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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아(01-01)


부르심의 상징, 하나님의 사랑과 심판

호세아 1장 1-11절


 

‘맨발의 천사’ 최준선 할아버지를 아십니까? 그분은 30년 동안 겨울에도 신발도 양발도 신지 않고 지하철에서 전도하고 다녔습니다. 이런 모습은 이분이 살아계신 동안 미친 사람으로 취급받았습니다. 마지막까지 전도하시면 2003년 지하철에서 전도하시다가 돌아가셨습니다. 하지만 그분은 자신에 대해 “나는 광야의 외치는 자의 소리다.”라고 정체성이 분명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분은 세상에 일반적인 방법이 아닌 다른 모습으로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한 분이었습니다. 호세아 선지자도 일반적인 방법이 아닌 개인적인 모든 삶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전달한 도구가 되어집니다.

 

  • 하나님께서는 호세아를 북 이스라엘의 선지자로 부르셨습니다. 그는 이사야와 미가 선지자들과 동시대 사람입니다. 북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떠나 우상숭배에 빠져들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범죄한 이스라엘을 돌이키고 싶어 하셨습니다. 호세아의 가정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그들에게 교훈하고 있습니다.

 

머리글(1)

이스라엘이 여호와께 죄를 범했음에도 언약관계가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그분의 긍휼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분의 긍휼은 이스라엘이 요청하면 언제나 주어지는 값싼 은총이나, 자식을 방종에 빠뜨리는 맹목적인 사랑이 아닙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고 이스라엘은 그분의 백성이라는 신학적 진술이 원초적 신앙고백에 속하지만, 형해로 남은 신학과 고백으로는 언약관계가 보장될 수 없습니다.

 

1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가 이어 유다 왕이 된 시대 곧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이 이스라엘 왕이 된 시대에 브에리의 아들 호세아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라(1)

 

호세아서 전체의 도입부에 해당합니다. 호세아는 북이스라엘의 선지자로 부름을 받습니다. 유다 왕의 연대기에 따르면 거의 주전 8세기 전체가 이스라엘 왕의 연대기에 따르면 8세기 전반이 호세아의 활동 시기가 됩니다. 이 시기는 북이스라엘이 남유다로부터 분리된 지 200여 년 후입니다. 수집된 말씀에 근거해서 보자면, 호세아는 여로보암(주전 787-747년) 통치 후반부터 사마리아가 함락되기 전까지, 대략 주전 750년대 중반부터 주전 723년까지 30년가량 말씀을 선포했던 것 같습니다. 예언자의 이름 호세아는 “여호와께서 도와주셨다”를 의미합니다.

 

호세아의 결혼과 자녀의 출생(2-9)

우리는 하나님께서 때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방법으로도 말씀하실 수 있으며, 우리의 순종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을 수 있습니다. 비록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의 메시지가 강하게 나타나지만, 호세아서 전체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과 회복의 소망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불순종과 배교의 길을 걸었을지라도, 하나님은 여전히 그들을 향한 사랑을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2여호와께서 처음 호세아에게 말씀하실 때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가서 음란한 여자를 맞이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 이 나라가 여호와를 떠나 크게 음란함이니라 하시니 3이에 그가 가서 디블라임의 딸 고멜을 맞이하였더니 고멜이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매 4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그의 이름을 이스르엘이라 하라 조금 후에 내가 이스르엘의 피를 예후의 집에 갚으며 이스라엘 족속의 나라를 폐할 것임이니라 5그 날에 내가 이스르엘 골짜기에서 이스라엘의 활을 꺾으리라 하시니라 6고멜이 또 임신하여 딸을 낳으매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그의 이름을 로루하마라 하라 내가 다시는 이스라엘 족속을 긍휼히 여겨서 용서하지 않을 것임이니라 7그러나 내가 유다 족속을 긍휼히 여겨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로 구원하겠고 활과 칼이나 전쟁이나 말과 마병으로 구원하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8고멜이 로루하마를 젖뗀 후에 또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매 9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의 이름을 로암미라 하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요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지 아니할 것임이니라(2-9)

 

하나님께서 호세아에게 음란한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라고 명령하시며, 이를 통해 이스라엘의 불성실함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나타냅니다. 호세아는 고멜과 결혼해 세 자녀를 낳는데, 자녀들의 이름은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멀어진 관계를 상징합니다.

 

(1) 고멜과의 결혼(2-3)

 

“음란한 여자를 맞이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는 여호와의 명령은 충격적이고도 도발적입니다. 여호와께서 당신의 예언자를 스캔들의 주인공으로 만드십니다. ‘음란한 여자’는 우상숭배에 물든 여자를 가리킵니다. 구약성경은 자주 우상숭배를 음란으로 고발합니다. 귀를 의심스럽게 만드는 파격적인 명령이 내려진 데는 목적이 없지 않았습니다. 여호와는 호세아의 비정상적인 결혼을 통해 당신과 이스라엘 사이의 뒤틀린 관계를 보여 주십니다. 호세아의 음란한 아내는 남편 여호와를 배반하고 애인과 음란을 즐기는 아내 이스라엘을 상징합니다. 음란한 여자가 남편을 배반하고 정부와 놀아나듯이 이스라엘은 신의를 저버리고 노골적으로 음란을 즐집니다. 이스라엘이 범한 음란은 2장에 의하면 가나안의 풍요 다산제의를 가리킵니다.

 

(2) 첫째 이스르엘의 출생(4-5)

 

고멜이 아들을 낳자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그의 이름을 ‘이스르엘’로 짓게 하시고 그 의미를 해석해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씨를 뿌리신다”를 의미하는 이스르엘은 갈멜 북쪽 평야 지대의 지명입니다. 그 자체로는 축복의 소망을 담고 있는 이름이지만, 여기서는 심판의 표상으로 사용됩니다. ‘이스르엘의 피’는 여로보암 2세의 증조부였던 예후가 오므리 왕조를 멸망시키고 새로운 왕조를 세울 때(845년) 흘린 피를 가리킵니다. ‘이스르엘의 피’는 예후 왕조의 처음과 현재의 폭력적 연속성을 보여주는 표현입니다. 여로보암 시대의 폭력은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왕조를 세운 예후로부터 시작된 뿌리 깊은 죄악이었습니다. 예후 왕조의 폭력적 속성이 여로보암의 통치에서 여호와께서 인내하실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섰습니다. 머지않아 여호와께서 이스르엘의 피를 예후의 집에 갚으시고, 이스라엘 집의 나라를 폐하실 것입니다. “그 날에”(5)는 4절의 “조금 후에”를 받습니다. 심판의 시점이 언제인지는 감춰져 있지만, 이스라엘의 심판은 여호와의 계획에 따라 진행됩니다. 예후에 의해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렸던 이스르엘 골짜기'를 여호와께서 전쟁 무대로 활용해 음란을 범한 이스라엘을 심판하십니다. ‘이스라엘의 활을 꺾다’는 이스라엘이 전쟁에서 패배할 것을 시사해줍니다.

 

(3) 둘째 로루하마의 출생(6)

 

여호와께서 고멜이 낳은 딸에게 주신 이름 ‘로루하마’는 충격 그 자체입니다. “그녀는 긍휼을 받지 못했다”를 의미하

는 '로루하마'는 저주받은 자의 이름에 해당한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더 이상 긍휼히 여기지 않으신다.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지 않고 죄를 용서받을 수 있는 길이 없어진다. 언약관계 안에서 누릴 수 있었던 그분의 긍휼, 곧값없이 주어지는 애정과 돌봄과 축복을 더 이상 기대할 수 없게 된다.

 

(4) 유다의 긍휼(7)

 

이스라엘 족속에게서 긍휼을 거두신 여호와께서 유다 족속은 긍휼히 여겨 구원해주십니다. 유다에게는 긍휼을 베푸시는 이유가 달리 언급되지 않습니다.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로 구원하겠고”는 유다가 언약 관계 안에 있음을 시사해줍니다. 여호와를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섬기는 한에서 유다는 그분의 도움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그분의 구원은 군사력에 의지하지 않습니다. 역사와 민족들의 운명을 주관하시는 여호와의 긍휼이 활과 칼과 말과 마병으로 중무장한 군대로부터 유다를 구원해주십니다.

 

(5) 셋째 아이 로암미(8-9)

 

둘째 임신은 부사 ‘또’로 간단하게 언급하는데(6), 셋째는 “로루하마를 젖 뗀 후에”로 임신 시기를 특별히 알려줍니다. 고대 세계에서는 대략 삼 년 정도 아이에게 젖을 먹였기에, 심판이 최종적으로 확정되기까지 얼마간 기다림의 기간이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구원의 문이 완전히 닫히기 전에 여호와께서 마지막 기회를 주시지만, 이스라엘은 이를 잡지 않습니다. 셋째 아이의 이름 ‘로암미’는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는 동안 이스라엘이 그분으로부터 더 멀리 떠나갔음을 시사해줍니다. 이스라엘은 멸망의 운명을 되돌릴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무시해버립니다. 기다림이 헛된 소망으로 끝나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단호하게 정리하십니다.

둘째 아이의 이름 ‘로루하마’는 심판의 표지 아래 있는 이스라엘이 여전히 여호와의 백성임을 전제하지만, “내 백성이 아님”을 의미하는 ‘로암미’는 출애굽부터 시작하는 여호와와 이스라엘 사이의 언약관계가 완전히 끝장났음을 보여줍니다. ‘로암미’는 출애굽 이전 단계로 되돌아감을 의미합니다. 출애굽에서 시작하는 여호와와 이스라엘의 언약관계가 이스라엘의 음란이라는 암초에 걸려 좌초합니다.

 

이스라엘의 회복과 축복(10-11)

우리 삶에서 때때로 하나님의 징계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징계는 결코 파멸을 위한 것이 아니라, 회복과 새 생명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심판과 은혜의 균형을 깨닫고, 하나님의 사랑에 더욱 깊이 응답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지금 당장은 어려움과 시련이 있더라도, 하나님께서 결국은 회복과 축복으로 인도하실 것을 믿으며 나아가야 합니다.

 

10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의 수가 바닷가의 모래 같이 되어서 헤아릴 수도 없고 셀 수도 없을 것이며 전에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 곳에서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할 것이라 11이에 유다 자손과 이스라엘 자손이 함께 모여 한 우두머리를 세우고 그 땅에서부터 올라오리니 이스르엘의 날이 클 것임이로다(10-11)

 

구속사와 언약관계의 단절을 선언하셨던 여호와께서 멸망의 심판 이후에 새로운 출발이 있을 것을 약속해주십니다. 앗수르의 침략으로 이스라엘은 생존이 어려울 정도로 치명적인 타격을 받지만 끝장나지는 않습니다. 여호와의 주도로 언약관계가 회복되고 축복이 내려집니다. 10절 상반절 “자손의 수가 바닷가의 모래 같이 되어서 헤아릴 수도 없고 셀 수도 없을 것이며”는 하나님께서 족장 아브라함에게 주신 후손의 약속(참조, 창 13:16; 15:5; 22:17; 26:24; 28:14; 32:12)을 배경으로 주어진 말씀입니다. 실현 가능성이 아주 없어 보이는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후손의 약속이 그대로 성취된 것처럼 멸망당한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약속도 마찬가집니다. 이스라엘은 약속을 신뢰하고 그분의 구원사적 개입을 기다리면 됩니다. 10절 하반절은 9절에서 선포된 심판의 극복을 선언합니다. 이스라엘의 음란으로 깨졌던 관계가 다시 회복됩니다. ‘로암미’로 내치셨던 이스라엘이 다시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들’로 인정을 받습니다. 생명이 없는 우상을 섬기다가 죽은 이스라엘을 생명의 하나님께서 다시 생명을 주어 살리십니다.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동시에 회복의 약속을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호세아의 삶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들의 죄와 불순종에 대한 경고를 주셨지만, 그 심판 속에서도 여전히 회복의 길을 열어 두셨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깨고 멀어졌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다시 부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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