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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01-03)


지혜가 전하는 경고

잠언 120-33

 


인간의 지적인 수준과 문화생활 수준이 눈부시게 높아졌습니다. 넉넉한 예금 잔고, 으리으리한 고급 아파트, 번쩍거리는 외제 자가용, 각종 명품, 눈부신 학벌, 탄탄한 인맥 등등. 예전엔 억대 부자라는 말이 있었지만, 요즘은 억대 재산으로는 수도권에서 전셋집 하나도 얻을 수 없을 만큼 엄청난 돈이 도는 풍요로운 세상입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바보들의 풍요에 익숙해지고 세상이 어리석은 자들의 낙원으로 변질되 가고 지식과 물질이 풍요로워졌지만 그럴수록 우리네 세상이 온통 도가니처럼 추하게 들끓는 이유는, 악한 본성에 젖어 사는 사람들이 참 지혜를 거부하고 지혜의 부름에 더 이상 귀를 기울이지 않기 때문(24-25)입니다.

 

어리석은 자는 근본적으로 여호와 경외하기를 거부하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여호와 경외를 기초로 한 지혜의 훈계에 동의하지 않고 오히려 그 훈계를 업신여깁니다. 지혜는 공공연하게 그에게 훈계를 외치지만 그가 지혜를 찾지 않으므로, 후에 지혜가 절실히 필요하여 찾을 때 그는 결코 지혜를 발견할 수 없을 것입니다.

 

지혜의 초청과 약속 잠언(20-23)

지혜는 길거리와 광장과 시끄러운 길목에서 크게 소리를 높입니다. 사람이 지혜를 따르지 않는 것은 지혜를 듣지 못해서나 몰라서가 아닙니다. 미련한 마음으로 고집 피우고 자기 마음대로 계속 행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지혜를 알고 싶어도 알 수 없다고 생각하며 지혜를 저 멀리 은밀한 곳에 숨겨진 것이라 여깁니다.

20지혜가 길거리에서 부르며 광장에서 소리를 높이며 21시끄러운 길목에서 소리를 지르며 성문 어귀와 성중에서 그 소리를 발하여 이르되 22너희 어리석은 자들은 어리석음을 좋아하며 거만한 자들은 거만을 기뻐하며 미련한 자들은 지식을 미워하니 어느 때까지 하겠느냐 23나의 책망을 듣고 돌이키라 보라 내가 나의 영을 너희에게 부어 주며 내 말을 너희에게 보이리라(20-23)

잠언 1:9-19에서는 아버지가 아들에게 이익을 탐하는 악인을 따르지 말라는 경고를 하였고, 이제 1:20-33에서는 지혜가 의인화된 여성으로 등장하여 사람들에게 나의 책망(지혜를 거절하지 말라)으로 돌이키라(23)고 경고합니다.

잠언에 지혜가 여성으로 의인화되어 자주 나오는데, 이는 지혜가 히브리어로 여성형 명사(호크마)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잠언에서 대부분 아버지가 아들에게 충고의 말을 전하며 아들이 사랑하고 찾아야 할 배우자로서 여성을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에, 지혜가 여성으로 자연스럽게 의인화되어 나타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지혜가 마을의 광장과 길거리에서 사람들에게 외치며 그녀의 말을 전합니다. 광장과 길거리는 마을의 지도자들이 모여 소송을 처리하는 곳(29:7; 4:11)이며 시장이 형성되어 사람들이 몰려(왕하 7:1) 북적이는 곳입니다. 지혜는 마을 사람들이 거의 다 모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곳에서 사람들이 들을 수 있도록 소리를 질러가며 말을 전하고 있습니다. 젊은이가 이런 사회에 나와 적응하려 할 때, 두 목소리가 그를 사로잡아 그의 삶을 형성하려 든다. 한 목소리는 1:20-338~9장에 나오는 지혜의 목소리이며, 다른 하나는 1:10-14의 악인의 속삭임이나 5:36:24에 나오는 음녀의 유혹에서 발견되는 우매의 목소리입니다. 이런 두 목소리가 존재하는 사회 안에서 젊은이는 사리를 제대로 분별할 줄 아는 판단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배워야 합니다. 지혜가 외치는 곳은 바로 그의 삶의 중심부로서, 그가 그곳에서 다른 사람들과 교류하며 살 때 어떤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충성을 다하느냐에 따라 자기 자신뿐 아니라 그가 속해 있는 사회가 흥왕하거나 망하게 됩니다(11:10-11).

오늘 지혜의 외치는 목소리는 공개적인 장소에서 모든 이의 귀에 들리고 있는데, 특히 어리석은 자들을 향한 훈계의 외침에 그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어리석은 자란 지력이 모자라는 사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22절과 29-30절을 보면 이들은 자기의 어리석음을 사랑하되 지식을 미워하는 자들이고, 남을 비웃는 자들이며, 부모나 다른 이들을 통한 지혜로운 교훈과 책망을 거절하고 업신여기는 자들이고, 공통적으로 여호와를 두려움과 떨림으로 대하지 않는 자들입니다. 더구나 이들의 문제는 이러한 어리석고 뻔뻔한 행동을 오랜 기간 지속했다는 데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혜는 대체 언제까지 어리석음을 좋아하고 책망을 듣지 않겠느냐?”(22)라고 외칩니다. 나의 책망으로 돌이키라(23)고 외치는 지혜의 명령은 책망의 말에 지혜가 들어 있으므로 그 책망을 무시하지 말고 책망에 반응하여 행동이나 태도를 변화시키라는 뜻입니다. 타인에게서 책망을 들으면 자신에 대한 수치와 굴욕감이 들어 자신을 방어하거나 그 사람을 공격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 쉽습니다. 그러나 감정에 치우쳐 나를 위해 변명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화풀이를 하기보다는 냉정하게 그리고 겸손하게 그 책망의 내용 자체를 곰곰이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면 책망에서 드러난 자신의 약점, 무지, 실수, 죄 등을 인정할 수 있습니다. 그런 다음 지적받은 것을 고쳐 실천한다면 앞으로 그런 책망을 다시 받을 기회는 확연히 줄게 되고 하나님께서 나에게 바라시는 성품에 더 가까이 나갈 수 있습니다.

지혜는 어리석은 자들에게 책망으로만 다가가지 않습니다. 지혜는 그녀의 신()을 부어주고 그녀의 말을 깨닫도록 해주겠다는 약속도 덧붙입니다. 이는 지혜가 지혜의 영을 그에게 주어 지혜가 원하는 생각과 말을 숨김없이, 아낌없이 제공하겠다는 의미입니다. 지혜가 이러한 약속을 제공하는 것은 어리석은 자들이 어리석음과 교만을 버리고 지혜를 수용하길 바라는 마음에서입니다.

이와 같이 책망을 듣고 돌아서는 데에는 단순히 나의 이성적인 판단과 결단만으로 가능하지 않고, 지혜의 영인 하나님의 성령의 도우심과 은혜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지혜를 멸시한 미련한 자(24-25)

지혜가 부르는 소리와 내민 손을 무시했던 자들은 결코 핑계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지혜의 소리가 작아서 듣지 못한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교훈과 책망을 듣지 않은 사람이 맞게 되는 결과는 명확합니다. 그는 재앙을 피할 수 없습니다. 처음에는 자기 마음대로 살고 악의 유혹을 따라가는 것이좋아 보여도 결국 두려움과 근심이 악할 뿐입니다.

24내가 불렀으나 너희가 듣기 싫어하였고 내가 손을 폈으나 돌아보는 자가 없었고 25도리어 나의 모든 교훈을 멸시하며 나의 책망을 받지 아니하였은즉(24-25)

지혜는 어리석은 자가 훈계에 귀를 기울이고 지혜의 약속을 받기 원하지만, 어리석은 자는 지혜의 외침을 듣고 관심을 가지라는 손짓을 보고서도 이를 거절하는 쪽을 택했습니다. 그는 지혜의 모든 책망과 교훈을 멸시하고 그 말씀에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어리석은 자는 지혜의 훈계를 들을 기회가 없었던 자가 아니라 스스로 어리석음을 택하고 어리석음을 사랑한 미련한 자입니다(22).

 

미련한 자의 미래(26-31)

바다에서 멀리 큰 해일이 몰려오는 모습이 보이면 피하려고 하겠지만, 사람의 눈에 그 해일이 보일 때는 이미 늦습니다. 인생의 재앙도 그렇습니다. 사람의 판단으로 문제가 생겼다고 느껴지면 이미 돌이킬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미련한 사람은 경고를 무시하고 자신이 직접 보기 전에 믿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26너희가 재앙을 만날 때에 내가 웃을 것이며 너희에게 두려움이 임할 때에 내가 비웃으리라 27너희의 두려움이 광풍 같이 임하겠고 너희의 재앙이 폭풍 같이 이르겠고 너희에게 근심과 슬픔이 임하리니 28그 때에 너희가 나를 부르리라 그래도 내가 대답하지 아니하겠고 부지런히 나를 찾으리라 그래도 나를 만나지 못하리니 29대저 너희가 지식을 미워하며 여호와 경외하기를 즐거워하지 아니하며 30나의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나의 모든 책망을 업신여겼음이니라 31그러므로 자기 행위의 열매를 먹으며 자기 꾀에 배부르리라(26-31)

어리석은 자들이 지혜의 책망을 거절했으므로, 그 대가로 그들이 지혜를 필요로 할 때(26: 재앙을 만날 때’, ‘두려움이 임할 때) 지혜는 그들을 비웃고 대꾸하지 않을 것입니다. 지혜를 필요로 하는 때는 그들이 곤란에 처해 명료하고 효과적인 사고가 절실할 때입니다. 이런 시기는 광풍과 폭풍같이 예고 없이 그리고 엄청난 힘으로 불어닥치므로 어리석은 자는 근심과 더불어 심한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때 지혜는 그들에게 닥친 재앙을 보고 비웃을 뿐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기서 지혜의 비웃음은 무정함을 나타내는 표현이 아니라, 지혜를 비웃고 어리석음을 택하여 재앙을 자초한 어리석음에 대한 반응을 나타냅니다. 어리석은 자들은 뒤늦게 지혜를 부르고 부지런히 찾겠지만 그들은 결코 지혜를 찾을 수 없습니다.

지혜는 그동안 지속적으로 그들에게 손을 내밀었습니다. 어느 누구도 지혜의 외침을 못 들어서 지혜를 얻을 기회가 없었다고 핑계 댈 수 없습니다. 지혜는 자기의 모든 유익을 주겠다는 약속까지 하며(23) 그들에게 지혜를 거절하지 말라고 호소했습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자들은 그 호소에 콧방귀도 뀌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절박하게 지혜를 필요로 할 때 그들은 지혜 대신 시련과 난관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지혜는 광장에서 오가는 사람들에게(또 현재 우리에게) 그들이 듣는 지식이나 교훈 또는 책망을 제대로 듣기 위해서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필수라고 말합니다. 지혜는 이미 22절에서 미련한 자들은 지식을 미워하고 어리석음을 좋아하며 남을 비웃기를 즐긴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제 29절에는 그 근본적인 이유가 그들이 여호와를 경외하기를 선택하지(29: 즐거워하지로 번역됨) 않기 때문임을 밝힙니다. 그들이 지혜의 교훈과 책망을 거부한 동기는 그만큼 자의적이고 의도적입니다. 귀에 들린 이 모든 말을 듣기 싫어하고 거절하는 이유는 자신의 생각과 판단을 하나님의 생각과 명령이 담긴 말보다 더 높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판단과 생각은 지혜를 배제하는 어리석음이며, 때가 이르면 그 행위에 대한 마땅한 심판을 받게 됩니다.

 

지혜를 듣는 자와 듣지 않는 자(32-33)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막고 사는 것은 하나님께 등을 돌리고 사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지식이 넘치고 과학기술의 발단로 풍요가 넘치는 세상이, 하나님 없이 거만한 자세로 살아가는 죄인들에게 마치 낙원처럼 보이겠지만, 조금만 더 정직한 눈으로 이 도가니 같은 세상을 보면 곳곳에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습니다.

32어리석은 자의 퇴보는 자기를 죽이며 미련한 자의 안일은 자기를 멸망시키려니와 33오직 내 말을 듣는 자는 평안히 살며 재앙의 두려움이 없이 안전하리라(32-33)

잠언에 경고된 어리석은 자의 형벌은 그들의 악행에서 초래된 자연적인 결과입니다. 지혜를 거부하는 행동은 하나님으로부터 등을 돌리는 교만과 배교(퇴보)이며, 변화를 두려워하여 자기 안일과 만족에 머무는 행위입니다.

책망을 업신여겨 받아들이지 않고 책망 받을 행동을 계속하는 것이 그 당시 내 눈에는 지혜롭게 보일 수 있으나 그것은 착각입니다. 돌이키지 않는다면 그것이 초래하는 결과를 피할 수 없습니다. 그 결과는 멸망이며 불안이고 재앙입니다. 그러나 지혜를 듣는 자는 하나님의 보호 속에 안전과 평안을 누립니다(32:18).

 


순종할 때 인생길을 평안하고 안전하게 걸어갈 수 있습니다. 지혜의 말씀이 들릴 때 즉각 순종해야 합니다. 순종할 때 재앙을 피해 갈 수 있습니다. 항상 자신이 말씀에 비추어 봄으로 이것이 바로 우리가 평안하고 안전하게 인생길을 가는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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