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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01-02)


여호수아의 명령과 이스라엘의 헌신

여호수아 1장 10-18절


 

에티오피아 마라톤 선수 비킬라 아베베는 1960년 로마 올림픽에서 맨발로 우승하며 ‘맨발의 왕자’로 불렸다. 그는 1964년 도쿄올림픽에서도 2시간 12분 11초로 2연패를 달성했다. 그러나 1969년 교통사고로 반신불구가 되었고, 두 다리를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잃지 않고 두 팔을 단련하여 장애자 올림픽 썰매 경주에서 우승했다. 1973년 뇌출혈로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삶은 오늘날까지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

 

  •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은 요단강을 건널 준비를 해야 합니다. 그는 백성의 지도자들에게 양식을 준비하고 하면서 ‘사흘 안에’ 강을 건너게 될 것이라고 일러둡니다. 본문에서는 생략하고 있지만, 이것은 분명히 나나님께서 앞서 여호수아에게 전해준 통보일 것입니다. 강을 건넌 뒤 여호와께서 ‘곧 주실’ 그 땅을 차지할 것입니다.

 

준비하라 약속된 땅 (10-11)

여호수아에게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구체적인 방법을 말씀하십니다. 먼저,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준비해야 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명령에 대해 조금의 반문이나 의혹도 없이 그 자리에서 즉시 실행에 들어갔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어떠한 주저함도 없이 곧바로 순종하는 것은 성도의 본분입니다(사무엘상 15:22).

 

10이에 여호수아가 그 백성의 관리들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11진중에 두루 다니며 그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양식을 준비하라 사흘 안에 너희가 이 요단을 건너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사 차지하게 하시는 땅을 차지하기 위하여 들어갈 것임이니라 하라(10-11)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요단강을 건너기 전에 행정적인 명령을 내리는 장면을 담고 있습니다. 여호수아는 군 지휘관들에게 백성에게 전할 명령을 주며, 삼 일 안에 요단강을 건너 하나님께서 주시는 땅을 차지할 준비를 하라고 지시합니다. 이 말씀은 여호수아의 리더십과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신뢰를 보여줍니다.

 

(1) 관리들에게 명령하는 여호수아(10)

 

여호수아는 ‘가나안을 정복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기 위해 곧 실행에 옮깁니다. 여호수아는 먼저 백성의 지도자들, 즉 관리들에게 이를 위한 준비에 착수하도록 지시했습니다. 여기서 ‘관리’이란? 원 뜻은 ‘글 쓰는 사람’, ‘서기’라는 뜻입니다. 이들은 아마 군사 지도자들이기보다는 이스라엘 제반 행정 업무를 담당하는 행정 관료를 가리키는 듯합니다. 다른 부분에서는 장로들에게도 지칭하기도 했습니다(대상 23:4; 27:1; 대하 26:11; 34:13). 이들은 이스라엘의 지도자이며 부분적으로 종교적인 임무를 지닙니다(신 1:15-16; 16:18; 대하 19:11; 34:13). 여호수아는 자신이 받은 사명을 이스라엘의 다음 지도자인 장로들에게 명령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하나님의 일은 무질서한 곳에는 역사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질서가 있어야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납니다(고전 15:40).

 

(2) 양식을 예비(11a)

 

여호수아는 지도자들에게 요단강을 건널 시점이 임박했음을 알립니다. 그래서 “진중에 두루 다니며 그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양식을 준비하라”(11a)고 명령합니다.

지금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은 양식 걱정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아침마다 하나님께서 내려 주시는 ‘만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정복해 나갈 때에 필요한 전쟁용 양식이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문맥상 아직 광야 40년 동안 내리던 만나가 중단되지 않은 상황입니다(참조 5:12). 백성들이 양식을 준비하고, 3일 안에 요단을 건너는 것은 ‘양을 준비하고 3일 후에’ 애굽을 떠난 출애굽을 연상케 합니다(참고 출 12:3-6). 본문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을 건너는 것을 또 한 번의 출애굽 사건으로 묘사합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너는 것은 출애굽 1세대가 홍해를 건너는 체험과 유사하기 때문입니다. 유월절을 지키고 홍해를 건너는 체험으로 이어지는 출애굽 사건은 이스라엘 공통의 경험으로 신앙고백의 기초를 이룹니다. 구세대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두 홍해를 건너는 경험을 한 것처럼, 새로운 세대는 모두 요단강을 건너는 체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4:21-23).

 

(3) 사흘 안에 가나안 입성(11b)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을 건너는 이유는 가나안 땅을 차지하기 위함입니다(11b). 본문은 가나안 땅을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사 차지하게 하시는” 땅으로 묘사합니다(11b,15).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여호수아서에서 자주 나오는 언약적인 표현입니다(1장에만 3번; 11,13,15). 이스라엘은 언약을 맺음으로 ‘여호와의 백성’이 되고, 여호와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차지하다’로 번역된 ‘야라쉬’는 자주 ‘유업을 얻다’라는 의미로 사용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언약 백성의 자격으로 그 땅을 유업으로 받게 될 것입니다. 본문은 사역형 동사(히필, ‘차지하게 하다’)로 표현하여 가나안 땅의 주권은 하나님께 있으며, 유업이 하나님의 선물로 주어지는 것임을 강조합니다.

‘사흘’이란? 문자적으로 ‘삼일’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짧은 기간을 가리키는 것입니다(출 19:11, 스 4:16, 호 6:2). 가나안 침공이 코앞에 다가왔다는 선포였습니다. ‘담대하라’는 하나님의 권면의 말씀에 힘입어 아주 담대하여 3일 만에 가나안 침공이 있을 것이라고 백성에게 알렸던 것입니다. 지도자의 담대함은 백성들에게 파급됩니다. 성도들은 영적 전쟁을 항상 앞두고 나아가는 자로서 담대히 왕 같은 제사장으로서의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기억하라 옛 약속(12-15)

하나님께서 말씀을 마치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기쁜 마음으로 명령에 전달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듣고서 매우 기쁘게 듣고서 순종합니다. 그들에게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무작정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순서와 방법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모세에게 보여주셨던 약속과 방법을 보여 주셨던 것을 따라 진행되어야 했습니다.

 

12여호수아가 또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와 므낫세 반 지파에게 말하여 이르되 13여호와의 종 모세가 너희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안식을 주시며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시리라 하였나니 너희는 그 말을 기억하라 14너희의 처자와 가축은 모세가 너희에게 준 요단 이쪽 땅에 머무르려니와 너희 모든 용사들은 무장하고 너희의 형제보다 앞서 건너가서 그들을 돕되 15여호와께서 너희를 안식하게 하신 것 같이 너희의 형제도 안식하며 그들도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시는 그 땅을 차지하기까지 하라 그리고 너희는 너희 소유지 곧 여호와의 종 모세가 너희에게 준 요단 이쪽 해 돋는 곳으로 돌아와서 그것을 차지할지니라(12-15)

 

여호수아가 르우벤 지파, 갓 지파, 므낫세 반 지파에게 명령을 내립니다. 그는 모세가 약속한 대로 그들의 가족과 가축은 요단강 동편에 머무르지만, 싸울 수 있는 용사들은 다른 이스라엘 지파들과 함께 요단강을 건너 전투에 참여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여호수아는 그들이 하나님의 약속된 땅을 차지한 후에야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로 결속되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협력해야 함을 보여줍니다.

 

(1) 여호수아의 말(12)

 

여호수아는 먼저 누구에게 독촉합니까? 광야에서 모세에게 요단강 동편 땅을 자신의 기업으로 요구했던 르우벤, 갓, 므낫세 반지파들에게 권고합니다. 그들은 모세에게 가나안 동편의 땅을 기업으로 요구하면서, 모세와 무슨 약속한 사실이 있습니다. 이 약속이 있었기 때문에 여호수아는 그 약속에 준하여 순종하라고 권고합니다. 그 약속은 민수기 32장 1-42절에서 모세와 요단강 동편 땅을 차지하게 된 대신에, 가나안 땅을 정복해 나가는데, 두지파 반에게 속한 군사들이 다른 지파들보다 앞장서서 먼저 싸우겠다는 약속을 한바 있습니다. 이 약속은 이스라엘의 지도자 모세와 약속한 것이지만, 그 배후에 계시는 여호와 하나님과 한 약속이었습니다. 그들에게 바로 이 약속을 신실하게 이행하도록 여호수아가 후임 지도자로서 촉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2) 모세의 명령(13-15)

 

여호수아는 모세가 전에 명령한 것을 상기시키면서(13 “여호와의 종 모세가 너희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요단 동편 두 지파 반이 모세에게 한 약속을 지킬 것을 요청합니다. 모세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13)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안식을 주시며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시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겠다고 한 “이 땅”은 그들이 모세를 통해 이미 유업으로 받은 요단 동편 지역을 가리킵니다. 여호수아서에서 땅과 안식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땅을 차지함으로 “안식”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여기에 여호수아서에서 처음으로 ‘안식’에 대한 주제가 등장합니다. 안식은 여호수아서 후반부에서 중심 주제로 등장합니다. 본문에서 가나안 땅의 안식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안식을 주시며”). 화자는 안식을 언급하면서, 앞으로 이 약속이 여호수아를 통해 성취될 것을 내다봅니다(수 21:44; 22:4). 여호수아를 통해 주신 안식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신 영원한 안식을 소망하게 합니다(히 4:8-11). 여호수아는 모세가 요단 동편 두 지파 반에게 했던 명령을 인용합니다(14-15; 참조. 민 32:20-22; 신 3:18-20). 모세의 명령은 그들이 모세에게 했던 약속이기도 합니다. 민수기 32장은 어떻게 해서 두 지파 반이 요단 동편 지역을 유업으로 받게 되었는지를 보도합니다. 르우벤과 갓 지파가 모세에게 찾아와서 요단 동편 땅에 머무르게 해줄 것을 요청합니다. 그 배경에는 그들의 목축에 대한 관심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므낫세 반 지파가 처음에는 등장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다른 이유(예컨대 인구 증가)로 동편 지역을 유업으로 얻게 된 것 같습니다(민 32:33). 다른 지파들에 비해 가축이 많은 르우벤과 갓 지파는 목축에 적합한 그 지역에 머물 것을 요청합니다(민 32:4-5). 문제는 그들이 머물고자 하는 요단 동편 지역은 약속의 땅(가나안 땅) 경계 밖에 있는 지역이라는 것입니다(참조. 민 34장). 모세는 그들이 다른 지파들의 사기를 떨어뜨릴 것을 염려하여 처음에는 그들의 요청을 단호히 거절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모세에게 새로운 의견을 제시하며 재차 요청합니다(민 32:16). 그것은 자신들이 앞장서서 다른 지파들과 함께 정복 전쟁을 치를 것이며, 그 이후에 자신들의 유업으로 돌아오는 것입니다(민 32:17-19). 모세는 이들의 수정 제안을 받아들이고(민 32:20-22), 이들에게 요단 동편 땅을 분배합니다(민 32:33). 여호수아는 지금 요단 동편 지파들에게 자신들이 전에 모세에게 한 약속을 상기시키며, 그 약속을 충실히 이행할 것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본문은 요단 동편 두 지파 반이 차지하게 될 소유지를 ‘여호와의 종 모세가 준 땅’(15)으로 표현하여 제비를 뽑는 방식으로 하나님께서 직접 분배한 요단 서편의 땅과 미묘한 차이를 둡니다(비교. 수 14:2; 18:10).

 

격려하는 지파들(16-18)

하나님의 지도 하에 하나로 결속되는 것은 우리의 목표 달성에 필수적입니다. 먼저,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은 우리를 하나로 묶어 줍니다. 우리는 서로 협력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이루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이러한 협력과 순종은 공동체의 결속을 강화시키고, 더 큰 성과를 이루게 합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며, 그의 목적을 성취할 수 있습니다.

 

16그들이 여호수아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당신이 우리에게 명령하신 것은 우리가 다 행할 것이요 당신이 우리를 보내시는 곳에는 우리가 가리이다 17우리는 범사에 모세에게 순종한 것 같이 당신에게 순종하려니와 오직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모세와 함께 계시던 것 같이 당신과 함께 계시기를 원하나이다 18누구든지 당신의 명령을 거역하며 당신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죽임을 당하리니 오직 강하고 담대하소서(16-18)

 

요단강 동편을 차지한 지파의 지도자들은 이미 모세에게 약속한 대로 성실하게 그 약속을 이루기 위하여 순종하였습니다. 이러한 순종은 모세와 약속을 실천한 것이기는 하지만, 더 나가서 하나님께 대한 약속에 순종이었습니다.

여호수아의 요청에 대해 요단 동편 지파들이 곧바로 반응합니다(16). 그들은 앞으로 ‘여호수아의 명령을 다 준행할 것이며, 여호수아가 어디로 보내든지 갈 것’이라고 다짐합니다. 그들은 여호수아에게 온전한 헌신을 표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지금까지 모세에게 그랬던 것처럼, 여호수아에게도 동일한 충성과 헌신을 보일 것을 맹세합니다. 의미상 이들의 반응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의 반응을 대변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수아를 하나님께서 세우신 모세의 후계자로 인정하고, 그 권위에 복종하려 합니다. 여기에 묘사되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매우 순종적이고 이상적입니다. 요단 동편 두 지파 반은 거듭 순종을 다짐하며 충성을 맹세합니다(17). 그들이 여호수아에게 충성을 다짐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와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여호수아에게 한 충성 다짐은 여호수아 배후에 계신 하나님을 향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앞으로도 계속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와 함께하시기를 기원합니다(17b). 그들은 한 목소리로 여호수아의 명령을 하나님의 명령처럼 여길 것이고, 거역하는 자는 사형에 처하게 될 것을 다짐합니다(18a). ‘거역하다’로 번역한 히브리어 ‘마라’는 ‘반역적인 행동’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하면, 여호수아의 명령을 거스르는 것을 여호와께 대한 반역으로 간주하겠다는 의미입니다.

16-18절은 요단 동편 두 지파 반으로 대표되는 이스라엘의 헌신이 매우 고조되어 있는 형식입니다. 이 짧은 본문 안에는 ‘모든’이라는 단어 ‘콜’이 다섯 번이나 등장하는데 이는 이스라엘의 전적인 헌신을 강조하기 위한 문학적인 기법입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들을 향한 이들의 헌신은 하나님의 언약 백성인 이스라엘이 보여야 할 이상적인 모습입니다.


새로운 일을 앞에 놓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이라면, 마음을 강하게 담대히 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철저하게 잘 준비하시길 바랍니다. 이 세상은 끝없는 전투가 벌어지는 곳입니다. 대적 원수 마귀는 우는 사자같이 무장되어 있지 않고 오합지졸 같은 신자들을 노리고 있습니다. 한 번 마귀에게 넘어지고 공격당하고 나면 그 후유증이 심각합니다. 오랜 슬럼프에서 허우적거리는 안타까운 손실을 입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로 뭉쳐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맡은 사명에 충실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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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01-01)


새로운 지도자와 새로운 시작

여호수아 1장 1-9절


 

새로운 직장에 첫 출근하는 신입사원의 심정은 두려움과 설렘이 교차합니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잘 할 수 있다는 격려입니다. 잘못을 지적하는 충고보다는, 실수를 감싸주고 격려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충고는 단점을 지적하여 의기소침하게 만들 수 있지만, 격려는 용기를 주어 잘 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주변 사람들은 격려를 통해 신입사원들이 자신감을 가지고 일을 시작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들이 자신의 역할을 잘 수행할 수 있게 됩니다.

 

  • 본문 여호수아는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은 40년 동안 출애굽을 시키고 요단강 동편에서 죽게 되었습니다. 모세가 죽은 후에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수많은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가 되라고 하셨습니다(1-2). 새로운 일을 해야 하는 여호수아의 마음에 얼마나 많은 생각들이 교차했겠습니까? 그 명령을 받았을 때, 이제 곧 가나안을 차지하게 된다는 희망에 부푼 마음을 가졌을 것입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과연 자신이 이 백성을 이끌고 약속의 땅을 정복해 낼 수 있을까 하는 불안한 마음도 가졌을 것입니다.

 

임무를 맡겨 주실 때 격려(1-2)

이제 위대한 지도자 모세는 자신의 직무를 다하고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졌습니다. 모세는 하나님께 받은 사명인 이스라엘 백성들을 약속의 땅 가나안의 문 앞까지 인도하라는 사명을 수행하고서 임종을 맡겨 된 것입니다(신명기 34장). 이것은 마치 예수님께서 아직 불완전한 제자들에게 지상 사역들을 맡겨 놓으시고 승천하셨던 것과 같습니다(행 1장). 모세는 18년 동안이나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였습니다.

 

1여호와의 종 모세가 죽은 후에 여호와께서 모세의 수종자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과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그 땅으로 가라(1-2)

 

여호수아서에서 모세를 “여호와의 종”으로 부릅니다(2,7). 성경에서 ‘여호와의 종’은 매우 영광스러운 호칭입니다(수 24:29; 시 18:1; 36:1; 사 42:19). 반면에 여호수아는 “모세의 수종자”(수 l:l)으로 소개합니다. 여기서 ‘수종자’란 종과는 다른 개념으로 ‘옆에서 봉사하는 사람’이나 ‘조력자’를 가리킵니다. 한 지도자의 종뿐만 아니라, 성막에서 일하는 일꾼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참조, 출 24:13;33:11, 민 11:28, 신 1:28).

여호수아는 지금까지 모세의 충실한 제자로 사역했는데, 이제는 지금까지 모세의 충실한 제자로 사역했는데, 이제 모세의 뒤를 이어 백성을 가나안으로 인도하는 사명을 맡았습니다. 명령을 내리는 사령관이 되기 전에 먼저 종으로서 순종하는 법을 먼저 배웠습니다. 먼저 순종하는 법을 철저하게 배운 종이 된 다음에 지도자가 되었습니다(마 25:21).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는 그의 책 ‘정치학(Politics)’에서 “순종을 배워 본 적이 없는 사람은 훌륭한 지도자가 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여호수아는 모세와 같은 훌륭한 지도자입니다. 현명한 지도자는 과거의 교훈을 함부로 버리지 아니하고, 모세의 좋은 전통들을 계승합니다. 그래서 교회의 역사가 필요합니다. 교회의 역사를 소중히 여기고 후손들에게 그 교훈을 남겨주어야 합니다. 성경에서는 “너희 조상 아브라함”(요 8:56)이라는 단어가 신약에까지 자주 등장합니다.

여호수아는 지도자로서 하나님의 사람이던 모세의 업적을 따라, 아니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길을 따라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합니다. 이러한 내용은 여호수아서 전체를 통해서 모세의 이름이 57번이나 거론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역사적인 전통성에 의해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종으로 세움을 입었습니다.

 

약속을 허락하실 때 격려(3-6)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과 말씀을 신뢰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르면 안전하고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과 용기로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의지하며 살 때, 그분의 보호와 인도하심을 받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더 큰 평안과 안정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습니다.

 

3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 모두 내가 너희에게 주었노니 4곧 광야와 이 레바논에서부터 큰 강 곧 유브라데 강까지 헷 족속의 온 땅과 또 해 지는 쪽 대해까지 너희의 영토가 되리라 5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6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맹세하여 그들에게 주리라 한 땅을 이 백성에게 차지하게 하리라(3-6)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세 가지 임무를 부여해 주십니다. 이 세 가지 임무는 (1)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할 것 (2)가나안 땅에 살고 있는 적을 물리칠 것 (3)이스라엘의 기업을 분배하는 것 등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 가지 임무에 각각 하나씩 약속들을 주셨습니다.

 

(1)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할 것(3,4)

 

가나안은 약속의 땅입니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의 조상들에게 이미 주시기로 한 약속의 땅입니다. 처음으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였고(창 12장), 계속해서 하나님께서는 이 약속을 한 번도 잊지 아니하고 약속의 땅을 주시기로 여호수아의 선진들에게 약속을 해왔습니다. 여호수아의 전직 지도자인 모세에게까지도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기로 한 땅은 이미 그 자녀들의 땅이었습니다. 자녀들은 그것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주시는 것입니다만, 반대로 하나님께서는 안일함과 두려움으로 가득 차서 자녀들이 이 선물을 받아들이기에 합당치 않으면 주시지 않습니다. 그 예가 가데스 바네아에서 있었던 사건입니다(민수기 13장).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약속하였던 것을 상기시키면서 여호수아에게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을 내가 다 너희에게 주었노니”(3)라고 약속하십니다. 그러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취할 땅의 동서남북 경계(境界)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4).

 

(2) 가나안 땅에 살고 있는 적을 물리칠 것(5)

 

약속의 가나안 땅에는 가나안 원주민들이라는 방해물이 살고 있었습니다. 여호수아는 이 가나안 원주민들을 없애야만 합니다. 여호수아가 가나안 원주민들과 싸움할 때,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기 때문에 반드시 이길 것이라고 약속을 합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인간의 노력이 없이 공짜로 주는 것은 아닙니다. 옛 속담에도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노력을 다하고 하나님의 축복을 기다려야 합니다.

여호수아에게는 그 동안 하나님께서 모세를 인도하신 것과 모세가 하나님께서 순종하는 법을 산교육으로 배워 왔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함께 있던 갈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5)라고 약속합니다. 이 약속들이 신약에 와서는 예수님으로 나타납니다. 예수님께서는 ‘임마누엘’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마 1:23). 그 이름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심'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적들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3) 이스라엘의 기업을 분배 할 것(6)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세 번이나 아브라함의 후손에게 가나안 땅을 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였습니다(창 12:6-7, 13:14-15, 15:18-21). 이 약속이 이제 여호수아를 통해서 성취되어 갑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약속을 이루실 수 있기 전에 여호수아에게 믿음을 행사하여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해져만 했습니다(6). 여호수아는 마지막으로 가장 큰 사명이 가나안 땅을 정복한 후에 이스라엘 각 지파들에게 가나안 땅을 공평하게 분배해 주어야 할 사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한 번하신 약속은 절대로 이루어 가십니다. 그것이 우리들의 생각에 조금 차이가 있다고 할지라도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은 우리들에게 육신의 편안함을 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하실 수 있도록 자극하는 자극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 가지 약속을 여호수아서를 통해 살펴보면 모두 성취되었습니다. 첫 번째 약속인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할 것’은 여호수아서 2-5장에서, 두 번째 약속인 ‘적을 물리쳐 승리할 것’은 6-12장에서, 마지막 약속인 ‘이스라엘의 기업을 분배 할 것’은 13-22장까지를 통하여 이루어 가신 내용이 성취되어 가고 있습니다.

 

말씀을 통하여 격려(7-8)

말씀을 통한 격려는 우리의 믿음을 강화하고, 힘든 시기에 용기를 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위로와 희망을 주며, 삶의 방향을 제시합니다. 격려는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고, 서로를 사랑하며 섬기게 만듭니다. 말씀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깊이 체험하게 됩니다. 격려는 공동체를 더욱 강하게 만들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7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8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7-8)

 

모세는 40년 동안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있으면서 하나님의 말씀과 역사하심을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을 잘 간직하라고 부탁하였습니다(신명기 31:9).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있으면서 모세가 기록한 모세오경 말씀들을 읽으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수아는 모세의 기록물(모세오경)은 하나님의 행적을 기록한 것이기 때문에 여호수아에게는 과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이루신 업적으로 되돌아보아서 힘과 용기를 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모세에게 역사하셨던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 계셔서 역사하심을 믿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은 잘 보관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이것을 날마다 시간을 내서 그것을 읽고 기록된 말씀을 묵상함으로써 그 하나님의 능력의 말씀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가야 했던 것입니다(시편 1:2; 119:97).

‘묵상하다’는 말씀의 뜻은 ‘나즈막한 목소리로 읊조리다’는 말로, ‘어떤 목적으로 설정하고 그에 온 마음을 집중하여 사색하는 행동’을 말합니다. 결국 주야로 묵상하라는 말은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속에 새겨 생활에까지 반영하는 것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공급되어집니다(8). 여호수아는 성경의 다섯 권이 모세오경만을 가지고 가나안을 정복하였다면, 완전한 성경을 가지고 있는 우리는 얼마나 많은 적군을 물리칠 수 있겠는가! 그래서 많은 선진들은 시간이 없는 가운데도 성경을 읽었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그곳에 성공의 비결이 있기 때문입니다.

 

명령을 통하여 격려(9)

한국에는 '암행어사' 제도가 있었습니다. 이들은 자신의 능력이 아닌 왕의 명령권으로 불의를 재판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이와 유사하게 하나님의 통치권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들은 자신의 힘이 아닌 하나님의 권위를 따른다는 점에서 특별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기 위해 그분의 통치권을 집행합니다. 이로써 하나님의 의와 정의를 세상에 드러냅니다.

 

9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9)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명령한 대상이 누구냐고 반문합니다. 모든 일은 주인의 뜻에 따라 진행되는 것이지, 종의 능력에 따라 진행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의 종들에게 필요한 것은 ‘강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종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자신의 지혜나 능력은 아닙니다. 다만 왕의 명령을 집행할 수 있는 담대한 심령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하나님의 일을 하다거나 전도를 할 때 담대히 할 수 있습니까? 명령을 하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나와 함께 하느니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종들이 어디를 가든지 자신의 종들에게 항상 함께 하십니다.


우리 인간들이 아무리 좋은 일을 계획할지라도 그 계획을 이루시는 분은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잠언 16:9). 그러므로 하나님의 일꾼들은 모든 일을 하나님께 맡기고 나가야 합니다(잠언 16:3). 그리하면 모든 일을 이를 수 있습니다. 여호수아는 이 격려의 말씀을 통하여 여호수아서 전체에 있는 내용들을 이루어 나가는데 강력한 힘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일을 하시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함께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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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 서론


여호수아 서론


 

여호수아의 내용은 모세 오경의 마지막 부분인 모세가 죽은 뒤를 이은 내용의 책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하여 가나안 땅 앞에까지 인도하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모세가 요단 강 앞에서 가나안 땅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사명을 다하고 죽었습니다. 그 뒤를 이은 하나님의 사람이 여호수아입니다. 여호수아는 모세의 뒤를 이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는 일이 주어졌습니다.

 

이 여호수아서의 내용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약속의 땅에 들어가는 법을 기술합니다. 그곳에는 이미 자리잡고 살고있던 원주민들을 한 사람도 남김없이 진멸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곳에 정착해야 했습니다. 원주민들은 자신의 터전을 쉽게 내어주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과 전투를 통해서 이 약속의 땅 가나안을 정복해 나가야 했습니다. 여호수아의 내용은 크게 세 가지로 약속의 땅의 원주민들의 정복 과정(1-12장)과 정복한 후에 약속의 땅을 배분하는 과정(6-12장), 그리고 여호수아의 말년 생애(22-24장)를 기록하였습니다.

 

 

인간 여호수아

 

‘여호수아’는 이 여호수아서 내에서 하나님의 사역을 주도적으로 하였던 사람입니다. 본 여호수아서는 모세의 뒤를 이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지도자인 여호수아의 활약을 중심적으로 다루고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오늘날 이 이름은 우리와도 아주 친숙한 이름입니다. 여호수아(Joshua)는 이름부터가 우리들이 많이 들었던 이름과 비슷하지 않습니까? 그 친숙한 이름은 바로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입니다. 구약 성경에서 ‘예수’의 이름을 표현하면, ‘여호수아’나 ‘호세아’라고 불렀습니다.

‘여호수아’는 원 이름이 ‘호세아’라고 불렀습니다. 그가 ‘여호수아’로 바뀌게 된 것은 출애굽 후 광야 여행 도중에 모세가 그의 이름을 ‘여호와는 구원이다’라는 뜻을 가진 ‘예호수아’(Jehoshua)라고 바꾸도록 하였습니다(민 13:8, 신 32:44). ‘예수’의 이름의 뜻이 ‘구원(salvation)’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듯, ‘여호수아’의 이름의 의미도 ‘구원’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와 ‘여호수아’라는 이름이 친숙한 것입니다.

 

(1) 여호수아는 어떤 사람

 

여호수아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그는 출애굽의 광야 40년 동안 모세의 수종을 들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여러 성경 속에서 그를 잘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맡겨진 일들은 충성하는 사람이었습니다(출 24:13). 그리고 보통 사람들과는 다르게 모든 환경에서든지 항상 믿음 안에 선 사람이었습니다(민 14:1-9). 그가 하나님의 군사로서 두려움 없이 대적과 맞서 싸우는 용맹스러운 사람이었습니다(출 17:8-16). 여호수아에 대한 소개는 다음과 같습니다.

 

18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신에 감동된 자니 너는 데려다가 그에게 안수하고 19그를 제사장 엘르아살과 온 회중 앞에 세우고 그들의 목전에서 그에게 위탁하여 20네 존귀를 그에게 돌려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으로 그에게 복종하게 하라(민수기 27:18-20)

 

그는 하나님의 일꾼으로서 자격을 충분히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만 신뢰하는 믿음, 자신의 일에 충성하는 생활, 지도자로서 용맹스러운 성격 등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준비된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여호수아처럼 하나님께 크게 사용 받으시길 원하십니까? 당신의 그릇을 넓히시길 바랍니다.

 

약속의 땅 가나안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 주위에는 이 땅보다 더 비옥하고 아름다운 땅이 있었습니다. 어떠한 희생을 치르고서라도 약속의 가나안 땅을 들어가야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한 땅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더 유추해서 보면, 우리들이 어떠한 희생을 치르고서라도 천국에 들어가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의 해답이 나옵니다. 하나님께 백성들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곳이기 때문입니다.

가나안 땅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던 곳입니다(창 12:1-7; 13:15-17; 15:7,18; 17:8; 24:7).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창세기 12장 1절에서 약속하십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하였습니다. 지시할 땅은 바로 ‘가나안 땅’입니다. 그 후로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조상들에게 거듭거듭 강조하면서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가나안 땅이 영원한 고향입니다.

 

가나안 땅은 하나님의 구원 역사(役事) 속에 매우 중요한 곳입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예루살렘을 가리켜서 “열방의 중앙”(󰃫 겔 5:5)이요, 이스라엘 땅은 “세상의 중앙”(󰃫 겔 38:12)이라고 말했습니다. “중앙”이라는 말은 ‘배꼽’이라는 말과 같습니다. 이 말은 곧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이 세상 사이를 잇는 “생명선”이라는 듯이 암시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약속의 땅 가나안 베들레헴에서 구세주(救世主)가 태어날 것을 예언하였습니다(미 5:2). 또한 구세주가 이 세상에 모든 사람들의 생명을 구원하기 위하여 죽으실 것을 예언되었습니다(사 53장). 이처럼 가나안은 구속의 역사가 일어날 매우 중요한 곳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가나안 땅이 자신들의 생명과 같은 곳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땅이라 할지라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느냐에 따라서, 그 가나안 땅의 주인의 모습이 변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범을 순종하면, 하나님께서도 이스라엘 백성들을 약속의 땅에서 번영케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법을 떠나서 불순종하며 우상을 섬기면, 그 땅의 주권(主權)을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들에게 맡겼습니다.

 

 

기록된 여호수아서

 

(1) 여호수아를 기록한 목적

 

왜 여호수아서를 기록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서는 처음 읽었던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하나님의 깊은 의도(意圖)가 있었습니다. 먼저 우리들은 이 의도를 발견해야 합니다. 이 의도를 발견하기 위해서는 이 여호수아서가 언제 쓰여졌겠느냐는 숙제가 나옵니다.

 

대부분 성경학자들은 여호수아서가 사사기 시대 특히 웃니엘이 사사로 있었을 때 기록되어졌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BC. 1370-1330). 이 당시에는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수아에게 주셨던 하나님의 교훈을 알지 못하였습니다(삿 2;10).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점점 멀어짐으로 타락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가나안 땅 주위에 있던 이방 사람들에게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이 여호수아서는 사사 당시의 사람들에게 이방인들의 교훈을 따라 살아가지 못하도록 하며, 하나님의 백성들로서 순결성을 유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기록된 말씀입니다.

이 여호수아서의 중요한 내용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조상들의 믿음의 발자취를 보여주고 그 발자취를 따라 오도록 제시한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연히 가나안 땅에 흘러 들어와 살았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겠다고 허락하신 땅에서 그 약속을 따라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당연히 가나안 땅에 주인이 되어야 하고, 이방인들은 이 땅에서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해야된 사명을 가르쳐 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또 다른 면에서 교훈하여 주시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성결한 백성이니 가나안 원주민들의 바알 신과 같은 타락하고 부패한 모습을 본 받지 말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성결을 유지하면서 살아가도록 제시합니다. 그러하기 위해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늘 이방인들의 종교, 습관, 환경과 영적인 전쟁을 치러서 승리해 나가야 했습니다. 즉, 하나님 백성으로서 애국심과 성결성을 고취하기 위한 내용으로 기록된 것입니다.

 

마지막 교훈은 특히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배분하는 과정을 기록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배분되어진 땅을 인간의 욕심을 따라서 취득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교훈합니다. 힘(Power)의 원리로 힘없는 사람(지파)들의 땅을 취득하여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간 후에 돌려주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배반이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모든 삶의 방식은 이방인들의 생활 방식과 다르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2) 여호수아의 기록 연대

 

여호수아의 어느 연대를 기록하였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모세오경이 존재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후의 역사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여호수아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수아와 함께 요단강을 건널 때부터 시작하여 그가 110세 죽기까지 기록하였습니다.

모세 오경과 연결해서 보면, 여호수아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부터 시작한 약속의 땅에 대한 약속이 어떻게 성취되었는가를 생생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가나안 땅에 사는 것은 역사적 전통성을 가지고 산다는 교훈을 주기 위한 말씀입니다.

 

교훈서로서 여호수아

오늘날 우리들은 여호수아서를 읽으면서 어떤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까? ‘여호수아’는 ‘예수’의 그림자입니다.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은 영원한 약속의 땅인 천국을 사모하는 사람들입니다. 어떠한 희생을 치른다 할지라도 천국을 사모하면서 빼앗기지 않도록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들은 생활 속에서 또한, 세상들과는 다른 생활로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거룩함을 유지하면서 살아가야 함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 두 가지 천국을 사모하는 것과 천국 백성의 성결은 따로 떨어진 것이 아닙니다. 천국을 사모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거룩하게 살아갑니다. 천국에 대한 소망이 느슨하면, 이 세상에서도 삶이 느슨해집니다. 느슨해지면 모든 것이 느슨해지고 결국에는 세상의 것들이 우리를 삼켜버립니다. 우리의 삶의 주권(主權)이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풍속에 있고, 마귀의 종이 되어 비참한 생활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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