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08-03)
가나안 땅에 선포된 축복과 저주
여호수아 8장 30-35절
자전거나 자동차를 처음 배울 때, 가장 어려운 것이 안전거리 시야를 확보하는 것입니다. 가르쳐준 사람은 ‘시야를 멀리보라!’고 하지만, 운전자는 코앞도 확보하기 힘듭니다. 능숙해지면서 시야가 확보됩니다. 나중에는 지나가는 사람들까지 볼 수 있는 여유가 생깁니다. 삶의 목적도 멀리 보면 본만큼 안전시야를 확보한 것입니다. 근시안적 목적은 넘어지기 쉽습니다. 하지만 10년 후, 20년 후를 바라보고 계획하면 안정적으로 설계합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금생을 넘어 내세까지 바라보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 이 단락은 그리심 산과 에발 산 사이에 위한 세겜에서 거행된 언약식이 분명합니다. 세겜 예식과 여호수아 24장 언약식의 관계는 모호합니다. 이 언약식은 아이 성이 정복한 뒤 새로운 정면과 더불어 흐름이 단절된 느낌을 줍니다. 더구나 세겜은 아이에서 상당히 먼 거리의 성읍입니다. 그러나 이 언약식에는 아이 성 사건과 이후 사건들을 서로 연결시키는 고리들이 있습니다.
에발산에서 쌓은 단(30-31)
전쟁 중에 멈추고 다른 일은 한다는 것은 그만큼 위험부담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의 생존권이 걸린 중대한 정복전쟁들을 중단하고, 먼저 단을 쌓고 하나님께 순종의 제사를 드렸습니다. 이렇게 예식을 행한 것은 바로 그 자신을 하나님께 산 제물로 드리고 헌신하겠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30그 때에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에발 산에 한 제단을 쌓았으니 31이는 여호와의 종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한 것과 모세의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쇠 연장으로 다듬지 아니한 새 돌로 만든 제단이라 무리가 여호와께 번제물과 화목제물을 그 위에 드렸으며(30-31)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최초의 전쟁인 아이 성을 정복한 후에 정복 전쟁을 마치고, 여호수아는 매우 중요한 예식을 진행합니다. 그것은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한’ 대로, 즉 신명기 11:26-32과 27장에서 모세가 하나님의 지시를 받아 유언으로 남긴 대로, 그리심 산과 에발 산에서 축복과 저주를 선포하며 진행되는 언약식을 거행합니다. 빠른 시일 내 다른 성들을 정복해야 하지만, 가나안 정복 전쟁을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한 것입니다. 순종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경험했기에 전쟁을 중단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새롭게 하기 위해 북상하여 에발 산으로 올라갑니다(30).
여호수아는 ‘모세의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구체적으로 출애굽기 20:24-26의 제단 축조법을 따라 에발 산에 다듬지 않은 돌로 제단을 쌓았습니다. 그리심 산과 에발 산은 오늘날 ‘나블루스(Nablus)’라는 도시 양쪽에 쌍둥이처럼 펼쳐진 산들이며 나블루스는 성경에 나오는 고대의 세겜입니다. 그리심 산은 남쪽, 에발 산은 북쪽에 위치합니다. 에발 산은 아이 성에서 북쪽으로 23km나 상당히 떨어진 사마리아 지역에 위치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언제 가나안 족속들의 기습 공격을 받을 수 있는 위험 부담을 안고 올라갑니다. 하지만 여호수아는 아이 성의 경험으로 전쟁의 승패가 인간의 지혜나 계략에 있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 달려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 가장 중요한 것은 예배의 회복임을 알고 그 일을 최우선적으로 감당하기 위한 것입니다. 아마 아이 성과 벧엘 성을 정복하지 않았으면 에발 산까지 갈 수 없었을 것입니다. 아이 성을 정복하자 그 동안 이행하지 못했던 모세의 명령을 이행하기 위해 백성들과 함께 에발 산에 이른 것입니다.
에발 산에 도착한 여호수아는 규례를 따라 철 연장으로 다듬지 아니한 자연적인 돌로 단을 쌓고 그 위에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승리자이심을 고백하는 것으로 시작과 끝을 하나님 안에서 갖는 성숙한 여호수아의 모습입니다. 이 후로는 결코 아이 성 실패처럼 불신앙의 행동은 하지 않겠다는 선언도 담겨 있었습니다. 여호수아가 에발 산에서 쌓은 단은 스스로 생각하여 쌓은 것이 아니라 모세는 명령에 의한 것입니다. 모세는 신명기 27장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가거든 에발 산에 제사를 드리고 다음 에발 산과 그리심 산에서 각기 저주와 축복을 선포하도록 지시한바 있습니다(신 27:1-26).
지금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인 여리고 성, 아이 성 정복 그리고 라합과 아간의 등장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사건에서 제시하는 중요한 메시지는 ‘순종’입니다. 지금까지 역사를 통해 순종을 배웠고 앞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서 살아갈 때도 필요한 것은 ‘순종’입니다. 이 사실을 각인시키기 위해 모세의 명령대로 에발 산에 가서, 율법을 하나도 빠짐없이 낭독했으며, 이 율법을 잘 지키면 축복이요, 그렇지 않으면 저주가 임합니다. 이러한 사실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멘”으로 응답했던 것입니다.
돌에 기록한 율법(32)
살아갈 때 열정적이고 뜨거운 믿음도 좋지만,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격이 빠져 버린다면 별 의미가 없습니다. 매일 같이 드려지는 신앙고백을 점검해 보며 마음에 새긴 믿음으로 주님께 나가나야 합니다. 주님이 주시는 말씀의 은혜를 되새기며 말씀이 중심의 삶이 되어야 합니다.
32여호수아가 거기서 모세가 기록한 율법을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그 돌에 기록하매(32)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장로들과 백성을 통해 에발 산에 큰 돌을 세웁니다. 그리고 그 돌에다 석회를 바르고 그 위에 율법을 기록케 합니다. 이 가나안 땅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땅으로 하나님의 율법이 시행되어야 할 땅입니다. 돌 위에 기록한 것은 율법을 준행하면 살고, 불순종하면 죽는다는 이야기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것을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나님께 맹세해야 했던 것입니다.
성도들의 삶의 중심에는 항상 하나님의 말씀이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사실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의 말씀이 삶에 중심이 되어야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자신의 마음을 견주어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한 것이며 또 돌비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심비에 한 것이라”(고후 3:3)고 말씀했습니다.
세겜 언약: 그리심 산과 에발 산 사이(33-35)
성도들은 하나님 말씀을 들으면서 하나님으로부터 공급된 말씀의 능력을 체험하며 살아갑니다.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사람은 생명의 길을 걷게 되지만, 불순종하는 사람은 영원한 멸망의 길을 걷게 됩니다. 말씀을 따라 살아감으로 세속에 빠지지 않고 거룩함을 유지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33온 이스라엘과 그 장로들과 관리들과 재판장들과 본토인뿐 아니라 이방인까지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레위 사람 제사장들 앞에서 궤의 좌우에 서되 절반은 그리심 산 앞에, 절반은 에발 산 앞에 섰으니 이는 전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축복하라고 명령한 대로 함이라 34그 후에 여호수아가 율법책에 기록된 모든 것 대로 축복과 저주하는 율법의 모든 말씀을 낭독하였으니 35모세가 명령한 것은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온 회중과 여자들과 아이와 그들 중에 동행하는 거류민들 앞에서 낭독하지 아니한 말이 하나도 없었더라(33-35)
에발 산과 그리심 산은 에발 산은 저주가 선포된 곳이며, 그리심 산은 축복이 선포된 산입니다. 그리심 산은 숲이 우거진 곳이지만, 에발 산은 돌만 있는 산으로, 갈보리를 상징한다고 합니다. 서로 마주보고 있어 약 3km 정도 떨어져 있습니다. 지역적으로 가나안 땅 가운데 위치해 있어서 남쪽에서 북쪽으로 이동하거나, 북쪽에서 남쪽으로 이동하는 길 중간에 있어서 꼭 걸쳐가야 하는 산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항상 보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세기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1) 돌에 기록된 율법과 언약식 자리 배치(32-33)
여호수아는 ‘돌들’(복수)에 모세의 율법을 기록합니다. 이 돌들은 분명 제단의 돌들과 다릅니다. 이 돌들에 새겨진 율법의 내용과 범위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신명기의 율법 부분일 수 있습니다. 자세한 것은 24장을 보시기 바랍니다. 언약 예식에서 법궤가 중심에 놓여 있습니다. 두 산 사이의 세겜 평지에 법궤를 놓고 궤의 좌우로 열두 지파를 절반씩 나누어 배치합니다. 법궤가 놓였다는 것은 거기에 성막이 조립되어 세워졌다는 뜻입니다. 현재의 에발산 언약식(세겜 언약식)은 여러 모로 신명기를 전제로 하고 있기에 많은 내용들을 생략한 채 언급하지 않습니다. 지파들의 자리 역시 절반씩 나누었다고 말할 뿐 구체적인 정보는 알려주지 않습니다. 이것은 신명기 27:12-14에 이미 상술되어 있습니다: 그리심 산-시므온, 레위, 유다, 잇사갈, 요셉, 베냐민; 에발 산-르우벤, 갓, 아셀, 스불론, 단, 납달리. 신명기 27:14은 ‘레위 사람은 큰 소리로 이스라엘 모든 사람에게 말하라’고 지시하는데, 여기서 레위 사람은 제사장들을 의미합니다. 이때 본토인(이스라엘)뿐 아니라 이방인까지 각 지파에 합류하여 자리를 배정받았습니다. 이 이방인은 35절의 정확한 번역대로 ‘거류민’(게르)을 의미하며, 이스라엘 언약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상당한 권리와 법적 의무를 공유합니다. 그들은 가나안 민족들 중에서 흡수된 사람들이 아니라 출애굽 당시에 이스라엘의 대열에 합류했던 애굽 인이나 애굽에서 체류하던 여러 민족들이었던 것으로 이해됩니다(출 12:28; 레 24:10-11; 민 32:12). 흥미롭게도 신명기 27장을 보면, 먼저 12-13절에서 축복과 저주의 선언이 지시되지만, 정작 14절 이하에서는 축복의 선언은 생략되고, 열두 가지 연쇄적인 저주가 선언되면서 백성에게 ‘아멘’을 요구하고 있습니다(신 27:14 이하). 반면에 여호수아서는 축복을 선포했다는 것만 보고한 뒤 34절은 ‘축복과 저주하는 율법’ 둘 다를 낭독했다고 말합니다. 이 둘은 상호모순이 아닌 강조점의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저주의 선언에는 이미 순종에 따른 축복이 보장되어 있고, 축복의 선언에는 불순종에 따른 저주가 전제되어 있습니다.
(2) 축복과 저주가 담긴 율법 낭독(34-35)
여호수아는 율법책에 기록된 모든 축복과 저주를 낭독합니다. 신명기 27:14은 ‘레위 사람’, 곧 제사장들이 이것을 낭독해야 한다고 명령하므로 실제적으로는 제사장들이 했을 것입니다. 두 산의 배치는 실제로 음향학적으로 사람의 육성이 자연적으로 멀리 전달될 수 있는 구조라 합니다. 낭독된 ‘율법책에 기록된 모든 것대로’의 축복과 저주의 내용은 신명기 27-28장에 반포된 말씀의 순종과 불순종에 따른 축복과 저주의 선포이거나(특히 저주 목록은 30여 가지의 구체적인 저주들을 쏟아낸다), 신명기 전문일 수도 있습니다.
앞서 말한 대로 이 에발 산의 세겜 언약은 24장의 세겜 언약과 명백히 동일한 언약으로 생각됩니다. 왜이 언약식이 여기에서 진행되고 여호수아가 죽기 전에 다시 반복되는지 이유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크게 두 가지 이유로 이 언약식 장면을 끼어든 본문으로 간주합니다. 첫째, 길갈에서 세겜까지는 약 50km로 상당히 떨어져 있습니다. 따라서 아이 성 정복 후 가나안과의 본격적인 전쟁이 시작된 시점에서 과연 온 이스라엘이 그리심 산과 에발 산이 있는 세겜까지 이동했는지 의문입니다. 둘째, 이 언약식은 언뜻 앞뒤 문맥과 어울리지 않으며 갑자기 끼어든 이질적 요소처럼 보입니다(70인경은 9:1-2 뒤에 배치했다). 어떤 사람들은 실제로 세겜 언약은 정복이 거의 다 마무리된 시점에 체결되었는데(24장), 신학적 기능을 위해 탈시간적 기법으로 시간을 거슬러 여기에 배치되었다고 주장합니다. 쿰란 사본은 이 단락을 요단 강도하 직후의 상황인 5:2앞으로 옮겨 놓았습니다.
그러나 이 언약식은 현재의 문맥에서 중요한 기능을 하고 있습니다. 첫째, 당장 아간과 더불어 하나님의 언약이 위반되었기에 이스라엘 백성은 언약 관계의 회복을 위한 조치가 필요했습니다. 둘째, 가나안의 첫 번째 도성들을 점령한 후, 언약식을 진행하면서 가나안 땅에 대한 소유권을 확증하였으며, 축복과 저주의 맹세를 통해 그 땅에서의 언약적 삶의 실천을 다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돌들을 세운 이유는 가나안 땅의 소유권을 표시하기 위함이었을 것입니다. 당시 메소포타미아 지역에는 왕이 신하에게 땅을 하사할 때 돌비석을 세우는 ‘땅 하사 의식’(a divine land grant ceremony)이 거행되었습니다. 현재 이스라엘은 왕이신 하나님께 땅을 하사받았기에 그들은 돌들로 기념비를 세웠습니다. 여호수아의 사망 직전인 24장의 세겜 언약은 이 언약의 재확증일 뿐입니다.
이스라엘에게 에발 산과 그리심 산에서 진행된 말씀의 잔치에서 “아멘”으로 응답 했습니다. 가나안 땅을 살아가면서 불순종은 죽음이고, 순종은 생명입니다. 가나안 땅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나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도 같은 상황입니다. 여러 가지 상황 속에는 불신앙의 유혹을 많이 받습니다. 이 유혹을 이기고 살아가는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으로 생각하고 성경을 말하며 상경으로 살아가려고 몸부림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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