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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26-02)

 


 미련한 말하는 어리석은 자를 통한 지혜

잠언 26장 17-28절


여러분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자신을 비춰볼 때 들춰지는 위선으로 인하여 고민해 보신 적이 있지 않으십니까? 특히 말씀을 맡은 목사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면서 들춰지는 자신의 위선으로 인하여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종종 늦게나마 말씀을 선포한 후 내주하시는 성령님께서 선포한 그 말씀대로 살아가고 있지 못한 자신의 모습을 들춰내실 때 양심에 찔림 속에서 위선적인 자신의 모습으로 인하여 자신이 한심해 보이고 낙심이 될 때도 있습니다.

 

본 단락은 이웃에 대해 거짓말을 하는 입술에 대하여 경고합니다. 18-22절에서는 거짓 입술을 가진 사람의 여러 모습을 보여주는데, 특별히 다른 사람에 대한 험담을 해서 결국 다툼을 일으키게 됨을 말합니다. 24-28절은 이런 거짓 입술을 가진 자의 내면에는 미움이 도사리고 있음을 가르칩니다. 결국, 그런 미움은 밝히 드러나게 되고 자기 자신이 그 미움과 거짓에 대한 책임을 지게 될 것입니다.

 

미련한 자의 실수(17)

지나가다 상관없는 일에 개입하는 것은 들개의 귀를 잡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입니다. 모든 문제를 다 자신이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오만입니다. 도리어 자신에게 해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17길로 지나가다가 자기와 상관 없는 다툼을 간섭하는 자는 개의 귀를 잡는 자와 같으니라(17)

17절은 인생에서 뜻하지 않은 실수를 할 수 있음을 지적합니다. 지나가다가 자기와 상관없는 다툼에 개입하는 것은 들개의 귀를 잡는 것 같아서 자신에게 해를 끼칠 뿐입니다. 17절은 18-28절 전체를 이끌어주는 서론으로, 인생에서 뜻하지 않은 실수 함으로써 심각한 피해를 스스로에게 입히지 말라는 화두를 던집니다. 본 단락에서 뜻하지 않은 실수란 마음에 미움을 품어서 거짓말을 하게 되고, 결국 스스로 해를 입는 거짓 입술을 가진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거짓 입술의 사람(18-22)

사람을 속이는 길은 다양합니다. 이웃을 속이고도 농담한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거짓의 사람입니다. 의도적으로 피해를 입히고도 그럴 의도가 없었다고 속이는 것입니다. 험담하는 자들도 다툼의 불을 타오르게 하는 장적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험담꾼들의 말은 별식 같아서 사람들로 하여금 그 말을 옮기고 싶게 만듭니다. 겉과 속이 다른 표리부동한 사람도 속이는 입술을 가진 어리석은 자입니다.

18횃불을 던지며 화살을 쏘아서 사람을 죽이는 미친 사람이 있나니 19자기의 이웃을 속이고 말하기를 내가 희롱하였노라 하는 자도 그러하니라 20나무가 다하면 불이 꺼지고 말쟁이가 없어지면 다툼이 쉬느니라 21숯불 위에 숯을 더하는 것과 타는 불에 나무를 더하는 것 같이 다툼을 좋아하는 자는 시비를 일으키느니라 22남의 말 하기를 좋아하는 자의 말은 별식과 같아서 뱃속 깊은 데로 내려가느니라(18-22)

18-22절에는 거짓말을 하는 사람에 대한 일련의 묘사합니다.

18절은 횃불을 던지면서 화살을 쏘아 사람을 죽이는 미친 사람에 대해 말하는데, 그는 바로 19절에 나오는 거짓 입술을 가진 자입니다. 이웃을 속이고도 ‘내가 농담한 것이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의도적으로 다른 이에게 말로 피해를 입히고서도 자기 원래 의도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고 거짓으로 해명하는 악한 사람인 것입니다. 이런 거짓 입술을 가진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화살을 쏘아 죽게 만드는 미친 사람이라고 오늘 본문은 강력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20절은 계속해서 이 거짓 입술을 가진 자를 묘사합니다. 불을 피우는 중에 땔감인 나무가 떨어지면 불이 꺼지는 것처럼, 다른 이를 험담하는 자가 사라지면 공동체 중에서 다툼이 없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험담꾼이 공동체의 다툼에 땔감 역할을 한다는 의미로서, 그런 자가 없으면 공동체에 평안과 사랑이 임하게 될 것임을 알려줍니다.

이런 험담꾼에 의한 다툼을 불에 비유하는 것은 21절에 계속해서 이어집니다. 다툼을 좋아하는 사람은 숯불에 숯과 같은 역할 혹은 불에 나무와 같은 역할을 한다고 말합니다. 역시 거짓 입술의 사람이 공동체의 분쟁을 심화시키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지적하는 것입니다. 험담꾼이 없다면 공동체에는 시비가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22절은 이러한 거짓 입술을 가진 자가 하는 말이 왜 공동체에 다툼을 일으키는지 그 이유를 설명합니다. 험담꾼의 말은 별식과 같아서 배 깊은 곳으로 내려가기 때문입니다. 험담꾼이 다른 이에 대해서 하는 말에 귀가 솔깃해지기 쉽고 그 말을 다른 사람에게 옮기고 싶은 악한 욕망이 우리 안에서 꿈틀댈 수 있다는 것입니다.

18-22절은 우리에게 다른 사람에 대해 거짓말을 하지 않도록 매우 조심해야 할 것을 알려줍니다. 첫째, 우리는 거짓말하는 사람이 되지 않도록, 거짓 증거 하는 사람이 되지 않도록 스스로 조심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17절에서 말한 실수를 범하게 되어서 스스로를 해치는 길로 가게 될 뿐입니다. 둘째, 우리는 거짓말하는 사람을 공동체에서 매우 주의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하는 말은 듣기에 달콤하고 솔깃하여 다른 사람에게 그 말을 옳기도 싶어지게 됩니다. 그러나 그런 말을 듣거나 그런 말을 옮기는 행위는 공동체에 다툼을 일으키고 그 다툼이 더 뜨겁게 타오르게 할 뿐입니다.

 

표리부동한 입술(23)

화려한 언변 뒤에 있는 악한 의도를 분별해야 합니다. 악한 사람들은 유창하고 부드러운 말 뒤에 그들의 의도를 감춥니다. 하지만 은 찌꺼기를 입힌 토기가 이내 그 저급함을 드러내듯, 악한 자의 숨은 의도도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악한 의도로 우리에게 접근합니다. 아첨하는 말 뒤에 가려진 그들의 의도를 잘 읽어내야 합니다.

23온유한 입술에 악한 마음은 낮은 은을 입힌 토기니라(23)

23절은 거짓 입술의 정체를 밝히는 구절입니다. 불타오르는 입술로 악한 마음을 감추는 사람은 나쁜 은을 입힌 토기와 같다고 말합니다. 나쁜 은이란 정제된 고급 은이 아닌 찌꺼기 은을 말합니다. 처음 볼 때는 은을 입힌 토기로 생각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찌꺼기 은을 입힌 토기였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진짜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보니 가짜인 것이 바로 ‘낮은 은을 입힌 토기’입니다. 이런 토기와 같은 자가 바로 불타오르는 입술과 악한 마음을 동시에 가진 자입니다. 불타오르는 입술이란 20-21절에서 말한 불타오르는 다툼의 이미지와 연결되는 표현으로서, 공동체에 다툼을 일으키는 입술을 말합니다. 다툼을 일으키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는 이미지입니다. 그러나 그 열심과 뜨거움 뒤에는 오직 악한 마음만 있을 뿐 인입니다. 그런 사람은 마치 가짜 은을 입힌 토기와 같습니다. 겉으로는 열심히 어떤 이웃에 대한 진실을 알려준다면서 이야기하지만, 그 뜨거운 열심은 가짜 토기의 ‘가짜 은’일 뿐입니다. 선한 마음이 아닌 악한 마음에서 나왔기 때문입니다. 23절이 보여주는 이런 거짓 입술을 가진 자의 악한 마음은 24절 이후의 미움의 마음과 연결됩니다.

 

미움과 거짓말(24-28)

속임수는 상대를 향한 나의 미움의 감정을 숨기는 데 쓰이기도 합니다. 겉으로는 괜찮은 척하면서 속임수를 씁니다. 하지만 그 미움은 대중 앞에서 곧 발각될 것입니다. 미움을 감추고 험담을 하면 도리어 자신에게 험담이 돌아와 결국 멸망이 찾아올 것입니다.

24원수는 입술로는 꾸미고 속으로는 속임을 품나니 25그 말이 좋을지라도 믿지 말 것은 그 마음에 일곱 가지 가증한 것이 있음이니라 26속임으로 그 미움을 감출지라도 그의 악이 회중 앞에 드러나리라 27함정을 파는 자는 그것에 빠질 것이요 돌을 굴리는 자는 도리어 그것에 치이리라 28거짓말 하는 자는 자기가 해한 자를 미워하고 아첨하는 입은 패망을 일으키느니라(24-28)

24절부터는 ‘미움’이라는 주제가 등장합니다. 이웃에 대해 거짓 증거 하는 사람의 내면에 미움이 뿌리박혀 있음을 보여줍니다. 24절은 ‘원수’에 대해서 말합니다. 원수의 원어는 ‘미워하는 자’로서, 마음에 미움을 품은 자입니다. 이런 사람은 입술로 꾸미고 좋은 것을 말하는 것 같지만 속에는 속임수를 품고 있습니다. 이것은 18-22절에서 기술한 거짓말하는 자의 전형적인 형태입니다. 거짓말의 내면에 미움이 있다는 것을 24절이 보여주는 것입니다.

25절은 그런 거짓말을 믿어서는 안 되는 이유를 말합니다. 그 마음에 일곱 가지 가증한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일곱 가지 가증한 것이라는 표현이 꼭 어떤 일곱 가지 실체를 가리키는 것은 아닙니다.

일곱이란 완전수로서, 가증한 것이 그 마음에 있다는 말을 강조하는 표현으로 이해하면 될 것입니다. 그 말이 듣기는 좋지만, 내면에는 가중한 것으로 가득하다는 의미입니다. 그런 미움을 품은 자의 결국은 어떠합니까? 그 결국이 26-27절에 묘사되어 있습니다. 26절은 미움을 품은 자가 속으로 그 미움을 감춘다고 할지라도 내면의 악함이 결국 회중 앞에 즉 공적으로 드러나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거짓말을 해서 다른 이를 해치려 하고 그 미움을 감추려고 노력할지라도, 언젠가는 만천하에 명백하게 진실이 드러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27절은 그렇게 거짓말을 하기 위해 노력하면 할수록, 그만큼 자기 자신에게 해를 끼치게 될 것을 말합니다. 함정을 파면 결국 자기가 빠지게 되고, 무거운 돌을 언덕 위로 밀어 올리려고 노력하면 결국 그 돌에 자기 자신이 깔려 피해를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미움을 품고 다른 이를 해하려고 하는 그 노력이 결과적으로 자신을 해치는 것입니다. 미움은 거짓말을 낳고, 거짓말은 스스로에게 파멸을 가져옵니다.

이러한 26-27절의 가르침을 28절이 명쾌하게 요약하고 정리합니다. 거짓말하는 자가 거짓말을 하는 이유는 그 해하려는 자를 미워하기 때문입니다. 28b절에서 ‘아첨하는 입’이란 부드럽고 매끄러운 입이라는 말로서 ‘아첨하다’라고 번역하기보다는 ‘듣기에 좋은’으로 번역하는 것이 좋습니다. 들을 때 귀가 솔깃해지는 말이라는 뜻입니다. 거짓말의 특성을 다시금 지적하는 표현입니다. 28b절의 가르침은 다른 사람을 험담하는 듣기 좋은 말은 결국 패망을 가져올 뿐이라는 것입니다. 28절은 미움으로 인해 다른 사람을 험담하는 이야기를 하는 행동의 결과는 멸망임을 선명하게 보여줍니다. 우리는 내면의 미움을 조심해야 합니다. 그 미움에 빠지게 되면 거짓말을 해서라도, 험담을 해서라도 그 사람에게 내 미움을 갚아주고자 하는 욕망이 생겨나게 되고, 그 욕망에 휘둘리면 험담꾼으로 전락하게 되며, 결국 그 험담이 나에게 돌아와 나 자신을 멸망시키게 될 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입술의 정직함을 지켜나가야 하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내면의 미움을 잘 다스려야 합니다.


기독교의 신뢰 회복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신뢰도는 우리의 정직한 삶을 통해 만회할 수 있습니다. 신뢰를 회복해야 갈등의 현장에서 갈등조정자로, 분열의 땅에서 평화를 만드는 자로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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