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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35-02)


성막 재료를 드리는 이스라엘

출애굽기 35장 20-29절


 

‘헌근지성(獻芹之誠)’이란 ‘보잘 것 없는 것이라도 정성스레 바치는 마음’을 의미합니다. 선물과 뇌물의 차이는 주는 사람의 마음에 있습니다. 감사를 표현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주는 것은 선물이지만, 대가를 바라고 주는 것은 뇌물입니다. 고마운 마음이 담기면 선물이 되고, 청탁이 담기면 뇌물이 됩니다. 최상의 선물은 진실한 마음이며, 그 마음을 담아 전달하는 것이 진정한 선물입니다.

 

  • 본문에서는 성막 건설이 드디어 착수됩니다. 그것은 재료 준비와 더불어 시작될 것입니다. 백성들의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참여로 막대한 양의 건축 자재와 재료, 특히 매우 비싼 금은보석과 다양한 최고급 실과 가죽과 향품이 마련됩니다. 성막 건설에서는 금송아지 배교 사건 직후 모세의 중재로 하나님의 심판 위기를 넘긴 백성들이 전적으로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성막을 위한 자원의 예물(20-21)

하나님께 드리기 전에, 먼저 그분의 은혜를 깊이 새기고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가 드리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미 주신 사랑에 대한 응답이어야 하며, 대가를 기대하며 드려서는 안 됩니다. 순수한 감사와 경외심으로 드릴 때 그 예물이 하나님 앞에 진정한 의미를 갖습니다. 그러므로 드릴 때는 기대나 계산 없이 온전히 감사의 마음으로 드려야 합니다.

 

20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모세 앞에서 물러갔더니 21마음이 감동된 모든 자와 자원하는 모든 자가 와서 회막을 짓기 위하여 그 속에서 쓸 모든 것을 위하여, 거룩한 옷을 위하여 예물을 가져다가 여호와께 드렸으니(20-21)

 

성막을 건축하기 위해 백성들은 자발적인 봉헌물이 바쳐집니다. 본문에는 자발성을 표현하는 비슷하지만 조금씩 다른 몇 가지 관용구들이 나타납니다: ‘마음이 감동된 사람’, 곧 ‘그의 마음이 이끈 사람’, 혹은 ‘그의 영이 충동한 사람’ 등.

이스라엘 백성의 열정적인 헌신은, 얼마 전에 금송아지 숭배에 열광했던 사람들이라 보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그들은 금송아지 형상을 제작하기 위해 열정적으로 자신들의 금귀고리를 빼서 금을 모았습니다. 그 금송아지 앞에서 괴성을 지르며 광란의 춤을 동반한 이교도의 예배를 드렸었습니다. 그들의 마음과 영이 악령에 사로잡혔음을 시사합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들은 자신들의 열정을 더 이상 우상에게 바치지 않습니다. 인간은 누구든지 그 무엇인가에 자신의 존재를 모두 쏟아냅니다. 하지만 그 대상이 잘못되었을 때 자신의 영과 마음의 감동을 바친 헌신은 헛된 우상을 위한 것이 됩니다.

그들의 자발적인 열정의 봉헌물이 본문에서 “예물”(테루마)로 표현됩니다. ‘테루마’는 하나님을 위해 성전에 바쳐지는 봉헌물을 의미합니다. 흔히 ‘거제’라는 제물을 바치는 동작으로 잘못 번역되곤 하지만, 실제로는 성전에 드려지는 예물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예를 들어, 십일조나 첫 태생의 헌물도 ‘테루마’에 포함됩니다.

 

귀금속과 색실의 예물들(22-26)

우리의 헌신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깊이 돌아보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베푸신 구원의 은혜는 말로 다할 수 없을 만큼 크며, 헌신된 사람들의 중심에는 항상 이 은혜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깨달을수록 우리는 자연스럽게 헌신하게 됩니다. 봉사는 내일의 일이 아니라, 오늘 바로 할 수 있는 일을 최선을 다해 감당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지금 이 순간, 하나님께 드리는 헌신에 힘쓰길 바랍니다.

 

22곧 마음에 원하는 남녀가 와서 팔찌와 귀고리와 가락지와 목걸이와 여러 가지 금품을 가져다가 사람마다 여호와께 금 예물을 드렸으며 23무릇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는 베 실과 염소 털과 붉은 물 들인 숫양의 가죽과 해달의 가죽이 있는 자도 가져왔으며 24은과 놋으로 예물을 삼는 모든 자가 가져다가 여호와께 드렸으며 섬기는 일에 소용되는 조각목이 있는 모든 자는 가져왔으며 25마음이 슬기로운 모든 여인은 손수 실을 빼고 그 뺀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는 베 실을 가져왔으며 26마음에 감동을 받아 슬기로운 모든 여인은 염소 털로 실을 뽑았으며(22-26)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제작할 때는 금귀고리만을 빼서 모았습니다. 앞서 우리가 살펴보았지만, 분명 금송아지는 아론이 말한 그대로 주조물에 부어 제작되었을 것입니다. 팔레스타인 일대의 고대 신전 터들에서 발굴된 청동 황소 상들이 불과 20센티미터 안팎인 것을 감안할 때, 금송아지 형상은 이보다는 컸겠지만 상당히 작았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우상을 위한 이들의 헌신이 금귀고리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은 그들의 참여 열기도 뜨겁지 않았음을 시사합니다.

그러나 온 백성이 뜨거운 열정으로 참여하여 모든 금 장신구들을 떼어 바쳤는데, 이때 모은 금의 총량은 29달란트 730세겔, 즉 약 30달란트였습니다(38:24). 현대의 도량형으로 1달란트는 34킬로그램으로 간주되므로 30달란트 금의 총량은 약 1톤가량입니다. 그러나 다른 금속에 비해 비중이 월등히 높은 금 1톤의 부피는 가로 세로 높이 약 37센티미터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금귀고리만을 모아 제작된 금송아지의 실물 크기를 충분히 가늠해볼 수 있습니다. 백성이 금송아지 제작을 위해 많은 양의 금을 모을 필요는 없었기에 금귀고리만으로 충분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 상황은 다릅니다. 성막 제작에는 막대한 양의 금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그들은 귀고리뿐 아니라 팔찌와 가락지, 목걸이를 비롯하여, 여러 가지 금품, 아마도 집 안에 있는 금으로 된 물건들을 모두 가져다 바쳤습니다(22). 거기다가 많은 귀한 색실들과 염소 털로 짠 천막과 비싼 염료로 염색한 가죽들도 가져왔습니다(23). 성막에는 막대한 양의 은과 동도 필요했는데, 그들은 은과 동 역시 넘치도록 바쳤습니다. 은의 총량은 100달란트 1775세겔로 환산하면 약 3.5톤 정도의 막대한 양이며, 놋(동)의 총량은 70달란트 2,400세겔로 약 2.5톤가량입니다. 은이 훨씬 많았던 이유는 회막 건물 벽을 세우는 데 사용된 널판들 아래에 은 덩어리 받침대를 끼워 넣었기 때문입니다.

백성들이 바친 또 다른 한물은 조각목(싯딤 나무, acacia)을 바쳤는데, 이는 어떤 사람들이 생각하듯이 사막과 광야에 흔한 싸구려 나무가 아니라 개인이 소장하는 비싼 물건의 하나였습니다(24). 실제로 이 나무는 잘 썩지 않고 부러지거나 변형되지 않는 특징이 있어 애굽 바로의 사후에 그의 관을 짠 귀한 나무였습니다. 흥미롭게도 금송아지에 대한 충성도와 여호와에 대한 충성도가 봉헌물의 액수를 통해 간접적으로 비교됩니다. 여기서 암시되는 것은 그들이 금송아지를 위해 자발적으로 헌물하고 그 예배에 광적인 모습을 보였지만, 실상은 더 큰 이기적인 이익을 위해 금 우상을 제작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성막 제작을 위해 여호와께 충성할 때 그들은 귀중품을 아끼지 않고 넘치도록 바쳤습니다. 그들의 마음과 영이 감동되었다는 표현에는 하나님의 성령이 그들에게 충만했다는 점이 암시되어 있습니다.

22절에 나오는 “예물”의 히브리어는 ‘테누파’입니다. 이것은 21절과 24절에 나오는 “예물” ‘테루마’와 다릅니다. ‘테루마’는 넓은 의미로 하나님을 위해 성전에 바친 봉헌물을 가리키고, ‘테누파’는 구체적으로 하나님 앞 제단에서 위아래로 들어 올리며 아마 흔든다면 앞뒤로 흔드는 제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것 역시 헌물을 하나님께 봉헌하는 행위로 간주됩니다. 이것은 레위인을 봉헌하는 민수기 8:13에서도 잘 확인됩니다. 레위인을 ‘테누파’로 바친다는 의미가 그들을 제단에 들어 올려 바친다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성전에 ‘봉헌물’로 봉헌되었다는 상징적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성막 건설을 위한 이러한 자발적 봉사와 봉헌에는 남녀 구별이 없었습니다(22). 즉 여인들도 이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참조. 29). 특히 마음에 감동을 받은, 성령으로 충만한 여인들은 실을 빼서 청색, 자색, 홍색의 색깔로 염색하여 성막으로 가져왔습니다(25). 이 작업은 상당히 고급 기술이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아마도 지혜의 영이 충만했던 여인들은 브살렐과 오홀리압, 특히 앙장막과 휘장 제작을 지도한 오홀리압의 지휘 아래(38:23) 다채로운 색깔의 실로 베를 짜고 옷감을 만들어 아름다운 수를 놓는 일을 감당한 것으로 보입니다.

 

보석류와 향품의 예물들(27-29)

하나님과의 관계가 그 무엇보다도 귀하다는 확신이 있기에, 우리는 기쁨으로 예물을 드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보다 더 값진 것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그분께 소중한 것을 아낌없이 드리며, 우리의 마음과 헌신을 표현하는 것이 참된 예배입니다. 이 예배 속에 드린 예물은 단순한 물질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경외의 상징입니다. 우리가 드리는 모든 것은 먼저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에 대한 응답입니다. 그러므로 감사한 마음으로 기꺼이 예물을 드릴 수 있습니다.

 

27모든 족장은 호마노와 및 에봇과 흉패에 물릴 보석을 가져왔으며 28등불과 관유와 분향할 향에 소용되는 기름과 향품을 가져왔으니 29마음에 자원하는 남녀는 누구나 여호와께서 모세의 손을 빌어 명령하신 모든 것을 만들기 위하여 물품을 드렸으니 이것이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자원하여 드린 예물이니라(27-29)

 

족장들 혹은 지도자들(네시임)이 소중히 간직하고 있던 다양한 보석류를 바쳤습니다(27). 그들은 아무래도 경제적 수준이 더 높았기에 다양한 보석과 귀중품을 소지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이 바친 보석들은 대제사장의 복장 중 에봇과 흉패의 장식에 사용되었습니다. 족장들은 또한 등잔대용 고급 기름과 여러 비싼 재료와 특수한 방식으로 제작된 관유, 그리고 향단에 사용되는 향료를 만들 고가의 원료들을 바쳤습니다. 이런 고급 향료와 기름 또한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었던 족장들이 주로 소유하고 있었겠지만, 더러는 평민들도 사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성막 건설과 최초의 사용에는 족장들이 이런 고급 재료들을 감당했지만, 레위기 24:2에서 추후 계속적으로 사용하는 데는 모든 이스라엘 자손들이 참여하도록 명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29절은 다시 한 번 이 모든 예물들이 백성들이 자원해서 가져온 헌물임을 강조합니다. 특히 그것이 ‘자원의 예물’(자원하여 드린 예물)로 표현되는데, 성막은 결코 억지로 바친 예물로 지어지지 않았습니다.

남녀 백성들 모두가 자신들의 장신구들, 즉 팔찌와 귀고리와 가락지와 목걸이와 여러 금품을 바쳐서 성막을 건설하고 꾸미는 데 사용한 것은 신약의 새로운 성전인 교회에 의미 있게 적용될 수 있습니다(고전 3:1617; 고후 6:16; 엡 2:21). 신약의 성도들은 예배당 건물이 아닌 성도들의 공동체인 영적 성전, 즉 교회를 영광스럽고 아름답게 꾸며야 합니다(엡 5:27).

성도 개인은 자신의 몸을 아름답게 치장하는 데 열중하기보다는, 혹은 다양한 금송아지 제작에 자신의 귀중품을 사용하기보다는, 참된 성전인 교회를 세우고 아름답게 장식하기 위해 가장 소중한 보물과 소유물을 기꺼이 내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 바울이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이라 했을 때, 복수인 ‘너희’(휘메이스)이므로 성도들의 공동체가 곧 성전이 됩니다. 그러나 동시에 성전의 구성원인 성도 개개인은 독자적인 작은 성전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각각의 성도 속에 하나님의 성령이 임재해 계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각 성도들은 각종 치장으로 외면을 꾸미기보다 내면의 성령의 전을 아름답게 꾸미는 데 더 열중해야 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쁨으로 헌신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 덕분이었습니다. 우리 역시 고아와 같던 상태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신 구원의 은혜를 기억할 때, 감사와 찬양이 넘쳐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되새길수록 자원하는 마음으로 헌신하게 됩니다. 우리 심령에 하나님의 사랑이 새겨질 때, 그분을 향한 기쁨과 열정이 더욱 불타오를 것입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기쁨으로 헌신하는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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