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세아(11-01)
하나님의 아버지 사랑과 그리움
호세아 11장 1-11절
종종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실 때, 세상의 것들에 더 마음을 빼앗겨 그분의 사랑을 외면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시며, 우리를 그분의 품으로 부르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를 돌보시고, 우리를 사랑으로 인도하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때로 그 사랑을 잊고, 하나님을 떠나 다른 것들을 추구하곤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우리를 여전히 사랑하시며, 우리를 그분의 사랑으로 붙들고 계십니다.
- 여호와께 돌아감을 허락하지 않는 에브라임의 완악함과 무능력이 구속사를 파탄에 빠뜨립니다. 에브라임의 행위에 상응하여 여호와께서 진노하실 경우 에브라임은 (여호와를 알지 못했던) 출애굽 이전 단계로 돌아가야 합니다. 막다른 골목에 처한 여호와는 에브라임과의 관계를 완전히 청산하는 대신에 자기희생을 선택하십니다.
여호와의 사랑과 이스라엘의 배반(1-4)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애굽의 압박에서 구출하셨고, 그들에게 자유와 약속의 땅을 주셨습니다. 이는 단순한 구출을 넘어서 하나님의 사랑이 담긴 구속의 행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사랑을 행동으로 표현하셨고, 이스라엘은 그 사랑의 결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 사랑을 기억하고, 그 사랑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며,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1이스라엘이 어렸을 때에 내가 사랑하여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냈거늘 2선지자들이 그들을 부를수록 그들은 점점 멀리하고 바알들에게 제사하며 아로새긴 우상 앞에서 분향하였느니라 3그러나 내가 에브라임에게 걸음을 가르치고 내 팔로 안았음에도 내가 그들을 고치는 줄을 그들은 알지 못하였도다 4내가 사람의 줄 곧 사랑의 줄로 그들을 이끌었고 그들에게 대하여 그 목에서 멍에를 벗기는 자 같이 되었으며 그들 앞에 먹을 것을 두었노라(1-4)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어린 시절 애굽에서 구출되었음을 회상하시며, 그들을 사랑으로 양육하고 돌보신 것을 상기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사랑을 베풀었으나, 이스라엘은 그 사랑을 알지 못하고 우상 숭배로 배신했습니다. 그들의 불순종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들을 돌보고 인도하시려는 깊은 사랑을 표현하십니다.
(1) 아버지께 등을 돌리는 아들(1-2)
여호와께서 바로의 압제 아래 강제노역에 시달리던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해방시켜주셨습니다는 진술은 이스라엘의 원초적 신앙고백에 속합니다. 출애굽의 해방 사건을 통해 여호와는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은 그분의 백성이 됐습니다. 호세아는 출애굽 사건을 가족관계의 시각에서 새롭게 조망합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당신 아들로 불러내셨습니다. 출애굽 사건이 이스라엘을 양자로 선택한 여호와의 부성적 사랑을 보여주신 사적 사건이 됩니다. 출애굽 사건을 통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아버지가 되시고, 이스라엘은 그분의 아들이 됩니다. “어렸을 때”는 아직 제 힘으로 서지 못하고 누군가의 돌봄이 필요할 때를 가리킵니다. 시선을 끌 만한 매력이나 남다른 자질이 전혀 없었음에도 여호와의 일방적 사랑이 이스라엘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거의 시작부터 어긋났습니다. 이스라엘은 아버지의 보호와 인도를 거절하고 가나안에서 알게 된 바알을 따랐습니다. 개역개정은 모두 과거시제로 옮겼지만, 동사 ‘멀리하다’는 완료가, ‘제사하다’와 ‘분향하다’는 미완료가 사용됩니다. 이스라엘은 반복적으로 돌아왔다가 다시 떠난 것이 아니라 한 번 떠난 후로는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의 배교는 일시적 이탈이 아니었습니다. 의도적이며 지속적이었습니다.
(2) 아버지의 사랑(3-4)
여호와의 사랑은 출애굽의 구속사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그분은 애정과 헌신을 갖고 계속 에브라임을 돌보셨습니다. 그러나 에브라임은 보호와 인도를 받으면서도 여호와의 사랑을 전혀 깨닫지 못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가르치시고 돌보실 뿐만 아니라 아들을 고쳐주기도 하셨습니다. 여호와는 에브라임의 병을 고쳐주려 애쓰시지만 에브라임은 거절할 뿐이었습니다. 에브라임은 자신이 환자임을 알지 못했거나, 설혹 알았다 할지라도 여호와가 아닌 다른 곳에서 치료를 받으려 했습니다. 호세아서는 농부의 비유적 표상을 사용해 이스라엘에 대한 여호와의 애정 어린 돌봄을 기술합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줄 곧 사랑의 줄”로 에브라임을 이끄셨습니다. 농부가 줄을 당겨 소나 송아지를 제 길로 이끄는 것처럼 여호와는 아직 길에 익숙하지 못한 에브라임이 빗나가지 않고 바른 길을 가도록 계속 관심을 갖고 이끌어주셨습니다. ‘사람의 줄’과 ‘사랑의 줄’에서 때로는 율법과 예언자를 보기도 하지만, 아마도 에브라임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인간적이고도 애정이 넘치는 방법으로 인도하셨음을 시사해주는 것 같습니다. 또 여호와는 에브라임에게 “그 목에서 멍에를 벗기는 자 같이” 되셨습니다. 팔레스티나에서 농부는 보통 소 두 마리에 멍에를 씌우고 밭일을 한 후에 일이 끝나 집으로 돌아오면 목에서 멍에를 벗겨 편히 쉬면서 꼴을 먹을 수 있게 해줍니다. 농부가 가족의 일원처럼 소를 아끼고 돌보듯이 여호와께서 에브라임을 정성껏 보살펴주셨습니다.
심판의 선고(5-7)
이스라엘의 불순종으로 인한 결과를 통해 우리는 불순종이 가져오는 파괴적인 결과를 이해해야 합니다. 회개와 순종의 삶을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그분의 뜻에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께 돌아오고, 그분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이해하고,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께 순종하며 회개하는 자세를 가져야 함을 배울 수 있습니다.
5그들은 애굽 땅으로 되돌아 가지 못하겠거늘 내게 돌아 오기를 싫어하니 앗수르 사람이 그 임금이 될 것이라 6칼이 그들의 성읍들을 치며 빗장을 깨뜨려 없이하리니 이는 그들의 계책으로 말미암음이니라 7내 백성이 끝끝내 내게서 물러가나니 비록 그들을 불러 위에 계신 이에게로 돌아오라 할지라도 일어나는 자가 하나도 없도다(5-7)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미래를 예언하시며, 그들이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고 아시리아의 지배를 받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십니다. 이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우상을 숭배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불순종과 회개하지 않는 태도로 인해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선언하시며, 그들의 경향성을 지적하십니다.
(1) 앗수르에 의한 멸망(5-6)
아버지의 사랑과 호의를 짓밟은 배은망덕한 아들 에브라임에게 징벌의 심판이 선포됩니다. 서두의 ‘애굽 땅으로 돌아가지 못함’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불분명합니다. 아마도 애굽에서 도움을 찾으려는 자들에게 주는 경고의 말씀 같습니다. 여호와께로 돌아오기를 거절하고 애굽으로 돌아가려 한다면, 에브라임은 앗수르의 종살이를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돌아오기를 완강히 거절한 에브라임은 전쟁의 참혹한 재앙에 떨어집니다. 성읍들이 여호와께서 보내시는 칼로부터 백성을 안전하게 지켜주지 못합니다. 성의 가장 약한 곳이 빗장을 걸어 닫아놓은 성문이기에 일반적으로 공성은 성문에 집중됩니다. 적이 미친 듯이 칼을 휘두르며 성문을 낍니다. “그들의 계책”은 아마도 적의 침략에 대비해서 세워놓은 동맹정책이나 방어계획과 같은 정치적군사적 계획을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에브라임의 맹목적 거절에 여호와께서 탄식하십니다. “내 백성이 끝끝내 내게서 물러가나니”는 문자적으로 옮기면 ‘내 백성은 내게서 떠나려는 일에만 매달린다’ 정도가 됩니다.
(2) 마지막 기회의 상실(7)
에브라임은 마치 여호와로부터 떠나는 것을 생존 목표로 삼은 것처럼 완강하게 그분으로부터 떠나가기만 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에브라임에게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돌아오라고 호소하시지만 아무도 반응하지 않습니다. 에브라임은 높은 곳에 계신 여호와께서 내미는 구원의 손길을 단호하게 뿌리치고 멸망의 길로만 내달렸습니다. 심판하시는 것 이외에는 다른 선택이 없어졌습니다.
진노를 억누르는 여호와의 사랑(8-9)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인자와 긍휼로 이스라엘을 회복하겠다는 약속을 하십니다. 이 약속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과 계획을 이루기 위해 어떻게 회복의 길을 열어두시는지를 보여줍니다. 회복의 약속은 하나님의 사랑이 어떤 상황에서도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하나님께서는 항상 회복의 기회를 제공합니다. 하나님께서 제공하신 회복과 구원의 약속을 붙잡고, 새로운 시작을 위해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8에브라임이여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이스라엘이여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내가 어찌 너를 아드마 같이 놓겠느냐 어찌 너를 스보임 같이 두겠느냐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돌이키어 나의 긍휼이 온전히 불붙듯 하도다 9내가 나의 맹렬한 진노를 나타내지 아니하며 내가 다시는 에브라임을 멸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하나님이요 사람이 아님이라 네 가운데 있는 거룩한 이니 진노함으로 네게 임하지 아니하리라(8-9)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향한 깊은 사랑과 자비를 보여주십니다. 그들을 멸망시키지 않기로 결심하시며, 자신의 거룩함으로 인해 극진한 긍휼을 베푸십니다. 이 구절은 하나님께서 죄악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용서하고 회복시키려는 마음을 나타냅니다.
(1)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8)
비극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려야 하는 마지막 순간에 여호와에 의해 극적 반전이 이뤄집니다. 이스라엘이 되돌아오는 것은 불가능해졌지만, 그렇다고 멸망의 심판이 여호와의 최종 답변은 아닙니다. 은혜를 배반한 에브라임은 하나님의 공의에 따라 영원한 멸망에 넘겨져야 하지만,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이 공의의 진노를 억누르고 아들에게 무조건적인 구원 가능성을 열어줍니다. “내 마음이 내속에서 돌이키어 나의 긍휼이 온전히 불붙듯 하도다”는 아들 에브라임을 두고 심각한 내적 갈등에 빠진 아버지 여호와의 마음을 보여줍니다. “긍휼”(니후밈)은 ‘앞서 품었던 의도를 다시 거둬들이는 의지의 전환’과 관련된 단어입니다. 하나님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의지의 전환은 이스라엘을 심판하시려는 그분의 결정이 모든 면에서 정당함에도 이를 실행하지 않으시고 거둬들이시는 그분의 신비스러운 내적 전환을 가리킵니다. 이는 이스라엘의 태도와 상관없이 하나님 안에서 일어나는 하나님의 자기극복이기도 합니다. 부정부사 ‘아니’를 네 번 사용하면서 결정된 심판의 취소를 장엄하게 선포합니다. 배반한 에브라임을 진멸하시려는 여호와의 진노가 그분의 사랑에 의해 극복됩니다. 완전한 멸망으로부터 에브라임을 구원하기 위해 여호와께서 자신의 심판 의지를 거슬러 행동하십니다. 심판 포기에 관한 이유나 배경은 달리 제시되지 않습니다.
(2) 내가 하나님이요 사람이 아님이라(9)
단지 그분의 본질에 근거하여 선언적으로 선포됩니다. “내가 하나님이요 사람이 아님이라.” 절대주권과 절대자유의 선언입니다. 행위와 보응의 상관관계는 공의의 전제이지만, 여호와는 이러한 윤리적 원칙에 구속당하지 않으십니다. 여호와는 공의를 판단하시는 최고의 재판관이지만, 공의에 종속당하지 않으십니다.
흩어진 자들의 귀환(10-11)
우리가 죄로 인해 하나님을 떠났을지라도,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를 다시 받아주시며, 우리의 삶을 회복시켜 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거하는 삶은 평안과 안전이 약속된 삶입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을 하나님께서는 주시며, 그분의 집에서 우리는 참된 안식과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다시 그분의 품으로 돌아와 함께 살기를 간절히 원하십니다.
10그들은 사자처럼 소리를 내시는 여호와를 따를 것이라 여호와께서 소리를 내시면 자손들이 서쪽에서부터 떨며 오되 11그들은 애굽에서부터 새 같이, 앗수르에서부터 비둘기 같이 떨며 오리니 내가 그들을 그들의 집에 머물게 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10-11)
유배의 심판을 전제하는 이 단락은 심판포기 선언이 사랑에 의한 공의의 극복이지, 공의를 무시하는 임의적 결단이나 변덕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에브라임에 선포된 심판이 무효화한 것은 아닙니다. 에브라임과 관계를 정리하시려는 여호와의 의지가 변경되었을 뿐입니다. 여호와께서 포기하신 것은 심판 자체가 아니라 관계의 단절입니다. 출애굽에서 시작된 관계가 회복불능의 파탄에 직면했지만 그분은 포기하지 않으시고 출발점에서 새롭게 시작하십니다. 사자처럼 에브라임을 덮쳐 갈기갈기 찢으셨던(5:14; 13:7) 여호와께서 죽음에 떨어진 당신 자녀들을 위해 다시사자처럼 포효하십니다. 첫 번째 출애굽 때 기사와 이적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셨던 여호와가 이번에는 자의 포효로 유배민들을 구출하십니다. 북서쪽 지중해 연안과 애굽과 앗수르로부터 자녀들을 인도해 내려서 다시 제 집으로 돌아가 살게 하십니다.
호세아 11:1-11절은 하나님의 깊은 사랑과 그리움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아버지의 사랑으로 돌보시고, 우리가 그분을 떠날 때에도 여전히 우리를 그리워하시며, 돌아오기를 기다리십니다. 우리의 잘못된 길에서 돌이켜 하나님께로 돌아갈 때, 우리는 그분의 자비와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며 그분께로 돌아가는 결단을 내리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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