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32-02)
하나님의 진노와 모세의 중보기도
출애굽기 32장 15-35절
일반 사람들은 대형 사건을 뉴스나 소식으로 들었을 때, 이를 가볍게 넘기거나 농담으로 받아들이기 쉽습니다. 그러나 사건을 직접 목격하면 그 충격의 크기는 상상 이상으로 커집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의 범죄를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에는 심각성을 느끼지 못했으나, 현장에서 직접 사건을 목격했을 때 그 심각성을 깊이 깨달았습니다.
- 본문에서는 모세가 시내산에 있는 동안 이스라엘은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하나님께 범죄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죄악을 목격한 모세는 이스라엘을 위한 노력을 다 하면서 완전히 용서를 받기 위한 둘째 단계로 나아갑니다. 자기 목숨을 걸면서까지 이스라엘을 구하기 위해 기도합니다.
이스라엘의 우상숭배의 심각성(15-18)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것은 우상숭배입니다. 우상숭배는 단순히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을 넘어,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우상숭배를 결코 용납하지 않으시고 반드시 벌하십니다.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점검해봐야 합니다.
15모세가 돌이켜 산에서 내려오는데 두 증거판이 그의 손에 있고 그 판의 양면 이쪽 저쪽에 글자가 있으니 16그 판은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요 글자는 하나님이 쓰셔서 판에 새기신 것이더라 17여호수아가 백성들의 요란한 소리를 듣고 모세에게 말하되 진중에서 싸우는 소리가 나나이다 18모세가 이르되 이는 승전가도 아니요 패하여 부르짖는 소리도 아니라 내가 듣기에는 노래하는 소리로다 하고(15-18)
모세는 두 개의 십계명 돌판을 들고 시내산을 하산합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글자를 새긴 돌판들입니다. 백성들의 광란의 배교에 대해 하나님께 듣고 하산한 모세는 상황을 직접 파악합니다. 축제의 현장에서 들리는 괴성이 어찌나 컸던지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진영에서 큰 싸움이 난 줄로 착각했습니다(17). 모세는 그 소음이 ‘노래 소리들’(아노트)인 것을 간파했습니다(18). 그들은 바로 얼마 전에 공포를 느끼게 한 여호와의 강림과 임재를 경험했고, 그분께 순종을 결단하며 언약을 체결한 상태입니다. 그런데도 그들의 결연한 순종 의지는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모세는 24장에서 언약식을 마친 후 산위에서 하나님께 성막 설계를 받기 위해 40일간 머물렀습니다(24:18). 충성을 맹세한 자들이 이 짧은 기간을 참지 못하고 금송아지를 제작하며 하나님과 모세에게 반항하는 배교의 길로 빠진 것입니다. 아론이 책임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백성의 타락을 그의 무능 탓으로만 돌릴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토록 완악했던 바로와 다를 바 없었습니다.
모세의 분노와 질책(19-21)
세상에는 진리와 거짓을 분별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거짓은 진리보다 가장(假裝)하여 능력자처럼 현혹하지만, 진리 앞에서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공동체 안에 거짓과 진리를 분별해야 할 때, 진리 편에 서시겠습니까? 또한 성도들의 잘못을 보고 먼저 돌아보고 당신의 책임처럼 기도하는 지도자가 되길 원하십니까?
19진에 가까이 이르러 그 송아지와 그 춤 추는 것들을 보고 크게 노하여 손에서 그 판들을 산 아래로 던져 깨뜨리니라 20모세가 그들이 만든 송아지를 가져다가 불살라 부수어 가루를 만들어 물에 뿌려 이스라엘 자손에게 마시게 하니라 21모세가 아론에게 이르되 이 백성이 당신에게 어떻게 하였기에 당신이 그들을 큰 죄에 빠지게 하였느냐(19-21)
백성들의 춤은 분명 소리를 지르며 온몸으로 추는 광란의 춤이었을 것입니다. 풍요와 다산을 위한 의식이었던 이방 예배의 특징을 잘 암시합니다. 통음난무(痛飮亂舞) 의식은 종교 행사에서 신과 접속하거나 신을 부르기 위해 황홀경에 빠져 괴성을 질렀음을 암시합니다.
분노한 모세는 돌판을 던져 깨트립니다(19). 이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언약 파기를 상징합니다. 모세의 중재 기도로 하나님께서 백성들을 용서하신 후에 이 깨진 돌판은 나중에 다시 제작되는데, 이때는 모세가 친히 깎습니다(34:1,3,28-29). 이것은 언약의 회복을 상징합니다.
송아지 숭배는 애굽의 영향이 분명합니다. 특히 애굽 도시 온은 고센에서 가까운 곳이었기에, 이스라엘 백성의 금송아지 숭배의 기원을 짐작케 합니다. 후대에 여로보암은 예루살렘에 계신 하나님을 멋대로 벧엘과 단으로 모시고 와 송아지 형상으로 탈바꿈시켰습니다(왕상 12:28). 그뿐만 아니라 바알과 아세라 상을 만들어 백성들로 하여금 절하게 만들었습니다.
이후로 금송아지 우상과 바알과 아세라 상이 함께 등장하곤 합니다(왕하 17:16). 그리하여 여로보암의 이 배교 행위는 두고두고 ‘여로보암의 길’ 혹은 ‘여로보암의 죄’라는 이름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저지르는 범죄의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20절은 모세가 이 금송아지 형상을 불에 태워 가루로 만든 뒤 물에 타서 백성이 마시게 했다고 말합니다(참조. 왕상 23:6,12). 어떻게 금덩어리 형상을 불사르고 가루로 만들었습니까? 앞서 말한 대로 이것 때문에 어떤 학자들은 이것이 나무 조각상에 금을 입힌 우상이었다고 말합니다. 우가릿 문헌에 비슷한 기록이 나타납니다(ANET, 149:ii).
가나안의 신 못(Mot)이 아낫(Anat)에게 죽임을 당한 후, 아낫은 그 시체를 태워 맷돌로 갈아 들판에 뿌립니다. 이에 비추어볼 때, 아마 금덩어리로 된 송아지 형상도 불로 그을린 뒤 맷돌로 갈아 가루로 만들었을 것입니다. 이 금송아지의 크기는 황소의 실물 크기가 아니라 상당히 작았을 것입니다. 실제로 가나안 일대의 신전터들에서 발견된 몇 개의 청동 황소 주조물들은 크기가 불과 20센티미터 안팎입니다. 하지만 현재의 금송아지 형상은 그보다는 훨씬 컸을 듯합니다.
신명기 9:21에 동일한 이야기, 즉 금송아지 우상 파괴 장면이 나옵니다. 그 기록은 현재의 본문과 약간 차이가 있습니다. 거기서는 가루를 시내산의 시냇물에 뿌렸다는 기록 외에 백성들이 마시게 했다는 내용은 없습니다. 그런데 왜 우상을 가루로 만들어 물에 타 백성들에게 마시게 했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민수기 5:11-15의 시험 의례와 관련시킵니다: 의심받는 아내가 쓴물을 마심으로써 진실을 밝힙니다. 이 견해에 의하면, 이어지는 26-29절의 레위 지파에 의한 심판의 학살에서 죽임을 당한 삼천 명이 그 우상의 가루를 마시고 범인으로 드러났습니다.
즉, 본문이 침묵하고 있으나 온 백성이 이 우상의 가루를 탄 물을 마신 뒤 어떤 분명한 징표에 의해 주동자들이 드러난 것으로 이해됩니다. 이 견해의 장점은 이것이 백성들 중 삼천 명이 선별되어 학살당한 이유를 잘 설명해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에는 이것이 시험 의례라는 암시가 전혀 나타나지 않습니다.
아마 이것은 모든 백성들의 우상숭배에 대한 책임을 묻고 그 범죄를 확증하는 상징적 행위였을 것입니다. 모세는 그중에서 주동자들이라 할 수 있는 삼천 명을 색출해서 처벌했을 것입니다.
아론의 변명과 책임 회피, 레위인에 의한 징계(22-29)
공동체의 죄는 그 안에 있는 모든 구성원에게 수치가 됩니다. 이는 외부 사람들에게 비웃음거리가 될 뿐입니다. 공동체가 잘못된 길을 갈 때, 모든 구성원이 아픔을 감수하며 개혁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교회의 건강을 위해 헌신과 기도로 함께해야 합니다.
22아론이 이르되 내 주여 노하지 마소서 이 백성의 악함을 당신이 아나이다 23그들이 내게 말하기를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 수 없노라 하기에 24내가 그들에게 이르기를 금이 있는 자는 빼내라 한즉 그들이 그것을 내게로 가져왔기로 내가 불에 던졌더니 이 송아지가 나왔나이다 25모세가 본즉 백성이 방자하니 이는 아론이 그들을 방자하게 하여 원수에게 조롱거리가 되게 하였음이라 26이에 모세가 진 문에 서서 이르되 누구든지 여호와의 편에 있는 자는 내게로 나아오라 하매 레위 자손이 다 모여 그에게로 가는지라 27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각각 허리에 칼을 차고 진 이 문에서 저 문까지 왕래하며 각 사람이 그 형제를, 각 사람이 자기의 친구를, 각 사람이 자기의 이웃을 죽이라 하셨느니라 28레위 자손이 모세의 말대로 행하매 이 날에 백성 중에 삼천 명 가량이 죽임을 당하니라 29모세가 이르되 각 사람이 자기의 아들과 자기의 형제를 쳤으니 오늘 여호와께 헌신하게 되었느니라 그가 오늘 너희에게 복을 내리시리라(22-29)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책임을 아론과 훌에게 맡기고 산에 올라간 바 있습니다(24:14). 그러나 아론은 이 직책을 배교의 길을 가는 데 사용하고 만 것입니다. 모세는 정당하게 이 사태에 대한 책임을 아론에게 묻습니다(32:2-6, 21-24). 아론은 이 모든 일이 모세를 기다리지 못하고 여호와를 신뢰하지 못한 인내심 없는 백성 탓이라며 변명을 늘어놓습니다(23-24). 아론의 이 비겁한 모습은 백성을 위해 백성을 위해 생명을 건 모세와 대조됩니다.
물론 더 큰 책임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습니다. 22, 25절에서 모세는 은혜를 받은 이 백성이 악하고 ‘방자하며’ (파라 ‘멋대로 다니다’) 그들이 온 민족의 웃음거리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결국 무서운 징벌을 당합니다. 모세는 이 일을 주동한 사람들을 찾아냈을 것입니다.
이 심판의 형을 집행할 사람들을 찾는 데 레위인들이 앞장섭니다(26). 그날 삼천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살육을 당했습니다(28). 잔인하게 보이겠지만, 이것은 에덴의 추방과 노아의 홍수,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죄와 반역에 대한 정당한 신적 사형 집행이었습니다. 최후 심판의 날도 그러할 것입니다.
레위인은 이 사건의 해결에 앞장서 헌신을 한 이유로 복을 받을 것이라는 약속이 주어집니다(29). ‘오늘’ 복을 받을 것이라 표현되어 있으나, 이것은 앞으로 받을 복도 의미합니다. 그들이 헌신의 대가로 보장받은 복은 분명 레위인이 전담할 성막 직무일 것입니다.
모세의 탄원과 하나님의 응답(30-35)
기도는 자신의 바람을 하나님께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뜻에 자신을 맞추는 과정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계획을 깨닫고, 그분의 뜻에 따라 삶을 조율하는 시간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구해야 합니다. 요즘 당신은 무엇을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에 맞추고 있습니까?
30이튿날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가 큰 죄를 범하였도다 내가 이제 여호와께로 올라가노니 혹 너희를 위하여 속죄가 될까 하노라 하고 31모세가 여호와께로 다시 나아가 여짜오되 슬프도소이다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 신을 만들었사오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32그러나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 33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범죄하면 내가 내 책에서 그를 지워 버리리라 34이제 가서 내가 네게 말한 곳으로 백성을 인도하라 내 사자가 네 앞서 가리라 그러나 내가 보응할 날에는 그들의 죄를 보응하리라 35여호와께서 백성을 치시니 이는 그들이 아론이 만든 바 그 송아지를 만들었음이더라(30-35)
여호와 하나님을 잔인한 보복의 하나님으로 볼 수 없는 이유는 그분이 죄에 대해 엄격한 공의의 하나님이시면서 동시에 죄를 용서하는 은혜와 자비의 여호와이시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그들을 구하기 위해 하나님 앞에 나아가 백성을 대신하여 속죄의 기도를 드립니다(30). 그의 탄원은 사생결단의 절박한 간구였습니다. 자신의 목숨을 내건 일종의 대속의 기도였습니다.
11절에서 이미 모세의 기도의 성격이 잘 나타납니다. 앞서 11절의 “하나님 여호와께 구하여”라는 말은 ‘구하다’의 히브리어 ‘할라’가 ‘아프다’, ‘안타까워하다’, ‘쓰라려하다’라는 뜻임을 고려할 때, 모세가 문자적 의미에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얼굴을 애타게 구했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속죄를 위해 짐승이 희생되지 않았고 속전이 지불된 것도 아닙니다. 단지 모세의 탄원을 통해 속죄가 이루어집니다. 물론 앞서 삼천명의 희생은 백성의 죄에 대한 배상적 징벌의 의미를 포함할 수 있습니다.
주목해야 할 것은 모세의 탄원이, 32절에서 보듯이,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드린 중재의 기도였다는 점입니다. 이것이 백성을 속죄하여 구원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응답은 매우 원론적입니다. 모세, 너의 이름을 지우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범죄하고 불순종하는 자들은 그 누구든지 하늘의 생명책에서 그 이름이 지워질 것입니다(33).
하나님께서는 주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보내신다고 한 사자는 약속대로 보내실 것이나 백성의 죄로 보응이 필요할 때는 언제나 그 죄를 보응하실 것입니다(34). 35절의 결론부에서 여호와께서 그 삼천 명의 죽음은 바로 금송아지 배교에 대한 최소한의 대가였음을 다시금 천명하십니다. 모세의 대속의 기도와 여호와 하나님의 자비로우심으로 인해 더 이상의 죽음이 발생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바르게 헌신해야 합니다. 영적 지도자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살아갈 때, 이웃을 바르게 인도할 수 있습니다. 말씀이 없으므로 진리와 거짓을 구별하는 무지한 성도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성도들은 이웃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여기고 하나님의 마음으로 기도할 때, 지역 사회를 선도할 수 있는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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