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세아(06-01)
진정한 회개와 하나님의 사랑
호세아 6장 1-11절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회복을 원하시며, 우리가 그분의 사랑에 응답할 때 놀라운 일들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회복의 약속을 믿고 적극적으로 나아갈 때, 우리에게 생명과 회복을 주십니다.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새벽같이 나타날 것”이라는 약속은 우리를 감싸고 우리의 삶을 새롭게 합니다. 진정한 헌신은 일상 속에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분의 뜻을 따르며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면 우리의 삶은 자연스럽게 그분의 뜻을 이루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 본문은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돌아와 회개하기를 촉구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회개를 원하시며, 그들을 치유하고 회복시키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회개는 일시적이고 진실하지 못했으며, 그들의 불순종과 죄로 인해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것임을 경고하십니다. 결국 하나님은 그들의 죄악을 심판하실 수밖에 없음을 선언하십니다.
에브라임의 회개(1-3)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면, 우리의 삶은 자연스럽게 그분의 뜻을 이루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는 기반이 되며, 이는 우리의 신앙 생활의 중심이 됩니다.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는 우리의 삶에서 많은 변화를 일으키고, 우리가 세상에서 마주하는 도전과 시련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갖게 합니다.
1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2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 3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1-3)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께로 돌아가 회복을 경험할 것을 촉구합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치유하시고 회복하실 것이라는 약속을 믿고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 돌아가는 길에서 그분의 사랑과 은혜가 새롭게 나타날 것임을 강조합니다.
(1) 여호와께 돌아가자(1-2)
현재의 문맥에서 1-3절은 하나님의 부재에 직면한 에브라임의 반응입니다. 여호와께서 구원자를 찾아 앗수르로 내려가는 에브라임을 사자처럼 찢고 당신 처소로 돌아가시자 이스라엘이 구원을 바라고 여호와께로 돌아옵니다. 정치적 시각에 따라 병을 진단했던(5:13) ‘우리’가 마침내 신학적 시각으로 병을 바라봅니다. 이들은 여호와께로 돌아가면 그분께서 고쳐주실 것을 확신합니다. 이들의 돌아감은 일견 확신에 찬 신뢰의 고백처럼 들리지만, 조금 자세히 살펴보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결여된 피상적인 고백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이 돌아오는 유일한 목적은 병을 치료받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들은 돌아가기만 하면 여호와께서 무조건 병을 치료해주시리라 믿습니다. 현재의 환난이 여호와로부터 왔음은 인정하지만, 이스라엘의 의사이신 여호와께서 어떤 연유에서 ‘좀’과 ‘썩이는 것’이 되셨는지 (5:12)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이들의 돌아옴에는 죄와 고난에 대한 진지한 반성이나 이해가 빠져있습니다. 여호와는 이스라엘이 고난 중에 당신을 간절히 구하기를 기대하시지만(15), 이들은 여전히 제의적 언어로 여호와를 찾습니다. ‘이틀 후’와 ‘셋째 날’은 아주 짧은 시간을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사자에 찢긴 양처럼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음에도, 이들은 여호와께로 돌아가기만 하면 즉각적으로 구원이 주어지리라 생각합니다. 이들의 이해에 따르면 ‘돌아감’이 치료와 구원을 결정합니다. 곧 구원에 있어 돌아가기로 결정한 이스라엘이 주체가 되고, 여호와는 종속변수가 됩니다. 이스라엘이 여호와께로 돌아오면, 상응해서 당신 처소로 돌아가신 여호와께서도 다시 성전으로 돌아오십니다.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없었던 이스라엘은 여호와를 제의에 종속된 바알처럼 이해합니다.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도 그 자체로는 흠이 없는 완벽한 고백입니다.
(2) 여호와를 알자(3)
‘여호와를 알지 못하는 까닭’에 여호와께로 돌아갈 수 없었던(5:4) 이스라엘이 여호와께로 돌아가서 그분을 알자고 서로 권면합니다.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없다는 호세아의 고발을 이스라엘이 그대로 받아들인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뒤따르는 이스라엘의 고백은 이들이 힘써 알고자 했던 여호와가 이름만 여호와일 뿐, 실제로는 바알이었음을 보여줍니다.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활동을 순환적인 자연현상에 비교합니다. 어둠이 지나면 반드시 새벽빛이 나타나는 것처럼 얼굴을 숨기셨던 여호와께서도 때가 되면 반드시 다시 나타나십니다. 하나님의 숨으심(심판)과 나오심(구원)을 주기적인 자연현상처럼 이해합니다. 이들에게 여호와는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이스라엘에게 복을 주러 오시는 분입니다. 이스라엘이 여호와에게서 바라는 것은 가나안 사람들이 숭배하는 바알의 역할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4-6)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은 내적 평화를 가져오고, 우리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이는 대인 관계를 개선하고 삶의 목적을 찾게 하며, 신앙의 성장을 촉진합니다. 또한,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고 감사의 마음을 키우는 계기가 됩니다. 결국,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은 우리의 삶을 더욱 의미 있게 변화시킵니다.
4에브라임아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유다야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너희의 인애가 아침 구름이나 쉬 없어지는 이슬 같도다 5그러므로 내가 선지자들로 그들을 치고 내 입의 말로 그들을 죽였노니 내 심판은 빛처럼 나오느니라 6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4-6)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그들의 헌신이 형식적이지 않기를 요구하십니다. 하나님은 제사보다 인애와 진정한 관계를 원하시며, 백성이 진심으로 그분께 돌아오기를 바라십니다. 이러한 회개와 헌신을 통해 하나님은 그들에게 생명과 회복을 약속하십니다.
(1) 하나님의 탄식(4)
돌아가기만 하면 언제라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이스라엘의 자신감 넘치는 고백에 여호와께서 깊이 탄식하십니다. 이들의 피상적인 돌아옴이 그분을 절망에 빠뜨립니다. 에브라임과 유다는 상황의 심각성과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제의적 경건으로 반응합니다. 이들의 돌아옴에는 철저함과 지속성이 결여 됐습니다. 이들의 인애는 아침 구름 같고, 곧 사라져버리는 이슬 같습니다. ‘아침 구름’과 ‘이슬’의 표상은 여호와의 탄식을 3절에 연결 시켜줍니다.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구원은 어둠을 뚫고 나타나는 새벽빛처럼 확실하고, 때에 따라 내리는 비처럼 축복을 가져다준다고 고백해야 합니다. 여호와는 이들의 인애라고 하는 것은 새벽빛이 비추기 시작하면 곧 사라져버리는 아침 구름이나 이슬에 불과하다고 답변하십니다. 에브라임과 유다의 인애가 “아침 구름이나 쉬 없어지는 이슬” 같다면, 이들의 운명도 ‘아침 구름같이 쉬 사라지는 이슬같이’ 허무하게 끝나버릴 것입니다(13:3).
(2) 하나님의 답변(5-6)
인애가 없는 이스라엘에게 여호와의 심판은 필연입니다. “내 심판은 빛처럼 나오느니라”도 4절을 3절에 연결시켜줍니다.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없는 자들에게 그분의 빛은 심판을 의미할 뿐입니다. 그분의 빛은 아침 구름과 이슬에 불과한 이스라엘의 인애의 실체를 폭로하고, 이들의 위선과 거짓을 심판합니다. 이스라엘은 열심히 제사와 번제를 드렸다고 여호와의 책망에 반론을 제기할 수 있겠지만, 이는 이들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없음을 보여줄 뿐입니다. 인애가 없는 자들의 제사는 참석하는 자들만의 축제에 불과합니다. 여호와께서 우선적으로 원하시는 것은 인애와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제사와 번제로 인애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대체할 수는 없습니다. 인애(헤세드)는 언약에 근거한 개념으로, 하나님께 대해서는 성실함과 전적인 신뢰로, 이웃에 대해서는 하나님 백성으로 함께 살아가는 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연대성으로 나타납니다. 한마디로, 인애는 사회적 공간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을 성실하게 준수하며 사는 삶을 가리킵니다.
에브라임의 구체적 고발(7-11)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회복의 기회를 주시며, 우리의 진정한 회개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흔들리면 세상의 유혹에 빠질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언약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과의 신뢰를 쌓는 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그 말씀에 귀 기울이며 회개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7그들은 아담처럼 언약을 어기고 거기에서 나를 반역하였느니라 8길르앗은 악을 행하는 자의 고을이라 피 발자국으로 가득 찼도다 9강도 떼가 사람을 기다림 같이 제사장의 무리가 세겜 길에서 살인하니 그들이 사악을 행하였느니라 10내가 이스라엘 집에서 가증한 일을 보았나니 거기서 에브라임은 음행하였고 이스라엘은 더럽혀졌느니라 11또한 유다여 내가 내 백성의 사로잡힘을 돌이킬 때에 네게도 추수할 일을 정하였느니라(4-11)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형식적인 제사보다 진정한 마음의 회개와 헌신을 요구하십니다. 하나님은 인애와 관계를 중시하시며, 백성이 회복의 약속을 믿고 나아가기를 원하십니다. 궁극적으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삶에 놀라운 변화를 이루시길 바라십니다.
(1) 구체적 고발(7-9)
현재의 문맥에서 6:7-7:16의 고발은 이스라엘의 불성실한 회개를 보여주는 구체적 증거들입니다. 히브리어 본문을 따르는 개역개정의 번역에 의하면 여호와는 “그들”의 반역을 아담의 불순종에 비교해 고발하십니다. 아담이 언약을 어긴 것처럼 ‘그들’도 언약을 어기고 여호와께 신의 없이 행동하였습니다. 아담과 그의 아내 하와는 뱀의 유혹에 넘어가 동산 가운데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는 창조주의 명령(창 2:17)을 위반하고 그분께 반역하였습니다. 아담이 불순종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파탄에 빠뜨린 것처럼 ‘그들’도 하나님께 등을 돌리고 언약을 파기하였습니다. (때로는 ‘아담처럼’을 ‘아담에서’로 수정하여 읽기도 한다.) 병행의 “거기에서”는 앞에 장소가 나왔음을 전제하고, 8절과 9절도 특정 장소에서 자행된 범죄를 고발하기에 ‘아담’을 장소로 이해하는 것이 문맥에 더 일치합니다. ‘아담’은 요단 동편 얍복 강가에 있는 성읍으로 여호수아 3:16에 한 번 더 언급됩니다. 두 번째 고발 길르앗의 악행입니다. 길르앗은 피 묻은 발자국으로 가득찬, 악을 행하는 자들의 고을입니다. 길르앗은 이곳을 제외하고 거의 언제나 요단 동편 지역을 가리키는 지방의 이름으로 등장합니다. “악을 행하는 자”는 불의와 불법을 범해 공동체에 재앙을 가져오는 자를 가리키는 포괄적 표현입니다. 피 묻은 발자국은 사회정치적 불의와 폭력을 함축하는 표현처럼 보입니다. 세 번째 고발은 제사장들의 사악입니다. 강도가 길가에 숨어서 약탈할 대상을 기다리듯이 제사장 무리가 세겜으로 가는 길목에 진을 치고 살인을 합니다. 살인을 주저하지 않는 제사장들의 정체와 그 배경에 관해서는 본문이 달리 언급하지 않습니다. “사악으로 옮긴 히브리어(지마)는 특히 근친상간의 수치스러운 악행을 의미합니다.
(2) 에브라임의 음행(10)
제사장들의 살인 행위를 파렴치한 성적 이탈로 고발합니다. 이스라엘 전체가 음행으로 더럽혀졌습니다(10-11). “가증한 일”(10)은 우상숭배나(참조, 렘 18:13), 하나님께 속한 제사장이나 예언자가 그분께 거슬러 범하는 악행을(참조, 렘 5:30; 23:14), “음행”은 가나안의 풍요제의(참조. 4:4-5:7)를 가리킵니다. 에브라임의 음행을 고발한 다음에 갑자기 유다에게 심판을 선포하는 말씀이 나옵니다. 유다라 해서 예외가 아닙니다.
(3) 유다의 심판(11)
유다도 에브라임과 동일한 운명에 떨어집니다. 특이하게도 여호와께서 ‘내 백성의 사로잡힘을 돌이킬 때에’ 유다가 심판을 받습니다. 아마도 본문은 유다도 에브라임처럼 심판을 통해서만 구원받을 수 있음을 말하려 했던 것 같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로 돌아가 회복을 경험하고 진정한 헌신으로 그분의 사랑에 응답해야 하며, 이를 통해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다시 세우고 그 사랑을 세상에 전하는 자들이 되어야 하고, 하나님의 회복의 약속을 기억하며 공동체 전체가 함께 나아가 그분의 은혜를 경험하는 과정 속에서 서로 격려하고 기도하며 하나님을 찬양할 때 그분의 사랑이 우리를 통해 흘러넘칠 것이며, 하나님은 우리의 회복을 원하시기에 우리가 그분의 사랑에 응답할 때 놀라운 일을 이루실 수 있도록 오늘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회복의 약속을 믿으며 적극적으로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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