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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13-01)

  


의인과 악인이 받을 보응에 대한 지혜

잠언 13장 1-13절


의는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온갖 좋은 복들을 가져오는 능력이 됩니다. 의인이 예상치 못한 순간에 도움을 입고 곤란에서 구원을 받는 것은 바로 그 의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악인이 부지불식간에 수치와 패망에 이르게 되는 까닭은 바로 그가 행한 악 때문입니다. 복은 의의 열매이고 저주는 악의 열매입니다.

 

여호와 경외를 근본으로 하는 지혜의 훈계에 경청하며 살아가는 데 있어서 언어생활이나 경제생활 등에 완전함을 추구해야 합니다. 정직한 말과 절제 있는 말을 통하여 선의 열매를 맺고 부와 재물에 대한 분명한 판단을 통하여 근면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언어생활과 그 결과(1-6)

말에는 살리고 죽이는 힘이 있습니다. 부모의 훈계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그 지혜로 풍요로운 인생을 살아가지만, 훈계를 거부하는 사람은 그 어리석음으로 파멸에 이르게 됩니다. 또한, 입을 열 때와 닫을 때를 구분하지 못한 채 함부로 이야기는 것은 멸망을 자처하는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1지혜로운 아들은 아비의 훈계를 들으나 거만한 자는 꾸지람을 즐겨 듣지 아니하느니라 2사람은 입의 열매로 인하여 복록을 누리거니와 마음이 궤사한 자는 강포를 당하느니라 3입을 지키는 자는 자기의 생명을 보전하나 입술을 크게 벌리는 자에게는 멸망이 오느니라 4게으른 자는 마음으로 원하여도 얻지 못하나 부지런한 자의 마음은 풍족함을 얻느니라 5의인은 거짓말을 미워하나 악인은 행위가 흉악하여 부끄러운 데에 이르느니라 6공의는 행실이 정직한 자를 보호하고 악은 죄인을 패망하게 하느니라(1-6)

1-6절의 금언은 대부분 훈계를 비롯하여 정직, 침묵 등의 언어생활과 이런 생활이 미치는 영향을 설명합니다. 1절은 훈계의 말을 들으라는 교훈(10:8; 12:1, 15)이며, 아버지의 훈계를 듣는 자가 지혜롭고 겸손한 아들이고 반대로 꾸지람을 듣지 않는 자는 거만하고 미련한 자라고 설명합니다. 이 금언은 1-9장에서 아버지의 강연과 지혜의 초청에 빈번히 등장하는 ‘내 말을 듣고 행하라’는 명령을 떠오르게 합니다. 이같이 아버지나 지혜가 주는 훈계를 받아들이는 데는 그 말을 경청하려는 겸손한 태도와 열린 마음, 그 훈계가 자신을 올바른 길로 인도함을 인식하는 분별력, 이를 실행하려는 결단과 의지가 꼭 필요합니다.

1절이 말을 듣는 것에 관한 금언이라면 2, 3, 5절은 말을 하는 것에 관한 금언입니다. 먼저, 2절에서는 말이 마음으로부터 비롯되며 입으로 뱉는 말에는 그에 따른 열매가 있어 각자 그 열매를 먹게 된다고 설명합니다. 마음이 정직하고 화평한 자는 정직하고 화평한 말을 하여 선(복록)이라는 열매를 먹게 됩니다. 그러나 마음이 신실하지 못한 자는 거짓말과 폭력적인 말을 하므로 폭력의 열매를 맛보게 됩니다. 이와 같이 말이 가져오는 열매의 종류와 질은 어떤 마음을 품고, 어떤 말을 어떻게 하느냐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습니다.

3절에서는 말로 인한 열매를 맛보게 되므로(2) 말을 삼가는 자가 지혜롭다는 교훈을 줍니다. 말을 삼가느냐 맘대로 놀리느냐에 따라 자신의 생명을 보전하거나 멸망을 당할 수 있습니다. 18:21의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다’는 금언이 이를 잘 요약해 줍니다.

말과 관련하여, 야고보는 혀에 실수가 없는 자가 완전한 자라고 하였습니다(약 3:2). 그는 배의 키를 예로 들어 설명하면서 말이 지닌 엄청난 힘과 그 영향력을 지적하며 혀를 길들이라고 권면합니다(약 3:3-5), 크고 단단한 배라도 광풍이 불면 바다에서 이리저리 밀려가지만, 이때 흔들리는 큰 배를 움직이고 조절할 수 있는 것은 조종실의 작은 키입니다. 혀도 배의 키처럼 몸의 작은 기관이지만 지구를 들었다 놓았습니다. 할 수 있을 정도의 큰 허풍을 늘어놓을 수도 있고 작은 불씨와 같이 삽시간에 산을 태우거나 사람을 매장할 수 있는 파괴력이 있으며 자신의 생명까지 앗아갈 수 있는 치명적인 힘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말의 힘은 긍정적이고 건설적인 쪽으로도 얼마든지 영향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사람을 칭찬하고 화평의 말로 용기와 위로를 제공할 수 있으며 죽으려 하는 자도 살릴 수 있는 약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의 혀를 길들여 정직과 화평을 말하고, 필요 없는 말을 삼가 화를 면하고, 선한 열매를 맺어 나와 다른 이에게 유익을 줄 수 있습니다.

1절의 아버지의 훈계를 듣는 지혜로운 자는 2-3절에서 조언하는 언어생활을 실천할 수 있고, 이제 4절에서 교훈하는 근면 정신을 배울 수 있습니다. 사람은 모두 마음에 원하는 바가 있지만, 손을 게을리 움직이고 무엇이든 미루며 잠만 재촉하는 자는 가난해지고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습니다(6:9-11; 13:4; 19:24; 23:33-34). 그러나 손을 부지런히 움직이고 개미처럼 미리 준비하고 일하는 자는 원하는 바를 풍족하게 얻게 됩니다(6:6-8).

5절에서는 다시 언어생활로 돌아가 정직한 말을 권면하고, 6절에서는 의로운 행동을 권합니다. 정직한 자는 거짓말을 미워하지만 거짓말하는 자는 양심도 없고 이기적이고 추악한(‘행위가 흉악하여’로 번역됨) 자이므로 결국 수치를 당하게 됩니다.

2, 3절에서 언급했듯이, 말에서 마음의 태도를 엿볼 수 있으며 어떤 말을 하느냐에 따라 그 대가를 치르게 됩니다. 또한, 삶을 살아가는 방식과 그 과정에 있어 정직한 말을 포함하여 정의와 완전함을 추구해야 합니다. 정의가 온전한 자를 보호한다는 말은 정의롭게 말하고 행동해야 어떤 일을 당했을 때 두려울 것이 없고 감출 것이 없어 무죄로 판명이 나듯 마땅한 보상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불의와 부정과 같은 악을 추구하는 자는 죄인으로 타락하여 결국 패망하고 말 것입니다.

9절은 의인과 악인의 빛을 대조하는 금언입니다. 여기서 ‘빛’이나 ‘등불’은 ‘생명’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욥 3:20). ‘의인의 빛이 즐거워한다(‘환하게 빛난다’로 번역됨)’는 말은 그의 삶에 즐거움과 만족이 지속되며 풍요로움이 점점 더해간다는 뜻입니다. ‘악인의 등불이 꺼진다’는 말은 악인의 삶에 질적으로 풍요로운 불꽃이 타오르지 못하고 결국 꺼지고 만다는 의미입니다(욥 18:5; 21:17).

10절은 1절의 훈계에 대한 유익을 다시금 상기시키는 금언입니다. 권면을 듣는 자는 겸손하고 자신을 돌아볼 줄 알며 남의 의견을 수렴하여 적절한 선택을 할 줄 아는 지혜가 있습니다. 그러나 훈계를 듣기 싫어하는 자는 남의 의견 자체를 업신여기고 자기 생각을 남보다 더 낫게 여기므로 교만하여 필요 없는 다툼을 일으킵니다.

 

부와 재물(7-11)

겉모습만 보고 쉽게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부자인 것처럼 자랑하지만, 실제로는 가진 게 하나도 없는 사람도 있고, 가난한 것처럼 실제로는 부자인 사람도 있습니다. 내실 있는 알찬 삶이야말로, 겉치례를 중시하는 시대정신을 거스르는 삶입니다. 이렇게 재물은 사람의 부귀를 나타내는 척도도 되지만, 근심과 협박의 근거도 될 수 있습니다.

7스스로 부한 체하여도 아무 것도 없는 자가 있고 스스로 가난한 체하여도 재물이 많은 자가 있느니라 8사람의 재물이 자기 생명의 속전일 수 있으나 가난한 자는 협박을 받을 일이 없느니라 9의인의 빛은 환하게 빛나고 악인의 등불은 꺼지느니라 10교만에서는 다툼만 일어날 뿐이라 권면을 듣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 11망령되이 얻은 재물은 줄어가고 손으로 모은 것은 늘어가느니라(7-11)

7절에 이르면 주제는 언어생활에서 경제생활로 변합니다. 특히 7-11절의 금언은 9, 10절을 제외하고 모두 재물이란 단어가 공통으로 나와 부와 가난의 척도, 재물의 영향력, 재물을 얻는 방법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먼저 7절은 실제로는 가난하면서 부자인 체하며 허세를 부리는 자가 있는가 하면 실제로는 부자인데도 부를 드러내지 않고 숨기거나 또는 검소한 삶을 사는 자도 있음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금언은 자신의 부나 가난을 그대로 드러내라는 뜻이 아니라, 부와 가난의 척도를 개인의 겉모습이나 행동으로 가늠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해줌으로써 빈부에 대한 잘못된 평가를 방지해줍니다.

8절에서는 부와 가난의 영향력에 대해 언급합니다. 재물이 많은 자는 때로 납치나 협박 등 범죄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물론 이런 위기의 때에 몸값을 지불할 수 있으므로 그 사람의 생명을 구할 수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가난한 자는 상대적으로 이러한 위기와 협박에서 대부분 자유롭고 안전할 때가 많습니다.

7, 8절에서 부와 가난의 현실적이고 상대적인 실체와 가치를 일깨워준다면, 이제 11절에서는 재물을 모으는 윤리적 방법에 대해 교훈합니다. 헛되이 모은 재물은 입김같이 사라지게 되지만 열심히 지속적으로 모은 것은 늘어갑니다.

 

마음의 소원과 말씀(12-13)

사람이 하나님을 떠난 후 자기의 소유로 자신의 가치를 과시하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재물에 대한 태도는 하나님에 대한 태도를 반영하는 중요한 척도가 됩니다. 재물을 의지하는 것과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은 양립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재물의 많고 적음에 따라서 사람을 평가하는 태도나 재물을 위해서 사람을 이용하는 대토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12소망이 더디 이루어지면 그것이 마음을 상하게 하거니와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은 곧 생명 나무니라 13말씀을 멸시하는 자는 자기에게 패망을 이루고 계명을 두려워하는 자는 상을 받느니라(12-13)

12절은 19절까지 한 단락을 이루는데, 이 단락의 처음과 마지막에 ‘소원’이란 단어가 공통으로 나오고 그 중간에는 훈계와 말씀에 관련된 금언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먼저, 12절에서는 소망이 지연되고 안 이루어질 때의 상실감과 소망이 이루어졌을 때의 만족감을 대조적으로 기술합니다. 지연되는 소망이나 이루어지지 않은 소망은 사람을 심리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피폐하게 만듭니다. 이와 반대로 성취된 소원은 생명 나무와 같이 심리적, 육체적으로 만족감과 활력을 제공해 줍니다.

13절은 다시 1절과 10절의 금언으로 되돌아가서 ‘훈계’를 대하는 반응에 따르는 결과를 밝힙니다. 여기서는 ‘말씀’과 ‘계명’(명령)이라는 단어가 사용되어 일차적으로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런데 이 단어들은 잠언에서 아버지의 ‘교훈’ 즉, 1절의 훈계나 ‘꾸지람’, 10절의 권면과 대치될 수 있는 말입니다. 이는 아버지가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로서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을 기초로 하여 훈계와 권면의 말을 전하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경외하며 실행하는 자는 그에 따른 보상을 받지만, 말씀을 멸시하는 자에게는 패망이 기다립니다.


흐르는 맑은 시냇물의 근원이 작은 옹달샘이듯, 우리의 무성한 말의 근원은 우리의 마음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마음의 정원을 잘 가꾸는 것이야말로 풍성한 말의 축복을 위한 근원입니다. 마음의 옹달샘을 생명의 말씀으로 채우십시오. 생명의 성령으로 채우십시오. 그때에 마음의 샘에서 생명의 말들이 흘러나와 인생을 살리고 교회를 살리고 이 땅을 살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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