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세아(13-01)
구원의 하나님을 떠난 이스라엘의 비극
호세아 13장 1-16절
우상숭배는 단순히 형상에 대한 숭배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우상은 물질적인 것, 인간 관계, 심지어 자기 자신이 될 수 있습니다. 자신이 의지하는 것이 무엇인지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물질적 성공이나 사회적 지위, 자아 실현 등이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우상이 무엇인지 명확히 이해하고, 그것이 우리의 신앙을 방해하고 있는지 자문해 보시기 바랍니다.
- 이스라엘 지파 가운데 탁월한 지위를 자랑하던 에브라임이 우상숭배의 죄악에 떨어져 멸망을 자초한다. 사람들은 장인들이 만든 신상에 희생제사를 드리고 입을 맞추며 경배를 표한다. 가나안에 정착한 에브라임은 황당하게도 여호와께서 배불리 먹여주시자 교만해져 출애굽의 하나님 여호와를 잊었다.
에브라임의 우상숭배(1-3)
이스라엘의 타락은 공동체의 문제였습니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 서로의 신앙을 지지하고 격려하며 함께 성장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서로 기도하고, 말씀을 나누며, 신앙의 길을 함께 걸어가면서 공동체의 신앙을 강화하고 우상숭배의 유혹을 경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공동체의 지지와 격려는 우리가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고, 신앙을 더욱 굳건히 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1에브라임이 말을 하면 사람들이 떨었도다 그가 이스라엘 중에서 자기를 높이더니 바알로 말미암아 범죄하므로 망하였거늘 2이제도 그들은 더욱 범죄하여 그 은으로 자기를 위하여 우상을 부어 만들되 자기의 정교함을 따라 우상을 만들었으며 그것은 다 은장색이 만든 것이거늘 그들은 그것에 대하여 말하기를 제사를 드리는 자는 송아지와 입을 맞출 것이라 하도다 3이러므로 그들은 아침 구름 같으며 쉬 사라지는 이슬 같으며 타작 마당에서 광풍에 날리는 쭉정이 같으며 굴뚝에서 나가는 연기 같으리라(1-3)
에브라임 지파가 이전에는 존경을 받았지만, 바알을 숭배하면서 타락하게 되었음을 지적합니다. 그들의 죄로 인해 이스라엘은 파멸의 길을 걷게 되었고, 하나님은 그들이 안개처럼 사라질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이 구절은 우상숭배의 결과로 이스라엘이 무가치하게 될 것을 예언합니다.
(1) 고발:우상숭배(1-2)
축복받은 처음 지위에 대비시켜 북 왕국을 대표하는 에브라임 지파의 파멸적 현재를 고발합니다. 한때 에브라임이 말을 하면 사람들이 두려움에 떨 정도로 그는 이스라엘에서 뛰어났습니다(참조, 창 49:26; 신 33:16). 그러던 에브라임이 언제부턴가 바알을 섬김으로써 죽음을 자초했습니다. 어리석게도 바알과 음란을 즐김으로써 힘과 생명을 상실하고 죽음에 넘겨졌습니다. 이미 사망에 사로잡혔음에도 에브라임은 죄로부터 떠나지 않고 더욱 깊이 죄에 빠져들어갈 뿐이었습니다. 청동을 녹여 신상을 만들고 개인의 취향과 생각에 따라 우상에 금이나 은을 덧입혀 화려하게 꾸밉니다. 장인의 작품에 불과한 신상과 우상에게 희생제사를 드리고 송아지에 입을 맞춥니다(참조. 왕상 19:18). ‘송아지’는 벧엘의 송아지상보다는 이를 모방하여 작게 만든 송아지상을 가리킵니다. 가나안에서 송아지는 바알을 상징했기에 송아지 신상을 매개로 가나안적인 것이 이스라엘의 종교로 은밀하게 침투했습니다.
(2) 멸망의 심판(3)
우상숭배의 결과는 자손의 번성과 풍요로운 결실과는 전혀 반대였습니다. 여호와의 심판으로 에브라임은 아침 구름이나 이슬같이, 광풍에 날리는 쭉정이나 창문으로 새나 가는 연기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져야 합니다.
은혜를 배반당한 여호와(4-6)
하나님의 은혜를 배반하지 않기 위해서는 교회 공동체와의 연대가 중요합니다. 서로의 신앙을 격려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는 공동체 생활을 통해 하나님께 대한 신앙을 더욱 굳건히 할 수 있습니다. 서로를 기도하고, 말씀을 나누며, 신앙의 길에서 함께 걸어가는 것이 은혜를 지키는 데 도움이 됩니다.
4그러나 애굽 땅에 있을 때부터 나는 네 하나님 여호와라 나 밖에 네가 다른 신을 알지 말 것이라 나 외에는 구원자가 없느니라 5내가 광야 마른 땅에서 너를 알았거늘 6그들이 먹여 준 대로 배가 불렀고 배가 부르니 그들의 마음이 교만하여 이로 말미암아 나를 잊었느니라 7그러므로 내가 그들에게 사자 같고 길 가에서 기다리는 표범 같으니라 8내가 새끼 잃은 곰 같이 그들을 만나 그의 염통 꺼풀을 찢고 거기서 암사자 같이 그들을 삼키리라 들짐승이 그들을 찢으리라(4-8)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구원하신 유일한 하나님임을 상기시킵니다. 하나님은 광야에서 그들을 돌보셨지만, 이스라엘은 배부르고 번영하자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교만해졌습니다. 이로 인해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배반하게 되었음을 경고합니다.
(1) 출애굽과 광야의 하나님 여호와(4-5)
“애굽 땅에 있을 때부터 나는 네 하나님 여호와라”는 십계명의 서두(출 20:2)에 나오는 여호와의 자기소개와 거의 일치합니다. 출애굽과 십계명의 결합은 십계명의 준수가 이스라엘을 해방시킨 분의 명령이자 새로운 출애굽의 약속임을 시사해줍니다. 십계명의 준수를 통해 이스라엘은 거듭 역사 안에서 여호와를 이스라엘의 구원자로 경험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는 첫 번째 명령이 십계명의 대표로 사용됩니다. 이스라엘의 구원은 출애굽 사건을 통해 알게 된 하나님 여호와만 섬기면 보장됩니다. 이스라엘은 출애굽의 구원자 여호와를 생명에 적대적인 광야에서도 경험했습니다. 그분이 광야에서 이스라엘을 당신 백성으로 선택하셨기에, 이스라엘은 그분만 알아야 합니다.
(2) 고발:에브라임의 배은망덕(6)
역설적이게도 여호와의 축복이 에브라임을 교만하게 만들어 파탄에 이르게 합니다. 세 개의 동사(‘배가 불렀고’-‘교만하여’-‘잊었느니라’)가 점층적으로 연결되면서 에브라임의 배반을 배은망덕으로 고발합니다. 에브라임은 여호와께서 주신 가나안의 초장에서 꼴을 먹고 배가 불렀습니다. 그러나 황당하게도 여호와께서 주신 땅의 축복이 에브라임을 교만하게 만들었습니다. 척박한 광야에서 여호와께 순종하였던 에브라임이 가나안 땅에 들어와 농사를 지으며 물질적 풍요를 누리게 되자 구원자를 잊어버렸습니다. 에브라임은 여호와께서 주신 축복을 자신의 능력과 힘의 열매로 착각하고 자신을 역사와 삶의 주인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3) 멸망의 심판선언(7-8)
은혜를 배반한 에브라임에게 엄한 징벌이 선언됩니다. 굶주린 사자와 표범처럼 에브라임을 덮치실 것입니다. 새끼 잃은 곰의 비유는 심판이 얼마나 무섭고도 철저하게 집행될지를 보여줍니다. 여호와께서 새끼를 잃고 흥분하여 사납게 날뛰는 암곰처럼 에브라임을 덮쳐 염통 꺼풀을 찢어발기십니다. ‘염통 꺼풀’은 갈비뼈로 감싸 심장을 보호하는 흉곽을 가리킵니다. 배은망덕에 진노하신 여호와께서 에브라임의 가슴을 찢어 숨통을 완전히 끊어놓으십니다.
왕권의 종말(9-11)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세상의 권력이나 물질적 성공이 아니라, 참된 평안을 주십니다. 환경이나 상황이 어려울지라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을 구하고, 그 평안으로 삶의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걱정과 두려움을 아시고, 그분의 평안으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 주실 것입니다. 매일 기도를 통해 그 평안을 경험하고, 삶의 중심에 하나님을 두는 것이 중요합니다.
9이스라엘아 네가 패망하였나니 이는 너를 도와 주는 나를 대적함이니라 10전에 네가 이르기를 내게 왕과 지도자들을 주소서 하였느니라 네 모든 성읍에서 너를 구원할 자 곧 네 왕이 이제 어디 있으며 네 재판장들이 어디 있느냐 11내가 분노하므로 네게 왕을 주고 진노하므로 폐하였노라(9-11)
이스라엘이 자신들의 죄로 인해 스스로를 멸망으로 이끌었음을 지적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떠나 왕을 구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요청을 들어주셨으나 이제 그 왕들을 없애버릴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결국, 하나님만이 그들의 참된 구원자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1) 구원자를 대적하는 이스라엘(9)
유일한 구원자 여호와를 대적하고 왕권에 의존하는 이스라엘에게 멸망이 선포됩니다. 도와주시는 분을 적으로 만들었기에 멸망 외의 다른 길은 없습니다. 전쟁은 이스라엘이 그처럼 의지했던 왕과 재판장들의 무능력만 보여줄 뿐입니다. 제 목숨 보존하기에 급급할 뿐, 이들은 적의 침략으로부터 이스라엘을 구하지 못합니다. 완료시제 ‘패망하였나니’는 이스라엘의 멸망이 어떤 경우에도 되돌려질 수 없게 확정된 결정임을 보여줍니다. ‘너를 도와주는 나’는 다른 한편으로 패망 이후에라도 이스라엘이 여호와께 도움을 구한다면 도와주실 수 있음을 간접적으로 시사해줍니다. 이스라엘의 배반이 여호와의 질투를 유발했지만, 그럼에도 그분은 출애굽의 하나님이십니다.
(2) 여호와 진노의 둑인 왕권(10-11)
“전에 네가 이르기를 내게 왕과 지도자들을 주소서 하였느니라”는 사무엘상 8장의 왕정 도입과 관련된 말씀입니다. 왕정은 여호와의 선물이기는 하지만 은총의 선물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왕권은 하나님의 진노의 도구였습니다. 여호와께서 권력욕에 사로잡힌 자들의 모반을 허락해 사회를 폭력과 혼란에 빠뜨리게 하시고, 이를 통해 우상숭배에 빠진 이스라엘 사람들로 당신의 진노를 경험하게 하셨습니다.
어리석은 에브라임의 종말(12-16)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결코 가볍게 여기지 않으시며, 그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하십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또한 자비로우시며, 우리가 진정으로 회개하고 돌아올 때 용서해 주시고 회복시켜 주십니다.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죄악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돌아가기를 결단할 때, 그분은 우리를 받아주시고 새롭게 하실 것입니다.
12에브라임의 불의가 봉함되었고 그 죄가 저장되었나니 13해산하는 여인의 어려움이 그에게 임하리라 그는 지혜 없는 자식이로다 해산할 때가 되어도 그가 나오지 못하느니라 14내가 그들을 스올의 권세에서 속량하며 사망에서 구속하리니 사망아 네 재앙이 어디 있느냐 스올아 네 멸망이 어디 있느냐 뉘우침이 내 눈 앞에서 숨으리라 15그가 비록 형제 중에서 결실하나 동풍이 오리니 곧 광야에서 일어나는 여호와의 바람이라 그의 근원이 마르며 그의 샘이 마르고 그 쌓아 둔 바 모든 보배의 그릇이 약탈되리로다 16사마리아가 그들의 하나님을 배반하였으므로 형벌을 당하여 칼에 엎드러질 것이요 그 어린 아이는 부서뜨려지며 아이 밴 여인은 배가 갈라지리라(12-16)
이스라엘이 죄악으로 인해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임을 경고합니다. 그들의 죄악은 쌓였고, 하나님은 그들을 무자비하게 벌하실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특히 그들의 거짓된 안전과 번영이 파괴될 것이며, 심판을 피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1) 마지막 기회를 상실한 에브라임(12-14)
여호와께서 에브라임에 대한 모든 기대를 거두십니다. 더 이상의 기다림도, 책망도, 경고도, 위협도 아무 의미가 없어졌습니다. 마치 중요한 문서나 값진 물건을 잘 묶어 안전한 곳에 보관해놓는 것처럼 여호와께서 에브라임이 가나안에 정착한 이후 범한 불의와 죄를 잘 싸서 따로 보관하십니다. 에브라임의 죄는 재고할 여지가 없어졌습니다. 너무도 많은 죄악이 수집되었기에 또 다른 증거가 불필요해졌습니다. 저지른 악한 죄에 대한 판결만 남아 있을 뿐입니다. 개역개정의 13절 번역은 일부 불충분합니다. ‘그를 위한 해산의 진통이 와도, 그는 어리석은 아들이다. 때가 되어도 그는 자궁 입구로 나오지 않는다.’ 출산의 진통이라는 비유를 통해 에브라임의 어리석음을 고발합니다. 원래 출산의 진통은 해산하는 여인이 경험하는 고통이지만 여기서는 태아에게 적용됩니다. 자궁의 문이 열리고 해산의 진통이 시작되었는데도 자궁 안에 있는 아이가 나오려 하지 않습니다. 어리석은 에브라임은 목숨을 건질 수 있는 마지막 기회마저 놓쳐버립니다. 죽는 순간까지 여호와의 손을 뿌리치는 에브라임에게 구원의 문이 최종적으로 닫힙니다. 14절 전반절은 문맥에 따라 수사적 의문문으로 옮겨야 합니다. “내가 그들을 스올의 권세로부터 속량해야 하겠는가? 내가 그들을 사망으로부터 구속해야 하겠는가?” 여호와께서 이제 구속자의 역할이 끝났음을 선언하십니다. 그분은 오직 죽음의 길로 내닫는 에브라임을 스올의 권세로부터 속량해야 할 어떤 동기나 이유도 찾지 못하십니다. 그분은 지금까지의 구원 노력을 포기하시고 어리석은 에브라임을 사망에게 넘겨주십니다. 사망이 역병(흑사병)으로 에브라임을 멸망시켜 스올로 데려갈 것을 허락하십니다. 마지막 문장 “뉘우침이 내 눈 앞에서 숨으리라”는 여호와의 심판 결정이 취소될 수 없음을 선언적으로 보여줍니다. 에브라임에게 더 이상 연민을 느끼지 않으실 것입니다.
(2) 사마리아의 멸망(15-16)
주전 733년 앗수르의 침략으로 온 나라가 전화에 휩싸이기는 했지만, 다른 지파들에 비해 에브라임은 전쟁의 피해를 상대적으로 적게 받았습니다. 앗수르의 직접적인 공격으로부터 벗어나 있었던 에브라임은 다른 지파들보다 비교적 빠르게 전란의 상처를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안심하기에는 이릅니다. “광야에서 일어나는 여호와의 바람”이 불어올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보내신 동풍이 근원과 샘을 말려 에브라임을 죽입니다. 보물 창고에 쌓아둔 모든 값진 기구가 약탈을 당하고, 남자나 여자나 아이나 할 것 없이 모두 무자비한 살육에 넘겨집니다. 사마리아는 여호와를 배반한 죄의 대가를 혹독하게 치릅니다.
우리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 교훈을 얻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잊고 교만해지는 것은 결국 파멸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 삶의 중심에 하나님을 모시고,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번영과 안전의 길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지금 이 순간, 우리 각자가 하나님 앞에 돌아와 회개하고, 그분을 다시 삶의 주인으로 모셔야 할 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며, 돌아오는 자를 기꺼이 용서하시고 새롭게 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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