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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12-01)


가나안 땅 정복에 대한 정리

여호수아 12장 1-24절


옛날에는 중학과정을 마치고 고등학교를 들어가기 위해서는 고등학교 입학시험을 보아야 했습니다. 이 입학시험은 중학교 3년간 배운 부분에서 출제되었기 때문에 모든 3년 교과서를 다 살펴보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참고서 출판사에서 “00년간 고입 총정리”이란 책이 출판되면서 교과서 전체를 보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이 책은 중학교 3년 과정 각 과목별로 출제된 유형에 따라 교과 과정이 잘 총정리 되어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입시 가이드와 같은 책이었습니다.

 

 

  • 여호수아서 서사의 흐름은 13장에서 갑자기 여호수아의 노년기로 바뀝니다. 하나님꼐서는 늙은 여호수아에게 정복되지 않는 땅이 매우 많이 남아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여호수아의 정복 전쟁이 사실은 완전히 마무리되지 않았음을 뜻합니다. 물론 큰 전쟁과 주요 성읍들의 정복은 완료되었기에 실제적인 가나안 땅 점유는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모세가 정복한 요단 동편 지역(1-6)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신 것들은 모두 지켜주십니다. 지금도 그 약속들을 성취해 나가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는 믿고 순종하는 자들에게 쉽게 이루어집니다. 그 약속은 아브라함과 모세와 여호수아와 같은 믿음의 사람들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진심으로 믿고 있습니까?

 

1이스라엘 자손이 요단 저편 해 돋는 쪽 곧 아르논 골짜기에서 헤르몬 산까지의 동쪽 온 아라바를 차지하고 그 땅에서 쳐죽인 왕들은 이러하니라 2시혼은 헤스본에 거주하던 아모리 족속의 왕이라 그가 다스리던 땅은 아르논 골짜기 가에 있는 아로엘에서부터 골짜기 가운데 성읍과 길르앗 절반 곧 암몬 자손의 경계 얍복 강까지이며 3또 동방 아라바 긴네롯 바다까지이며 또 동방 아라바의 바다 곧 염해의 벧여시못으로 통한 길까지와 남쪽으로 비스가 산기슭까지이며 4옥은 르바의 남은 족속으로서 아스다롯과 에드레이에 거주하던 바산의 왕이라 5그가 다스리던 땅은 헤르몬 산과 살르가와 온 바산과 및 그술 사람과 마아가 사람의 경계까지의 길르앗 절반이니 헤스본 왕 시혼의 경계에 접한 곳이라 6여호와의 종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을 치고 여호와의 종 모세가 그 땅을 르우벤 사람과 갓 사람과 므낫세 반 지파에게 기업으로 주었더라(1-6)

 

전쟁기인 여호수아의 전반부 이야기는 12장의 승전 기록과 더불어 끝을 맺습니다. 점령된 지역들이 상세히 나열됩니다. 이 목록은 모세가 정복했던 요단 동편 땅부터 시작됩니다. 요단 동편의 점령지는 ‘아르논 골까기에서 헤르몬 산까지의 동쪽 온 아라바’로 표현됩니다. 여기서 북쪽 경계는 헤르몬 산까지로 국한되지만 확장된 약속의 땅은 유프라테스 강 상류까지 이릅니다(여호수아 1:4). 여기서 아라바는 고유명사라기보다는 사해 부근에서 헤르몬 산까지 펼쳐진 요단 동쪽의 넓은 고지대 ‘평원’을 가리킬 것입니다. 이어서 요단 동편에서 모세가 무찌른 왕들의 이름이 나열됩니다. 먼저 헤스본에 거주하던 아모리 왕 시혼이 나옵니다. 그의 영토는 남쪽으로 아르논 골짜기에서 시작됩니다. 아르논 골짜기를 경계로 남쪽은 모압 영토입니다. 아르논 골짜기의 아로엘 성읍에서 시작된 시혼 왕의 영토는 북으로 얍복 강을 지나 멀리 긴네롯 바다(갈릴리)에 이르는 요단의 동편의 평원(아라바)입니다(3). 얍복 강 하류는 길르앗 일대로 모두 아모리 왕 시혼의 영토지만, 상류는 강줄기가 남쪽으로 구부러지면서 자연스럽게 암몬과의 경계선을 형성했습니다(민 21:24).

시혼 왕은 또 다른 아모리 왕 옥과 요단 동편을 분할 통치하고 있었는데, 시혼과 옥의 영토 경계선은 갈릴리 남단으로 흐르는 야르묵 강이었을 것입니다. 다시 남으로 내려와 염해(사해) 근처 시혼 왕의 영토가 상세히 묘사됩니다(3). 남쪽의 요단 동편 평원(아라바)은 염해를 끼고 있으며, 그곳의 거점 도시는 벧여시못이었습니다. 비스가 산기슭은 모압 평지와 멀리 요단 서편을 내려다보는 산악 지대로서 느보 산이 최정상이었습니다(13:20). 야르묵 강 북쪽의 고지대 평원은 바산이라 불리는데, 아모리 왕 옥이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바산의 주요 도시는 아스다롯과 에드레이였으며, 둘 중에서 수도는 아스다롯이었습니다. ‘르바의 남은 족속’은 옥이 르바임이었음을 의미합니다. 르바임은 종족 이름이 아닌 ‘거인’을 뜻합니다. 신명기는 옥의 침상이 길이가 9규빗(4m), 폭이 4규빗(1.8m)에 이르는 거대한 철 침상이었다고 말합니다(신명기 3:11). 5절에서 바산 왕 옥이 다스리던 영토가 상세히 나열됩니다. 북쪽으로 헤르몬 산이 있고 동쪽으로 살르가가 소재해 있었습니다. 그술은 갈릴리 호수 북동쪽의 골란 고원 남부, 마아가는 골란 고원의 북쪽일 것입니다. 그술은 13:2,13에서 아직 쫓아내지 못한 요단 서편의 그술과는 다른 도성입니다. 이 성읍들은 시혼 왕의 영토와 경계선에 놓여 있었습니다(5). 이 광활한 요단 동편 전부를 모세가 시혼과 옥을 연달아 격파함으로써 점령하게 되었습니다. 이 땅은 우여곡절 끝에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에게 할당되었습니다(6). 요단 동편의 경계들과 점령된 성들의 자세한 목록은 13:8-32에서 자세히 열거됩니다.

 

여호수아가 정복한 요단 서편 지역(7-24)

하나님 나라는 순종의 나라임을 후손들에게 보여줍니다. 우리에게도 미래는 열려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준비되셨습니다. 이제 우리가 대답할 차례입니다. 점령할 것인가? 점령당할 것인가? 마지막 성읍을 점령하기까지 매순간 하나님을 의지하며 싸워야 합니다. 어제의 승리가 오늘을 보장하지 않으며, 분투하지 않고 이길 수 있는 손쉬운 싸움은 없습니다.

 

7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자손이 요단 이편 곧 서쪽 레바논 골짜기의 바알갓에서부터 세일로 올라가는 곳 할락 산까지 쳐서 멸한 그 땅의 왕들은 이러하니라(그 땅을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의 지파들에게 구분에 따라 소유로 주었으니 8곧 산지와 평지와 아라바와 경사지와 광야와 네겝 곧 헷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의 땅이라)9하나는 여리고 왕이요 하나는 벧엘 곁의 아이 왕이요 10하나는 예루살렘 왕이요 하나는 헤브론 왕이요 하나는 야르뭇 왕이요 11하나는 라기스 왕이요 12하나는 에글론 왕이요 하나는 게셀 왕이요 13하나는 드빌 왕이요 하나는 게델 왕이요 14하나는 호르마 왕이요 하나는 아랏 왕이요 15하나는 립나 왕이요 하나는 아둘람 왕이요 16하나는 막게다 왕이요 하나는 벧엘 왕이요 17하나는 답부아 왕이요 하나는 헤벨 왕이요 18하나는 아벡 왕이요 하나는 랏사론 왕이요 19하나는 마돈 왕이요 하나는 하솔 왕이요 20하나는 시므론 므론 왕이요 하나는 악삽 왕이요 21하나는 다아낙 왕이요 하나는 므깃도 왕이요 22하나는 게데스 왕이요 하나는 갈멜의 욕느암 왕이요 23하나는 돌의 높은 곳의 돌 왕이요 하나는 길갈의 고임 왕이요 24하나는 디르사 왕이라 모두 서른한 왕이었더라(7-24)

 

두려워하지 말고 놀라지 말고 떨지 말라고 하나님과 모세가 번갈아가며 연신 당부해야 할 정도로 여호수아에게 가나안 정복 사명은 절벽 같은 현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과 함께 함으로 결국 해냅니다.

 

(1) 남쪽 지역 왕들의 목록(7-16)

 

모세가 요단 동편의 점령을 완수했다면, 여호수아는 요단 서편의 정벌을 마무리했습니다. 요단 서편의 남북 범위가 바알갓에서부터 할락 산까지로 설정됩니다.

이것은 11:17 진술의 반복인데, 순서가 바뀌어 있습니다. 8절의 지정학적 묘사도 앞서 설명된 것의 반복입니다. 요단 서편 땅의 전체 지형이 남에서 북까지, 요단 강에서 서쪽의 지중해 연안까지 대표 종족들과 더불어 포괄적으로 나열된다. 9절부터 점령지 왕들의 이름이 나열됩니다. 9절의 아이와 벧엘은 인접한 성읍들이었습니다. 13절의 게델은 아마도 드빌에서 가까운 지역일 것이나 실체가 전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14절의 호르마는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가나안 족속과 전쟁했던 곳이기도 합니다(민 14:45;21:3; 신 1:44;12:15; 수 19:4; 삿 1:17). 아둘람은 처음 등장하는 추가된 장소입니다. 예루살렘 남서쪽 약 28km에 위치하었다. 막게다는 남방 전투에서 다섯 왕들이 처형된 곳입니다.

 

(2) 북쪽 지역 왕들의 목록(17-24)

 

이어서 북쪽 지역의 도성들과 왕들의 이름이 나열됩니다. 17절의 답부아는 확인된 바가 없으나, 현대의 작은 마을 크파르 타푸아(Kfar Tapuah)가 그곳이라며 예루살렘 북쪽 약 38km 지점에 위치해 있습니다. 에브라임 지파와 므낫세의 경계를 이루는데 므낫세에 속해 있습니다(16:8;17:7-8). 따라서 답부아부터는 실재지으로 가나안 북쪽 도성들의 목록입니다. 시간 순서로는 하솔 근처에서 북부 세력과 전면전을 펼쳐 제압한 뒤, 아마도 남하하여 중부권을 정복했을 것입니다. 헤벨의 후보지로는 므깃도 남쪽 약 12km 지점의 텔엘 무하파르(Telel-Muhaffar)가 나름 가능한 곳으로 제시되면서 몇 군데가 거론되지만, 확실한 단서는 없습니다. 이곳은 19:13의 가드 헤벨과 다른 곳입니다.

18절의 아벡은 텔 아펙(Tel Aphek)으로 인정됩니다. 이곳은 갈멜 산 북쪽 해안 도시 키르야트 얌(Kiryat Yam)의 동쪽에 위치합니다. 아벡은 고대로부터 이집트와 우가릿 문헌 등에서 나타날 만큼 유서 깊은 도성입니다. 랏사론의 위치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19절의 마돈을 티베리아스 서쪽의 카른 하틴(Qarn Hattin)과 동일시합니다. 20절의 시므론 므론은 앞서 언급한 대로, 아마도 메롬과 동일한 것으로 보입니다. 악삽은 몇 개의 이집트 문헌들에 나타나지만(Aharoni), 역시 위치는 몇몇 후보지가 거론될 뿐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21절 다아낙의 위치는 므깃도 남쪽 가km 지점의 텔 타나크(Tel Tanach)로 추정됩니다. 17절에서 언급된 헤벨에서 불과 북쪽으로 5km 지점일 만큼 두 성은 가까웠습니다. 고대의 므깃도는 현재 텔 므깃도 국립공원(Tel Megiddo National Park)으로 보존되어 있습니다. 22절의 게데스는 갈릴리 북쪽 하솔 근처에 있는 납달리 지파의 영역인 갈릴리 게데스(19:37; 20:7; 21:32)와 다른 장소입니다. 게데스는 잇사갈 지파의 땅에 속한 도성일 것입니다(역대상 5:72). 이곳은 다아낙, 므깃도, 욕느암과 가까운 이스르엘 골짜기 내에 위치한 곳으로 텔 아부 쿠다이스(Tell Abu Qudeis)로 추정됩니다(Junkkaala; Pitkanen). 이 유적지는 브깃도 공원에서 불과 3km의 거리입니다. 욕느암의 위치로는 텔 요크네암(Tel Yoqneam = Tel Qamun)이 재시되며 스불론 지파의 영토입니다(19:11; 21:34), 갈멜의 욕느암이란 이곳이 갈멜 산 근처에 소재했음을 말해줍니다 현대의 텔 요크네암은 므깃도에서 북서쪽으로 약 10km 지점이며 갈멜 산 남동쪽 기슭입니다.

23절의 돌(Dor)은 지중해 연안에 위치합니다. 이곳은 팔레스타인 북부 지방의 지중해 해안에 인접한 현대의 키르베트 엘 부르지(Khirbet el-Bur)인 것으로 추론됩니다. 히브리어 성경에서 이곳과 열왕기상 4:11에서만 나타나고 역시 둘 다 지명 돌(Dor)와 함께 ‘높은 곳들’(나포트)이 붙는데, 이것의 의미는 분명하지 않으나 ‘언덕’을 뜻할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돌(Dor) 근처의 모래 언덕들(sand dunes)이었을 가능성을 제시합니다(Soggin; Butler). 길갈의 고임 왕은 문자적으로 ‘길갈의 민족들의 왕’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고임은 지명으로 사용된 고유명사일 수 있습니다. 이 경우 고임의 위치는 우리가 알 수 없으나, 사사기 4:2의 하로셋 학고임과 동일한 도성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길갈은 위치로 볼 때 분명히 또 다른 길갈입니다.

24절의 디르사 또한 위치가 분명하지 않으나 텔엘 파라 (Tel el-Farah)가 가능한 후보 중 하나입니다(Junkkaala; Pitkanen), 이곳은 므깃도에서 상당히 남쪽으로 내려와 가나안의 중심부에 위치합니다. 세겜(오늘날의 나블루스)과는 불과 북서쪽 8km 거리일 만큼 가깝습니다. 디르사는 왕정 시대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며 몇몇 왕들이 수도로 삼을 만큼 중요한 도성이시도 했습니다(열왕기상 14:17: 15:21: 16:6,8,23). 남과 북의 정복된 왕들의 총계는 31명입니다(24).


하나님께서는 마침내 모세와 여호수아를 통해 가나안 땅을 정복함으로 뜻을 이루십니다. 지칠 줄 모르는 열정으로 하나님께서는 자기 뜻을 이루시고야 맙니다. 그 역사에 참여하기를 주저한다면, 다른 이를 택해 뜻을 이루실 것입니다. 주신 기회에 감사하고, 신실한 순종과 헌신으로 섬겨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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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11-01)


북부 가나안 정복 진격

여호수아 11장 1-23절


어려운 상황을 만나면 벼랑 끝에 있는 기분이 들 수 있습니다. 이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움츠려 들고 부정적인 생각을 하게 되며 극단적인 결정을 내리려 합니다. 그러나 참담한 패배를 딛고 일어서기 위해서는 새로운 전략으로 정면 돌파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위기를 극복한 후, 자신을 돌아보면 작은 것 하나 때문에 실패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조금만 더 노력했더라면 실패하지 않았을 것이며, 성공은 바로 눈앞에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실패했다고 생각하기보단 조금 더 수고해 보시길 바랍니다. 그곳에 성공이 숨어있습니다.

 

  • 11장은 북부 지역 정벌을 묘사한 뒤(1-15), 가나안 땅 전체의 정복을 요약합니다(16-23). 북부 지역의 전쟁 양상은 남부 지역과 비슷합니다. 여호와와 이스라엘의 전승 소식을 적들이 전해 듣고 동맹군을 형성합니다. 여호와께서는 그 연합군이 이스라엘에게 진격해 올 때 두려워하지 말라고 여호수아의 용기를 북돋아 주셨습니다. 북쪽의 핵심 세력들이 격파되고, 이어서 남은 지역이 모두 점령됩니다.

 

북부 지역 정벌(1-15)

어려움이 닥칠 때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며 도와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면 모든 상황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분의 인도하심과 능력을 신뢰하세요. 하나님께서 우리의 힘이 되어 주십니다. 어떤 도전이든 이겨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항상 의지하며 나아갑시다.

 

1하솔 왕 야빈이 이 소식을 듣고 마돈 왕 요밥과 시므론 왕과 악삽 왕과 2및 북쪽 산지와 긴네롯 남쪽 아라바와 평지와 서쪽 돌의 높은 곳에 있는 왕들과 3동쪽과 서쪽의 가나안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헷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산지의 여부스 족속과 미스바 땅 헤르몬 산 아래 히위 족속에게 사람을 보내매 4그들이 그 모든 군대를 거느리고 나왔으니 백성이 많아 해변의 수많은 모래 같고 말과 병거도 심히 많았으며 5이 왕들이 모두 모여 나아와서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메롬 물 가에 함께 진 쳤더라 6○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그들로 말미암아 두려워하지 말라 내일 이맘때에 내가 그들을 이스라엘 앞에 넘겨 주어 몰살시키리니 너는 그들의 말 뒷발의 힘줄을 끊고 그들의 병거를 불사르라 하시니라 7이에 여호수아가 모든 군사와 함께 메롬 물 가로 가서 갑자기 습격할 때에 8여호와께서 그들을 이스라엘의 손에 넘겨 주셨기 때문에 그들을 격파하고 큰 시돈과 미스르봇 마임까지 추격하고 동쪽으로는 미스바 골짜기까지 추격하여 한 사람도 남기지 아니하고 쳐죽이고 9여호수아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령하신 대로 행하여 그들의 말 뒷발의 힘줄을 끊고 그들의 병거를 불로 살랐더라 10○하솔은 본래 그 모든 나라의 머리였더니 그 때에 여호수아가 돌아와서 하솔을 취하고 그 왕을 칼날로 쳐죽이고 11그 가운데 모든 사람을 칼날로 쳐서 진멸하여 호흡이 있는 자는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였고 또 하솔을 불로 살랐고 12여호수아가 그 왕들의 모든 성읍과 그 모든 왕을 붙잡아 칼날로 쳐서 진멸하여 바쳤으니 여호와의 종 모세가 명령한 것과 같이 하였으되 13여호수아가 하솔만 불살랐고 산 위에 세운 성읍들은 이스라엘이 불사르지 아니하였으며 14이 성읍들의 모든 재물과 가축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탈취하고 모든 사람은 칼날로 쳐서 멸하여 호흡이 있는 자는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였으니 15여호와께서 그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신 것을 모세는 여호수아에게 명령하였고 여호수아는 그대로 행하여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하나도 행하지 아니한 것이 없었더라(1-15)

 

북쪽 가나안의 여러 왕들이 연합하여 이스라엘을 공격하지만,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그들을 기습하여 승리하고 도시들을 점령합니다. 이는 이스라엘이 북쪽 가나안 지역을 정복하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을 차지하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이 구절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면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신뢰하고 그분의 뜻에 따라 나아가야 합니다.

 

(1) 북방의 동맹군들에 대한 승리(1-9)

 

11장부터 무대가 가나안 북부 지역으로 바뀝니다. 세겜 근처의 길갈에서 하솔까지는 거의 100km의 거리입니다. 여호수아 군대의 남방 정벌에 대한 소문은 순식간에 북방 지역에 퍼졌을 것입니다. 하솔 왕 야빈은 이 소식을 듣고 남방의 예루살렘 왕처럼 동맹군을 형성합니다. 북방 동맹국들의 방대한 지리적 분포를 볼 때, 이 연합군의 규모는 남방의 연합군보다 훨씬 거대했을 것입니다. 소집된 도성들은 마돈, 요밥, 시므론, 악삽이며, 지역 명으로는 북쪽 산지, 긴네롯(갈릴리) 남쪽 광야(아라바), 평지, 지중해 연안 쪽 모래 언덕의 도성인 돌(Dor)을 포함합니다. 덧붙여 방향을 기준으로 동에서부터 서에 이르는 모든 부족, 곧, 가나안, 아모리, 헷, 브리스 족속을 비롯하여 남쪽 산지에 거하던 여부스 족속과 멀리 북쪽의 미스바 땅이라 불리는 헤르몬 산 아래에 거하던 히위 족속까지 불러 모았습니다. 이들이 규합한 동맹군의 세력은 ‘해변의 수많은 모래와 같았고 말과 병거도 심히 많았다.’ 거대한 군단이 강력한 무기인 말과 병거를 몰고 운명이 걸린 전쟁터로 출정했습니다. 해변의 모래 같다는 비유적 표현은 막대한 숫자에 대한 관용적인 표현입니다. 이 군단을 이끈 인물은 하솔 왕 야빈입니다. 8절은 하솔이 모든 나라의 머리였다고 소개하면서, 그 성읍의 강력한 영향력을 설명합니다. 하솔은 갈릴리 호수에서 북쪽으로 15km 지점에 위치하며, 당시 인구가 삼만 명 정도로 추정될 정도로 다른 성들보다 훨씬 컸습니다. 마돈을 비롯한 여러 도성과 지역들의 위치는 12장에서 살펴보기로 합니다. 이들의 격전지는 메롬 물가였는데, 그 위치는 정확히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메롬 물가는 메롬에서 멀지 않은 훌라 호수(Lake Hula)와 주변의 넓은 습지로 추론됩니다. 그곳은 갈릴리 호수에서 북쪽으로 22km 거리입니다. 격전지는 그 호수 인근의 고지대로 추정됩니다. 어떤 학자는 그곳의 높고 험한 지형이 병거가 움직이기에는 매우 불리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들의 말 뒷발의 힘줄을 끊고 그들의 병거를 불사르라’(6)는 여호와의 명령이 그 전쟁의 상황에 잘 부합한다는 주장입니다. 말의 발목 힘줄이 끊어진다는 것은 말이 더는 달리지 못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적들이 무기력하게 쓰러질 것이라는 비유입니다(참조, 삼하 8:4). 이스라엘 군대는 기습 작전으로 이들을 단숨에 격파했습니다(7). 여호수아는 북쪽으로 시돈과 미스르봇 마임까지 도주한 적들을 추격했습니다. 이 지역들은 팔레스타인 북쪽에 위치해 있습니다. 시돈은 현대의 시돈(Sidon)과 동일한 도시로 하솔에서 북서쪽 50km 지점입니다. 아마 전쟁이 벌어진 메롬 호수 근처에서는 약 40km 거리일 것입니다. 이스라엘 군대는 동쪽으로는 미스바 골짜기까지, 헤르몬 산 근처까지 추격했습니다. 엄밀하게는 추정된 전쟁터에서 북동쪽이 헤르몬 산인데, 마찬가지로 약 40km의 거리입니다.

 

(2) 하솔과 다른 성들의 점령(10-15)

 

하솔 유적지 발굴을 통해 주전 1200년대에 도성이 불타고 파괴된 흔적이 발견되었습니다. 주목해야 할 것은 하솔만 불살랐다는 보고입니다. 놀랍게도 고고학의 발굴을 통해서도 주전 13세기경 하솔만 파괴되어 불태워졌다는 것이 확인되고 있습니다. 북쪽에서는 그 외 오랜 유적지에서 파괴와 소각의 흔적을 발견하기 어렵습니다. 특히 구릉지(언덕, 텔 ) 위에 세운 성읍들은 사르지 않았습니다(13). 이것이 가나안 전체에 해당하는지, 아니면 북부 지역에만 해당하는지 정확하지 않으나 아마 전체를 가리킬 것입니다. 불태워진 성읍들(예. 여리고와 아이)은 산(언덕) 위에 세워진 성읍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특히 신명기 6:10은 성읍 파괴가 아닌 보존을 통해 이스라엘이 성과 그 안에 있는 재산을 고스란히 이어받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정복된 가나안의 모든 도성들이 소각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특히 북부 지역의 도성들은 파괴되었을 뿐 불태워지지는 않았으며, 전리품도 이스라엘 백성이 취했습니다. 이런 점에서 북부에서는 매우 낮은 수위의 헤렘 전쟁이 수행되었을 것입니다.

 

정복된 지역에 대한 보고(16-23)

죄는 부메랑처럼 돌아옵니다. 오늘 방치한 죄악은 언젠가 되돌아올 것입니다. 안일하게 남겨둔 죄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태연하게 남겨둔 죄악은 피할 수 없습니다. 죄악은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르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경각심을 가지고 죄를 멀리해야 합니다. 죄는 우리의 삶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16○여호수아가 이같이 그 온 땅 곧 산지와 온 네겝과 고센 온 땅과 평지와 아라바와 이스라엘 산지와 평지를 점령하였으니 17곧 세일로 올라가는 할락 산에서부터 헤르몬 산 아래 레바논 골짜기의 바알갓까지라 그들의 왕들을 모두 잡아 쳐죽였으며 18여호수아가 그 모든 왕들과 싸운 지가 오랫동안이라 19기브온 주민 히위 족속 외에는 이스라엘 자손과 화친한 성읍이 하나도 없고 이스라엘 자손이 싸워서 다 점령하였으니 20그들의 마음이 완악하여 이스라엘을 대적하여 싸우러 온 것은 여호와께서 그리하게 하신 것이라 그들을 진멸하여 바치게 하여 은혜를 입지 못하게 하시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그들을 멸하려 하심이었더라 21○그 때에 여호수아가 가서 산지와 헤브론과 드빌과 아납과 유다 온 산지와 이스라엘의 온 산지에서 아낙 사람들을 멸절하고 그가 또 그들의 성읍들을 진멸하여 바쳤으므로 22이스라엘 자손의 땅에는 아낙 사람들이 하나도 남지 아니하였고 가사와 가드와 아스돗에만 남았더라 23이와 같이 여호수아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 온 땅을 점령하여 이스라엘 지파의 구분에 따라 기업으로 주매 그 땅에 전쟁이 그쳤더라(16-23)

 

이스라엘은 북부 전투에서도 주요 거점 지역들을 격파하여 실질적인 승리를 ‘이미’ 거두었습니다. 이 결론은 족장들에 대한 약속의 성취라는 관점에서 진술됩니다. 요지는 가나안 남부 지역 전체가 정복되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17절에서 ‘세일로 올라가는 할락 산에서부터 헤르몬 산 아래까지’라고 표현됩니다. 세일의 할락산은 현대의 예벨 할락(Jebel Halaq)일 것인데, 이곳은 가데스 바네아의 동쪽으로 에돔과 접한 가나안의 최남단 경계선이었습니다. 반면에 가나안의 최북단은 헤르몬 산 근처의 바알갓입니다. 이렇게 해서 여호수아가 정복한 지역의 범위가 최남단 할락 산에서부터 최북단 바알갓까지로 확정됩니다. 이것은 12:7에서도 반복됩니다.

18절은 여호수아의 남쪽과 북쪽 정벌이 오랜 시간이 걸렸음을 말합니다. 물론 남쪽 정벌은 매우 단시간에 끝났음이 암시되곤 합니다(10:42). 그러나 북방의 전면전을 승리로 이끌고 남은 소규모 전투까지 모두 마칠 때까지는 갈렙의 나이로부터 약 5년의 세월이 소요된 것으로 추산됩니다. 오직 기브온 주민들만이 살아남았으며 다른 모든 족속들은 마음이 완악하여 이스라엘을 대적하여 싸우러 와서 진멸되었습니다(19). 그런데 완악한 그들의 이런 저항이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고 부연 설명합니다(20). 이것은 열 차례나 마음을 바꾸며 완악하게 이스라엘 백성을 보내지 않은 애굽의 바로를 연상케 합니다. 파라오의 마음이 완악해진 것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일이었습니다. 특히 거인족인 아낙 자손이 살던 헤브론 지역의 승전이 강조되고 있습니다(21). 아낙 자손이 격파되고, 이제 블레셋 영토 내의 가사와 가드, 아스돗에만 남아 있었습니다. 제1세대는 아낙 자손이 두려워 그 땅 입성을 포기했으나, 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 그들이 비로소 제압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헤브론 지역에 갈렙이 완전히 쫓아낸 아낙 자손의 잔존 세력이 남아 있지만(수 15:14), 세력은 이미 꺾인 상태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이제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완전히 손아귀에 넣었음을 상징적으로 말해줍니다.

마침내 전쟁이 끝나고 땅에 안식이 찾아왔습니다. 여호수아서는 동시에 현실적으로 정복하지 못한 땅이 아직 많이 남았고, ‘쫓아내지 못한’ 종족들이 여전히 남아 있다는 보고를 남깁니다(수 13:1-7,13; 15:63;16:10; 17:12,13; 23:4; 삿 1장). 분명히 여호수아 기자의 종전 선언은 그 땅의 정복이 ‘아직’(not yet) 완료되지 못했음에도 ‘이미’(already) 실현된 실제적인 점유에 대한 승전 선언입니다.


본문에서는 이스라엘이 북쪽 가나안 지역을 정복하는 과정을 다룹니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와 함께하시며, 이스라엘은 연합군을 기습하여 승리합니다. 이 구절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면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신뢰하고, 그분의 뜻에 따라 담대하게 나아가야 합니다. 어려움이 닥쳐도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항상 우리와 함께하시며, 우리의 힘이 되어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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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10-03)


남부 가나안 정복 전쟁 마무리

여호수아 10장 29-43절


 

일기는 쓰는 사람과 쓰지 않는 사람과는 삶을 임하는 차이가 있습니다. 일기는 쓰는 사람은 하루 동안 자신의 생활의 장단점들을 정리하고 분석합니다. 다음날에는 더 가치 있게 살려고 생활을 정리합니다. 하지만 일기를 쓰지 않는 사람은 그냥 흘러가는 대로 살아갑니다. 문제는 반성한 것이 없기 때문에 다음에 똑같은 문제에 넘어진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을 한 번 정도는 정리해 보아야 합니다. 자신의 삶을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을 장단점을 분석하고, 지금까지 영적 상태에 대해 살펴본 후에 인생에 새로운 좌표를 설정하고 뛰어가야 합니다.

 

  • 이 본문에는 다섯 왕들을 물리친 여호수아는 계속해서 남부 가나안을 정복했습니다. 여호수아는 어디까지 점령했는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정복 과정을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는데, 이것을 기록한 이유는 역사적인 기록물로 남기려고 기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약속하셨던 약속들을 하나씩 성취하신 것을 설명하려는 목적으로 기록했습니다.

 

남부 지역 정벌(29-43)

하나님께 순종은 항상 일관되고 온전한 순종이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의 순종이 부분적인 순종에 그칩니다. 진정한 승리를 원한다면, 온전히 순종해야 합니다. 일관된 순종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순종일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순종의 사람이었습니다. 싸우는 적은 달라도 여호수아의 순종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29여호수아가 온 이스라엘과 더불어 막게다에서 립나로 나아가서 립나와 싸우매 30여호와께서 또 그 성읍과 그 왕을 이스라엘의 손에 붙이신지라 칼날로 그 성읍과 그 중의 모든 사람을 쳐서 멸하여 한 사람도 남기지 아니하였으니 그 왕에게 행한 것이 여리고 왕에게 행한 것과 같았더라 31여호수아가 또 온 이스라엘과 더불어 립나에서 라기스로 나아가서 대진하고 싸우더니 32여호와께서 라기스를 이스라엘의 손에 넘겨 주신지라 이튿날에 그 성읍을 점령하고 칼날로 그것과 그 안의 모든 사람을 쳐서 멸하였으니 립나에 행한 것과 같았더라 33그 때에 게셀 왕 호람이 라기스를 도우려고 올라오므로 여호수아가 그와 그의 백성을 쳐서 한 사람도 남기지 아니하였더라 34여호수아가 온 이스라엘과 더불어 라기스에서 에글론으로 나아가서 대진하고 싸워 35그 날에 그 성읍을 취하고 칼날로 그것을 쳐서 그 중에 있는 모든 사람을 당일에 진멸하여 바쳤으니 라기스에 행한 것과 같았더라 36여호수아가 또 온 이스라엘과 더불어 에글론에서 헤브론으로 올라가서 싸워 37그 성읍을 점령하고 그것과 그 왕과 그 속한 성읍들과 그 중의 모든 사람을 칼날로 쳐서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였으니 그 성읍들과 그 중의 모든 사람을 진멸하여 바친 것이 에글론에 행한 것과 같았더라 38여호수아가 온 이스라엘과 더불어 돌아와서 드빌에 이르러 싸워 39그 성읍과 그 왕과 그 속한 성읍들을 점령하고 칼날로 그 성읍을 쳐서 그 안의 모든 사람을 진멸하여 바치고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였으니 드빌과 그 왕에게 행한 것이 헤브론에 행한 것과 같았으며 립나와 그 왕에게 행한 것과 같았더라 40이와 같이 여호수아가 그 온 땅 곧 산지와 네겝과 평지와 경사지와 그 모든 왕을 쳐서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고 호흡이 있는 모든 자는 다 진멸하여 바쳤으니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것과 같았더라 41여호수아가 또 가데스 바네아에서 가사까지와 온 고센 땅을 기브온에 이르기까지 치매 42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싸우셨으므로 여호수아가 이 모든 왕들과 그들의 땅을 단번에 빼앗으니라 43여호수아가 온 이스라엘과 더불어 길갈 진영으로 돌아왔더라(29-43)

 

여호수아는 남부 가나안 모든 성을 쳐서 그 성과 성읍에 있는 왕과 모든 거민을 한 사람도 남기지 않고 모두 죽였습니다. 여호수아는 정복한 후 그 동안 정복 과정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1) 립나와 라기스 점령(29-33)

 

막게다에서 다섯 왕들과 그들의 군대를 무찌른 이스라엘 군대는 립나로 진격합니다. 아세가는 고고학자들이 추정하는 위치가 지정되어 있으나 막게다의 위치는 확인된 바 없습니다.

여호수아의 군대는 거기서 더 남쪽으로 진격해서 립나 성읍에 도착 했을 것입니다. 군대의 행진은 아세가에서 막게다를 거쳐 립나를 향해 점점 남하했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립나 성은 여리고 성과 같은 운명을 맞습니다. 립나의 왕이 처형되고 성은 정복되어 여리고 성처럼 불살라진 듯합니다. ‘여리고에게 행한 것과 같았다’는 표현은 남부 지역 성읍들을 정복할 때 자주 반복됩니다. 이것은 여리고 전쟁이 가나안의 첫 번째 전쟁으로 이후 모든 전쟁의 모범임을 말해줍니다(여호수아 8:2: 10:1,28,30).

남부의 성읍들은 도미노처럼 차례로 무너졌습니다. 이스라엘은 다섯 왕들의 성읍들을 하나씩 점령해갑니다. 그 성들은 이재 왕과 군대가 없는 빈집이나 다름없었습니다. 립나에 이어 라기스로 향합니다. 이미 라기소 왕 아비아는 처형되고 군대는 궤멸된 후였기에 그 성은 무방비 상태였습니다. 라기스 성은 이 만에 정복되었습니다(32). 이스라엘 군대는 빈집털이 하듯 점령하여 심의 주법을 진멸하였습니다. 아마 주민 대부분은 패전 소식을 듣고 피신한 상태로 보입니다. 따라서 이 헤렘 전쟁의 ‘진멸’을 반드시 대 학살극으로 볼 필요는 없으며, 실제로 더 흔하게는 승전의 결과로 거주민이 ‘내쫓기는’ 양상으로 전개되었을 것입니다. 라기스는 직전에 점령될 때, 직전 성을 모범으로 제시되고 있습니다(32). 라기스부터는 정이 경형될 때, 직전 성을 모범으로 제시합니다. 그리나 립나를 비롯한 모든 성들의 중의적 보법은 여리고였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때 라기스가 함락될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을 듣고 계셀 왕 호람이 지원군을 이끌고 올라왔습니다. 게셀(Gezer)은 예루살렘에서 북동쪽으로 30km 지점입니다. 현대의 게셀은 게젤 키부츠(Kibbutz)와 더불어 공원화되어 있습니다. ‘추앙받는 자’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호람’이 라기스까지 지원군을 이끌고 올 정도면 그가 대단한 위세를 떨친 왕이었을 것으로 추론됩니다. 라기스는 게셀의 남쪽 30km 거리였으니, 호람은 상당한 거리를 군대를 끌고 온 것입니다. 라기스가 고대로부터 가나안 지역의 주요 도시 국가 중 하나였음은 1400년대의 이집트 비문에서도 확인됩니다. 비문들은 당시에 이집트의 파라오들이 이곳까지 통제권을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이것은 자연히 출애굽과 가나안 정복의 시기에 대한 논쟁과 맞물려 있는데, 업적을 과장하는 경향이 있기에 실제 파라오들이 얼마나 통제권을 가졌는지, 또한 통제권이 항시적으로 발휘되었는지에 대해서는 확정할 수 없습니다. 한편 주전 700년대의 아시리아(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 3세(혹은 불 왕이라 부름)의 왕실 벽면 부조에 아시리아 군대가 게셀을 포위하는 장면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만큼 게셀은 역사적으로 강하고 영향력이 큰 도성이었습니다.

게셀 왕 호람은 특별히 라기스 성과 돈독한 관계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라기스 왕이 체포되어 죽었다는 소식과 더불어 성들이 차례로 함락되고 있음을 알고 이스라엘에 맞서기 위해 지원군을 끌고 온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호람의 군대 역시 이스라엘 군대에 의해 궤멸되고 말았습니다.

 

(2) 에글론과 헤브론 그리고 드빌의 점령(34-39)

 

라기스 전투를 마무리한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군대는 에글론으로 진격합니다. 에글론은 동맹군에 합세했던 성으로서 군사들이 거의 없는 무방비 상태였습니다. 그 전투는 더욱 쉽게 단 하루 만에 끝났으며(34) 라기스처럼 진멸되었습니다(35). 그 다음 정복된 성은 동맹군에 합세한 헤브론이었습니다. 헤브론은 직전의 글론처럼 진멸되었습니다(37).

다음 목표는 드빌입니다. 이 성은 다섯 동맹국을에 속한 성운 아닙니다. 드빌이 에글론 왕의 이름이었음을 살펴본 바 있는데 드빌은 특정한 성읍의 이름이 기도 합니다. 이곳은 현재의 키로베트 아즐란(Khirhet Ajlan) 근처의 텔 엘 헤시(Tel el-Hes)가 유력합니다.

그곳은 유다 지파의 서쪽 변방에 있는데, 블레셋 영토와 인접해 있으며, 라기스 남서쪽에 위치해 있습니다.

드벌 생읍은 키로베트 라부드(Khirbet Rabad)일 수 있으나(Ahargei)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헤브론에 이어 드빌과 그곳의 왕은 헤브론과 립나처럼 진멸되었습니다. 드빌 왕 역시 동맹국의 다섯 왕에 들진 않았으므로 이때 왕이 처형되었다고 언급됩니다. 드빌은 왕이 건재했음에도 군사력이 약해 쉽게 점령된 것 같습니다. 이상에서 게셀의 호람 왕을 중앙에 배치하면서 총 일곱 개의 성읍과 왕이 정복됩니다. ‘7’은 구약에서 완전함을 가리키는 숫자인데, 의도가 엿보입니다. 다시 말해 점령된 성들이 더 많았을 것인데, 완전한 정복을 암시하기 위해 일곱 군데가 선택되었을 것입니다.

 

(3) 남부 광야와 해안 지역 점령(40-43)

 

여리고, 아이 그리고 기브온을 기준으로 여호수아의 군대는 남부 지역들로 진격해서 대부분의 지역을 장악합니다. 그 범위가 산지, 네겝(남방), 평지, 경사지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어서 몇몇 지명들과 더블어 대략적인 경계선이 묘사됩니다. 가데스 바네아는 가데스라고도 불리는데, 민수기의 광아 여정에서 대단히 중요한 지역입니다. 민수기의 어떤 곳에서 가데스 바네아는 바란 광야에 위치한다고 말하지만(민수기 10:12,16, 13:3,26) 다른 곳에서는 신(Zin) 광야의 일부로 진술합니다(민수기 20:1). 가데스 바네아가 그 두 광아 차하에 위치해 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이곳은 바란 광야(신 광야)의 최북단으로 가나의 최남단인 네겝(남방) 지역과 접해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광야 여경 초기에 이곳에서 열두 정탐꾼을 가나안 행으로 보낸 바 있습니다. 자사(Gaza)는 해안 지역의 중요한 성읍이었습니다. 구약성경은 해양 세력인 블레셋이 오래전부터 점유한 채 이스라엘을 괴롭혔다고 보고합니다. 아마 여호수아의 정복은 가사 근처까지 완성되고 해안의 블레셋 영역은 아직 장악하지 못했다고 봐야 합니다. ‘온 고센 땅’에서 고센은 이스라엘의 조상이 떠나온 이집트의 고센 땅이 아닌 가나안의 지명입니다. 고센은 도시 이름이 아닌 네겝에서 기브온까지 이르는 남부 지역에 대한 포괄적인 지역 명으로 추정되는데, 이 지역의 실제는 전혀 확인된 바 없습니다. 여호수아와 그의 군대는 이 모든 지역의 정복을 마치고 길갈의 본 진영으로 돌아왔습니다.


승리의 길은 그리 멀리 있지 않지만, 그 길을 찾는 이가 적습니다. 순종하되 온전히 순종하고 일관되게 순종한다면, 여호수아와 함께하신 하나님을 우리와도 함께하실 것입니다. 지금까지 승리를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끝까지 최선을 다해 존중해야 합니다. 당신의 모든 영역을 하나님께 드리시길 바랍니다. 드리지 않는 부분으로 실패를 자초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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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10-02)


남부 아모리 왕들을 정복한 여호수아

여호수아 10장 16-28절


사람들은 어떤 일을 성공하면 성취감을 느낍니다. 하지만 성공 뒤에 함정이 있습니다. 성공에 자아 도취되어 버린 것입니다. 다음 해야 할 일을 준비함으로 실패하는 경우를 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성공 시간에도 도취하지 않고, 다음 할 일들을 점검합니다. 손자병법에서는 ‘전쟁을 잘하는 사람은 승리했을 때, 지혜롭다거나 용감하다는 공적이 들어나지 않는다’(軍形篇)라고 말합니다. 여호수아가 남부지역 왕들과 전쟁해 나가면서 세운 전략을 오늘날 배워야할 교훈들이 무엇입니까?

 

 

  •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군대는 가나안 땅의 남부 지역을 먼저 정복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애초에 계획된 전략이 아니었고, 그 땅에서 발생한 상황에 따라 진행된 과정이었습니다. 기브온 주민들이 이스라엘에 투항했다는 소식을 들은 남부 지역 부족들과 왕들이 먼저 군사 행동을 시작했으며, 이에 맞서 이스라엘 군대가 남부 전선으로 힘을 쏟기 시작한 것입니다.

 

성공에 도취하지 않음(16-21)

실패를 교훈 삼아 성공을 이룬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실패는 ‘할 수 있다’는 자심감도 심어 줍니다. 하지만 작은 성공에 도취해서 큰 실패를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성공에 취하지 말고 자신에게 주신 사명에 충성해야 합니다. 성공에 도취되면 교만해집니다. 여호수아는 자만하지 않고 남부 지역 아모리 왕들을 정복해 나갑니다.

 

16그 다섯 왕들이 도망하여 막게다의 굴에 숨었더니 17어떤 사람이 여호수아에게 고하여 이르되 막게다의 굴에 그 다섯 왕들이 숨은 것을 발견하였나이다 하니 18여호수아가 이르되 굴 어귀에 큰 돌을 굴려 막고 사람을 그 곁에 두어 그들을 지키게 하고 19너희는 지체하지 말고 너희 대적의 뒤를 따라가 그 후군을 쳐서 그들이 자기들의 성읍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너희 손에 넘겨 주셨느니라 하고 20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을 크게 살륙하여 거의 멸하였고 그 남은 몇 사람은 견고한 성들로 들어간 고로 21모든 백성이 평안히 막게다 진영으로 돌아와 여호수아에게 이르렀더니 혀를 놀려 이스라엘 자손을 대적하는 자가 없었더라(16-21)

 

기브온의 투항 소식을 들은 남부 지역은 동맹군을 형성해서 이스라엘에 공동 대응하기 시작했습니다. 기브온의 긴급한 구조 요청을 받은 이스라엘은 밤새 달려가 남부 동맹군을 격퇴합니다. 결정적으로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개입으로 동맹군을 궤멸합니다.

 

(1) 막게다 굴로 피신한 아모리 왕들(16-17)

 

남부 동맹군 왕들은 패한 후에 막게다까지 도망하였습니다. 그들은 ‘막게다의 굴’에 숨었습니다. 오늘날 막게다의 위치가 어직 확인되지 않지만, 아마 아세가 근처일 것입니다. 아세가는 아얄론 계곡에서 남쪽으로 11km 지점이므로, 거기서 더 남쪽의 가까운 위치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기게 하시는 전쟁이시만, 한시라도 긴장을 늦추지 않았습니다. 최선을 다해 끝까지 싸운 것입니다. 전쟁에서 왕이나 적장을 사살하거나 체포하면 그 전쟁에서 승리한 것입니다. 그러면 대부분은 전쟁을 마치고 승전 잔치에 들어갑니다.

 

(2) 전멸된 아모리 군대(18-21)

 

탈영병일 수 있는 한 사람이 이 사실을 여호수아에게 알려주어 은신처가 발각됩니다. 여호수아는 다섯 왕이 굴에 숨어 있다는 소식을 듣고, 굴을 막아 보초로 지키게 합니다. 여호수아는 전쟁 승리에 도취되지 않았습니다. 남아 있는 패잔병들을 진멸하기 위해 군대를 풀어 계속 진군합니다. 후퇴하는 적들이 견고한 성으로 들어가 성문을 닫고 저항하면 곤란해지므로, 여호수아는 그 전에 패잔병을 쓰러뜨릴 것을 지시합니다.

‘견고한 성’(2)은 요새화된 성을 가리키므로, 성문을 닫고 저항하면 어려움을 당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당시 가나안 지역은 여러 종족들의 오랜 투쟁으로 많은 성들이 요새화되어 있었습니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군대는 재빠른 작전 개시로 적들을 거의 전멸시켰고 소수의 생존자만이 견고한 성에 들어가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패잔병을 소탕하러 갔던 군사들이 막게다의 본진으로 복귀하여 여호수아에게 돌아왔습니다. 적들은 궤멸되어 더는 이스라엘 군대를 향해 혀를 놀리는 자가 없었습니다(21). 여기서 혀를 놀리는 행위는 조롱의 의미라기보다 개다 으르렁거리듯이 으름장을 놓는 의미로 이해됩니다. 더는 이스라엘을 위헙하는 세력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사명에 충실한 여호수아는 자신의 일을 충성스럽게 감당합니다. 실질적으로 이스라엘의 승리는 자신들의 능력이나 전략이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능력이었습니다. 그래서 교만하지 않고 끝까지 전투에 임했던 것입니다. 가나안 남부 지역을 승리로 이끌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해 ‘모든 백성이 평안히 막게다 진으로 돌아와 여호수아에게 이르렀으나 혀를 놀려 이스라엘 자손을 대적하는 자가 없었더라’(21)고 말씀하십니다. 함부로 이스라엘을 넘볼 자가 없도록 위상을 높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가나안 사람들은 이스라엘이 거짓 소문이 아닌 그들의 능력을 체험하게 해주셨던 것입니다

 

처형된 아모리 왕들(22-27)

이스라엘이 흔들리지 않고 끝까지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사명에 끝까지 충실했던 것입니다. 당신의 삶 속에 하나님의 뜻을 거스른 것을 없습니까? 마땅히 진멸시켜야할 것들은 뜻에 굴복시켜야할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패잔병을 진멸한 후에 굴에 있던 다섯 왕은 처형시킵니다.

 

22그 때에 여호수아가 이르되 굴 어귀를 열고 그 굴에서 그 다섯 왕들을 내게로 끌어내라 하매 23그들이 그대로 하여 그 다섯 왕들 곧 예루살렘 왕과 헤브론 왕과 야르뭇 왕과 라기스 왕과 에글론 왕을 굴에서 그에게로 끌어내니라 24그 왕들을 여호수아에게로 끌어내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모든 사람을 부르고 자기와 함께 갔던 지휘관들에게 이르되 가까이 와서 이 왕들의 목을 발로 밟으라 하매 그들이 가까이 가서 그들의 목을 밟으매 25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고 강하고 담대하라 너희가 맞서서 싸우는 모든 대적에게 여호와께서 다 이와 같이 하시리라 하고 26그 후에 여호수아가 그 왕들을 쳐죽여 다섯 나무에 매달고 저녁까지 나무에 달린 채로 두었다가 27해 질 때에 여호수아가 명령하매 그들의 시체를 나무에서 내려 그들이 숨었던 굴 안에 던지고 굴 어귀를 큰 돌로 막았더니 오늘까지 그대로 있더라(22-27)

 

여호수아는 남부 지역을 점령한 후에 돌아와서 모든 군사들을 모아 놓았습니다. 그리고 아모리 남부 다섯 왕들을 숨어 있는 굴속에서 끌어내었습니다. 모든 군사들이 본 앞에서 지휘관들을 불러내 그 왕들의 목을 발로 밟도록 명령합니다. 그들은 적장들의 목을 발로 밟아 적들에 대한 완전한 승리를 상징적으로 표현했습니다. 이러한 행동은 당시 고대 사회에서 흔히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지휘관들은 보복을 두려워하여 왕들의 목을 밟기를 주저합니다. 여호수아는 군장들에게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하셨던 말씀으로 그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고 강하고 담대하라 너희가 맞서서 싸우는 모든 대적에게 여호와께서 다 이와 같이 하시리라’(25)고 권고합니다. 이렇게 가나안 왕들을 물리친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앞으로 남은 가나안 정복 전쟁에 용기를 갖다 주었습니다.

여호수아는 아모리 다섯 왕을 쳐서 죽었습니다. 그 시체들을 나무에 달아 저주를 주었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은 이렇게 저주를 받을 것이라는 암묵적인 상징이었습니다. 여호수아 8장 29절에서 아이 왕도 나무에 매달은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시체들을 해질녘에 끌어내려져 그들이 숨었던 동굴 속에 다시 던져 넣고 큰 돌로 입구를 막고 그 굴을 봉하도록 하였습니다. 성경에서는 기록할 당시까지 그 굴 무덤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모습을 주변 사람들이 보고 있습니다. 이후로는 함부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넘볼 수 없도록 한 것입니다. 그 굴은 역사적인 산 기념비가 된 것입니다.

 

막게다를 점령한 여호수아(28)

전쟁은 오래 끌면 손해입니다. 만약 기회를 놓치게 되면, 남북의 보급선이 연결되어 전열을 가다듬고 다시 이스라엘을 공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이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에베소서 4:27)고 권고했던 것처럼, 마귀로 다시 설 수 있는 기회를 주어서는 안 됩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를 뒤로 미루지 않았습니다.

 

28그 날에 여호수아가 막게다를 취하고 칼날로 그 성읍과 왕을 쳐서 그 성읍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사람을 진멸하여 바치고 한 사람도 남기지 아니하였으니 막게다 왕에게 행한 것이 여리고 왕에게 행한 것과 같았더라(28)

 

여호수아는 그곳에 멈추지 않고, 남부 지역에 남아있던 잔당들을 공격합니다. ‘막게다’라는 지역은 남부 연합군으로 출전한 다섯 왕이 아닌 다른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유를 주면 순간적으로 공격해 올 수 있었기 때문에, 한 숨 돌릴 틈도 주지 않고 ‘막게다’를 공격해서 완전히 점령하였습니다. 여리고에서 그랬던 것처럼 막게다의 모든 성읍을 완전히 진멸하고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이 막게다 성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가나안 핵심부인 여리고, 벧엘, 기브온 그리고 막게다로 이어지는 가나안 중부지역을 동서로 잇는 축이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막게다 공격은 남쪽 가나안과 북쪽 가나안의 연결 통로를 끊는 역할을 한 것입니다. 마치 한국 6.25전쟁 때, 맥아더 장군이 인천 상륙 작전을 통해 북쪽에서 남쪽 내려가는 보급로를 차단한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리고 더 나가서 남쪽 가나안 지역에 남아 있는 잔당들을 모두 소탕해 버린 것입니다. 이 공격으로 가나안에는 어떤 반대 세력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산발적으로 흩어져 있는 성들이 아직 있었지만, 실체적인 의미에서 가나안 남부지역의 모든 전투는 종료되었고, 마무리를 할 시간이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것만으로 우리는 참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참된 영광과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분입니다. 여호수아는 자신의 사명에 충실한 사람들입니다. 끝까지 순종함으로 이스라엘 자손을 대적할 사람이 없게 만들어버렸습니다. 승리를 얻기까지 긴장을 늦추지 않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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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10-01)


남부 가나안을 정복해 나간 여호수아

여호수아 10장 1-15절


성공하는 사람들 중에 어려운 상황을 겪어보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살다보면 참으로 억울하고 낙담되는 때를 만나기 마련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저앉아서 일어서지 못하지만, 그 자리를 박차고 힘을 내다보면 오히려 훨씬 좋은 결과를 맺는 것을 경험합니다. 중요한 것은 절망을 희망으로 바꿔내는 결단과 힘일 것입니다. 절망에서 희망으로, 앞 글자 하나만 바꾸면 삶은 변합니다. 어려운 상황이 더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전화위복(轉禍爲福)’이라고 합니다.

 

  • 본문에서 이스라엘과 화친한 기브온 거민의 소식은 그 주변 사람들에게 그렇게 좋은 소식은 아니었습니다. 예루살렘 왕 아도니세덱을 중심으로 남부지역 아모리 왕들을 연합군을 결성하여 기브온을 공격합니다. 기브온은 여호수아에게 도움을 구합니다. 이 전투에 여호수아는 참여하여 전무후무한 사건 속에서 가나안 남부 왕들을 정복하고 승승장구합니다.

 

남부 연합군의 공격 받는 기브온(1-5)

하나님을 믿고 피한다고 해서 어려움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사탄은 항상 성도들을 넘어트릴 기회를 찾습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파고들어 넘어트리려 합니다. 그러나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과 함께 하시면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능치 못하심이 없으신 분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며 힘을 내시기 바랍니다.

 

1그 때에 여호수아가 아이를 빼앗아 진멸하되 여리고와 그 왕에게 행한 것 같이 아이와 그 왕에게 행한 것과 또 기브온 주민이 이스라엘과 화친하여 그 중에 있다 함을 예루살렘 왕 아도니세덱이 듣고 2크게 두려워하였으니 이는 기브온은 왕도와 같은 큰 성임이요 아이보다 크고 그 사람들은 다 강함이라 3예루살렘 왕 아도니세덱이 헤브론 왕 호함과 야르뭇 왕 비람과 라기스 왕 야비아와 에글론 왕 드빌에게 보내어 이르되 4내게로 올라와 나를 도우라 우리가 기브온을 치자 이는 기브온이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자손과 더불어 화친하였음이니라 하매 5아모리 족속의 다섯 왕들 곧 예루살렘 왕과 헤브론 왕과 야르뭇 왕과 라기스 왕과 에글론 왕이 함께 모여 자기들의 모든 군대를 거느리고 올라와 기브온에 대진하고 싸우니라(1-5)

 

이스라엘 백성들의 가나안 정복 사실을 들은 기브온 족속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살기 위해 항복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수하에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때에 필요한 물을 깁고 나무를 패는 종으로 살면서 살아갑니다. 기브온 족속은 가나안 사람이 보기에 보통이 아닌 중요한 위치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여리고와 아이가 점령된 소식과 더불어 들려온 기브온의 투항 소식에 예루살렘 왕 아도니 세덱은 크게 두려워했습니다. 그 사실을 ‘기브온은 왕도와 같은 큰 성임이요 아이보다 크고 그 사람들은 다 강함이라’(2)라고 설명합니다. ‘기브온 성(城)’은 벧엘이나 아이 성보다 크고 강력했습니다. 기브온은 아이보다 훨씬 큰 ‘왕도와 같은 큰 성’이고 그들은 강한 힘을 자랑했던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강력한 왕이 살 수 있는 성읍이었고, 위치로는 가나안을 남북으로 양분하는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는 성이었습니다. 그러나 기브온은 자신의 힘을 믿고 교만하게 행동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정확한 모습을 보고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투항하여 자신들을 하나님께서 의탁했던 것입니다. 가나안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작은 나라가 움직여도 힘들 텐데, 큰 나라가 싸우지도 않고 이스라엘에게 항복하니 매우 배신감이 들었을 것입니다. 가나안 남부 왕들을 크게 당황하게 했습니다. 가나안 사람들이 보기에는 이스라엘 백성들도 위협적인 존재인데, 기브온 사람들까지 가세해서 동맹군이 되어 자신들을 공격해올 것입니다.

예루살렘은 오래전 아브라함 당시 살렘 왕 멜기세덱이 통치하던 성읍으로 확인되는 등 고대로부터 가나안의 강력한 중심 세력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창 14:18). 예루살렘 왕 아도니세덱은 인근에 있는 네 명의 왕들과 군대를 규합하여 동맹군을 결성합니다. 그들은 헤브론 왕 호함, 야르 왕 비람, 라기스 왕 야비아, 에글론 왕 드빌입니다. 네 곳의 도성들은 모두 예루살렘 남서쪽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이것은 가나안 남쪽 지역의 도성들이 본격적으로 남쪽으로 진격해오는 이스라엘 군대에 연합 전선을 형성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다섯 왕의 연합군을 결성한 아도니세덱은 배신을 한 기브온을 먼저 치자고 제안합니다(4). 예루살렘 왕의 전갈을 받고 합류한 주변의 동맹국들은 연합군을 이끌고 기브온을 치러 올라갔습니다(5). 이제 전쟁은 전면전으로 확전되어 가나안 남부 전체가 전쟁터로 바뀝니다.

 

기브온을 도운 이스라엘 군대(6-11)

자신을 정확하게 보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성공했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어느 한 순간에 실패할 수 있습니다. 조금 성공했다는 조건 때문에 교만해질 수 있습니다. 사람이 중요합니다. 주변 환경은 항상 변합니다. 지금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입니까? 아니면 조건 때문입니까?

 

6기브온 사람들이 길갈 진영에 사람을 보내어 여호수아에게 전하되 당신의 종들 돕기를 더디게 하지 마시고 속히 우리에게 올라와 우리를 구하소서 산지에 거주하는 아모리 사람의 왕들이 다 모여 우리를 치나이다 하매 7여호수아가 모든 군사와 용사와 더불어 길갈에서 올라가니라 8그 때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그들을 네 손에 넘겨 주었으니 그들 중에서 한 사람도 너를 당할 자 없으리라 하신지라 9여호수아가 길갈에서 밤새도록 올라가 갑자기 그들에게 이르니 10여호와께서 그들을 이스라엘 앞에서 패하게 하시므로 여호수아가 그들을 기브온에서 크게 살륙하고 벧호론에 올라가는 비탈에서 추격하여 아세가와 막게다까지 이르니라 11그들이 이스라엘 앞에서 도망하여 벧호론의 비탈에서 내려갈 때에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큰 우박 덩이를 아세가에 이르기까지 내리시매 그들이 죽었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칼에 죽은 자보다 우박에 죽은 자가 더 많았더라(6-11)

 

예루살렘 왕을 중심으로 한 연합군의 공격을 받게 된 기브온 사람들은 이러한 일은 예견했겠지만, 너무 빨리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기브온 사람들을 자기 힘으로는 대항할 수 없음을 판단하고 이스라엘에게 구원을 요청했습니다. 여호수아에게 약속을 지켜줄 것을 요청합니다.

동맹군의 공격 소식을 들은 기브온 사람들은 길갈로 사람을 급파해 이스라엘 군대의 지원을 요청합니다(6). 여호수아는 군대를 이끌고 길갈에서 기브온으로 올라갑니다. 이때 다시 한 번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 1장에서처럼 전쟁에 출정하는 여호수아의 용기를 북돋으며 두려워하지 말라고 격려하십니다. 이 권면은 기브온을 위한 전쟁이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가겼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여호와께서는 그들을 여호수아의 수중에 넘겼으며, 누구도 여호수아를 당할 자가 없을 것이라고 승리를 확정하십니다. 여기서 여호수아가 ‘길갈에서 밤새도록 올라가 갑자기 그들에게 도착했다’는 언급은 중요합니다. 그것이 논쟁이 되는 길갈의 위치에 대한 중대한 정보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길갈은 요단강을 건넌 직후 최초로 진을 쳤던 그 길갈입니까? 에발 산 언약식을 마친 후 진영을 구축했던 세겜 인근의 다른 길갈입니까? 성경의 다른 곳에서 제2의 길갈을 시사하는 설명들이 등장합니다. 신명기 11:30은 세겜을 사이에 끼고 있는 그리심 산과 에발산이 ‘길갈 맞은편’, 모레 상수리나무 곁에 있다고 말합니다. 창세기 12:6 또한 이와 동일하게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라고 진술합니다. 이 경우 길갈은 세겜과 가까운 곳으로 이해됩니다. 따라서 이 길갈은 여호수아서에서 요단강 도하 직후 이스라엘이 진영을 구축한 길갈, 곧 여리고에서 가까운 길갈과는 다른 길갈처럼 읽힙니다. 한편, 여호수아서 서사의 흐름을 따르자면, 아이 성 정복 후 에발 산의 언약식을 위해 이동한 이스라엘이 예식을 마치고(8:30-35) 현재 길갈에 있습니다(9장 이하). 만일 이 길갈이 여리고 근처의 길같이 아닌 세겜 근처의 길갈이라면, 기브온에서 그곳까지 거리는 약 40km입니다. 반면에 기브온에서 여리고 근처의 길갈까지는 약 28km의 거리입니다. 통상적으로 고대 기록에서 하룻밤의 여행 거리는 평균 24km 정도로 추정됩니다. 그러나 10:9에서 여호수아의 군대가 기브온을 돕기 위해 ‘길갈에서 밤새도록 올라가서’ 그곳에 도착했다고 언급합니다. 따라서 선발된 이스라엘 군대가 밤을 새워 급히 달려갈 경우 약 40km를 하루만에 주파했을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합니다. 적어도 여호수아서에서는 두 군데의 다른 길갈이 나타나는데, 이스라엘은 현재 두 번째인 북쪽 세겜 근처의 길갈에 위치해 있는 것입니다.

군대를 끌고 급히 달려온 여호수아는 예루살렘 연합군을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10). 이스라엘 군대는 기브온에서 동맹군에게 일격을 가한 뒤 서쪽 벧호론의 높은 능선으로 도망가는 그들을 쫓아 벧호론의 오르막길에서부터 내리막길까지 공격을 계속 감행했을 것입니다(11). 이스라엘은 추격전을 계속하여 멀리 남쪽의 아세가와 막게다까지 따라가면서 적을 궤멸했습니다. 벧호론은 위와 아래의 두 마을로 나뉘어 각각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에 있었다는 것은 오늘날의 지형에서도 확인됩니다. 아세가는 벧호론 남쪽 약 35km 지점인데, 그 근처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막게다의 위치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인상적인 장면들에 주목해야 합니다. 먼저 벧호론의 내리막길에서 추격전이 전개될 때, 여호와께서 직접 전쟁에 개입하십니다. 하늘에서 엄청나게 큰 우박이 쏟아지더니 아세가까지 적군의 퇴로를 따라 우박 재앙이 계속된다. 결국 우박에 맞아 죽은 군사들의 수가 칼에 맞아 죽은 수보다 더 많았습니다(11). 히브리어로 돌덩이로 표현된 이 커다란 우박은 현대에도 이스라엘 지역에서 드문 일이 아닌데, 특히 10월과 5월 사이에 종종 쏟아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2006년도에 기상 이변으로 야구공 크기의 우박이 몇 시간 동안 쏟아져 무려 약 90cm나 쌓였다는 보고도 있습니다. 아마 기브온 전투에서 이 같은 엄청난 우박이 하나님의 섭리로 바로 그 시각에 쏟아졌을 것입니다.

 

태양과 달이 멈춘 기적(12-15)

자연계를 다스리시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어떤 환경이나 전쟁에도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며 승리를 기대하세요. 이 전쟁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브온을 구원할 뿐만 아니라, 가나안 남부 지역을 정복하는 쾌거를 이루었습니다. 하나님과 함께하면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두려움 없이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하세요. 하나님은 항상 우리의 편입니다.

 

12여호와께서 아모리 사람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넘겨 주시던 날에 여호수아가 여호와께 아뢰어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이르되 태양아 너는 기브온 위에 머무르라 달아 너도 아얄론 골짜기에서 그리할지어다 하매 13태양이 머물고 달이 멈추기를 백성이 그 대적에게 원수를 갚기까지 하였느니라 야살의 책에 태양이 중천에 머물러서 거의 종일토록 속히 내려가지 아니하였다고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14여호와께서 사람의 목소리를 들으신 이같은 날은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었나니 이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싸우셨음이니라 15여호수아가 온 이스라엘과 더불어 길갈 진영으로 돌아왔더라(12-15)

 

기브온 전투에서 두 번째 인상적인 장면은 바로 태양이 기브온 위에 머무르고 달이 아얄론 골짜기에서 멈춘 사건입니다. 아세가는 아얄론에서 남쪽으로 10km를 더 내려가므로 이 사건은 아세가까지 추격하기 전에 일어난 기적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우선 기브온의 위치는 예루살렘 북서쪽 약 10km 지점인데, 그곳은 아얄론 골짜기의 동쪽입니다. 기브온과 아얄론 골짜기는 동서로 거의 일직선상에 놓여 있는데, 둘 사이는 약 17km의 거리입니다. 따라서 태양이 기브온 위에 머물러 있다는 것은 해 뜨는 방향인 동쪽에 태양이 떠 있는 오전을 말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동시에 서쪽 아얄론 골짜기 쪽에는 달이 떠 있는 것으로 묘사됩니다. 어떤 학자는 이 묘사를 보름달이 뜰 때 동쪽에 해가 떠있는 상태에서 동시에 보름달이 서쪽에서 육안으로 관찰되는 자연 현상으로 봅니다. 실제로 대낮에 보름달뿐 아니라 심지어 초승달이 떠있는 광경도 흔하게 관찰됩니다.

이 기적에 대해 너무 오랫동안 거짓 이야기가 회자되어 왔습니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미국 나사(NASA)에서 초대형 컴퓨터로 지구의 날짜를 계산하던 중 놀랍게도 정확히 24시간이 사라진 결과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 24시간의 사라진 공백은 히스기야 왕 때 태양이 10도 물러간 것과 태양이 기브온에 머문 사건이 합하여 정확히 채워진다는 주장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이미 아무런 근거가 없는 루머인 것으로 판명되었으며, 미국 나사는 이 어처구니없는 루머에 대해 그런 일이 없었음을 공식적으로 확인해주었습니다. 나아가 가장 보수적인 한국창조과학회에서조차 이 이야기의 출처를 추적한 끝에 이것이 조작이자 허구라고 공식적으로 발표하였습니다.

이 현상은 일단 위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종종 관찰되는 자연 현상인데, 그것이 매우 특수하게 발생한 사건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무난합니다. 해가 떠 있을 때 달이 선명히 관찰되는 조건은 공기가 탁하거나 어떤 특수한 기상 여건으로 인하여 해가 흐릿해질 때라 합니다. 만일 이때가 무더위가 시작되는 즈음의 초여름이었다면(음력 1월, 즉 양력 3월의 요단 도하를 기점으로 가능한 추론이다), 대낮의 전쟁은 매우 힘겨웠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날 특수한 기상 조건으로 태양빛이 많이 흐리고 서쪽에는 보름달이 매우 오래도록 선명히 떠 있는 보기 드문 자연 현상이 발생한 것으로 보입니다. 나아가 이런 조건이라면 오랜 시간 전투가 가능했을 것입니다. 이 기적 이야기는 어쩌면 바로 이러한 특이한 기상 현상에 대한 시적 묘사일 수 있습니다. 참고로 성경 속의 ‘야살의 책’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안위와는 상관이 없지만, 하나님의 이름으로 언약한 기브온 백성들을 도와서 전쟁에 나가는 여호수아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선한 모습을 아름답게 보십니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 아낌없는 헌신할 때,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격려하시고, 상상할 수 없는 방법으로 수고에 대가를 지불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박을 내리시고 해와 달을 멈추시므로 놀라운 축복을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에게 주셨습니다. 당신도 하나님을 위한 헌신된 일꾼이 되길 바랍니다. 그러면 상상할 수 없는 축복을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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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09-02)


거짓말이 드러나는 기브온

여호수아 9장 16-27절


 

많은 목사님을 만나서 함께 사역했습니다. 대부분 아버지와 형님 같은 인간미 넘치는 지도자로서 긍정적인 영향을 준 분들도 있었지만, 일부는 부정적인 교훈을 안겨주기도 했습니다. 이들은 주로 욕심 때문에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을 하거나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여 성도들에게 상처를 주었습니다. 진실은 가슴으로 전달되지만, 거짓말은 결국 탄로 납니다. 부정적인 영향을 주었던 목사님들의 목회를 살펴보면, 제대로 풀리지 않았습니다.

 

  • 기브온 족속에게 속은 것을 알고 이스라엘은 군대를 끌고 그들의 거주지로 달려 왔습니다. 하지만 이미 체결된 조약으로 인해 공격할 수는 없었습니다. 신명기 법에 따르면, 가나안 족속과의 고약은 허용될 수 없었지만, 이미 여호와의 이름으로 조약에 서명을 한 상태입니다. 이스라엘은 기브온 족족을 성전을 섬기는 종신 노예로 삼겠다고 선언하고 목숨을 보전한 기브온 족속은 이를 흔쾌히 받아들입니다.

 

조약에 참여한 기브온 성읍들(16-21)

이스라엘은 성급하게 결정함으로 실수를 범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실수를 통해서도 역사를 지속적으로 이루어가십니다. 혹시라도 삶의 실수가 있을 때, 자책감에 빠지기 보단 하나님의 깊으신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기브온 족속의 거짓말을 알게 됩니다.

 

16그들과 조약을 맺은 후 사흘이 지나서야 그들이 이웃에서 자기들 중에 거주하는 자들이라 함을 들으니라 17이스라엘 자손이 행군하여 셋째 날에 그들의 여러 성읍들에 이르렀으니 그들의 성읍들은 기브온과 그비라와 브에롯과 기럇여아림이라 18그러나 회중 족장들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로 그들에게 맹세했기 때문에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을 치지 못한지라 그러므로 회중이 다 족장들을 원망하니 19모든 족장이 온 회중에게 이르되 우리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로 그들에게 맹세하였은즉 이제 그들을 건드리지 못하리라 20우리가 그들에게 맹세한 맹약으로 말미암아 진노가 우리에게 임할까 하노니 이렇게 행하여 그들을 살리리라 하고 21무리에게 이르되 그들을 살리라 하니 족장들이 그들에게 이른 대로 그들이 온 회중을 위하여 나무를 패며 물을 긷는 자가 되었더라(16-21)

 

언약관계는 사람들 개인의 약속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믿는 하나님과의 약속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브온 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본 것이 아니라 신실하신 하나님을 본 것입니다. 만약 무시하고 진멸할 수 도 있습니다. 하지만 주변에 신실하신 하나님을 보여주지 못합니다.

 

(1) 조약에 참여한 기브온 성읍들(16-17)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브온 족속과 언약한 후에 3일 만에 밝혀집니다. 그들은 멀리 사는 민족들이 아니라, 30km밖에 되지 못한 거리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군대를 이끌고 기브온 지역의 성읍들로 달려왔습니다. 주도(主都)인 기브온을 중심으로 그비라, 브에롯, 기럇여아림이 주변에 포진해 있었습니다. 이곳은 아이와 여리고에서 멀지 않은 지역이기에 이스라엘이 진격해 오고 있다는 소식이 들에게 속히 퍼졌을 것입니다.

기브온 족속이 자신들을 속인 것을 알았지만, 그들을 진멸할 수 없었습니다. 여호수아와 지도자들이 기브온과 평화 조약을 맺고 살려주기로 맹세했기 때문입니다. 본문에서 말하려는 핵심적인 의도는 일단 불합리한 조약일지라도 언약한 것은 실천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2) 조약을 지켜야 하는 이스라엘(18-21)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일로 기브온 족속을 칠 수 없는 사실을 깨달은 후에 여호수아와 족장들에게 원망했습니다. 족장들은 열두 지파의 대표인 지파장들로 추정됩니다. 백성들은 자신들이 헤렘 규칙을 어겼으며, 그 때문에 하나님의 징벌이 임할까 두려워했을 것입니다. 여리고 성과 아이 성 전투에서 이간의 범죄로 헤렘 법을 지키지 않은 대가를 혹독히 치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신명기에서 가나안의 여러 부족들을 진멸하고 완전히 내쫓으라고 지시하셨습니다. 특히 신명기 7:1-4에서는 가나안 족속과 결코 조약을 맺지 말라고 엄히 경고하시면서 그 결과는 통혼과 우상숭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치명적이게도 가나안 족속과 언약을 맺어 하나님께서 경고하신 금령을 어겼습니다. 그렇다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한 서약을 깨트릴 수는 없었습니다. 그 서약에 걸린 여호와의 이름을 결과적으로 더럽혀 진노가 그들에게 임할 것이기 때문입니다(20). 만약 그들을 죽인다면, 하나님의 언약을 어기는 일입니다. 그래서 족장들은 항의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우리가 그들에게 맹세한 맹약을 인하여 진노가 우리에게 임할까 하노니 이렇게 행하여 그들을 살리리라”(20)고 말합니다. 사무엘하 21장을 살펴보면, 나중에 사울 왕이 이 언약을 무시하고 기브온 사람들을 멸하려 할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크게 진노하셨습니다. 3년간 큰 기근을 주셨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삼하 21:1-9). 이 기브온 거민들은 변함없이 계속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돕습니다. 약 400년 후인 다윗의 시대에도 여전히 가나안 살고 있었습니다(삼하 4:3). 더 먼 훗날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성을 재건하려 할 때, 예루살렘 성 재건을 돕기도 했습니다(느 3:7). 그들은 변질되지 않고 꾸준하게 하나님의 제사를 수중 드는 사람들로 봉사를 하게 됩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건 맹세와 서원은 매우 중요하므로 경솔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양측의 조약을 따라 이스라엘은 그들을 살려주어야만 했습니다(21). 대신 조약 내용대로 기브온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종노릇을 할 것입니다. 그들은 나무를 패고 물을 긷는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나무를 패고 물을 긷는다는 것은 종들의 모든 노역으로 이스라엘을 섬길 것임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이어지는 구절들에서 기브온 사람들의 노역이 특히 제단과 관련되었다고 언급되는 것은 그들의 노역이 매우 특별했음을 암시합니다.

이것은 오늘날 성도들에게도 약속에 대한 중요성을 가르칩니다. 성도들은 약속은 자신이 손해가 난다고 할지라도 약속을 지켜야합니다. 특히 불신앙인들과의 약속은 더 철저하게 지켜야합니다. 우리들의 모습을 보면서 신실하신 하나님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실수한 지도자들이지만, 그들에게 그들을 ‘그들을 살리라’는 조치를 내립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받아들이고 그들을 자신들의 종으로 삼았습니다. 그들은 개인의 종이 아니라 성소에서 하나님께서 제사할 때 땔감을 준비하도록 나무를 패며, 제사에 필요한 물을 긷는 자들이 되도록 함으로서 순종합니다(21). 이 기브온 거민들은 거짓말을 했지만, 이스라엘의 언약 관계 속으로 들어오게 됩니다.

 

이스라엘의 종이 된 기브온 족속(22-23)

사단과의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하여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해야 합니다. 요청할 때에는 우리의 연약함을 솔직하게 고백하고 그 가운데서 하나님의 뜻에 자신을 맡기는 자세를 취하여야 합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승리의 축복을 내려 주시는 것입니다.

 

22여호수아가 그들을 불러다가 말하여 이르되 너희가 우리 가운데에 거주하면서 어찌하여 심히 먼 곳에서 왔다고 하여 우리를 속였느냐 23그러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나니 너희가 대를 이어 종이 되어 다 내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나무를 패며 물을 긷는 자가 되리라 하니(22-23)

 

여호수아는 기브온 족속들(아마도 대표)을 불러내어 그들의 속임수를 비난하고 대대로 자신들의 종이 될 것을 선언합니다. 아마 종주국은 속국의 태도에 따라 훨씬 더 무거운 요구를 할 권리가 있었기에, 여호수아는 기브온 사람들에게 저주를 들먹이면서 가혹한 종노릇을 선언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그들에게 성전을 위해 나무를 패고 물 걷는 일을 해야 한다고 공포합니다. 아마도 성전에서 사용되는 땔감과 물을 공급하는 일은 훨씬 더 까다로운 일이였을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여호수아가 그들을 향해 ‘저주’를 선언하는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이것은 분명 함의 아들 가나안을 향한 노아의 저주의 성취합니다(창 9:24-27). 기브온 사람들인 허위 족속은 가나안 자손들 중 하나였습니다(창 10:17; 대상 1:15). 이들은 아마 호리 족속과 동일한 민족일 것입니다(창 14:6; 36:20,29; 신 2:12,22). 가나만의 후손인 히위 족속 일부가 이스라엘의 종이 된다는 것은 이며 가나안에게 내려진 저주에서 확인됩니다.

23절의 ‘너희가 저주를 받나니’는 창세기의 이 저주에 비추어서 해석해야 합니다. 함에 대한 노하의 자주는 오래도록 백인 신학자들에 의해 혹인 저주론의 성경적 근기로 약용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흑심 노예 제도를 정당화하기 위한 신학적 왜곡이며 날조된 성경 해석입니다. 노아에게는 셈, 함, 야벳의 세 아들이 있었는데, 함은 아버지 노아의 드러난 하체를 덮어주지 않은 잘못으로 저주를 받습니다. 함에게는 내 명의 아들인 구스, 붓, 미스라임, 가나안이 있었는데, 앞의 세 명의 거주지가 아프리카이고, 가나안은 아프리카 종족들과 무관합니다. 그린데 함의 저주는 가나안에게 내려집니다(창 9:24-27). 따라서 할의 저주는 인의 저주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으며, 게다가 이 저주는 여호수아 시대 이후로 열왕기 시대에 점차적으로 성취되어 유효기간이 끝났습니다(수 15:63: 17:13 왕상 9:21, 대하 8:8). 사실 성경은 우리 모두가 예수님의 구속이 아니고는 가망 없는 저주 받은 존재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롬 3:9).

 

기브온 거민의 거짓으로 조약을 맺었지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이스라엘 백성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목숨을 건질 수가 있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기브온 거민들의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보시고 그들에게 구원을 베푸셨던 것입니다. 우리들은 어떠합니까? 항상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경배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두려워 할 줄 모르고 사람의 힘이나 지혜, 그리고 권세만을 두려워하면 필경 실패하고 넘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참 힘의 근원되시며 권세의 주관자 되시는 하나님만을 두려워하며 그 분을 섬겨야겠습니다.

 

기브온 족속의 변명(24-27)

많은 사람들이 ‘현대는 깨끗해서는 살기 곤란하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속임수요 거짓말입니다. 시대가 어두울수록 빛이 더욱 필요합니다. 비록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그리고 당장 손에 들어오는 것이 없다고 할지라도 거짓으로부터는 벗어나야 합니다. 기브온 족속은 여호수아에게 거짓된 행동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에 변명합니다.

 

24그들이 여호수아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사 이 땅을 다 당신들에게 주고 이 땅의 모든 주민을 당신들 앞에서 멸하라 하신 것이 당신의 종들에게 분명히 들리므로 당신들로 말미암아 우리의 목숨을 잃을까 심히 두려워하여 이같이 하였나이다 25보소서 이제 우리가 당신의 손에 있으니 당신의 의향에 좋고 옳은 대로 우리에게 행하소서 한지라 26여호수아가 곧 그대로 그들에게 행하여 그들을 이스라엘 자손의 손에서 건져서 죽이지 못하게 하니라 27그 날에 여호수아가 그들을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회중을 위하며 여호와의 제단을 위하여 나무를 패며 물을 긷는 자들로 삼았더니 오늘까지 이르니라 (24-27)

 

기브온 사람들은 여호수아에게 속임수를 변명하면서 이 속임수가 불가피했음을 적극적으로 설명합니다. 24절은 그들이 신명기에서 모세가 선포한 가나안 정복의 실재성과 헤렘 전쟁 수칙을 정확히 알고 있었음을 말해줍니다. 결국 그들의 해명은 여호와께서 명령한 법에 따라 가나안의 모든 부족들은 진멸을 당할 것이 분명하므로, 생존을 위한 최후 수단으로 속임수를 써야 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운명을 이스라엘의 처분에 맡기겠다면서 자세를 더욱 낮춥니다(25).

여호수아는 조약에 따라 목숨을 보장해주면서도 다시 한 번 공신 종노릇의 운명을 선언합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을 섬기되 구체적으로 여호와의 재단을 위해 나무를 패고 물을 긷는 일을 감당할 것입니다. 성전을 위한 종노릇은 일반 직무보다 훨씬 더 까다롭고 힘든 직무일 수 있습니다. 예컨대, 미쉬나(Mishna)와 희년서(jubilee)는 제단용 땔감으로 잘 타지 않는 올리브 나무와 포도나무를 제외한 대부분의 나무를 허용하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무화과나무, 잣나무, 소나무, 삼나무, 월계수 등을 선호합니다.

병들고 흉한 나무는 금했으며, 금이 가거나 색깔이 어두운 나무, 벌레가 먹었거나 싹은 부위가 있는 나무는 금했습니다. 향이 거의 남지 않은 오래된 목재도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성전의 물도 가장 깨끗한 물을 썼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수아가 부여한 기브온 족속의 성전을 위한 종살이는 기브온 족속과 그들의 생존을 은근히 우호적으로 보게 합니다.

이 기브온 사람들의 이야기는 부주의하게 헤렘 수칙을 위반한(출 34:11-13; 신 7:1-5; 20:16-17) 이스라엘의 잘못을 고발하고 비난하기 위한 목적을 지닌다고 전통적으로 해석되어 왔습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족속을 ‘다 쫓아내지 못한’ 실패에 대한 기록이라는 주장입니다. 그러나 이 기사는 기브온의 이스라엘로의 편입을 긍정적으로 보게 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이 기사의 초점은 이스라엘의 잘못보다는 기브온이 이스라엘에 편입되는 과정에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기브온 족속의 말에서 수차례 여호와의 명성과 위대한 업적에 대한 신앙이 고백되고 있으며, 그분에게의 전적인 투항과 굴복의 자세가 나타납니다.

기브온 사람들은 9장 서두의 다른 모든 가나안 족속들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모두가 이스라엘에 맞서는 공동 전선에 합류했지만, 기브온 사람들만 전혀 다른 선택을 한다. 그들의 결단은 라합의 결단과 비견됩니다. 라합의 개인적인 신앙의 결단의 민족적인 확장판이라 할 수 있습니다. 라합이 여리고 군사들을 속여서 목숨을 부지했다면, 기브온 족속은 이스라엘을 속여 목숨을 부지합니다. 이런 관점에서는 이스라엘이 여호와께 묻지 않은 부주의한 실수마저 그들의 언약 공동체로의 편입을 위한 섭리로 볼 수 있게 합니다. 실제로 본문은 여호와께 묻지 않은 것에 대해 아무런 책임 추궁이나 처벌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나아가 기브온 족속의 결단과 속임수마저 불사한 과감한 행동은 라합과 같은 개인만이 아니라 민족적 단위의 구원 가능성을 열어 놓습니다. 이 이야기는 ‘진멸이 아니라 진멸로부터 구원받는 한 길을 제시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들은 사람들을 겉으로 들어난 모습으로 사람을 대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실수할 수 있습니다. 외모는 거짓으로 꾸밀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만일 너희가 외모로 사람을 취하면 죄를 짓는 것이니 율법이 너희를 범죄자로 정하리라’(약 2:9)고 경고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삼상 16:7)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겉모습으로 들어난 사람을 대함으로 실수해서 기브온 사람들과 언약을 했지만, 그 언약을 신실하게 지킴으로 기브온 사람들이 신실하게 자손대대로 이스라엘과 하나님을 섬기는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기브온 거민이 살아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을 믿고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그를 섬겨야 함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며 날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살아야 함을 깨닫게 됩니다. 다른 의미는 비록 하나님의 백성들은 손해를 본 다고 할지라도 모든 일에 약속을 신실하게 지키시는 하나님의 성품을 드러내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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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09-01)


기브온 사람들과 맺은 계약

여호수아 9장 1-15절


 

등산가인 엄홍길 씨는 ‘등산에서 성공한 직후 방심하면 꼭 사고’라고 했던 말이 기억납니다. 1988년 7월에 그는 최고봉인 에베레스트 산을 등정한 후 자만심이 들었습니다. 그 후로 1989년부터 93년까지 히말라야 8000m급 봉우리에 6번 도전했지만 모두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실패 후에 다시 14번을 도전해서 히말라야 8000m 이상의 14좌 완등을 했습니다. 작은 성공은 실패 없이도 가능하지만, 큰 성공을 위해서는 뒤편에 쓰라린 실패가 있습니다.

 

  • 본격적인 가나안 전쟁이 시작됩니다. 여리고와 아이가 점령 되였다는 소식이 가나안 전역에 펴졌을 것입니다. 모든 가나안 부족들이 연합군을 형성하여 이스라엘에 맞서는 상황에서 기브온 족속은 이스라엘에 투항하는 결단을 내립니다. 그러나 기브온 족속은 헤렘 전쟁 수칙을 알고 있었기에 위장술과 거짓말로 속여 조약을 체결하는 데 성공합니다.

 

가나안 남부 동맹 연합군(1-2)

그리스도인의 삶은 끝임 없는 영적인 전쟁입니다. 당신을 넘어뜨리기 위해 마귀는 연합전선을 펴서 공격합니다. 우리 힘으로 대항하기 힘들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능히 승리할 수 있습니다. 끊임없이 넘어뜨리는 적들을 대적해 나가야 합니다. 가나안 정복에는 이스라엘에게는 토착민의 반항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1이 일 후에 요단 서쪽 산지와 평지와 레바논 앞 대해 연안에 있는 헷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의 모든 왕들이 이 일을 듣고 2모여서 일심으로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에 맞서서 싸우려 하더라(1-2)

 

이스라엘에 의해 여리고와 아이 성이 함락되었다는 소식은 가나안 살고 있었던 족속들에게는 매우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들에게 생존의 문제가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가나안 중부 지역을 강타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제 방향을 돌려서 가나안 남부로 기수를 돌리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가나안 남부에 살고 있던 다섯 족속들은 이스라엘을 대응하려고 연합 전선을 펴서 군사적인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대표 족속으로 등장하지만 실제적으로는 훨씬 더 많은 가나안 종족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에 투항하는 기브온 족속(3-15)

신앙이 타락하는 것은 눈으로 보기에는 아무렇지도 않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매우 심각한 문제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들이 타락한 생활에 대해 도덕적으로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들의 신앙 타락은 윤리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보다 도덕적으로 자신들을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이곳에 영적인 함정이 있습니다.

 

3기브온 주민들이 여호수아가 여리고와 아이에 행한 일을 듣고 4꾀를 내어 사신의 모양을 꾸미되 해어진 전대와 해어지고 찢어져서 기운 가죽 포도주 부대를 나귀에 싣고 5그 발에는 낡아서 기운 신을 신고 낡은 옷을 입고 다 마르고 곰팡이가 난 떡을 준비하고 6그들이 길갈 진영으로 가서 여호수아에게 이르러 그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이르되 우리는 먼 나라에서 왔나이다 이제 우리와 조약을 맺읍시다 하니 7이스라엘 사람들이 히위 사람에게 이르되 너희가 우리 가운데에 거주하는 듯하니 우리가 어떻게 너희와 조약을 맺을 수 있으랴 하나 8그들이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우리는 당신의 종들이니이다 하매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묻되 너희는 누구며 어디서 왔느냐 하니 9그들이 여호수아에게 대답하되 종들은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심히 먼 나라에서 왔사오니 이는 우리가 그의 소문과 그가 애굽에서 행하신 모든 일을 들으며 10또 그가 요단 동쪽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들 곧 헤스본 왕 시혼과 아스다롯에 있는 바산 왕 옥에게 행하신 모든 일을 들었음이니이다 11그러므로 우리 장로들과 우리 나라의 모든 주민이 우리에게 말하여 이르되 너희는 여행할 양식을 손에 가지고 가서 그들을 만나서 그들에게 이르기를 우리는 당신들의 종들이니 이제 우리와 조약을 맺읍시다 하라 하였나이다 12우리의 이 떡은 우리가 당신들에게로 오려고 떠나던 날에 우리들의 집에서 아직도 뜨거운 것을 양식으로 가지고 왔으나 보소서 이제 말랐고 곰팡이가 났으며 13또 우리가 포도주를 담은 이 가죽 부대도 새 것이었으나 찢어지게 되었으며 우리의 이 옷과 신도 여행이 매우 길었으므로 낡아졌나이다 한지라 14무리가 그들의 양식을 취하고는 어떻게 할지를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고 15여호수아가 곧 그들과 화친하여 그들을 살리리라는 조약을 맺고 회중 족장들이 그들에게 맹세하였더라(3-15)

 

하나님을 의지해야 할 사람들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것처럼 무서운 병이 없습니다. 외상이나 골절을 치료가 쉽지만, 암(癌)은 눈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심하게 고통을 느낄 때까지 잘 알 수 없습니다. 심각하게 병세가 깊을 때만이 병이 들어납니다. 질병이 무서운 것은 눈으로 보이지 않는 것이 무섭습니다.

 

(1) 기브온 족속의 위장 거짓말(3-11)

 

‘기브온 주민들이 여호수아가 여리고와 아이에 행한 일을 듣고’(3)라고 기록합니다. 기브온 족속은 다른 가나안 백성들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한 하나님의 행하신 일에 대해 소문을 들었습니다. 정면 대결로는 안 되겠다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가나안 남부 동맹군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스라엘과 화친하는 방법을 꾀하였습니다.

기브온은 아이에서 남서쪽으로 약 11km 지점에 있었습니다. 남쪽 예루살렘을 기준으로 북서쪽으로 약 10km에 위치합니다. 이곳은 가나안 정복기에 히위족의 거점 지역이었는데, 7절에서 확인되듯이 기브온 주민들은 히위 족속입니다. 히위 족속도 반-이스라엘 연합군에 합세한 상태였습니다. 기브온 지역은 정복 후 베냐민 지파에게 할당 되였고, 기브온 성읍은 레위 도성의 하나로 지정되었습니다(여호수아 18:25; 21:17). 또한 기브온에 있는 산당에서 솔로몬이 일천번제를 드릴 만큼 대형 산당이 자리한 종교적 중심지이기도 합니다. 이 산당은 여호와께 합법적 제사를 드릴 수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기브온 족속들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대적해 보았자 아무런 이익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죽지 않고 살아남은 방법이 무엇인지 나름대로 대책을 강구 했습니다. 그 결과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믿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자세히 알고 있지 않았지만, 기생 라합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그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어렴풋하게 알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먼 거리에 있는 사람들과는 화평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신명기 20:10-13). 그리하여 자신들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여호수아를 속이는 방법 밖에 없었습니다.

먼저, 그들은 화친을 위한 사절단을 보내었습니다. 가나안 족속이 아닌, 마치 먼 나라에 사는 사람인 것처럼 꾸몄습니다. 낡은 옷으로 꾸미고, 헤어진 전대와 가죽 포도주 부대를 나귀에 실고, 음식도 곰팡이가 난 빵을 준비했습니다(4-5). 당시에 신발은 샌들과 같았으며, 질긴 가죽으로 제작되어 여행자들은 꼭 신고 다녔습니다. 또한 곰팡이가 핀 떡을 가져왔는데, 이 떡은 식량이었으며(12), 14절에서 이스라엘이 그 떡을 받았다는 것으로 보아, 조공을 위해 준비한 떡이기도 한 것입니다.

기브온 사절단은 먼 곳에서 온 것처럼 행장을 꾸미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있는 길갈에 있는 이스라엘을 찾아갔습니다. 그들은 여호수아와 조약을 맺자고 간청합니다. 이스라엘은 그들을 알 수 없기 때문에 거절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여기서 머물지 않고, 여호수아에게 나가서 ‘우리는 당신의 종들이니이다’(8)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여호수아에게 대답하길, ‘9그들이 여호수아에게 대답하되 종들은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심히 먼 나라에서 왔사오니 이는 우리가 그의 소문과 그가 애굽에서 행하신 모든 일을 들으며 10또 그가 요단 동쪽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들 곧 헤스본 왕 시혼과 아스다롯에 있는 바산 왕 옥에게 행하신 모든 일을 들었음이니이다’(9-10) 이러한 고백은 기생 라합이 정탐꾼에게 같은 고백이었습니다(2:9-11).

이스라엘은 처음에는 그들을 의심하여 조약체결을 거부했습니다(7). 그러나 기브온 사절단은 여호수아에게 이스라엘의 종주국으로 모시고 속국이 되겠다고 자처합니다. 이스라엘이 주인이 되고 자신들은 종이 되겠다고 종주권 조약을 부탁한 것입니다. 그들은 ‘먼 나라에서 왔다’는 것을 강조합니다(9). ‘먼 나라’는 신명기 20:15의 ‘멀리 떠난 성읍’과 관련된 용어인데, 이것은 신명기의 전쟁 수칙에서 중요한 표현입니다.

이스라엘 군대는 대상에 따라 두 가지 전쟁 수칙을 따라야 합니다. 첫째는 비가나안 족속과의 전쟁이고 둘째는 가나안 족속과의 전쟁입니다. 가나안 족속에 대해서는 평화 협정의 과정 없이 즉시 헤렘 전쟁이 수행됩니다. 비가나안 족속은 대체로 가나안 땅 변방에 있는 ‘먼 곳의’ 나라들이다(신명기 20:15). 그들에게는 즉각 선전포고를 통한 전쟁을 시작하지 않고 먼저 평화 협정을 제안해야 합니다. 평화 제안을 받아들이면 속으로 삼아 종주국으로서 조공을 받았습니다. 평화 제한을 거부하면 전쟁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그들을 종복하고 모든 남자를 진멸하되 다른 사람들, 곧 여자와 유아들은 살려줘야 합니다. 성인 남자들만 전멸의 대상이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 군사들은 가축을 비롯하여 그 성의 모든 물건을 전리품으로 거두어 올 수 있습니다. 비가나안 족속과의 전쟁은 성인 남자들만 모두 죽이기 때문에 엄밀하게 헤렘 전쟁은 아닙니다. 아래 24절에서 기브온 사람들이 하는 말을 볼 때, 기브온 사절단은 이 전쟁 수칙을 정확히 알고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그들은 신명기의 전행 수적에 따라 비가나안 족속과는 형상을 통해 종주 골계를 형성하여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인근 가나안 족속 중 하나였기 때문에 속임수를 써야만 했습니다. 그들은 여호와와 이스라엘 군대의 명성을 듣고 미리 항복하러 왔다고 설득합니다. 여호와가 애굽에서 행한 일과 요단 동편의 강력한 두 아모리 왕들을 굴복시킨 일을 들었다고 털어놓습니다. 기브온 족속은 매우 영민했습니다. 그들은 두 아모리 족속의 왕인 헤스본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을 격파한 일을 꺼내면서도 여리고와 아이 성이 점령된 사실에 대해서는 의도적으로 언급하지 않습니다. 그 소식을 이미 들었다고 하면, 자신들이 가까운 곳에서 왔다는 사실이 발각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절단은 장로들과 주민들이 의견을 모아 종주권 조약을 맺기로 결정하여 자신들이 대표로 이스라엘을 만나려 왔다고 말합니다.

 

(2) 기브온 족속에게 속은 이스라엘(12-15)

 

기브온 사절단은 장거리 여행의 증거물들을 내놓습니다. 먼저 떡을 내놓으면서 출발할 때는 양식으로 챙겼던 떡이 이제 다 말라서 딱딱해졌고 곰팡이가 피었다고 설명합니다. 포도주를 담은 가족 부대도 다 찢어질 지경이며, 옷과 신발도 다 헤지고 낡았음을 보여줍니다. 시기적으로 요단 동편의 두 왕을 격파한 지 몇 달이 흘렸기 때문에, 장시간 여행을 해서 옷과 신발이 낡고 음식도 모두 상하게 되었다고 그들의 말이 먹혀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에게서 양식을 취했습니다. 이것은 떡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받았을 수 있지만, 조공의 표시로 받은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지 여호와께 묻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자기도취에 빠져 있었습니다. 너무도 감정에 휩쓸려 분별하지 못합니다. 설마 적들이 친구로 위장하고 찾아오리라고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방법이 다를 뿐이지 적들은 화친을 가장한 위장전술로 여호수아를 대적하고 나선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가나안 족속들과 화친을 맺어 살려주어서는 안 된다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알았으나, 기브온 거민들의 거짓된 행동에 속아 화친을 맺었습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여호수아가 그 일에 대하여 어떻게 처리해야할 것인지를 ‘여호와 하나님께 묻지 아니하였기 때문에’ 저질러진 실수였습니다. 이는 명백히 이스라엘의 커다란 잘못이자 신중치 못한 처사로 읽힙니다. 여호수아는 아이 성 전투 시에도 정탐꾼의 말만 듣고서 싸움을 시작하였다가 실패한 쓰라린 경험이 있었습니다. 큰 일을 앞에 두고서 하나님께 물어 보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추진하는 것은 이처럼 큰 잘못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런 이것이 결과적으로 어쩌면 하나님의 뜻일 수 있었다는 사실이 이어지는 후대의 기브온 족속 이야기에서 암시됩니다. 여호수아는 그들과 평화 협정을 체결하여 그들의 목숨을 살려주고 주종 관계의 조약을 맺었습니다. 회중의 모든 족장들이 기브온 사절단과의 조약을 인중하며 맹세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공 후에 아이 성을 공격할 때처럼 방심했습니다. 방심은 긴장을 풀어놓습니다. 결국, 전쟁에서 긴장이 살아져버리면 결국에는 실패를 불러옵니다. 당신은 스스로 성공에 도취되어 있지는 않습니까! 성도들은 무슨 일하기 전에 먼저 기도로 시작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일을 통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이 무엇이며, 또한 하나님께 영광이 될 수 있는 일인지 물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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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08-03)


가나안 땅에 선포된 축복과 저주

여호수아 8장 30-35절


 

자전거나 자동차를 처음 배울 때, 가장 어려운 것이 안전거리 시야를 확보하는 것입니다. 가르쳐준 사람은 ‘시야를 멀리보라!’고 하지만, 운전자는 코앞도 확보하기 힘듭니다. 능숙해지면서 시야가 확보됩니다. 나중에는 지나가는 사람들까지 볼 수 있는 여유가 생깁니다. 삶의 목적도 멀리 보면 본만큼 안전시야를 확보한 것입니다. 근시안적 목적은 넘어지기 쉽습니다. 하지만 10년 후, 20년 후를 바라보고 계획하면 안정적으로 설계합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금생을 넘어 내세까지 바라보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 이 단락은 그리심 산과 에발 산 사이에 위한 세겜에서 거행된 언약식이 분명합니다. 세겜 예식과 여호수아 24장 언약식의 관계는 모호합니다. 이 언약식은 아이 성이 정복한 뒤 새로운 정면과 더불어 흐름이 단절된 느낌을 줍니다. 더구나 세겜은 아이에서 상당히 먼 거리의 성읍입니다. 그러나 이 언약식에는 아이 성 사건과 이후 사건들을 서로 연결시키는 고리들이 있습니다.

 

에발산에서 쌓은 단(30-31)

전쟁 중에 멈추고 다른 일은 한다는 것은 그만큼 위험부담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의 생존권이 걸린 중대한 정복전쟁들을 중단하고, 먼저 단을 쌓고 하나님께 순종의 제사를 드렸습니다. 이렇게 예식을 행한 것은 바로 그 자신을 하나님께 산 제물로 드리고 헌신하겠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30그 때에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에발 산에 한 제단을 쌓았으니 31이는 여호와의 종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한 것과 모세의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쇠 연장으로 다듬지 아니한 새 돌로 만든 제단이라 무리가 여호와께 번제물과 화목제물을 그 위에 드렸으며(30-31)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최초의 전쟁인 아이 성을 정복한 후에 정복 전쟁을 마치고, 여호수아는 매우 중요한 예식을 진행합니다. 그것은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한’ 대로, 즉 신명기 11:26-32과 27장에서 모세가 하나님의 지시를 받아 유언으로 남긴 대로, 그리심 산과 에발 산에서 축복과 저주를 선포하며 진행되는 언약식을 거행합니다. 빠른 시일 내 다른 성들을 정복해야 하지만, 가나안 정복 전쟁을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한 것입니다. 순종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경험했기에 전쟁을 중단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새롭게 하기 위해 북상하여 에발 산으로 올라갑니다(30).

여호수아는 ‘모세의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구체적으로 출애굽기 20:24-26의 제단 축조법을 따라 에발 산에 다듬지 않은 돌로 제단을 쌓았습니다. 그리심 산과 에발 산은 오늘날 ‘나블루스(Nablus)’라는 도시 양쪽에 쌍둥이처럼 펼쳐진 산들이며 나블루스는 성경에 나오는 고대의 세겜입니다. 그리심 산은 남쪽, 에발 산은 북쪽에 위치합니다. 에발 산은 아이 성에서 북쪽으로 23km나 상당히 떨어진 사마리아 지역에 위치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언제 가나안 족속들의 기습 공격을 받을 수 있는 위험 부담을 안고 올라갑니다. 하지만 여호수아는 아이 성의 경험으로 전쟁의 승패가 인간의 지혜나 계략에 있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 달려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 가장 중요한 것은 예배의 회복임을 알고 그 일을 최우선적으로 감당하기 위한 것입니다. 아마 아이 성과 벧엘 성을 정복하지 않았으면 에발 산까지 갈 수 없었을 것입니다. 아이 성을 정복하자 그 동안 이행하지 못했던 모세의 명령을 이행하기 위해 백성들과 함께 에발 산에 이른 것입니다.

에발 산에 도착한 여호수아는 규례를 따라 철 연장으로 다듬지 아니한 자연적인 돌로 단을 쌓고 그 위에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승리자이심을 고백하는 것으로 시작과 끝을 하나님 안에서 갖는 성숙한 여호수아의 모습입니다. 이 후로는 결코 아이 성 실패처럼 불신앙의 행동은 하지 않겠다는 선언도 담겨 있었습니다. 여호수아가 에발 산에서 쌓은 단은 스스로 생각하여 쌓은 것이 아니라 모세는 명령에 의한 것입니다. 모세는 신명기 27장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가거든 에발 산에 제사를 드리고 다음 에발 산과 그리심 산에서 각기 저주와 축복을 선포하도록 지시한바 있습니다(신 27:1-26).

지금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인 여리고 성, 아이 성 정복 그리고 라합과 아간의 등장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사건에서 제시하는 중요한 메시지는 ‘순종’입니다. 지금까지 역사를 통해 순종을 배웠고 앞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서 살아갈 때도 필요한 것은 ‘순종’입니다. 이 사실을 각인시키기 위해 모세의 명령대로 에발 산에 가서, 율법을 하나도 빠짐없이 낭독했으며, 이 율법을 잘 지키면 축복이요, 그렇지 않으면 저주가 임합니다. 이러한 사실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멘”으로 응답했던 것입니다.

 

돌에 기록한 율법(32)

살아갈 때 열정적이고 뜨거운 믿음도 좋지만,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격이 빠져 버린다면 별 의미가 없습니다. 매일 같이 드려지는 신앙고백을 점검해 보며 마음에 새긴 믿음으로 주님께 나가나야 합니다. 주님이 주시는 말씀의 은혜를 되새기며 말씀이 중심의 삶이 되어야 합니다.

 

32여호수아가 거기서 모세가 기록한 율법을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그 돌에 기록하매(32)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장로들과 백성을 통해 에발 산에 큰 돌을 세웁니다. 그리고 그 돌에다 석회를 바르고 그 위에 율법을 기록케 합니다. 이 가나안 땅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땅으로 하나님의 율법이 시행되어야 할 땅입니다. 돌 위에 기록한 것은 율법을 준행하면 살고, 불순종하면 죽는다는 이야기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것을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나님께 맹세해야 했던 것입니다.

 

성도들의 삶의 중심에는 항상 하나님의 말씀이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사실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의 말씀이 삶에 중심이 되어야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자신의 마음을 견주어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한 것이며 또 돌비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심비에 한 것이라”(고후 3:3)고 말씀했습니다.

 

세겜 언약: 그리심 산과 에발 산 사이(33-35)

성도들은 하나님 말씀을 들으면서 하나님으로부터 공급된 말씀의 능력을 체험하며 살아갑니다.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사람은 생명의 길을 걷게 되지만, 불순종하는 사람은 영원한 멸망의 길을 걷게 됩니다. 말씀을 따라 살아감으로 세속에 빠지지 않고 거룩함을 유지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33온 이스라엘과 그 장로들과 관리들과 재판장들과 본토인뿐 아니라 이방인까지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레위 사람 제사장들 앞에서 궤의 좌우에 서되 절반은 그리심 산 앞에, 절반은 에발 산 앞에 섰으니 이는 전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축복하라고 명령한 대로 함이라 34그 후에 여호수아가 율법책에 기록된 모든 것 대로 축복과 저주하는 율법의 모든 말씀을 낭독하였으니 35모세가 명령한 것은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온 회중과 여자들과 아이와 그들 중에 동행하는 거류민들 앞에서 낭독하지 아니한 말이 하나도 없었더라(33-35)

 

에발 산과 그리심 산은 에발 산은 저주가 선포된 곳이며, 그리심 산은 축복이 선포된 산입니다. 그리심 산은 숲이 우거진 곳이지만, 에발 산은 돌만 있는 산으로, 갈보리를 상징한다고 합니다. 서로 마주보고 있어 약 3km 정도 떨어져 있습니다. 지역적으로 가나안 땅 가운데 위치해 있어서 남쪽에서 북쪽으로 이동하거나, 북쪽에서 남쪽으로 이동하는 길 중간에 있어서 꼭 걸쳐가야 하는 산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항상 보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세기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1) 돌에 기록된 율법과 언약식 자리 배치(32-33)

 

여호수아는 ‘돌들’(복수)에 모세의 율법을 기록합니다. 이 돌들은 분명 제단의 돌들과 다릅니다. 이 돌들에 새겨진 율법의 내용과 범위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신명기의 율법 부분일 수 있습니다. 자세한 것은 24장을 보시기 바랍니다. 언약 예식에서 법궤가 중심에 놓여 있습니다. 두 산 사이의 세겜 평지에 법궤를 놓고 궤의 좌우로 열두 지파를 절반씩 나누어 배치합니다. 법궤가 놓였다는 것은 거기에 성막이 조립되어 세워졌다는 뜻입니다. 현재의 에발산 언약식(세겜 언약식)은 여러 모로 신명기를 전제로 하고 있기에 많은 내용들을 생략한 채 언급하지 않습니다. 지파들의 자리 역시 절반씩 나누었다고 말할 뿐 구체적인 정보는 알려주지 않습니다. 이것은 신명기 27:12-14에 이미 상술되어 있습니다: 그리심 산-시므온, 레위, 유다, 잇사갈, 요셉, 베냐민; 에발 산-르우벤, 갓, 아셀, 스불론, 단, 납달리. 신명기 27:14은 ‘레위 사람은 큰 소리로 이스라엘 모든 사람에게 말하라’고 지시하는데, 여기서 레위 사람은 제사장들을 의미합니다. 이때 본토인(이스라엘)뿐 아니라 이방인까지 각 지파에 합류하여 자리를 배정받았습니다. 이 이방인은 35절의 정확한 번역대로 ‘거류민’(게르)을 의미하며, 이스라엘 언약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상당한 권리와 법적 의무를 공유합니다. 그들은 가나안 민족들 중에서 흡수된 사람들이 아니라 출애굽 당시에 이스라엘의 대열에 합류했던 애굽 인이나 애굽에서 체류하던 여러 민족들이었던 것으로 이해됩니다(출 12:28; 레 24:10-11; 민 32:12). 흥미롭게도 신명기 27장을 보면, 먼저 12-13절에서 축복과 저주의 선언이 지시되지만, 정작 14절 이하에서는 축복의 선언은 생략되고, 열두 가지 연쇄적인 저주가 선언되면서 백성에게 ‘아멘’을 요구하고 있습니다(신 27:14 이하). 반면에 여호수아서는 축복을 선포했다는 것만 보고한 뒤 34절은 ‘축복과 저주하는 율법’ 둘 다를 낭독했다고 말합니다. 이 둘은 상호모순이 아닌 강조점의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저주의 선언에는 이미 순종에 따른 축복이 보장되어 있고, 축복의 선언에는 불순종에 따른 저주가 전제되어 있습니다.

 

(2) 축복과 저주가 담긴 율법 낭독(34-35)

 

여호수아는 율법책에 기록된 모든 축복과 저주를 낭독합니다. 신명기 27:14은 ‘레위 사람’, 곧 제사장들이 이것을 낭독해야 한다고 명령하므로 실제적으로는 제사장들이 했을 것입니다. 두 산의 배치는 실제로 음향학적으로 사람의 육성이 자연적으로 멀리 전달될 수 있는 구조라 합니다. 낭독된 ‘율법책에 기록된 모든 것대로’의 축복과 저주의 내용은 신명기 27-28장에 반포된 말씀의 순종과 불순종에 따른 축복과 저주의 선포이거나(특히 저주 목록은 30여 가지의 구체적인 저주들을 쏟아낸다), 신명기 전문일 수도 있습니다.

앞서 말한 대로 이 에발 산의 세겜 언약은 24장의 세겜 언약과 명백히 동일한 언약으로 생각됩니다. 왜이 언약식이 여기에서 진행되고 여호수아가 죽기 전에 다시 반복되는지 이유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크게 두 가지 이유로 이 언약식 장면을 끼어든 본문으로 간주합니다. 첫째, 길갈에서 세겜까지는 약 50km로 상당히 떨어져 있습니다. 따라서 아이 성 정복 후 가나안과의 본격적인 전쟁이 시작된 시점에서 과연 온 이스라엘이 그리심 산과 에발 산이 있는 세겜까지 이동했는지 의문입니다. 둘째, 이 언약식은 언뜻 앞뒤 문맥과 어울리지 않으며 갑자기 끼어든 이질적 요소처럼 보입니다(70인경은 9:1-2 뒤에 배치했다). 어떤 사람들은 실제로 세겜 언약은 정복이 거의 다 마무리된 시점에 체결되었는데(24장), 신학적 기능을 위해 탈시간적 기법으로 시간을 거슬러 여기에 배치되었다고 주장합니다. 쿰란 사본은 이 단락을 요단 강도하 직후의 상황인 5:2앞으로 옮겨 놓았습니다.

그러나 이 언약식은 현재의 문맥에서 중요한 기능을 하고 있습니다. 첫째, 당장 아간과 더불어 하나님의 언약이 위반되었기에 이스라엘 백성은 언약 관계의 회복을 위한 조치가 필요했습니다. 둘째, 가나안의 첫 번째 도성들을 점령한 후, 언약식을 진행하면서 가나안 땅에 대한 소유권을 확증하였으며, 축복과 저주의 맹세를 통해 그 땅에서의 언약적 삶의 실천을 다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돌들을 세운 이유는 가나안 땅의 소유권을 표시하기 위함이었을 것입니다. 당시 메소포타미아 지역에는 왕이 신하에게 땅을 하사할 때 돌비석을 세우는 ‘땅 하사 의식’(a divine land grant ceremony)이 거행되었습니다. 현재 이스라엘은 왕이신 하나님께 땅을 하사받았기에 그들은 돌들로 기념비를 세웠습니다. 여호수아의 사망 직전인 24장의 세겜 언약은 이 언약의 재확증일 뿐입니다.


이스라엘에게 에발 산과 그리심 산에서 진행된 말씀의 잔치에서 “아멘”으로 응답 했습니다. 가나안 땅을 살아가면서 불순종은 죽음이고, 순종은 생명입니다. 가나안 땅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나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도 같은 상황입니다. 여러 가지 상황 속에는 불신앙의 유혹을 많이 받습니다. 이 유혹을 이기고 살아가는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으로 생각하고 성경을 말하며 상경으로 살아가려고 몸부림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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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08-02)


성공적으로 아이 성을 점령

여호수아 8장 18-29절


조립해야할 전자제품을 조립할 때, 어려움을 겪을 수 있습니다. 이럴 땐 사용설명서를 자세히 참고하거나 서비스 센터에 문의하는 것이 좋습니다. 인생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인생의 사용설명서인 성경을 주셨습니다. 성경을 통해 고민과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결국, 성경은 인생의 길잡이가 됩니다.

 

  • 본문은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아이 성을 다시 공략하라고 명령하십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능력을 일으키는 매체로 지팡이를 사용했다면, 여호수아는 이 전쟁에서 단창을 사용합니다. 모세가 지팡이를 든 것처럼 여호수아는 단창을 높이 들고 전쟁을 수행함으로써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합니다. 이스라엘은 복병의 기습으로 순식간에 아이 성을 점령하고 쫓아온 아이 군대를 반격하여 격파합니다.

 

아이 성의 승리(18-25)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순종, 전략적 계획의 중요성, 그리고 협력과 단결의 힘을 강조합니다. 이러한 교훈들은 우리의 신앙 생활에 큰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와 인도하심을 따르는 삶을 살아가도록 격려합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계획을 신뢰하고 그분의 뜻에 순종하며, 지혜와 인내로 나아가는 신앙의 자세를 갖추어야 합니다. 이는 우리의 신앙을 더욱 굳건하게 하고,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경험하게 할 것입니다.

 

18○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네 손에 잡은 단창을 들어 아이를 가리키라 내가 이 성읍을 네 손에 넘겨 주리라 여호수아가 그의 손에 잡은 단창을 들어 그 성읍을 가리키니 19그의 손을 드는 순간에 복병이 그들의 자리에서 급히 일어나 성읍으로 달려 들어가서 점령하고 곧 성읍에 불을 놓았더라 20아이 사람이 뒤를 돌아본즉 그 성읍에 연기가 하늘에 닿은 것이 보이니 이 길로도 저 길로도 도망할 수 없이 되었고 광야로 도망하던 이스라엘 백성은 그 추격하던 자에게로 돌아섰더라 21여호수아와 온 이스라엘이 그 복병이 성읍을 점령함과 성읍에 연기가 오름을 보고 다시 돌이켜 아이 사람들을 쳐죽이고 22복병도 성읍에서 나와 그들을 치매 그들이 이스라엘 중간에 든지라 어떤 사람들은 이쪽에서 어떤 사람들은 저쪽에서 쳐죽여서 한 사람도 남거나 도망하지 못하게 하였고 23아이 왕을 사로잡아 여호수아 앞으로 끌어 왔더라 24○이스라엘이 자기들을 광야로 추격하던 모든 아이 주민을 들에서 죽이되 그들을 다 칼날에 엎드러지게 하여 진멸하기를 마치고 온 이스라엘이 아이로 돌아와서 칼날로 죽이매 25그 날에 엎드러진 아이 사람들은 남녀가 모두 만 이천 명이라(18-25)

 

본문에서는 이스라엘 자손이 가나안 땅을 나누는 과정에서 에브라임과 므낫세 지파의 경계를 설정하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이 구절은 각 지파가 자신의 땅을 차지하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복을 받는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교훈으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신뢰하며 각자의 소명을 다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과, 공동체의 조화로운 분배가 중요하다는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결국,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는 것이 강조됩니다.

 

(1) 복병의 기습 공격(18-20)

 

아이와 벧엘 연합군은 아마 20-30km거리의 요단강 유역 광야(아라바)까지 여호수아와 그의 군대를 추격했습니다. 이때 여호와께서 직접 작전을 지시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손에 쥐고 있는 단창을 높이 들어 아이 성을 가리키라고 하십니다. 아이 성을 하나님께서 넘겨주신다는 신호였습니다(18).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지팡이를 들고 뻗으라 하신 것처럼, 여기서 여호수아에게 단창을 들고 뻗으라고 명하십니다. 이 모습은 모세가 손에 든 지팡이를 뻗어 갖가지 이적을 일으키고(출 9-11장) 홍해를 가르는 이적을 일으키는가 하면(출 14장) 아말렉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것을 연상케 합니다(출 17장). 특히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모세가 지팡이를 들고 두 손을 뻗고 있을 때 승리한 것처럼, 여호수아는 전투가 완료될 때까지 단창을 잡아 든 손을 거두지 않습니다(26). 여호수아가 단창을 아이를 향해 뻗자 복병들이 일제히 일어나 아이 성을 기습합니다. 이때 복병들은 어떻게 여호수아의 신호를 알아차렸습니까?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주력 부대는 이미 아이와 벧엘 동맹군을 유인하기 위해 멀리 광야 길로 위장 도주를 했기 때문입니다. 여호수아가 아이 성을 향해 단창을 뻗은 것은 전면 공격에 대한 신호이고, 아마 주력 부대와 떨어진 복병들에게는 다른 방식으로 그 명령이 전달되어 일제히 일어나 기습을 감행했을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손을 드는 순간 복병들이 일제히 일어났다는 표현은 여호수아의 명령과 지시 하에 전투가 진행되었음을 드러내기 위한 문학적 기법입니다. 복병들은 군대가 모두 빠져나간 아이 성을 쉽게 점령하고 불을 놓았습니다. 아이의 군대는 성에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목격하고는 함정에 빠진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양쪽 이스라엘 군대 사이에 낀 아이와 벧엘 동맹군은 사면초가에 몰렸습니다. 진퇴양난에 빠진 아이 군대를 향해 여호수아가 반격을 개시합니다(20).

 

(2) 여호수아의 반격과 아이성 정복(21-25)

 

복병이 아이 성을 점령하여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보고 사기가 오른 여호수아와 온 이스라엘 군대는 전열이 흐트러진 아이 군대를 공격했습니다. 빈 성을 점령했던 복병 부대도 나와 아이 군대를 반대쪽에서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양쪽으로부터 협공을 받은 아이 군대는 전혀 힘을 쓰지 못하고 지리멸렬하여 도주했습니다. 이스라엘 군대는 효과적으로 그들을 봉쇄하여 전멸시켰으며, 왕을 포로로 잡아 여호수아 앞으로 끌고 왔습니다(22-23). 여호수아는 아이로 달려가 복병 부대와 합류해서 아이의 모든 것을 불사르고 사람들을 진멸함으로써 아이에 대한 헤렘 전쟁을 완수합니다. 그날 전쟁에서 죽은 아이 주민의 숫자가 만 이천 명입니다. 이 인원은 벧엘에서 합세한 군대를 포함한 숫자일 수 있습니다.

 

아이 전쟁의 마무리(26-29)

우리는 하나님께 철저히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심판과 정의를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기억하고 전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신뢰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이 모든 것들이 우리의 신앙 생활에 중요한 지침이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삶은 우리의 믿음을 굳건하게 합니다.

 

26아이 주민들을 진멸하여 바치기까지 여호수아가 단창을 잡아 든 손을 거두지 아니하였고 27오직 그 성읍의 가축과 노략한 것은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명령하신 대로 이스라엘이 탈취하였더라 28이에 여호수아가 아이를 불살라 그것으로 영원한 무더기를 만들었더니 오늘까지 황폐하였으며 29그가 또 아이 왕을 저녁 때까지 나무에 달았다가 해 질 때에 명령하여 그의 시체를 나무에서 내려 그 성문 어귀에 던지고 그 위에 돌로 큰 무더기를 쌓았더니 그것이 오늘까지 있더라(26-29)

 

여호수아는 아이 성 전투가 완료될 때까지 단창을 잡은 손을 거두지 않았습니다. 단창은 여호와의 지시가 계속되고 있다는 징표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리고 정복 때와는 달리 아이 성의 모든 전리품들, 곧 가축과 물건들을 노략해서 이스라엘이 취하도록 허용하십니다. 여기서 우리는 헤렘 전쟁은 경우에 따라 전리품이 허용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전리품은 승자인 왕의 소유로 귀속되었으므로 전리품의 하사는 전적으로 왕의 선물이었습니다. 여호수아는 아이를 불사른다(사라프)이 불사름은 어떤 것을 완전히 태워서 없애는 것을 의미합니다. 제사법에서 제단에 올릴 수 없는 부적절한 것이나 제의적으로 더럽혀진 물건들을 모두 밖으로 반출해 불살랐는데 이때 이 동사를 사용합니다(출 12:10; 레 4:12; 6:30; 7:17; 13:52 등). 헤렘으로 불사른 성읍은 황폐화되어 주민의 주거는 허용될 수 있으나, 더 이상 요새화되어선 안 됩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 거주민이 살지 못하고 방치되며, 결국 세월이 흐르면서 커다란 돌무더기로 남게 됩니다(28). 모든 성읍이 다 불태워진 것이 아니며, 특히 가나안 북쪽 정벌에서는 단지 하솔 성만 불에 태워졌습니다(수 11:13-14).

여호수아는 처형된 아이 왕을 저녁까지 나무에 매달아 놓은 뒤 해 질 때 시체를 치우도록 명령했습니다. 그의 지시를 따라 아이 왕의 송장은 성문 어귀에 내던져지고 거기에 돌무더기를 쌓아 매장했습니다. 구약 이스라엘의 장례에서 송장은 당일에 매장하는 것이 관례였음을 시사합니다(신 22:22-23; 수 10:26-27;Talmud - Bavli Bava Kama 82b). 이것은 송장이 강력한 부정결의 오염원으로서 접촉을 통해 사람들에게 널리 부정결을 퍼트리므로 즉시 처리되어야 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체를 묻은 성문 어귀(페타흐)는 성문 입구를 의미하는데, 70인경은 그 히브리어를 ‘파하트’로 읽으면서 ‘구덩이’로 옮깁니다. 그러나 이에 대한 히브리어 사본들의 근거는 전혀 없습니다. 그럼에도 이것을 구덩이로 보는 것은 상당히 그럴듯한 해석인데, 아마 성문 근처의 구덩이에 시체를 던져 돌을 쌓았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기 때문입니다. 이 돌무더기(갈)는 성읍 전체가 거대한 황무지 언덕이 된 ‘텔’과 다른 작은 돌무더기를 가리킵니다. 아이 왕의 무덤이 된 이 돌무더기는 후대의 교훈을 위한 기념물이 되었습니다. 또한 이와 같은 전승 기념물들은 가나안 옛 질서의 종말을 가리킵니다.

아이 성 주민 만 이천 명이 진멸되었는데, ‘남녀가 모두’ 포함된 숫자였습니다. 헤렘 전쟁에서는 여성과 유아까지 죽이거나 내쫓아야 하므로 유아 역시 포함되었습니다. 헤렘 전쟁은 현대인의 정서상 매우 불편하지만, 신학적 관점에서는 심판 전쟁이며, 인간이 죄로 인해 징벌을 받는 일입니다. 창세기 15:16과 신명기 9:5에서도 확정되고 있는 중요한 신학적 주제입니다. 아브라함 때에는 아모리 족속(가나안 족속)의 죄가 아직 가득 차지 않았기에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까지 약 400년(창 15:13)을 기다려야 했습니다(창 15:16). 그 후 가나안 족속의 악이 가득 차게 되어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땅에서 쓸어내셨으며, 이것은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셨던 맹세를 성취하기 위함이었습니다(신 9:5). 진멸의 심판을 당한 이유는 가중한 죄악 때문입니다. 인간의 죄가 임계량을 넘겼을 때, 하나님은 결국 심판을 실행하십니다. 이런 점에서 노아 홍수도, 소돔과 고모라의 불심판도 또한 장차 있을 인류 최후의 심판도 하나님의 정당한 헤렘 심판이기에 심판자 하나님을 잔인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땅에서의 준엄한 집단 심판과 별개로 무고한 개인과 선악을 분별하지 못하는 유아들의 최종적 운명은 사후에 별개로 하나님이 판정하실 것입니다.

앞서 강조한 대로, 여기서 우리는 ‘진멸’의 방식이 반드시 대량 학살만을 의미했던 것이 아니라, 피신과 도주, ‘내쫓음’이 포함되어 있음을 주목해야 합니다(반복적으로 ‘그들을 쫓아내었다’는 표현이 등장한다). 아마도 완강한 저항이 있을 경우 진멸이 실행되나 많은 경우 실제적인 전쟁은 주민들과 민족들의 ‘추방’ 형식으로 진멸이 실행되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 ‘추방’은 실제로 고대 전쟁에서 흔히 실천된 승전국들의 조치이기도 합니다.

진멸의 반대는 상생 혹은 공생입니다. 상생은 쌍방의 약조를 통해 우호적 관계가 정립됨으로서 시작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족속과 결코 상생이 불가능하다고 말씀하시면서 그들과 어떠한 언약도 맺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십니다. 그들을 불쌍히 여겨 그들과의 상생의 길을 택함으로써 그들의 사악한 문화가 이스라엘에 침투하게 해선 안 됩니다. 그러나 구약은 아간의 길과는 정반대로 라합의 사례와 같이 개인적인 신앙의 투항을 통해 언약 백성에 합류하고, 심지어 기브온 족속과 같이 민족적 단위에서도 집단 개종을 통해 언약 백성에 합류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습니다. 이것은 쌍방의 상생과 교류를 위한 타협과는 전혀 다릅니다.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악이 제거되어지니깐 하나님께서 즉시 동행하시고 아이 성을 정복케 하시는 승리를 주셨습니다. 보너스로 벧엘 성까지 승리할 수 있도록 해 주셨습니다. 당신의 삶 속에 실패의 인생을 맛보고 살아갑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사용설명서를 찾으시길 바랍니다. 그 방법대로 살아가갈 바랍니다. 과거에 매어있는 것들을 십자가로 벗어버리면,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당신은 새롭게 된 피조물입니다. 하나님의 권세를 가지고 있는 강력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항상 삶 속에 승리하며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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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08-01)


실패를 딛고 일어서는 아이 성 공격

여호수아 8장 1-17절


 

실패는 성공을 위한 배움의 기회입니다. 실패를 통해 우리는 더 강해지고 지혜로워집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신뢰하며 다시 도전하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실패는 새로운 시작을 위한 디딤돌이 될 수 있습니다. 회복과 재도전의 힘을 믿고 나아갑시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긍정적인 태도로 임합시다. 성공은 실패를 딛고 일어설 때 이루어집니다.

 

  • 아간 사건이 마무리되자 여호와께서는 다시 여호수아에게 아이 성 공격을 지시하셨습니다. 그리고 처음 요단강을 건널 때와 마찬가지로 용기를 북돋으며 직접 군대를 이끌고 올라갈 것을 명령하십니다. 앞서 패배한 전투에서는 아마 이스라엘이 자만하여 여호수아가 직접 전투를 이끌지 않았던 것으로 추론됩니다. 아이 성 전체에서 법궤는 전혀 언급되지 않는데 전쟁에 따라 법궤의 출정 여부는 달랐습니다.

 

아이 성 재공격을 명령(1-2)

우리 삶에서도 실패를 경험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신뢰하고 다시 도전하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실패를 통해 배우게 하십니다. 또한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신뢰하고 나아갑시다. 실패는 새로운 시작의 기회입니다.

 

1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놀라지 말라 군사를 다 거느리고 일어나 아이로 올라가라 보라 내가 아이 왕과 그의 백성과 그의 성읍과 그의 땅을 다 네 손에 넘겨 주었으니 2너는 여리고와 그 왕에게 행한 것 같이 아이와 그 왕에게 행하되 오직 거기서 탈취할 물건과 가축은 스스로 가지라 너는 아이 성 뒤에 복병을 둘지니라 하시니(1-2)

 

하나님께서는 다시 아이 성 공략을 지시하십니다. 아이 왕과 그의 백성, 아이 성과 아이의 관할지를 이미 여호수아에게 넘겨주었다고 하십니다. 완료형 동사 ‘나탄’(주었다)은 아이 성 정복이 확정되었음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아이를 위해서는 정상적인 전투 수칙과 전술을 알려주십니다.

먼저 하나님께서는 아이를 정복한 뒤 그 성과 아이 왕은 여리고의 사례와 동일하게 처분하지만, 물건과 가축은 전리품으로 취하여 나누라고 지시하십니다. 여기서 ‘헤렘(진멸)’이란 단어가 사용되지 않지만, ‘여리고와 그 왕에게 행한 것 같이’에서 실제적으로 진멸을 명하고 있습니다. 아이 성 전쟁은 여리고 성보다 낮은 수위의 헤렘 전쟁입니다. 이어서 하나님께서는 군사적 전술로 매복을 지시하시되 매복 방법에 대해서는 여호수아에게 맡기십니다. 뒤에 여호수아가 지시하는 상세한 매복 방법과 전략도 어쩌면 여리고 성 전투 수칙처럼 하나님께서 이미 그에게 알려주셨는지도 모릅니다.

 

여호수아의 작전 하달(3-9)

우리의 신앙 생활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공동체 내에서 협력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서로의 역할을 존중하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합니다. 지도자는 지혜롭게 계획하고 준비하며 공동체를 이끌어야 합니다. 협력과 존중이 신앙 공동체의 성장을 도모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지혜와 준비가 필요합니다.

 

3○이에 여호수아가 일어나서 군사와 함께 아이로 올라가려 하여 용사 삼만 명을 뽑아 밤에 보내며 4그들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는 성읍 뒤로 가서 성읍을 향하여 매복하되 그 성읍에서 너무 멀리 하지 말고 다 스스로 준비하라 5나와 나를 따르는 모든 백성은 다 성읍으로 가까이 가리니 그들이 처음과 같이 우리에게로 쳐 올라올 것이라 그리 할 때에 우리가 그들 앞에서 도망하면 6그들이 나와서 우리를 추격하며 이르기를 그들이 처음과 같이 우리 앞에서 도망한다 하고 우리의 유인을 받아 그 성읍에서 멀리 떠날 것이라 우리가 그들 앞에서 도망하거든 7너희는 매복한 곳에서 일어나 그 성읍을 점령하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성읍을 너희 손에 주시리라 8너희가 그 성읍을 취하거든 그것을 불살라 여호와의 말씀대로 행하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였느니라 하고 9그들을 보내매 그들이 매복할 곳으로 가서 아이 서쪽 벧엘과 아이 사이에 매복하였고 여호수아는 그 밤에 백성 가운데에서 잤더라(3-9)

 

여호수아는 아이를 공격하기 위해 삼만 명의 군사를 선발합니다(3). 히브리어 숫자로는 ‘30 천의 군사’인데 30,000을 의미합니다. 앞서 4:13과 7:3에서 살펴보았지만, 어떤 이들은 병력 삼만 명에 대해 ‘천’의 히브리어 ‘엘레프’를 부대 단위로 간주하여 30개의 부대로 볼 것을 제안하지만, 여기서는 설득력이 없습니다. 앞서 정탐꾼들이 제안한 병력 이삼천 명이 그보다 훨씬 축소된 두세 개의 부대에 불과하다고 보기에는 인구 만 이천 명에 이르는 아이 성의 규모에(8:25) 비추어 볼 때 너무 적습니다. 아이가 벧엘과 연합작전을 구사하고 있기에 더욱 그러합니다. 여호수아는 삼만 명의 군사를 뽑았는데, 이들에게 성읍 뒤쪽에 매복할 것을 명령합니다(4). 그러나 12절에서는 매복병이 오천 명으로 언급되므로 언뜻 서로 상충되어 보입니다. 추정컨대, 아마 삼만 명 모두가 매복을 한 것이 아니라, 그중에 오천 명이 매복병으로 선발된 것으로 보입니다. 여호수아의 작전이 매우 구체적으로 하달됩니다. 두 가지 전술이 구사되는데, 매복과 유인입니다. 여호수아는 매복병을 성 뒤쪽에 배치한 뒤 본대를 이끌고 성문 앞에 가서 아이 성을 공격하는 시늉을 낼 것입니다. 그리고 거짓으로 패주하여 성으로부터 멀리 유인합니다. 아이 군대는 첫 번째 전투처럼 이스라엘이 겁을 먹고 도망간 것으로 오해하고 맹렬히 추격할 것입니다. 그때 빈 성을 매복 부대가 공격하여 순식간에 점령한 뒤 불을 질러 (야차트) 본 부대에 승전보를 보냅니다(8). 여호수아는 매복병들을 보냈고, 그들은 서쪽 벧엘과 아이 사이에 매복하였습니다. 여호수아는 그날 밤 진영에서 군사들과 함께 밤을 지냈습니다(9).

 

아이성 전투의 개시(10-17)

우리의 삶에서도 문제 해결과 목표 달성을 위해 지혜롭고 신중한 계획이 필요합니다. 단순한 힘의 사용보다는 전략적이고 지혜로운 접근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고 공동체가 협력할 때 큰 성과를 거둘 수 있습니다. 협력과 순종은 성공의 열쇠입니다. 지혜롭고 전략적인 태도가 필수적입니다.

 

10○여호수아가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백성을 점호하고 이스라엘 장로들과 더불어 백성에 앞서 아이로 올라가매 11그와 함께 한 군사가 다 올라가서 그 성읍 앞에 가까이 이르러 아이 북쪽에 진 치니 그와 아이 사이에는 한 골짜기가 있더라 12그가 약 오천 명을 택하여 성읍 서쪽 벧엘과 아이 사이에 매복시키니 13이와 같이 성읍 북쪽에는 온 군대가 있고 성읍 서쪽에는 복병이 있었더라 여호수아가 그 밤에 골짜기 가운데로 들어가니 14아이 왕이 이를 보고 그 성읍 백성과 함께 일찍이 일어나 급히 나가 아라바 앞에 이르러 정한 때에 이스라엘과 싸우려 하나 성읍 뒤에 복병이 있는 줄은 알지 못하였더라 15여호수아와 온 이스라엘이 그들 앞에서 거짓으로 패한 척하여 광야 길로 도망하매 16그 성읍에 있는 모든 백성이 그들을 추격하려고 모여 여호수아를 추격하며 유인함을 받아 아이 성읍을 멀리 떠나니 17아이와 벧엘에 이스라엘을 따라가지 아니한 자가 하나도 없으며 성문을 열어 놓고 이스라엘을 추격하였더라(10-17)

 

다음 날 아침 여호수아는 군대를 점호한 뒤 장로들과 함께 아이로 출정하여 아이 북쪽에 군대를 포진시켰습니다(10). 이스라엘 군대와 아이 사이에 골짜기가 있었는데(11), 이 골짜기는 여호수아가 내려간 13절의 골짜기(에메크)와 히브리어가 다릅니다. 11절의 ‘하가이’는 단순히 아이의 히브리어 ‘하아이’의 말놀이를 위한 의도적인 단어 선택일 뿐 그 둘은 동일한 골짜기인 것으로 보입니다. 참고로 히브리어에서 골짜기는 우리나라 지형의 계곡 개념이 아닌 큰 산이나 산맥 사이의 넓은 평지를 뜻합니다. 여호수아는 본대에서 오천 명의 매복병을 선발하여 아이 서쪽에 매복시켰습니다. 그곳은 벧엘과 아이 사이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벧엘이 만일 현대의 베이틴(Beitin)이고 아이가 에트 텔(et-Tel)이라면, 둘 사이는 약 2-3km 정도의 거리에 불과합니다. 매복을 완료한 뒤, 여호수아는 그날 밤 골짜기로 내려갔는데, 일부 사본들의 기록대로 그는 본진을 이끌고 골짜기(낮은 평지)로 내려가 거기서 밤을 지낸 것입니다. 여기서 3절과 차이가 나는 듯 보이는 매복병의 숫자와 더불어 또 한 가지 문제는 3-9절과 10-17절이 연속적으로 이어진 군사 작전으로 해석되는지, 아니면 3-9절의 군사 작전이 10-17절에서 구체적으로 다시 묘사되고 있는지에 대한 논쟁입니다. 사람들은 전체를 하나로 읽으면서 두 가지 가능한 해석을 제안합니다. 첫 번째 견해에 의하면, 여호수아는 군사들을 먼저 성읍 주변으로 보내 매복시켰습니다(4,9a). 여호수아 자신은 진영에서 하룻밤을 잤습니다(9b). 다음 날 아침 일어나(10) 장로들과 주력 부대를 이끌고 아이 성 북쪽으로 가서 진을 쳤습니다(11). 12-13절에 복병들을 매복시키고 여호수아가 골짜기로 들어갔다는 것은 이미 전날 밤에 여호수아가 매복병을 보낸 일을 다시 묘사하는 것이므로, 그 동사들은 과거 완료로 해석되어야 합니다(‘여호수아가 오천 명을 택하였었고…매복시켰었다’). 전날 매복병을 숨긴 뒤 여호수아와 본진 군사들은 이튿날 골짜기에서 숙영했습니다.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 작전대로 행동을 개시했습니다. 이 경우 매복은 이틀 동안 계속되었기에 과연 효과적인 전술인지 의문을 품게 합니다. 또한 복병이 삼만 명(3)인지, 오천명(12)인지는 여전히 문제로 남습니다. 다른 학자들은 두 번째 견해를 제안합니다. 그들은 10-17절을 3-9절의 군사 작전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로 해석합니다. 즉, 일단 3-9절은 여호수아가 군사들에게 작전 지시를 내린 뒤 복병을 배치했다는 설명과 더불어 전체 줄거리를 요약합니다. 이어서 10-17절은 동일한 사건을 더 자세히 반복해서 묘사하고 있습니다. 먼저 여호수아와 전 군대가 함께 아침에 출정해서 아이 성 근처로 갔습니다. 그날 밤 여호수아는 매복병을 배치하고 자신은 골짜기에 위치한 본진으로 내려와 잤습니다. 이스라엘 군대의 출현을 알게 된 아이 왕이 다음날 아침 급히 일어나 이스라엘을 치러 나왔습니다. 이 해석의 장점은 복병들이 하룻밤만 매복한 뒤 다음 날 기습 작전을 펼친 것으로 무리 없이 이해된다는 점입니다. 물론 여전히 복병 삼만 명과 오천 명 사이의 숫자 차이가 문제로 남습니다.

첫 번째 견해가 더 설득력이 있어 보입니다. 다만 삼만 명이 오천 명의 필사상의 오류라는 근거는 어떠한 사본학적 지지를 받지 못하므로 두 숫자를 모두 받아들이는 것이 타당해 보입니다. 본문은 9절에서 여호수아가 잠을 잤으며, 10절은 그가 아침에 일찍 일어났다고 말하고 있기에 서사의 흐름은 9절과 10절 사이가 단절되지 않은 채 매우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따라서 두 번째 견해는 배제되어야 합니다. 여기서는 첫 번째 견해를 받아들이면서 숫자에 대해서는 앞서 설명한 대로 삼만 명 중에 오천 명이 매복병으로 선발되었다고 해석할 것을 제안합니다. 이 해석에 따르면 여호수아는 삼만 명의 군대를 소집했으며, 그중에 오천명을 매복병으로 뽑아 전날 밤 미리 아이 성 근처에 매복시킵니다. 결국 아이 성 근처로 출정한 여호수아와 본진은 그날 전투가 발생하지 않아 골짜기에서 하룻밤을 숙영했습니다. 오천 명의 매복병들은 이틀 밤을 숨어 있는 셈입니다. 이것은 전쟁에서 쌍방 간의 전략 싸움 와중에 충분히 발생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그리고 아이 성 사람들이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상황이므로 매복이 쉽게 발각될 리 없었을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출정한 그날 아이 성 앞에 자신의 군사들을 배치하여 아이 왕이 군사를 이끌고 나오기를 기대했는데, 아이 왕은 그날은 일단 신중히 탐색전을 한 것으로 추론됩니다. 따라서 여호수아는 그 밤에 다시 골짜기의 본진으로 내려가 밤을 보냈습니다. 이튿날 아침 위협을 느낀 아이 왕의 긴급한 공격이 개시되었습니다(14, ‘급히 나가’). 이후 전쟁의 양상은 여호수아의 전략대로 진행되어 이스라엘 복병들이 아이 성을 기습하여 점령하였습니다. 아이 왕은 이스라엘 군대를 요단강 유역의 아라바 근처까지 추격하여 거기서 일전을 벌이려 합니다. 이 추격전에서 갑자기 벧엘이 아이의 동맹군으로 등장합니다. 아이는 이미 인근 성들과 연대하여 이스라엘에 대응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신뢰하고 실패 후에도 다시 도전하는 용기를 가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고 협력할 때 큰 성과를 거둘 수 있습니다. 실패를 통해 배우고, 하나님의 은혜로 회복될 수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지혜와 계획, 인내와 신뢰가 성공의 열쇠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며 승리를 향해 나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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