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세아(05-01)
이스라엘의 죄와 하나님의 경고
호세아 5장 1-15절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시고, 사랑해서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너무나 잘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을 알고 있는 것보다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속속히 잘 알고 계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숨길 수 있는 죄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르시는 아픔과 고통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에 우리는 그 하나님께 나갈 수 있습니다. 우리의 죄를 아시는 하나님께 우리의 죄를 회개할 수 있습니다. 모든 눈물과 상처를 아시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회복의 은혜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통해서 다시 새로운 힘과 용기를 얻을 수 있습니다.
- 에브라임은 음행하고 이스라엘은 더러워져 음란한 마음 때문에 여호와를 알지 못하니 여호와께 돌아가지 못합니다. 또한 여호와를 찾아도 만나지 못합니다. 에브라임과 유다가 진노로 인한 병과 상처를 깨달으나 고칠 자가 없습니다. 고난의 때에 그들은 주님을 간절히 구할 것입니다.
이스라엘에서 떠나신 여호와(1-7)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을 떠난 삶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세상의 유혹과 죄는 처음에는 달콤해 보일 수 있지만, 그것이 우리를 하나님과 멀어지게 하고, 결국 영적으로 무감각하게 만듭니다. 하나님의 빛을 떠난 삶은 어둠 속에서 길을 잃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과 인도하심 없이는 바른 길을 찾을 수 없으며, 결국 영적으로 파멸에 이를 수 있습니다.
1제사장들아 이를 들으라 이스라엘 족속들아 깨달으라 왕족들아 귀를 기울이라 너희에게 심판이 있나니 너희가 미스바에 대하여 올무가 되며 다볼 위에 친 그물이 됨이라 2패역자가 살육죄에 깊이 빠졌으매 내가 그들을 다 벌하노라 3에브라임은 내가 알고 이스라엘은 내게 숨기지 못하나니 에브라임아 이제 네가 음행하였고 이스라엘이 더러워졌느니라 4그들의 행위가 그들로 자기 하나님에게 돌아가지 못하게 하나니 이는 음란한 마음이 그 속에 있어 여호와를 알지 못하는 까닭이라 5이스라엘의 교만이 그 얼굴에 드러났나니 그 죄악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과 에브라임이 넘어지고 유다도 그들과 함께 넘어지리라 6그들이 양 떼와 소 떼를 끌고 여호와를 찾으러 갈지라도 만나지 못할 것은 이미 그들에게서 떠나셨음이라 7그들이 여호와께 정조를 지키지 아니하고 사생아를 낳았으니 그러므로 새 달이 그들과 그 기업을 함께 삼키리로다(1-7)
1-4절 정치 종교지도자들의 악행과 에브라임의 타락 이스라엘의 종교와 사회와 정치를 책임진 제사장들과 이스라엘 족속들과 왕족들이 여호와의 고발에 넘겨집니다. 제사를 드리기 위해 짐승을 잡듯 백성을 잡는 패역자들이 바로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입니다. 지도자들이 부패했는데 백성이 깨끗할 수는 없습니다(3-4).
(1) 정치-종교지도자들의 악행(1-2)
이스라엘의 종교-정치지도자들은 부패한 무능력자들이었습니다. 사냥꾼이 올무와 그물로 짐승을 잡듯이 이들은 공공연하게 불의와 폭력으로 백성을 억압합니다. 지도자들에 의해 바른 길로 인도받지 못하는 백성은 우상숭배의 음행에 빠져 사생아를 낳습니다. 위로부터 아래까지 어느 곳도 예외 없이 죽을병에 걸렸습니다.
여호와께서 다 알고 계시기에 이스라엘은 자신의 음행과 더러움을 감추거나 변명할 수 없습니다. 여호와를 알지 못하기에 에브라임은 자신의 음행을 숨길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여호와는 에브라임의 음행)을 아십니다. 에브라임의 형편이 절망적인 이유는 죄를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이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풍요의라는 마약에 중독돼 성전과 산당을 찾아가서 바알을 숭배하듯이 여호와를 섬기면서도, 무엇이 잘못됐는지를 깨닫지 못합니다. 우상숭배에 불과한 자신들의 제의적 경건에 만족해하기에, 되돌아볼 동기나 필요가 생기지 않습니다. 한마디로 에브라임은 죄의 종이 됐습니다.
(2) 떠나신 하나님(5-7)
“이스라엘의 교만이 그 얼굴에 드러났나니”는 ‘이스라엘의 교만이 그들 자신을 거슬러 증거하나니’로 옮기는 것이 좋습니다. 음행으로 더러워졌다는 하나님의 고발에(3) 이스라엘은 무죄를 주장하지만, 얼굴에 쓰인 이들의 교만이 유죄를 증거합니다. 음행의 증거가 너무 분명하기에 다른 증인이 필요 없습니다. 음행의 더러움을 인정하지 않는, 여호와께로 돌아가지 못하게 하는 이스라엘의 영적 무지와 무감각을 가리킵니다. 결국 이스라엘은 교만의 죄악에 걸려 넘어집니다. “유다도 그들과 함께 넘어지리라”는 죄악에 있어 유다도 이스라엘과 다르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이스라엘은 여호와를 알기에 성소를 찾아가는 것이 아니냐고 항변하지만, 예언자는 ‘여호와를 앎’과 ‘성소를 찾음’을 구별합니다. 성전이나 산당을 찾아가는 제의적 경건은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없이도 가능합니다. 누구나 제의 규정에 따라 양 떼와 소 떼를 끌고 성전을 찾아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전을 찾는 자가 모두 여호와를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여호와를 아는 자만 그분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음행으로 더러워진 자들에게 그분은 멀리 떠나신 분입니다. 이스라엘은 “여호와께 정조를 지키지 아니하고 사생아를 낳았으니”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새 달이 그들과 그 기업을 함께 삼키리로다”의 의미는 약간 모호합니다. ‘그 기업’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각 씨족에게 상속재산으로 주신 땅을, ‘새 달’이 초하룻날의 축제를 가리킨다면, 새 달에 즐겁게 축제 음식을 먹었던 이스라엘이 이제 그 기업과 함께 새 달의 먹이가 됩니다.
에브라임과 유다의 징벌(8-15)
우리가 삶의 고통과 어려움을 겪을 때, 그것을 단순한 불행으로 여기지 말고, 그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으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고통 속에서 그분을 찾고, 회개하며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하나님께 돌아올 때,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 다시 회복될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하나님께 온전히 돌아가는 삶을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8너희가 기브아에서 뿔나팔을 불며 라마에서 나팔을 불며 벧아웬에서 외치기를 베냐민아 네 뒤를 쫓는다 할지어다 9벌하는 날에 에브라임이 황폐할 것이라 내가 이스라엘 지파 중에서 반드시 있을 일을 보였노라 10유다 지도자들은 경계표를 옮기는 자 같으니 내가 나의 진노를 그들에게 물 같이 부으리라 11에브라임은 사람의 명령 뒤따르기를 좋아하므로 학대를 받고 재판의 압제를 받는도다 12그러므로 내가 에브라임에게는 좀 같으며 유다 족속에게는 썩이는 것 같도다 13에브라임이 자기의 병을 깨달으며 유다가 자기의 상처를 깨달았고 에브라임은 앗수르로 가서 야렙 왕에게 사람을 보내었으나 그가 능히 너희를 고치지 못하겠고 너희 상처를 낫게 하지 못하리라 14내가 에브라임에게는 사자 같고 유다 족속에게는 젊은 사자 같으니 바로 내가 움켜갈지라 내가 탈취하여 갈지라도 건져낼 자가 없으리라 15그들이 그 죄를 뉘우치고 내 얼굴을 구하기까지 내가 내 곳으로 돌아가리라 그들이 고난 받을 때에 나를 간절히 구하리라(8-15)
이스라엘과 유다가 죄로 인해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임을 경고합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교만과 죄에서 돌이키지 않으면 그들을 징벌할 것이며, 결국 그들이 하나님을 찾을 때까지 고통을 겪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그들이 하나님께 돌아오도록 하려는 의도입니다.
(1) 에브라임을 벌하시는 날(8-9)
나팔을 부는 목적이 모호합니다. 유다의 공격에 대비하여 성안으로 피하라는 신호로도, 기브아와 라마 사람들에게 함께 에브라임을 치러 전쟁에 나가자는 외침으로도 이해가 가능합니다. 언급된 지명에 따르면 공격이 예루살렘에서 산지의 분수계(分界)를 따라 난 간선도로를 이용해 북 왕국의 중심부인 에브라임 산지로 향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분명한 것은 정조를 버리고 사생아를 낳은 에브라임에 선포된 심판이 이제 현실화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유다가 예루살렘 북쪽 경계의 베냐민 땅을 넘어 진격해 올라가고, 에브라임은 기브아와 라마를 빼앗기고 후퇴합니다. 에브라임 지파와 베냐민 지파의 경계에 있는 북왕국의 국가 성소 벧엘(벧아웬)에서도 전쟁의 경고음이 발합니다. 여호와께서 정치적 이해타산에 따라 다메섹과 함께 유다를 공격한 에브라임을 폐허로 만드십니다. 그러나 에브라임의 황폐함은 깨달음에 이르게 하려는 징벌입니다.
(2) 유다 지도자들에 대한 위협의 말씀(10)
하나님께서 아람과 연합하여 예루살렘을 공격한 에브라임을 징계하기로 결정하셨지만, 그렇다고 앗수르의 침략으로 야기된 북 왕국의 군사적 위기를 이용해 국경을 넘는 유다의 침략이 정당화될 수는 없습니다(10). 정치적 이유에서 형제를 침략한 에브라임이나 유다나 모두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현재의 문맥에서 유다의 역할은 이중적입니다. 유다는 사생아를 낳은 에브라임을 징계하시려는 하나님 심판의 도구이자 동시에 심판의 대상이 됩니다. 에브라임의 땅을 빼앗아 영토를 확장하려는 유다 정치가들이 “경계표를 옮기는 자”에 비유됩니다. 신명기의 율법은 땅의 경계를 임의적으로 바꾸지 못하게 엄히 금합니다(신 19:14). 유다의 북침은 언약법 위반에 해당했습니다.
(3) 에브라임에 대한 탄식(11)
원문이 일부 불분명하기는 하지만, 11절은 다음과 같이 옮길 수 있습니다. “에브라임은 억압당하고 심판을 받아 짓밟혔다. 그가 헛된 것을 애써 좋았기 때문이다”(ESV; NIV;NRS). 에브라임을 벌하는 날이 그 모습을 드러내자, 여호와께서 에브라임의 절망적 처지를 탄식하십니다. 불법과 폭력이 심판에 떨어진 에브라임을 지배하고, 사람들이 억압을 당합니다. 현재의 문맥에 따르면 시리아-에브라임 전쟁의 파국적 결과가 가져온 비극입니다. 남쪽 국경지대로 제한된 유다의 공격과 달리 앗수르의 침략은 전면적이었습니다. 에브라임은 앗수르에 항복해서 겨우 목숨은 연명할 수 있었지만 전쟁의 피해는 치명적이었습니다. 에브라임 산지를 제외한 대부분의 영토를 빼앗겼고, 사회는 통제할 수 없는 무질서에 빠졌습니다. 에브라임은 헛된 것을 좇다가 헛 것이 됐습니다. ‘헛된 것’은 우상이나 이방 정치세력을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4) 에브라임과 유다의 징벌 선언(12-14)
에브라임과 유다에 대한 위협의 말씀이 나옵니다. 음행과 불순종이 의사이신(출 15:26) 여호와를 병의 원인으로 만듭니다. 여호와께서 에브라임에게 ‘좀처럼 유다에게 썩이는 것’처럼 되십니다. 옷을 해어지게 해서 못쓰게 만드는 좀은 언제나 멸망이나 덧없음과 관련된 부정적 문맥에 등장합니다(참조. 욥 4:19; 시 39:11; 사 50:9). ‘썩이는 것’은 뼈를 곪게 만드는 골(骨)로 죽음에 이르는 부패나 부식을 함축합니다(참조, 욥 13:28; 잠 12:4; 합 3:16). 좀과 골저가 조금씩 속에서 진행되다가 결국에는 옷을 못 쓰게 만들거나 사람을 죽이는 것처럼, 여호와께서 에브라임과 유다에 보내신 질병도 그러합니다. 옷을 상하게 하는 좀은 외적 파괴를, 뼈를 썩게 하는 상처는 내적 부패를 함축하는 것 같습니다. 에브라임과 유다는 너무 늦지 않게 자신의 병과 곪은 상처를 인식하지만, 그 원인을 찾는 데는 실패합니다. 이들은 정치적·사회적 재앙이 언약 파기에 따른 여호와의 징계로 생긴 병임을 깨닫지 못하고, 병의 원인을 군사적 열세에서 찾습니다. 병의 진단이 잘못되면 처방도 잘못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들은 의사이신 여호와를 찾지 않고 ‘헛된 것’인 앗수르에게 병의 치료를 맡깁니다. 에브라임과 유다의 병은 여호와에게서 기인하기에 하나의 정치세력에 불과한 앗수르가 이들을 고쳐줄 수는 없습니다. 굶주린 사자가 먹이를 찾아 공격하듯이 여호와께서 에브라임과 유다를 무섭고도 난폭하게 공격하실 것입니다. ‘좀과 썩이는 것’의 비유가 심판의 점진성을 보여준다면, ‘사자와 젊은 사자’의 비유는 심판의 단호함과 철저성을 강조합니다.
(5) 당신 처소로 돌아가신 하나님(15)
심판에 떨어진 이스라엘에게 기회가 한 번 더 주어집니다(15). 여호와는 이스라엘이 당신의 얼굴을 찾을 때까지 당신 처소로 돌아가 기다리십니다. “내 곳으로 돌아가리라”는 단절과 징계를 의미하지만, “내 얼굴을 구하기까지”는 단절과 징계가 그분의 궁극적 목적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여호와는 이스라엘이 벌을 받고 고난 중에 있을 때 당신을 간절히 찾기를 기대하십니다.
우리에게 죄의 심각성과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하면서도, 동시에 하나님께 돌아올 기회를 놓치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죄를 범했을 때에도 포기하지 않으시고, 우리를 사랑하시며 회개의 기회를 주십니다.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우리의 삶을 돌아보며 하나님 앞에 나아갑시다. 회개의 마음으로 하나님께 돌아갈 때, 하나님은 우리를 기쁘게 받아주시고, 우리의 영혼을 회복시켜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 돌아올 기회를 놓치지 않고, 온전히 하나님께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구독과 아래 [광고베너] 클릭은
저의 성경 연구에 큰 힘이 됩니다.
'28 호세아(완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호세아(08) - 호세아 7장 1-16절 - 하나님의 경고와 이스라엘의 불순종 (0) | 2024.10.02 |
---|---|
호세아(07) - 호세아 6장 1-11절 - 진정한 회개와 하나님의 사랑 (2) | 2024.10.02 |
호세아(05) - 호세아 4장 1-19절 -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길 (10) | 2024.10.02 |
호세아(04) - 호세아 2장 14절-3장 5절 - 사랑과 회복의 하나님 (1) | 2024.08.12 |
호세아(03) - 호세아 2장 1-13절 - 하나님의 사랑과 회복의 약속 (0) | 2024.08.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