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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13-02)


지혜로운 자와 동행하는 지혜

잠언 13장 14-25절


잠언은 지혜로운 자와 어리석은 자의 결말에 대해서 명백히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리석은 자일수록 결말의 해답을 지혜를 따르는 데서 찾지 않고 지혜를 거슬러 계속 역주행합니다. 더 나은 미래를 얻는 방법은 하나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 그 외에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생명과 패망이라는 갈림길에서 나와 우리 가정이 생명의 샘에 거할 수 있는 지혜에 귀를 열어봅시다.

 

지혜 있는 자의 가르침은 본인과 다른 사람에게 생명의 샘과 같이 삶에 기쁨과 생기와 활력을 가져다줍니다. 그 가르침을 겸손히 받는 자는 지식적으로나 신앙적으로나 도덕적으로 분별력과 통찰력을 얻게 되므로 어떤 어려움과 위기라도 지혜롭게 대처해나갈 수 있습니다.

 

지혜자와 선한 교훈(14-19)

성경에서 지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에서 얻는 창조질서나 세상의 이치에 대한 밝은 이해를 의미하기도 하고 실제적인 기술을 뜻하기도 하며 올바른 분별력이나 판단력을 뜻하기도 합니다. 지혜자의 가르침과 교훈을 잘 받아들이는 것이 구원의 길입니다. 쓸데없는 자존심과 헛된 명예욕은 사망의 길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위기는 내면을 살피게 하고, 생명의 길을 안내하여 자신을 변화하도록 이끕니다.

14지혜 있는 자의 교훈은 생명의 샘이니 사망의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느니라 15선한 지혜는 은혜를 베푸나 사악한 자의 길은 험하니라 16무릇 슬기로운 자는 지식으로 행하거니와 미련한 자는 자기의 미련한 것을 나타내느니라 17악한 사자는 재앙에 빠져도 충성된 사신은 양약이 되느니라 18훈계를 저버리는 자에게는 궁핍과 수욕이 이르거니와 경계를 받는 자는 존영을 받느니라 19소원을 성취하면 마음에 달아도 미련한 자는 악에서 떠나기를 싫어하느니라 20지혜로운 자와 동행하면 지혜를 얻고 미련한 자와 사귀면 해를 받느니라 21재앙은 죄인을 따르고 선한 보응은 의인에게 이르느니라 22선인은 그 산업을 자자 손손에게 끼쳐도 죄인의 재물은 의인을 위하여 쌓이느니라 23가난한 자는 밭을 경작함으로 양식이 많아지거니와 불의로 말미암아 가산을 탕진하는 자가 있느니라 24매를 아끼는 자는 그의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 25의인은 포식하여도 악인의 배는 주리느니라(14-25)

본문은 지혜 있는 자의 영향력을 생명, 샘, 양약으로 다양하게 말합니다. 이어서 훈계를 수용하는 것의 중요성, 선인과 악인을 구별하는 재물의 비유들을 이야기합니다. 지혜는 자신뿐 아니라 자손에게도 영향을 미칩니다.

(1) 지혜자와 선한 교훈(14-19)

잠언 13:14-19은 12-19절 단락의 일부입니다. 12절과 19절에 ‘소원’이란 단어가 공통으로 나와 한 단락을 형성하고 있으며, 그 중간에는 17절을 제외하고 훈계와 말씀의 유의와 관련한 금언이 모여 있습니다. 그런데 17절도 언어와 관련된 ‘사신’(‘전령’의 의미)에 대한 금언이므로 다른 구절들과 연결해서 읽을 수 있습니다.

먼저, 오늘 본문의 시작인 14절은 지혜자의 ‘가르침’(‘교훈’으로 번역됨)에 대해 설명함으로써 13절의 말씀, 계명과 연결되며, 가르침의 유익으로 제시한 생명의 샘은 12절의 소원의 성취를 표현한 ‘생명나무’와 의미상 연결됩니다. 지혜자의 가르침은 말씀이나 계명처럼 여호와 경외를 기초로 하는 내용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지혜자의 가르침은 가르침 받은 자에게 마땅한 보상을 제공해 주는데(13), 그 보상에는 사망의 그늘에서 벗어나게 만드는 생명의 샘과 같은 역할도 포함되었습니다(14). 즉, 삶의 다양한 영역에서 죽음처럼 다가오는 위기와 어려움을 자기가 받은 가르침의 잣대로 판단하고 선택함으로써 건짐을 받을 수 있고, 샘에서 물이 지속적으로 흘러나오듯 가르침을 통해 하나님을 신뢰하며 정의와 사랑을 실행함으로써 신앙과 생활에 생명력을 공급받을 수 있습니다.

15절에서는 14절의 지혜자의 가르침이 선한 지혜와 연결되는데, 이때 선한 지혜는 ‘선한 분별력’ 또는 ‘좋은 지각’(시 111:10)을 의미하며, 신실하거나 정직하지 못한 자의 생각이나 분별력과 대조됩니다. 지식적, 도덕적, 신앙적으로 선하고 적절한 판단력은 자신뿐 아니라 타인에게도 은혜를 베풀 수 있게 만듭니다. 이와 같은 올바른 분별력은 여호와 경외에서 비롯됩니다. 16절에서는 슬기로운 자를 여호와 경외의 지식을 바탕으로 신중하게 행동하는 자로 소개하면서, 자신의 어리석은 판단력을 바탕으로 부주의하게 어리석음을 펼치는 미련한 자와 대조합니다.

17절은 ‘악한 사자’와 ‘충성된 사신’을 대조하는 금언입니다. ‘악한 사자’는 자기를 보낸 주인에게 충성되지 못하고 주인의 의견을 제대로 전해주지 못해 주인을 궁지에 몰아넣는 종입니다. 그러나 주인에게 충성을 다하는 종은 정직과 전략을 이용하여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주인과 자신에게 양약(‘치유’의 뜻)과 같은 존재가 됩니다.

18절은 13절과 유사한 금언이며 훈계에 대한 대조적인 반응이 낳는 각각의 결과를 묘사합니다. 여호와 경외를 바탕으로 하는 지혜의 훈계를 업신여기는 자는 궁핍과 수치를 당하게 되지만, 그러한 책망을 받아들일 줄 아는 자는 풍요로움과 존경을 얻게 됩니다. 여기서 말하는 궁핍이나 수치는 단순히 물질적인 궁핍과 정신적 수치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지식, 신앙, 도덕 등, 여러 방면에서 일어나는 결과로 이해해야 합니다.

19절은 12절의 주제인 소원 성취와 관련된 금언입니다. 12절에서는 지연된 소망과 성취된 소망이 사람에게 주는 상실감과 만족감을 대조적으로 표현하였습니다. 19절에서는 특별히 ‘성취된 소원’과 ‘미련한 자의 악’을 대조하고 있습니다. 성취된 소원이 ‘마음에 달다’라는 말은 ‘마음에 기쁨이 넘친다.’라는 표현입니다. 소원이 성취되면 생명 나무처럼 심리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만족감과 활력을 제공 받습니다. 그러나 미련한 자는 악에서 떠나기를 싫어하고 악에 머물기를 선택했으므로 그가 행한 악으로 인해 참된 만족이나 기쁨을 누릴 수 없습니다.

(2) 의인과 악인의 보응(20-25)

20절은 지혜자의 친구와 우매자의 친구가 되는 일을 대조하며 지혜로운 자(또는 지혜 자체)와 친구가 되라고 권유합니다. 지혜로운 자들의 친구가 되면 그들로부터 올바른 지식을 전달받고 분별력 있는 생각과 행동을 배우게 되어 자기 자신의 지혜도 함께 커갑니다. 이런 지혜로운 자들은 올바른 지식과 분별력과 통찰력을 소유하고 있으므로 이들과 동행하면 기쁨과 만족을 얻고 계속 성장하며 여러 방면에서 양질의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미련한 자들의 친구가 되면 그들의 분별력 없는 말과 행동으로 인해 자기 자신도 어려움과 어리석음에 빠지기에 십상입니다. 잠언의 앞부분에서도, 숨었다가 까닭 없이 사람의 피를 흘리자고 제안하는 강도의 무리(1:11-14)나, 정직을 버리고 불의와 행악을 저지르는 무리(2:13-15), 아첨과 번지르르한 외모로 젊은이를 유혹하는 음녀(2:16-19), 제대로 길을 가고 있는 자를 붙들어 사망의 연회에 초대하는 미련한 여인(9:13-18) 등의 예로 우리가 특히 주의를 기울여 멀리해야 하는 대상이 누군지를 알려주었습니다.

이런 자들은 판단력이나 통찰력이 부족하고 생각이 악하므로 이들과 동행하면 후회와 수치가 몰려와 결국 영적, 도덕적으로 패망하고 죽게 됩니다.

21-23절은 의인과 악인의 보응과 재물에 대한 금언인데 서로 같은 단어나 주제가 나와 연결됩니다. 21, 22절은 선한 보응과 선한 사람(‘선인’으로 번역됨)이라는 공통 단어와 함께 의인과 악인에 대해 언급합니다.

22, 23절은 ‘재물’과 ‘가산’이라는 유사한 단어와 함께 재물에 관해 설명합니다. 먼저 21절은 죄인과 의인의 보응에 대한 금언입니다. 죄인에게 악(재앙)이 따르나 의인은 선한 것으로 보응을 받습니다. 특히 죄인에게 따르는 ‘재앙’이 20절에서 미련한 자의 친구에게 따라오는 ‘재앙’(‘해’로 번역됨)과 연결됨으로써 죄인과 미련한 자가 서로 연결됩니다(결과적으로 의인과 지혜로운 자도 서로 연결됩니다).

잠언을 비롯하여 성경에서는 미련한 자와 악인이나 죄인을 크게 구별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근본적으로 그들이 마음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거나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1:7; 시 10:4; 14:1; 렘 2:13, 19 등). 이런 자들은 지식이나 능력에 한계가 있는 자기 자신이나 다른 것을 의지하고 자신의 눈에 옳다 생각되는 대로 살기 때문에 하나님이 보시기에 악한 것을 거두게 됩니다.

21절의 의인은 22절에서 ‘선한 사람’으로 지칭됩니다. 21절에서 의인은 선한 보응이 약속되어 있는데, 23절에서는 그 약속이 그에게만 아니라 대대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밝힙니다. 선한 자들은 자기가 받은 산업을 자녀와 손자들에게 물려주고 그들로 하여금 그 유산을 누릴 수 있게 합니다. 그러나 죄인이 쌓아 놓은 재물은 그들의 후손이 소유하지 못하고 의인과 그들의 후손이 누리게 됩니다. 욥기 27:16-17에서도 악인이 은이나 옷을 티끌처럼 가득히 쌓아둔다 해도 의인이 그것을 다 차지한다고 말합니다. 이와 같이 의인과 악인에게 약속된 보응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정의와 섭리 아래 성취됩니다.

23절은 가난한 사람에 대해 언급되며 위의 금언들과 재물이나 ‘의’라는 주제로 연결됩니다. 가난하다 하더라도 새롭게 갈아엎은 땅을 경작함으로써 양식을 늘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사는 사회에 정의가 없다면(‘불의로 인하여’로 번역됨) 그들이 모은 재산을 다 빼앗길 수도 있습니다.

24절에서는 자식을 부지런히 제대로 훈육하는 것이 그들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하며 매를 아끼지 말라고 조언합니다. 23:13-14에서도 회초리로 때려도 죽지 않으니 매를 아끼지 말라고 교훈하며 특히 이와 같은 훈계가 자식의 생명을 무덤에서 구해낼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여기서 자식에게 매를 아끼지 말라는 표현은 체벌을 부추기는 것이 아니라 자식의 잘못을 제때에 따끔하게 처벌해서 잘못을 바로잡아 올바른 삶을 살게 하라는 의미입니다.


 편법과 상술이 난무할지라도 끝까지 지혜를 붙들고 따르는 것이야말로 그리스도인이 자신의 존영을 지키는 길입니다. 이 세상에서 지혜와 맞바꿀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화려하진 않아도 확고한 길로 인도해주는 말씀을 더욱 신뢰하며 잠언이 주는 삶의 반전을 경험하게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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