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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12-02)


유월절의 순종과 구원

출애굽기 12장 21-36절


 

영화나 드라마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클라이막스(climax)라고 합니다. 본문을 짧은 내용 같지만, 출애굽기의 최고의 클라이막스입니다. 출애굽하는 과정에 최고로 클라미막스가 본문입니다. 즉각적으로 순종하여 피를 바름으로써 재앙에서 구원받습니다. 이 사건은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순종이 생명과 직결됨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순종, 구원의 은혜, 그리고 믿음의 실천을 보여줍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순종의 중요성, 구원의 확신, 그리고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대한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 모세는 즉시 이스라엘의 모든 장로들을 소집하여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유월절 예식을 준비하도록 지시했습니다. 구체적이고 장황한 유월절 예식이 단순하고 간결하게 전달되는데 이미 독자들은 다 알고 있기에 문학적 의도로 대거 생략되었을 뿐입니다. 하나님의 경고대로 애굽의 모든 장자와 첫 태생이 죽었고 모세의 지시를 실천하여 피를 문 주변에 발랐던 이스라엘 백성은 재앙을 피했습니다. 결국 바로는 항복을 선언하고 이스라엘 백성을 떠나보냅니다.

 

유월절 재앙을 대비하는 백성(21-28)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체하거나 변명하지 않고, 그대로 순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신앙 생활에서도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순종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구체적인 지침을 주실 때, 그에 대한 순종을 통해 보호와 축복을 약속하십니다. 모세가 장로들에게 유월절 양을 준비하라고 지시했을 때, 이스라엘 백성은 즉각적으로 순종했습니다.

 

21모세가 이스라엘 모든 장로를 불러서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가서 너희의 가족대로 어린 양을 택하여 유월절 양으로 잡고 22우슬초 묶음을 가져다가 그릇에 담은 피에 적셔서 그 피를 문 인방과 좌우 설주에 뿌리고 아침까지 한 사람도 자기 집 문 밖에 나가지 말라 23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재앙을 내리려고 지나가실 때에 문 인방과 좌우 문설주의 피를 보시면 여호와께서 그 문을 넘으시고 멸하는 자에게 너희 집에 들어가서 너희를 치지 못하게 하실 것임이니라 24너희는 이 일을 규례로 삼아 너희와 너희 자손이 영원히 지킬 것이니 25너희는 여호와께서 허락하신 대로 너희에게 주시는 땅에 이를 때에 이 예식을 지킬 것이라 26이 후에 너희의 자녀가 묻기를 이 예식이 무슨 뜻이냐 하거든 27너희는 이르기를 이는 여호와의 유월절 제사라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에게 재앙을 내리실 때에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 자손의 집을 넘으사 우리의 집을 구원하셨느니라 하라 하매 백성이 머리 숙여 경배하니라 28이스라엘 자손이 물러가서 그대로 행하되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명령하신 대로 행하니라(21-28)

 

모세는 이스라엘의 장로회의를 소집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마지막 재앙에 대비하고 애굽을 떠날 채비를 갖추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는 하나님께 전달받은 내용을 그대로 장로들에게 알려 백성들이 실천에 옮기도록 했습니다. 그들은 가족별로 어린 양/염소를 골라서 잡아야 합니다. 이때 앞선 지침대로 만일 양 한 마리를 먹기에 가족의 숫자가 적으면 비슷한 규모의 가정과 한 조를 이룰 수 있습니다. 도살한 양의 피를 그릇에 담은 뒤, 우슬초 다발을 엮어서 묻힌 피를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바릅니다. 성경에 나오는 우슬초는 고대근동 지역에서 서식했던 박하과의 식물입니다. 이것은 향기가 강하고 살균력을 지녔으며 약용으로도 널리 사용되었습니다. 이것의 줄기를 엮어 물이나 피에 담갔다가 특정 물건에 뿌리는 방식으로 썼습니다. 피는 그릇에 담아 우슬초로 문 사방에 묻힌 것으로 보이며 다만 피를 바른 뒤 남은 피는 나중에 모두 땅에 묻었을 것으로 추론됩니다.

그날 밤 가족들은 모두 집안에 머문 채 아침까지밖에 나가서는 안 됩니다. 역시 생략되어 있지만, 그들은 급히 떠날 채비를 갖춘 뒤 그날 밤 유월절 고기와 무교병, 쓴 나물을 먹어야 합니다. 만일 누군가 밖에 나가면 그는 죽음을 피하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문지방에 피가 표시된 가정의 밖으로 벗어나 있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은 마치 방주를 타지 않은 사람과 같으며, 여리고 성에서 창문에 붉은 줄이 표시된 라합의 집 밖에 있는 사람과 같습니다. 여호와께서 애굽 온 땅을 마지막 재앙으로 때리며 지나가실 것입니다. 이때 죽음의 심판자인 ‘파괴자’가 각 사람의 집에 들어가 장자를 타격할 것인데, 피가 묻어 있는 문을 넘어오진 않을 것입니다. 여기서 ‘멸하는 자’, 즉 ‘파괴자’란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여호와의 사자가 파괴자로 활동하는 것을 뜻합니다. 여기서도 여호와와 그 파괴자(여호와의 사자)의 역할은 구분되지 않습니다. 이러한 여호와와 여호와의 사자의 이위일체적 특징, 즉 일체성과 구별성의 동시적 발생은 구약 여기저기에서 발견되는 특징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것을 유월절 규례로 삼아 자손 대대로 영원히 지켜야 합니다. 특히 그들은 이제 애굽에서 해방되어 가나안 땅에 들어갈 것인데, 그 땅에서 이 유월절 예식의 준수는 계속되어야 합니다(25). 만일 그들의 자녀가 이 유월절 예식에 대해 묻는다면, 그들은 이 예식의 기원과 취지, 역사적 의미를 설명해주어야 합니다(27). 요지는 이스라엘 조상들이 애굽에서 종살이 할 때, 유월절, 바로 그 날에 하나님께서 애굽 온 땅에 가장 무서운 재앙을 내리셨는데, 이스라엘 자손의 집들은 모두 ‘넘어가 시어’ 그들을 구원하셨다는 것입니다. 모세의 말을 전해들은 백성은 이제 구원과 해방의 시간이 임박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들은 이미 아홉 번에 걸친 생생한 하나님의 심판을 목격했습니다. 그들은 깊은 감사의 표시로 하나님께 엎드려 경배했습니다. 그들은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 모세가 내린 지침대로 행하여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습니다(28).

 

애굽의 모든 첫 태생이 죽다(29-30)

하나님께서는 오래 참으시지만, 결국 죄에 대해 공의로운 심판을 내리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할 때, 영적 보호와 인도하심을 경험하게 됩니다. 신앙생활에서 순종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이 사건은 우리에게 하나님 앞에서 겸손히 회개하는 마음을 가져야 할 필요성을 일깨워줍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돌이키지 않으면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29밤중에 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모든 처음 난 것 곧 왕위에 앉은 바로의 장자로부터 옥에 갇힌 사람의 장자까지와 가축의 처음 난 것을 다 치시매 30그 밤에 바로와 그 모든 신하와 모든 애굽 사람이 일어나고 애굽에 큰 부르짖음이 있었으니 이는 그 나라에 죽임을 당하지 아니한 집이 하나도 없었음이었더라(29-30)

 

밤이 되자 예고된 마지막 재앙이 실제로 임했습니다. 현실화한 엄청난 재앙에 대한 묘사는 간략하지만, 그것이 경고대로 엄중히 실행되었다는 사실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애굽의 모든 처음 난 것이 다 죽었습니다. 최고 권력자 바로의 장자로부터 가장 비천한 옥중 죄인의 장자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의 가정에 비극적인 재앙이 임했습니다. 여기서는 총칭어법(merism)의 표현이 앞서 “바로의 장자로부터 맷돌 뒤의 여종까지”와 약간 다르게 “바로의 장자로부터 옥에 갇힌 사람의 장자까지”입니다. 둘 다 장자 심판의 철저성과 포괄성에 대한 표현입니다. 물론 그들 가축의 첫 태생도 모두 돌연히 쓰러지 죽었습니다. 갑자기 한밤중에 온 나라가 초상집이 되었습니다. 바로와 온 애굽 백성은 취집 중에 일어났을 것입니다. 근엄한 제국의 왕이 궁중 관례를 벗어나 한밤중에 침대에서 일어나야만 했습니다.

 

바로가 굴복하다(31-36)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약속을 반드시 이루십니다. 인간적인 어려움이 있더라도 하나님의 약속은 변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고 순종할 때, 그분의 계획이 우리의 삶에서 현실로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고 그분의 약속을 기다리는 믿음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항상 약속을 성취하시며, 우리의 순종을 통해 그 계획이 이루어집니다. 신뢰와 순종이 하나님의 역사를 실현하는 열쇠입니다.

 

31밤에 바로가 모세와 아론을 불러서 이르되 너희와 이스라엘 자손은 일어나 내 백성 가운데에서 떠나 너희의 말대로 가서 여호와를 섬기며 32너희가 말한 대로 너희 양과 너희 소도 몰아가고 나를 위하여 축복하라 하며 33애굽 사람들은 말하기를 우리가 다 죽은 자가 되도다 하고 그 백성을 재촉하여 그 땅에서 속히 내보내려 하므로 34그 백성이 발교되지 못한 반죽 담은 그릇을 옷에 싸서 어깨에 메니라 35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의 말대로 하여 애굽 사람에게 은금 패물과 의복을 구하매 36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이스라엘 백성에게 은혜를 입히게 하사 그들이 구하는 대로 주게 하시므로 그들이 애굽 사람의 물품을 취하였더라(31-36)

 

바로는 한밤중에 모세와 아론을 불렀습니다. 이것은 그의 마음이 얼마나 다급했는지 보여줍니다. 바로는 급히 모세와 아론에게 신하를 보냈으며 신하들은 그들을 찾아가 엎드려 바로를 잘 설득해서 애굽을 떠나달라고 읍소했을 것입니다. 따라서 11:8에서 모세가 했던 말은 결코 허튼 소리가 아니었음이 증명됩니다. 그는 앞서 ‘다시는 너를 볼 일이 없을 것이다. 나를 본다면 그날 너는 죽을 것이다’라고 최후통첩을 보낸 바 있습니다(10:28). 이제 대제국의 왕이 자존심을 굽혀 자신이 했던 말을 번복합니다. 살해 협박을 하며 내쫓았던 모세와 아론을 어쩔 수 없이 재소환하여 결국 항복을 선언합니다. 그는 모세와 아론을 향해 ‘일어나 떠나라. 가서 너희가 말한 대로 너희 하나님을 예배하라’고 재촉합니다(31). 더 이상 아무런 조건도 달지 않습니다. 바로는 그들이 원하는 대로 모든 것을 가지고 나가라고 말합니다(32). 이것은 더 이상 허용이 아닌 부탁입니다.

 

흥미롭게도 그는 떠나는 그들에게 자신을 위해 축복 기도를 해달라고 요청합니다. 그가 구한 축복은 애굽의 비극을 끝내달라는 요청일 것입니다. 앞서 바로는 다급한 마음으로 몇 차례 자신을 위한 기도를 부탁한 바 있었습니다(8:8,28; 9:28; 10:17). 그때마다 모세는 하나님께 기도하여 재앙이 멈추게 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 축복을 빌어달라는 요구에 모세는 응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이 관찰됩니다.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족장 야곱이 애굽의 왕을 처음 만났을 때 그를 축복했습니다(창 47:7,10). 이제 430년의 세월이 지나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애굽 왕을 떠날 때, 그는 축복 기도를 요청합니다. 바로를 위한 축복기도로 시작해서 바로에 의한 축복 기도의 요청으로 애굽에서의 역사가 마무리됩니다. 다만 마지막으로 바로가 요구한 축복 기도에 모세는 응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의미하는 신학적 의미는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바그를 통해 받을 열국의 복이 여기에 암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Cassuto). 애굽 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읍소하며 애굽을 속히 떠나달라고 부탁합니다. ‘재촉하다’라는 동사 ‘하자크’의 히필형인데 이것은 물리적 압박을 가하는 행동을 가리킵니다. 말하자면, 애굽 백성은 이스라엘 백성을 강제로 떠밀어 내보냅니다. 흥미롭게도 바로가 이스라엘 백성 보내기를 거절하면서 ‘억지로 잡아두었을’ 때 이 동사의 히필 어간이 사용됩니다(출 9;2). 이제 애굽 백성이 ‘억지로’, ‘강제로’ 이스라엘 백성을 내보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발효되지 않은 반죽이 담긴 그릇을 옷에 싼 뒤 어깨에 멨습니다. 이것은 효모(yeast)를 넣은 반죽이 발효가 시작되기 전에 반죽 그릇을 옷에 쌌다기보다는, NIV 번역처럼 효모를 집어넣지 않은 반죽의 상태를 뜻할 것입니다. 그들은 유월절 무교절 기간에 일체의 효모(누룩)를 제거하고 무교병만 먹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긴급한 여행 중에 먹어야 하기에 그들은 이것을 미리 준비해야 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의 지시대로 애굽 사람을 찾아가 온금 패물과 의복들을 구하여 취했습니다(36).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인의 은혜를 입게 하셨습니다. 앞서 말한 대로, 이것은 애굽 백성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호의를 베푸는 것을 뜻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 백성에게 가서 금은 패물과 옷을 요구하자 엄청난 재앙을 겪은 후 이미 기세가 꺾인 그들은 그것을 순순히 내놓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느껴지는 분위기는 상냥한 친절함은 아닙니다. 전쟁에서 승전국이 전리품을 약탈할 때 사용되는 동사 나짤(일)이 사용되기 때문입니다. 한편으로 이스라엘은 승전국의 자격으로 물품을 취했고, 다른 한편으로 중노동에 시달리며 오랫동안 받지 못한 밀린 품삯을 정당하게 받아 간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본문에서는 순종, 구원의 확신, 그리고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대한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우리는 그분의 보호와 축복을 경험하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은 우리를 구원하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가게 하는 은혜의 상징입니다. 또한, 우리는 이 구원의 이야기를 기억하고 세상에 전하는 사명을 지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에 즉각적으로 순종하며, 그분의 보호하심을 경험하고, 구원의 은혜를 세상에 전하는 삶을 살아가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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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12-01)

 


유월절과 무교절에 대한 규례

출애굽기 12장 1-20절


 

하나님께서는 존재하지 않으니 엘리는 방법 중 하나는 지금까지만은 항상 헤아리는 것입니다. 자신의 믿음을 믿는 것을 교회로 삼는 일, 유일하게 날, 특별한 분을 위해 날, 나를 위해, 응답하지 않을 것을 기록해 둡니다. 매일 하나님을 보며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될 수 있지만, 이 방법을 통해 하나님의 큰 사랑을 잊을 수 있습니다.

 

  • 본문에는 유대인에게 가장 중요한 명절인 유월절이 제정됩니다. 이 명절은 그들의 역사에서 가장 극적인 출애굽 사건을 기념하기 위한 날입니다. 마지막 열 번째 재앙이 애굽에 국가적 장례를 발생시킨 그날, 이스라엘 백성은 해방되었습니다. 그들이 애굽의 라암셋을 떠난 날은 유월절 다음날인 1월 15일, 즉 무교절 첫날입니다(민 33:3). 유월절(1월 14일)과 그 후 일주일간의 무교절(1월 15-21일)까지 총 8일간 이 명절을 지킵니다.

 

유월절 규례(1-11)

구원의 조건을 도덕적이나 윤리적이 삶이나 어떤 종교적인 노력으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은 하나님께서 값이 주신 하나님의 은혜라고 소개합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를 주신 것입니다. “그 피를 양을 먹을 집 문 좌우 설주와 인방에 바르고”(7)라고 하신 것처럼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믿음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1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모세와 아론에게 일러 말씀하시되 2이 달을 너희에게 달의 시작 곧 해의 첫 달이 되게 하고 3너희는 이스라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라 이 달 열흘에 너희 각자가 어린 양을 취할지니 각 가족대로 그 식구를 위하여 어린 양을 취하되 4그 어린 양에 대하여 식구가 너무 적으면 그 집의 이웃과 함께 사람 수를 따라서 하나를 취하며 각 사람이 먹을 수 있는 분량에 따라서 너희 어린 양을 계산할 것이며 5너희 어린 양은 흠 없고 일 년 된 수컷으로 하되 양이나 염소 중에서 취하고 6이 달 열나흗날까지 간직하였다가 해 질 때에 이스라엘 회중이 그 양을 잡고 7그 피를 양을 먹을 집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8그 밤에 그 고기를 불에 구워 무교병과 쓴 나물과 아울러 먹되 9날것으로나 물에 삶아서 먹지 말고 머리와 다리와 내장을 다 불에 구워 먹고 10아침까지 남겨두지 말며 아침까지 남은 것은 곧 불사르라 11너희는 그것을 이렇게 먹을지니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으라 이것이 여호와의 유월절이니라(1-11)

 

국가 이스라엘의 기원이 될 역사적 해방의 날을 기념하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가장 중요한 명절인 유월절을 제정하십니다. 우선 출애굽을 하게 될 그 달을 첫 달, 즉 1월로 삼아야 합니다. 이후 오경에서는 이 해를 원년으로 삼아 햇수를 셉니다(역사서에서는 왕하 6:1에 한 차례). 또한 모든 날짜는 유대력 음력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1월 10일에 각자 식구별로 어린 양이나 염소를 잡아야 합니다(3절). ‘양’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세’는 양과 염소를 포괄하는 단어입니다. 5절은 유월절 양과 염소를 1년생 수컷으로 규정합니다. 만일 식구들 숫자가 적어 양/염소 한 마리의 분량이 너무 많다면, 다른 가족과 함께 먹을 수 있습니다(4). 신약 시대 유월절 관행의 기록에 따르면, 보통 열 명 정도의 사람들이 유월절 만찬을 먹기 위해 미리 숫자를 맞췄다고 합니다(J. Jeremias). 준비된 양/염소는 1년생의 어린 것으로서 흠이 없어야 합니다. 무흠한 짐승의 조건은 레위기 제사법에서 모든 희생제물에 요구되는 자격이기도 합니다.

 

1월 10일에 흠 없는 것으로 미리 골라 준비해놓은 양/염소를 14일까지 간직했다가 그날 ‘해질 때’, 즉 저녁이 되면 그것을 잡습니다(6). 아마 제사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목을 땄을 것입니다. 그 피를 집 좌우 문설주와 윗 문지방(인방)에 바릅니다(7). 그날 밤 각 가족들은 자신의 집 안에서 그 고기를 불에 구워 먹습니다. 이때 무교병과 쓴 나물을 함께 먹어야 합니다. 아마 고기를 구워 먹고 무교병을 먹는 이유는 시간이 급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효모를 넣어 밀가루 반죽을 발효한 뒤 유교병을 만드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고 고기를 삶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쓴 나물을 먹는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 땅에서 당한 고난을 생각하도록 하기 위한 것으로 이해되곤 합니다. 덧붙여 무교병 또한 급히 만들어야 하고 그것은 딱딱하고 맛이 없기 때문에 유월절 무교병에는 ‘고난의 떡’(신 16:3)의 의미가 부여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평상시에 무교병은 유교병과 더불어 이스라엘 백성의 생활 음식의 하나로서 흔하게 많이 만들어 먹었습니다.

고기를 날 것으로 먹거나 삶아서 먹어선 안 되고 구워 먹어야 하며 똥, 불순물, 가죽을 제외하고는 살코기는 물론 머리, 다리, 내장까지 모든 부위를 다 먹어야 합니다(9). 만일 다 먹지 못하고 고기가 남았다면, 아침에 그 남은 것을 불살라 없애야 합니다(10). 그들은 이 유월절 음식을 먹을 때 미리 여행을 떠날 복장을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11). 허리에 띠를 두르고 신발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쥐고 서둘러 그것을 먹어야 합니다. 지팡이(마켈)는 도보로 먼 곳을 다닐 때 사용하는데(창 32:10; 민 22:27), 같은 용도의 막대기를 ‘마테’로도 칭했던 것으로 보입니다(창 38:18; 삼상 14:27). 이렇듯 여행 복장을 갖추고 진행된 그 밤의 예식은 마지막 재앙이 임한 그날의 긴박성을 잘 말해줍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날을 재앙이 ‘지나갔다’는 뜻을 담은 ‘유월절’(페사흐)로 칭하셨습니다. 나중에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이 출애굽기의 유월절 규례는 신명기 유월절 규례에 가서(신 16장) 약간 변경됩니다. 거기서는 고기를 삶아도 되고 양/염소뿐 아니라 소도 잡을 수 있으며, 도살은 집이 아닌 성소에 올라와서 이루어집니다. 따라서 피를 문설주에 바를 필요가 없습니다. 이러한 변경의 이유 또한 뒤에서 논의할 것입니다.

 

유월절에 임할 재앙(12-14)

유월절 사건은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을 위한 사건입니다. 이 사건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동시에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오직 우리는 살아남은 구원을 받은 성도들처럼. 이 사실이 항상 기억되며, 하나님의 구원을 찬양하고 그 은혜를 전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12내가 그 밤에 애굽 땅에 두루 다니며 사람이나 짐승을 막론하고 애굽 땅에 있는 모든 처음 난 것을 다 치고 애굽의 모든 신을 내가 심판하리라 나는 여호와라 13내가 애굽 땅을 칠 때에 그 피가 너희가 사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지라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 14너희는 이 날을 기념하여 여호와의 절기를 삼아 영원한 규례로 대대로 지킬지니라(12-14)

 

하나님께서는 그날 밤 무슨 일이 닥칠지 미리 말씀하시며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대비케 하십니다. 이제 하나님이 직접 애굽 땅에 내려오시어 그 땅을 두루 다니실 것입니다. 동시에 23절에서는 ‘멸하는 자’, 즉 파괴자를 애굽 사람 각각의 집으로 보내신다는 표현이 사용됩니다. 이 파괴자는 여호와의 사자가 분명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애굽 전역을 두루 다니며 애굽의 모든 첫 태생들을 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앞서 말한 대로, 여기에는 사람뿐 아니라 가축도 포함됩니다. 여기서 애굽 신들을 심판한다는 표현이 처음 등장합니다(또한 민 33:4).

어떤 학자들은 열 번째 심판에서만 애굽 신들의 심판이 언급되므로 다른 재앙들을 신들의 심판과 연관 짓는 것에 부정적이거나 신중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열 번째 재앙에서 비로소 하나님께서 앞선 아홉 가지 재앙의 성격을 알려주시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바로의 장자는 바로와 더불어 신격화되어 있었기에 그의 죽음은 또 하나의 애굽 거물급 신의 패배를 의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애굽 땅을 여호와께서 휩쓸며 심판하실 때, 유월절 양의 피를 바른 집은 그 피가 ‘표적’, 즉 ‘표시’(오트)가 되어 재앙을 모면할 것입니다(12). 여기서는 피가 단순히 어떤 표시로서 기능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앞서 각자 집의 문지방과 문설주에 피를 바르라고 명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피를 보시고 그 집은 넘어가실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가족에게는 아무런 재앙도 임하지 않을 것입니다(13). ‘넘어가다’라는 동사에서 유월절의 이름이 유래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 유월절을 기념일로 삼아 여호와의 절기(명절)로 지켜야 합니다(14). 물론 애굽의 심판과 언약 백성의 해방을 기념하기 위한 날입니다. 이것은 영원한 규례로 대대로 전수되어야 합니다.

 

무교절의 제정(15-20)

우리의 삶에서도 하나님께서 매우 역사를 기억하고 감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매일의 삶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인정하고 구원의 역사를 새기며 감사하는 것을 노력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통치의 역사를 잊지 않고 존재하며 감사하는 것은 신앙의 핵심입니다. 이 삶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감사 뜻을 더 잘 이해하고, 그와 그 관계를 더욱 더 할 수 있습니다.

 

15너희는 이레 동안 무교병을 먹을지니 그 첫날에 누룩을 너희 집에서 제하라 무릇 첫날부터 일곱째 날까지 유교병을 먹는 자는 이스라엘에서 끊어지리라 16너희에게 첫날에도 성회요 일곱째 날에도 성회가 되리니 너희는 이 두 날에는 아무 일도 하지 말고 각자의 먹을 것만 갖출 것이니라 17너희는 무교절을 지키라 이 날에 내가 너희 군대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었음이니라 그러므로 너희가 영원한 규례로 삼아 대대로 이 날을 지킬지니라 18첫째 달 그 달 열나흗날 저녁부터 이십일일 저녁까지 너희는 무교병을 먹을 것이요 19이레 동안은 누룩이 너희 집에서 발견되지 아니하도록 하라 무릇 유교물을 먹는 자는 타국인이든지 본국에서 난 자든지를 막론하고 이스라엘 회중에서 끊어지리니 20너희는 아무 유교물이든지 먹지 말고 너희 모든 유하는 곳에서 무교병을 먹을지니라(15-20)

 

유월절 다음날부터 일주일, 즉 1월 15일부터 21일은 무교절 기간입니다. 이 7일 동안 이스라엘 백성은 무교병을 먹어야 합니다. 물론 유월절인 1월 14일 밤에도 그들은 무교병을 먹었습니다. 결국 유월절-무교절의 총 8일 동안 유교병을 먹을 수 없고 모든 누룩을 집에서 제거해야 합니다. 누룩은 미생물이므로 혹시라도 무교병 반죽에 묻어 들어갈 수 있으므로 철저한 제거를 명하셨을 것입니다.

무교절은 첫날과 일곱째 날, 즉 1월 15일과 21일은 성회로 특별하게 지킵니다. 그날은 정규 안식일 외의 절기 안식일로 모든 노동을 멈추어야 합니다. 다만 정규 안식일과 달리 이러한 절기 안식일(성회)에는 그날 먹을 음식 준비는 가능했습니다(16). 하나님께서는 이 절기를 지켜야 하는 이유를 말씀해 주십니다. 그날 ‘내가 너희 군대를’ 애굽에서 이끌고 나왔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쯔바오트’는 ‘군대’로 번역하는 것이 타당합니다. 이스라엘 군대는 총사령관이신 하나님의 주도로 애굽과 전쟁을 치른 뒤 승전국이 되어 그 땅을 떠납니다. 따라서 이 절기를 영원한 규례로 삼아 자손 대대로 지켜야 합니다. 앞서 유월절 규례의 마지막 언급과 동일한데 이 명령에서는 유월절-무교절이 묶어서 지시되고 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1월 14일부터 21일까지 무교병을 먹어야 하며(18), 누룩이 전적으로 집에서 제거되어야 하고, 임시 외국인 체류자(타국인)와 본국인 모두 이 법을 엄중히 지켜야 합니다. 만일 그들이 이 규정을 어기면 무서운 끊어짐의 형벌을 당할 것입니다. ‘끊어짐’(카라트)의 형벌이 무엇인지는 의견이 분분하나 무난하게 죽음의 형벌과 동급의 형벌로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즉시 사형을 당하는 것이 아닌 조기 사망이나 대가 끊기는 형벌일 수 있습니다.


무교절은 특별한 노래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정결함을 유지하며 새로운 시작을 특별히 허락하신 특별한 시점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에서 죄를 범하지 않고 제거하고, 하나님의 정부의 역사를 기억하며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돕습니다. 또한, 무교절의 마음을 나누며 정결함을 실천하고, 하나님과의 새로운 관계를 신뢰할 수 있는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매일 하나님을 인정하고 감사하며,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통해 신앙의 핵심을 실천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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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11-01)


열 번째 장차 재앙 예고

출애굽기 11장 1-10절


 

우리의 인생에는 때로는 짙은 안개와 같은 어려움 속에 있을 수 있습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인생 항로를 정확히 알고 계시고, 그분의 계획은 언제나 우리를 구원으로 이끌어 가십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신다는 것을 믿고,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며 따라가는 것입니다.

 

  • 열 번째 재앙이 임합니다. 이 재앙과 더불어 이스라엘의 가장 중요한 절기인 유월절 무교절이 제정됩니다. 열 번째 재앙 이야기는 이러한 특수성으로 인해 특별하게 설명됩니다. 먼저 현재의 단락에서 열 번째 재앙이 임할 것이라는 긴 경고가 주어집니다(11:1-10). 그 후 유월절-무교절 규례가 제정되고(12:1-20), 이이서 예고된 심판이 실제로 집행됩니다(12:21-36).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마지막 재앙(1-3)

우리는 사역을 통해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과 공의를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즉각적으로 심판을 내리시지 않고, 반복적으로 경고하고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 기회를 할 때, 결국 하나님께서 판단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돌아오라고 여러 차례 기회를 주십니다. 우리의 삶에도 하나님의 뜻을 듣고, 그분의 뜻을 돕기 위해 결단해야 합니다.

 

1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이제 한 가지 재앙을 바로와 애굽에 내린 후에야 그가 너희를 여기서 내보내리라 그가 너희를 내보낼 때에는 여기서 반드시 다 쫓아내리니 2백성에게 말하여 사람들에게 각기 이웃들에게 은금 패물을 구하게 하라 하시더니 3여호와께서 그 백성으로 애굽 사람의 은혜를 받게 하셨고 또 그 사람 모세는 애굽 땅에 있는 바로의 신하와 백성의 눈에 아주 위대하게 보였더라(1-3)

 

하나님께서는 마침내 마지막 열 번째 재앙을 내리십니다. 이것은 이제 남아 있는 ‘한 가지 재앙’입니다. 이 재앙을 겪은 후에야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내보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동사의 강조 표현(가레쉬 예가레쉬, 반드시 내쫓다)과 포괄성을 가리키는 부사 ‘칼라’(모두)를 사용하심으로써 바로가 이번에는 ‘반드시’ 그리고 ‘전면적으로’ 굴복할 것임을 확증하십니다. ‘신부를 보내다’라는 해석은 이어지는 ‘반드시 쫓아내다’와 전혀 어울리지 않습니다. 신부가 시집갈 때 집안에서 내쫓기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단어는 ‘모든’을 뜻하는 ‘콜’과 관련된 단어로서 부사 ‘모두’가 적절해 보입니다. 이 경우 이 부사는 앞의 ‘보내다’가 아닌 뒤의 ‘내다’와 연결되면서 ‘모두 내다’를 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떠날 준비를 갖출 때, 애굽인 이웃을 찾아가 은금 패물을 구하라고 명하십니다(2). 아마 이 패물(켈리)은 값비싼 은금 장신구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 부분은 3:19-22의 반복입니다. 거기서 하나님께서는 이미 애굽을 여러 가지 기적으로 여러 번 친 후에 바로가 이스라엘 백성을 보낼 것이라고 미리 말씀해주셨습니다(3:20). 또한 그 백성으로 하여금 애굽 사람의 호의를 입게 하여 빈손으로 나가지 않게 할 것이며(21), 그들이 애굽 이웃들에게서 은금 패물과 의복을 구하여 그들의 물품을 ‘취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흥미롭게도 이 귀중품들과 물건들은 나중에 성막 건설의 가장 중요한 재료가 됩니다. ‘취하다’의 동사 ‘나짤’은 보통 강제력이 동원된 탈취에 사용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무력적 행동으로도 읽힐 수 있는 이 표현에 대해 앞서 3:22에서 잠깐 설명했지만, 12:36의 주해에서 다시 살피기로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열 번째 재앙에 앞서 이미 애굽 백성이 이스라엘 민족에게 호의(헨 은혜)를 품게 하셨습니다. 또한 바로의 신하와 백성은 아이러니하게도 자신들의 땅에 무서운 재앙을 연거푸 일으킨 모세를 위대한 인물로 추앙했습니다(3). 이것은 존경심보다는 두려움에서 나온 존대로 이해됩니다. 그로 인해 애굽 백성은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을 두려워하면서 그들을 친절히 대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애굽에 대해 승전국의 지위를 갖게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바로의 고집 때문에 선량한 애굽 국민이 피해를 보아야 합니까? 결국 왜 그들의 장남들이 모조리 함께 심판 아래 놓여 죽어야 합니까? 이것은 지도자의 오판과 잘못된 행동이 구성원 전체에게 어떤 피해와 어려움을 가져다주는지 잘 알 수 있게 합니다.

 

바로에게 통보된 마지막 재앙(4-8)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세상으로부터 보호하십니다. 우리의 구원은 우리의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통해 의롭다 함을 얻었습니다. 이는 우리가 하나님의 인정으로 인정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결국 우리는 당신의 은혜로 영생의 길로 인도를 받았습니다.

 

4모세가 바로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밤중에 내가 애굽 가운데로 들어가리니 5애굽 땅에 있는 모든 처음 난 것은 왕위에 앉아 있는 바로의 장자로부터 맷돌 뒤에 있는 몸종의 장자와 모든 가축의 처음 난 것까지 죽으리니 6애굽 온 땅에 전무후무한 큰 부르짖음이 있으리라 7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에게는 사람에게나 짐승에게나 개 한 마리도 그 혀를 움직이지 아니하리니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과 이스라엘 사이를 구별하는 줄을 너희가 알리라 하셨나니 8왕의 이 모든 신하가 내게 내려와 내게 절하며 이르기를 너와 너를 따르는 온 백성은 나가라 한 후에야 내가 나가리라 하고 심히 노하여 바로에게서 나오니라(4-8)

 

이 장면은 앞선 10:29 무대의 연장으로 간주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1-3절은 현재의 최종적 파국을 앞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달된 사전 준비 지시로 이해됩니다. 앞서 ‘우리가 다시 만날 일은 없을 것이다’라고 최후 통첩을 했던 모세는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마지막 재앙의 경고를 전달합니다(4). 이제 하나님께서 밤중에 직접 애굽 한복판으로 들어오실 것입니다. 그리하여 애굽의 모든 처음 난 것들이 다 죽을 것입니다. 그것은 사람과 가축의 첫 태생을 모두 포괄합니다. 사람의 경우 모든 장남이 다 죽을 것인데, 이것은 특징적인 총칭어법(merism)으로 “왕위에 앉아있는 바로의 장자로부터 맷돌 뒤에 있는 몸종의 장자.”라고 표현됩니다. 이것은 “맷돌 뒤에 있는 몸종”은 흥미로운 표현입니다. 당시의 맷돌은 회전식 연자 맷돌이 아닌 위아래 두 짝으로 구성된 손맷돌인데, 곡물을 아랫돌에 놓은 다음 윗돌로 아랫돌을 문지르는 방식으로 사용했습니다. 성경의 증거는 전통적으로 맷돌질은 여성들이 하는 일임을 시사합니다(사 7:2; 욥 31:10; 마 24:41). 삼손은 거대한 연자 맷돌(회전맷돌)을 돌린 것이 아니라 이런 여성 전용의 손맷돌 작업을 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것은 삼손을 모욕하기 위한 조치였던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최고 존엄인 바로의 장자로부터 가장 미천한 여종의 장자까지 모두 심판의 대상에 포괄됩니다. 그리고 거기에 모든 가축의 첫 태생이 포함됩니다(5). 아마 사람이 키운 가축 외에 야생 짐승은 해당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 마지막 재앙은 애굽에 심대한 타격과 슬픔을 안기고, 애굽 온 땅이 초상집이 되며, 그들의 통곡은 전무후무한 부르짖음이 될 것입니다(6). 무엇보다 가정에서 가장 중요하고 부모의 총애를 받는 장자들이 모두 죽습니다. 고대 사회에서 가문의 혈통과 전통을 잇는 첫아들이 지닌 중대한 의미와 위상을 고려할 때, 그들의 죽음은 애굽인들에게 큰 위협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이것은 왕위 계승이 절대적으로 중요했던 바로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은 아무런 피해를 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사람이든 가축이든 어떤 첫 태생도 무사할 것입니다(7). 7절은 더 선명히 이해될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은 개가 이스라엘 백성과 그들의 가축에게 ‘혀를 움직이지(놀리지) 않을 것이다’라는 의미입니다. ‘움직이다’라는 동사의 의미는 개가 으르렁거리거나 짖는 행위를 뜻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것은 누구도 이스라엘 백성을 위협할 수 없다는 의미로 이해됩니다. 한국 격언에 비교하자면, 개가 짖어도 기차는 달립니다. 애굽의 비극과 이스라엘의 보존이 비교됩니다. 이로써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둘 사이를 분명하게 구별하셨다는 것을 다시 깨닫게 될 것입니다(7). 모세는 바로에게 바로의 자존심을 최대로 상하게 하는 최후의 예고를 전달한 뒤 그를 떠납니다(8). ‘당신의 모든 신하들이 나를 찾아와 내게 절을 하며 우리에게 떠나달라고 부탁할 것이다. 그때 비로소 우리가 나갈 것이다.’ 이곳에서 ‘절을 한다’는 뜻의 동사 ‘히쉬타하봐’는 언제나 권위자와 높은 연령의 어르신에게 예를 갖추기 위해 납작 엎드리는 동작입니다. 따라서 바로의 신하들과 백성이 모세에게 엎드린다는 것은 그 순간만큼은 바로의 권위의 자리를 실질적으로 모세가 대체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앞서 말한 대로 이러한 모습은 마치 승전국 군주에게 예를 갖추는 모습을 연상시킵니다. 모세는 나아가 대제국의 제왕인 바로를 향해 분노를 표출하며 떠납니다. 여기서 모세의 분노는 하나님의 분노입니다.

 

열 가지 재앙이 임한 이유(9-10)

세상의 군왕들은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는 것 외에, 결국 하나님의 앞에 무릎을 꿇을 것입니다. 바로 자신이 뜻을 이루려고 했기 때문에 결국, 하나님께서는 실패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완고함은 그와 그의 백성들에게 큰 의미를 가져왔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제외되었고,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자유를 의지하심에도 성도들의 구원을 완전히 이루실 것입니다.

 

9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바로가 너희의 말을 듣지 아니하리라 그러므로 내가 애굽 땅에서 나의 기적을 더하리라 하셨고 10모세와 아론이 이 모든 기적을 바로 앞에서 행하였으나 여호와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으므로 그가 이스라엘 자손을 그 나라에서 보내지 아니하였더라(9-10)

 

두 민족의 운명을 가를 열 번째 재앙을 내리기 전에 하나님께서는 현재까지의 상황을 총정리하여 모세에게 전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앞선 과정을 상기시키십니다. 이미 하나님께서는 바로가 모세의 말을 듣지 않을 것임을 말씀하셨습니다(9). 그 목적은 애굽 땅에서 ‘나의 기적들’(복수)을 계속 더하여 일으키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로써 여호와의 능력과 그분의 이스라엘의 하나님 되심은 갈수록 선명하게 드러났습니다. 인간의 사고로 이해하기 어려운 이러한 하나님의 방식에 대해 앞서 살펴본 바 있습니다. 이것은 죄로 물든 인간의 고집스런 행위에 대한 하나님의 묵인이며, 그런 죄악마저 이용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적 사역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아홉 번의 재앙을 내리시면서 바로와 애굽에게 충분한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경고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로 인해 이제 마지막 재앙은 피할 수 없습니다.

장자 심판의 이야기는 하나의 역사적 사건과 그것과 관련된 법의 제정을 통해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정립합니다. 이것은 그들의 기원과 신분에 대한 역사적 정립이며 신학적 정립입니다.


본문에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장엄한 계획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와 함께 구원의 이중적인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구원의 기회를 주지만, 그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 마지막은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과 심판이 동시에 하나님의 공의가 되는 사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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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10-02)

 


아홉째 흑암의 재앙

출애굽기 10장 21-29절


 

인생의 어둠의 순간에도 하나님의 뜻을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종종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지만, 현대의 하나님의 계획은 여전히 ​​작동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인도하시며, 어려움 속에서도 계획을 세우는 것이 필요합니다. 어둠 속에서도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뜻을 믿고 머무르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평안과 기념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결국, 모든 상황에서 하나님의 계획과 인도를 믿는 것이 우리의 하나님입니다.

 

  • 하나님께서는 바로에게 아홉 번째 재앙을 보내기로 하십니다. 흑암의 재앙입니다. 3일간 지속되면서 대낮에도 빛이 사라진 칠흑 같은 어둠은 극도의 공포심을 불러일으켰을 것입니다. 두려움에 떨던 바로는 다시 모세와 아론을 불러들여 마지막 협상을 진행합니다. 그는 히브리인들의 가축을 볼모로 잡아놓을 심산이었는데, 모세의 즉각적인 거절로 협상은 최종적으로 결렬됩니다.

 

아홉 번째 재앙 : 온 땅이 흑암으로 덮이다(21-29)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해하는 방식을 자신이 계획하는 방식으로 결정합니다. 당신의 계획은 우리가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계속 진행되고 있습니다. 어려움과 어둠 속에서도 하나님의 계획을 믿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실시간 우리의 상황을 기록하시며, 그분의 뜻이 존재합니다. 이러한 신앙은 믿음을 바탕으로 성장합니다. 그러므로 인생의 어두운 순간에도 하나님을 믿으며 그분의 계획을 따로 따로 따로 두어야 합니다.

 

21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하늘을 향하여 네 손을 내밀어 애굽 땅 위에 흑암이 있게 하라 곧 더듬을 만한 흑암이리라 22모세가 하늘을 향하여 손을 내밀매 캄캄한 흑암이 삼 일 동안 애굽 온 땅에 있어서 23그 동안은 사람들이 서로 볼 수 없으며 자기 처소에서 일어나는 자가 없으되 온 이스라엘 자손들이 거주하는 곳에는 빛이 있었더라 24바로가 모세를 불러서 이르되 너희는 가서 여호와를 섬기되 너희의 양과 소는 머물러 두고 너희 어린 것들은 너희와 함께 갈지니라 25모세가 이르되 왕이라도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드릴 제사와 번제물을 우리에게 주어야 하겠고 26우리의 가축도 우리와 함께 가고 한 마리도 남길 수 없으니 이는 우리가 그 중에서 가져다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섬길 것임이며 또 우리가 거기에 이르기까지는 어떤 것으로 여호와를 섬길는지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나 27여호와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으므로 그들 보내기를 기뻐하지 아니하고 28바로가 모세에게 이르되 너는 나를 떠나가고 스스로 삼가 다시 내 얼굴을 보지 말라 네가 내 얼굴을 보는 날에는 죽으리라 29모세가 이르되 당신이 말씀하신 대로 내가 다시는 당신의 얼굴을 보지 아니하리이다(21-29)

 

하나님께서 함께 계시는 부분을 위해 함께하시는 신들의 능력을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겠다고 답하며,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의 마음을 강퍅하게 그리고 그래서 바로 그 사람을 다시 구성하고 선언합니다. 이 운동은 하나님의 권능과 이스라엘의 온전한 은혜를 받을 계획을 보여줍니다.

 

(1) 삼일 동안 임한 흑암의 재앙(21-23)

 

바로와 애굽은 파국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완고한 바로에게 아홉 번째 재앙을 일으키십니다. 이 재앙도 아래 도표에서 보듯이 가로 방향의 두 가지 다른 재앙, 세 번째와 여섯 번째 재앙과 마찬가지로 아무런 사전 경고 없이 발생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늘을 향해 손을 내밀어 흑암을 일으키라고 명령하십니다. 앞서 확인했듯이 모세나 아론이 손을 들 때는 지팡이가 손에 들려 있습니다. 이 흑암은 ‘더듬을 만한 흑암이 될 것이다’라고 하시는데(21), 이것은 ‘사람이 어둠을 느낄 수 있는 흑암’이라는 뜻입니다. 그 흑암은 사람이 느낄 수 있는 흑암은 엄청난 ‘모래 폭풍’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이유로 사람들이 집에서 나올 수 없었을 것입니다. 나일강 유역을 벗어나면 광활한 사막뿐인 애굽에서 이런 모래 폭풍은 일상적인 경험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번에는 아무도 경험해보지 못한 초자연 급의 모래 폭풍이 불게 하신 것으로 추론됩니다. 더구나 그 전국적인 모래 폭풍이 유독 이스라엘 백성이 거주하는 고센 땅에만 임하지 않고 그곳은 평소와 다름없이 빛이 있었다는 것은 이 모래 폭풍이 초자연적 현상의 재앙임을 말해줍니다. 이때 고센 지역의 ‘빛’을 신적인 빛, 하나님의 영광의 빛으로 이해할 필요는 없을 듯합니다. 3일 동안 그곳은 모래 폭풍이 불지 않아 태양이 가려지지 않은 일상적인 상황을 유지했다는 뜻으로 이해됩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지시대로 지팡이를 쥔 두 손을 하늘 높이 들자 캄캄한 흑암이 엄습하여 3일 동안 애굽을 암흑의 땅으로 만들었습니다(22). 3일 동안 지속된 모래 폭풍의 흑암으로 인해 애굽 사람들은 밖에 나갈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빛이 있었습니다. 여기에 몇 가지 중요한 관찰 사항들이 있습니다.

첫째, 이 두려운 흑암의 재앙은 마지막 열 번째 재앙을 예고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컴컴했던 유월절 ‘밤중에’ 애굽의 모든 첫 태생, 백성의 장남과 가축의 맏 배가 죽는 일이 발생하기 때문입니다(11:4).

둘째, 혼돈과 붕괴로 돌아가는 역창조의 주제가 엿보입니다. 사실 앞선 재앙들도 하나님의 창조질서가 일시적으로 무너지는 현상이기에 역창조의 사건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역창조로 인해 애굽은 창조의 질서로부터 붕괴되는 국가로 전락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에는 빛이 있게 하셨다는 것은 이스라엘의 재창조에 대한 분명한 암시로 이해됩니다. 이렇듯 ‘빛과 어둠을 나누심’으로써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중심한 재창조의 작업을 시작하십니다.

셋째, 앞서 모든 재앙을 애굽 신에 대한 심판으로 해석할 수 있었는데, 여기서 흑암의 재앙은 애굽의 주신인 태양신에 대한 심판일 수 있습니다. 태양신은 라(Ra) 혹은 레(Re)로, 나중에는 바람과 공기의 신인 아문(Amun)과 합쳐져 아문-레(Amun-Re)라 불립니다. 재앙들이 어떻게 애굽 신들에 대한 심판과 연결되는지 아래 도표를 통해 종합적으로 확인해볼 수 있습니다. 앞서 설명한 대로, 각각의 재앙들을 공통적 요소를 가진 가로와 세로의 재앙들로 묶을 수 있습니다. 첫 번째 가로축의 묶음은 ‘아침에’ 바로를 만나는데 장소는 강가입니다. 다만 일곱 번째 우박재앙에서 ‘강가에서’가 언급되지 않지만, ‘아침에’로 암시되어 있습니다. 바로는 아침마다 강변 산책을 했던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세로축에서는 지팡이를 사용하는 행동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지팡이 사용에서 가끔 ‘손을 든다’는 것만 언급될 때도 있으나 이 경우 지팡이가 암시되어 있습니다. 특정 재앙들이 어떤 신들에 대한 심판인지에 대해서는 학자들마다 견해차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박 재앙에 대해 어떤 사람은 그것을 ‘누트’(Nut)라는 하늘 여신과 관련시키나, 다른 사람은 곡식 신 세트(Seth)와 관련시킵니다.

마지막 열 번째 재앙은 민(Min)이라는 출산의 신과 관련지을 수 있습니다. 혹은 바로의 장자가 그 자체로 신으로 숭상되었기에 그 신이 죽음을 당함으로써 하나님께 제압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아래 연관 짓기는 무난한 한 가지 예입니다.

 

1. 핏빛 나일강
하피=나일 신
4. 파리 떼
케프리(?)
7. 우박
누트=하늘 신
아침에
강가에서
바로에게
2. 개구리 떼
헤켓=개구리 신

5. 가축 전염병
아피스=황소신
8. 메뚜기
세트=농사신
왕궁에서
바로에게
3.이(모기)
케프리(?)
6. 독종
세크메트
9. 흑암
아몬-레=태양신
장소 불분명
(왕궁암시)
경고 없음
지팡이 사용
애굽와이스라엘
애굽 마술사 등장
(1,2번만 모방)
지팡이 사용없음
애굽에만 임함
지팡이 사용
애굽에만 임함
10. 장자의 죽음
민=출산신
바로의 장자

 

(2) 바로의 최후 저항(24-29)

 

두려움에 사로잡힌 바로는 급히 모세를 다시 불러들였습니다. 그는 다시 협상에 들어갑니다. 이번에도 그들의 예배 여행을 허락해주겠다고 양보하는 척하면서, 또다시 단서를 붙입니다. 자녀들을 포함해서 모두가 떠나도 좋지만, 가축은 남겨두고 떠나라는 제안입니다. 이제 마지막이 될 세 번째 협상안입니다. 그러나 유목민인 이스라엘 백성에게 삶의 근간이자 생명줄인 가축을 놓고 떠나라는 것은 받아들이기 불가능한 조건입니다. 바로의 치졸한 이 세 번째 협상안을 모세는 단호히 거부하면서 가축도 데려가겠다고 통보합니다. 물론 지혜로운 협상술로 볼 수 있는 분명한 명분을 내놓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제사 관행을 들먹입니다. 이스라엘의 제사는 제단에 짐승을 태우는 방식인데(앞서 설명한 대로 이것은 애굽의 제물 드리기와 차이가 난다), 가축을 필수적으로 몰고 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심지어 자신들에게 가축이 없다면, 바로가 희생 제물용으로 대신 채워줘야 할 정도로 가축은 중요합니다. 더구나 그것을 모두 끌고 가야 하는 이유는 그 가축들 중에 어느 것을 골라서 바쳐야 하는지 현장에 도착해서 결정해야 하기 때문입니다(26). 모세의 주장은 훗날 레위기에서 제도화할 희생 짐승의 흠 문제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희생 짐승으로 바칠 가축은 흠이 없어야 합니다(레 1:3; 3:1; 4:3 등), 열두 가지 대표적 홈들을 담은 흠 목록이 레위기 22:17-25에 자세히 나열됩니다. 아마 레위기 법이 있기 전부터 조상 대대로 이스라엘은 흠 없는 짐승을 제물로 바치는 관행을 준수해왔을 것입니다. 모세의 주장이 타당한 이유는 짐승의 마지막 신체검사가 성소에 끌고 온 뒤 거기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최종 합격 판정을 받아야 그 가축이 제단에 태워질 수 있습니다. 집에서는 멀쩡했던 짐승이 성소에 올라가는 도중에 알지 못하는 가운데 어딘가 찢어지거나 문제가 생길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은 모든 짐승을 광야로 데려간 뒤, 현장에서 짐승의 흠을 확인해야만 했습니다. 교묘하면서도 명백히 정당한 모세의 주장 앞에 바로는 더 이상 반론을 펼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바로는 결코 그들을 보낼 수 없었기에 다시 마음을 걸어 잠급니다. 출애굽기 저자는 여기서도 여호와께서 그의 마음을 완고하게 만드셨다고 표현합니다(27). 바로는 최종적 협상 결렬을 선언합니다(28). “다시 내 얼굴을 보지 말라”는 것은 ‘더 이상 나를 만나러 오지 말라’는 통보입니다. 몸조심하고 만일 왕궁을 다시 찾아온다면 그때는 죽을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모세도 맞받아쳐서 최후통첩을 전달합니다. ‘당신 말대로 다시 당신을 볼 일은 없을 것이다(29). 말하자면, 더 이상 바로에게 찾아오지 않겠고 이제 파국만 남았다는 통보입니다.

 

 

하나님의 권능과 계획을 드러내는 중요한 본문입니다. 이 사랑은 우리가 어려움과 어둠 속에서도 하나님의 계획을 실천하는 인도인을 따라야 함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입체 우리를 완전한 자유와 구원으로 인도하시며, 우리의 신앙과 기도자가 당신의 뜻을 이루는 삶을 살도록 도와드립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고 신앙으로 응답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삶을 통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경험하고, 그분의 계획에 따라 신뢰하며 일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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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10-01)


여덟째 메뚜기 재앙

출애굽기 10장 1-20절


 

우리는 교만한 마음 대신 겸손한 마음을 선택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분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아십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겸손히 하나님께 나아갈 때, 그분의 자비와 은혜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삶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과 더욱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매일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 본문에 모세는 다시 바로를 만나러 가라는 하나님의 지시를 받고, 바로를 만나 메뚜기 재앙을 엄중히 경고합니다. 이때 바로는 재앙을 모면하려고 다시 협상안을 제시합니다. 장정들만 가서 예배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가 거부하자 협상은 타결되지 않습니다. 이윽고 무서운 메뚜기 떼가 엄습하자 바로는 급히 모세와 아론을 불러들여 잘못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재앙이 그치자 다시 마음을 바꿉니다.

 

메뚜기 재앙을 예고한 모세(1-6)

어리석은 사람들은 상황이 악화되기 전까지 문제를 인식하지 못합니다. 교만한 사람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고집을 부립니다. 이러한 태도는 결국 더 큰 손실을 초래합니다. 문제를 미리 인식하고 해결하려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항상 겸손함과 열린 마음이 중요합니다. 바로의 완악한 모습을 살펴보겠습니다.

 

1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바로에게로 들어가라 내가 그의 마음과 그의 신하들의 마음을 완강하게 함은 나의 표징을 그들 중에 보이기 위함이며 2네게 내가 애굽에서 행한 일들 곧 내가 그들 가운데에서 행한 표징을 네 아들과 네 자손의 귀에 전하기 위함이라 너희는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1-2)

열 가지 재앙(7:14-12:30)

재앙의 유형 재앙의 기간 특이사항 성경본문
아침 일찍 바로 앞에 선 모세 (7:15) 피(나일강) 7일 애굽 마술사도 행함 7:14-25
개구리 하루 애굽 마술사도 행함 8:1-15
- 애굽 마술사가 행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말함 8:16-19
아침 일찍 바로 앞에 선 모세 (8:20) 파리 하루 이스라엘의 주거지 고센 땅에는 파리가 없음 바로의 번복 8:20-32
가축의 죽음 - 이스라엘의 가축은 죽지 않음 9:1-7
곪는 종기 - 애굽사람과 짐승에게만 생김 9:8-12
아침 일찍 바로 앞에 선 모세 (9:13) 우박 즉시 그침 요청 여호와의 말씀을 두려워한 애굽 사람의 가축은 살아남음, 고센 땅에는 우박이 없음 9:13-35
메뚜기 즉시 그침 요청 아침에 동풍이 메뚜기를 불어옴 남자만 출애굽 허락 10:1-20
짙은 어둠 3일 가축을 제외한 출애굽 허락 10:21-29
최악의 재앙 맏아들 사망 밤중 이스라엘은 어린 양의 피로 구원받음 11:1-12:30

여호와께서는 다시 모세를 바로에게 보내십니다. 이때 바로가 왜 완고한 마음을 바꾸지 않았는지를 알려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의도적으로 바로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습니다. 물론 바로의 완고함은 본인의 자유의지에 따는 자발적 결정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동시에 하나님에 의해 생긴 심리 적용임을 밝힙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비로의 마음을 통제하시는 것인데, 여기서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고하게 만드신 목적이 처음으로 구체적으로 설명됩니다. 하나님께서 바로와 그의 신하들 앞에서 기적들(표징)을 연달아 일으키시기 위함입니다(2). 이것은 인간의 이성으로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병 주고 약주는 괴팍한 분이 아닙니까? 카수토는 하나님의 이런 비논리성은 후대의 사상, 특히 그리스 철학에 기반하여 고대 히브리어 본문을 읽으려는 시도에서 오는 괴리감이라고 설명합니다. 당대의 독자들에게, 그리고 히브리 사상으로는 이상할 것이 없다는 주장입니다. 그러나 구약은 역사에 개입하시면서 궁극적으로 인간의 생각과 계획을 통제하시는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 자유하심을 교훈합니다. 가룟 유다는 이미 작정된 길로 갔으며 바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의 주권적 결정과 섭리를 다 이해할 수 없기에 신정론 온 영원한 수수께끼로 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죄로 물든 본성에 따른 행동을 자주 묵인하고 허용하신다는 해석도 가능합니다. 하나님은 통제 가능하지만 내버려 두십니다.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롬 1:24-26). 이것은 죄가 죄로 밝히 드러나게 하심이며, 역설적으로 그들이 그 죄에 대한 심판을 받게 하고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드러내시기 위함입니다(롬 2:5). 성경은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수동적 묵인을 그분의 능동적인 작업인 것처럼 표현한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바로와 애굽은 거듭된 심판을 받고 여호와의 능력과 그분의 하나님 되심은 더욱 밝히 드러납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과 그의 후손들의 귀에 애굽에서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과 이적들을 이야기해주어야 합니다. 모세의 말을 전해 들은 애굽 백성은 하나님께서 전능한 여호와이심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3).

 

여덟 번째 재앙 : 메뚜기 떼가 엄습(3-15)

성도들은 하나님의 명령에 대해 자신이 원하는 때만 순종하는 것은 진정한 순종이 아닙니다. 진짜 순종은 끝까지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타협하는 순간부터 우리는 범죄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종하라고 요구하시며, 그 안에는 놀라운 복이 있습니다. 때로는 우리의 의지로 완전히 순종하기 어려운 상황이 있으니, 성령의 능력을 덧입어 조건 없이 끝까지 순종해야 합니다.

 

3모세와 아론이 바로에게 들어가서 그에게 이르되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어느 때까지 내 앞에 겸비하지 아니하겠느냐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라 4네가 만일 내 백성 보내기를 거절하면 내일 내가 메뚜기를 네 경내에 들어가게 하리니 5메뚜기가 지면을 덮어서 사람이 땅을 볼 수 없을 것이라 메뚜기가 네게 남은 그것 곧 우박을 면하고 남은 것을 먹으며 너희를 위하여 들에서 자라나는 모든 나무를 먹을 것이며 6또 네 집들과 네 모든 신하의 집들과 모든 애굽 사람의 집들에 가득하리니 이는 네 아버지와 네 조상이 이 땅에 있었던 그 날로부터 오늘까지 보지 못하였던 것이리라 하셨다 하고 돌이켜 바로에게서 나오니 7바로의 신하들이 그에게 말하되 어느 때까지 이 사람이 우리의 함정이 되리이까 그 사람들을 보내어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게 하소서 왕은 아직도 애굽이 망한 줄을 알지 못하시나이까 하고 8모세와 아론을 바로에게로 다시 데려오니 바로가 그들에게 이르되 가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라 갈 자는 누구 누구냐 9모세가 이르되 우리가 여호와 앞에 절기를 지킬 것인즉 우리가 남녀 노소와 양과 소를 데리고 가겠나이다 10바로가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와 너희의 어린 아이들을 보내면 여호와가 너희와 함께 함과 같으니라 보라 그것이 너희에게는 나쁜 것이니라 11그렇게 하지 말고 너희 장정만 가서 여호와를 섬기라 이것이 너희가 구하는 바니라 이에 그들이 바로 앞에서 쫓겨나니라 12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애굽 땅 위에 네 손을 내밀어 메뚜기를 애굽 땅에 올라오게 하여 우박에 상하지 아니한 밭의 모든 채소를 먹게 하라 13모세가 애굽 땅 위에 그 지팡이를 들매 여호와께서 동풍을 일으켜 온 낮과 온 밤에 불게 하시니 아침이 되매 동풍이 메뚜기를 불어 들인지라 14메뚜기가 애굽 온 땅에 이르러 그 사방에 내리매 그 피해가 심하니 이런 메뚜기는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을 것이라 15메뚜기가 온 땅을 덮어 땅이 어둡게 되었으며 메뚜기가 우박에 상하지 아니한 밭의 채소와 나무 열매를 다 먹었으므로 애굽 온 땅에서 나무나 밭의 채소나 푸른 것은 남지 아니하였더라(3-15)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애굽의 바로에게 메뚜기 재앙을 경고하십니다. 바로는 하나님께 회개를 요청하지만, 그의 마음은 완고하여 결국 순종하지 않습니다. 메뚜기는 애굽의 모든 것을 황폐하게 만들며,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게 됩니다.

 

(1) 메뚜기 재앙에 대한 경고(3-11)

 

모세와 아론은 하나님의 지시대로 바로를 만나 하나님의 경고를 그대로 전했습니다. 만일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어 백성을 보내지 않으면 이제 메뚜기 재앙이 애굽 영토에(“경내에”) 임할 것입니다. 메뚜기떼가 온 지면을 덮어 사방을 볼 수 없을 만큼 몰려올 것이며 모든 것을 먹어 치울 것입니다. 현재 우박으로 산천초목이 초토화되어 있는 상황에서 그나마 남은 풀과 나무가 모두 뜯길 것입니다. 특히 5절의 “들에서 자라는 모든 나무”의 원문 뜻은 ‘싹이 나온 모든 나무’입니다. 우박을 맞아 만신창이가 된 나무들에 겨우 다시 싹이 났지만, 메뚜기가 그것마저 모두 뜯어 먹습니다. 독자들은 자연스럽게 우박 재앙을 면한 밀과 쌀보리도 이제 싹이 나면서 모두 뜯겼을 것으로 예상할 수 있지만, 이것들은 삼과 보리보다 두 달 정도 늦게 파종과 수확을 하므로 아직 싹이 트지 않았을 것으로 보입니다. 만일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애굽 국민을 위해 최소한의 것은 남겨두는 자비를 베푸셨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박에 상하지 아니한 밭의 모든 채소”에는(12) 밀과 쌀보리의 싹이 포함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메뚜기 떼의 창궐은 너무 극심하여 심지어 바로의 궁전과 신하들의 집, 그리고 애굽 온 백성의 집까지 들이닥칠 것이다. 이것은 전무후무한 메뚜기 재앙이 될 것입니다(6). 모세는 이 경고를 통보하고 바로를 떠났습니다. 바로 곁에 서 있던 신하들은 모세의 경고를 듣고 두려워하였습니다. 그들은 바로를 설득하면서 애굽이 망하는 것을(과거나 과거완료의 의미인 “망한 줄을”보다는) 아직도 모르냐고 호소합니다. 그들은 모세로 인해 이집트가 ‘덫’(함정)에 걸렸다면서 그의 요구를 들어주어 덫에서 빠져나와야 한다고 호소합니다(7). 바로는 신하들의 건의를 받아들여 모세와 아론을 다시 불러들입니다. 다시 협상이 시작됩니다. 그러나 바로는 여전히 이스라엘 백성을 보낼 마음이 없습니다. 그는 광야로 예배드리러 떠날 사람들의 명단을 요구한다. 두 번째 타협안입니다. 바로는 앞서 네 번째의 파리 재앙이 닥치자 8:28에서 첫 번째 타협안을 내놓은 바 있습니다: ‘가되, 멀리 가지는 마라.’ 지금 그는 예고된 메뚜기 재앙을 두려워하면서도 일부만 보내겠다는 새로운 타협안을 제시합니다. 모세는 일언지하에 거절하면서 이스라엘 백성 모두가, 남녀노소와 모든 자녀가 함께 떠나야 한다고 말합니다. 모세의 모습은 제국의 왕 앞에서 위엄 있고 그의 요구는 당당합니다. 바로가 모세의 요구에 결국 응하지 않음으로써 협상은 결렬됩니다. 그는 자신이 모세의 요구대로 장정과 아이들을 보낼 수 없으니 ‘가되, 장정만 가고 그 외 모든 것을 두고 가라’고 말합니다(11). 그는 모세의 요구를 완강하게 거절하면서 지금 히브리인들이 바라는 것이 예배를 드리는 것이니(11) 장정만 가도 충분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협상이 결렬되자 파라오는 모세와 아론을 쫓아냈습니다.

 

(2) 메뚜기 떼가 모든 식물(植物)을 삼키다(12-15)

 

내쫓긴 모세에게 하나님께서 손을 내밀어 메뚜기를 불러들여 우박 재앙에서 남겨진 애굽의 모든 초목을 뜯어 먹게 하라고 명하십니다. 모세가 지팡이를 들어 올리자 여호와께서 동풍이 온종일 불게 하시어 다음 날 아침 메뚜기 떼가 온 이집트 땅으로 날아오게 하셨다. 여기서 동풍과 서풍은 이집트 기준이 아닌 가나안 기준으로 이해된다. 이집트에 메뚜기를 물고 오는 바람은 남쪽 수단(Sudan)의 사하라 사막에서 부는 뜨거운 계절풍입니다. 사실은 이것이 남풍임에도 불구하고 ‘동풍’으로 표현되는 것은 히브리인들에게는 동풍이 아마 맹렬한 바람에 대한 일반적인 표현이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가나안 땅에서 동풍은 동쪽의 뜨겁고 메마른 사막 지역에서 불어오는 심판의 바람이었으며(시 48:7; 겔 27:26;호 13:15) 가뭄을 일으키는 바람이었습니다(겔 17:10; 19:12;욘 4:8). 대지를 컴컴하게 덮은 메뚜기 때의 규모는 전무후무할 정도로 엄청났습니다(14). 그것은 애굽에 남아 있는 모든 푸른 초목을 뜯어 먹었습니다. 현재의 메뚜기 재앙 또한 애굽 신에 대한 심판이라는 관점에서 이해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생명의 신이시스(Isis), 곡물 신 세트(Seth)와 민(Min), 혹은 메뚜기 떼로부터 보호하는 신 세라피아(Serapia)를 굴욕적으로 만든 재앙일 수 있습니다.

 

바로의 거듭되는 거짓말(16-20)

우리는 바로의 거짓말을 통해 진정한 회개와 순종의 중요성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마음을 정직하게 드러내는 것이 필요합니다. 진실한 회개로 나아갈 때,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약속과 결단을 기억하시며, 그에 따라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순종이 따르지 않는 회개는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진실된 마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러한 태도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과 더욱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16바로가 모세와 아론을 급히 불러 이르되 내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와 너희에게 죄를 지었으니 17바라건대 이번만 나의 죄를 용서하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구하여 이 죽음만은 내게서 떠나게 하라 18그가 바로에게서 나가서 여호와께 구하매 19여호와께서 돌이켜 강렬한 서풍을 불게 하사 메뚜기를 홍해에 몰아넣으시니 애굽 온 땅에 메뚜기가 하나도 남지 아니하니라 20그러나 여호와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으므로 이스라엘 자손을 보내지 아니하였더라(16-20)

 

모세가 경고한 대로 무서운 메뚜기 떼의 공격을 받은 바로는 다시 모세를 급히 불러 재차 자신이 잘못을 범했다고 고백하여 용서를 구합니다. 이것은 우박 재앙 이후에 있었던 고백(9:27)에 이은 파라오의 두 번째 죄 고백입니다. 그는 메뚜기로 인한 애굽의 ‘죽음’, 즉 재앙을 없애달라고 부탁합니다. 모세는 바로를 떠나 여호와께 메뚜기를 거두어달라고 기도했습니다(18). 하나님께서 이번에는 강한 바람을 반대편, 즉 서쪽에서 일으켜 불게 하셨습니다. 앞서 말한 대로, 이것은 가나안 땅을 기준으로 서쪽이며 동풍과 달리 그곳에서 서풍은 지중해로부터 오는 선선한 바람입니다. 강한 서풍이 메뚜기를 다시 홍해로 몰아넣자 애굽 땅에서 모든 메뚜기가 제거되었습니다. 사실은 애굽을 기준으로 지중해에서 불어온 북풍이 메뚜기 떼를 멀리 남쪽의 홍해 연안으로 내몰았을 것입니다. 메뚜기 떼가 사라지자 바로의 마음이 다시 바뀌었습니다. 여기서도 저자는 여호와께서 그의 마음을 완악하게 만들었다고 표현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진정한 순종의 의미를 깨달아야 합니다. 교만한 마음 대신 겸손한 마음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분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진정한 순종은 순간적인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우리가 겸손히 하나님께 나아갈 때, 그분의 자비와 은혜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삶을 통해 하나님과 더욱 가까워지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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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09-02)


일곱째 우박 재앙

출애굽기 9장 13-35절


 

좋은 운동선수가 되기 위해서는 좋은 코치가 필수적입니다. 프로 선수와 동네 선수의 차이는 코치의 존재 여부에 있습니다. 코치는 선수가 잘못한 점을 지속적으로 지적하고, 슬럼프에 빠졌을 때 회복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유명한 선수들은 개인 전담코치를 두고 자신의 잘못을 지적받아 더 나은 성적을 유지합니다. 잘못을 지적받을 때 열린 자세를 가지는 것이 중요하며, 닫힌 마음은 문제를 악화시킬 수 있습니다.

 

  • 여섯 번째의 피부병인 독종의 재앙에 이어서 일곱 번째의 우박 재앙이 임합니다. 재앙의 강도와 범위는 더욱 심각해집니다. 돌덩어리 같은 큼지막한 우박이 쏟아지는 전국적 재앙이 될 것이며, 땅 위에 있는 모든 것들이 초토화할 것입니다. 이번에도 하나님 백성의 거주지인 고센 땅만 재앙을 면합니다. 동시에 하나님의 경고를 두려워한 애굽 백성들도 미리 피신하고 대비하여 피해를 입지 않습니다.

 

일곱 번째 우박 재앙에 대한 경고(13-21)

재앙이 임할 것이라는 경고는 바로가 스스로 선택한 결과라는 점도 중요합니다. 우리는 자신의 선택이 가져오는 결과를 책임져야 함을 기억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을 보호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 진정으로 의지하는 자는 그분의 보호를 받을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러한 교훈들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욱 깊이 있게 다지며,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13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바로 앞에 서서 그에게 이르기를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에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 14내가 이번에는 모든 재앙을 너와 네 신하와 네 백성에게 내려 온 천하에 나와 같은 자가 없음을 네가 알게 하리라 15내가 손을 펴서 돌림병으로 너와 네 백성을 쳤더라면 네가 세상에서 끊어졌을 것이나 16내가 너를 세웠음은 나의 능력을 네게 보이고 내 이름이 온 천하에 전파되게 하려 하였음이니라 17네가 여전히 내 백성 앞에 교만하여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느냐 18내일 이맘때면 내가 무거운 우박을 내리리니 애굽 나라가 세워진 그 날로부터 지금까지 그와 같은 일이 없었더라 19이제 사람을 보내어 네 가축과 네 들에 있는 것을 다 모으라 사람이나 짐승이나 무릇 들에 있어서 집에 돌아오지 않는 것들에게는 우박이 그 위에 내리리니 그것들이 죽으리라 하셨다 하라 하시니라 20바로의 신하 중에 여호와의 말씀을 두려워하는 자들은 그 종들과 가축을 집으로 피하여 들였으나 21여호와의 말씀을 마음에 두지 아니하는 사람은 그의 종들과 가축을 들에 그대로 두었더라(13-21)

 

바로는 여섯 번째의 독종 재앙 앞에서 별다른 마음의 동요가 없었으며 완고한 고집은 여전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일곱 번째의 우박 재앙을 준비하십니다. 이것은 앞선 재앙들과 비교할 수 없이 강하고 치명적인 재앙이 될 것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지시대로 ‘아침 일찍’ 바로에게 가서 재차 동일한 요구를 전달해야 합니다. 여기서도 ‘아침 일찍’은 아마도 며칠간 계속되었을 독종의 재앙이 그친 뒤의 어느 날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엄중히 경고하십니다. 앞으로 ‘모든 재앙들’을 쏟아내면, 바로와 그의 신하와 애굽 백성은 하나님 같은 분이 ‘온 땅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14). 이 재앙에서 ‘모든’, ‘온’, ‘전부’를 뜻하는 ‘콜’이 반복적으로 사용됩니다: 모든 재앙, 온 천하, 모든 사람, 모든 채소, 밭에 있는 모든 것, 들의 모든 나무. 이러한 표현은 이 재앙들의 위력과 그것이 끼칠 광범한 포괄성을 말해줍니다. 이 재앙은 전면적인 파국을 초래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재앙들을 ‘바로의 심장’(원문의 의미)과 그의 신하들과 백성들에게 내리실 것입니다. 여기서 바로의 심장에 재앙이 타격을 가한다는 표현은 그가 치명상을 입는다는 뜻일 수 있으며, 또는 그가 받을 심리적 충격의 측면을 부각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앞선 전염병 재앙으로 바로와 애굽을 멸망시키지 않았는지 알려주십니다(15). 만일 다섯 번째 재앙인 전염병으로 가축뿐 아니라 사람까지 쳤다면, 바로도 그때 세상에서 사라졌을 것입니다. 여섯 번째인 독종의 재앙은 사람과 가축 모두에게 발생했지만, 그것이 목숨을 빼앗아가는 질병은 아니었습니다. 그러한 이유로 바로는 여섯 번째 재앙 앞에서는 꿈쩍도 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전염병을 돌려 바로를 쓰러트리지 않으신 이유는 아직 바로를 살려두어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주시고, 온 땅에 그분의 이름을 알리기 위함이었습니다(16). 어쨌든 그는 전염병으로 가축이 몰살되고 독종으로 가축과 사람이 신음하는 모습을 보면서 여호와가 어떤 분인지 깨달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바로의 교만은 여전하였으며, 그는 이스라엘 백성을 보내주지 않았습니다(17).

이에 하나님께서는 우박 재앙으로 바로를 징계하십니다. ‘내일 이 시간에’ 하나님께서는 ‘무거운’ 우박을 내리실 것입니다. ‘무거운’이라는 단어 ‘카베드’는 줄곧 바로의 ‘완고한’ 마음에 사용되었습니다. 이제 그의 고집에 걸맞게 돌처럼 단단한 커다란 우박이 애굽 온 땅에 쏟아질 것입니다. 학자들은 애굽 일부 지역에서 우박은 계절에 따른 정상적인 기상 현상이었다고 말합니다. 통상적으로 우박은 잠깐 쏟아지다 그칩니다. 그러나 애굽의 건조한 기후 조건을 고려할 때, 이 엄청난 우박 비는 특별한 일이었으며, 잠깐이 아닌 장시간 쏟아졌습니다. 게다가 그 우박이 고센 땅을 제외하고 전국적으로 쏟아졌다는 점에서 초자연적인 현상이었습니다. 이런 우박 재앙은 애굽 역사상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입니다(18).

하나님께서는 미리 모든 사람에게 우박 재앙에 대한 경고를 하셨습니다. 바로는 애굽 전국에 즉시 사람을 보내 미리 피신하라고 경고해야 합니다. 들판의 모든 사람과 가축은 집 안으로, 또한 안전한 곳으로 대피해야 합니다(19). 바로는 아마 이 경고를 전국에 알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다만 그의 신하들은 궁중에 소문이 퍼졌을 것이기에 우박 재앙이 곧 닥친다는 사실을 알았을 것입니다. 신하들 중에서 그 경고를 믿은 사람들은 모두 대책을 마련하여 피해를 입지 않았으나, 그것을 무시한 사람들은 재앙의 희생물이 되었습니다(19).

참고로 앞의 재앙과 이어지는 여덟 번째의 메뚜기 재앙과 더불어 6,7,8번째 재앙은 모두 공중에서 발생합니다. 또한 현재의 우박 재앙도 애굽 신에 대한 심판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늘에서 우박이 쏟아지는 현상은 하늘의 통제권을 하늘 여신 누트(Nut)가 아닌 하나님께서 쥐고 계신다는 사실을, 또한 우박으로 산과 들의 초목과 곡식이 초토화했다는 사실은 곡식의 신인 세트(Seth)의 무능함을 드러냅니다. 또한 1, 2, 3번째 재앙이 첫 번째 묶음, 4, 5, 6번째 재앙이 두번째 묶음으로 묶이는데, 7, 8, 9번째 재앙은 세 번째 묶음으로 묶입니다. 세 번째 묶음의 공통점은 모세의 지팡이가 다시 사용되고, 두 번째 묶음에 이어서 애굽에만 발생하며, 마지막에 바로의 고백이 계속 반복된다는 것입니다.

 

일곱번째 재앙 : 우박이 쏟아지다(22-26)

하나님께서는 경고를 듣고 준비한 사람들과 준비하지 않은 사람들 사이의 차이를 강조하시며, 믿음과 순종의 중요성을 일깨웁니다. 또한,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은 우박 재앙으로부터 보호받는 모습을 통해 하나님께 의지하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안전과 은혜를 깨닫게 됩니다. 이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경고에 귀 기울이고, 그분의 말씀을 따르는 삶을 살아야 함을 배웁니다.

 

22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하늘을 향하여 손을 들어 애굽 전국에 우박이 애굽 땅의 사람과 짐승과 밭의 모든 채소에 내리게 하라 23모세가 하늘을 향하여 지팡이를 들매 여호와께서 우렛소리와 우박을 보내시고 불을 내려 땅에 달리게 하시니라 여호와께서 우박을 애굽 땅에 내리시매 24우박이 내림과 불덩이가 우박에 섞여 내림이 심히 맹렬하니 나라가 생긴 그 때로부터 애굽 온 땅에는 그와 같은 일이 없었더라 25우박이 애굽 온 땅에서 사람과 짐승을 막론하고 밭에 있는 모든 것을 쳤으며 우박이 또 밭의 모든 채소를 치고 들의 모든 나무를 꺾었으되 26이스라엘 자손들이 있는 그 곳 고센 땅에는 우박이 없었더라(22-26)

 

사전 경고를 내리신 직후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심판을 실행할 것을 명령하십니다(22). 모세는 하늘을 향해 지팡이를 쥔 손을 들어 애굽 전역에 우박이 쏟아지게 해야 합니다. 모세가 명령대로 행하자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우렛소리를 동반한 우박 비를 쏟으셨습니다. 이때 하늘에서 ‘불’(에쉬)이 함께 내려왔습니다. 번개를 가리키는 히브리어는 보통 ‘바라크’이므로 이것은 번개가 아닌 불일 수 있습니다. 혹은 우박을 몰고 온 검은 구름이 태양과 어우러져 붉은 색을 띈 특이한 기상 현상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갑자기 큰 우박이 쏟아지는 갑작스런 기상 변화에는 벼락과 우렛소리가 동반되곤 하므로 벼락으로 보는 것이 더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우박은 사람과 짐승에게, 들판의 모든 풀들 위에 쏟아져 온 대지를 초토화했습니다. 22절에는 나무(에쯔)가 누락되어 있으나 25절에서 모든 풀들과 더불어 나무까지 파괴되었다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우박과 낙뢰, 우렛소리는 ‘심히 맹렬했다’(카베드 메오드). 여기서 바로의 완고함에 대해 사용된 ‘무겁다’라는 뜻의 동사 ‘카베드’가 우박의 맹렬함에도 사용됩니다. 이 우박은 18절에서 말한 대로 전무후무한 대재앙이었습니다(24). 커다란 돌덩이 같은 우박은 들판에 있던 사람과 짐승을 쳐서 죽게 했으며(19,25), 들판의 모든 초목을 두들겨 초토화해놓았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고센 땅에만 우박이 전혀 내리지 않아 멀쩡했습니다.

 

두려워하나 고집을 꺾지 않는 바로(27-35)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보호하시며 그들에게 약속하신 대로 함께하십니다. 이는 하나님께 의지하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안전과 은혜를 상기시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회개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며, 그분의 은혜를 경험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러한 태도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욱 깊게 다질 수 있습니다.

 

27바로가 사람을 보내어 모세와 아론을 불러 그들에게 이르되 이번은 내가 범죄하였노라 여호와는 의로우시고 나와 나의 백성은 악하도다 28여호와께 구하여 이 우렛소리와 우박을 그만 그치게 하라 내가 너희를 보내리니 너희가 다시는 머물지 아니하리라 29모세가 그에게 이르되 내가 성에서 나가서 곧 내 손을 여호와를 향하여 펴리니 그리하면 우렛소리가 그치고 우박이 다시 있지 아니할지라 세상이 여호와께 속한 줄을 왕이 알리이다 30그러나 왕과 왕의 신하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아직도 두려워하지 아니할 줄을 내가 아나이다 31그 때에 보리는 이삭이 나왔고 삼은 꽃이 피었으므로 삼과 보리가 상하였으나 32그러나 밀과 쌀보리는 자라지 아니한 고로 상하지 아니하였더라 33모세가 바로를 떠나 성에서 나가 여호와를 향하여 손을 펴매 우렛소리와 우박이 그치고 비가 땅에 내리지 아니하니라 34바로가 비와 우박과 우렛소리가 그친 것을 보고 다시 범죄하여 마음을 완악하게 하니 그와 그의 신하가 꼭 같더라 35바로의 마음이 완악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내보내지 아니하였으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심과 같더라(27-35)

 

바로는 급히 모세와 아론을 불러 다시 한 번 항복을 선언했습니다. 지난번과 같이 그는 ‘내가 잘못했다’고 시인하면서 여호와가 의로우시고 자신과 자신의 백성은 악하다고 말합니다. 두려워 떨며 그는 모세에게 여호와께 기도하여 우박과 ‘우렛소리’(문자적으로 ‘하나님의 소리’)를 그치게 해달라고 부탁합니다. 재앙이 그친다면, 그때 이스라엘 백성을 보내주겠다고 약속합니다(28). 그들은 더 이상 애굽 땅에 머물지 않고 즉시 떠나게 될 것입니다. 모세는 바로의 부탁대로 하나님께 기도하여 우박을 그치게 하여 다시 한번 여호와가 살아계심을 보여 주겠지만, 바로와 그의 신하들의 마음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미리 말해줍니다(29-30).

그 시기에 이미 줄기가 다 자란 삼대와 보리는 회생불능의 피해를 입었으나, 아직 싹이 트지 않은 밀과 쌀보리(밀의 일종)는 우박의 타격을 받지 않아 보존되었습니다. 따라서 당장 우박이 그친다면 최악의 흉작은 피할 수 있었습니다(31). 만일 진심으로 바로가 회개하여 모세의 말을 듣는다면 애굽이 망하지는 않겠지만, 계속 고집을 부린다면 남은 작물인 밀과 쌀보리까지도 사라질 것입니다. 바로로부터 즉시 퇴장한 모세는 성 밖으로 나가 여호와께 손을 들고 기도하여 재앙을 중단해달라고 간구했습니다. 즉시 우렛소리와 우박이 멈췄습니다(33). 그러나 재앙이 끝나자 다시 바로의 마음이 돌변하여 그와 그의 신하들은 여호와와 모세를 향한 완강한 태도를 굽히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이 어떻게 임하는지를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바로와 애굽에 엄중한 경고를 주시며 그들의 교만한 마음을 드러내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어떻게 다루시는지를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뜻을 거스르는 자에게 심판을 내리시지만, 동시에 회개와 돌아옴을 기다리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삶에서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경고와 지적을 귀담아 듣고, 겸손한 마음으로 회개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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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09-01)


다섯째 이 재앙과 여섯째 파리 재앙

출애굽기 9장 1-12절


 

우리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회개는 단순한 행동이 아니라 진정한 마음의 변화로 이어져야 하며, 이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욱 깊게 합니다. 또한,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을 중심에 두는 것이 필수적이며, 세상의 것들에 의존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아울러, 개인의 행동이 공동체에 미치는 영향을 인식하고 책임 있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러한 교훈들은 우리가 올바른 삶의 방향을 찾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 네 번째부터 여섯 번째의 재앙은 재앙의 두 번째 묶음으로 분류됩니다. 네 번째의 파리 재앙에 이어 다섯 번째 재앙은 가축의 전염병, 여섯 번째는 사람과 짐승의 몸에 발생하는 악성 종기의 고통입니다. 두 번째 묶음의 세 가지 재앙에서는 지팡이가 사용되지 않으며 애굽 민족에게만 피해를 입힙니다. 다섯 번째 재앙에서 생명 살상이 시작되고 바로의 마음도 더욱 완고해집니다.

 

다섯 번째 재앙 :가축의 전염병(1-7)

우리는 일상에서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여야 한다는 것을 배웁니다. 많은 경우, 우리의 삶에서 문제가 발생할 때 하나님께서 경고하시는 것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경고를 무시하지 말고, 진지하게 받아들이며 회개의 기회를 찾아야 합니다. 행동은 개인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과 공동체 전체에 영향을 미칩니다. 따라서, 서로를 배려하고 책임을 다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1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바로에게 들어가서 그에게 이르라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 2네가 만일 보내기를 거절하고 억지로 잡아두면 3여호와의 손이 들에 있는 네 가축 곧 말과 나귀와 낙타와 소와 양에게 더하리니 심한 돌림병이 있을 것이며 4여호와가 이스라엘의 가축과 애굽의 가축을 구별하리니 이스라엘 자손에게 속한 것은 하나도 죽지 아니하리라 하셨다 하라 하시고 5여호와께서 기한을 정하여 이르시되 여호와가 내일 이 땅에서 이 일을 행하리라 하시더니 6이튿날에 여호와께서 이 일을 행하시니 애굽의 모든 가축은 죽었으나 이스라엘 자손의 가축은 하나도 죽지 아니한지라 7바로가 사람을 보내어 본즉 이스라엘의 가축은 하나도 죽지 아니하였더라 그러나 바로의 마음이 완강하여 백성을 보내지 아니하니라(1-7)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바로에게 가서 이스라엘을 보내라고 명령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재앙을 통해 바로의 완악한 마음을 드러내고 그에게 경고하십니다. 결국, 바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이스라엘 백성을 보내지 않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1) 다섯 번째 재앙의 경고(1-5)

 

네 번째 재앙인 파리 떼의 급습으로 애굽 온 땅이 피폐해졌음에도 바로의 고집은 꺾이지 않았습니다.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다섯 번째 재앙을 일으키도록 지시하십니다. 그는 바로를 다시 찾아가 예배를 위한 광야 여행을 허락해줄 것을 촉구해야 합니다(1). 몇 번째입니까? 다시 하나님의 경고가 전달됩니다. 바로가 이스라엘 백성을 강제로 억류하면 더욱 무서운 재앙이 임할 것입니다. 그것은 가축의 전염병으로 인한 몰살입니다. 다섯 번째 재앙도 애굽 민족에게만 발생하여 그들의 가축이 대량으로 피해를 입고 이스라엘의 고센 땅은 평온할 것입니다(3-4). 애굽에서 사육하는 가축에는 말, 나귀, 낙타, 소, 양/염소(쫀)가 포함됩니다. 애굽과 가나안, 메소포타미아 일대에서 기르던 짐승들입니다. 말, 나귀, 낙타는 일꾼 짐승으로, 소, 양, 염소는 식용 짐승으로 키웠습니다. 나귀는 가장 고대부터 근동 지역의 대표적인 수송용 가축이었으며, 말은 메소포타미아에서 유입되었습니다. 애굽은 최대 말 사육 국가로서 주변 여러 나라에 수출하였습니다. 낙타는 논란이 되는 가축입니다. 일각의 학자들은 낙타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주전 12세기 전에는 사육하거나 사용한 흔적이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고 주장했습니다. 애굽에서는 그보다 후대인 주전 6세기에 낙타에 대한 기록이 나타날 뿐입니다. 따라서 이곳을 포함한 오경의 낙타 언급은 시대착오적이며 후대의 기록이거나 편집의 결과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카수토는 이미 모세 시대에 낙타가 애굽에서 사육되었다는 증거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다른 증거 자료에서는 여전히 낙타가 모세 시대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는 암시가 나타나며, 최근에 발견된 낙타 떼를 그린 어떤 암각화는 모세 이전 시대의 것으로 추정됩니다. 가축 전염병은 이스라엘을 제외한 전국적 재앙이 될 것입니다. 구약에서 전염병은 대표적인 하나님의 심판 수단 중 하나입니다. 여호와께서는 다시 재앙이 발생할 시점을 지정하십니다. 바로 ‘내일’ 즉시 재앙이 임할 것입니다. 가축의 떼죽음 또한 애굽 신들의 심판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습니다. 아피스(Apis)는 황소로 상징되는 신이었는데, 전염병으로 애굽 모든 소가 무력하게 거꾸러집니다.

 

(2) 애굽의 가축이 몰살(6-7)

 

하나님께서는 경고하신 대로, 이튿날 즉시 가축 전염병 재앙을 일으키셨습니다. 이전까지는 죽음을 일으키지 않고 물, 개구리, 흙, 곤충과 같은 피조물을 이용해 고통을 주었는데, 이제 죽음을 일으킵니다. 애굽의 모든 가축이 죽었습니다. ‘모든 가축’은 확실히 많은 가축의 죽음에 대한 과장법입니다. 아직 많은 가축들이 여전히 살아남아 나중에 일곱 번째의 우박 재앙과 열 번째의 첫 태생 죽음의 심판으로 또다시 대량 몰살하기 때문입니다. 4절에서 ‘하나도 죽지 않았다’는 히브리어는 특이하게 ‘아무것도’로 해석될 수 있는 다바르가 사용됩니다. 다바르는 ‘말’이라는 뜻이면서 동시에 ‘일’이나 ‘사건’을 가리킬 수 있지만 ‘사물’(어떤 것)을 가리키는 경우는 드물입니다. 더구나 여기서는 가축을 이 단어로 표현하는데, 이것은 분명 전염병을 뜻하는 ‘데베르’와의 의도적인 말놀이일 것입니다. 6절과 7절에서는 ‘하나도 죽지 않았다’는 동일한 표현을 위해 통상적인 방식대로 ‘하나’를 뜻하는 ‘에하드’가 사용됩니다. 가축 전염병이 전국적으로 돌며 수많은 가축이 쓰러지자 바로는 사람을 보내 피해 상황을 조사하게 했을 것입니다. 충격적이게도 애굽의 가축만 몰살당했고 이스라엘의 가축은 아무런 피해가 없었습니다. ‘하나도 죽지 않았다’라는 히브리어는 6절보다 한층 강화된 표현인 ‘아드 에하드’입니다. 6절에서는 단순히 ‘에하드’만 사용되었는데 여기서는 전치사 ‘아드’가 붙으면서 ‘하나조차’, ‘단 하나도’라는 뜻으로 크게 강조되어 있습니다. 애굽의 피해 상황과 이스라엘의 피해 상황이 뒤로 갈수록 더욱 극명하게 대조됩니다. 이스라엘 가축의 보존은 ‘아무것도’, ‘하나도’, ‘단 하나도’로 점차 강조됩니다. 그러나 바로는 놀랍게도 이렇듯 분명한 선택적 재앙을 직접 똑똑히 확인했으면서도 고집을 꺾지 않습니다(7).

 

여섯 번째 재앙 : 악성 종기(8-12)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해 애굽에 빠지는 신의 특별한 능력은 없어야 하고, 사람과 모두에게 고통을 줄 수 있는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그 신이 애굽과 그 왕이 바로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고 있는 중요한 순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연을 사용하여 그분을 버리고, 바로 그런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8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희는 화덕의 재 두 움큼을 가지고 모세가 바로의 목전에서 하늘을 향하여 날리라 9그 재가 애굽 온 땅의 티끌이 되어 애굽 온 땅의 사람과 짐승에게 붙어서 악성 종기가 생기리라 10그들이 화덕의 재를 가지고 바로 앞에 서서 모세가 하늘을 향하여 날리니 사람과 짐승에게 붙어 악성 종기가 생기고 11요술사들도 악성 종기로 말미암아 모세 앞에 서지 못하니 악성 종기가 요술사들로부터 애굽 모든 사람에게 생겼음이라 12그러나 여호와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으므로 그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심과 같더라(8-12)

 

하나님도 지체하지 않고 즉시 여섯 번째 재앙을 보내십니다. 앞서 다섯 번째 재앙은 가축에게만 임하게 하셨지만, 이번에는 가축과 사람 모두에게 끔찍한 고통을 안깁니다. 피부에 생기는 독종의 재앙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아론에게 ‘화덕’에서 두 움큼의 재를 취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화덕은 아마도 벽돌을 굽는 가마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재’는 검댕으로 추론됩니다. 많은 장작으로 불을 때 가마를 굽기 때문에 가마 내부 표면에는 그을음이 잔뜩 끼어 있었을 것입니다. 모세와 아론 둘 다에게 두 손 가득 검댕을 취하라고 명령하시는데, 뿌리기는 모세 혼자 뿌렸다고 언급됩니다(8). 카토가 잘 간파했듯이, 아마 모세와 아론 둘 다 벽돌 가마에 가서 두 손으로 검댕을 긁은 뒤 그릇에 담았을 것입니다. 그들은 다시 궁중으로 갔으며, 바로 앞에서 바로 모세가 그 그릇에 담긴 검댕을 하늘에 내던져 뿌렸을 것입니다. 검댕은 공중에서 뿌연 먼지가 되어 사방 온 땅으로 흩어졌습니다. 흩날린 검댕이 사람과 짐승에게 달라붙자 몸에서 악성 종기가 발생했습니다. ‘종기’(쉐힌)는 구약에서 자주 하나님의 심판으로 발생하는 질병의 하나입니다. 특히 이것은 레위기의 나병(악성 피부병) 규례에서(레 13-14장) 나병으로 악화될 수 있는 심각한 종기입니다(레 3:18-20). 재앙의 강도가 갈수록 강해진다는 증거는 마법사들을 통해 확인됩니다. 애굽 마법사들은 처음과 두 번째 재앙을 모방하는 재주를 부렸는데, 세 번째부터는 한계를 보이며 사실상 결국 패배를 인정합니다. 급기야 현재의 여섯 번째 재앙에서 이제 마법사들도 재앙의 표적이 되어 애굽 온 백성과 함께 고통받습니다. 그들과 그들 신들의 무력함이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하나님의 능력이 확인됩니다. 독종의 재앙 또한 많은 학자들이 질병을 다스리는 신 세크메트(Sekhmet)에 대한 심판으로 이해합니다. 이 독종은 ‘요술사들로부터 애굽 모든 사람에게’, 즉 애굽 전 국민에게 임했던 것으로 보이며, 아마 바로도 예외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로는 여전합니다. 그의 완고한 마음은 꺾이지 않았고 모세와 아론의 요청을 거부했습니다. 여기서 재앙이 발생한 후 처음으로 ‘여호와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다’는 표현이 나타납니다. 결국 바로의 마음을 완고하게 만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마음까지 통제하시어 심지어 사람을 불순종하게 만드는 것으로 이해되는 신정론의 문제를 발생시킵니다.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고하게 만드시는 목적은 10:1-2에서 구체적으로 진술됩니다. 신정론의 문제는 거기서 더 자세히 다루기로 합니다.


우리가 살펴본 본문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변화시키고자 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바로처럼 완악한 마음을 가진 우리도 하나님 앞에서 겸손히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순종을 원하시며, 그분의 뜻에 따라 살 때 진정한 평화와 자유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에서 어떤 재앙이 임하더라도, 하나님께 회개하고 돌아가는 길을 선택합시다. 하나님께서는 항상 우리를 기다리고 계시며, 그분의 사랑과 은혜로 우리를 회복시키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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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애굽기(08-02)


셋째 이 재앙과 넷째 파리 재앙

출애굽기 8장 16-32절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가장 큰 축복은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입니다. 더 큰 축복은 하나님의 뜻을 알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도 순종치 않은 것은 강퍅해졌다는 말입니다. 순종치 않음을 여러 가지 환경이나 여건의 탓이나 핑계하는 늘어놓은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자신에게 어려움만 가중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아는 순간, 순종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성도입니다.

 

  • 애굽 전역에 세 번째 재앙이 내립니다. 모세를 대신한 아론이 땅의 흙을 지팡이로 치자 이가 되어 사람과 가축에게 기어올라 괴롭힙니다. 이 재앙은 애굽과 이스라엘 모두에게 일어납니다. 그러나 세 번째 재앙에도 바로가 변하지 않자 하나님께서는 네 번째 재앙을 보내십니다. 파리 떼가 들끓는 재앙이었는데, 이스라엘이 거하는 고센 땅에서는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네 번째 재앙부터는 이집트 민족에게만 일어납니다.

 

세 번째 재앙 : 온 땅에 이가 들 끓다(16-19)

하나님께서 주신 명령은 이해되지 않더라도 순종해야 합니다. 혹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마음을 닫고 있지 않은지 성찰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끊임없이 경고하시고 인도하시므로, 우리의 마음이 부드럽고 열려 있어야 그 뜻을 따를 수 있습니다. 또한, 인간의 노력과 한계를 인식하고, 하나님을 대체하려는 시도를 멈추어야 합니다.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져야 함을 깨달아야 합니다.

 

16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아론에게 명령하기를 네 지팡이를 들어 땅의 티끌을 치라 하라 그것이 애굽 온 땅에서 이가 되리라 17그들이 그대로 행할새 아론이 지팡이를 잡고 손을 들어 땅의 티끌을 치매 애굽 온 땅의 티끌이 다 이가 되어 사람과 가축에게 오르니 18요술사들도 자기 요술로 그같이 행하여 이를 생기게 하려 하였으나 못 하였고 이가 사람과 가축에게 생긴지라 19요술사가 바로에게 말하되 이는 하나님의 권능이니이다 하였으나 바로의 마음이 완악하게 되어 그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더라(16-19)

 

두 번째의 개구리 재앙을 겪고서 바로는 백성을 보내겠다고 약속했지만, 재앙이 그치자 약속을 번복했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세 번째 재앙을 보내십니다. 이제 전국에 이가 들끓게 하는 재앙입니다. 이 재앙은 앞서 두 번의 재앙과 달리 사전 경고 없이 벌어집니다. 예고하는 것은 바로에게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지만, 예고가 없는 재앙은 심판의 성격이 강합니다. 즉, 하나님의 명령을 무시한 것에 대한 벌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론더러 모세의 지팡이를 들어 땅의 티끌을 치라고 명하십니다. ‘티끌’이란 땅의 ‘먼지’(아파르), 즉 ‘흙’을 의미합니다. ‘온 땅의 티끌’이 다 이가 되었습니다. 물론 이 표현은 전형적인 과장법입니다. 70인역을 비롯한 고대로부터 이것은 ‘이 재앙’으로 이해되었는데, 정작 ‘이’로 번역한 ‘킨님’, 단수 ‘켄’의 정체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이 곤충들이 순식간에 몸에 달라붙은 것을 볼 때 이동이 매우 느린 ‘이’보다는 날아다니는 곤충이거나, 사람이나 짐승의 피부에 달라붙어 피를 빠는 흡혈 파리나 모기를 총칭하는 ‘각다귀’일 수도 있습니다. 혹은 사방으로 튀는 ‘벼룩’일 수도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성경의 표현대로 ‘이’라고 하겠습니다. 이 해충들은 사람과 가축의 몸에 기어올라 붙었습니다. 애굽의 마법사들도 술수를 써서 이가 생기도록 시도했지만, 이번에는 실패합니다. 그들은 곤충 떼의 출몰은 자신들의 능력 밖의 초자연적 현상으로 ‘하나님의 손가락(권능)’으로 발생한 일이라고 고백합니다. ‘여호와의 손’이 아닌 ‘하나님의 손가락’이라고 표현하였지만, 이것 역시 하나님의 권능을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애굽 마법사들이 이것을 모방할 수 없었던 이유는 그들 배후에 있는 악령의 능력의 한계 때문일 수 있지만, 그들의 눈속임 마법의 기술적 한계 때문으로 추론됩니다.

바로의 완고한 마음은 여전히 변하지 않습니다. 두 번째 재앙(개구리 재앙)을 겪었을 때 바로의 기세가 처음으로 꺾였는데, 그것도 잠시뿐 여전히 완강합니다. 네 번째의 파리 재앙을 겪은 후에야 바로의 태도가 변합니다. 세 번째 재앙까지는 애굽과 이스라엘 모두에게 재앙이 임했지만, 네 번째 재앙부터 양상이 바뀌어 애굽 백성에게만 재앙이 내리기 시작합니다.

 

네 번째 재앙 : 온 땅에 파리(20-32)

하나님께서는 오늘날에도 우리를 세상과 구별하여 살아가도록 보호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기억하며, 신앙 생활 속에서 그분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개입하실 때, 우리는 그분의 뜻을 이루는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20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바로 앞에 서라 그가 물 있는 곳으로 나오리니 그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내 백성을 보내라 그러면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 21네가 만일 내 백성을 보내지 아니하면 내가 너와 네 신하와 네 백성과 네 집들에 파리 떼를 보내리니 애굽 사람의 집집에 파리 떼가 가득할 것이며 그들이 사는 땅에도 그러하리라 22그 날에 나는 내 백성이 거주하는 고센 땅을 구별하여 그 곳에는 파리가 없게 하리니 이로 말미암아 이 땅에서 내가 여호와인 줄을 네가 알게 될 것이라 23내가 내 백성과 네 백성 사이를 구별하리니 내일 이 표징이 있으리라 하셨다 하라 하시고 24여호와께서 그와 같이 하시니 무수한 파리가 바로의 궁과 그의 신하의 집과 애굽 온 땅에 이르니 파리로 말미암아 그 땅이 황폐하였더라 25바로가 모세와 아론을 불러 이르되 너희는 가서 이 땅에서 너희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라 26모세가 이르되 그리함은 부당하니이다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는 것은 애굽 사람이 싫어하는 바인즉 우리가 만일 애굽 사람의 목전에서 제사를 드리면 그들이 그것을 미워하여 우리를 돌로 치지 아니하리이까 27우리가 사흘길쯤 광야로 들어가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되 우리에게 명령하시는 대로 하려 하나이다 28바로가 이르되 내가 너희를 보내리니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광야에서 제사를 드릴 것이나 너무 멀리 가지는 말라 그런즉 너희는 나를 위하여 간구하라 29모세가 이르되 내가 왕을 떠나가서 여호와께 간구하리니 내일이면 파리 떼가 바로와 바로의 신하와 바로의 백성을 떠나려니와 바로는 이 백성을 보내어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는 일에 다시 거짓을 행하지 마소서 하고 30모세가 바로를 떠나 나와서 여호와께 간구하니 31여호와께서 모세의 말대로 하시니 그 파리 떼가 바로와 그의 신하와 그의 백성에게서 떠나니 하나도 남지 아니하였더라 32그러나 바로가 이 때에도 그의 마음을 완강하게 하여 그 백성을 보내지 아니하였더라(20-32)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애굽에 이가 재앙을 내리시는 장면이 묘사됩니다. 이 재앙은 애굽의 신들과 우상을 무너뜨리며, 이스라엘 백성은 고센 땅에서 보호받습니다. 그러나 바로는 마음을 강퍅하게 하여 여전히 하나님께 회개하지 않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재앙을 통해 자신의 권능을 드러내시고, 이스라엘을 구원하려는 계획을 이어가십니다.

 

(1) 파리 재앙으로 황폐화된 땅(20-24)

 

혹독한 세 번째 재앙을 겪었지만, 바로는 여전히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그리하여 즉시 네 번째 재앙이 이어집니다. 하나님께서는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바로를 찾아가도록 지시하십니다. 이 ‘아침’이 꼭 세 번째 재앙이 발생한 다음 날일 필요는 없습니다. 세 번째 재앙이 얼마나 지속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며칠은 지속되었을 것입니다. 모세는 아침에 다시 바로를 강변에서 만납니다. 바로는 매일 아침 강변 산책을 하는 습관이 있었던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접견 장소는 빈번히 왕궁이었습니다. 모세는 다시 바로를 만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배하도록 광야 여행을 허락해줄 것을 촉구해야 했습니다. 이번에도 바로가 거부한다면, 더욱 가혹한 네 번째 재앙이 애굽을 칠 것입니다. 그것은 파리 떼 재앙입니다. 애굽 왕 바로와 그의 백성, 바로의 집과 애굽 모든 백성의 집 안까지, 그리고 나아가 온 땅에 파리 떼가 출몰하겠지만, 오직 이스라엘 백성이 거주하는 고센 땅만은 이 재앙에서 예외가 될 것입니다(21-22).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과 이집트 백성 사이를 구별하기 시작하시니다(23). 이것은 구체적으로 여호와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심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이를 통해 바로와 애굽 백성은 여호와가 어떤 분인지 더욱 분명히 알게 될 것입니다(22). 모세는 하나님의 지시대로 바로를 찾아가 경고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은 그것을 생략한 채 하나님께서 경고대로 즉시 재앙의 심판을 실행하신 것만을 보고합니다(24), 아마 바로가 그 요청을 재차 거부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앞서 ‘이’로 번역된 ‘킨님’의 정체가 불분명했듯이, 여기 ‘파리 떼’로 번역된 ‘아로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은 어떤 생물의 떼인데, 혹자는 기생충이나 떼 짓는 들짐승으로 보기도 하지만, 전통적으로는 ‘파리 떼’로 번역해왔습니다. 70인역은 이것을 물어뜯고 피를 빠는 흡혈 파리(dog fly)로 번역하는데 개연성이 있습니다. 24절에서 보듯이 이 파리 떼로 인해 땅이 황폐해지고 비참한 결과가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처음으로 재앙으로 인해 땅이 파괴되었습니다(‘황폐하게 되었다’)는 평가가 내려집니다. 이것은 흡혈 파리 떼로 추정되는 곤충들이 초목까지 피폐하게 만들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사람의 주거 공간뿐 아니라 ‘온 땅’에 가득히 날아다니며 인간과 동물을 공격해 큰 피해를 입혔다는 뜻입니다. 네 번째 재앙부터 이집트 마법사들이 아예 나타나지 않는데, 이런 특징은 마지막 재앙까지 이어집니다. 학자들 중에는 앞의 첫 번째 두 번째는 물과 관련짓고, 세 번째는 땅, 네 번째의 파리 재앙은 공기와 관련짓습니다. 말하자면, 하나님께서는 애굽의 물, 땅, 공기를 변질시킴으로써 애굽의 자연 전체에 재앙을 일으키시고 자신이 자연의 주인임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러나 재앙은 이후에도 자연계 여러 영역에서 계속 발생하기 때문에, 이런 구분은 다소 인위적입니다.

 

(2) 백성의 여행을 허락하는 바로(25-32)

 

네 번째의 혹독한 재앙으로 온 땅이 피폐해지자 그제야 바로는 모세와 아론에게 굴복하는 태도를 취합니다. 그는 두 사람에게 예배를 허락하지만, 광야가 아닌 애굽 땅에서 하라고 제안합니다(25). 하지만 모세는 그 타협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합니다. 그는 히브리인들의 제사가 애굽인들에게 역겨운 반감을 일으켜 큰 충돌이 일으킬 수 있고, 그러면 자신들이 돌에 맞을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거절합니다. ‘애굽 사람의 목전에서 제사를 드리다’는 문자적으로 ‘애굽 사람의 눈앞에서 혐오스러운 것(토에바)을 희생으로 바치다’라는 의미입니다. 왜 히브리인의 제사가 애굽인에게 혐오스러운 것입니까? 애굽에서 신성시하는 동물인 소와 염소가 제물로 바쳐지기 때문일 수 있지만, 그보다는 두 문화권의 제사 전통의 차이 때문일 것입니다. 다른 예로 애굽인들은 히브리인들과 겸상하는 것을 ‘혐오스러운 일’(토에바)로 간주했습니다. 애굽인들은 전통적으로 유목을 혐오했으며(토바), 유목민들을 부정하게 여겼습니다(창 46:34; 출 8:26). 심지어 히브리인들과 같은 방에서 잠을 자지도 않았습니다. 모세는 재차 자신들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멀리 3일 길의 여행을 떠나 외딴 광야에서 예배 행사를 갖겠다는 입장을 고집합니다(27). 바로는 마지못해 그 여행을 허락하지만, 이번에는 거리 제한을 둡니다. 그가 집요하게 이스라엘 백성을 묶어두려는 이유는 경제적 이유 때문인 것이 분명합니다. 실제로 한꺼번에 성인 수십만 명의 노동력을 잃는다면 국가 경제가 마비될 수 있었습니다. 바로는 그들의 종교 행사를 위한 여행을 허락하는 순간 그들을 애굽으로부터 해방 시켜주는 것임을 알고 있었기에 줄다리기를 한 것입니다. 바로는 모세와 아론에게 자신을 위해 기도해달라고 부탁합니다(28). 하루빨리 파리 떼가 애굽 땅에서 물러가게 하여 자신들의 고통을 끝내달라는 부탁일 것입니다. 모세는 다음 날 하나님께 간구하여 파리 떼가 물러가도록 하겠다고 약속하면서, 바로에게 다시는 자기들을 속이지 말라고 강하게 압박합니다. 바로를 떠나 모세가 하나님께 기도하자 즉시 응답되어 모든 파리 떼가 순식간에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파라오는 또다시 마음을 바꾸고 약속을 번복합니다. 자신의 기존 입장을 완강히 고수하며 그 백성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고, 그분의 명령에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부드럽고 열린 상태를 유지해야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인도하심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세상 속에서 구별하여 보호하시며, 우리가 믿음의 삶을 살아갈 때 그의 뜻을 이루는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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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08-01)


두 번째 재앙 : 개구리로 온 땅을 치다

출애굽기 8장 1-15절


 

우리는 하나님께 진정으로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는 단순한 말이 아니라, 마음의 변화와 결단을 요구하는 행동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분이십니다. 하지만 회개 없는 기도는 진정한 변화로 이어지지 않으며, 우리의 신앙생활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진솔한 마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마음을 열고 하나님께 나아가면, 그분의 은혜와 인도하심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 애굽에 여호와의 두 번째 재앙이 임합니다. 개구리 떼가 전국에 창궐하여 애굽 온 국민의 생활이 마비됩니다. 바로의 왕실과 침대까지 개구리 떼가 침입하여 전국에 공포가 임합니다. 바로의 마법사들 또한 개구리 재앙을 일으키며 여전히 물러서지 않으나, 핏빛 강물의 재앙과 마찬가지로 상황만 악화될 뿐입니다. 여호와의 두 번째 재앙을 겪은 바로는 마침내 기세가 꺾이지만 거기까지였습니다.

 

두 번째 재앙 : 개구리로 온 땅을 치다(1-15)

우리는 인간의 한계를 인식해야 합니다. 때때로 우리는 하나님을 대체하려고 하거나, 자신의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합니다. 그러나 이런 시도는 궁극적으로 실패로 이어지기 쉽습니다. 하나님만이 모든 문제의 진정한 해결자이심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의 힘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는 삶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의뢰하며, 그분의 인도하심을 따라야 합니다.

 

1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바로에게 가서 그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 2네가 만일 보내기를 거절하면 내가 개구리로 너의 온 땅을 치리라 3개구리가 나일 강에서 무수히 생기고 올라와서 네 궁과 네 침실과 네 침상 위와 네 신하의 집과 네 백성과 네 화덕과 네 떡 반죽 그릇에 들어갈 것이며 4개구리가 너와 네 백성과 네 모든 신하에게 기어오르리라 하셨다 하라 5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아론에게 명령하기를 네 지팡이를 잡고 네 팔을 강들과 운하들과 못 위에 펴서 개구리들이 애굽 땅에 올라오게 하라 할지니라 6아론이 애굽 물들 위에 그의 손을 내밀매 개구리가 올라와서 애굽 땅에 덮이니 7요술사들도 자기 요술대로 그와 같이 행하여 개구리가 애굽 땅에 올라오게 하였더라 8바로가 모세와 아론을 불러 이르되 여호와께 구하여 나와 내 백성에게서 개구리를 떠나게 하라 내가 이 백성을 보내리니 그들이 여호와께 제사를 드릴 것이니라 9모세가 바로에게 이르되 내가 왕과 왕의 신하와 왕의 백성을 위하여 이 개구리를 왕과 왕궁에서 끊어 나일 강에만 있도록 언제 간구하는 것이 좋을는지 내게 분부하소서 10그가 이르되 내일이니라 모세가 이르되 왕의 말씀대로 하여 왕에게 우리 하나님 여호와와 같은 이가 없는 줄을 알게 하리니 11개구리가 왕과 왕궁과 왕의 신하와 왕의 백성을 떠나서 나일 강에만 있으리이다 하고 12모세와 아론이 바로를 떠나 나가서 바로에게 내리신 개구리에 대하여 모세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13여호와께서 모세의 말대로 하시니 개구리가 집과 마당과 밭에서부터 나와서 죽은지라 14사람들이 모아 무더기로 쌓으니 땅에서 악취가 나더라 15그러나 바로가 숨을 쉴 수 있게 됨을 보았을 때에 그의 마음을 완강하게 하여 그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더라(1-15)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애굽에 개구리 재앙을 내리겠다고 경고하십니다. 개구리가 애굽 전역에 넘쳐나자, 바로는 모세에게 기도를 요청하지만 재앙이 사라진 후에도 회개하지 않고 마음을 강퍅하게 합니다. 이 과정은 하나님의 권능과 인간의 불신, 그리고 진정한 회개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1) 개구리 재앙을 하달하시는 하나님(1-5)

 

전국의 모든 강과 호수에 임한 핏물 재앙에도 불구하고 고집을 꺾지 않은 바로에게 두 번째 재앙이 임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다시 바로를 찾아가 광야에서 백성이 예배를 드리도록 내보내 줄 것을 요구하라고 지시하십니다.

아마 두 번째 만남은 바로의 궁전에서였을 것입니다. 만일 바로가 요청을 거부하면, 이번에는 개구리 재앙이 애굽 온 땅에 임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개구리 떼의 번성과 이스라엘 민족의 번성에 동일한 단어 ‘샤라츠’가 사용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번성은 축복이지만, 개구리 떼의 번성은 재앙입니다. 나일강에서 무수히 생겨난 개구리 떼는 전국을 뒤덮을 것입니다(3-4).

밖으로는 ‘애굽 온 땅에’, 정확히는 ‘애굽 모든 경계선/영역에’ 창궐했으며, 안으로는 모든 집의 구석구석까지 침입합니다. 상하 지위를 막론하고 애굽의 모든 주거지에 개구리 떼가 엄습할 것이며, 바로의 궁전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마치 목을 조르듯이 개구리의 침입이 바로를 향해 점점 좁혀집니다(3). 처음에 나일강에서 올라온 개구리 떼는 바로의 궁전으로 몰려듭니다. 궁전 안 바로의 침실로 침입한 뒤 급기야 침대로 뛰어오릅니다. 나아가 개구리 떼는 바로의 모든 백성에게 침입할 것이며, 심지어 백성의 음식을 위한 화덕과 떡 반죽 그릇에까지 침범합니다(4).

이것은 바로 자신뿐 아니라 애굽의 온 백성이 개구리 떼의 창궐로 인해 의식주의 기본 생활조차 영위하기 힘든 상태가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앞서 지팡이를 내던져 뱀이 되게 하고 지팡이를 강물에 내리쳐 핏빛으로 만든 것과 달리, 이번에는 아론이 지팡이를 쥔 손을 단순히 들어 올리라는 지시를 받습니다(5).

 

(2) 개구리가 애굽 온 땅을 덮다(6-7)

 

모세와 아론은 바로를 찾아가 하나님의 명령대로 실천합니다. 그들은 다시 바로에게 백성을 보내줄 것을 요구했으나 일언지하에 거절당합니다. 그리하여 아론이 애굽의 나일강과 모든 지류들을 향해 지팡이를 든 손을 들어 뻗습니다. 갑자기 개구리 떼가 강으로부터 뛰어 올라와 애굽 온 땅을 뒤덮었습니다(6).

첫 번째의 피의 재앙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애굽 마법사들이 아론의 기적을 흉내 냈습니다(7). 여기서는 바로가 마법사들을 불러들였다는 언급이 없고, 그들의 유사 기적에 대한 바로의 긍정적인 평가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바로의 재가 없이 마법사들이 함부로 활동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는 다시 마법사들을 불러들였는데, 아마 이어지는 그의 반응과 태도를 볼 때, 이번에는 근본적인 문제 해결, 개구리 떼의 제거를 원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무슨 이유인지 마법사들은 또다시 아론의 기적을 흉내 내는 재주를 부렸습니다. 마법사들이 경쟁에서 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그들의 재주는 상황을 악화시켰습니다. 그들은 이번에도 비법(라트)을 사용했는데, 초자연적 능력을 발휘했는지 속임수를 썼는지 분명하지 않으나, 후자일 가능성이 큽니다.

그들이 기적의 능력으로 개구리 떼를 발생시켰다면, 마찬가지로 없애는 것도 어렵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들은 바로를 접견하러 들어가기 전에 개구리 재앙이 발생한 것을 보고 교묘한 마법처럼 보이는 속임수를 준비했을 수 있습니다. 어쨌든 그들이 실제 영적 능력을 발휘했는지 속임수를 썼는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결과적으로 개구리 떼가 더욱 번성하였고, 바로는 모세에게 즉시 항복합니다.

강물이 피로 변한 것이 적조 현상일 수 있는 것처럼, 개구리 떼의 출몰 또한 자연 현상으로 설명될 수 있습니다. 매년 나일강이 홍수로 범람한 뒤 물이 빠지면 엄청난 개구리 떼가 번식했는데, 이때는 그 현상이 정확한 시점에 예외적인 규모로 발생했다고 설명합니다. 어떤 사람은 적조의 발생으로 물고기가 떼죽음함으로 강물이 썩어 개구리 떼가 육상으로 올라왔다고 생각합니다.

설사 그렇다 해도, 여기에는 여전히 하나님께서 직접 일으키신 초자연적인 기적의 요소가 개입됩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부르짖음으로써 특정한 날 일순간에 개구리 떼가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모세가 자연 현상을 기적으로 포장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의 지팡이로 개구리 떼를 통제할 수 있었음을 말해줍니다.

 

(3) 처음으로 흔들리나 고집을 꺾지 않는 바로(8-15)

 

개구리 역시 애굽에서는 신처럼 숭배되었는데 개구리 떼의 엄청난 번식이 신의 능력과 번식의 상징으로 간주 되었기 때문입니다. 여신 헤케트(Hekhet) 역시 다산과 창조의 신이었던 크눔(Khnum)의 배우자로서 두상이 개구리 모양을 한 여성의 형태를 취하고 있었으며, 인간을 진흙으로 창조한 여신으로 간주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번성을 상징하는 개구리 떼를 애굽을 심판하는 데 사용하십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번성을 두려워하여 잔혹한 유아 살해의 살상극을 벌인 바로와 애굽을 향한 역설적인 ‘번성의 심판’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에게 개구리 떼의 발생은 하나님에 의해 발생한다는 사실을 깨우쳐주셨습니다. 이로써 그들이 숭배하는 개구리와 여신 헤케트는 무능한 신이라는 사실이 증명됩니다. 첫 번째의 재앙은 애굽이 신으로 숭배하는 나일강에 대한 심판으로 볼 수 있으며, 두 번째 재앙 또한 그들이 번성의 신으로 섬기는 개구리 신에 대한 심판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실 나중에 살펴보겠지만, 열 가지 재앙 모두 그런 관점에서 해석할 여지가 있는데,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는 않습니다. 애굽 전역이 마비되는 상황이 발생하자 바로는 당황하며 두려워했습니다(8). 이 개구리가 얼마 동안 창궐했는지 본문에 언급되어 있지 않으나, 유대 랍비 문헌인 학가다(Haggadah)는 첫 번째 재앙과 마찬가지로 일주일 동안 지속되었다고 말합니다. 바로가 여기서 처음으로 흔들리며 여호와께 굴복하는 듯한 모습을 보입니다. 그는 모세와 아론을 불러들여 개구리 재앙을 멈춰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는 자신의 마법사들을 총동원해 재앙을 그치게 하려고 애를 썼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일으킨 신앙을 사람이 돌이킬 수는 없었습니다. 결국 바로는 모세와 아론에게 읍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기서 그가 ‘여호와께 구하여’ 개구리를 떠나게 해달라고 발언한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바로는 비로소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인정하면서 그분이 어떤 분인지 깨닫기 시작합니다. 그는 모세와 아론이 기도하여 개구리 재앙을 멈춘다면,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로 보내 예배를 드리도록 허락하겠다고 약속합니다.

여기서 모세는 지혜롭게 협상을 이끕니다. 그는 ‘언제’ 개구리 떼를 없앨지 바로가 날짜를 선택하라고 제안합니다. 그날 즉시 개구리 떼는 온 땅에서 제거되고 다시 나일강에서만 들풀게 될 것입니다. 구체적인 날짜의 제안은 분명히 바로에게 여호와가 어떤 분인지 더욱 분명하게 알리기 위함이었습니다(10). 바로는 ‘내일’ 당장 없애달라고 부탁합니다. 그의 다급한 재촉은 그가 이 재앙으로 얼마나 큰 고통을 당하고 있는지 잘 보여줍니다.

모세와 아론은 바로의 요청대로 이튿날 아침 하나님께 ‘부르짖어’ 개구리 재앙을 그치게 해달라고 간구하였습니다(12). 기도가 즉각 응답되어 여호와께서 재앙을 거두어가셨습니다. 개구리 떼는 모두 육지에서 떼죽음하는 방식으로 제거되었습니다. 애굽 백성이 개구리 사체를 거두어 여러 무더기로 쌓았습니다. 히브리어에서는 ‘무더기, 무더기’로 동일 단어가 반복되는데, 이것은 많은 무더기를 가리키는 강조 용법입니다.

무더기로 쌓인 개구리 사체가 썩자 다시 악취가 애굽 온 땅이진동해 숨쉬기조차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악취가 사라져 숨을 쉴 만하자 바로는 다시 생각을 바꿉니다. 그의 마음이 다시 완고해져 모세와 아론의 제안을 다시 거부합니다(15).


하나님의 권능과 인간의 반응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명령하시며, 우리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이 강퍅해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그분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욱 깊게 하고, 진정한 회개와 순종의 삶을 다짐합시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응답하시고, 우리의 삶 속에서 역사하시기를 원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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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07-02)


첫 번째 재앙 : 나일강이 빗빛으로 변함

출애굽기 7장 8-25절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주시는 명령에 대한 순종의 중요성을 강조하십니다. 우리는 모세와 아론처럼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순종을 통해 놀라운 기적을 이루실 수 있으며, 우리의 작은 순종이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뜻을 따르도록 힘쓰고, 그분의 인도하심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이러한 삶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짐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아론이 심기일전하여 다시 바로를 접견하게 하십니다. 그들은 가서 이제 하나님의 지팡이로 바로와 그의 신하들 앞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앞서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바로에게 신 같이 되게 만들며 온 애굽 땅에 여러 큰 심판을 내리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7:1-4).

 

지팡이가 뱀으로 변함(8-10)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명령과 사명을 어떻게 수행하고 있는지를 돌아봐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시며, 우리가 그분의 뜻을 따르기를 원하십니다. 어려움과 두려움이 있을지라도,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의 작은 순종이 하나님께서 이루실 큰 일을 준비하는 길이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항상 하나님께 귀 기울이며 그분의 뜻을 따르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8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9바로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이적을 보이라 하거든 너는 아론에게 말하기를 너의 지팡이를 들어서 바로 앞에 던지라 하라 그것이 뱀이 되리라 10모세와 아론이 바로에게 가서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행하여 아론이 바로와 그의 신하 앞에 지팡이를 던지니 뱀이 된지라(8-10)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아론을 다시 바로에게 보내십니다. 그들에게 요구한 것은 믿음과 순종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지팡이를 던지라고 명하십니다. 순종하면 지팡이는 뱀으로 변할 것입니다. 두 사람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행했고 실제로 지팡이가 뱀으로 변했습니다(10). 여기서 모세는 아론이 든 자신의 지팡이를 ‘너의 지팡이’로 칭합니다. 모세의 지팡이는 하나님의 지팡이이며, 모세가 들 때는 모세의 지팡이, 아론이 들 때는 아론의 지팡이로 기능합니다. 여기서 ‘뱀’의 히브리어가 ‘나하쉬’가 아닌 ‘탄닌’이라는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애굽 술객들의 술수로 변한 뱀도 ‘탄닌’입니다(12). ‘탄닌’이 어떤 동물인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어떤 학자는 ‘나하쉬’가 아닌 ‘탄닌’이 사용된 이유를 독자들에게 뱀의 이미지를 더욱 섬뜩하게 만드는 문학적 효과를 내기 위함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주석가들은 에스겔 29:3에서 바로의 별명이 ‘바다 가운데의 탄닌(큰 악어)’이라는 점에 주목하여 이 단어를 해석합니다. 바로가 ‘탄닌’으로 상징화되고 있기에 의도적으로 이 단어가 사용된다는 뜻입니다. 이 지팡이가 ‘탄닌’으로 변한 것은 하나님께서 ‘탄닌’마저 자신의 손으로 부리는 존재이심을 보여주며, 따라서 바로도 하나님의 통제 하에 있다는 사실을 바로와 신하들 앞에서 시연하기 위함일 수 있습니다. 실제로 고대 애굽인들은 나일강의 악어를 악어 신 ‘세베크(Sebek, 혹은 소베크[Sobek])’로 숭배하였고, 이 악어 신은 바로의 힘과 권세를 상징했습니다. 이 첫 번째 기적은 재앙의 징벌로 이어지지 않았기에 열 가지 재앙 목록에 포함되지는 않습니다. 이 기적의 목적은 단순히 하나님의 능력을 바로에게 보여줌으로써 그에게 경고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모세의 지팡이가 승리하다(11-13)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과 권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말씀과 지혜를 의지해야 합니다. 세상의 권력과 악이 우리를 압박할지라도,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와 함께하시며 그분의 계획을 이루어 가십니다. 우리가 가진 지팡이, 즉 우리의 믿음과 기도는 하나님이 주신 권능의 상징입니다. 우리는 그 믿음을 가지고 나아가야 합니다.

 

11바로도 현인들과 마술사들을 부르매 그 애굽 요술사들도 그들의 요술로 그와 같이 행하되 12각 사람이 지팡이를 던지매 뱀이 되었으나 아론의 지팡이가 그들의 지팡이를 삼키니라 13그러나 바로의 마음이 완악하여 그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더라(11-13)

 

바로는 아무런 당황한 기색 없이 수하의 현인들과 마법사들을 부릅니다. 현인은 왕의 국정 파트너로서 자문단이었을 것이며, 마법사들 역시 아마 마술과 점술에 능하여 신통력을 부리는 제사장들로 왕에게 신의 계시나 점괘를 전해주는 역할을 했을 것입니다. 그들의 ‘요술’은 어떤 속임수를 쓴 신비한 기술일 수 있습니다. 이 애굽 술객들의 실명이 신약에 등장하는데, ‘얀네와 얌브레’입니다(딤후 3:8).

아마 이들 이름은 전승을 통해 유대 문헌에 전해온 것으로 보입니다. 어쩌면 바로의 호출을 받은 애굽 마법사들은 아론의 지팡이가 뱀으로 변했다는 소식을 듣고 미리 뱀에 최면을 걸어 뻣뻣해진 뱀을 들고 와 현장에서 최면을 푸는 기교를 부렸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나중에 물을 핏빛으로 변하게 하고 개구리 재앙을 흉내 낸 것으로 볼 때, 그들의 마법을 속임수로만 설명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습니다.

그것이 속임수였든 실제적인 마법이었든지 간에 모세의 대리인 아론과 바로의 대리인 마법사들이 대결하는 형국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을 대신하므로 사실 아론은 하나님의 대리인으로 나서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대표한 아론의 지팡이가 애굽을 대표한 술객들의 지팡이를 삼킨 이 사건은 상징하는 바가 큽니다.

애굽, 특히 고대 상(上) 애굽의 수도인 ‘룩소르(Luxor)’ 지역의 유적지에는 신전과 바로의 동물 무덤 벽화에 무수히 많은 뱀들이 그려져 있습니다. 뱀, 특히 코브라는 바로의 왕관에 장식될 정도로 중요한 신이었습니다. 코브라는 바로와 애굽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여겨졌습니다. 하나님의 지팡이가 바로의 지팡이를 삼킨 것은 하나님의 권능이 바로의 권능을 완전히 집어삼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했음에도 불구하고 바로는 여전히 완고하여 모세와 아론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바로는 고집을 부립니다(13).

 

첫 번째 재앙 : 나일강이 핏빛으로 변하다(14-25)

세상의 힘과 권세가 아무리 강해 보여도,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것을 초월하십니다. 우리가 직면한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 속에서 역사하실 것이며, 어떤 상황에서도 그분의 계획은 이루어집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용기를 가져야 하며, 우리의 믿음을 통해 하나님이 영광을 드러내실 것을 기대해야 합니다.

 

14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바로의 마음이 완강하여 백성 보내기를 거절하는도다 15아침에 너는 바로에게로 가라 보라 그가 물 있는 곳으로 나오리니 너는 나일 강 가에 서서 그를 맞으며 그 뱀 되었던 지팡이를 손에 잡고 16그에게 이르기를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왕에게 보내어 이르시되 내 백성을 보내라 그러면 그들이 광야에서 나를 섬길 것이니라 하였으나 이제까지 네가 듣지 아니하도다 17여호와가 이같이 이르노니 네가 이로 말미암아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볼지어다 내가 내 손의 지팡이로 나일 강을 치면 그것이 피로 변하고 18나일 강의 고기가 죽고 그 물에서는 악취가 나리니 애굽 사람들이 그 강 물 마시기를 싫어하리라 하라 19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아론에게 명령하기를 네 지팡이를 잡고 네 팔을 애굽의 물들과 강들과 운하와 못과 모든 호수 위에 내밀라 하라 그것들이 피가 되리니 애굽 온 땅과 나무 그릇과 돌 그릇 안에 모두 피가 있으리라 20모세와 아론이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행하여 바로와 그의 신하의 목전에서 지팡이를 들어 나일 강을 치니 그 물이 다 피로 변하고 21나일 강의 고기가 죽고 그 물에서는 악취가 나니 애굽 사람들이 나일 강 물을 마시지 못하며 애굽 온 땅에는 피가 있으나 22애굽 요술사들도 자기들의 요술로 그와 같이 행하므로 바로의 마음이 완악하여 그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더라 23바로가 돌이켜 궁으로 들어가고 그 일에 관심을 가지지도 아니하였고 24애굽 사람들은 나일 강 물을 마실 수 없으므로 나일 강 가를 두루 파서 마실 물을 구하였더라 25여호와께서 나일 강을 치신 후 이레가 지나니라(14-25)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바로에게 가서 나일강의 물이 핏빛으로 변할 것이라고 경고하십니다. 모세가 하나님 말씀대로 지팡이로 나일강을 치자 물이 핏빛으로 변하고, 애굽의 마법사들이 이를 흉내내지만 오히려 재앙을 악화시킵니다. 그러나 바로는 이 기적을 보고도 마음을 완고하게 유지하며 모세와 아론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1) 피 재앙을 하달하시는 하나님(14-19)

 

바로의 마음은 여전히 완강합니다. 바로의 고집을 표현하는 동사들이 세 가지로 다양하게 나타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다음 날 아침 나일 강변에 가서 다시 바로를 만나라고 지시하십니다(15). 바로가 아침부터 무슨 목적으로 나일 강변으로 나갔는지 알 수 없으나, 아마도 자주 아침에 강변 산책을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모세와 아론은 앞서 요청했던 동일한 요구 사항을 전달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여호와께 예배를 드리도록 내보내달라는 요구입니다(16). 이것을 허락하지 않은 대가로 이제 애굽의 모든 물이 피로 변할 것입니다. 그때에 바로는 그분이 여호와이심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여기서 물이 변한다는 것은 강물이 핏빛으로 변한다는 뜻입니다. 강물이 피로 변한 결과 강이 썩어 악취를 풍깁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인에 의해 신으로 숭배된 나일강을 악취가 나게 만드신 것입니다.

나아가 하나님은 애굽 온 땅에서 악취가 나게 하십니다(8:10). 나일강뿐 아니라 애굽의 모든 물이 핏빛이 될 것입니다(19). 이것은 강(나일강), 운하(나일강 지류들), 못, 호수를 포함합니다. 19b절의 “나무 그릇과 돌 그릇 안에는” 문자적으로 ‘나무들과 돌들 안에’입니다. 나무와 돌은 우상의 재료이므로, 이것은 애굽의 모든 우상들도 이재앙을 피할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카수토(Cassuto)는 애굽에서 매일 아침 우상들을 물을 부어 씻었는데, 그물들마저 핏물로 변해 우상들에게 부어졌다고 해석합니다. 카토는 이 경우 전치사 ‘베’는 ‘~안에’ 보다는 ‘위에’(on)로 해석된다고 말합니다. 애굽의 모든 물, 특히 나일강이 핏빛으로 변하는 재앙은 사실 애굽의 생명수를 없애는 무서운 재앙입니다. 나일강은 애굽의 축복이었다. 그 물은 식수였을 뿐 아니라(21), 농사와 과수를 위한 농업용수였으며, 나아가 물고기를 비롯한 다양한 수산물의 공급원이었습니다(21). 따라서 애굽의 젖줄인 나일강이 썩는 것은 커다란 재앙이 되었습니다.

 

(2) 나일강이 핏빛으로 변하다(20-25)

 

모세와 아론이 명령에 순종하여 지팡이를 들어 나일 강물을 치자, 물이 갑자기 핏빛으로 변했습니다. 나일강의 고기들이 떼죽음하여 물에서 악취가 풍기자 애굽인들은 더 이상 그 물을 마실 수 없었습니다. 강물 외에도 하나님 말씀대로 애굽 온 땅의 물이 피로 변했습니다(21).

바로는 이번에도 자신의 마법사들을 동원해 모세의 기적을 따라 했습니다. 그들은 애굽의 강물을 피로 변화시켰습니다. 이것이 실제 마법사들을 통제하는 악령에 의한 기적인지, 아니면 그들이 몰래 빨간 염료를 강에 푸는 방식으로 또 다른 고도의 속임수를 썼는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그런데 왜 아직 핏빛으로 변하지 않은 강물이 남아 있을까요? 카수토는 아론이 지팡이를 뻗지 않은 방향의 물이 멀쩡했다고 이해하며, 애굽의 술객들이 그 남은 물을 핏빛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그 술사들은 어리석게도 재앙을 악화시키는 결과를 낳습니다.

더욱 어리석게도 바로는 그것을 기뻐합니다. 참고로 핏빛 강물은 적조 현상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나일강 상류에서 홍수가 발생할 때, 상류의 황토가 쓸려 내려와 강물이 붉게 보이게 되고, 이때 하천의 부영양화로 인해 적조 현상이 발생하여 수많은 물고기가 떼죽음하며 악취가 발생합니다.

고대 근동의 여러 문헌에서도 이러한 적조 현상으로 보이는 강물의 변화에 대한 언급들이 종종 나타납니다. 나일강이 피로 변한 후 7일 동안 이 상태가 계속되었습니다. 숫자 ‘7’은 익히 아는 대로 완전수이며, 따라서 7일은 이 재앙의 완전한 성취를 뜻할 것입니다.


본문을 통해 하나님께서 자신의 권능을 드러내시고 인간의 완고함을 경고하신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회개할 기회를 주십니다. 그러나 때로 우리의 마음이 완고해져 그 경고를 무시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 속에서 역사하시며, 어떤 상황에서도 함께하십니다. 우리는 그분을 신뢰하고 믿음을 통해 하나님께서 영광을 드러내실 것을 기대해야 합니다. 결국,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겸손한 마음으로 그분의 뜻을 따르며 살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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