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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21-01)


정의를 행함이 하나님의 기쁨

잠언 21장 1-14절


어린 아이에게 ‘정의가 뭔지 아나?’라는 질문에 아이가 떠올린 것은 슈퍼 히어로였습니다. 아이에게 정읠란 나쁜 사람들을 혼내주는 영웅 이야기였던 것입니다. 특별한 능력의 영웅에 의해 한 번에 정의가 세워지는 일은 없다는 것을 아이도 곧 알게 되겠습니다. 악인이 형통하는 이 현실에 대해 우리는 자라나는 다음 세대에게 어떤 말로 설명해주어 합니까?

 

잠언 20:1-14은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먼저 1-4절에는 여호와 하나님이 집중적으로 언급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주권적으로 인도하시니, 그분 앞에 의로운 삶의 열매를 맺어야 함을 말합니다. 이어지는 5-14절은 여호와 하나님의 주권에 복종하지 않는 악한 자의 삶의 모습들을 묘사합니다. 악한 삶의 특징뿐 아니라, 악한 삶을 살았을 때 맞게 될 결과들도 비교적 자세히 그려냅니다.

 

판단의 기준이 되시는 여호와(1-4)

악한 이들이 성공하는 것을 보고, 그들이 높은 자리에 올라 권력으로 불법을 자행하는 것을 봅니다. 이것을 지켜보는 이들은 혼란스럽습니다. 하지만 성공이라는 결과가 모든 것을 정당화하지 못합니다. 그들의 심히 구부러진 길이 그들의 죄를 폭로합니다. 모든 것이 잘 물린다고 해도 ‘악인의 형통은 죄’라는 준엄한 선언을 피해갈 수 없습니다.

1많은 재물보다 명예를 택할 것이요 은이나 금보다 은총을 더욱 택할 것이니라 2가난한 자와 부한 자가 함께 살거니와 그 모두를 지으신 이는 여호와시니라 3슬기로운 자는 재앙을 보면 숨어 피하여도 어리석은 자는 나가다가 해를 받느니라 4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상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1-4)

하나님께서는 인생의 가야 할 길을 인도하고 세밀히 감찰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께 취해야 할 태도는 자기 뜻을 굽히지 않는 오만한 모습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기대로 겸손히 자신을 맡겨드리는 것입니다.

(1) 주권적으로 인도하시는 여호와(1-2)

1절은 왕에 대하여 언급하는데,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는 물줄기와 같아서, 그 흐름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바대로 인도해 가신다는 사실을 말합니다. 인간 세상에서 가장 높은 통치권자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통치 앞에서는 복종할 수밖에 없음을 알려줍니다.

2절은 사람의 행위를 하나님께서 친히 감찰하심을 말합니다. 그 어떤 사람도 하나님 앞에서는 의롭다 말할 수 없으며 겸손하게 하나님의 평가를 받아야 함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2) 여호와 앞에서의 삶의 열매(3-4)

이렇게 주권적으로 통치하시는 여호와 앞에서 우리의 삶이 평가되므로, 우리는 단순히 겉모습만의 종교 생활로 만족해서는 안 되며, 한 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의 열매를 맺기 위해 애쓰고 수고해야 합니다.

3절은 제사 드리는 것보다 공의와 정의를 행하는 것이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일임을 천명합니다. 지혜로운 자가 맺어야 하는 삶의 열매가 바로 정의와 공의입니다.

4절은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죄에 대해 언급합니다. 교만한 눈, 절제할 줄 모르는 마음, 그리고 악인의 변화되지 못하는 상태가 바로 죄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열매를 맺기 위해 힘써야 하며, 악인의 모습을 버리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악인의 삶의 모습(5-14)

결국 악인의 길은 자멸의 길입니다. 조그바여 거짓으로 재산을 모은 자는 궁핍해질 것입니다. 가난한 이들의 부르짖음에 귀를 막으면 자기가 부르짖을 때 아무도 듣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을 것입니다. 불의에 눈 감으면 그 불의가 나를 공격합니다. 자신이 취두른 폭력에 의해 스스로 망합니다.

5패역한 자의 길에는 가시와 올무가 있거니와 영혼을 지키는 자는 이를 멀리 하느니라 6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7부자는 가난한 자를 주관하고 빚진 자는 채주의 종이 되느니라 8악을 뿌리는 자는 재앙을 거두리니 그 분노의 기세가 쇠하리라 9선한 눈을 가진 자는 복을 받으리니 이는 양식을 가난한 자에게 줌이니라 10거만한 자를 쫓아내면 다툼이 쉬고 싸움과 수욕이 그치느니라 11마음의 정결을 사모하는 자의 입술에는 덕이 있으므로 임금이 그의 친구가 되느니라 12여호와의 눈은 지식 있는 사람을 지키시나 사악한 사람의 말은 패하게 하시느니라 13게으른 자는 말하기를 사자가 밖에 있은즉 내가 나가면 거리에서 찢기겠다 하느니라 14음녀의 입은 깊은 함정이라 여호와의 노를 당한 자는 거기 빠지리라(5-14)

불법으로 얻는 부와 형통은 경계와 단절의 대상이지 부러움의 대상이 아닙니다. 교만한 악인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과 형통이란 없습니다. 사라질 안개처럼 잠시 만족할지 모르지만, 악인은 결국 하나님께서 던져버린 막다른 길, 더 이상 자기 지혜로 예측할 수 없는 굽은 길에서 더 큰 절망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1) 악한 삶의 결과 1(5-7)

이 단락에서는 악한 삶의 여러 모습을 소개하면서, 그 결과를 더불어 가르쳐줍니다.

5절은 부지런함과 조급함을 대조하면서 부지런함은 풍부함에 이르지만 조급함은 궁핍에 이르게 됨을 가르칩니다. 그렇다면 부지런함과 조급함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부지런한 자는 깊은 생각을 통해 계획을 세웁니다. ‘경영’이라고 번역된 원어는 ‘생각들’이라는 말입니다. 부지런함은 조급함과는 다릅니다. 지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운데 신중한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는 데 있어서 부지런한 것입니다. 이러한 지혜가 없는 부지런함은 조급함일 뿐이며, 궁핍에 이르게 될 뿐입니다.

6절은 거짓말로 모은 재물이 한순간의 숨결과도 같아서 금방 없어지고 만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심지어 이런 불의의 재물은 죽음을 구하는 것과 같아서 멸망에 이르게 할 것이므로, 우리는 재물을 얻는 데 있어서 정직함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7절은 악인의 폭력성이 악인을 끌고 간다고 말합니다. 폭력성이라는 악한 성품에 물들게 되면, 그 폭력성이 그 사람을 지배하게 됩니다. 그 결과, 그는 3절에서 말한 하나님의 공의를 지키지 못하게 되어, 하나님의 선하신 지혜의 길에서 멀리 떠나게 됩니다. 폭력성은 우리가 매우 조심해야 할 악한 성품입니다.

(2) 악한 삶의 특징(8-11)

8-11절 역시 악한 삶의 여러 가지 태도에 대해서 말하는데, 다만 그 결과를 서술하지는 않고 악한 삶 자체에 대해서 좀 더 깊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8절은 굽은 길로 가는 자는 음녀의 길로 가는 것과 같지만 정결한 자는 올바른 행동을 한다고 말합니다. 이리 저리 굽은 길, 좌우로 치우치는 행보를 피해야 함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9절은 다투는 여인과 함께 큰 집에서 사는 것보다는 차라리 지붕 위에서 홀로 사는 것이 낫다고 가르칩니다. ‘~ 보다,’ ‘~이 더 낫다’라는 비교 잠언의 형식을 통해서 다툼을 일삼는 여인과 함께 사는 삶의 고통을 보여줍니다. 이는 다툼을 일삼는 것이 악한 삶의 형태임을 우리에게 일깨워줍니다. 다툼은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이 삶의 형태와 습관으로 자리 잡으면 지혜의 길에서 떠나는 것이 되며 가정과 같은공동체를 파괴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10절은 악인의 마음은 재앙을 원한다는 사실을 지적합니다. 그래서 같은 공동체에 속한 이웃이라 할지라도 악인에게서는 은혜를 받지 못합니다. 이 구절은,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 구성원에게조차 선을 행하지 못하는 사람이 악인이며, 그 마음에는 항상 재앙을 도모하는 잘못된 욕망이 꿈틀대고 있음을 알려줍니다. 자신의 마음 깊은 곳에서 공동체 구성원을 향한 선한 마음이 흘러나오고 있는지를 늘 점검해야 할 것입니다.

11절은 거만한 자를 훈계하면 어리석은 자가 지혜를 얻게 되고, 지혜로운 자가 교훈을 받으면 지식이 더한다고 가르칩니다. ‘어리석은 자’는 ‘미성숙한 자’로서, 교훈을 주면 배워서 변화될 가능성이 있는 자이고, 거만한 자는 더 이상 가르침을 받지 못하는 완고한 자입니다. 11절은 악한 삶을 사는 자를 보게 될 때, 그 악인의 삶의 결과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점을 가르쳐줍니다. 거만한 자가 받는 결과 즉 5-14절에 걸쳐 나타나는 여러가지 해로운 결과들을 지켜보고 교훈을 얻어 지혜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는 점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3) 악한 삶의 결과2(12-14)

12-14절은 악한 삶을 살 때 맞게 될 결과를 다시 한 번 설명합니다. 그 성격에 있어서 12-14절은 5-7절과 유사합니다.

12절은 의로우신 자가 악인을 감찰하셔서 그를 환난에 던지신다고 말합니다. 본문에서 ‘의로우신 자’라고 번역된 원어는 ‘짜티크’로서 '‘의로운 자’라는 의미인데, 이 의로운 자가 악인을 환란에 던지는 존재이기에 대개 이 의로운 자를 하나님으로 해석합니다. 악인은 의로우신 하나님에 의해서 재앙에 던져질 뿐입니다.

13절은 가난한 자의 부르짖음을 듣지 않고 거절하면, 나중에 자신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아무도 돕지 않을 것임을 말합니다. 즉 자신이 다른 이에게 악하게 행한 그대로 받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악인의 악함은 스스로를 멸망시키는 지름길과 원동력이 될 뿐이니, 우리는 이런 악한 삶을 버리고 다른 이를 돕고 섬기는 선한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14절은 선물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데, 상반절에 ‘은밀한 선물’이라고 표현되어 있으므로, 우리는 이 선물을 뇌물로 이해해야 합니다. 뇌물은 분노를 그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악인이 자신의 악함으로 인해 멸망 당하게 될 때, 불의한 뇌물로 상황을 해결하려고 시도할 것을 말합니다. 이 구절은 뇌물을 사용하여 문제를 해결하라는 뜻이결코 아닙니다. ‘선물’이란 원래 좋은 것이고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선한 결과를 낳지만, 그것을 ‘은밀하게’ 사용하려는 잘못된 시도는 악한 삶의 태도임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5-13절에 악한 삶의 특징과 그 결과를 언급한 문맥을 생각할 때, 14절을 이렇게 해석하는 것이 가능할 것입니다.


모든 것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의의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다음 세대들이 정의를 영화 속에서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와 교회 성도들의 삶에서 발견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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