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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40-01)


하나님의 임재를 위한 성막의 완성

출애굽기 40장 1-16절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특권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대제사장으로서, 우리를 위해 하나님 앞에서 중보하십니다. 우리는 또한 “왕 같은 제사장”으로 불리며, 하나님께 나아가고 다른 사람들을 하나님께 인도하는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이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나타내는 다리가 되기를 소망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말과 행동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전하며,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 성막의 모든 시설물들과 비품들, 제사장의 옷들이 만들어졌습니다. 이제 이것들을 조립하고 배치하고 옷들을 입히는 절차가 남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막 건립일을 1월 1일로 정하십니다. 성막 건설은 이스라엘의 새로운 역사의 시작이며, 이스라엘은 성막과 더불어 새로운 출발을 한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성막의 조립과 물품들의 배치(1-8)

하나님께서 우리와의 만남을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렇게나, 아무 장소에서나 만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서는 철저한 준비가 필요합니다. 우리의 예배, 기도, 그리고 삶 자체가 하나님과의 만남을 준비하는 과정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가기 전에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정결하게 하고, 그분의 임재를 경외하는 마음으로 준비해야 합니다.

 

1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너는 첫째 달 초하루에 성막 곧 회막을 세우고 3또 증거궤를 들여놓고 또 휘장으로 그 궤를 가리고 4또 상을 들여놓고 그 위에 물품을 진설하고 등잔대를 들여놓아 불을 켜고 5또 금 향단을 증거궤 앞에 두고 성막 문에 휘장을 달고 6또 번제단을 회막의 성막 문 앞에 놓고 7또 물두멍을 회막과 제단 사이에 놓고 그 속에 물을 담고 8또 뜰 주위에 포장을 치고 뜰 문에 휘장을 달고(1-8)

 

모든 비품과 시설물들, 제사장의 옷들도 제작이 완료되었습니다. 모든 준비가 완료되자 하나님께서는 정월 초하루, 즉 출애굽 후 제2년 1월 1일에 성막을 조립하라는 명령을 내리십니다(2). 특히 비품들의 위치가 정확히 지시되고 있음을 주목해야 합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관유 바르기입니다. 아무리 비품이 제 위치에 바르게 놓여 있다 해도, 관유로 그것을 거룩하게 하지 않으면 성물로 바뀌지 않았으며, 제 기능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성막이 준공된 날은 애굽에서 나온 둘째 해 1월 1일입니다(40:17). 성막의 조립이 하루 만에 마칠 수 있을 만큼 어렵지 않았거나, 1월 1일에 시작되어 며칠 동안 조립이 진행되었을 수도 있습니다(참조. 출 29장과 레 8장에서 제사장 위임식이 8일간 진행됨). 아마 쉬운 조립과 이동을 위해 만들어진 성막 비품들의 성격을 볼 때 짧은 시간에 조립이 충분했을 것으로 보이며, 이후 성막 봉헌식과 제사장 위임식이 일주일간 진행되었을 것입니다. 어쨌든 1월 1일은 새해이면서, 새로운 역사의 시작이고 이스라엘의 새로운 출발을 의미합니다. 또한 이날은 하나님의 영의 역사로 하나님의 성전이 세워진 새로운 창조의 날입니다. 하늘 왕의 지상 궁전에서 그분의 지상 통치가 시작되는 날입니다.

조립된 건물에 가장 중요한 비품인 증거궤가 먼저 배치됩니다(3). 지성소에 들여놓고 그룹들이 수놓아진 수려한 휘장으로 그 궤를 가려야 합니다. 이어서 떡상을 내성소에 놓습니다. 떡상 위에 진열한 물품은 문자적으로 ‘진열품’을 의미하는 ‘에레크’입니다. 명사 에레크는 동사 아라크(진열하다, 배치하다)의 파생어입니다. 이 ‘진열품’은 떡상 위에 놓은 떡들을 비롯하여 여러 부속물들을 의미합니다. 25장에서 우리는 이 부속물들의 정체와 기능에 대해 살펴보았지만 정확하게 확인되지 않습니다. 이어서 등잔대를 배치한 뒤 일곱 개의 등잔에 불을 켰습니다(4). 마지막으로 금 향단을 증거궤 앞에 두고 나서 가림막(휘장)을 걸어 외부에서 내성소를 볼 수 없도록 차단합니다.

지성소에는 법궤가 내성소에는 떡상, 금 등잔대, 향단이 각각의 위치에 배치되었습니다. 흔히 떡상이 법궤에 이어 두 번째로 언급되는 이유로(35:10-22;23-30; 37:1-9; 민 4:5-6), 떡상의 중요성이 등잔대와 향단보다 더 컸다고 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내성소의 대표 기물이자 가장 중요한 비품은 향단이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짐승의 피가 주로 마당의 번제단에(레 4-5, 12-15장), 내성소에 뿌려질 때는 향단뿔에(레 4장), 1년에 한 차례 대제사장에 의해 지성소의 속죄소(속죄판, 레 16장)에 뿌려진다는 점에서 가능한 추론입니다. 이것은 짐승의 피가 뿌려졌던 번제단과 향단과 법궤, 이 세 가지가 각 공간에서 가장 중요한 대표 기물이라는 것을 시사합니다. 마지막으로 마당에는 번제단을 먼저 중앙에 놓고 물두멍을 회막과 제단 사이에 배치합니다(6-7). 물두멍에도 즉시 물을 채워 넣어야 하며, 이어서 뜰 사방에 기둥을 세우고 걸개를 걸어 울타리를 만듭니다. 성막의 비품들이 함부로 배치되어선 안 되므로, 본문은 비교적 상세히 각 품목들이 놓여야 할 위치를 적시해주고 있습니다. 만일 성물이 다른 곳에 놓인다면, 제 기능을 하지 못할 것이 분명합니다.

예컨대, 금 향단이 북편 벽 쪽으로 놓이고, 진설병이 지성소 휘장 앞에 놓인다면, 떡상의 떡과금 향단의 향연은 아무런 효력이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예배에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예배의 요소들인 찬송과 기도, 헌금과 설교들이 적절한 시간에 고유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짜임새 있게 예배를 구성해야 합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마음과 태도의 바른 배치일 것입니다. 예배의 형식은 다양할 수 있지만, 하나님을 향한 마음의 배치가 어긋난다면, 그 예배는 금 향단과 진설병의 위치를 제멋대로 바꾼 것처럼 자기중심적이고 인간중심적인 예배로 전락할 것입니다.

 

성막과 기물들에 관유를 바름(9-11)

거룩함이란 단순히 죄를 피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구별된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속한 자들로서,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말과 행동, 심지어 우리의 생각까지도 하나님께 드려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거룩하게 하실 때,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9또 관유를 가져다가 성막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에 발라 그것과 그 모든 기구를 거룩하게 하라 그것이 거룩하리라 10너는 또 번제단과 그 모든 기구에 발라 그 안을 거룩하게 하라 그 제단이 지극히 거룩하리라 11너는 또 물두멍과 그 받침에 발라 거룩하게 하고(9-11)

 

우리의 예배는 성령의 역사가 없다면 헛된 예배가 될 것입니다. 성막의 기물들을 제대로 배치했다 하더라도, 거룩한 기름이 발라지지 않으면 하나님께 사용될 수 없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을 향하고 바르게 배치되었더라도, 성령의 역사가 없다면 예배는 무의미할 수 있습니다.

 

(1) 성막과 비품의 거룩화(9)

 

각 시설물들의 조립을 마친 뒤, 관유를 성막의 구석구석 모든 시설물과 비품들에 바릅니다. 이 관유로 인해 성막 전체와 각 공간에 비치된 모든 비품들이 거룩해집니다. 물론 인간과 사물의 궁극적인 거룩은 29:43-44에서 살핀 대로, 거룩의 근원이신 하나님 자신에게서 비롯됩니다. 최종적으로는 하나님께서 성막 비품들을 거룩하게 하십니다. 관유는 단지 거룩성을 유발하는 매개물일 뿐 신적 개입 없이 그 자체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2) 거룩의 궁극적 근원(10-11)

 

이것은 법궤를 비롯한 다른 기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임재하실 때 그것이 의미가 있습니다. 그 물건들이 자동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보장하고 스스로 역사를 일으키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여기에 또 다른 우리 예배에의 적용점이 있습니다. 설사 아무리 성막의 기물들을 제대로 정확히 배치했다 하더라도, 거룩한 기름, 관유가 발라지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그 비품을 직접 거룩하게 만들어주시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 물건들은 하나님의 예배에 사용될 수 없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 기름부음이 없는 향단에 아무리 값비싼 향료를 피워도 하나님께 올라가지 않습니다. 관유로 거룩하게 만들지 않은 등잔대의 등불은 아무리 환하게 빛을 발한다 해도, 하나님께는 의미가 없는 빛일 뿐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마음의 중심이 하나님을 향하고, 우리 마음의 배치를 바르게 했다 하더라도, 우리의 예배 중에 성령의 역사가 없다면 그것은 헛된 예배로 전락하고 말 것입니다.

 

아론과 제사장들에게 관유로 기름부음(12-16)

우리는 하나님께 구별된 자들로서 거룩함을 추구해야 합니다. 거룩함은 단지 죄를 피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용하실 수 있도록 우리 자신을 그분께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피로 씻음을 받았고, 성령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들로서, 우리의 삶이 거룩함으로 가득 차기를 원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 그리고 행동이 하나님께 드려진 것임을 항상 기억하며,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12너는 또 아론과 그 아들들을 회막 문으로 데려다가 물로 씻기고 13아론에게 거룩한 옷을 입히고 그에게 기름을 부어 거룩하게 하여 그가 내게 제사장의 직분을 행하게 하라 14너는 또 그 아들들을 데려다가 그들에게 겉옷을 입히고 15그 아버지에게 기름을 부음 같이 그들에게도 부어서 그들이 내게 제사장의 직분을 행하게 하라 그들이 기름 부음을 받았은즉 대대로 영영히 제사장이 되리라 하시매 16모세가 그같이 행하되 곧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령하신 대로 다 행하였더라(12-16)

 

관유를 머리에 부어 바르는 제사장 위임식은 제사장 직분의 핵심 절차로,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거룩한 임무를 수행하도록 준비시킵니다. 제사장 위임식 후, 제단에서 최초의 희생 제사들이 드려지고, 하나님께서는 신적 불로 제사들을 받아주셨습니다.

 

(1) 제사장 위임식과 관유의 사용(12-13)

 

관유는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머리 위에) 발라져 그들을 거룩하게 합니다. 이것은 제사장 위임식 절차의 중요한 부분입니다.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회막 문 앞에서 목욕을 시킵니다(12). 아마 물두멍 주위는 번제단에 의해 외부 시선이 차단되는 제사장의 활동 공간으로 그곳에 칸막이용 간이 시설물이 있어 목욕도 그곳에서 이루어졌을 것으로 추론됩니다. 여기서 기름을 머리에 바르는 행위는 출애굽기 29:7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일단 기름을 머리 위에 부은(야차크) 뒤에 바른(마샤흐) 것이 명백합니다: “관유를 가져다 그의 머리에 부어 바르고” 이것은 또한 뒤에 이어지는 30:32-33절의 “사람의 몸에 붓지(수크 10) 말며”를 통해서도 확인됩니다. 따라서 머리에 ‘기름을 부어 바르다’가 타당한 번역일 것입니다. 대제사장 아론만 기름을 부은 것이 아니고, 그의 아들들도 모두 동일한 방식으로 머리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2) 기름부음의 의미와 제사장 직분(14-16)

 

그리하여 모든 제사장은 ‘기름부음 받은 자’(마쉬아흐 메시아)가 되어 성전에서 거룩한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아론 가문의 후손들은 이렇게 대대로 영원히 제사장 가문으로 기름 부음을 받아 성전의 직무를 감당했습니다. 사실 앞서 출애굽기 29장에서 살펴보았듯이, 또한 레위기 8장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성막이 조립된 직후 성막 봉헌식과 제사장 위임식이 함께 거행되었다 하더라도 하루에 그 행사가 끝나지 않았습니다. 제사장 위임식은 일주일간 진행되었기 때문입니다(레 8:33). 이 제사장 위임식은 그 절차가 매우 복잡하고 거기서 다양한 제물들이 바쳐지며 독특한 의례들이 거행됩니다. 이렇듯 복잡하고 오래 걸리는 제사장 위임식의 모든 내용들을 생략하고 현재의 본문은 간단히 그들에게 거룩한 옷을 입히고 기름을 부어 제사장의 직분을 수행하도록 했다고 보고합니다. 이것은 제사장 위임식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바로 관유를 그들에게 바르는 일, 즉 ‘기름부음’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제사장 위임식을 마친 후, 레위기 9장에서 8일째에 비로소 이미 관유를 부어 봉헌된 제단 위에서 희생제들이 최초로 드려집니다. 그 최초로 드려진 희생 제사들과 더불어 성막의 제단이 최초로 가동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신적 불을 내려 즉각 그 제물들을 태우심으로써 그 제사들을 받으셨습니다.


하나님과의 만남, 거룩함, 그리고 순종에 대한 귀중한 교훈을 제공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하시기 위해 성막을 세우도록 하셨고, 그 성막을 통해 그들의 삶 가운데 임재하셨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성령님을 통해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으며,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준비하고, 거룩함을 유지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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