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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30-02)


세상 만물을 통해 얻는 지혜

잠언 30장 18-32절


하나님께서 만들어 놓으신 창조 세계에는 하나님의 섭리와 세상살이에 대한 교훈이 숨겨져 있습니다. 그 피조 세계를 보며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때로는 사람보다 지혜로운 미물들에게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들의 삶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에 감사하며 겸손히 살아야 합니다.

 

본 단락은 아굴의 잠언인 30장의 후반부로서 ‘~한 것 서너 가지’라는 공통된 형식을 사용합니다. 깨닫지 못하는 서너 가지(18-20), 세상이 견딜 수 없는 서너 가지(21-23), 지혜로운 것 네 가지(24-28), 잘 걷는 것 서너 가지(29-31)를 연이어 묘사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참된 권위 앞에 겸손해야 하며, 교만한 것이 곧 미련한 것임을 강조합니다(32-33).

 

깨닫지 못하는 서너 가지(18-20)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자취 없어져 버린 것이 있습니다. 사라져버리면 그 심각성을 잘 깨닫지 못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독수리의 자취, 뱀의 자취, 배의 자취입니다. 그리고 하나 더 있습니다. 음녀의 자취입니다. 음행을 저지르고도 감쪽같이 속여서 죄를 적발하지 못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지혜자는 음녀의 위험성을 깨닫고 멀리해야 합니다.

18내가 심히 기이히 여기고도 깨닫지 못하는 것 서넛이 있나니 19곧 공중에 날아다니는 독수리의 자취와 반석 위로 기어 다니는 뱀의 자취와 바다로 지나다니는 배의 자취와 남자가 여자와 함께 한 자취며 20음녀의 자취도 그러하니라 그가 먹고 그의 입을 씻음 같이 말하기를 내가 악을 행하지 아니하였다 하느니라(18-20)

18-20절은 심히 기이히 여기고도 깨닫지 못하는 서너 가지를 언급합니다. 이 구절에서 ‘깨닫다’라는 표현은 빈 동사인데, 잠언 전체 맥락에서 지혜를 얻게 된다는 의미를 가진 단어입니다. 즉, 18-20절의 서너 가지는 잠언이 알려주는 지혜와 합치되지 못하는 것들일 수 있습니다.

서너 가지 중에서 첫째부터 셋째의 경우는 모두 자연물입니다. 독수리의 자취, 뱀의 자취, 배의 자취입니다. 세 가지 모두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자취가 사라져버리는 경우입니다. 핵심이 되는 넷째 자취는 남녀가 함께한 자취인데, 특별히 음녀의 자취가 그렇다고 20절에 언급되어 있습니다. 음녀에게 유혹을 당한 자취는 금방 사라진다는 것인데, 사라지는 이유는 음녀가 거짓말을 일삼기 때문입니다. 먹고 나서 입을 씻어 흔적을 지우는 것처럼, 악을 행해놓고도 금방 악을 행하지 않았다고 거짓말을 하는 존재가 바로 음녀입니다.

18-20절은 음녀가 거짓말에 매우 능숙하기 때문에 음녀의 자취를 발견하기 어렵고, 따라서 그녀가 음녀인지 알기도 어려우며, 이런 음녀의 유혹을 물리치기도 어렵다는 것을 말합니다. 참된 지혜의 길을 가기 위해서는 음녀를 멀리해야 합니다.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서너 가지(21-23)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더 많은 것을 가지려 하다가 있던 것도 놓치게 됩니다. 무엇을 이루거나 가지고 싶다고 해도 먼저 하나님의 뜻이 어떠한지 생각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하나를 얻기 위해 고집부리다가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사람이 욕심을 부리는 이유 주 하나는 자신이 누구인지 제대로 깨닫지 못해서입니다.

21세상을 진동시키며 세상이 견딜 수 없게 하는 것 서넛이 있나니 22곧 종이 임금된 것과 미련한 자가 음식으로 배부른 것과 23미움 받는 여자가 시집 간 것과 여종이 주모를 이은 것이니라(21-23)

21-23절은 세상을 진동시키기 때문에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서너 가지를 말합니다. 자신에게 합당한 자리가 아닌 다른 이의 자리를 차지했기에,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경우들입니다.

첫째부터 셋째는 종이 임금이 된 것, 미련한 자가 음식으로 배부른 것. 미움받는 여자가 시집을 간 것입니다. 모두 자신이 합당하지 않은 행복을 얻은 경우들입니다. 이 중 둘째로 음식으로 배부른 것에 대한 언급은 30장의 큰 주제 중 하나인 ‘만족’과 연결됩니다. 따라서 21-23절은 자신에게 합당하지 않은 자리에 대해서 잘못된 욕심을 내는 것, 즉 ‘탐욕’의 주제를 다루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넷째는 여종이 여주인의 자리를 빼앗은 것입니다. 이것은 여종이 탐욕을 내어 여주인을 내쫓은 사건을 말합니다. 여기서 주목을 끄는 것은 18-20절에서 넷째가 음녀였는데, 21-23절의 넷째 역시 잘못을 행한 여인이라는 점입니다. 잠언 5-7장에서 음녀는 아버지에게 교훈을 받은 아들을 유혹하여 정한 배필을 버리고 자신을 따르도록 권합니다. 여종이 여주인의 자리를 빼앗은 것은 지혜를 버리고 미련함을 택하도록 하는 경우라고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가장 지혜로운 것 네 가지(24-28)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나 허락하신 자리에 만족할 줄 알아야 합니다. 감사를 잃어버리고 그 빈 곳에 욕심과 불만을 채우면 평안을 누릴 수 없습니다. 교만한 사람은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됩니다. 그러므로 교만이나 죄악으로 이끌리는 마음이 생기면 신속히 그 마음을 다스려야 합니다.

24땅에 작고도 가장 지혜로운 것 넷이 있나니 25곧 힘이 없는 종류로되 먹을 것을 여름에 준비하는 개미와 26약한 종류로되 집을 바위 사이에 짓는 사반과 27임금이 없으되 다 떼를 지어 나아가는 메뚜기와 28손에 잡힐 만하여도 왕궁에 있는 도마뱀이니라(24-28)

18-20절의 서너 가지와 21-23절의 서너 가지가 부정적인 내용을 다루었다면, 24-28절의 네 가지와 29-31절의 서너 가지는 긍정적인 내용을 다룹니다. 24-28절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것들을 언급합니다. 이 네 가지는 모두 자신의 약점을 극복한 경우들입니다. 힘이 없지만 먹을 것을 미리 준비하는 개미, 약한 종류지만 바위에 집을 지어 스스로를 보호하는 사반, 임금이 없지만, 함께 힘을 합해서 일하는 메뚜기, 그리고 손에 잡힐 만큼 작은 크기지만 가장 넓은 왕궁에서 살아가는 도마뱀이 바로 그런 경우들입니다. 21-23절에서 언급된 경우들은 자신의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서 부당한 수단을 동원했지만, 24-28절에 나타난 경우들은 자신의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서 정당한 수단을 동원하였습니다. 참 지혜로운 경우들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가장 잘 걷는 것 서너 가지(29-31)

종이 임금이 되고 미련한 자가 음식으로 배부르고 미움을 받는 자가 시집을 가는 것, 그리고 여종이 여주인의 자리를 빼앗는 것은 모두 질서를 깨뜨리고 전복하는 경우입니다. 자신에게 합당하지 않은 자리를 욕심내서 차지하는 탐욕입니다. 탐욕은 또 다른 탐욕을 부릅니다. 그렇게 차지한 자리는 타인에 의해 찬탈의 대상이 됩니다. 만족하지 못하면 죄를 범하고 추악해집니다.

29잘 걸으며 위풍 있게 다니는 것 서넛이 있나니 30곧 짐승 중에 가장 강하여 아무 짐승 앞에서도 물러가지 아니하는 사자와 31사냥개와 숫염소와 및 당할 수 없는 왕이니라(29-31)

29-31절에서는 가장 잘 걷는 서너 가지를 언급합니다.

‘잘 걷는다’는 것은 발걸음을 좋게 만들었다는 의미로서, 지혜로운 발걸음을 취했다는 뜻으로 볼 수 있습니다. 가장 강해서 그 어떤 짐승 앞에서도 뒤로 물러서지 않는 사자, 사냥개, 숫염소,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아무도 당할 수 없는 왕입니다. 사자, 사냥개, 숫염소는 모두 강한 힘을 가져서 자신의 걸음을 양보할 필요가 없는 동물들입니다.

마찬가지로 왕도 그 누구 앞에서도 자신의 걸음을 양보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왕의 걸음이 이 구절에서 의미하는 바는 무엇입니까? 참된 권위를 뜻한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잠언 전체 맥락에서 길 혹은 걸음은 지혜의 길을 뜻합니다(참조. 잠 4:10-27). 길을 좋게 한 왕이란 지혜를 구하여 진리의 길을 선택한 사람이 얻게 된 진실한 권위를 뜻합니다. 지혜의 길을 얻었기에 자신의 삶에서 당당할 수 있고 다른 사람들을 공동체 가운데로 이끌 수 있는 권위를 얻은 것입니다. 지혜를 얻은 최종적인 삶의 결과를 보여주는 묘사로 보는 것이 적절합니다.

 

미련함을 버리고 겸손하라(32-33)

미련한 일을 하지 말라는 권면으로 아굴은 잠언을 마무리합니다. 미련하여 스스로 높은 체하였거나 악한 일을 도모하였거든 손으로 자기 입을 가려 막으라고 합니다. 이는 타인의 분노를 사고 다툼으로 이어지고 결국 공동체의 질서를 깨뜨리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잘못할 수 있지만 더는 확산되지 않도록 절제하고 자제해야 합니다. 그것이 지혜입니다.

32만일 네가 미련하여 스스로 높은 체하였거나 혹 악한 일을 도모하였거든 네 손으로 입을 막으라 33대저 젖을 저으면 엉긴 젖이 되고 코를 비틀면 피가 나는 것 같이 노를 격동하면 다툼이 남이니라(32-33)

아굴의 잠언 마지막 구절은 미련한 일을 하지 말라는 권고입니다. 만약 미련해서 스스로 높은 척하였다면 그래서 악한 일을 행했다면 손으로 자신의 입을 가리고 입을 막는 것이 좋다고 가르칩니다. 그런 어리석은 말을 통해 다른 이의 분노를 사게 된다면, 결국 다툼이 일어나 공동체의 질서와 안정을 해치게 되기 때문입니다. 젖을 저으면 엉긴 젖이 되고, 코를 비틀면 피가 나는 것과 같이, 미련한 일을 저지르면 그에 합당한 책임을 져야 하므로, 미련한 말을 더 이상 하지 않도록 스스로 절제하고 통제하라는 것입니다. 32-33절을 요약하면 미련함을 버리라는 권고임을 알 수 있습니다.

 

30장의 해석과 적용

18-20, 21-23절은 음녀를 주의하라는 권고로 해석되고, 24-28, 29-31절은 지혜를 취하여 진실한 권위를 얻으라는 권고로 이해됩니다. 이제 32-33절은 미련함을 버려야 한다고 다시 한번 권합니다. 미련함을 버리고 지혜를 취하라는 권고입니다. 아굴의 잠언은 하나님의 말씀을 삶의 기준으로 삼고, 올바른 만족을 추구하며, 음녀의 길을 버리고 지혜의 길을 취하라고 가르칩니다. 매우 독특한 문예적 어휘와 형식들을 사용하였으나 그 전반적인 내용은 우리가 앞서 배워온 잠언 1-29장의 내용과 거의 일치합니다. 아굴은 다양한 자연물과 인생사의 경우들을 예로 언급하면서, 우리 인생의 행보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30장의 서른세 절을 통해서 요약 정리하여 보여줍니다. 아굴이 누구인지 우리는 알 수 없으나, 그의 세계관과 삶의 실천 원리들은 여호와 경외를 중심으로 하고 있음을 분명히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아굴의 잠언은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사람이 자신의 지혜 없음을 깨닫고 말씀을 중심으로 지혜를 발견하며 살아가는 행보를 보여줍니다. 인생의 여러 가지 경우들에 부딪치면서 때로는 깨닫지 못해서 괴로워하고, 때로는 견딜 수 없어 고통하며, 때로는 지혜를 발견하여 즐거워하고, 때로는 진정한 권위를 발견하여 그 앞에서 겸손을 배웁니다. 참 지혜의 길은 추상적인 이론의 길이 아닙니다. 아굴처럼 말씀의 원리를 일상생활을 통해서 실천해가는 하루하루의 행보가 바로 지혜의 길, 명철의 길입니다.


우리는 죄인이기에 여전히 하나님을 벗어나고 싶어 하고 마음대로 살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의 백성으로서 그분 안에 거할 때 평안을 누림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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