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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34-01)

 


하나님과의 언약: 순종과 헌신의 길

출애굽기 34장 1-17절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 속에서도 여전히 신실하게 언약을 지키시며 놀라운 일을 행하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세속적인 유혹과 우상 숭배를 경계하며,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고 신뢰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함으로써, 하나님의 축복과 보호를 누릴 수 있습니다. 또한, 신앙 생활에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최우선으로 하며, 모든 행동과 결정에서 그분의 뜻을 따라야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 모세의 기도에 응답하여 하나님께서 새로운 십계명 돌판을 제작하시고 이스라엘 백성과 언약을 다시 세우십니다. 모세는 새로운 돌판을 만들어 산에 오르고 여호와는 산 정상에 다시금 강림하십니다. 언약의 재수립에서 하나님의 성품이 드러납니다. 이 재언약에서 백성들에게 요구된 조건이 강화됩니다. 바로 금송아지 숭배 따위가 앞으로 반복되어선 안 된다는 경고입니다.

 

언약의 재수립을 위한 모세의 재입산(1-9)

우리는 하나님 앞에 겸손히 나아가며, 예수님을 중보자로 신뢰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비와 공의를 기억하고, 죄를 경계해야 합니다. 회개하는 마음으로 죄를 멀리하고, 하나님의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충성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를 지켜나가야 합니다.

 

1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돌판 둘을 처음 것과 같이 다듬어 만들라 네가 깨뜨린 처음 판에 있던 말을 내가 그 판에 쓰리니 2아침까지 준비하고 아침에 시내 산에 올라와 산 꼭대기에서 내게 보이되 3아무도 너와 함께 오르지 말며 온 산에 아무도 나타나지 못하게 하고 양과 소도 산 앞에서 먹지 못하게 하라 4모세가 돌판 둘을 처음 것과 같이 깎아 만들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그 두 돌판을 손에 들고 여호와의 명령대로 시내 산에 올라가니 5여호와께서 구름 가운데에 강림하사 그와 함께 거기 서서 여호와의 이름을 선포하실새 6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선포하시되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 7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리라 그러나 벌을 면제하지는 아니하고 아버지의 악행을 자손 삼사 대까지 보응하리라 8모세가 급히 땅에 엎드려 경배하며 9이르되 주여 내가 주께 은총을 입었거든 원하건대 주는 우리와 동행하옵소서 이는 목이 뻣뻣한 백성이니이다 우리의 악과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주의 기업으로 삼으소서(1-9)

 

본문에 모세가 두 번째 돌판을 준비하여 하나님과 다시 만나는 장면이 나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자비롭고 은혜로운 성품을 선포하며, 백성들의 죄를 용서하고 은혜를 베푸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모세는 하나님께 이스라엘 백성을 불쌍히 여겨 그들과 함께하시기를 간청합니다.

 

(1) 모세의 돌판 준비와 재입산(1-4)

 

여호와께서는 모세를 통해 백성들의 대역죄의 책임을 물어 주동자와 적극 가담자로 추정되는 삼천 명을 처벌하신 뒤 모세의 탄원을 받아들이시고 언약 재수립을 준비하십니다. 모세는 자신이 깨뜨린 증거의 돌판 두 개를 만들어 그것을 들고 시내산에 입산하라는 명령을 받습니다. 깨뜨린 십계명 돌판이 언약 파기를 상징했다면, 새로운 돌판은 언약의 재수립을 상징할 것입니다. 모세가 새로 깎은 돌판에 하나님께서 십계명의 말씀을 새기실 것입니다(1).

2절의 ‘아침까지 준비했다’는 표현을 볼 때, 모세는 밤늦도록 돌판을 다듬은 것 같습니다. 거룩한 구역인 시내산 입산 금지가 다시 강조됩니다. 이제 모세 홀로 꼭대기에 올라야 하고, 아무도 산에 들어가면 안 되며, 심지어 가축들도 풀을 뜯으러 접근해선 안 됩니다(3). 모세는 아침 일찍 일어나 두 돌판을 손에 들고 산에 올랐습니다(4).

 

(2) 여호와의 강림과 모세의 탄원(5-9)

 

해석에서 5절과 6절의 동사들은 주어가 3인칭 단수 ‘그’인데, 모세인지 여호와인지 명확하지 않습니다. 5절 첫 번째 문장은 ‘여호와께서 구름 가운데 강림하셨다’이지만, 이어지는 문장은 ‘그리고 그는 그와 함께 서 있었으며 그가 여호와의 이름을 외쳤다’입니다. 거의 대부분 의역본들과 학자들은 구름 가운데 강림하신 여호와를 이어지는 모든 동사들의 주어로 보지만, 일부 학자들은 ‘그가 그와 함께 서 있었다’와 ‘그가 여호와의 이름을 외쳤다’의 주어는 모세라 주장합니다.

6절의 문장 ‘여호와께서 그의 앞을 지나갈 때, 그가 외쳤다(부르다)’에서 ‘그’가 모세라면 모세가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으며 따라서 두 번 부른 셈이 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33장에서부터 이어지는 흐름과 문맥을 고려해볼 때 설득력이 없습니다. 무엇보다 33:19에서 여호와께서 ‘내가 여호와의 이름을 네 앞에 선포하리라’라고 약속한 것이 현재 이루어지고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이어서 7절은 20:5-6의 십계명에서 여호와께서 친히 선포했던 여호와 자신의 속성에 대한 재진술입니다. 8절의 모세의 엎드림도 5-7절의 여호와의 영광의 나타남과 자기 속성의 선포 앞에 두려워 떤 반사적 반응으로 볼 수 있습니다.

7절의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다”의 히브리어 표현은 ‘나사 아본/페샤/하타’입니다. 이것은 문자적으로 ‘죄를 들어올리다’, ‘죄를 짊어지다’ 혹은 ‘죄를 제거하다’라는 의미인데, 하나님께서 주어일 때는 죄를 없앤다는 의미로 ‘사면하다’, ‘용서하다’로 해석됩니다. 물론 그에 따른 죄 사함(용서)은 하나님의 소관입니다. 하나님의 이름 선포와 인과응보의 원칙에 대한 우렁찬 선언을 들은 모세는 두려움에 즉시 엎드려(8) 앞서 드린 기도의 내용을 반복합니다(9). 그것은 여호와의 동행에 대한 간청과 목이 곧은 이스라엘 백성의 뻔뻔스런 범죄를 시인하고 용서를 간구하는 내용입니다.

출애굽기 32:9와 33:3,5에서 설명된 "목이 뻣뻣하다"라는 표현은 이스라엘의 완고한 불순종을 나타냅니다. 이는 이후에도 오경에서 집중적으로 등장하며, 이스라엘 백성의 완고함과 배교를 표현하는 중요한 문맥으로 사용됩니다(출 33:3,5; 34:9; 신 9:6,13; 10:16; 31:27). 구약 역사 속에서도 이러한 표현은 이스라엘 조상들의 완고함과 비교되며, 하나님에 대한 불순종을 비난하는 문맥에서 지속적으로 등장합니다(왕하 17:14; 대하 30:8; 느 9:16-17,29; 렘 7:26).

이스라엘 백성의 배교는 하나님과 모세의 오랜 부재와 침묵으로 인한 조급한 배신이었으며, 당장에 자신의 필요와 안전을 보장해줄 대체 신을 만들었던 것입니다. 원래 그들은 목이 뻣뻣한 백성이 아니라, 언약 관계 속에 선택된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요 하나님의 ‘보물’이었습니다(참고, 19, 24장).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이 왕과 신하의 관계임을 의미합니다. 신하는 왕의 소유로 그의 종입니다. 동시에 신하는 왕의 보호와 후원을 받습니다. 그러나 왕에 대한 신하의 충성이 그 모든 혜택을 보장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비로운 왕으로 먼저 그들과 언약을 체결하시며 복과 더불어 보호와 후원을 약속하셨습니다. 백성들도 이에 적극적인 순종으로 충성을 맹세했으나, 그들의 배교는 매우 신속하게 일어났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산에 올라 십계명 돌판과 더불어 성막 건설을 위한 설계 도면을 받고 있을 때, 산 아래에서는 백성들이 황금 송아지를 만들었습니다(32:1).

산꼭대기의 모세는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성령 충만을 경험하고 있었지만, 산 아래 백성은 최악의 악령 충만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하늘이 맞닿은 시내산에서 하나님께서 중재자 모세를 통해 모든 구원의 준비를 완료하셨으나, 산 아래의 땅에 있던 백성은 하나님과 모세를 배신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몸으로 하늘 성전을 삼으며 지상에 오셨지만(요 2:21), 땅에 있는 자기 백성들은 빛으로 오신 그를 배척하고 어둠 속에 헤매었습니다(요 1:10-12). 이러한 맥락에서 모세는 참된 중재자이자 중보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 역할을 하고 있음을 다시 한 번 드러냅니다.

 

언약의 재수립(10-17)

하나님께서는 질투하시는 분으로, 우리에게 전적인 헌신을 요구하시며 다른 우상이나 세속적인 가치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도록 경고하십니다. 현대 사회에서도 우리는 하나님 외에 다른 것에 마음을 두거나 타협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또한, 우리의 믿음을 지키기 위해 영적 유혹을 멀리하며,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 필수적임을 깨닫게 됩니다.

 

10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보라 내가 언약을 세우나니 곧 내가 아직 온 땅 아무 국민에게도 행하지 아니한 이적을 너희 전체 백성 앞에 행할 것이라 네가 머무는 나라 백성이 다 여호와의 행하심을 보리니 내가 너를 위하여 행할 일이 두려운 것임이니라 11너는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것을 삼가 지키라 보라 내가 네 앞에서 아모리 사람과 가나안 사람과 헷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을 쫓아내리니 12너는 스스로 삼가 네가 들어가는 땅의 주민과 언약을 세우지 말라 그것이 너희에게 올무가 될까 하노라 13너희는 도리어 그들의 제단들을 헐고 그들의 주상을 깨뜨리고 그들의 아세라 상을 찍을지어다 14너는 다른 신에게 절하지 말라 여호와는 질투라 이름하는 질투의 하나님임이니라 15너는 삼가 그 땅의 주민과 언약을 세우지 말지니 이는 그들이 모든 신을 음란하게 섬기며 그들의 신들에게 제물을 드리고 너를 청하면 네가 그 제물을 먹을까 함이며 16또 네가 그들의 딸들을 네 아들들의 아내로 삼음으로 그들의 딸들이 그들의 신들을 음란하게 섬기며 네 아들에게 그들의 신들을 음란하게 섬기게 할까 함이니라 17너는 신상들을 부어 만들지 말지니라(10-17)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과 언약을 새롭게 하시며, 그들을 위해 놀라운 일을 행하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그들은 약속의 땅에 거주하는 이방 민족과 어떤 언약도 맺지 말고, 그들의 우상을 파괴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 외의 다른 신을 섬기지 말고 우상 숭배를 철저히 금하라는 명령을 받습니다.

 

(1) 가나안 족속의 추방을 약속하심(10-11)

 

돌판에 십계명을 새롭게 새기신 하나님께서 언약 재수립을 확증하십니다(10). 지금까지 아무도 보지 못한 이적을 일으키실 것입니다. 이것이 창조 사역에 사용되는 동사 ‘바라’로 표현됩니다. 곧 이스라엘을 위해 새로운 일을 행하실 것입니다. 바로 가나안 땅 정복입니다. 백성들은 친히 그들을 인도하시는 여호와, 또한 사자를 그들 앞에 보내시는 여호와께서 행하실 일을 이제 잠잠히 지켜보아야 합니다. 가나안의 여러 족속들은 추방될 것입니다(11). 그것이 10절에서 말하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아무 국민에게도 행한 적 없는 새로운 일입니다. 하지만 가나안 민족들 뿐만 아니라 택한 백성이라 할지라도 불순종과 죄로 인한 징벌과 멸절은 피할 수 없다. 하나님은 무자비하십니까? 사람의 죄악이 가득한 세상을 하나님은 세상의 물을 동원해 홍수로 멸절하셨습니다(창 6:5). 동일한 이유로 가나안 족속의 죄악이 가득한 그 땅을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동원해 전쟁으로 멸절하셨습니다(창 15:16). 자비로운 하나님께 심판이라는 단어는 매우 어색하고 불편하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자비로운 사랑의 하나님은 또한 죄에 대해 엄중히 책임을 물으시는 정의로운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엄중한 심판자이심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2) 가나안과의 약조 금지와 우상 파괴 명령(12-17)

 

하나님께서는 앞서 23:33에서 엄중히 경고했던 것을 반복하십니다. 만일 가나안 족속들과 언약을 체결한다면, 그것은 앞으로 계속하여 이스라엘 백성에게 올무가 될 것이라는 경고입니다(12). 하나님과의 언약 체결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출발점은 한 분 하나님에 대한 독점적 충성입니다. 이것은 십계명의 제1, 2계명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백성은 다른 민족과의 조약 체결이 금지됩니다. 이것은 필연적으로 다른 신들에 대한 숭배가 동반되기 때문입니다. 모든 민족들이 제의에서 자신들의 신에게 바쳐진 제물을 함께 나누며 견고한 결속을 다지는데, 그들과 조약을 맺는다면 이스라엘 백성도 이것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또한 그들과의 조약은 자연히 혼인 관계로 이어지며, 결국 가나안 민족이 그들의 한 식구가 되면서 그들의 신을 함께 섬기는 것은 필연적인 일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과의 조약과 더불어 우상숭배를 금지하시면서, 십계명 선포에서 사용된 표현을 재차 사용하십니다: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이십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와의 언약을 신실하게 지키시며, 우리의 삶 속에서 놀라운 일을 행하시길 원하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분만을 섬기며, 세속적인 우상이나 유혹에 타협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질투는 우리를 향한 사랑에서 비롯되었으니, 우리는 그 사랑에 온전히 응답하며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축복과 보호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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