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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아(10-01)


심판과 회복의 하나님

호세아 10장 1-15절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때, 오히려 그 축복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할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합니다. 물질적 풍요나 성공이 하나님을 잊게 만들 수 있으며, 그 결과는 파멸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공의로우시며, 우리가 우상화한 모든 것들은 결국 무너질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심판받은 것은 하나님을 버리고, 불의와 폭력을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심판은 우리가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더 사랑할 때 받을 수 있는 경고입니다.

 

  • 송아지가 여호와의 자리를 차지하면서 하나님의 집이었던 벧엘이 죄악의 소굴인 벧아이되고, 그 영향으로 이스라엘의 종교와 왕정도 여호와를 떠납니다. 제의는 번성하지만, 여호와는 부재합니다. 여호와를 두려워하지 않는 왕권은 아무 유익도 가져다주지 못합니다. 하나님 백성이 송아지의 백성이 되어 송아지와 함께 수치를 당합니다.

 

제의의 고발과 심판(1-8)

우리 삶 속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이 오히려 우리를 교만하게 만들고, 하나님을 잊게 만드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와 축복을 감사히 여기고, 그분께 더 가까이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보다 다른 것들을 의지하고, 세상의 가치를 쫓아가면 결국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참된 보호자이시며, 그분께 돌아가야 합니다.

 

1이스라엘은 열매 맺는 무성한 포도나무라 그 열매가 많을수록 제단을 많게 하며 그 땅이 번영할수록 주상을 아름답게 하도다 2그들이 두 마음을 품었으니 이제 벌을 받을 것이라 하나님이 그 제단을 쳐서 깨뜨리시며 그 주상을 허시리라 3그들이 이제 이르기를 우리가 여호와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므로 우리에게 왕이 없거니와 왕이 우리를 위하여 무엇을 하리요 하리로다 4그들이 헛된 말 내며 거짓 맹세로 언약을 세우니 그 재판이 밭이랑에 돋는 독초 같으리로다 5사마리아 주민이 벧아웬의 송아지로 말미암아 두려워할 것이라 그 백성이 슬퍼하며 그것을 기뻐하던 제사장들도 슬퍼하리니 이는 그의 영광이 떠나감이며 6그 송아지는 앗수르로 옮겨다가 예물로 야렙 왕에게 드리리니 에브라임은 수치를 받을 것이요 이스라엘은 자기들의 계책을 부끄러워할 것이며 7사마리아 왕은 물 위에 있는 거품 같이 멸망할 것이며 8이스라엘의 죄 곧 아웬의 산당은 파괴되어 가시와 찔레가 그 제단 위에 날 것이니 그 때에 그들이 산더러 우리를 가리라 할 것이요 작은 산더러 우리 위에 무너지라 하리라(1-8)

 

이스라엘이 번영하면서 우상 숭배에 빠져 하나님을 배신했음을 지적합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죄악에 대해 심판을 내리실 것이며, 이스라엘은 두려움 속에서 우상들을 버리게 될 것입니다. 결국,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의지했던 산당들이 파괴되고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지 못할 것입니다.

 

(1) 제단과 주상(1-2,8)

 

역설적이게도 여호와의 축복이 이스라엘로 하여금 여호와를 잃어버리게 만듭니다. 이스라엘은 축복에 감사하여 제단을 많이 만들고 주상(기념기둥)을 아름답게 치장합니다. 이스라엘은 땅의 축복에 나름대로(!) 정성껏 응답하지만, 이들의 경건과 감사는 가나안의 제의적 틀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혼합주의에 물든 이스라엘에게 심판이 선포됩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이 당신께 만들어 바쳤던 제단을 쳐서 깨뜨리시고 주상을 허물어버리십니다. 죄악(아웬)의 소굴이 된 산당이 파괴되고 제사를 드리던 제단이 황폐해져 가시와 찔레로 뒤덮입니다. 생존 기반이 철저하게 파괴되기에 심판에서 살아남은 자들은 차라리 산과 작은 산에 있던 산당과 제단이 파괴될 때 함께 죽지 못한 것을 원망하며 죽기를 소망합니다.

 

(2) 왕권의 고발과 심판(3-4.7)

 

이스라엘의 종교가 여호와를 잃어버리고 제의라는 껍질만 붙잡고 있었던 것처럼 이스라엘의 정치도 여호와를 완전히 떠났습니다. 제단과 산당이 부서질 때 여호와를 두려워하지 않았던 왕권도 마찬가지로 그분의 징계에 떨어집니다. 여호와께서 심판하실 때 백성들은 왕권의 무능력과 한계를 분명하게 깨닫게 될 것입니다. 왕권이 가져다준 유익함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설혹 새로운 왕이 세워집니다 할지라도 달라질 것은 없습니다. 그들은 정치적 빈말이나 즐기며 거짓 맹세나 무의미한 조약을 남발하고 백성을 미혹하기만 할 뿐이었습니다. 독초가 밭이랑을 못 쓰게 만들듯이 왜곡된 재판이 이스라엘 사회를 속속들이 부패시켰습니다. 벧아웬의 송아지에게서 영광이 사라질 때 ‘사마리아 왕’도 멸망 당합니다. ‘사마리아 왕’은 벧엘의 송아지보다는 사마리아 왕궁의 왕을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예언자는 아마도 부정적 어감을 갖고 이스라엘 왕을 ‘사마리아 왕’이라 부른 것 같습니다. 사마리아의 정치가들이 당파적 이해관계에 따라 세운 왕일 뿐입니다. 홍수가 밀려오듯이 앗수르가 침략하여 에브라임 산지를 뒤덮을 때 왕은 나무에서 잘려 물에 떠내려가는 가지(거품)와 같은 신세가 됩니다.

 

(3) 송아지상(5-6)

 

예언자는 이제 벧엘의 송아지에게로 눈을 돌려 사마리아 국가종교의 핵심을 조롱하며 그 멸망을 선포합니다. 어리석게도 사람들은 벧아웬의 송아지 조각을 두려운 마음으로 경배합니다. 송아지 조각을 숭배하는 벧엘은 ‘죄악의 소굴’(벧아웬)일 뿐입니다. 5절 하반절은 다음과 같이 옮길 수 있습니다. “그(송아지의) 백성은 그(송아지) 때문에 슬퍼하고, 그(송아지의) 제사장들은 그(송아지의) 영광을 환호하리라. 그것(그 영광)이 그(송아지)에게서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사마리아 주민과 제사장들이 송아지 때문에 슬퍼하고 또 환호합니다. 이들은 여호와의 백성과 제사장들이 아니라, 송아지에게 속한 백성과 제사장들입니다. ‘슬퍼하다’와 ‘기뻐하다’는 바알의 풍요제의를 암시해줍니다. 벧아웬의 제의는 바알 제의일 뿐입니다. 벧아의 송아지는 숭배자들을 보호해주기는커녕 제 자신도 지키지 못하고 수치 가운데 사로잡혀 갑니다. 이스라엘은 파국을 모면하기 위해 나름대로 계획을 세우지만, 그 계획은 부끄러움을 가져다줄 뿐입니다.

 

멸망의 전쟁(9-15)

우리가 과거의 죄를 회개하지 않고 반복한다면,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죄를 직시하고 회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인내가 무한하지 않음을 상기시켜 줍니다. 우리가 죄를 짓고도 계속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것입니다. 지금이야말로 하나님께 돌아가야 할 때입니다.

 

9이스라엘아 네가 기브아 시대로부터 범죄하더니 지금까지 죄를 짓는구나 그러니 범죄한 자손들에 대한 전쟁이 어찌 기브아에서 일어나지 않겠느냐 10내가 원하는 때에 그들을 징계하리니 그들이 두 가지 죄에 걸릴 때에 만민이 모여서 그들을 치리라 11에브라임은 마치 길들인 암소 같아서 곡식 밟기를 좋아하나 내가 그의 아름다운 목에 멍에를 메우고 에브라임 위에 사람을 태우리니 유다가 밭을 갈고 야곱이 흙덩이를 깨뜨리리라 12너희가 자기를 위하여 공의를 심고 인애를 거두라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니 마침내 여호와께서 오사 공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 13너희는 악을 밭 갈아 죄를 거두고 거짓 열매를 먹었나니 이는 네가 네 길과 네 용사의 많음을 의뢰하였음이라 14그러므로 너희 백성 중에 요란함이 일어나며 네 산성들이 다 무너지되 살만이 전쟁의 날에 벧아벨을 무너뜨린 것 같이 될 것이라 그 때에 어머니와 자식이 함께 부서졌도다 15너희의 큰 악으로 말미암아 벧엘이 이같이 너희에게 행하리니 이스라엘 왕이 새벽에 정녕 망하리로다(9-15)

 

이스라엘 백성이 길갈에서 죄를 짓고 우상을 숭배하며,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음을 경고합니다. 그들의 불의한 행위로 인해 전쟁과 파괴가 닥칠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벌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백성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따랐기 때문에 그들이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결국,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떠난 대가로 멸망하게 될 것입니다.

 

(1) 두 가지 죄악(9-10)

 

호세아는 기브아 시대를 자기 시대의 예표로 사용하면서 현재의 악한 형편을 과거의 사건 안에 위치시킵니다. 기브아에서 공공연히 자행됐던 파렴치한 악행은 일과성의 범죄가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그 이후에도 하나님의 법을 유린한 기브아의 불법에 그대로 머물렀습니다. 기브아의 범죄는 그 이후 이스라엘이 자행한 모든 악의 뿌리가 됩니다. 길손을 접대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삿 19:15) 욕정에 사로잡혀 그의 소실을 강제로 끌어내 강간하여 능욕한(삿19:22-25) 기브아의 범죄는 과거가 아니라 진행 중인 현재에 속합니다. 패역한 기브아 사람들 때문에 지파들 사이에 전쟁이 일어났던 것처럼, 이스라엘의 범죄가 다시금 전쟁을 초래합니다. 기브아를 징벌할 때는 형제를 두둔하는 베냐민 지파에 맞서 이스라엘의 나머지 지파들이 모여(삿 20:11, 14) 전쟁에 나갔지만, 호세아 시대의 이스라엘을 징계할 때는 세상의 모든 민족들이 심판의 도구로 사용됩니다.

 

(2) 하나님의 실망(11-13a)

 

소의 비유적 표상을 사용해 에브라임의 처음과 나중을 대조적으로 기술합니다. 한때 에브라임은 여호와께 기쁨이었습니다(참조, 9:10a). 에브라임은 마치 길든 암소와 같아서 힘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타작하기를 좋아하였습니다. 지금은 ‘완강한 암소’(4:16)가 되었지만 에브라임은 한때 유능하고 쓸모 있는 암소였습니다. 원래 ‘배워 익힌’을 의미하는 “길들인”과 자발적 순종을 뜻하는 “좋아하나”는 선택의 정당성을 시사해줍니다. 에브라임은 처음부터 고집 센소가 아니었습니다. 여호와의 의지에 부응할 만한 자질과 배움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순종적이었습니다. 개역개정의 번역 “내가 그의 아름다운 목에 멍에를 메우고 에브라임 위에 사람을 태우리니”는 에브라임의 종살이를 말하는 듯하다. 원문을 문자적으로 옮기면 다음과 같습니다. “아름다운목 곁을 지나갈 때 나는 에브라임에게 쟁기를 끌도록 맘을 먹었다.” 암소 에브라임은 여호와의 시선을 붙잡기에 부족함이 없는 든든한 목덜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농부가 힘세 보이는 소를 만나면 그 소를 어디에 쓰면 좋을지 생각해보는 것처럼, 여호와께서도 에브라임을 만나자 먼저 그에게 맡길 과제를 찾으셨습니다. 타작마당에서 곡식을 밟고 있기에는 아까운 소였습니다. 에브라임은 여호와에 의해 가나안 땅을 개간하는 일에 투입할 만한 자질과 힘이 있는 소로 택함을 받았습니다. 소에게 해야 할 일이 있는 것처럼 유다와 야곱에게도 맡겨진 사명이 있었습니다. 가나안 땅을 경작하는 것이 이들에게 맡겨진 사명이었습니다. 여호와의 선택이 책임을 수반하는 특권임을 보여줍니다. 땅의 개간과 관련된 세 개의 동사는 역할 분담이 아니라, 경작의 전체과정을 보여줍니다.

가나안에 정착해 농사를 지으며 살게 될 이스라엘에게 여호와는 공의의 씨를 뿌리고 인애의 열매를 거두도록 권면하셨습니다. 풍성한 결실을 기대하며 곡식의 씨를 뿌리는 가나안 사람들과 달리 에브라임은 공의를 뿌리고 인애를 그 열매로 거둬야 했습니다. 열매로서의 인애는 여호와께서 주시는 구원의 선물이기에, “인애를 거두라”는 명령은 약속의 말씀이기도 합니다. 여호와의 의지와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갈 때 이스라엘은 하나님 백성으로 그분의 보호와 축복을 즐길 수 있게 됩니다. 또 이스라엘은 묵은 땅을 농경지로 개간해 씨를 뿌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부푼 기대는 고통스런 실망으로 끝납니다. 공의와 인애를 바라신 분께 이스라엘은 악과 죄와 거짓으로 응수하였다. 공의를 심는 대신에 악으로 밭을 갈고, 인애를 거두는 대신에 죄를 거두고, 여호와를 찾는 대신에 거짓 열매를 먹었습니다.

 

(3) 멸망의 길(13b-15)

 

악의 씨를 뿌리면 죄의 열매를 거둬야 하는 것처럼, 여호와를 찾지 않고 제 능력과 군사력에 의존하는 이스라엘은 멸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네 길”은 아마도 강대국 의존책이나 군사동맹을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이스라엘 왕은 전쟁이 시작되기도 전에 죽임을 당하고 여자와 아이들이 침략군의 무자비한 칼에 희생당합니다. 동시대에 잘 알려진 살만에 의한 벧아벨의 파괴처럼 처참하게 멸망합니다.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과 그 속에서 여전히 우리를 회복시키려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과거의 죄를 반복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주신 회개의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삶에서 불의와 거짓이 아니라, 정의와 사랑을 심고, 하나님의 길로 돌아서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심판하시지만, 그 목적은 우리를 다시 그분의 품으로 돌아오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우리가 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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