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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07-01)


아이성 전투에서의 충격적 패배

여호수아 7장 1-15절


 

하나님의 자녀로서 칭의와 중생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에 의해서만 완전합니다. 구원에 다른 공로를 추가하려는 것은 복음을 대적하는 행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행위를 정죄하고 심판하십니다. 이는 오직 하나님의 공로와 은혜로만 구원이 이루어짐을 강조합니다. 다른 공로를 가미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훼손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만이 우리의 구원의 길입니다.

 

  • 헤렘 전쟁을 통해 헤렘으로 헌정된 물건은 사람의 것이 아니므로 사사로이 쉬할 수 없습니다. 때로 하나님의 허락 하에 전리품을 취할 수 있었지만, 최고 수위의 헤렘 전쟁에서는 모든 물건을 소각하고 가축은 모두 죽었으며, 금속류는 성전 창고에 보관해서 성전을 위해 재활용했습니다. 여리고 성이 바로 최고 수위의 헤렘으로 봉헌되었으며, 어떤 물건도 전리품으로 취할 수 없었습니다.

 

실패한 아이 성 정복(1-5)

 

신앙 공동체는 한 사람의 작은 죄라도 방관하거나 방치해서는 안 됩니다. 남의 일처럼 비난하고 조롱하는 태도는 옳지 않습니다. 공동체는 서로의 죄를 바로잡아야 합니다. 사랑과 책임감을 가지고 행동해야 합니다. 우리 공동체 안에 아간의 죄 같은 것이 있는지 살펴보고, 이를 제거하기 위한 절차가 필요합니다.

 

1이스라엘 자손들이 온전히 바친 물건으로 말미암아 범죄하였으니 이는 유다 지파 세라의 증손 삽디의 손자 갈미의 아들 아간이 온전히 바친 물건을 가졌음이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진노하시니라 2여호수아가 여리고에서 사람을 벧엘 동쪽 벧아웬 곁에 있는 아이로 보내며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올라가서 그 땅을 정탐하라 하매 그 사람들이 올라가서 아이를 정탐하고 3여호수아에게로 돌아와 그에게 이르되 백성을 다 올라가게 하지 말고 이삼천 명만 올라가서 아이를 치게 하소서 그들은 소수이니 모든 백성을 그리로 보내어 수고롭게 하지 마소서 하므로 4백성 중 삼천 명쯤 그리로 올라갔다가 아이 사람 앞에서 도망하니 5아이 사람이 그들을 삼십육 명쯤 쳐죽이고 성문 앞에서부터 스바림까지 쫓아가 내려가는 비탈에서 쳤으므로 백성의 마음이 녹아 물 같이 된지라(1-5)

 

아간의 이야기를 잘 아는 독자들은 7장 서두에서 이상한 표현을 발견할 것입니다. 아간 한 사람이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온전히 바친 물건으로 말미암아 범죄하였으니’(1a)라고 하십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아간의 범죄에 대한 공범자라는 진술입니다. 이것은 구약의 ‘공동 책임 사상’을 반영하는 중요한 신학적 진술입니다. 온 이스라엘을 곤경에 빠트린 당사자는 아간입니다. 그의 상세한 족보가 제시되면서 아간과 그의 집안 내력이 함께 암시됩니다. 4대가 등장하는 아간의 족보는 선택적인 신학적 족보로 축약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아간은 유다 지파이긴 하지만, 그의 조상이 다윗으로 이어지는 베레스가 아닌 세라인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이 족보가 명망가로서의 아간의 집안을 소개하는 목적이 있을 수도 있지만, 범죄자 가인의 뿌리를 추적하는 것을 고려해볼 때 혈통에 대한 부정적인 암시에 목적이 있는 듯합니다.

아간은 ‘온전히 바친 제물’에 손댔습니다. 이 물건은 ‘헤렘’인데, 하나님께 ‘전적으로 바쳐진 것’을 뜻합니다. 아간이 헤렘 물건에 손을 대는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이 범죄는 특별히 ‘마알’로 지칭되는데, 이것은 특히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위반’을 가리키는 용어입니다. 보통 하나님 앞에서 맹세한 서약을 위반하는 범죄들을 ‘신실치 못하여 저지른’ 마알의 범죄로 간주할 수 있습니다(레 6:2). 이것은 서약 당사자인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는 행위입니다. 현재 아간의 범죄 역시 마알인데, 이것은 11절에서 하나님께서 꾸중하고 있듯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어기는, 더 구체적으로는 모든 것을 헌정해야 하는 헤렘 전쟁의 서약을(수 6:17-19) 위반하는 행위였음을 암시합니다. 이로 인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전체에 분노를 뿜어내셨습니다. 범죄에 대한 상세한 내막과 설명은 아이 성 정복 실패담 이후로 유보됩니다.

1-3절은 아이 성 공략이 실패한 두 가지 원인을 서론적으로 꺼내고 있습니다. 그것은 헤렙의 규칙을 위반한 아간의 범죄(1)와 아이 성을 하찮게 본 이스라엘의 교만이었습니다(2-3). 실패한 아이 성 이야기의 서두에 아간의 범죄가 가장 먼저 언급된 이유는 실패의 주요 원인을 말하기 위함입니다. 이어지는 진술에서 교만함이 부각됩니다. 요단강 근처 저지대의 여리고를 정복한 이스라엘은 가나안 내륙의 고지대 초입에 자리한 아이 성을 공략하기 위해 밀정들을 보냅니다. 아이 성의 정탐꾼의 숫자가 명시되지 않고 정탐 과정이 생략된 채 결과만 보고되는데, 이는 아이 성의 경우 정탐부터가 매우 느슨하고 허술했음을 암시합니다. 이스라엘의 오만함이 엿보입니다. 정탐꾼들이 파견된 아이의 위치는 벧엘 동쪽 벧아웬 근처입니다. 벧엘과 벧아웬은 아이보다 더 서편에 위치해 있었는데, 이 두 성의 위치에 대해 많은 제안이 있었습니다. 여리고는 해수면 아래 계곡에 위치했지만, 아이는 급격히 높아진 산악 지대 초입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정탐을 마친 밀정들이 돌아와 여호수아에게 지나치게 낙관적인 보고를 합니다(3). 그들은 소수 병력만으로도 아이 성 공략이 충분하다고 말하면서 불과 이삼천 명을 제안합니다. ‘그들은(아이 성 주민) 소수이니’라는 말에서 정탐 활동이 철저하지 못했음이 드러납니다. 나중에 아이 성 주민이 남녀 만 이천 명으로 드러나기 때문입니다(수 8:25). 정탐꾼들의 제안대로 선발된 군사 삼천 명이 아이로 올라가 전투를 벌이지만 쉽게 패주하여 36명의 군사를 잃습니다(4). 아이의 군사들은 ‘채석장’이라는 뜻의 지명을 가진 스바림까지 쫓아가 내리막길에서 이스라엘 군대를 쳐부수었습니다. 냉정히 평가하면, 불과 36명의 전사자가 치명적 타격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중지란에 빠진 이스라엘은 그들이 얼마나 느슨한 정신으로 전쟁에 임했는지를 잘 암시해줍니다. 예상치 못한 패배 소식에 온 백성의 마음이 녹아내렸습니다. 마음이 녹은 상태를 표현한 마사스(분해되다)는 앞서 2:9에서 여호와의 이스라엘에 대한 소문을 들은 여리고 주민들과 가나안 땅의 거주민들에게 사용된 바 있습니다. 이제 여기서 그 동사가 이스라엘에게 사용됩니다. 그들은 완전히 사기를 잃었습니다. 반면에 아이 성 가나안의 사기는 충천했습니다.

세 번의 정탐 활동을 비교해보면 극명하게 대조에는 흥미로운 특징들이 나타납니다. 민수기에서 가데스 바네아로부터 파견된 열두 명의 밀정들은 불신의 비고를 가져와 백성을 낙담케 했습니다. 반면에 여리고를 탐문한 두 명의 밀정은 믿음의 보고로 백성의 사기를 진작시켰습니다. 그런데 아이를 정탐한 밀정들은 교만한 보고로 백성을 방심케 했습니다. 정탐 행위 자체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단지 정탐의 동기와 태도, 정탐 후의 평가가 중요했을 뿐입니다.

 

패배 후 여호수아의 탄원(6-9)

공동체 내에서 다른 사람의 실수를 보게 되면, 우리는 종종 그들을 정죄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도 그 일에 대해 기도하지 않은 공범자일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하지 못한 죄는 크며, 나중에 자신이 조롱한 대로 돌려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6여호수아가 옷을 찢고 이스라엘 장로들과 함께 여호와의 궤 앞에서 땅에 엎드려 머리에 티끌을 뒤집어쓰고 저물도록 있다가 7이르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어찌하여 이 백성을 인도하여 요단을 건너게 하시고 우리를 아모리 사람의 손에 넘겨 멸망시키려 하셨나이까 우리가 요단 저쪽을 만족하게 여겨 거주하였더면 좋을 뻔하였나이다 8주여 이스라엘이 그의 원수들 앞에서 돌아섰으니 내가 무슨 말을 하오리이까 9가나안 사람과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듣고 우리를 둘러싸고 우리 이름을 세상에서 끊으리니 주의 크신 이름을 위하여 어떻게 하시려 하나이까 하니(6-9)

 

패배의 소식을 들은 여호수아와 장로들은 도탄에 빠졌습니다. 옷을 찢고 법궤 앞에서 땅에 엎드리며 머리에 티끌을 뒤집어쓰는 행위는 전형적인 애도와 슬픔의 표현입니다. ‘법궤 앞에서’ 엎드렸다는 것은 여호와 앞에서 그들이 온종일 탄식하며 부르짖었음을 뜻합니다.

여호와를 향한 그들의 항변은 광야에서 조상들이 반복적으로 쏟아낸 불평과 완전히 일치합니다. 그때마다 그들은 ‘애굽 땅에서의 생활이 더 좋았다’는 말을 덧붙이곤 했습니다(출 14:10-12; 민 14:1-3). 여기서도 여호수아와 장로들은 왜 여호와께서 우리를 요단 강을 건너오게 해서 다 죽게 만드시느냐고 따지면서 ‘우리가 요단 저쪽에서 사는 것이 더 나을 뻔했다’고 덧붙입니다. 나아가 그들은 역시 조상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께 압력을 행사하면서 흥정을 시도합니다. ‘우리가 적들에게 망해 이 소문이 세상에 퍼진다면, 당신의 명성에 스스로 먹칠하는 셈이 아닙니까?’ 이것은 물론 시편에서도 흔히 보이는 전형적인 탄식 기도의 수사학입니다. 그러나 이미 영적으로 태만해졌던 그늘의 항변은 시편 기자의 탄식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결국 모든 것은 이집트를 떠나 홍해를 건너게 하시고 요단 동편을 떠나 요단을 건너게 하신 하나님 탓이다!’ 그들도 결국 제1세대의 조상들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범인 색출과 징벌(10-15)

온전히 하나님께 바친 물건, 즉 진멸의 대상이 되어야 할 것들을 하나님께 바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도 이스라엘을 떠나겠다고 하십니다. 진멸하지 않고 가져온 물건과 사람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것을 훔친 사람을 진멸할 때 이스라엘로부터 수치가 떠날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의 것으로 돌릴 때 그들 몫의 축복을 반ㄷ을 수 있습니다.

 

10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일어나라 어찌하여 이렇게 엎드렸느냐 11이스라엘이 범죄하여 내가 그들에게 명령한 나의 언약을 어겼으며 또한 그들이 온전히 바친 물건을 가져가고 도둑질하며 속이고 그것을 그들의 물건들 가운데에 두었느니라 12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들이 그들의 원수 앞에 능히 맞서지 못하고 그 앞에서 돌아섰나니 이는 그들도 온전히 바친 것이 됨이라 그 온전히 바친 물건을 너희 중에서 멸하지 아니하면 내가 다시는 너희와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13너는 일어나서 백성을 거룩하게 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내일을 위하여 스스로 거룩하게 하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아 너희 가운데에 온전히 바친 물건이 있나니 너희가 그 온전히 바친 물건을 너희 가운데에서 제하기까지는 네 원수들 앞에 능히 맞서지 못하리라 14너희는 아침에 너희의 지파대로 가까이 나아오라 여호와께 뽑히는 그 지파는 그 족속대로 가까이 나아올 것이요 여호와께 뽑히는 족속은 그 가족대로 가까이 나아올 것이요 여호와께 뽑히는 그 가족은 그 남자들이 가까이 나아올 것이며 15온전히 바친 물건을 가진 자로 뽑힌 자를 불사르되 그와 그의 모든 소유를 그리하라 이는 여호와의 언약을 어기고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망령된 일을 행하였음이라 하셨다 하라(10-15)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부르짖음에 반응하십니다. 그리고 그들이 왜 무기력하게 아이 성에서 실패했는지 알려주시면서 그들을 질책하십니다. 요지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언약 조항의 하나인 헤렘 규칙을 어기고 헤렘의 물건을 도둑질했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 그들이 패한 이유입니다(12). 아간은 해이해진 백성의 정신적, 영적 상태를 대표로 보여줍니다. 여기서도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공범자로 취급하시면서 이스라엘이 공동 책임을 지고 이 문제를 해결할 것을 명령하십니다. 덧붙여 하나님께서는 만일 헤렘 물건이 제대로 처리되지 않으면, 더는 이스라엘과 함께하지 않겠다고 경고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범인 색출을 위한 구체적 방법과 절차를 알려주십니다. 모든 백성이 스스로 성결케 하고 다음 날을 준비해야 합니다. 그들이 어떻게 성결케 하는지는 출애굽기 19장에 암시되어 있는데, 옷 세탁과 부부관계의 금지입니다. 통상적으로 옷을 빨아 정결케 할 때는 목욕이 전제되어 있었습니다. 이튿날 아침 성결케 된 백성 중에서 하나님이 차례로 ‘취하실 것’입니다. 이것은 문자적으로 ‘여호와께서 취하실 지파’를 의미합니다. 이것이 결정되는 방식은 본문이 말해주지 않지만, 아마 제비뽑기일 것입니다. 대제사장의 흉패 속에 보관했던 우림과 둠밈이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합법적인 제비뽑기는 분명 이방의 마술이나 점술과는 의미가 달랐습니다. 잠언은 ‘사람이 제비를 뽑으나 모든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느니라’(잠 16:33)라고 천명합니다. 제비가 뽑히는 순서는 큰 단위의 집단부터 작은 단위로 내려가는 방식입니다. 그래서 제비를 통해 특정 지파가 뽑히고, 그 지파 안에서 다시 제비를 통해 특정 가문이 뽑히고, 그 가문 내에서 다시 제비뽑기에 의해 범인이 뽑힙니다. 가문의 남자들이 가까이 온 가운데, 최후의 제비뽑기를 통해 범인이 드러납니다(14-15). 그는 형을 당할 것이고, 그와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이 함께 불사름을 당할 것입니다(15).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우리는 죄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그것이 공동체에 미치는 영향을 이해해야 합니다. 아간의 죄는 이스라엘 전체에 고통을 가져왔으며, 이는 한 사람의 죄가 모두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함을 유지하기 위해 죄를 고백하고 회개해야 하며, 죄를 방관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제거해야 합니다. 공동체의 영적 상태에 책임감을 가지고, 서로를 사랑과 책임감으로 돌봐야 합니다. 결국, 하나님의 공의와 자비를 기억하며, 그분의 뜻을 따르고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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