 유독 달려가서 책망하고, 심하게 꾸중하는 어른이 있다면 그 사람은 누군지 아십니까? 그 사람은 바로 아이의 부모이거나 보호자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지혜를 얻은 사람은 얼마나 행복합니까! 세상의 보화나 어떤 귀중한 것도 지혜에 견줄 만한 것이 없습니다. 지혜의 유익이나 축복은 인간의 삶에 평강과 생명을 제공하는 것으로 나타날 뿐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 사역에도 그 영향력을 나타냈습니다. 이러한 유익을 주는 지혜를 얻은 자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돌보는 의무를 수행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장수와 부귀를 가진 지혜(11-18)

고난으로부터 속히 벗어나려고만 하지 말고 하나님의 메시지가 무엇인지 살피는 지혜도 필요합니다. 지혜가 주는 이익은 은이나 정금이나 진주보다 비교할 수 없습니다. 한순간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와 분별력을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책망은 자녀를 기대하기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책망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대하시기 때문에 주신 것입니다.
 
11내 아들아 여호와의 징계를 경히 여기지 말라 그 꾸지람을 싫어하지 말라 12대저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기를 마치 아비가 그 기뻐하는 아들을 징계함 같이 하시느니라 13지혜를 얻은 자와 명철을 얻은 자는 복이 있나니 14이는 지혜를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낫고 그 이익이 정금보다 나음이니라 15지혜는 진주보다 귀하니 네가 사모하는 모든 것으로도 이에 비교할 수 없도다 16그의 오른손에는 장수가 있고 그의 왼손에는 부귀가 있나니 17그 길은 즐거운 길이요 그의 지름길은 다 평강이니라 18지혜는 그 얻은 자에게 생명 나무라 지혜를 가진 자는 복되도다(11-18)
하나님께서는 훈계와 책망을 통해 지혜를 가르치십니다. 마치 아버지가 사랑하는 아들을 꾸짖듯 성도를 징계하십니다. 징계로 인한 고난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 표현이며 우리의 유익을 위한 것입니다. 우리는 고난을 통해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식을 얻으며, 훈계와 책망을 통해 지혜를 얻게 됩니다.
 
(1) 여호와의 징계를 들어라(11-12)
3:1-12의 아버지의 강연 마지막 부분에 해당하는 단락입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하나님의 훈계나 꾸지람을 거절하지 말고 언짢게 여기지 말라고 조언합니다. 이는 하나님이 그를 징계하는 이유와 목적이 그를 사랑하여 하나님이 원하시는 완전함에 이르도록 이끄심에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버지가 아들을 훈육하듯 사랑과 훈계로써 그의 백성을 양육하십니다.
 
(2) 지혜를 얻은 자의 행복(13-18)
‘내 아들아’로 시작하는 셋째 강연(1-12)이 끝나고, 넷째 강연(21-35)이 시작되기 전인 13~20절은 ‘지혜의 송가’로 불리며, 지혜에 대한 유익을 찬양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송가는 지혜를 얻은 자는 얼마나 행복한가!'로 시작하며, 지혜가 금은보화나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값어치가 높다고 설명합니다.
욥기 28에서도 세상의 어떤 진귀한 보석과도 비교할 수 없고 그 값을 제대로 매길 수도 없을 정도로 귀한 지혜의 가치를 찬양합니다. 시편에서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명령을 순금이나 수천의 금은보다 더 귀한 것으로 찬양하였는데(시 19:10; 119:72,127), 이로써 지혜와 말씀과의 밀접한 관련성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지혜가 왜 그렇게 값집니까? 지혜는 금은보화가 가져다줄 수 없는 장수, 부귀, 즐거움, 평강, 생명을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금은보화 자체도 지혜가 주는 것과 같은 종류와 질은 아니더라도 사람들에게 기쁨과 안락한 생활을 제공합니다. 하지만 오히려 재물로 인해 불안, 욕심, 재앙, 분쟁, 죽음이 더 자주 일어납니다. 또한, 재물은 강제로 빼앗길 수도 있으며, 빼앗긴 후에는 재물이 가져다준 어떠한 유익도 남아 있지 않게 됩니다. 그러나 지혜는 아무에게도 빼앗길 염려가 없으며, 그 유익이 부귀영화를 뛰어넘어 삶에 평강과 생명을 공급해줍니다.
 

질서와 평강을 가진 지혜(19-26)

하나님께서는 지혜를 가진 사람들에게 이웃들과 화목하고 정직한 삶을 살아가길 원하십니다. 이러한 삶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임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이단에 빠진 자들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가정과 이웃과의 관계를 파괴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혜를 발견하고 얻을 뿐 아니라, 그것을 지키고 행해야 합니다.
 
19여호와께서는 지혜로 땅에 터를 놓으셨으며 명철로 하늘을 견고히 세우셨고 20그의 지식으로 깊은 바다를 갈라지게 하셨으며 공중에서 이슬이 내리게 하셨느니라 21내 아들아 완전한 지혜와 근신을 지키고 이것들이 네 눈 앞에서 떠나지 말게 하라 22그리하면 그것이 네 영혼의 생명이 되며 네 목에 장식이 되리니 23네가 네 길을 평안히 행하겠고 네 발이 거치지 아니하겠으며 24네가 누울 때에 두려워하지 아니하겠고 네가 누운즉 네 잠이 달리로다 25너는 갑작스러운 두려움도 악인에게 닥치는 멸망도 두려워하지 말라 26대저 여호와는 네가 의지할 이시니라 네 발을 지켜 걸리지 않게 하시리라(19-26)
하나님께서는 지혜로 세상 모든 만물을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세상의 기초를 놓고 만물에 질서를 부여합니다. 지혜는 하나님의 경륜과 섭리의 근본적 원리이므로 이를 따라 사는 자는 생명과 안전이 보장됩니다.
 
(1) 창조에 나타난 지혜(19-20)
1장부터 계속해서 지혜의 유익과 축복이 인간에게 크게 작용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는데, 3:19에 이르러서는 지혜가 창조질서를 이루는 데까지 사용되었음을 소개합니다. 지혜의 가치는 인간의 영역뿐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 사역의 영역에까지 미치고 있습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지혜가 그토록 귀중하고 유익이 될 수 있는 이유는 세상의 창조주이신 여호와가 이미 그 지혜를 아셨고 그 지혜를 사용하여 세상 만물을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땅과 하늘로 세상의 기초를 만드시고 심연에서 샘과 강을 터뜨려 내시며(창 7:11; 시 74:15) 사람들과 만물을 위하여 하늘로부터 이슬과 비를 제공하시는 등 하늘과 바다와 물의 질서를 세우셨습니다(시 104:2-9), 창조 사역에 있어 지혜의 역할은 잠언 8:22-31에서 더 풍성하게 기술됩니다.
하나님의 지혜가 창조주 하나님의 창조 역사에 적극적으로 참여되었듯이, 이제 그 지혜가 창조물 전체에게까지 스며들게 됩니다. 그러므로 지혜 있는 자는 우주 만물이 살아 움직이며 돌아가는 데에서 하나님의 임재와 주권 그리고 그의 전지전능하심을 인지하며 하나님을 드높일 수 있습니다. 지혜로운 삶은 하나님을 계속 닮아가고 창조질서에 순응하는 것입니다.
 
(2) 지혜가 주는 유익(21-26)
지혜의 송가가 끝나고 21절부터 ‘내 아들아’로 시작하는 아버지의 넷째 강연(21-35)이 시작됩니다. 아버지의 넷째 강연은 세 부분으로 나뉘었으며, 첫 부분인 21-26절에서는 아버지의 두 가지 명령과 지혜가 주는 유익을 설명합니다.
첫 명령은 완전한 지혜와 근신을 살펴 시야에서 벗어나지 않게 하라는 것입니다. 완전한 지혜와 근신은 사리분별력과 통찰력을 의미하며 지혜의 유익으로 설명되었습니다(2:7). 이처럼 지혜를 얻어 분별력과 통찰력을 가진 자는 깨어 활동할 때나 잠잘 때나 안전과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둘째 명령은 갑작스러운 두려움이나 악인의 심판을 보고 두려워 말라는 내용입니다. 왜냐하면, 안전과 평안 또는 두려움과 심판을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지만,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면 우리를 지켜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로서 ‘네 발을 거치지 않게 하겠다’(26)는 약속은 바로 지혜의 유익(23)과 같은 내용입니다. 이로써 지혜와 하나님의 밀접한 관계가 다시 수면 위에 떠오릅니다. 이는 22-24절에 기술된 지혜로 인한 유익이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는 데서 비롯된다는 점을 시사해줍니다.
 

화목과 정직을 가진 지혜(27-35)

선택해야 할 두 길이 있습니다. 어느 길을 선택하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길과 동행하는 축복된 길에서 무엇을 선택하길 원하십니까? 저주의 길과 축복의 길, 영광의 길과 수치의 길, 하나님의 비웃음을 사는 길과 은혜를 입고 살아가는 길이 있습니다. 당신은 어느 길에 선택하길 원하십니까?
 
27네 손이 선을 베풀 힘이 있거든 마땅히 받을 자에게 베풀기를 아끼지 말며 28네게 있거든 이웃에게 이르기를 갔다가 다시 오라 내일 주겠노라 하지 말며 29네 이웃이 네 곁에서 평안히 살거든 그를 해하려고 꾀하지 말며 30사람이 네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였거든 까닭 없이 더불어 다투지 말며 31포학한 자를 부러워하지 말며 그의 어떤 행위도 따르지 말라 32대저 패역한 자는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 정직한 자에게는 그의 교통하심이 있으며 33악인의 집에는 여호와의 저주가 있거니와 의인의 집에는 복이 있느니라 34진실로 그는 거만한 자를 비웃으시며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나니 35지혜로운 자는 영광을 기업으로 받거니와 미련한 자의 영달함은 수치가 되느니라(27-35)
지혜의 가치와 그로 인한 유익을 언급한 데 이어 지혜로운 자의 이웃에 대한 태도에 관한 교훈합니다. ‘...하지 말라’는 명령은 사람이 지켜야 할 하한선으로서, 여섯 번에 걸쳐 ‘말며’ 혹은 ‘말라’로 끝맺음 되는 31절까지의 훈계는 내용상 살펴볼 수 있습니다.
 
(1) 지혜자의 이웃에 대한 책임(27-31)
이제 아버지는 여섯 차례의 ‘~하지 말라’는 단호한 명령형을 이용하여, 하나님을 신뢰하며 지혜를 얻고 그 유익을 누리려는 자에게는 이웃을 돌보고 사랑해야 하는 책임이 뒤따름을 언급합니다.
명령의 내용은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 나에게 재물, 힘, 능력 등 무엇인가 남에게 줄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뭔가 부족하여 스스로 채우거나 해결할 능력이 없는 자에게 아낌없이 베풀어야 합니다. 둘째, 까닭 없이 이웃과 분쟁하거나 악한 일을 계획하지 말아야 합니다. 셋째, 폭력을 행사하는 악인을 부러워하거나 그가 하는 행위를 선택하지 말아야 합니다. 포학한 자란 바로 27-30절의 명령을 어기는 자인 셈입니다. 폭력은 말과 태도의 폭행과 신체적인 폭행을 모두 포함합니다. 언뜻에는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이 힘을 가진 것 같지만 대부분은 자기 내면의 약함을 방어하기 위해 언어나 물리적인 힘을 외면으로 표출하는 것입니다. 이런 행위를 보고 독려 받으면 나도 그런 행위에 빠지기 쉽습니다. 폭력자의 어떤 행위도 ‘선택하지 말라’(‘좇지 말라’로 번역됨)는 조언에서 말해주듯 이런 행위를 하지 않겠다는 결단과 순간의 지혜로운 선택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2) 악인과 의인의 대조(32-35)
아버지는 마지막으로 악인과 의인의 대조적인 모습을 설명하여 아들로 하여금 의인의 길로 가도록 격려합니다. 이 구절들은 31절의 폭력자를 부러워하지 말고 어떤 행동이든 선택하지 말라는 명령에 대한 이유를 제시해줍니다. 동시에 진정한 지혜는 이웃을 돌보는 것으로 나타나야 한다는 것과 이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여기서 악인과 의인의 대조는 두 가지 양상으로 나타납니다.
먼저, 악인과 의인은 그들의 기본 됨됨이와 행동 양식에서 대조됩니다. 악인은 패역과 거만함을 특징으로 갖고 있는 자들이며 이들은 결국 미련한 자로 결론이 납니다. 반면, 의인은 정직과 겸손을 소유한 자들로서 지혜로운 자와 동일시됩니다. 이 대조를 통해 지혜자란 마음과 태도뿐 아니라 언행에 있어서도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정의와 사랑의 삶을 실천하는 자임이 부각됩니다. 다른 한 가지 대조적 양상은 악인과 의인 그리고 그들 각각의 집안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에서 나타납니다.
하나님께서는 악인을 미워하고 비웃고 그들의 집을 저주하시며 그들의 미련함으로 수치를 당하게 하십니다. 그러나 의인과는 교제를 나누시고 그의 집에 복과 은혜를 베푸시며 하나님의 임재를 의인 자신만이 아니라 그 후손까지도 유산으로 누릴 수 있게 하십니다.
3장 전체를 통틀어 볼 때, 지혜자는 하나님과 건강하고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자(1-12)임과 동시에 이웃과도 건강하고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자입니다(21-35). 이런 사람은 지혜의 근원이 하나님께 있음을 알고 지혜의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소중한 가치를 깨달은 자이며, 그 결과로 지혜가 주는 유의 누리는 자입니다(13-20).
 


징계와 책망을 받으면 즐겁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징계와 책망 앞에서 어떤 태도를 보이느냐에 따라서 지혜로운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으로 나눕니다. 하나님의 지혜를 잘 받아드리면 그 속에 질서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 때문에 즐겁고 평안한 길을 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징계와 책망, 그리고 지혜롭지 못한 행동함으로 이웃에게서 오는 징계와 책망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습니까? 기쁘게 받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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