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09-02)
거짓말이 드러나는 기브온
여호수아 9장 16-27절
많은 목사님을 만나서 함께 사역했습니다. 대부분 아버지와 형님 같은 인간미 넘치는 지도자로서 긍정적인 영향을 준 분들도 있었지만, 일부는 부정적인 교훈을 안겨주기도 했습니다. 이들은 주로 욕심 때문에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을 하거나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여 성도들에게 상처를 주었습니다. 진실은 가슴으로 전달되지만, 거짓말은 결국 탄로 납니다. 부정적인 영향을 주었던 목사님들의 목회를 살펴보면, 제대로 풀리지 않았습니다.
- 기브온 족속에게 속은 것을 알고 이스라엘은 군대를 끌고 그들의 거주지로 달려 왔습니다. 하지만 이미 체결된 조약으로 인해 공격할 수는 없었습니다. 신명기 법에 따르면, 가나안 족속과의 고약은 허용될 수 없었지만, 이미 여호와의 이름으로 조약에 서명을 한 상태입니다. 이스라엘은 기브온 족족을 성전을 섬기는 종신 노예로 삼겠다고 선언하고 목숨을 보전한 기브온 족속은 이를 흔쾌히 받아들입니다.
조약에 참여한 기브온 성읍들(16-21)
이스라엘은 성급하게 결정함으로 실수를 범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실수를 통해서도 역사를 지속적으로 이루어가십니다. 혹시라도 삶의 실수가 있을 때, 자책감에 빠지기 보단 하나님의 깊으신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기브온 족속의 거짓말을 알게 됩니다.
16그들과 조약을 맺은 후 사흘이 지나서야 그들이 이웃에서 자기들 중에 거주하는 자들이라 함을 들으니라 17이스라엘 자손이 행군하여 셋째 날에 그들의 여러 성읍들에 이르렀으니 그들의 성읍들은 기브온과 그비라와 브에롯과 기럇여아림이라 18그러나 회중 족장들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로 그들에게 맹세했기 때문에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을 치지 못한지라 그러므로 회중이 다 족장들을 원망하니 19모든 족장이 온 회중에게 이르되 우리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로 그들에게 맹세하였은즉 이제 그들을 건드리지 못하리라 20우리가 그들에게 맹세한 맹약으로 말미암아 진노가 우리에게 임할까 하노니 이렇게 행하여 그들을 살리리라 하고 21무리에게 이르되 그들을 살리라 하니 족장들이 그들에게 이른 대로 그들이 온 회중을 위하여 나무를 패며 물을 긷는 자가 되었더라(16-21)
언약관계는 사람들 개인의 약속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믿는 하나님과의 약속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브온 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본 것이 아니라 신실하신 하나님을 본 것입니다. 만약 무시하고 진멸할 수 도 있습니다. 하지만 주변에 신실하신 하나님을 보여주지 못합니다.
(1) 조약에 참여한 기브온 성읍들(16-17)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브온 족속과 언약한 후에 3일 만에 밝혀집니다. 그들은 멀리 사는 민족들이 아니라, 30km밖에 되지 못한 거리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군대를 이끌고 기브온 지역의 성읍들로 달려왔습니다. 주도(主都)인 기브온을 중심으로 그비라, 브에롯, 기럇여아림이 주변에 포진해 있었습니다. 이곳은 아이와 여리고에서 멀지 않은 지역이기에 이스라엘이 진격해 오고 있다는 소식이 들에게 속히 퍼졌을 것입니다.
기브온 족속이 자신들을 속인 것을 알았지만, 그들을 진멸할 수 없었습니다. 여호수아와 지도자들이 기브온과 평화 조약을 맺고 살려주기로 맹세했기 때문입니다. 본문에서 말하려는 핵심적인 의도는 일단 불합리한 조약일지라도 언약한 것은 실천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2) 조약을 지켜야 하는 이스라엘(18-21)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일로 기브온 족속을 칠 수 없는 사실을 깨달은 후에 여호수아와 족장들에게 원망했습니다. 족장들은 열두 지파의 대표인 지파장들로 추정됩니다. 백성들은 자신들이 헤렘 규칙을 어겼으며, 그 때문에 하나님의 징벌이 임할까 두려워했을 것입니다. 여리고 성과 아이 성 전투에서 이간의 범죄로 헤렘 법을 지키지 않은 대가를 혹독히 치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신명기에서 가나안의 여러 부족들을 진멸하고 완전히 내쫓으라고 지시하셨습니다. 특히 신명기 7:1-4에서는 가나안 족속과 결코 조약을 맺지 말라고 엄히 경고하시면서 그 결과는 통혼과 우상숭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치명적이게도 가나안 족속과 언약을 맺어 하나님께서 경고하신 금령을 어겼습니다. 그렇다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한 서약을 깨트릴 수는 없었습니다. 그 서약에 걸린 여호와의 이름을 결과적으로 더럽혀 진노가 그들에게 임할 것이기 때문입니다(20). 만약 그들을 죽인다면, 하나님의 언약을 어기는 일입니다. 그래서 족장들은 항의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우리가 그들에게 맹세한 맹약을 인하여 진노가 우리에게 임할까 하노니 이렇게 행하여 그들을 살리리라”(20)고 말합니다. 사무엘하 21장을 살펴보면, 나중에 사울 왕이 이 언약을 무시하고 기브온 사람들을 멸하려 할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크게 진노하셨습니다. 3년간 큰 기근을 주셨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삼하 21:1-9). 이 기브온 거민들은 변함없이 계속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돕습니다. 약 400년 후인 다윗의 시대에도 여전히 가나안 살고 있었습니다(삼하 4:3). 더 먼 훗날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성을 재건하려 할 때, 예루살렘 성 재건을 돕기도 했습니다(느 3:7). 그들은 변질되지 않고 꾸준하게 하나님의 제사를 수중 드는 사람들로 봉사를 하게 됩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건 맹세와 서원은 매우 중요하므로 경솔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양측의 조약을 따라 이스라엘은 그들을 살려주어야만 했습니다(21). 대신 조약 내용대로 기브온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종노릇을 할 것입니다. 그들은 나무를 패고 물을 긷는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나무를 패고 물을 긷는다는 것은 종들의 모든 노역으로 이스라엘을 섬길 것임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이어지는 구절들에서 기브온 사람들의 노역이 특히 제단과 관련되었다고 언급되는 것은 그들의 노역이 매우 특별했음을 암시합니다.
이것은 오늘날 성도들에게도 약속에 대한 중요성을 가르칩니다. 성도들은 약속은 자신이 손해가 난다고 할지라도 약속을 지켜야합니다. 특히 불신앙인들과의 약속은 더 철저하게 지켜야합니다. 우리들의 모습을 보면서 신실하신 하나님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실수한 지도자들이지만, 그들에게 그들을 ‘그들을 살리라’는 조치를 내립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받아들이고 그들을 자신들의 종으로 삼았습니다. 그들은 개인의 종이 아니라 성소에서 하나님께서 제사할 때 땔감을 준비하도록 나무를 패며, 제사에 필요한 물을 긷는 자들이 되도록 함으로서 순종합니다(21). 이 기브온 거민들은 거짓말을 했지만, 이스라엘의 언약 관계 속으로 들어오게 됩니다.
이스라엘의 종이 된 기브온 족속(22-23)
사단과의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하여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해야 합니다. 요청할 때에는 우리의 연약함을 솔직하게 고백하고 그 가운데서 하나님의 뜻에 자신을 맡기는 자세를 취하여야 합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승리의 축복을 내려 주시는 것입니다.
22여호수아가 그들을 불러다가 말하여 이르되 너희가 우리 가운데에 거주하면서 어찌하여 심히 먼 곳에서 왔다고 하여 우리를 속였느냐 23그러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나니 너희가 대를 이어 종이 되어 다 내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나무를 패며 물을 긷는 자가 되리라 하니(22-23)
여호수아는 기브온 족속들(아마도 대표)을 불러내어 그들의 속임수를 비난하고 대대로 자신들의 종이 될 것을 선언합니다. 아마 종주국은 속국의 태도에 따라 훨씬 더 무거운 요구를 할 권리가 있었기에, 여호수아는 기브온 사람들에게 저주를 들먹이면서 가혹한 종노릇을 선언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그들에게 성전을 위해 나무를 패고 물 걷는 일을 해야 한다고 공포합니다. 아마도 성전에서 사용되는 땔감과 물을 공급하는 일은 훨씬 더 까다로운 일이였을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여호수아가 그들을 향해 ‘저주’를 선언하는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이것은 분명 함의 아들 가나안을 향한 노아의 저주의 성취합니다(창 9:24-27). 기브온 사람들인 허위 족속은 가나안 자손들 중 하나였습니다(창 10:17; 대상 1:15). 이들은 아마 호리 족속과 동일한 민족일 것입니다(창 14:6; 36:20,29; 신 2:12,22). 가나만의 후손인 히위 족속 일부가 이스라엘의 종이 된다는 것은 이며 가나안에게 내려진 저주에서 확인됩니다.
23절의 ‘너희가 저주를 받나니’는 창세기의 이 저주에 비추어서 해석해야 합니다. 함에 대한 노하의 자주는 오래도록 백인 신학자들에 의해 혹인 저주론의 성경적 근기로 약용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흑심 노예 제도를 정당화하기 위한 신학적 왜곡이며 날조된 성경 해석입니다. 노아에게는 셈, 함, 야벳의 세 아들이 있었는데, 함은 아버지 노아의 드러난 하체를 덮어주지 않은 잘못으로 저주를 받습니다. 함에게는 내 명의 아들인 구스, 붓, 미스라임, 가나안이 있었는데, 앞의 세 명의 거주지가 아프리카이고, 가나안은 아프리카 종족들과 무관합니다. 그린데 함의 저주는 가나안에게 내려집니다(창 9:24-27). 따라서 할의 저주는 인의 저주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으며, 게다가 이 저주는 여호수아 시대 이후로 열왕기 시대에 점차적으로 성취되어 유효기간이 끝났습니다(수 15:63: 17:13 왕상 9:21, 대하 8:8). 사실 성경은 우리 모두가 예수님의 구속이 아니고는 가망 없는 저주 받은 존재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롬 3:9).
기브온 거민의 거짓으로 조약을 맺었지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이스라엘 백성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목숨을 건질 수가 있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기브온 거민들의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보시고 그들에게 구원을 베푸셨던 것입니다. 우리들은 어떠합니까? 항상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경배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두려워 할 줄 모르고 사람의 힘이나 지혜, 그리고 권세만을 두려워하면 필경 실패하고 넘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참 힘의 근원되시며 권세의 주관자 되시는 하나님만을 두려워하며 그 분을 섬겨야겠습니다.
기브온 족속의 변명(24-27)
많은 사람들이 ‘현대는 깨끗해서는 살기 곤란하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속임수요 거짓말입니다. 시대가 어두울수록 빛이 더욱 필요합니다. 비록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그리고 당장 손에 들어오는 것이 없다고 할지라도 거짓으로부터는 벗어나야 합니다. 기브온 족속은 여호수아에게 거짓된 행동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에 변명합니다.
24그들이 여호수아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사 이 땅을 다 당신들에게 주고 이 땅의 모든 주민을 당신들 앞에서 멸하라 하신 것이 당신의 종들에게 분명히 들리므로 당신들로 말미암아 우리의 목숨을 잃을까 심히 두려워하여 이같이 하였나이다 25보소서 이제 우리가 당신의 손에 있으니 당신의 의향에 좋고 옳은 대로 우리에게 행하소서 한지라 26여호수아가 곧 그대로 그들에게 행하여 그들을 이스라엘 자손의 손에서 건져서 죽이지 못하게 하니라 27그 날에 여호수아가 그들을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회중을 위하며 여호와의 제단을 위하여 나무를 패며 물을 긷는 자들로 삼았더니 오늘까지 이르니라 (24-27)
기브온 사람들은 여호수아에게 속임수를 변명하면서 이 속임수가 불가피했음을 적극적으로 설명합니다. 24절은 그들이 신명기에서 모세가 선포한 가나안 정복의 실재성과 헤렘 전쟁 수칙을 정확히 알고 있었음을 말해줍니다. 결국 그들의 해명은 여호와께서 명령한 법에 따라 가나안의 모든 부족들은 진멸을 당할 것이 분명하므로, 생존을 위한 최후 수단으로 속임수를 써야 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운명을 이스라엘의 처분에 맡기겠다면서 자세를 더욱 낮춥니다(25).
여호수아는 조약에 따라 목숨을 보장해주면서도 다시 한 번 공신 종노릇의 운명을 선언합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을 섬기되 구체적으로 여호와의 재단을 위해 나무를 패고 물을 긷는 일을 감당할 것입니다. 성전을 위한 종노릇은 일반 직무보다 훨씬 더 까다롭고 힘든 직무일 수 있습니다. 예컨대, 미쉬나(Mishna)와 희년서(jubilee)는 제단용 땔감으로 잘 타지 않는 올리브 나무와 포도나무를 제외한 대부분의 나무를 허용하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무화과나무, 잣나무, 소나무, 삼나무, 월계수 등을 선호합니다.
병들고 흉한 나무는 금했으며, 금이 가거나 색깔이 어두운 나무, 벌레가 먹었거나 싹은 부위가 있는 나무는 금했습니다. 향이 거의 남지 않은 오래된 목재도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성전의 물도 가장 깨끗한 물을 썼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수아가 부여한 기브온 족속의 성전을 위한 종살이는 기브온 족속과 그들의 생존을 은근히 우호적으로 보게 합니다.
이 기브온 사람들의 이야기는 부주의하게 헤렘 수칙을 위반한(출 34:11-13; 신 7:1-5; 20:16-17) 이스라엘의 잘못을 고발하고 비난하기 위한 목적을 지닌다고 전통적으로 해석되어 왔습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족속을 ‘다 쫓아내지 못한’ 실패에 대한 기록이라는 주장입니다. 그러나 이 기사는 기브온의 이스라엘로의 편입을 긍정적으로 보게 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이 기사의 초점은 이스라엘의 잘못보다는 기브온이 이스라엘에 편입되는 과정에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기브온 족속의 말에서 수차례 여호와의 명성과 위대한 업적에 대한 신앙이 고백되고 있으며, 그분에게의 전적인 투항과 굴복의 자세가 나타납니다.
기브온 사람들은 9장 서두의 다른 모든 가나안 족속들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모두가 이스라엘에 맞서는 공동 전선에 합류했지만, 기브온 사람들만 전혀 다른 선택을 한다. 그들의 결단은 라합의 결단과 비견됩니다. 라합의 개인적인 신앙의 결단의 민족적인 확장판이라 할 수 있습니다. 라합이 여리고 군사들을 속여서 목숨을 부지했다면, 기브온 족속은 이스라엘을 속여 목숨을 부지합니다. 이런 관점에서는 이스라엘이 여호와께 묻지 않은 부주의한 실수마저 그들의 언약 공동체로의 편입을 위한 섭리로 볼 수 있게 합니다. 실제로 본문은 여호와께 묻지 않은 것에 대해 아무런 책임 추궁이나 처벌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나아가 기브온 족속의 결단과 속임수마저 불사한 과감한 행동은 라합과 같은 개인만이 아니라 민족적 단위의 구원 가능성을 열어 놓습니다. 이 이야기는 ‘진멸이 아니라 진멸로부터 구원받는 한 길을 제시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들은 사람들을 겉으로 들어난 모습으로 사람을 대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실수할 수 있습니다. 외모는 거짓으로 꾸밀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만일 너희가 외모로 사람을 취하면 죄를 짓는 것이니 율법이 너희를 범죄자로 정하리라’(약 2:9)고 경고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삼상 16:7)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겉모습으로 들어난 사람을 대함으로 실수해서 기브온 사람들과 언약을 했지만, 그 언약을 신실하게 지킴으로 기브온 사람들이 신실하게 자손대대로 이스라엘과 하나님을 섬기는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기브온 거민이 살아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을 믿고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그를 섬겨야 함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며 날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살아야 함을 깨닫게 됩니다. 다른 의미는 비록 하나님의 백성들은 손해를 본 다고 할지라도 모든 일에 약속을 신실하게 지키시는 하나님의 성품을 드러내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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