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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아(04-01)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길

호세아 4장 1-19절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하지 말고 회개하여 하나님께 돌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 돌아가는 길은 감정의 변화가 아닌 말씀에 대한 순종과 실천을 의미하며, 우리의 삶과 공동체가 회복되기 위해 필요합니다. 또한, 현대의 유혹에 경각심을 가지고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르고 그분의 뜻에 순종함으로써 참된 평화와 구원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 본문에서는 이스라엘의 죄악과 부패가 고발되며, 그들의 무도와 불의로 인해 하나님이 심판을 예고하십니다. 이스라엘은 우상 숭배와 불법으로 인해 혼란에 빠지고, 제사장들이 제대로 역할을 하지 않아 민족이 타락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회개하지 않으면 계속해서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하십니다.

 

이스라엘을 고소하시는 하나님(1-3)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부족할 때, 삶은 혼란과 죄악으로 가득 차게 되며, 이는 사회 전반에 파괴적인 결과를 초래합니다. 인간의 죄는 자연 세계에도 영향을 미치며,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죄악이 자연까지 파괴할 수 있음을 경고하십니다. 우리의 삶과 세상의 회복은 오직 하나님께 돌아가 그분의 뜻에 따라 살아갈 때 가능합니다.

 

1이스라엘 자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여호와께서 이 땅 주민과 논쟁하시나니 이 땅에는 진실도 없고 인애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고 2오직 저주와 속임과 살인과 도둑질과 간음뿐이요 포악하여 피가 피를 뒤이음이라 3그러므로 이 땅이 슬퍼하며 거기 사는 자와 들짐승과 공중에 나는 새가 다 쇠잔할 것이요 바다의 고기도 없어지리라(1-3)

 

이스라엘 백성이 진리와 인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서 죄악으로 가득 차 있음을 지적하며, 그로 인해 땅이 슬퍼하고 모든 생명체가 고통을 겪고 있다고 경고합니다. 백성들의 거짓, 살인, 도둑질, 간음 등으로 인해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것임을 선언합니다. 이 본문은 하나님과의 언약을 어긴 결과로 자연과 사회에 미치는 파괴적인 영향을 강조합니다.

 

(1) 고발(1-2)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진실도 없고 인애(헤세드)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다”고 고발하십니다. 진실은 신뢰에서 나오는 성실함으로 인애를 통해 구체적으로 표현됩니다. 인애가 없는 이스라엘은 더는 하나님의 백성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출애굽에서 가나안 정착까지의 구원사와 시내산 언약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통해 이스라엘은 여호와와 사적 관계를 맺고 그분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진실과 인애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진 필연적 결과로 이스라엘은 폭력과 탐욕의 전쟁터가 됩니다. 저주와 속임과 살인과 도둑질과 간음과 피흘림이 하나님 말씀의 자리를 대신합니다. 진실도, 인도,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기에 이스라엘에서는 가장 기본적인 계명조차 무시됩니다. 사욕을 채우기 위해서라면 이웃의 피를 흘리기에 주저함이 없습니다.

 

(2) 심판 선언(3)

 

여호와의 언약공동체로 출발한 이스라엘이 이기적 탐욕과 폭력이 지배하는 동물적 사회로 타락합니다. 이스라엘의 불의와 불법이 자기파멸적 결과를 초래합니다. 하나님을 거역하고 이웃의 피를 흘리기에 열심인 자들이 사는 땅은 저주받은 땅으로 생존에 필요한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제사장을 고발하시는 하나님(4-10)

영적 지도자는 말씀을 올바르게 가르칠 책임이 있으며, 백성들도 개인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으면 신앙은 형식화되고 죄로 이어질 수 있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그분을 알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죄는 파괴적인 결과를 가져오며, 이를 피하기 위해서는 진정한 회개가 필요합니다.

 

4그러나 어떤 사람이든지 다투지도 말며 책망하지도 말라 네 백성들이 제사장과 다투는 자처럼 되었음이니라 5너는 낮에 넘어지겠고 너와 함께 있는 선지자는 밤에 넘어지리라 내가 네 어머니를 멸하리라 여호와께서 백성과 제사장을 심판하시다 6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 7그들은 번성할수록 내게 범죄하니 내가 그들의 영화를 변하여 욕이 되게 하리라 8그들이 내 백성의 속죄제물을 먹고 그 마음을 그들의 죄악에 두는도다 9장차는 백성이나 제사장이나 동일함이라 내가 그들의 행실대로 벌하며 그들의 행위대로 갚으리라 10그들이 먹어도 배부르지 아니하며 음행하여도 수효가 늘지 못하니 이는 여호와를 버리고 따르지 아니하였음이니라(4-10)

 

이스라엘의 제사장들이 말씀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아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나 죄에 빠진 것을 책망하며, 그 결과로 심판이 임할 것임을 경고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부족하여 신앙이 타락했고, 지도자들과 백성들 모두 죄로 인해 만족을 얻지 못할 것이라는 경고를 담고 있습니다. 이 본문은 영적 지도자와 백성 모두에게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와 회개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1) 고발과 경고(4-6)

 

4절 하반절의 원문은 불분명합니다. 제사장과 다투는 백성을 책망하는 말로 옮긴 개역개정의 번역이 원문에 가깝기는 하지만, 문맥에 따라 제사장을 책망하는 말로 수정하여 읽는 것이 좋습니다(ESV: NRS). “제사장아, 내가 너를 고소한다.” 이스라엘의 타락에 일차적 책임이 있는 제사장을 하나님께서 먼저 고발하십니다. 제사장은 일반 사람의 신앙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종교지도자였기에, 이들의 부패와 무능력은 하나님 백성 이스라엘에 치명적이었습니다.

 

(2) 제사장과 백성의 심판(7-10)

 

제사장이 고발당하는 이유는 율법을 잊어버리고(6) 속죄제물에만 관심을 기울였기(8)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고소하시기에 제사장이 실족합니다. 제사장은 아무도 실족하지 않는 한낮에 헛디뎌 넘어지고, 성전 소속의 예언자는 밤에 마찬가지로 넘어집니다. 제사장은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해서, 예언자는 그분의 이상을 잘못 풀어 실족합니다. 제사장의 징벌 선언에 앞서 하나님의 탄식이 나옵니다. 역설적이게도 하나님 백성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 멸망합니다. 제사장이 하나님의 울법을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에 백성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 멸망의 위기에 직면합니다. 하나님 백성을 죄악에 안주하게 만든 제사장에게 ‘동해복수법(jus talionis)’의 원칙에 따라 심판이 선언됩니다. 제사장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버렸기에, 하나님께서 그를 버려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하시며, 제사장이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기에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를 잊어버리십니다. 하나님의 율법을 버린 대가로 후손이 끊어져 집안이 완전히 멸망합니다.

이스라엘에서 무섭고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참조. 렘 5:30-31). 제사장이 하나님을 버리고 그분의 율법을 잊었는데도 그 수가 더 많아집니다(7). 제사장이 율법을 가르치지 않기에 백성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기에 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죄가운데 살기에 속죄할 일이 많아지고, 속죄를 위해 양과 소를 끌고 성소를 찾는 사람이 많아지기에 제사장의 수가 늘어납니다. 죄를 매개로 종교 사업이 날로 번창하면서 제사장의 삶이 더욱 기름져집니다. 악순환의 정점에 서있는 제사장에게는 백성이 죄를 지을수록 살림이 윤택해졌기에 차라리 저들이 죄를 많이 범하는 것이 더 좋았습니다. 백성의 죄를 먹고 사는 데 길들여졌기에 백성이 더 죄짓기를 열망합니다. 8절 하반절의 “그 마음을 그들의 죄악에 두는 도다”는 문자적으로 옮기면 다음과 같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목구멍을 저들의 죄를 향해 들어올린다.” 백성의 죄를 먹고사는 데 길들여진 제사장은 백성이 죄를 범하길 애타는 마음으로 기다립니다. 죄로부터 멀리 떠나도록 백성을 가르치고 경계하기는커녕 차라리 죄를 짓도록 부추깁니다. 하나님의 율법을 잊고 속죄제물만 탐하는 제사장에게 영화를 박탈하는 징벌이 선포됩니다.

제사장의 부패와 무능력이 백성의 죄에 면죄부가 될 수는 없습니다. 죄의 경중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겠지만, 죄를 범했다는 점에서는 제사장이나 백성이나 다르지 않았습니다(9). 백성의 입장에서도 양이나 소를 드려 죄와 벌의 굴레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제의적 속죄를 마다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을 준수하기 위해 애쓰기보다는 잊고 살다가 속죄제물로 죄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훨씬 간편하고 경제적이었습니다. 역동적인 언약신앙을 형해만 남은 제의종교로 타락시킨 자들에게 심판이 선포됩니다. 먹어도 배부르지 않고 음행을 해도 자손이 번성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산당제의와 권면(11-15)

방탕한 삶과 쾌락을 추구하는 것은 영적 타락을 초래하며, 이는 하나님을 떠나 우상숭배에 빠지게 만듭니다. 오늘날에도 물질주의와 쾌락주의는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할 수 있으며, 우리는 이 유혹을 경계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떠나 세상의 것들을 숭배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며, 이러한 우상숭배는 개인의 죄에서 시작해 가정과 사회 전체로 확산됩니다. 우리는 죄악에 동참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거룩함을 지키며 살아가야 합니다.

 

11음행과 묵은 포도주와 새 포도주가 마음을 빼앗느니라 12내 백성이 나무에게 묻고 그 막대기는 그들에게 고하나니 이는 그들이 음란한 마음에 미혹되어 하나님을 버리고 음행하였음이니라 13그들이 산 꼭대기에서 제사를 드리며 작은 산 위에서 분향하되 참나무와 버드나무와 상수리나무 아래에서 하니 이는 그 나무 그늘이 좋음이라 이러므로 너희 딸들은 음행하며 너희 며느리들은 간음을 행하는도다 14너희 딸들이 음행하며 너희 며느리들이 간음하여도 내가 벌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남자들도 창기와 함께 나가며 음부와 함께 희생을 드림이니라 깨닫지 못하는 백성은 망하리라 15이스라엘아 너는 음행하여도 유다는 죄를 범하지 못하게 할 것이라 너희는 길갈로 가지 말며 벧아웬으로 올라가지 말며 여호와의 사심을 두고 맹세하지 말지어다(11-15)

 

이스라엘이 우상 숭배와 음란으로 인해 타락한 상황을 묘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제사장들이 이러한 죄악을 방치하고, 여인과 음란한 행위를 지적하시며 심판을 예고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그 죄로 인해 스스로 고통받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십니다.

 

(1) 고발과 경고(11-14)

 

여호와 신앙이 가나안의 풍요제의와 뒤섞이며 원래적 모습을 상실합니다. 가을 축제 때 가나안의 풍요제의에 따라 새로 짜낸 포도즙과 포도주를 마시며 수확의 기쁨을 즐깁니다. 포도주에 취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가나안의 신 바알과 동일시합니다. 음란의 영에 마음을 빼앗겼기에 바알을 숭배하듯 여호와를 섬깁니다. 여호와께 묻고 그분의 가르침을 따라야 할 이스라엘이 ‘자기 나무’와 ‘자기 막대기’에게 신탁을 구합니다. 자신들이 나무와 막대기에 신적 능력과 권위를 부여하고, 그 나무와 막대기에게 신의 의지를 묻습니다. ‘나무’는 아마도 제단 곁에 세워져 있는 아세라 상이나 드라빔과 같은 신상을, ‘막대기’는 작은 아세라상 또는 던져서 신탁을 구하는 막대기를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속죄제물에 맛이 들린 제사장은 백성이 죄짓기만 간절히 바라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는 백성은 혼합주의에 빠져 여호와를 버리고 가나안적 풍습에 따라 신탁을 구합니다.

13-14절은 풍요제의의 일종으로 높은 산이나 언덕에서 거행되던 산당제의를 고발합니다. 지방의 산당제의는 가나안적인 것들이 유입되는 통로와 같았습니다. 가나안의 종교에서 잎이 무성한 참나무와 상수리나무는 종종 신목으로 간주됐고, 버드나무는 하얀 꽃의 향으로 유명했습니다. ‘나무 그늘’은 제사에 참여한 자들이 함께 음식을 나누며 축제를 즐길 수 있는 최적의 자리였습니다. 딸의 음행과 며느리의 간음은 아마도, 산당에서 거행된 제의적 축제에 때로는 윤리적 타락도 있었겠지만, 우상숭배를 고발하는 비유적 의미로 사용된 것 같습니다. 제사장의 무지와 부패가 백성을 타락시켜 혼합주의에 빠뜨린 것처럼 아버지와 시아버지의 음행이 그의 보호와 감독 아래 있는 딸과 며느리의 음행을 초래합니다.

 

(2) 범죄하지 말 것(15)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 바알을 숭배하면서도 이를 깨닫지 못하는 백성에게 멸망이 피할 수 없는 운명이 됩니다. 예언자는 유다를 이스라엘로부터 분리시켜 유다만이라도 죄를 짓지 말라고 권면합니다(15). 이스라엘의 음행이 한계를 완전히 넘었음을 시사해줍니다. 상황이 절망적이지만, 예언자는 포기하지 않고 다시 한번 이스라엘에게 음행에서 발을 멀리하도록 권면합니다.

 

 

파국을 자초한 이스라엘의 완악함(16-19)

 

완고함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단절시켰고, 결국 파멸로 이어졌습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고 자신의 고집을 따를 때, 우리는 영적으로 무감각해져 하나님과 멀어질 수 있습니다. 우상숭배는 하나님을 떠나 세속적인 것에 마음을 빼앗기는 것이며, 이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어지게 만듭니다. 하나님을 떠난 삶은 심판을 피할 수 없으므로, 우리는 돌이켜 하나님께 돌아가야 합니다.

 

16이스라엘은 완강한 암소처럼 완강하니 이제 여호와께서 어린 양을 넓은 들에서 먹임 같이 그들을 먹이시겠느냐 17에브라임이 우상과 연합하였으니 버려 두라 18그들이 마시기를 다 하고는 이어서 음행하였으며 그들은 부끄러운 일을 좋아하느니라 19바람이 그 날개로 그를 쌌나니 그들이 그 제물로 말미암아 부끄러운 일을 당하리라(14-19)

 

이스라엘이 고집스럽고 우상숭배에 빠져 하나님과의 관계를 단절하였음을 경고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우상과 연합한 결과로 심판이 임할 것이라고 말씀하시며, 그들의 방탕함으로 인해 결국 파멸을 맞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죄악을 심판하며, 그들의 회복 가능성을 제시하지만, 우상숭배와 완고함의 결과로 파멸이 불가피하다고 하십니다.

 

(1) 고발(16-18)

 

이스라엘은 우상숭배에서 떠나라는 예언자의 경고를 거절하고 고집 센 암소처럼 자기 길을 갑니다. 이스라엘의 완강한 고집은 나름대로 이유가 없지 않았습니다. 목자 여호와의 인도를 받는 양 떼로 착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우상과 연합했으면서도 여호와의 인도와 보호를 주장하는 이스라엘에게는 무지함과 완고함 가운데 살다가 죽는 것 외의 다른 길은 없습니다.

 

(2) 심판 선언(19)

 

여호와께서 산당 제의에 참여한 자들이 제의적 윤리적 음행을 즐기며 살도록 내버려두시는 것으로 이들을 심판하십니다.


이스라엘의 방탕과 우상숭배로 인한 하나님과의 관계 단절과 심판을 경고합니다. 이 본문은 우리가 하나님의 경고를 듣고 회개하여 하나님께 돌아가야 함을 강조합니다. 순종을 통해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회복하고, 세상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도록 경각심을 가져야 합니다. 결국,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것이 진정한 회복과 평화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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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아(03-01)


사랑과 회복의 하나님

호세아 2장 14절-3장 5절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배반에도 불구하고 변함없는 사랑으로 우리를 부르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과거를 소망의 미래로 변화시키시며,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회복의 길을 제시하십니다. 우리에게 미래의 소망과 구원의 길을 열어두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돌아갈 때, 그 회복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우리는 진정한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

 

  • 여호와와 이스라엘의 관계는 파국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의 음란을 징계하신 후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새로이 출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십니다. ‘그 날에’ 여호와의 주도로 언약관계가 다시 회복됩니다.

 

광야에서의 관계회복(14-15)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사랑으로 광야로 데려가 위로하시고, 그들을 회복시키겠다는 약속을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고난 속에서도 함께하시며, 실패를 소망의 기회로 바꾸십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변치 않는 사랑과 회복의 능력을 보여줍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사랑을 신뢰하며 회복의 은혜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14그러므로 보라 내가 그를 타일러 거친 들로 데리고 가서 말로 위로하고 15거기서 비로소 그의 포도원을 그에게 주고 아골 골짜기로 소망의 문을 삼아 주리니 그가 거기서 응대하기를 어렸을 때와 애굽 땅에서 올라오던 날과 같이 하리라(14-15)

 

여호와를 잊어버린 이스라엘에게 놀랍게도 징벌 대신 회복의 말씀이 주어집니다. 새로운 출발의 기본 틀로 출애굽의 구원사가 활용됩니다. 애굽에서 가나안으로 바뀐 출발지를 제외하고 광야를 거쳐 가나안에 이르는 여정이 그대로 반복됩니다. 징계가 목적을 이루지 못하자 여호와는 이스라엘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적극적으로 개입하십니다. 어떻게든 설득해서 이스라엘을 신혼의 옛 추억을 간직한 광야로 데려가 위로하고 새로이 시작하기로 결정하십니다. 새 출발의 선물로 두 가지 약속이 주어집니다. 첫째, “그의 포도원”을 이스라엘에게 주십니다. 남자가 약혼녀에게 결혼선물을 주듯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선물로 포도원, 곧 풍요와 기쁨이 넘치는 가나안 땅을 주십니다. 둘째, “아골 골짜기로 소망의 문”을 삼아주십니다. 아골 골짜기는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서 처음으로 여호와의 진노를 경험한 곳입니다(수 7장).

 

심판 이후의 구원시대(16-23)

하나님께서는 우리와의 관계를 새롭게 하시고, 평화와 안전을 약속하십니다. 그분의 사랑은 영원하며, 은혜는 끝이 없습니다. 우리에게 풍성한 축복을 약속하시고, 우리가 그와의 관계를 회복할 때 그분의 은혜와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는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참된 평안을 가져다줍니다.

 

16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 날에 네가 나를 내 남편이라 일컫고 다시는 내 바알이라 일컫지 아니하리라 17내가 바알들의 이름을 그의 입에서 제거하여 다시는 그의 이름을 기억하여 부르는 일이 없게 하리라 18그 날에는 내가 그들을 위하여 들짐승과 공중의 새와 땅의 곤충과 더불어 언약을 맺으며 또 이 땅에서 활과 칼을 꺾어 전쟁을 없이하고 그들로 평안히 눕게 하리라 19내가 네게 장가 들어 영원히 살되 공의와 정의와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 들며 20진실함으로 네게 장가 들리니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 21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 날에 내가 응답하리라 나는 하늘에 응답하고 하늘은 땅에 응답하고 22땅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에 응답하고 또 이것들은 6)이스르엘에 응답하리라 23내가 나를 위하여 그를 이 땅에 심고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였던 자를 긍휼히 여기며 내 백성 아니었던 자에게 향하여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 하리니 그들은 이르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 하시니라(16-23)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새로운 언약을 맺고, 그들을 다시 사랑으로 받아들이시겠다는 약속을 하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영원히 아내로 삼으시고, 그들에게 긍휼과 은혜를 베푸실 것이라고 선언하십니다. 결국, 하나님은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회복하시며, 그들에게 풍성한 축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1) 바알의 제거(16-17)

 

“그 날에” 이스라엘의 배반으로 파괴됐던 결혼관계가 여호와에 의해 다시 회복됩니다. 구원시대의 이스라엘은 여호와를 “내 바알”이 아니라 “내 남편”이라 부르게 됩니다. ‘바알’은 원래 ‘주인’을 의미하기에 ‘내 바알’은 남편이 아내의 주인임을 전제하는 표현입니다. ‘남편’으로 옮겨진 히브리어 ‘이슈’는 일차적으로는 ‘남자’를 가리킵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남편이 되시고,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아내가 되어 사랑 안에서 서로 연합합니다. 다른 한편으로 “다시는 내 바알이라 일컫지 아니하리라”는 이스라엘이 제의에서 여호와를 ‘내 바알’로 불렀음을 시사해줍니다. 혼합주의에 빠진 이스라엘은 여호와와 바알을 구별하지 못하고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면서도 바알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구원시대의 이스라엘은 여호와를 바로 알고 그분만 섬기게 됩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이 다시는 바알숭배에 빠지지 않도록 조치를 취해 주십니다. 이스라엘의 입에서 바알들의 이름을 제하십니다.

 

(2) 안전과 평화의 보장(18)

 

이스라엘은 바알의 유혹으로부터 자유롭게 될 뿐만 아니라 주변의 모든 위협으로부터도 벗어납니다. 사랑스런 아내를 보호하는 것이 남편의 의무와 책임에 속하는 것처럼 남편 여호와께서 모든 적대적인 세력으로부터 아내 이스라엘을 보호해주십니다. 먼저 이스라엘을 위해 적대적인 동물과 언약을 맺어 안전을 보장해주십니다. 더 나아가 여호와께서 땅에서 활과 칼을 꺾어 민족들이 이스라엘을 침략할 수 없게 하십니다. 거듭 전쟁의 소용돌이에 말려들었던 이스라엘이 마침내 평화롭게 살게 됩니다.

 

(3) 여호와와 이스라엘의 재결합과 축복(19-23)

 

16절의 경우처럼 결혼의 표상이 사용됩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이 당신의 영원한 아내가 될 것을 약속하십니다. 결혼의 갱신은 일시적인 회복이나 단순한 용서 이상입니다. “영원히”는 여호와께서 선언하신 결혼의 본질을 규정해줍니다. 여호와께서 결혼관계를 파괴할 수 있는 모든 부정적 요소를 제거하시기에(17-19) 재결합은 이스라엘의 음란으로 좌초한 처음과 달리 ‘영원히’ 지속됩니다(참조, 렘 31:31-34: 겔36:26-27). ‘장가들다’로 옮긴 ‘약혼자로 삼다’는 미래에 있을 새 출발의 확실성을 강조하기 위해 선택된 단어입니다. 신랑이 신부에게 예물을 주듯이 여호와께서 아내 이스라엘에게 의와 사랑으로 가득 찬 결혼생활을 선물로 약속하십니다. 결혼예물로 주어지는 ‘공의와 정의와 은총과 긍휼히 여김과 진실함’은 예언자들의 중심 메시지에 속하는 개념들입니다. ‘공의’(체데크)는 구원과 해방과 공평과 일치를 포함하는 개념이며, ‘정의’(미파트)는 법과 삶의 기본질서를 가리킵니다. ‘은총’(헤세드)과 ‘긍홀히 여김’(라하밈)은 당신 백성을 향하신 여호와의 변함없는 사랑을 표현합니다. 여호와의 진실함은 배반한 이스라엘을 향한 그분의 변함없는 마음으로, 이 진실함 덕분에 이스라엘은 그분의 구원 약속에 헌신할 수 있게 됩니다. 재결합과 더불어 이스라엘의 음란으로 파괴된 자연 질서가 다시 회복됩니다. 심판을 상징하였던 이스르엘(1:4-5)이 이름의 본래적 의미대로 ‘하나님께서 씨를 뿌리시는 곳’이 됩니다. ‘여호와-하늘-비-땅-결실’의 순환적 연결은 자연과 생산이 여호와의 주권과 통제 아래 있음을 보여줍니다. 광야에서 첫사랑을 회복하고 다시 가나안에 들어간 이스라엘이 여호와께 응답할 때, 그분께서는 응답하는(순종하는) 이스라엘에게 자연의 선순환, 곧 축복으로 응답하십니다. 다시 여호와의 아내가 됨으로써 이스라엘의 운명이 완전히 역전됩니다(23). 땅에서 쫓겨났던 자들이 여호와에 의해 다시 땅에 심깁니다.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였던 자’(로루하마)가 긍휼히 여김을 받고, ‘내 백성이 아닌 자’(로암미)가 ‘내 백성’(암미)이 됩니다. 이스라엘은 다시 여호와의 백성이 되고 여호와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언약관계가 회복되어 이스라엘은 여호와를 ‘내 하나님’하고 부르게 됩니다(16).

 

여호와의 새로운 명령(3:1-5)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을 떠났을 때도 변함없는 사랑을 보여주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회복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이라는 큰 대가를 치르셨습니다. 진정한 사랑은 대가를 요구하며, 하나님께서는 그 아들을 내어주셔서 우리의 회복을 이루셨습니다. 이스라엘이 회복되어 그분을 경외하고 은혜를 구하는 날을 약속하십니다.

 

1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이 다른 신을 섬기고 건포도 과자를 즐길지라도 여호와가 그들을 사랑하나니 너는 또 가서 타인의 사랑을 받아 음녀가 된 그 여자를 사랑하라 하시기로 2내가 은 열다섯 개와 보리 한 호멜 반으로 나를 위하여 그를 사고 3그에게 이르기를 너는 많은 날 동안 나와 함께 지내고 음행하지 말며 다른 남자를 따르지 말라 나도 네게 그리하리라 하였노라 4이스라엘 자손들이 많은 날 동안 왕도 없고 지도자도 없고 제사도 없고 주상도 없고 에봇도 없고 드라빔도 없이 지내다가 5그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돌아와서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와 그들의 왕 다윗을 찾고 마지막 날에는 여호와를 경외하므로 여호와와 그의 은총으로 나아가리라(1-5)

 

하나님께서 호세아에게 간음한 아내 고멜을 다시 사랑하라고 명하시며, 고멜을 데려오는 장면을 묘사합니다. 이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다시 사랑하고 회복시키겠다는 상징적인 행동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다시 하나님을 찾고, 다윗의 왕과 함께 회복된 상태를 누리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과 회복의 의도를 나타냅니다.

 

(1) ‘음녀가 된 여자를 사랑하라’(3:1-3)

 

전반에서는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남자 친구의 사랑에 혹하여 간음을 범한 여자를 찾아가서 다시 사랑하라고 명령하시고, 후반절에서는 그 명령의 의미를 해석해주십니다. 중심 단어는 동사 ‘사랑하다’입니다. 여자는 애인을 사랑하고, 호세아는 음녀가 된 여자를 사랑합니다. 이스라엘은 건포도 과자를 사랑하고, 여호와는 이스라엘을 사랑하십니다. 이스라엘의 배반에도 불구하고 여호와의 애정과 관심은 변함이 없습니다. 여호와는 이스라엘의 간음을 법적으로 처리하지(참조, 신 24:1-4) 않으시고 사랑으로 용서하십니다. “건포도 과자”는 제사나 제의적 축제 때 사용된 음식을, “타인의 사랑을 받아”는 우상숭배의 제의적 간음을, “다른 신들”은 가나안의 풍요제의를 주관하는 바알들을 가리킵니다. 명령에 따라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하고 여자를 집으로 데려오지만 호세아는 함께 생활하는 않습니다. 여자는 성적 금욕을 통해 음란의 환부를 제거해내야 합니다. 호세아는 “많은 날 동안” 절제된 애정과 인내를 갖고 여자가 음란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2) 왕권과 제의의 상실(3:4)

 

여자의 자숙기간을 신학적으로 해석합니다. 음란한 여자가 음란을 극복할 때까지 금욕해야 하는 것처럼 우상숭배에 물든 이스라엘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스라엘은 왕권과 제의를 모두 빼앗기고 많은 날 동안 징계의 기간을 보내야 합니다. 격리 중에 여자가 호세아의 집에서 돌봄을 받는 것처럼 이스라엘의 징계도 여호와의 사랑 안에서 진행됩니다. ‘주상’은 제의적 숭배물로 세워진 돌기둥을 ‘에봇’은 제사장이 신탁을 내리는 데 사용하는 제의 도구를, ‘드라빔’은 가정의 안녕과 축복을 관장하는 집안의 수호신을 가리킵니다.

 

(3) 이스라엘의 돌아옴(3:5)

 

왕정과 종교를 빼앗기는 혹독한 징계가 이스라엘에게 구원의 기회로 작용합니다. 가나안의 풍요제의에 탐닉했던 이스라엘이 마침내 여호와께 돌아옵니다. 이스라엘은 더 이상 왕이나 지도자나 제사나 주상이나 에봇이나 드라빔을 찾지 않고 “하나님 여호와와 그들의 왕 다윗”을 찾습니다. ‘그들의 왕 다윗’은 이새의 아들 다윗과 같은 이상적인 통치자를 가리킵니다. 구원시대의 이스라엘은 정치적 분열을 극복하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여호와께 속한 의로운 왕의 통치를 받습니다.


결론적으로, 이 말씀은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깊고 변치 않는지, 그리고 그분이 우리의 삶을 어떻게 회복시키시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우리가 고난과 실패 속에서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분의 회복과 소망을 신뢰할 때, 우리는 새로운 삶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오늘도 우리를 사랑으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며, 그분의 회복하시는 은혜를 경험하는 성도들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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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아(02-01)

 


하나님의 사랑과 회복의 약속

호세아 2장 1-13절


 

구약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영적 타락을 간음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가 언약적이기 때문입니다. 마치 한 남자와 한 여자가 결혼을 통해 서로 서약하고 일평생을 서로 사랑하고 헌신하겠다고 맹세하듯이, 이스라엘도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잘 지키고 유지하여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백성 이스라엘을 향해서 ‘간음하였노라’ 말씀하실 수밖에 없는 하나님의 심정을 묵상해 보겠습니다.

 

 

  • 이스라엘의 경건은 물질적인 기적이었습니다. 경건의 목적이 풍요의 확보에 있었습니다. 이들에게 하나님께서는 풍요와 축복의 신이었습니다. 풍요를 제공해주는 신이 곧 하나님이었습니다.

 

유다와 이스라엘의 화해(1)

우리는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세상에서의 유혹과 불신으로 인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멀어졌다면, 다시 그분께 돌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우리를 사랑하시며, 우리를 회복하고자 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소중히 여길 때, 그분의 사랑을 더 깊이 느낄 수 있습니다.

 

1너희 형제에게는 암미라 하고 너희 자매에게는 루하마라 하라(1)

 

여호와와 이스라엘 사이의 단절된 관계를 보여주는 상징적 이름 ‘로암미’(1:9)와 ‘로루하마’(1:6)가 구원 시대의 이스라엘에게 적용됩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과 유다에게 적대적 관계를 청산하고 화해의 길로 나설 것을 명령하십니다. 이스라엘과 유다는 서로에게 ‘내 백성’(암미)이, ‘긍휼히 여김을 받는 자’(루하마)가 되어야 합니다.

 

고발과 위협(2-5)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을 멀리할 때 어떤 결과가 오는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소중히 여기지 않으면, 결국 우리의 삶은 혼란과 고통으로 가득 차게 됩니다. 우리의 선택이 우리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깊이 생각해보며, 하나님과의 관계를 소중히 여기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2너희 어머니와 논쟁하고 논쟁하라 그는 내 아내가 아니요 나는 그의 남편이 아니라 그가 그의 얼굴에서 음란을 제하게 하고 그 유방 사이에서 음행을 제하게 하라 3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그를 벌거벗겨서 그 나던 날과 같게 할 것이요 그로 광야 같이 되게 하며 마른 땅 같이 되게 하여 목말라 죽게 할 것이며 4내가 그의 자녀를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음란한 자식들임이니라 5그들의 어머니는 음행하였고 그들을 임신했던 자는 부끄러운 일을 행하였나니 이는 그가 이르기를 나는 나를 사랑하는 자들을 따르리니 그들이 내 떡과 내 물과 내 양털과 내 삼과 내 기름과 내 술들을 내게 준다 하였음이라(2-5)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불순종과 배신을 지적하시며, 그들에게 심판을 경고하십니다. 이스라엘은 죄로 인해 고통받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소원해진 결과를 겪게 됩니다. 그러나 이 고통은 그들이 하나님께 돌아오도록 유도하는 하나님의 인내와 사랑의 표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회복되기를 간절히 원하십니다.

 

(1) 법정소송(2)

 

여자의 음행은 이혼의 충분조건에 해당하지만, 남편은 이혼을 통지하지 않고 결혼관계가 깨졌다고 고발합니다. “그는 내 아내가 아니요 나는 그의 남편이 아니라”는 이혼 선언이 아니라, 통상적인 결혼양식(“그는 내 아내요 나는 그의 남편이니라”)을 부정문으로 바꾼 것입니다. 혼인계약을 파기하고 음란을 범한 아내의 배반을 고발하는 말입니다. 아내의 간음에도 불구하고 혼인계약이 유지되길 원하는 남편은 아내에게 계약당사자로서의 책임을 다할 수 있는 기회를 한 번 더 허락합니다. 여자는 얼굴과 유방 사이에서 음란과 음행을, 곧 이방 제의에 속한 표지를 몸과 마음에서 제거해버려야 합니다. 결혼 관계가 지속되기 위해서 여자는 풍요의의 음란으로부터 벗어나야 합니다.

 

(2) 경고과 위협의 말씀(3-4a)

 

남편의 간절하고도 단호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음란과 음행을 제하여 버리지 않는다면, 여자는 혹독한 처벌에 넘겨질 것입니다. 태어나서 버려진 아이처럼 됩니다(참조, 겔 16:4-8). 세상에 막 태어난 아이가 부모의 보호를 받지 못하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처럼 여자도 남편에게서 받았던 물질적 풍요와 사회적 보호(참조. 출 21:10)를 다 빼앗기고 세상에 홀로 버려집니다. 여호와의 긍휼을 빼앗긴 이스라엘은 죽음에 넘겨집니다. 비옥하던 가나안 땅이 황폐해져 광야처럼 식물이 자랄 수 없는 메마른 땅이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음란을 떠나지 않고 우상들과 놀아난다면, 여호와께서 더 이상 농사를 지을 수 없도록 땅을 파괴하여 황무지로 만드실 것입니다.

 

(3) 이스라엘의 음행과 그 동기(4b-5)

 

경고와 위협의 말씀 다음에 이스라엘의 음행을 고발합니다. “나를 사랑하는 자들”은 가나안 사람들이 풍요 다산 제의를 주관하는 신으로 숭배하는 바알들을 가리킵니다. 이스라엘이 애인들을 쫓아갔을 때는 물론 이유가 없지 않았습니다. 애인들이 먹을 것과 마실 것과 입을 것을 준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서 주신 것임에도(8) 이스라엘은 이를 애인들의 선물로 돌립니다. 이스라엘에게 땅의 결실과 축복은 여호와의 선물이 아니라 바알들과 놀아난 해웃값이었습니다. 떡과 물은 생존에 기본적인 물품이고, 양털과 삼(아마)은 각각 겨울옷과 여름옷을 짓는 소재였습니다. 기름은 음식을 만들 때뿐만 아니라 화장품과 의약품으로도 사용됐고, 술은 포도주나 독주를 가리킵니다.

 

판결(6-13)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은 우리가 먼저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소원해졌다면, 그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기도와 말씀을 통해 하나님과의 소통을 강화하고, 그분의 음성을 듣는 것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를 기다리시며, 우리의 회복을 위해 손을 내미십니다. 우리가 그분의 품으로 돌아갈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새로운 시작과 회복의 은혜를 부어주실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고, 그 사랑을 더욱 깊이 누릴 수 있습니다.

 

6그러므로 내가 가시로 그 길을 막으며 담을 쌓아 그로 그 길을 찾지 못하게 하리니 7그가 그 사랑하는 자를 따라갈지라도 미치지 못하며 그들을 찾을지라도 만나지 못할 것이라 그제야 그가 이르기를 내가 본 남편에게로 돌아가리니 그 때의 내 형편이 지금보다 나았음이라 하리라 8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은 내가 그에게 준 것이요 그들이 바알을 위하여 쓴 은과 금도 내가 그에게 더하여 준 것이거늘 그가 알지 못하도다 9그러므로 내가 내 곡식을 그것이 익을 계절에 도로 찾으며 내가 내 새 포도주를 그것이 맛 들 시기에 도로 찾으며 또 그들의 벌거벗은 몸을 가릴 내 양털과 내 삼을 빼앗으리라 10이제 내가 그 수치를 그 사랑하는 자의 눈 앞에 드러내리니 그를 내 손에서 건져낼 사람이 없으리라 11내가 그의 모든 희락과 절기와 월삭과 안식일과 모든 명절을 폐하겠고 12그가 전에 이르기를 이것은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내게 준 값이라 하던 그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를 거칠게 하여 수풀이 되게 하며 들짐승들에게 먹게 하리라 13그가 귀고리와 패물로 장식하고 그가 사랑하는 자를 따라가서 나를 잊어버리고 향을 살라 바알들을 섬긴 시일대로 내가 그에게 벌을 주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6-13)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불순종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사랑하시며 회복의 기회를 주십니다. 그들은 죄로 인해 고통받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마음을 돌이키고 다시 사랑으로 감싸주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회복하시고 새로운 시작을 허락하실 것입니다.

 

(1) 길을 막으시는 여호와(6-7)

 

여호와께서 음란을 치유하기 위해 이스라엘을 징벌하기로 하십니다. 그분은 여자가 애인들을 찾아가지 못하게 가시와 담으로 길을 막아 방해하십니다. 땅을 폐허로 만들어 이스라엘이 바알제의 장소에 찾아갈 수 없게 하십니다. 풍요를 바라며 열심히 바알들을 숭배한 결과가 모든 거주지와 경작지의 파괴뿐임을 보여주십니다. 황폐해져 가는 땅보며 도와달라고 애인들을 찾아보지만 누구 하나 응답하지 않습니다. 여자가 수치를 당해도 아무도 나서서 보호해주지 않습니다. 열심히 음란을 즐기던 자들이 모두 사라지고 여자만 절망 가운데 홀로 남겨집니다. 여자는 더 이상 애인들을 찾을 수 없다는 사실을 절망적으로 인식한 후에야 처음 남편에게로 돌아갑니다. 여호와께로 돌아가려는 이스라엘의 의도는 다분히 현실적입니다. 남편과 함께 살았던 “그 때의 형편이 지금보다” 좋았기에 돌아갑니다. 풍요와 번영의 박탈이 돌아감의 일차적 동기가 됩니다.

 

(2) 누가 풍요를 주관하는가?(8)

 

땅의 결실이 여호와의 축복임에도 이스라엘은 이를 깨닫지 못하고 우상숭배의 결과로 돌렸습니다.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은 가나안 땅에서 생산되는 가장 기본적인 농작물로, 땅의 모든 소출을 대표하는 표현입니다. 이스라엘은 여호와께서 더하여 주신 은과 금을 땅의 풍요를 주관한다고 믿는 우상들을 화려하게 치장하는 데 사용했습니다. “바알을 위하여 쓴 은과 금”은 이스라엘의 배은망덕과 무지를 신랄하게 고발하는 표현입니다. 금과 은은 가나안 땅에서 거의 생산되지 않는, 곧 바알의 축복에 속하지 않는 귀금속이었습니다. 여호와께서 바알들의 능력 밖에 있는 금과 은을 넘치게 주셨지만, 이스라엘은 이마저도 바알들에게 바쳤습니다. “알지 못하도다”는 13절의 “나를 잊어버리고”와 내용적으로 동일합니다.

 

(3) 당신 것을 도로 찾으시는 여호와(9-10)

 

여호와께서 풍요와 번영을 바알의 선물로 돌리는 이스라엘을 징벌하십니다. 이스라엘의 생존에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해주셨던 여호와께서 이제 당신 것을 다시 빼앗으십니다. 곡식이 무르익어 소출을 거두고 여문 포도로 포도주를 만들 때, 곧 가을의 수장절(초막절)을 앞두고 풍요의 기쁨에 들떠있을 때 여호와께서 곡식과 새 포도주를 빼앗아 가십니다. 농작물뿐만 아니라 의복을 만드는 데 필요한 양털과 삼도 빼앗깁니다. 벌거벗겨져 수치를 당합니다. 우상숭배의 간음을 범한 이스라엘이 멸망에 떨어집니다. 소유대명사로 한정한 “내 곡식”과 “내 새 포도주”와 “내 양털과 내 삼”은 땅의 소산을 애인 바알이 준 “내 떡과 내 물과 내 양털과 내 삼과 내 기름과 내 술들”로(5) 착각하는 여자에게 주는 분명한 답변입니다. 이스라엘은 모든 것을 빼앗기고 나서야 땅의 소산의 진정한 주인이 누구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남편이 여자를 발가벗겨 간음을 즐긴 애인들의 눈앞에 그 수치를 드러내지만, 한때 여자 벌거벗음을 즐겼던 애인들은 바라만 볼 뿐입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헐벗게 만들어 징계하실 때 이스라엘이 애써 쫓아다녔던 바알들의 무능력이 극적으로 드러납니다.

 

(4) 여호와의 보응(11-13)

 

땅의 소산을 모두 빼앗기기에 일상적인 삶뿐만 아니라 제의도 파국을 맞습니다. 땅이 결실을 맺지 못하기에 절기가 돌아와도 축제를 즐길 수 없고, 제물로 드릴 것이 없기에 제사를 드리지 못합니다. 모든 명절이 폐하여졌기에 즐거움도 사라집니다. 연례적인 순례 축제와 월례적인 초하룻날과 주례적인 안식일, 곧 모든 절기가 폐지됩니다. 우상숭배에 빠진 이스라엘에 임할 징계의 심판은 삶의 토대가 그 뿌리째 뽑히는 파국적 형벌입니다. 여호와께서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가 자라던 과수원을 수풀로 만들어 들짐승의 차지가 되게 하십니다. 과수원을 보호해주던 돌담이 허물어지고 가시덤불로 뒤덮입니다. 바알 숭배가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의 풍성한 결실을 가져다주기는커녕 땅의 황폐함만 초래합니다. 이스라엘은 “절기와 월삭과 안식일”에 여호와께 예배를 드렸다고 주장하지만, 이스라엘의 명절은 바알의 명절에 불과했습니다. 여호와께 드려져야 할 예배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바알에게 드려졌습니다. 이스라엘의 혼합주의적 우상숭배에 여호와께서 징벌로 응답하십니다. “귀고리와 패물”은 제의와 관련된, 부적처럼 주술적 기능을 갖는 장신구를 가리킵니다(참조, 출 33:4-6).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향한 깊은 사랑으로 항상 부르시며, 우리의 불순종에도 불구하고 결코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회복의 기회를 주시고, 우리가 다시 그분의 사랑 안에서 거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소중히 여길 때, 진정한 회복과 기쁨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만약 하나님과의 관계가 소원해졌다면, 주저하지 말고 그분께 돌아가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위해 힘쓰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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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아(01-01)


부르심의 상징, 하나님의 사랑과 심판

호세아 1장 1-11절


 

‘맨발의 천사’ 최준선 할아버지를 아십니까? 그분은 30년 동안 겨울에도 신발도 양발도 신지 않고 지하철에서 전도하고 다녔습니다. 이런 모습은 이분이 살아계신 동안 미친 사람으로 취급받았습니다. 마지막까지 전도하시면 2003년 지하철에서 전도하시다가 돌아가셨습니다. 하지만 그분은 자신에 대해 “나는 광야의 외치는 자의 소리다.”라고 정체성이 분명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분은 세상에 일반적인 방법이 아닌 다른 모습으로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한 분이었습니다. 호세아 선지자도 일반적인 방법이 아닌 개인적인 모든 삶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전달한 도구가 되어집니다.

 

  • 하나님께서는 호세아를 북 이스라엘의 선지자로 부르셨습니다. 그는 이사야와 미가 선지자들과 동시대 사람입니다. 북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떠나 우상숭배에 빠져들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범죄한 이스라엘을 돌이키고 싶어 하셨습니다. 호세아의 가정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그들에게 교훈하고 있습니다.

 

머리글(1)

이스라엘이 여호와께 죄를 범했음에도 언약관계가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그분의 긍휼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분의 긍휼은 이스라엘이 요청하면 언제나 주어지는 값싼 은총이나, 자식을 방종에 빠뜨리는 맹목적인 사랑이 아닙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고 이스라엘은 그분의 백성이라는 신학적 진술이 원초적 신앙고백에 속하지만, 형해로 남은 신학과 고백으로는 언약관계가 보장될 수 없습니다.

 

1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가 이어 유다 왕이 된 시대 곧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이 이스라엘 왕이 된 시대에 브에리의 아들 호세아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라(1)

 

호세아서 전체의 도입부에 해당합니다. 호세아는 북이스라엘의 선지자로 부름을 받습니다. 유다 왕의 연대기에 따르면 거의 주전 8세기 전체가 이스라엘 왕의 연대기에 따르면 8세기 전반이 호세아의 활동 시기가 됩니다. 이 시기는 북이스라엘이 남유다로부터 분리된 지 200여 년 후입니다. 수집된 말씀에 근거해서 보자면, 호세아는 여로보암(주전 787-747년) 통치 후반부터 사마리아가 함락되기 전까지, 대략 주전 750년대 중반부터 주전 723년까지 30년가량 말씀을 선포했던 것 같습니다. 예언자의 이름 호세아는 “여호와께서 도와주셨다”를 의미합니다.

 

호세아의 결혼과 자녀의 출생(2-9)

우리는 하나님께서 때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방법으로도 말씀하실 수 있으며, 우리의 순종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을 수 있습니다. 비록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의 메시지가 강하게 나타나지만, 호세아서 전체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과 회복의 소망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불순종과 배교의 길을 걸었을지라도, 하나님은 여전히 그들을 향한 사랑을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2여호와께서 처음 호세아에게 말씀하실 때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가서 음란한 여자를 맞이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 이 나라가 여호와를 떠나 크게 음란함이니라 하시니 3이에 그가 가서 디블라임의 딸 고멜을 맞이하였더니 고멜이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매 4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그의 이름을 이스르엘이라 하라 조금 후에 내가 이스르엘의 피를 예후의 집에 갚으며 이스라엘 족속의 나라를 폐할 것임이니라 5그 날에 내가 이스르엘 골짜기에서 이스라엘의 활을 꺾으리라 하시니라 6고멜이 또 임신하여 딸을 낳으매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그의 이름을 로루하마라 하라 내가 다시는 이스라엘 족속을 긍휼히 여겨서 용서하지 않을 것임이니라 7그러나 내가 유다 족속을 긍휼히 여겨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로 구원하겠고 활과 칼이나 전쟁이나 말과 마병으로 구원하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8고멜이 로루하마를 젖뗀 후에 또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매 9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의 이름을 로암미라 하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요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지 아니할 것임이니라(2-9)

 

하나님께서 호세아에게 음란한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라고 명령하시며, 이를 통해 이스라엘의 불성실함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나타냅니다. 호세아는 고멜과 결혼해 세 자녀를 낳는데, 자녀들의 이름은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멀어진 관계를 상징합니다.

 

(1) 고멜과의 결혼(2-3)

 

“음란한 여자를 맞이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는 여호와의 명령은 충격적이고도 도발적입니다. 여호와께서 당신의 예언자를 스캔들의 주인공으로 만드십니다. ‘음란한 여자’는 우상숭배에 물든 여자를 가리킵니다. 구약성경은 자주 우상숭배를 음란으로 고발합니다. 귀를 의심스럽게 만드는 파격적인 명령이 내려진 데는 목적이 없지 않았습니다. 여호와는 호세아의 비정상적인 결혼을 통해 당신과 이스라엘 사이의 뒤틀린 관계를 보여 주십니다. 호세아의 음란한 아내는 남편 여호와를 배반하고 애인과 음란을 즐기는 아내 이스라엘을 상징합니다. 음란한 여자가 남편을 배반하고 정부와 놀아나듯이 이스라엘은 신의를 저버리고 노골적으로 음란을 즐집니다. 이스라엘이 범한 음란은 2장에 의하면 가나안의 풍요 다산제의를 가리킵니다.

 

(2) 첫째 이스르엘의 출생(4-5)

 

고멜이 아들을 낳자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그의 이름을 ‘이스르엘’로 짓게 하시고 그 의미를 해석해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씨를 뿌리신다”를 의미하는 이스르엘은 갈멜 북쪽 평야 지대의 지명입니다. 그 자체로는 축복의 소망을 담고 있는 이름이지만, 여기서는 심판의 표상으로 사용됩니다. ‘이스르엘의 피’는 여로보암 2세의 증조부였던 예후가 오므리 왕조를 멸망시키고 새로운 왕조를 세울 때(845년) 흘린 피를 가리킵니다. ‘이스르엘의 피’는 예후 왕조의 처음과 현재의 폭력적 연속성을 보여주는 표현입니다. 여로보암 시대의 폭력은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왕조를 세운 예후로부터 시작된 뿌리 깊은 죄악이었습니다. 예후 왕조의 폭력적 속성이 여로보암의 통치에서 여호와께서 인내하실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섰습니다. 머지않아 여호와께서 이스르엘의 피를 예후의 집에 갚으시고, 이스라엘 집의 나라를 폐하실 것입니다. “그 날에”(5)는 4절의 “조금 후에”를 받습니다. 심판의 시점이 언제인지는 감춰져 있지만, 이스라엘의 심판은 여호와의 계획에 따라 진행됩니다. 예후에 의해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렸던 이스르엘 골짜기'를 여호와께서 전쟁 무대로 활용해 음란을 범한 이스라엘을 심판하십니다. ‘이스라엘의 활을 꺾다’는 이스라엘이 전쟁에서 패배할 것을 시사해줍니다.

 

(3) 둘째 로루하마의 출생(6)

 

여호와께서 고멜이 낳은 딸에게 주신 이름 ‘로루하마’는 충격 그 자체입니다. “그녀는 긍휼을 받지 못했다”를 의미하

는 '로루하마'는 저주받은 자의 이름에 해당한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더 이상 긍휼히 여기지 않으신다.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지 않고 죄를 용서받을 수 있는 길이 없어진다. 언약관계 안에서 누릴 수 있었던 그분의 긍휼, 곧값없이 주어지는 애정과 돌봄과 축복을 더 이상 기대할 수 없게 된다.

 

(4) 유다의 긍휼(7)

 

이스라엘 족속에게서 긍휼을 거두신 여호와께서 유다 족속은 긍휼히 여겨 구원해주십니다. 유다에게는 긍휼을 베푸시는 이유가 달리 언급되지 않습니다.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로 구원하겠고”는 유다가 언약 관계 안에 있음을 시사해줍니다. 여호와를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섬기는 한에서 유다는 그분의 도움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그분의 구원은 군사력에 의지하지 않습니다. 역사와 민족들의 운명을 주관하시는 여호와의 긍휼이 활과 칼과 말과 마병으로 중무장한 군대로부터 유다를 구원해주십니다.

 

(5) 셋째 아이 로암미(8-9)

 

둘째 임신은 부사 ‘또’로 간단하게 언급하는데(6), 셋째는 “로루하마를 젖 뗀 후에”로 임신 시기를 특별히 알려줍니다. 고대 세계에서는 대략 삼 년 정도 아이에게 젖을 먹였기에, 심판이 최종적으로 확정되기까지 얼마간 기다림의 기간이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구원의 문이 완전히 닫히기 전에 여호와께서 마지막 기회를 주시지만, 이스라엘은 이를 잡지 않습니다. 셋째 아이의 이름 ‘로암미’는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는 동안 이스라엘이 그분으로부터 더 멀리 떠나갔음을 시사해줍니다. 이스라엘은 멸망의 운명을 되돌릴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무시해버립니다. 기다림이 헛된 소망으로 끝나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단호하게 정리하십니다.

둘째 아이의 이름 ‘로루하마’는 심판의 표지 아래 있는 이스라엘이 여전히 여호와의 백성임을 전제하지만, “내 백성이 아님”을 의미하는 ‘로암미’는 출애굽부터 시작하는 여호와와 이스라엘 사이의 언약관계가 완전히 끝장났음을 보여줍니다. ‘로암미’는 출애굽 이전 단계로 되돌아감을 의미합니다. 출애굽에서 시작하는 여호와와 이스라엘의 언약관계가 이스라엘의 음란이라는 암초에 걸려 좌초합니다.

 

이스라엘의 회복과 축복(10-11)

우리 삶에서 때때로 하나님의 징계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징계는 결코 파멸을 위한 것이 아니라, 회복과 새 생명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심판과 은혜의 균형을 깨닫고, 하나님의 사랑에 더욱 깊이 응답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지금 당장은 어려움과 시련이 있더라도, 하나님께서 결국은 회복과 축복으로 인도하실 것을 믿으며 나아가야 합니다.

 

10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의 수가 바닷가의 모래 같이 되어서 헤아릴 수도 없고 셀 수도 없을 것이며 전에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 곳에서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할 것이라 11이에 유다 자손과 이스라엘 자손이 함께 모여 한 우두머리를 세우고 그 땅에서부터 올라오리니 이스르엘의 날이 클 것임이로다(10-11)

 

구속사와 언약관계의 단절을 선언하셨던 여호와께서 멸망의 심판 이후에 새로운 출발이 있을 것을 약속해주십니다. 앗수르의 침략으로 이스라엘은 생존이 어려울 정도로 치명적인 타격을 받지만 끝장나지는 않습니다. 여호와의 주도로 언약관계가 회복되고 축복이 내려집니다. 10절 상반절 “자손의 수가 바닷가의 모래 같이 되어서 헤아릴 수도 없고 셀 수도 없을 것이며”는 하나님께서 족장 아브라함에게 주신 후손의 약속(참조, 창 13:16; 15:5; 22:17; 26:24; 28:14; 32:12)을 배경으로 주어진 말씀입니다. 실현 가능성이 아주 없어 보이는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후손의 약속이 그대로 성취된 것처럼 멸망당한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약속도 마찬가집니다. 이스라엘은 약속을 신뢰하고 그분의 구원사적 개입을 기다리면 됩니다. 10절 하반절은 9절에서 선포된 심판의 극복을 선언합니다. 이스라엘의 음란으로 깨졌던 관계가 다시 회복됩니다. ‘로암미’로 내치셨던 이스라엘이 다시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들’로 인정을 받습니다. 생명이 없는 우상을 섬기다가 죽은 이스라엘을 생명의 하나님께서 다시 생명을 주어 살리십니다.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동시에 회복의 약속을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호세아의 삶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들의 죄와 불순종에 대한 경고를 주셨지만, 그 심판 속에서도 여전히 회복의 길을 열어 두셨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깨고 멀어졌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다시 부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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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아서 서론


호세아서 서론


 

호세아서(Hosea)는 구약 성경의 예언서 중 하나로, 북이스라엘 왕국의 멸망을 예언한 선지자 호세아의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호세아서는 이스라엘의 배신과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주제로 하며, 특히 이스라엘의 우상 숭배와 도덕적 타락을 강하게 비판합니다.

 

1. 저자

호세아서는 소선지서에서 제일 먼저 나옵니다. 호세아가 이 책의 저자라는 주장은(1:1) 별다른 이론 없이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브에리의 아들 호세아는 주전 8세기 중엽에 예언 활동을 했습니다. 그의 사역은 아모스의 사역 도중이나 또는 직후에 시작된 것으로 보입니다. 아모스는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적을 통해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 심판하신다는 위협적인 메시지를 전하였습니다. 호세아서는 구약 성경의 예언서 중 하나로, 북이스라엘(이스라엘 왕국)의 예언자 호세아의 예언을 기록한 책입니다.

 

2. 기록 연대

호세아서의 기록 연대는 대체로 기원전 8세기 중반으로 추정됩니다. 호세아는 이스라엘 왕국의 말기에 활동했으며, 그의 예언은 이스라엘 왕국이 앗수르 제국에 의해 멸망하기 전, 즉 기원전 722년경에 이루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호세아의 예언은 북이스라엘의 부패와 죄악, 그리고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에 대한 경고를 중심으로 하고 있습니다. 호세아서의 정확한 기록 연대는 성경 학자들 사이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대체로 기원전 750년에서 715년 사이로 보입니다. 이사야는 남 유다를 위주로 하는 예언 사역자였으나 북왕국에 대한 언급이 적지 않습니다.

 

3. 역사적 배경

(1) 유다 왕국과 이스라엘 왕국 : 호세아의 활동 시기는 유다 왕국과 이스라엘 왕국이 각각 왕이 다스리던 시기로, 이스라엘 왕국이 쇠퇴하고 있었으며, 유다 왕국은 상대적으로 안정적이었으나 점차 위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2) 이스라엘의 마지막 왕 : 호세아는 이스라엘 왕국의 마지막 왕인 호세아(기원전 732-722년) 동안 활동하였으며, 이 시기는 이스라엘이 앗수르에 의해 멸망하기 직전의 시점입니다.

 

3. 메시지

 

호세아서의 메시지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언약적 관계의 중요성과 이스라엘의 죄와 회복에 대한 경고와 약속을 중심으로 합니다. 호세아의 메시지는 다음과 같은 주요 주제들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1) 하나님의 사랑과 언약 : 호세아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에 대해 변치 않는 사랑을 가지고 있음을 강조합니다. 이스라엘이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여전히 그들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싶어 하십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는 결혼에 비유되며, 이스라엘의 우상 숭배와 불충성은 혼인 관계의 불륜에 비유됩니다.

 

(2) 이스라엘의 죄와 배신 : 이스라엘은 우상 숭배, 불의, 사회적 불평등 등 여러 가지 죄를 저질렀습니다. 호세아는 이스라엘의 도덕적 타락과 불의에 대해 강력하게 비판하며, 이러한 죄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단절시키고 있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3) 회개와 구속의 초대 : 호세아는 이스라엘이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촉구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진심으로 회개하고 돌아올 때 그들을 용서하고 회복시킬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4) 심판과 회복의 예언 : 호세아는 이스라엘의 죄로 인해 심판이 임할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심판 이후에도 이스라엘을 회복시키고 축복할 것이라는 약속을 주십니다. 이스라엘의 회복은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의 결과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5) 도덕적, 영적 회복의 필요성 : 호세아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도덕적, 영적으로 회복될 필요성을 강조하며, 단순한 의식적인 제사나 예배가 아니라 진심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호세아서의 메시지는 하나님과의 관계의 회복과 진정한 회개가 중심에 있으며, 죄와 불신에 대한 경고와 함께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과 자비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4. 개요

 

1:1-9 /슬픈 이름들

1:10-2:1 /

2:2-15 / 음란하고 무지한 백성

2:16-23 / 무지가 회복될 때

      16-17 / 바알의 제거

      18 / 안전과 평화의 보장

      19-20 / 재결합

      21-22 / 축복

       23

 

3:1-5 / 신실하신 하나님

4:1-10 / 용서하신 하나님

4:1-3 / 4-11장 서론

4:4-10 / 이스라엘에 만연한 우상숭배

4:11-19 / 완악한 이스라엘

5:1-7 / 하나님을 떠난 이스라엘

5:8-15 / 징벌하신 하나님

6:1-11 / 힘써 알아야할 하나님

7:1-7 / 사악한 이스라엘

7:8-16 / 죄악이 깊어지는 이스라엘

8:1-14 / 선을 버린 이스라엘

      1-3 / 선을 버린 이스라엘

       4-14 / 구체적인 네 가지

 

9:1-9 / 기쁨이 없는 축제

      1-6 / 축제의 끝

      7-9 / 형벌의 날

9:10-17 / 버림받은 에브라임

      9a / 여호와와 이스라엘 첫 만남

      9b-14 / 에브라임의 종교적 배반

      15-17 / 에브라임의 정치적 배반

10:1-8 / 거짓 기둥을 세운 사마리아

      1-2 / 우상들 - 제단과 주상

      3-4 / 왕권의 부패

      5-6 / 송아지 우상

      7 / 왕권의 멸망

      8 / 제단과 산당

 

10:9-15 / 죄악의 마지막인 이스라엘

      9-10 / 두 가지 죄악

      11-13a / 하나님의 실망

      13b-15 / 멸망의 길

 

11:1-11 / 진노를 돌이키신 여호와

      1-4 / 여호와의 사랑과 이스라엘 배반

      5-7 / 심판의 선고

      8-9 / 진노를 억누른 하나님

      10-11 / 흩어진 자들의 귀환

 

11:12(12:1)-12:14 / 인애와 공의를 행할 이스라엘

      11:12-12:1 / 에브라임의 정치적 거짓

      12:2-6 / 하나님과 다툰 조상 야곱

      7-9 / 장사꾼이 돼버린 에브라임

      10-11 / 참 예배와 거짓 예배

      12-13 / 야곱과 여호와

      14 / 징계의 심판

 

13:1-16 / 죽음을 자초하는 에브라임

      1-3 / 에브라임의 우상숭배

      4-8 / 은혜를 배반당한 여호와

      9-11 / 왕권의 종말

      12-16 / 에브라임의 종말

 

14:1-9 / 구원과 축복의 약속

      1-3 / 여호와께 돌아오라

      4-9 / 구원을 약속하신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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