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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19-02)


하나님의 경건한 사람들

잠언 19장 15-29절


 

잠언은 하나님의 은혜를 전제로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의 지혜를 찾고 실현하기 위해서 마땅히 감당해야 할 책임을 강조합니다. 그 책임에 따른 상과 벌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닙니다. 간간이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의 중요성을 말하며 또 궁극적으로는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생각하고 행동하더라도 “하나님의 뜻만이 완전히 서게” 될 것이라고 말하는 책입니다. 그러니까 세상에 돌아다니는 윤리와 도덕에 관한 경구들을 모아놓은 책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만 참된 윤리와 도덕이 세워지고, 진정으로 선과 악이 결정 난다고 분명히 밝히는 책입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책임이 적절하게 조화된 이 책의 성격이 오늘 본문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본문은 선한 일에 열심을 내야 하는 경우들(15-19)과 거만한 자를 주의해야 하는 이유(24-29)를 설명하는데, 이 두 문단 사이에 여호와 경외 신앙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문단이 위치해 있습니다(20-23). 첫 문단과 셋째 문단은 모두 게으름에 대한 경고로 시작하는 공통점을 지닙니다. 선한 일에 열심을 내며, 여호와를 경외하고, 거만한 자를 주의하라는 것이 본 단락의 메시지입니다.

 

선한 일에 열심(15-19)

미련한 자는 게으릅니다. 그들은 점점 자기 행동에 대해 무감각해지고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합니다. 당연히 가난은 피할 수 없게 됩니다. 지혜자는 하나님께서 다 해주실 것을 기대하는 자가 아니라 자기 일에 열심을 다 하는 자입니다. 하지만 과도한 열심을 오히려 해를 끼치게 되니 조심해야 합니다.

15게으름이 사람으로 깊이 잠들게 하나니 태만한 사람은 주릴 것이니라 16계명을 지키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지키거니와 자기의 행실을 삼가지 아니하는 자는 죽으리라 17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것이니 그의 선행을 그에게 갚아 주시리라 18네가 네 아들에게 희망이 있은즉 그를 징계하되 죽일 마음은 두지 말지니라 19노하기를 맹렬히 하는 자는 벌을 받을 것이라 네가 그를 건져 주면 다시 그런 일이 생기리라(15-19)

지혜 있는 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갑니다. 삶에서 게으름을 몰아내고,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며, 부모는 자녀를 훈육하고 자녀는 부모를 공경하며, 사람들에게 인자히 행하여 존경과 사랑을 받습니다.

(1) 게으름에 대한 경고(15)

15절은 게으름에 대한 경고다. 게으름은 사람으로 하여금 깊이 잠들게 하고 굶주리게 한다는 것입니다. 게으름을 피우는 순간은 즐겁고 편할지 모르나, 결국 그로 인해서 큰 피해를 당하게 됨을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게으름이 사람으로 하여금 깊이 잠들게 한다는 점을 주목해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잠든다는 것은 비유로서, 자기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 무감각하게 되고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자신이 열심을 내야 할 일들을 놓치게 되는 것입니다. 게으름은 우리가 매우 주의해야 할 잘못이며 실수입니다.

(2) 열심을 내야 하는 경우들(16-19)

이 구절들은 게으름을 피워서는 안 되는 여러 가지 경우들을 제시합니다. 이 일들을 올바로 해내지 못하면 해가 되는 결과를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16절은 계명을 지키지 않거나 자신의 행실을 삼가지 않는 경우, 자신의 영혼에 해를 가하게 되며 심지어는 죽게 된다고 가르칩니다. 계명을 지키고 행실을 삼가는 것에 게으름을 피워서는 안 됩니다.

17절은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면 하나님께서 갚아 주심을 말합니다. 가난한 자를 돌보는 것에 우리가 열심을 내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18절은 아들에게 희망이 있을 때 양육하고 훈계하기를 힘써야 함을 말합니다. 아직 기회가 남아있을 때 열심을 내어서 자녀를 돌봐야 합니다. 여기서 18b절은 한 가지 제한선을 설정합니다. 과도하게 자녀를 징계하다가 죽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즉 열심을 내는 것은 좋지만, 그것이 과도한 정도의 잘못된 열심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의미입니다.

19절은 심하게 화를 내는 자들을 조심하라는 경고의 메시지를 줍니다. 심하게 화를 내는 버릇은 고치기 어렵기 때문에, 그런 사람을 용서해주어도 그가 깨닫고 화내는 버릇을 고치지는 못할 것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이러한 19절은 18b절의 죽일 마음을 두지 말라는 내용과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무슨 일이든 과도한 열심을 내면 역효과가 나게 됩니다. 화를 심하게 내는 것도 그런 경우이고, 자녀를 심하게 징계하여 죽일 마음을 품는 것도 그런 경우입니다. 모든 일에 선한 열심을 내되, 과하지 않게 적절한 선에서 열심을 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앙의 중요성(20-23)

미련한 자는 거만합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법을 무시하고 정의를 업신여기며 심지어 “죄악을 삼키는 자”가 됩니다. 거만한 자는 징계를 받아도 안 변하지만, 그것을 본 어리석은 자, 즉 미성숙한 자는 지혜를 배울 것입니다. 그들이 살길은 지혜의 말씀을 붙잡는 것입니다. 이런 이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심판이요 채찍질입니다.

20너는 권고를 들으며 훈계를 받으라 그리하면 네가 필경은 지혜롭게 되리라 21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만이 완전히 서리라 22사람은 자기의 인자함으로 남에게 사모함을 받느니라 가난한 자는 거짓말하는 자보다 나으니라 23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사람으로 생명에 이르게 하는 것이라 경외하는 자는 족하게 지내고 재앙을 당하지 아니하느니라(20-23)

이 네 구절은 선한 열심의 주제로부터 전환하여 새로운 주제로 묶여 있습니다. 바로 여호와 신앙과 지혜에 관련된 주제입니다.

20절은 권고를 듣고 훈계를 받아 지혜롭게 되어야 함을 말합니다. 잠언에서 지혜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앙적 관점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므로, 20절은 암시적으로 여호와 경외 신앙을 말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21절은 지혜를 배워야 하는 이유를 말합니다. 사람이 많은 것을 계획하더라도, 그중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이 허락하시고 뜻하시는 것뿐입니다.

22절은 해석하기가 쉽지 않지만, 그 대략적인 의미를 파악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사람에게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인자함입니다. 인자함이란 약속에 대한 성실함을 뜻합니다. 하반절의 ‘가난한 것이 거짓말하는 것보다 낫다’라는 구절은 거짓말의 해악을 강조한 표현이므로, 22절 전체는 다른 사람과의 약속을 성실하게 지켜야 함을 강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23절은 여호와를 경외하면 생명을 얻게 됨을 말합니다. 여호와 경외는 재앙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고 풍성한 생명을 가져다줍니다. 21-23절을 거시적으로 이해해본다면,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우리 삶의 모든 측면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메시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를 15-19절의 열심의 주제와 연결해보자. 우리는 게으름을 피하고 선한 열심을 내야 하는데, 과도한 열심은 피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과도하게 열심을 내는 경우는 무엇입니까? 그에 대한 일종의 대답을 20-23절이 주고 있는 듯합니다. 열심을 낼 때,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 안에서 열심을 내야 하며, 다른 사람을 향해 성실함을 지키는 범주 안에서 열심을 내야 하고, 나의 계획이 아닌 하나님의 계획이 설 것이라는 신앙적 겸손으로 열심을 내야 합니다.

 

거만한 자에 대한 경고(24-29) 

게으름과 거만함의 치료책은 ‘여호와 경외’입니다. 그것이 사망의 길에서 건져 생명의 길로 갈 수 있게 해줍니다. 창조주요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인정하고 신뢰하고, 결국 인간이 그 무엇을 마음에 경영한들 결국 하나님의 뜻만이 오롯이 설 것이라고 믿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24게으른 자는 자기의 손을 그릇에 넣고서도 입으로 올리기를 괴로워하느니라 25거만한 자를 때리라 그리하면 어리석은 자도 지혜를 얻으리라 명철한 자를 견책하라 그리하면 그가 지식을 얻으리라 26아비를 구박하고 어미를 쫓아내는 자는 부끄러움을 끼치며 능욕을 부르는 자식이니라 27내 아들아 지식의 말씀에서 떠나게 하는 교훈을 듣지 말지니라 28망령된 증인은 정의를 업신여기고 악인의 입은 죄악을 삼키느니라 29심판은 거만한 자를 위하여 예비된 것이요 채찍은 어리석은 자의 등을 위하여 예비된 것이니라(24-29)

게으름은 하나님께서 주신 소중한 기회를 저버리고 삶을 무가치하게 여기는 죄악된 습관입니다.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즉시 헤어나오지 못하는 것은 게으름을 쉼, 또는 안식으로 오해하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게으름으로 자신을 망치거나 주변 사람들에게 어려움을 주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주신 시간과 환경을 낭비하지 말고 성실히 살아갑시다.

(1) 게으름에 대한 경고(24)

24절은 게으름에 대한 경고를 전해줍니다. 이 구절은 15절과 매우 유사합니다. 다만 다른 점은, 15절은 게으름이 사람을 잠에 빠뜨려 죽음에 이르게 한다는 결과적 측면을 강조했지만, 24절은 게으름의 현상 자체를 강조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음식이 가득한 그릇에 손을 넣고도 먹지 않는다는 24절의 묘사는 게으름이 자신이 누릴 수 있는 것조차 누리지 못하는 잘못된 삶의 태도이기에, 한번 게으름에 빠지면 자신의 삶을 개선해 나가지 못할 것이라는 점을 우리에게 깨우쳐줍니다.

이러한 24절의 메시지는 25절 이하로 나타나는 거만한 자의 이미지와 연결될 수 있습니다. 거만한 자야말로 게으른 자의 대표적인 경우로서, 자기 삶의 잘못된 측면을 개선하거나 변화시키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2) 거만한 자에 대한 경고(25-29)

25-29절은 주로 거만한 자에 대한 여러 가지 잠언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25절은 거만한 자를 때리면 미성숙한 자가 옆에서 보고 지혜를 배울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거만한 자를 때렸을 때, 거만한 자 자신은 지혜를 배우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미성숙한 자조차 지혜를 배우며, 명철한 자는 지식을 얻는데, 거만한 자는 자기가 훈계를 받았음에도 지혜를 얻지 못합니다. 거만한 자는 스스로 잘못을 돌이킬 줄 모르는 자입니다.

26절은 부모를 멸시하고 쫓아내는 사람은 부끄러움과 수치를 불러들이는 자임을 말합니다. 26절은 27절과 함께 이해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27절에 “내 아들아”라는 말이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27절의 화자는 아버지이고 청자는 아들입니다. 화자는 아들에게 지식의 말씀 즉 지혜의 말씀을 떠나게 하는 교훈을 멀리하라고 가르칩니다. 다시 말해 지혜의 말씀을 굳게 붙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26-27절은 우리가 지혜를 굳게 붙잡아야 하며, 그렇게 하지 않을 때 수치와 능욕을 불러들이게 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28-29절은 다시금 거만한 자에 대하여 언급합니다. 28절은 망령된 증인이 정의 앞에서 거만하게 행동한다는 사실을 지적합니다. 여기서 거만함이란 참된 증거 대신 거짓 증거를 내세우는 잘못입니다. 25절에서 거만한 자는 자신의 삶을 개선하지 못하는 자로 묘사되었는데, 이제 28절에서 거만한 자는 더욱 적극적으로 죄를 행하는 자로 묘사됩니다. 거만한 자는 죄악을 삼키는 악인과 같은 수준의 사람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29절은 거만한 자가 결국 심판을 받게 될 것을 말합니다. 이제 거만한 자는 미련한 자와 동급으로 묘사됩니다. 25-29절은 거만한 자가 자기 삶의 잘못된 부분을 고치지 못하는 자이고, 지혜를 붙잡으라는 부모의 가르침을 버리는 자이며, 그리하여 결국 심판을 당하게 되는 자임을 차례로 가르칩니다. 우리는 결코 이러한 거만한 자가 되어서는 안 되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참 지혜에 거하여 선한 열심을 내고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게으름과 거만함의 치료책은 ‘여호와 경외’입니다. 그것이 사망의 길에서 건져 생명의 길로 갈 수 있게 해줍니다. 창조주요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인정하고 신뢰하며, 결국 인간이 그 무엇을 마음에 경영한들 결국 하나님의 뜻만이 오롯이 설 것이라고 믿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할 때 생명에 이르고 족하게 살며 재앙에 이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이 지혜의 길이며 의의 길이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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