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37-02)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의 하나 됨
에스겔 37장 15-28절
성도들의 성공은 혼자 이룰 수 없습니다. 혼자서 성공을 이루었다면, 대부분 성공을 자신의 능력으로 되었다고 생각하고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 것입니다. 진정한 성공은 하나님과 하나 되고 하나님의 뜻과 하나 되어졌을 때, 세상에서 승리하며 성공할 수 있습니다. 오늘 주님이 허락하신 성공, 그 아름다운 길로 가는 삶들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 바싹 마른 뼈처럼 완전히 죽은 이스라엘의 회복(37:1-14)은 여호와께서 계획하신 구원 사역의 일부였습니다. 솔로몬 사후 북왕국과 남왕국으로 분열돼 서로 반목하다가 주전 722년과 587년에 각각 앗수르와 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한 이스라엘이 다시 하나의 민족으로 결합합니다. 북쪽 지파와 남쪽 지파가 다윗의 통치 아래 하나가 됐던 것처럼 ‘내 종 다윗’이 돌아온 이스라엘 사람들의 통치자가 됩니다.
두 막대기의 표적행위(15-19)
우리 사회에 일어나고 있는 교회와 사회의 무한 분열에 대한 무한 책임을 통감해야 합니다. 분열은 하나님께서만 회복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복하는 헌신을 통해 가능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어서 오랜 분열의 역사를 마감해야 합니다. 연합은 물리적인 통합뿐만이 아니라 정신적인 통합을 이루어가여 합니다.
15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16인자야 너는 막대기 하나를 가져다가 그 위에 유다와 그 짝 이스라엘 자손이라 쓰고 또 다른 막대기 하나를 가지고 그 위에 에브라임의 막대기 곧 요셉과 그 짝 이스라엘 온 족속이라 쓰고 17그 막대기들을 서로 합하여 하나가 되게 하라 네 손에서 둘이 하나가 되리라 18네 민족이 네게 말하여 이르기를 이것이 무슨 뜻인지 우리에게 말하지 아니하겠느냐 하거든 19너는 곧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에브라임의 손에 있는 바 요셉과 그 짝 이스라엘 지파들의 막대기를 가져다가 유다의 막대기에 붙여서 한 막대기가 되게 한즉 내 손에서 하나가 되리라 하셨다 하고(15-19)
유배민의 회복은 살아나고 돌아오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다시 하나 되는 데까지, 오랜 분열의 역사를 끝내는 데까지 합니다. 그런데 분열은 하나님 안에서만 극복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복하는 헌신을 통해 가능합니다.
(1) 표적행위의 명령(15-17)
하나님의 회복은 유배민을 바벨론의 무덤에서 끌어내서 이스라엘 땅으로 데려다 놓는 것으로 여호와의 계획이 다 이뤄지는 것은 아닙니다. 이스라엘은 남과 북으로 분열 이후 반목과 다툼을 거듭하다가 멸망에 떨어진 이스라엘과 유다는 다시 한 민족이 되어야 합니다. 여호와께서 유다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에 속했던 지파들도 구원의 대열에 참여시켜 분열의 상처를 치유해주기로 결정하시고, 이를 표적행위(상징행위)로 선포하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막대기 두 개를 취하여 그 하나에는 ‘유다와 그 짝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다른 하나에는 ‘에브라임의 막대기 곧 요셉과 그 짝 이스라엘 온 족속(을 위하여)’이라 쓰고, 그 두 막대기를 합하여 하나가 되게 하라고 명령하십니다(16-17).
(2) 표적행위의 해석(18-19)
여호와께서 에스겔의 표적행위에 대한 유배민의 반응을 예견하시고(18) 그 의미를 묻는 자들에게 전할 답변도 알려주십니다. 유다와 요셉의 통합은 어느 한쪽이 주도하는 정치적 통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보이도록 한 이 표적행위는 북 왕국과 남 왕국의 통합을 상징합니다. ‘내 손에서 하나가 되리라’는 정치적으로 분열됐던 하나님 백성이 하나로 연합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온전한 통합은 그 주체가 여호와이심을 인정하고 그분 말씀에 순종함으로 이뤄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 백성의 분열은 하나님 안에서만 극복될 수 있습니다. 유다와 한편이 된 이스라엘 자손은 시므온 지파와 베냐민 지파의 일부와 여러 이유에서 유다에 정착한 다른 지파의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한 나라’와 ‘한 왕’(20-23)
하나님께서 부르신 모든 사람들은 하나입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시고 하나로 만드셨습니다. 이 하나된 공동체를 교회라 부릅니다. 새 생명을 얻었고, 한 모가가 부르신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신경을 통해 고백할 때마다 ‘거룩한 한 교회’, ‘공교회’라고 고백합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나누어지기보다 성령으로 하나되길 원하십니다. 그 동안 나누어졌던 이스라엘도 하나님께서 하나로 만드실 것을 말씀하십니다.
20너는 그 글 쓴 막대기들을 무리의 눈 앞에서 손에 잡고 21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잡혀 간 여러 나라에서 인도하며 그 사방에서 모아서 그 고국 땅으로 돌아가게 하고 22그 땅 이스라엘 모든 산에서 그들이 한 나라를 이루어서 한 임금이 모두 다스리게 하리니 그들이 다시는 두 민족이 되지 아니하며 두 나라로 나누이지 아니할지라 23그들이 그 우상들과 가증한 물건과 그 모든 죄악으로 더 이상 자신들을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내가 그들을 그 범죄한 모든 처소에서 구원하여 정결하게 한즉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20-23)
솔로몬 왕 이후 이스라엘은 남북으로 분열된 지 수백 년이 흘렀고, 이제 두 나라 모두 멸망하였습니다. 멸망한 북이스라엘을 유민을 끌어안기 위해 북이스라엘을 회복하려던 요시야 왕이 므깃도 전투에서 사망한 뒤로 이스라엘 통일의 꿈은 시들어 갔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남과 북이스라엘이 모두 회복될 뿐만 아니라 한 나라가 될 것이라고 단언하십니다.
(1) 유배민의 위환(20-21)
본문에서 ‘그 글 쓴 막대기들’을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손에 잡으라는 20절의 명령은 전후의 단락을 이어주는 연결구에 해당합니다. 유다와 요셉의 통합이 시대적 배경 아래 재조명됩니다.
34:11-24의 경우처럼 이스라엘의 회복이 두 단계로 기술됩니다. 먼저 여호와께서 민족들 가운데 흩어져 사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모아 가나안 땅으로 데려오십니다(21). 현재의 문맥에서 ‘이스라엘 자손’은 민족들 가운데 흩어져 사는 남왕국과 북왕국 출신의 모든 이스라엘 사람을 가리킵니다. ‘잡혀 간’은 부정확한 번역으로, ‘떠나가 사는’으로 번역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사로잡혀 강제로 끌려갔지만, 기근이나 전쟁의 재앙을 피해 다른 나라로 도피한 자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자의건 타의건 고향을 등지고 떠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을 여호와께서 고국으로 데려오십니다.
(2) 한 왕의 통치(22-23)
다음은, 데려온 이스라엘 자손을 이스라엘 모든 산에서 한 민족으로 만들어 ‘한’왕이 그들 모두의 왕이 되게 하십니다(22). 예전처럼 두 나라로 나뉘어 싸우다가 멸망하는(참조,35:10) 비극이 반복되지 않게 하십니다. 유다와 요셉의 통합이 한 왕의 통치 아래 굳건해집니다. 구원 시대가 안정적으로 지속하기 위해서는 정치적 종교적 분열의 극복만으로는 부족합니다.
36:15-28의 경우처럼 영적 갱신을 통해 과거의 더러움을 깨끗하게 씻어내야 합니다. 여호와께서 흩어진 자들을 이스라엘 땅으로 데려오셔서 한 왕의 통치를 받게 하실 뿐만 아니라, 이들이 우상과 가증스러운 것들과 죄악으로 자신을 더럽히지 않게 해주십니다(23). 왕정 시대를 파국으로 내몰았던 우상숭배와 피 흘림에서 구원하여 깨끗하게 해주시고, 파괴됐던 언약관계를 온전히 회복해주십니다. ‘가증한 물건’은 이방 종교의 우상과 그러한 우상이 유발하는 혐오감을, ‘죄악’으로 사람 사이의 관계와 사람과 하나님 사이의 관계를 파괴하는 악행을 가리킵니다.
영원한 구원(24-28)
하나님의 회복은 거룩함의 회복입니다. 내적인 성결의 회복이 없이 연합은 무의미한 것입니다. 분열의 근원은 죄였기 때문에 가장 근원적인 문제부터 해결하고 나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회복은 한 개인의 삶이 회복이 되고 삶이 나아지는 것이 아니라, 함께 모여 하나가 되는 것에 목적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한 마음을 품고 공동체를 세워나가야 합니다.
24내 종 다윗이 그들의 왕이 되리니 그들 모두에게 한 목자가 있을 것이라 그들이 내 규례를 준수하고 내 율례를 지켜 행하며 25내가 내 종 야곱에게 준 땅 곧 그의 조상들이 거주하던 땅에 그들이 거주하되 그들과 그들의 자자 손손이 영원히 거기에 거주할 것이요 내 종 다윗이 영원히 그들의 왕이 되리라 26내가 그들과 화평의 언약을 세워서 영원한 언약이 되게 하고 또 그들을 견고하고 번성하게 하며 내 성소를 그 가운데에 세워서 영원히 이르게 하리니 27내 처소가 그들 가운데에 있을 것이며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 28내 성소가 영원토록 그들 가운데에 있으리니 내가 이스라엘을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을 열국이 알리라 하셨다 하라(24-28)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회복시켜 주시겠다는 정점은 다윗의 통치이고, 언약의 갱신이고, 하나님의 임재입니다. 다시 세워진 성소는 그 회복된 관계의 확증이고 보증입니다. 동시에 아무도 자기 백성, 자기 나라를 새롭게 지어가시는 하나님의 지혜를 헤아릴 수 없고 결심을 꺾을 수 없습니다.
(1) 영원한 통치자 다윗(24-25)
여호와께서는 22절에서 약속하신 통일된 이스라엘 자손을 다스릴 ‘한 임금을 내 종 다윗’으로 소개하십니다(24a; 34:23-24). 물론 죽은 다윗이 돌아온다는 말이 아니며, 구원 시대 통일왕국의 왕이 다윗의 혈통에서 나올 것이란 뜻도 아닙니다. ‘내 종 다윗’은 사울 왕을 대신하여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았던 다윗과 같은 인물입니다. 열왕기에서 다윗을 가장 이상적인 왕으로 소개합니다. 그래서 다른 왕들을 평가하는 기준이 됩니다. 예언자들은 다윗의 통치에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왕의 이상적인 모습을 보고 새 다윗을 구원 시대의 메시아적 왕으로 선포했습니다.(참조. 사 11:1-5; 렘 23:5; 미 5:2-4). 에스겔도 같은 전통에 서서 이스라엘을 다스릴 왕의 이상적 모습을 다윗에게서 찾았습니다. 폭력과 강압으로 통치한 악한 목자들로 인해 배교의 길을 가다가 온 땅에 흩어졌던 양 떼가 앞으로는 참된 목자의 인도로 하나님의 규례와 율례를 잘 지키고 그분께서 주신 땅에 영원히 살게 됩니다(24b-25).
(2) 화평의 언약(26-28)
하나님께 순종하는 그분의 종 다윗의 의로운 통치 아래 백성도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하며 살기에 다시는 땅에서 쫓겨나는 일이 없게 됩니다(참조. 레 26:1-5). 36:27에서는 여호와께서 귀향민들 가운데 두실 그 부의 영이 율례와 규례를 지킬 수 있게 해주는데, 여기서는 새로운 왕 다윗이 이를 가능하게 해줍니다. 규례와 율례의 준수와 땅의 영원한 거주에 내포된 신학적 전망이 구체적으로 언급됩니다. 22-23절에서 처럼 신학적 회복(26-28)이 정치적 회복(24-25)에 이어 언급됩니다.
여호와께서 귀향민들과 영원히 지속할 ‘화평의 언약’을 맺으시고, 이들이 조상들이 거주하던 땅에서 번성하게 하십니다(26a; 34:25-26). 화평의 언약은 하나님의 규례와 율례를 지켜 행한다는(24b) 점에서는 파기됐던 옛 언약의 갱신이지만, ‘영원한 언약’이라는 점에서는 새로운 언약입니다. 귀향민들은 언약 관계 안에서 여호와께서 주시는 화평을 맛보며 살게 됩니다. 화평의 언약이 영원한 언약이 되는 근거는 여호와께서 당신 ‘성소’를 그들 가운데 영원히 세우시기 때문입니다(26b). 축복과 구원의 보루인 여호와의 성소가 영원히 세워지기에 화평이 영원히 보장됩니다. 회복된 관계를 특징짓는 여호와의 임재가 반복적으로 언급됩니다.
27절에서는 ‘내 처소가 그들 가운데에(위에?)’ 있을 것을 약속하십니다. 진영 한가운데서 광야 세대를 지켜주시고 인도해주셨던 성막의 하나님처럼 성소의 하나님께서 주변의 모든 위험에서 안전하게 지켜주시고 평안의 길로 인도해주십니다. 28절의 ‘내 성소가 영원토록 그들 가운데에 있으리라’는 26b절의 반복인데, 동사 ‘세우다’ 대신 동사 ‘있다’를 사용해 성소의 실존을 한층 강조합니다. 여호와께서 당신 성소를 영원히 귀향민들 가운데 ‘세우셔서’ 당신 성소가 영원히 그들 가운데 있게 하십니다. 여호와의 임재를 상징하는 성전이 ‘영원히’ 그분의 백성 가운데 있기에 야곱의 자손들은 ‘영원히’ 가나안 땅에 거주하고, 그분의 종 다윗은 ‘영원히’ 그들의 왕(통치자)이 되며, 화평의 언약은 ‘영원한’ 언약이 됩니다. 여호와의 성소가 이스라엘 가운데 있음을 보고 민족들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거룩하게 하시는 분임을 알게 됩니다. 여호와의 백성이라도 여호와의 땅에서 떠난 자(36:20)라고 이스라엘을 조롱하던 민족들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거룩한 백성으로 선택하셨음을 인정하게 됩니다.
에스겔의 문맥에서, 회복된 이스라엘 가운데 여호와의 성소가 영원히 있으리라는 약속은, 한편으로는 8-11장에서 선포된 성전의 파괴가 극복되었음을 의미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40:1-44:2에 나오는 새 성전의 환상을 예비해줍니다.
하나님께서 마른 뼈를 살리시는 능력을 통해 회복과 부활의 메시지를 전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비유는 절망 속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께서 그들을 다시 일으키실 것임을 상기시켜 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통해 생명을 주시고, 새로운 시작을 허락하십니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서도 회복과 변화를 이루실 수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결국, 이 말씀은 우리에게 소망과 믿음을 주며,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는 삶을 살아가야 함을 강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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