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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14-01)


지혜자와 우매자의 대조한 지혜

잠언 14장 1-19절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바르나 그 길이 반드시 사망의 길(12)이라는 말씀 앞에 멈추어봅니다. 사람이 보는 눈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이는 사람 자체의 한계이기도 합니다. 내 삶을 헛되이 하는 일, 내 죽음마저 헛되이 하는 일, 그 출발은 자신의 한계를 깨닫지 못하는 데 있습니다.

 

인간의 감정이나 생각, 언어와 행실, 삶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은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며 이해하기에 복잡하고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으로서 무지와 나약함을 인정하고, 삶의 질서뿐 아니라 삶의 무질서도 주관하시는 하나님만을 경외하고 신뢰해야 합니다.

 

지혜자와 우매자의 말(1-6)

지혜의 길의 정당성을 주장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만들어내는 결과 때문입니다. 그 출발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과 멸시하는 것이며, 그 끝은 생명의 번성, 그리고 패망과 죽음입니다. 그 삶의 방식은 정직과 깨끗함, 거짓과 더러움 등으로 명확히 구분됩니다. 우리가 취할 태도는 분명합니다. 미련한 자의 앞을 떠나는 것입니다.

1지혜로운 여인은 자기 집을 세우되 미련한 여인은 자기 손으로 그것을 허느니라 2정직하게 행하는 자는 여호와를 경외하여도 패역하게 행하는 자는 여호와를 경멸하느니라 3미련한 자는 교만하여 입으로 매를 자청하고 지혜로운 자의 입술은 자기를 보전하느니라 4소가 없으면 구유는 깨끗하려니와 소의 힘으로 얻는 것이 많으니라 5신실한 증인은 거짓말을 아니하여도 거짓 증인은 거짓말을 뱉느니라 6거만한 자는 지혜를 구하여도 얻지 못하거니와 명철한 자는 지식 얻기가 쉬우니라 7너는 미련한 자의 앞을 떠나라 그 입술에 지식 있음을 보지 못함이니라 8슬기로운 자의 지혜는 자기의 길을 아는 것이라도 미련한 자의 어리석음은 속이는 것이니라(1-8)

1절은 지혜로운 자의 집 짓는 주제를 소개합니다. 지혜로운 여인이 집을 짓는다는 말은 가족을 위해 자기의 시간과 재능과 지혜를 쏟는다는 의미입니다. 31:10-31의 여호와를 경외하는 현숙한 여인(‘힘의 여인’)에 대한 이상적인 묘사가 지혜로운 여인이 집을 세우는 예를 잘 보여줍니다. 그러나 미련한 여인은 게으르고 어리석으므로 있는 집조차 자신의 손으로 허물게 될 것입니다.

이 지혜의 여인이나 미련한 여인은 문자 그대로 지혜롭거나 미련한 여인을 의미하기도 하고 지혜와 우매 자체를 가리킨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이 금언이 말하려 하는 것은 한 가정을 제대로 세우는 데 있어 여호와 경외를 기초로 하는 정직, 근면, 언행 등을 실천하는 지혜가 필수라는 것입니다.

2절에서는 정직한 삶과 그릇된 삶을 사는 자들의 근본적으로 다른 점을 여호와에 대한 태도에서 찾습니다. 정직한 길을 가는 자는 여호와를 경외하므로 하나님의 성품과 말씀을 따라 자기도 정직과 의의 삶을 실천합니다. 그러나 여호와를 멸시하는 자는 그의 말씀 또한 업신여기므로 자기 멋대로의 삶을 삽니다.

이와 같이 잠언이나 성경에서 말하는 지혜는 지식적인 면만이 아니라 도덕적으로, 영적으로 항상 같은 방향을 추구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3, 5절은 지혜자와 우매자의 언어생활을 통해 2절에서 언급한 정직한 삶과 그릇된 삶을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지혜로운 자는 정직을 말하며 말이 필요한 때가 언제인지 분별하고 조절할 수 있는 절제력을 또한 그는 다른 사람을 존중하는 신실한 자이므로 오직 진실을 말하는 증인이 됩니다. 그러므로 정직한 언행을 통하여 자신과 남들을 위기에서 구하고 존귀를 얻습니다(10:21; 12:8, 13; 13:6). 그러나 미련한 자의 입에는 교만의 막대기가 있어 말을 함부로 하고 남에게 상처를 줍니다. 또한,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아무 때나 감정을 쏟아 표현하며 거짓말을 늘어놓아 자신에게 수치를 가져오고 남도 멸망시킵니다(10:31; 12:13, 16-20; 13:2-3),

4절에서는 소가 없으면 구유도 없으므로 처리할 일도 없고 몸이 편하지만, 소를 돌보고 잘 키우면 밭을 갈거나 추수 때와 곡식을 털 때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어 유익하다고 설명합니다. 1절의 집을 세우는 여인처럼 가축이나 집안의 돌봐야 할 것을 제대로 돌보면 본인과 가정에게 이득이 돌아온다는 뜻으로 볼 수 있습니다.

6-8절은 지식과 관련하여 거만한 자와 지혜로운 자를 구분합니다. 미련한 자는 종종 거만한 자 즉, 남을 조롱하고 업신여기는 자, 남의 훈계를 싫어하고 거절하는 자로 소개됩니다(9:7-9). 이처럼 거만한 자가 지식을 찾으려 해도 지식은 거기 없지만, 분별력 있는 자는 지식을 찾는 일이 쉽습니다. 이 지식은 판단력이나 통찰력을 의미하는데, 이런 지식에는 여호와 경외가 그 바탕에 깔려 있습니다. 미련한 자는 근본적으로 여호와를 신뢰하지 않으므로 바른 판단력과 통찰력을 가지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그의 말에는 여호와를 경외함으로써 얻게 되는 지혜와 선 대신 어리석음과 거짓이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기 생각이나 언행을 왜곡하고 쉽게 타협합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분별력 있는 자는 겸손함으로 지혜를 추구하므로 어떤 생각이나 언행에 있어서 여호와 경외가 깃들어 있는지를 쉽게 분별합니다. 또한, 자기가 현재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가고 있는 목적지가 바른지를 똑바로 파악합니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9-15)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닙니다. 지혜는 그 이면을 보고 더 멀리까지 보는 능력입니다. 속단하지 않고 판단을 유보하며 오늘의 행복이 내일의 불행의 실마리가 되고 오늘의 고난이 내일의 행복을 위해 꼭 필요한 톱니임을 아는 능력입니다. 눈앞의 이득을 위해 원칙을 포기하지 않고 오늘의 결과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능력이 지혜에서 나옵니다.

9미련한 자는 죄를 심상히 여겨도 정직한 자 중에는 은혜가 있느니라 10마음의 고통은 자기가 알고 마음의 즐거움은 타인이 참여하지 못하느니라 11악한 자의 집은 망하겠고 정직한 자의 장막은 흥하리라 12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 13웃을 때에도 마음에 슬픔이 있고 즐거움의 끝에도 근심이 있느니라 14마음이 굽은 자는 자기 행위로 보응이 가득하겠고 선한 사람도 자기의 행위로 그러하리라 15어리석은 자는 온갖 말을 믿으나 슬기로운 자는 자기의 행동을 삼가느니라(9-15)

9-15절의 대부분의 금언은 삶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현상에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이중성이 있음을 교훈합니다.

9절에서는 죄를 가볍게 보는 어리석음을 지적합니다. 죄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없는데도 미련한 자는 자신의 죄를 우습게 생각하는 착각을 합니다. 그러므로 이런 자는 타인이나 하나님과의 관계를 올바로 회복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정직한 자는 죄의 심각성을 깨달은 자이므로 죄를 지었을 때 사람들에게 용서를 구하여 관계를 회복하고 하나님께 회개하여 용서와 은총을 입게 됩니다.

10절의 금언은 사람의 마음의 진정한 상태를 알고 그 감정을 공유하기가 어렵다는 점을 설명합니다. 이 금언이 자기 마음의 고통과 즐거움을 아는 자는 자기 자신뿐임을 강조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보다는 자기 마음의 감정을 정확히 이해하고 아시는 분이 하나님뿐임을 기억하라고 넌지시 강조합니다.

11절은 1절의 ‘집’의 주제로 돌아가 악인들의 집과 정직한 자들의 집의 흥망을 대조합니다. 1절에서 지혜와 우매가 집을 세우고 허무는 요인이라고 말했다면 여기서는 경건과 불경건 또는 정의와 불의가 집을 흥하게 하고 망하게 하는 요인이라고 말합니다. 결국, 가정이나 공동체를 올바르게 세우기 위해서는 지식과 신앙과 윤리가 함께 역동적으로 작동해야 함을 말합니다.

12, 13, 15절은 9, 10절과 유사하게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며 안 보이는 부분에 대조적인 요소가 공존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12절에서는 ‘길’을, 13절은 ‘감정’을, 15절은 ‘말’을 주제로 들었습니다.

12절에서는 사람이 보기에는 바르나 사망으로 가는 길이 있고, 이와 반대되는 길도 있다고 소개합니다. 어느 누구도 자신이 가는 인생의 여정이나 남이 가는 인생의 여정의 끝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아십니다. 그러므로 다른 이의 길을 쉽사리 판단하고 평가하지 말아야 합니다. 동시에 내가 가는 길을 주의 깊게 살펴 한 걸음 한 걸음 하나님만을 신뢰하며 그분의 말씀을 따라가고 있는지 계속 확인해야 합니다.

이제 13절은 누군가의 웃음 속에도 슬픔이 담겨 있을 수 있고 즐거움의 끝이 근심과 눈물로 변할 수도 있음을 나타냅니다. 즉, 사람의 현재나 미래의 감정은 복잡하고 미묘하므로 겉모습만을 보고 사람을 평가할 수 없습니다. 또한, 현재의 모습으로 장래의 모습을 단정 짓기 어렵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15절에서는 아무 말이나 쉽게 믿는 분별력 없는 우매자의 모습과 자신의 행동을 살피고 삼가는 지혜자의 모습을 대조하여 외관상으로 드러나는 언어와 행실이 전부가 아님을 알고 주의하도록 교훈합니다. 이처럼 삶에 있어서 인간이 예측할 수 없는 부분을 언급하는 것은 삶의 복잡성과 인간의 한계성을 깨달아 겸손히 전지전능하신 하나님만을 더 의지하도록 하기 위함이며 남을 존중하는 자가 되게 하기 위함입니다.

 

지혜자와 우매자(16-19)

집을 세우거나 무너뜨리는 것, 집안을 망하게 하거나 흥하게 하는 것, 다 자기 손으로 하는 일입니다. 지혜로운 자는 몸을 삼가고 두려워할 줄 알기에 악을 피하지만, 어리석은 자는 자신만만하여 조심성이 없습니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자신은 물론이고 한 가정이 무너질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주님 앞에 무릎 꿇고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16지혜로운 자는 두려워하여 악을 떠나나 어리석은 자는 방자하여 스스로 믿느니라 17노하기를 속히 하는 자는 어리석은 일을 행하고 악한 계교를 꾀하는 자는 미움을 받느니라 18어리석은 자는 어리석음으로 기업을 삼아도 슬기로운 자는 지식으로 면류관을 삼느니라 19악인은 선인 앞에 엎드리고 불의한 자는 의인의 문에 엎드리느니라(16-19)

16-19절은 지혜자와 우매자, 의인과 악인의 본질과 보응에 대해 언급합니다.

16절은 1, 8절 등의 지혜로운 자의 특징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을 떠나는 삶을 사는 것임을 재확인해줍니다. 이에 반해 어리석은 자는 건방지고 교만하여 스스로를 최고로 여긴다고 지적합니다. 17절은 악인의 보응을 언급하는 금언으로서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고 악을 계획하는 자는 어리석음과 죄에 빠지며 다른 이로부터 미움과 수치를 당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18절은 6-8절과 유사하게 지식과 관련하여 지혜자와 우매자를 설명합니다. 우매한 자는 자신의 어리석음을 마치 유산처럼 상속받고 자기뿐 아니라 다른 이에게도 전달하려 듭니다. 그러나 지혜자는 지식을 최고의 가치로 여겨 면류관을 쓰듯 자기 머리를 지식으로 장식합니다.

19절은 의인과 악인의 상관관계를 설명합니다. 악인은 그의 행악으로 인해 결국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의인 앞에 굴복하며 그에게 은혜를 구하고, 의인에게 복종하는 처지가 될 것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자기 꾀에 속는 줄도 모르고 자신이 최고인 줄 압니다. 하지만 지혜 있는 사람은 불리해 보여도 하나님께 마음을 열고 가기에 무한 은혜를 공급받으며 나아갑니다. 당신은 자신의 가정을 어떻게 이끌고 가겠습니까? 하나님께 더 많은 지혜를 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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