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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10-02)

 


아홉째 흑암의 재앙

출애굽기 10장 21-29절


 

인생의 어둠의 순간에도 하나님의 뜻을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종종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지만, 현대의 하나님의 계획은 여전히 ​​작동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인도하시며, 어려움 속에서도 계획을 세우는 것이 필요합니다. 어둠 속에서도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뜻을 믿고 머무르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평안과 기념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결국, 모든 상황에서 하나님의 계획과 인도를 믿는 것이 우리의 하나님입니다.

 

  • 하나님께서는 바로에게 아홉 번째 재앙을 보내기로 하십니다. 흑암의 재앙입니다. 3일간 지속되면서 대낮에도 빛이 사라진 칠흑 같은 어둠은 극도의 공포심을 불러일으켰을 것입니다. 두려움에 떨던 바로는 다시 모세와 아론을 불러들여 마지막 협상을 진행합니다. 그는 히브리인들의 가축을 볼모로 잡아놓을 심산이었는데, 모세의 즉각적인 거절로 협상은 최종적으로 결렬됩니다.

 

아홉 번째 재앙 : 온 땅이 흑암으로 덮이다(21-29)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해하는 방식을 자신이 계획하는 방식으로 결정합니다. 당신의 계획은 우리가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계속 진행되고 있습니다. 어려움과 어둠 속에서도 하나님의 계획을 믿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실시간 우리의 상황을 기록하시며, 그분의 뜻이 존재합니다. 이러한 신앙은 믿음을 바탕으로 성장합니다. 그러므로 인생의 어두운 순간에도 하나님을 믿으며 그분의 계획을 따로 따로 따로 두어야 합니다.

 

21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하늘을 향하여 네 손을 내밀어 애굽 땅 위에 흑암이 있게 하라 곧 더듬을 만한 흑암이리라 22모세가 하늘을 향하여 손을 내밀매 캄캄한 흑암이 삼 일 동안 애굽 온 땅에 있어서 23그 동안은 사람들이 서로 볼 수 없으며 자기 처소에서 일어나는 자가 없으되 온 이스라엘 자손들이 거주하는 곳에는 빛이 있었더라 24바로가 모세를 불러서 이르되 너희는 가서 여호와를 섬기되 너희의 양과 소는 머물러 두고 너희 어린 것들은 너희와 함께 갈지니라 25모세가 이르되 왕이라도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드릴 제사와 번제물을 우리에게 주어야 하겠고 26우리의 가축도 우리와 함께 가고 한 마리도 남길 수 없으니 이는 우리가 그 중에서 가져다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섬길 것임이며 또 우리가 거기에 이르기까지는 어떤 것으로 여호와를 섬길는지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나 27여호와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으므로 그들 보내기를 기뻐하지 아니하고 28바로가 모세에게 이르되 너는 나를 떠나가고 스스로 삼가 다시 내 얼굴을 보지 말라 네가 내 얼굴을 보는 날에는 죽으리라 29모세가 이르되 당신이 말씀하신 대로 내가 다시는 당신의 얼굴을 보지 아니하리이다(21-29)

 

하나님께서 함께 계시는 부분을 위해 함께하시는 신들의 능력을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겠다고 답하며,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의 마음을 강퍅하게 그리고 그래서 바로 그 사람을 다시 구성하고 선언합니다. 이 운동은 하나님의 권능과 이스라엘의 온전한 은혜를 받을 계획을 보여줍니다.

 

(1) 삼일 동안 임한 흑암의 재앙(21-23)

 

바로와 애굽은 파국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완고한 바로에게 아홉 번째 재앙을 일으키십니다. 이 재앙도 아래 도표에서 보듯이 가로 방향의 두 가지 다른 재앙, 세 번째와 여섯 번째 재앙과 마찬가지로 아무런 사전 경고 없이 발생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늘을 향해 손을 내밀어 흑암을 일으키라고 명령하십니다. 앞서 확인했듯이 모세나 아론이 손을 들 때는 지팡이가 손에 들려 있습니다. 이 흑암은 ‘더듬을 만한 흑암이 될 것이다’라고 하시는데(21), 이것은 ‘사람이 어둠을 느낄 수 있는 흑암’이라는 뜻입니다. 그 흑암은 사람이 느낄 수 있는 흑암은 엄청난 ‘모래 폭풍’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이유로 사람들이 집에서 나올 수 없었을 것입니다. 나일강 유역을 벗어나면 광활한 사막뿐인 애굽에서 이런 모래 폭풍은 일상적인 경험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번에는 아무도 경험해보지 못한 초자연 급의 모래 폭풍이 불게 하신 것으로 추론됩니다. 더구나 그 전국적인 모래 폭풍이 유독 이스라엘 백성이 거주하는 고센 땅에만 임하지 않고 그곳은 평소와 다름없이 빛이 있었다는 것은 이 모래 폭풍이 초자연적 현상의 재앙임을 말해줍니다. 이때 고센 지역의 ‘빛’을 신적인 빛, 하나님의 영광의 빛으로 이해할 필요는 없을 듯합니다. 3일 동안 그곳은 모래 폭풍이 불지 않아 태양이 가려지지 않은 일상적인 상황을 유지했다는 뜻으로 이해됩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지시대로 지팡이를 쥔 두 손을 하늘 높이 들자 캄캄한 흑암이 엄습하여 3일 동안 애굽을 암흑의 땅으로 만들었습니다(22). 3일 동안 지속된 모래 폭풍의 흑암으로 인해 애굽 사람들은 밖에 나갈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빛이 있었습니다. 여기에 몇 가지 중요한 관찰 사항들이 있습니다.

첫째, 이 두려운 흑암의 재앙은 마지막 열 번째 재앙을 예고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컴컴했던 유월절 ‘밤중에’ 애굽의 모든 첫 태생, 백성의 장남과 가축의 맏 배가 죽는 일이 발생하기 때문입니다(11:4).

둘째, 혼돈과 붕괴로 돌아가는 역창조의 주제가 엿보입니다. 사실 앞선 재앙들도 하나님의 창조질서가 일시적으로 무너지는 현상이기에 역창조의 사건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역창조로 인해 애굽은 창조의 질서로부터 붕괴되는 국가로 전락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에는 빛이 있게 하셨다는 것은 이스라엘의 재창조에 대한 분명한 암시로 이해됩니다. 이렇듯 ‘빛과 어둠을 나누심’으로써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중심한 재창조의 작업을 시작하십니다.

셋째, 앞서 모든 재앙을 애굽 신에 대한 심판으로 해석할 수 있었는데, 여기서 흑암의 재앙은 애굽의 주신인 태양신에 대한 심판일 수 있습니다. 태양신은 라(Ra) 혹은 레(Re)로, 나중에는 바람과 공기의 신인 아문(Amun)과 합쳐져 아문-레(Amun-Re)라 불립니다. 재앙들이 어떻게 애굽 신들에 대한 심판과 연결되는지 아래 도표를 통해 종합적으로 확인해볼 수 있습니다. 앞서 설명한 대로, 각각의 재앙들을 공통적 요소를 가진 가로와 세로의 재앙들로 묶을 수 있습니다. 첫 번째 가로축의 묶음은 ‘아침에’ 바로를 만나는데 장소는 강가입니다. 다만 일곱 번째 우박재앙에서 ‘강가에서’가 언급되지 않지만, ‘아침에’로 암시되어 있습니다. 바로는 아침마다 강변 산책을 했던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세로축에서는 지팡이를 사용하는 행동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지팡이 사용에서 가끔 ‘손을 든다’는 것만 언급될 때도 있으나 이 경우 지팡이가 암시되어 있습니다. 특정 재앙들이 어떤 신들에 대한 심판인지에 대해서는 학자들마다 견해차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박 재앙에 대해 어떤 사람은 그것을 ‘누트’(Nut)라는 하늘 여신과 관련시키나, 다른 사람은 곡식 신 세트(Seth)와 관련시킵니다.

마지막 열 번째 재앙은 민(Min)이라는 출산의 신과 관련지을 수 있습니다. 혹은 바로의 장자가 그 자체로 신으로 숭상되었기에 그 신이 죽음을 당함으로써 하나님께 제압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아래 연관 짓기는 무난한 한 가지 예입니다.

 

1. 핏빛 나일강
하피=나일 신
4. 파리 떼
케프리(?)
7. 우박
누트=하늘 신
아침에
강가에서
바로에게
2. 개구리 떼
헤켓=개구리 신

5. 가축 전염병
아피스=황소신
8. 메뚜기
세트=농사신
왕궁에서
바로에게
3.이(모기)
케프리(?)
6. 독종
세크메트
9. 흑암
아몬-레=태양신
장소 불분명
(왕궁암시)
경고 없음
지팡이 사용
애굽와이스라엘
애굽 마술사 등장
(1,2번만 모방)
지팡이 사용없음
애굽에만 임함
지팡이 사용
애굽에만 임함
10. 장자의 죽음
민=출산신
바로의 장자

 

(2) 바로의 최후 저항(24-29)

 

두려움에 사로잡힌 바로는 급히 모세를 다시 불러들였습니다. 그는 다시 협상에 들어갑니다. 이번에도 그들의 예배 여행을 허락해주겠다고 양보하는 척하면서, 또다시 단서를 붙입니다. 자녀들을 포함해서 모두가 떠나도 좋지만, 가축은 남겨두고 떠나라는 제안입니다. 이제 마지막이 될 세 번째 협상안입니다. 그러나 유목민인 이스라엘 백성에게 삶의 근간이자 생명줄인 가축을 놓고 떠나라는 것은 받아들이기 불가능한 조건입니다. 바로의 치졸한 이 세 번째 협상안을 모세는 단호히 거부하면서 가축도 데려가겠다고 통보합니다. 물론 지혜로운 협상술로 볼 수 있는 분명한 명분을 내놓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제사 관행을 들먹입니다. 이스라엘의 제사는 제단에 짐승을 태우는 방식인데(앞서 설명한 대로 이것은 애굽의 제물 드리기와 차이가 난다), 가축을 필수적으로 몰고 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심지어 자신들에게 가축이 없다면, 바로가 희생 제물용으로 대신 채워줘야 할 정도로 가축은 중요합니다. 더구나 그것을 모두 끌고 가야 하는 이유는 그 가축들 중에 어느 것을 골라서 바쳐야 하는지 현장에 도착해서 결정해야 하기 때문입니다(26). 모세의 주장은 훗날 레위기에서 제도화할 희생 짐승의 흠 문제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희생 짐승으로 바칠 가축은 흠이 없어야 합니다(레 1:3; 3:1; 4:3 등), 열두 가지 대표적 홈들을 담은 흠 목록이 레위기 22:17-25에 자세히 나열됩니다. 아마 레위기 법이 있기 전부터 조상 대대로 이스라엘은 흠 없는 짐승을 제물로 바치는 관행을 준수해왔을 것입니다. 모세의 주장이 타당한 이유는 짐승의 마지막 신체검사가 성소에 끌고 온 뒤 거기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최종 합격 판정을 받아야 그 가축이 제단에 태워질 수 있습니다. 집에서는 멀쩡했던 짐승이 성소에 올라가는 도중에 알지 못하는 가운데 어딘가 찢어지거나 문제가 생길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은 모든 짐승을 광야로 데려간 뒤, 현장에서 짐승의 흠을 확인해야만 했습니다. 교묘하면서도 명백히 정당한 모세의 주장 앞에 바로는 더 이상 반론을 펼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바로는 결코 그들을 보낼 수 없었기에 다시 마음을 걸어 잠급니다. 출애굽기 저자는 여기서도 여호와께서 그의 마음을 완고하게 만드셨다고 표현합니다(27). 바로는 최종적 협상 결렬을 선언합니다(28). “다시 내 얼굴을 보지 말라”는 것은 ‘더 이상 나를 만나러 오지 말라’는 통보입니다. 몸조심하고 만일 왕궁을 다시 찾아온다면 그때는 죽을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모세도 맞받아쳐서 최후통첩을 전달합니다. ‘당신 말대로 다시 당신을 볼 일은 없을 것이다(29). 말하자면, 더 이상 바로에게 찾아오지 않겠고 이제 파국만 남았다는 통보입니다.

 

 

하나님의 권능과 계획을 드러내는 중요한 본문입니다. 이 사랑은 우리가 어려움과 어둠 속에서도 하나님의 계획을 실천하는 인도인을 따라야 함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입체 우리를 완전한 자유와 구원으로 인도하시며, 우리의 신앙과 기도자가 당신의 뜻을 이루는 삶을 살도록 도와드립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고 신앙으로 응답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삶을 통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경험하고, 그분의 계획에 따라 신뢰하며 일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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