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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아(09-01)


하나님을 떠난 삶의 고통과 심판

호세아 9장 1-17절


 

우리는 하나님을 떠나 죄악에 빠진 이스라엘의 상태와 그로 인해 맞이할 고통을 깊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회복의 기회를 주시며, 진심으로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형식적인 예배에 그치지 않고, 하나님과의 진정한 관계를 회복하며 순종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을 중심으로 삼고, 그분의 뜻을 따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아야 합니다.

 

  • 예언자는 타작마당에서 초막절을 즐기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앞으로는 축제가 더 이상 없을 것을 선포합니다. 제의적으로 불결한 이방 땅으로 쫓겨날 것이기에 명절과 절기가 돌아와도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거나 축제의 모임을 가질 수 없을 것입니다. 초막절의 들뜬 분위기에 젖어있던 자들은 축제를 망쳐버린 예언자에게 욕설로 응답합니다.

 

축제의 끝(1-6)

하나님을 잊고 세상의 것에 의존할 때, 그들의 기쁨은 잠시일 뿐이고 영적인 공허와 혼란을 맞이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떠나 죄악에 빠지면 고난과 심판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회복의 기회를 주시지만, 이를 놓치면 영원한 멸망에 이르게 됩니다. 진정한 회개와 순종의 삶을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1이스라엘아 너는 이방 사람처럼 기뻐 뛰놀지 말라 네가 음행하여 네 하나님을 떠나고 각 타작 마당에서 음행의 값을 좋아하였느니라 2타작 마당이나 술틀이 그들을 기르지 못할 것이며 새 포도주도 떨어질 것이요 3그들은 여호와의 땅에 거주하지 못하며 에브라임은 애굽으로 다시 가고 앗수르에서 더러운 것을 먹을 것이니라 4그들은 여호와께 포도주를 부어 드리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바도 되지 못할 것이라 그들의 제물은 애곡하는 자의 떡과 같아서 그것을 먹는 자는 더러워지나니 그들의 떡은 자기의 먹기에만 소용될 뿐이라 여호와의 집에 드릴 것이 아님이니라 5너희는 명절 날과 여호와의 절기의 날에 무엇을 하겠느냐 6보라 그들이 멸망을 피하여 갈지라도 애굽은 그들을 모으고 놉은 그들을 장사하리니 그들의 은은 귀한 것이나 찔레가 덮을 것이요 그들의 장막 안에는 가시덩굴이 퍼지리라(1-6)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떠나 다른 신들을 숭배하며 죄에 빠졌습니다. 그들은 이방 제사에 참여하고, 여호와의 제사와 율법을 무시하며 죄를 계속 저지르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그들은 심판과 고난을 맞이할 것이며, 하나님은 그들의 악행에 대해 심판을 내리실 것입니다.

 

(1) 음행의 대가(1-3)

 

다시 결실을 얻게 된 이스라엘은 타작마당에서 열광적으로 춤을 추며 수확의 기쁨을 만끽합니다. 하나님 백성 이스라엘이 이방 민족들처럼 기뻐서 날뜁니다. 예언자는 이스라엘이 열광하는 수확의 기쁨에서 가나안의 풍요제의를 봅니다. 여호와의 축제가 바알의 축제로 변질되었음을 보고 이들이 기뻐하는 수확을 음행의 대가로 정합니다. 이스라엘은 해웃값을 위해서라면 아무에게나 몸을 파는 창녀와 같았습니다. 매음의 대가로 받은 해웃값(화대)을 하나님의 축복으로 간주하는 자들에게 예언자는 심판을 선언합니다. 2절을 문자적으로 옮기면 “타작마당과 술틀이 그들을 먹이지 못할 것이며 새 포도주는 그들을 속이리라”입니다. 이스라엘이 의존하는 타작마당과 술틀은 양을 오도하는 거짓 목자에 불과합니다. 이스라엘은 타작마당과 술틀에서 얻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즐기지 못하고 적에게 모두 빼앗길 것입니다. 여호와를 배반하고 이방신을 섬겨 얻은 풍요는 이스라엘의 것이 되지 못합니다. 수확한 곡식과 포도주를 빼앗기는 것은 심판의 서곡에 불과합니다. 가나안 땅이 여호와의 땅임을 잊어버린 이스라엘은 그분 백성이 아니기에 가나안 땅을 떠나야 합니다. 에브라임은 출발지인 애굽(11:1)으로 돌아가야 한다. ‘애굽으로 돌아감’은 출애굽에서 시작한 이스라엘의 구원사가 끝장났음을 의미합니다. 에브라임은 멸망을 당하고 사람들은 포로로 사로잡혀 갈 것입니다. 에브라임은 조상들이 애굽에서 종살이하였듯이 이제는 앗수르에서 종살이해야 합니다.

 

(2) 제의와 축제의 상실(3b-5)

 

여호와의 통치권은 가나안을 넘어 민족들에도 미치지만, 제의적 정결은 ‘여호와의 땅’ 가나안에서만 가능합니다. 우상을 섬기는 가나안 밖의 지역은 제의적으로 부정하고, 부정한 땅에서 살고 자라는 동식물도 마찬가지로 부정합니다. 유배민은 부정한 앗수르에서 부정한 음식을 먹어야 하기에 부정을 피할 수 없고, 따라서 거룩하신 여호와께 나아갈 수 없게 됩니다. 부정한 땅 앗수르에서 생산되는 곡식이나 포도주나 짐승은 모두 초상집(참조, 민 19:11 이하) 음식과 같아서 여호와께 드릴 수 없습니다. 호세아는 아주 파격적으로 제물을 초상집 음식에 비교합니다. 아마도 유배를 이스라엘 민족의 죽음으로 이해하는 것 같습니다. 내용상 애굽으로 돌아감과 유사합니다. 이스라엘이 지금 즐기고 있는 축제는 앞으로는 가능하지 않을 것입니다. 쫓겨난 이스라엘은 부정한 이방 땅에서 빼앗긴 초막절의 풍요로움과 기쁨을 고통스럽게 탄식할 것입니다.

 

(3) 폐허가 되는 에브라임(6)

 

일부는 유배를 벗어나 애굽으로 도망하겠지만, 그들에게 애굽은 무덤이 될 뿐입니다. 애굽은 그들을 모으고 놉은 그들을 장사할 것입니다. 역설적이게도 이스라엘은 구원사의 출발점이었던 애굽에서 구원사의 종말을 맞습니다. 주민들이 모두 쫓겨난 ‘여호와의 땅’은 폐허가 됩니다. 애써 모아놓은 재물은 모두 약탈당하고 찔레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축제의 즐거움이 넘쳤던 장막에는 가시넝쿨이 자랍니다. 유배민은 유배지 앗수르에서, 피난민은 피난지 애굽에서 멸망을 당하고, 여호와의 땅은 찔레와 가시넝쿨이 자라는 황무지가 됩니다. 출애굽으로 시작된 하나님 백성의 역사가 완전한 죽음으로 끝납니다.

 

형벌의 날(7-9)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죄와 불순종으로 인한 고난과 심판을 예고하시며, 이는 단순한 경고가 아니라 진지한 회개와 회복을 촉구하는 부르심입니다. 그들의 도덕적 부패가 심각하다고 보시고, 이를 바로잡기 위해 경고를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회복의 기회를 제공하시며 진심으로 돌아오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회복의 기회를 놓치면 결국 영원한 멸망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십니다.

 

7형벌의 날이 이르렀고 보응의 날이 온 것을 이스라엘이 알지라 선지자가 어리석었고 신에 감동하는 자가 미쳤나니 이는 네 죄악이 많고 네 원한이 큼이니라 8에브라임은 나의 하나님과 함께 한 파수꾼이며 선지자는 모든 길에 친 새 잡는 자의 그물과 같고 그의 하나님의 전에는 원한이 있도다 9그들은 기브아의 시대와 같이 심히 부패한지라 여호와께서 그 악을 기억하시고 그 죄를 벌하시리라(7-9)

 

이스라엘은 그들의 죄로 인해 형벌의 날이 다가오고 있으며, 이 날에는 고통과 혼란이 올 것이라는 경고를 받습니다. 그들은 악한 길로 가면서 스스로를 멸망에 이르게 할 것입니다. 형벌의 날에는 그들의 모든 희망과 기쁨이 사라지고, 고난과 심판이 임하게 됩니다.

 

(1) 예언자를 대적하는 에브라임(7-8)

 

이스라엘은 자신이 한 짓에 대하여 책임을 지고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7-9). 혼합주의에 빠져 음행을 즐기며 기뻐 떠들지만 곧 고통스런 현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당신을 생명과 구원의 하나님으로 알길 거절한 이스라엘에게 심판을 통해 당신을 알게 하실 것입니다. 예언자가 형벌의 날을 선포하자, 이스라엘은 격렬하게 반응합니다. ‘어리석은 놈’, ‘미친 놈’이라고 욕설을 퍼붓습니다. 예언자에 대한 이스라엘의 적대감은 이들의 죄악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줄 뿐이다. 8절은 문맥에 따라 다음과 같이 옮길 수 있습니다. “예언자는 나의 하나님과 함께하는 에브라임의 파수꾼이다. 새 잡는 자의 그물이 그의 길에 있고 그의 하나님의 집에(도) 증오가 있다”(ESV;NRS: NIV). 새 잡는 자가 그물을 쳐놓고 새가 걸려들길 기다리는 것처럼 대적들은 예언자의 길에 함정을 파고 그가 걸려들길 기다립니다. 여호와는 애굽과 앗수르로 가는 에브라임 위로 그물을 던져 하늘의 새처럼 낚아채시고(7:12), 에브라임은 예언자를 잡으려 그물을 놓습니다. “그의 하나님의 전”은 아마도 한때 예언자에게 우호적이었던 어떤 성소를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전에 예언자를 도와주었던 성소마저 그 사이에 적대적으로 바뀌어 그를 증오합니다. 도처에 대적들이 있어 생명마저 위협을 받지만,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을 알기에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거듭된 고발에도 불구하고 여호와를 떠나 음행을 즐기는 에브라임은 정욕에 사로잡혀 불의와 불법을 범한 기브아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삿 19-20장). 에브라임의 현재가 사사시대 말기에 비교되면서 부패가 호세아 시대의 일시적인 현상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2) 여호와의 응답(9)

 

여호와께서 부패한 에브라임에게 심판으로 응답하실 것입니다. 그분은 오래 참으시기는 하지만, 죄악을 마냥 내버려두시지는 않습니다.

 

에브라임의 멸망(10-17)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배반과 타락으로 인해 심판을 내리실 것이라고 경고하십니다. 이스라엘이 받은 축복과 기회는 그들의 죄로 인해 사라지고, 공의롭게 심판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회복의 기회를 주시지만, 이스라엘은 회개하지 않고 계속 죄악에 빠져 있습니다. 그들이 회복의 기회를 놓치면 영원한 멸망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십니다.

 

10옛적에 내가 이스라엘을 만나기를 광야에서 포도를 만남 같이 하였으며 너희 조상들을 보기를 무화과나무에서 처음 맺힌 첫 열매를 봄 같이 하였거늘 그들이 바알브올에 가서 부끄러운 우상에게 몸을 드림으로 저희가 사랑하는 우상 같이 가증하여졌도다 11에브라임의 영광이 새 같이 날아 가리니 해산하는 것이나 아이 배는 것이나 임신하는 것이 없으리라 12혹 그들이 자식을 기를지라도 내가 그 자식을 없이하여 한 사람도 남기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그들을 떠나는 때에는 그들에게 화가 미치리로다 13내가 보건대 에브라임은 아름다운 곳에 심긴 두로와 같으나 그 자식들을 살인하는 자에게로 끌어내리로다 14여호와여 그들에게 주소서 무엇을 주시려 하나이까 아이 배지 못하는 태와 젖 없는 유방을 주시옵소서 15그들의 모든 악이 길갈에 있으므로 내가 거기에서 그들을 미워하였노라 그들의 행위가 악하므로 내 집에서 그들을 쫓아내고 다시는 사랑하지 아니하리라 그들의 지도자들은 다 반역한 자니라 16에브라임은 매를 맞아 그 뿌리가 말라 열매를 맺지 못하나니 비록 아이를 낳을지라도 내가 그 사랑하는 태의 열매를 죽이리라 17그들이 듣지 아니하므로 내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시리니 그들이 여러 나라 가운데에 떠도는 자가 되리라(10-17)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배반하고 우상 숭배에 빠져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잊고 죄에 빠져 멸망의 길을 걷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죄로 인해 그들의 고통과 파멸을 선언하시며 회복의 기회를 주지 않으실 것입니다.

 

(1) 광야의 첫 만남(10a)

 

고발에 앞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처음 만났을 때의 기쁨을 회고하십니다. 광야를 지나는 목마른 여행자가 전혀 예기치 않은 곳에서 포도송이를 발견하고 기뻐하듯이 길을 가다가 우연히 무화과나무에 첫 열매가 열린 것을 보고 즐거워하듯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처음 만나셨을 때 그렇게 황홀해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뜻밖의 장소에서 발견한 값진 보물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무엇이 그분의 가슴에 사랑의 격정을 불러일으켰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여호와에 의한 이스라엘의 선택이 기적적 신비적 결합에 속함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듯합니다.

 

(2) 에브라임의 종교적 배반과 심판 선언(10b-14)

 

그러나 여호와와 이스라엘의 사랑은 가나안에 들어가기도 전에 삐걱대기 시작했습니다. 이스라엘은 바알브올에서 우상에게 몸을 줘 간음을 범했습니다. ‘몸을 드리다’(나자르)는 바알브올의 나실인이 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이스라엘은 바알과의 처음 접촉부터 자신을 전적으로 바알에게 내맡겼습니다. 부끄러운 우상을 선택한 에브라임에게 여호와께서 생명력과 생산의 박탈로 응답하십니다. 에브라임은 자식을 낳지 못할 뿐만 아니라, 어렵게 얻어도 전쟁이나 기근이나 질병으로 그마저도 빼앗길 것입니다. 후손이 끊어져 완전히 멸망하게 될 것입니다. 여호와의 엄중한 멸망 선언에 예언자가 개입합니다. 멸망이 여호와께서 결정하신 에브라임의 피할 수 없는 운명임을 확신하는 예언자는 심판의 고통이라도 줄여줄 것을 간구합니다(참조, 삼하 24:1225). 에브라임이 제 자식을 모두 살인자에게로 끌고 가야한다면, 죽음에 넘겨질 자식이 없는 부모가 덜 고통스럽게 멸망의 심판을 맞을 수 있을 것입니다.

 

(3) 에브라임의 정치적 배반과 심판 선언(15-17)

 

여호와께서 군주정체 도입부터 시작하는 에브라임의 정치적 배반을 고발하시며 심판을 선언하십니다. 여호와는 길갈에서 시작된 왕정을 처음부터 미워하셨습니다(참조. 삼상 11:14-15;13:7-15;15:10-33), 왕정은 처음부터 악이었기에 그 뿌리에서 자라는 것도 악행뿐이었습니다. 우상숭배의 경우처럼 정치적 배교도 멸망을 가져옵니다. 에브라임은 가나안(‘내 집’)에서 쫓겨나 민족들 가운데 떠도는 자가 됩니다. 미래의 회복을 기대할 수 없게 여호와께서 에브라임을 완전히 끊어버리십니다.


본문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을 떠나는 삶의 결과가 얼마나 참혹한지를 깊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난 결과로 겪은 고통과 심판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중요한 교훈이 됩니다.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소중히 여기고,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한 번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께로 돌아가며 회복과 구원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 우리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선택임을 명심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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